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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미지의 정치 : '사진의 작은 역사'(벤야민, 1931) 독서노트 - 민호

이글은 일종의 독서노트 이다.
벤야민의 '사진의 작은 역사'를 읽고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한 내용을 정리한 글이다. 
이미지의 정치[이 글에서는 사진이라는 장르에 한정짓는다 해도]를 「사진의 작은 역사(1931)」라는 하나의 글로 설명하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글은 「사진의 작은 역사」의 흐름을 최대한 따라가되 「초현실주의(1929)」,「생산자로서의 작가(1934)」,「역사철학 테제(1940)」의 논의를 빌려 벤야민에게 이미지의 정치가 의미하는 바를 추적한다. 이 글에서 쓰인 모든 벤야민의 말은 이 네 글에서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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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야민의 매체 이론은 언제나 정치성과의 밀접한 연관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사진의 작은 역사」 역시 사진이 어떤 정치성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봄으로써 글의 핵심으로 파고들 수 있다. 여기서는 초현실주의, 소격, 구성적 사진술과 표제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사진의 정치성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앗제의 사진, 소격

10.jpg  
벤야민에 따르면 앗제는 초현실주의의 선구자이며, 대상을 아우라로부터 해방시킨 인물이다. 그의 “소멸된 것과 못쓰게 된 물건에서 소재를”찾아서 찍은 사진은 “침몰하는 배로부터 물을 빨아들이듯이 현실로부터 아우라를 빨아들”였다. 아우라의 대상 - 인물, 거창한 광경, 상징적 기념물은 사라지고 소멸된 것과 못쓰게 된 물건이 사진에 등장할 때,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이 느끼게 되는 낯설음, 벤야민은 그것을 유익한 소격을 찾으려는 작업의 일환이다. 
이라고 불렀다. 아우라의 대상이 사진에서 사라질 때 대상 뒤에 숨어 있던 세계가 모습을 드러낸다.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보지 못했던 것들과 대면할 때 느껴지는 낯설음을 통해 우리는 낡은 것 속에 담겨 있는 역사를 응시할 수 있게 된다. 벤야민이 낡은 것 속에서 역사를 응시하는 것은 과거 속에 매몰되기 위함이 아니다. 낡은 것 속에는 “전체 역사의 진행 과정이 보존되고 지양”되고 있다. 벤야민은 낡은 것을 통해 “사건의 메시아적 정지의 표식, 달리말해 억압된 과거를 위한 투쟁에서 나타나는 혁명적 기회의 신호를 인식”하려했다. 소격은 “낯익어 보이는 모든 것이 세부적인 것의 조명을 위하여 탈락되는 그런 장을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 일상을 낯선 풍경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은 몰입을 방해하는 거리두기의 정치학이면서, 낡은 것 속에서 현재의 기원을 찾으려는 작업의 일환이다.
  
 여기서 잠깐 벤야민이 말하는 기원에 대해 말하고 들어가자. 기원이라는 말이 상당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벤야민에게 기원은 실증주의에서 말하는 원인과는 다른 어떤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원(ursprung)은 지극히 역사적인 범주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한다는 것과는 무관하다. (…) 기원이란 이미 발생한 사태의 생성과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성과 소멸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태를 의미한다. 기원은 소용돌이치는 생성의 흐름 속에서 정지해 있다. (…) 기원의 율동은 이중적 통찰 앞에서만 모습을 드러낸다.”(수잔 벅 모스, 『발터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재인용)

   몽타주는 연관성 없는 것들을 충돌시켜 제 3의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다. 제 3의 의미는 사진으로 주어진 상황 속에서가 아니라, 상황과 단절(정지)됨으로써 상황을 재발견하는 것이다. 구성적 사진술은 사진 안에서 인위적 조작을 통해 의미를 충돌시키기도 하지만, 앗제나 잔더의 사진처럼 사회적 맥락과 연동하여 의미를 구성하는 사진까지 포함한다. 이런 의미에서 표제 설명이 앞으로 사진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가 될 것이라는 벤야민의 말은 구성적 사진술의 가지는 정치적 효과와 함께 파악되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벤야민이 구성적 사진술을 가능하게 한 선구자적 역할을 초현실주의자들에게 돌리고 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3. 초현실주의

   초현실주의자들은 “낡아버린 것에서 나타나는 혁명적 에너지”와 맞닥뜨린다. 그들의 서정시가 보고하는 공간은 “사건들 간의 상상도 못할 유사성들과 얽힘이 늘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공간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은 그 공간 속에서 세속적인 것 속에서 성스러운 것을, 성스러운 것 속에서 세속적인 것을 발견한다. 혁명적 에너지는 이러한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의 충돌로 나타난다. 성스러운 것은 인식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저항할 수 없는 어떤 것, 너무 멀리 있어 현재화 할 수 없는 비역사적 신화이다. 성스러운 것 속에서 세속적인 것을 보는 행위는 완전하다고 생각된 신화에 균열을 내는 작업이다. 아우라가 없는 대상, 소멸되어 가는 것의 존재 자체가 성스러움 속에 있는 하나의 공백이다. 성스러움 속에서는 낡고 소멸되어가는 것의 존재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이 낡아버린 것에서 혁명적 에너지를 발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세속적인 것 속에서 성스러운 것을 발견하는 행위는 낡은 것의 성스러움을 발견하는 것이다. 성스러움은 영원성을 추구하지만, 낡은 것은 사라져가는 것이기에 순간적이다. 낡은 것의 성스러움을 발견한다는 것은 낡아 버리는 행위의 영원성을, 모든 것은 새로움이면서 동시에 낡은 것이 되어가는(소멸되어 가는) 과정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새로운 것의 소멸, 모든 것의 순간성이라는 영원불변의 법칙을 깨닫는 것이 바로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의 변증법이다. 

   벤야민 사상의 정신적 모티브중 하나인 보들레르의 모더니티에 대한 언급을 잊어서는 안된다. 보들레르는 “모더니티는 일시적인 것, 우발적인 것, 즉흥적인 것이 예술의 절반이며, 나머지 절반은 영속적인 것과 불변적인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말을 다시 해석하면 ‘모든 것은 일시적이고, 그 일시적임만이 영속된다’고 할 수 있다.

   초현실주의자들이 꿈을 통해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의 변증법을 제시했다면, 벤야민은 꿈에서 깨어남을 통해 그 변증법의 정치성을 읽어낸다. 초현실주의자들은 꿈속에서 성스러운 것의 균열을 읽어 내고, 도취를 통해 그 균열을, 그 공백을 파고 들어간다. 앗제의 사진이 초현실주의의 선구적인 작품으로 불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도시는 무엇보다 인구밀도를 통해 규정된다. 그런 도시에서 앗제는 사람이 없는 도시의 풍경을 찍었다. 아우라의 대상인 사람이 제거된 사진은 하나의 추상이다. 가장 사실적 도구로 추상을 통해 도시의 균열과 인식되지 못한 삶의 흔적을 그려나가는 사진, 그것이 초현실주의자로서 앗제의 사진이다. 벤야민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꿈으로부터 깨어남으로써 새로운 정치성을 논의한다. “종교적 각성(성스러운 것)을 참되고 창조적으로 극복하는 것은 결코 환각제를 통해서가 아니다. 그 극복은 세속적인 각성, 유물론적이고 인류학적인 영감 속에서 이루어진다.” 세속적인 각성을 통해 꿈속에서 발견된 성스러운 것의 균열을 현재화하고 비평하는 것. 벤야민이 말하는 정치성은 그 각성, 성스러운 것에 몰입하지 않고, 그 틈을 발견하고 파고드는 (성스러운 것으로부터) 거리두기의 행위를 말한다. 

4. 구성적 사진술과 표제

  구성적 사진술과 표제는 이러한 정치성을 극대화 시키는 한 방식을 제공한다. 바르트는 사진이 “시각으로 채우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폭력적”이라고 말했다. 마치 설탕이 쓴맛, 매운맛, 짠맛을 배제한 채 단맛으로 미각을 채워 하나의 맛을 강요하듯이, 사진은 의미를 분석하거나 희석시키는 일 없이 단번에 강요한다는 것이다. 벤야민의 용어로 말하자면 이것이 바로 “보는 사람의 마음속에 언어적 효과만을 연상시키는 천편일률적인 르포르타쥬”이다. 하지만 벤야민은 이러한 사진의 특성을 모르거나 무시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측면을 응시하며 사진의 정치성을 극대화 시키고자 한다. 그것이 바로 앞서 언급한 구성적 사진술의 역할이다. 벤야민이 제시한 표제의 역할이란 천편일률적인 르포르타쥬에 언어적 연상효과를 극대화하는 설명이 아니다. 표제는 구성적 사진술의 일부이다. 사진에 표제를 부여함으로써 의미의 충돌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사진을 보는 사람에게 유익한 소격효과를 제공할 수 있다. 벤야민은 사진작가에게 “사진에 제목을 붙일 줄 아는 능력”을 요구하며, 이를 통해 사진작가가 “사진을 유행적 소비품으로부터 빼내어 그 사진에 혁명적 사용가치를 부여”하게 된다고 말한다. 나아가 카메라 기술의 발달은 광범위하게 “순간적이면서도 신비스러운 영상이 불러일으키는 쇼크”를 제공할 것이며, 이 사진들은 “기계적인 연상작용을 정지상태”에 이르게 할 것이다. 표제는 이 사진들과 결합해 의미의 외연을 확장하면서 함축적 의미를 드러내는 역할을 하게 된다.

2. 창조적 사진술과 구성적 사진술

Hurrah, the Butter is All Gone!(1935).jpg   이미지의 정치성에 대해 해명하려 할 때 소격과 함께 주목해서 봐야 하는 것은 글의 후반부에 나오는 창조적 사진술과 구성적 사진술의 대립이다. 창조적 사진술은 사진을 사회의 제반 영역으로부터 독립시켜 사진과 인간적 연관을 제거함으로써 ‘사진을 위해 사진을 찍는 것’을 말한다. 사진에 창조적인 면이 있다면 그것은 변덕스럽게 변화하는 유행에 자신을 내맡길 때만 산출된다. 왜냐하면 창조적인 것은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변화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모방하면서 모순적으로 다른 것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유행의 등에 업혀 산출된 창조적인 것은 (인간적 연관으로부터 벗어나있기 때문에) 표피적 상업성의 선구자 노릇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이에 반해 구성적 사진술은 사진과 인간적, 사회적 연관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브레히트의 말처럼 현실이 “너무 복잡해졌기 때문에 단순한 현실 재현은 현실에 대해 무엇인가를 설명해 줄 수 없”다. 따라서 “인위적인 것, 인공적인 것을 구성하는 일이 필요하다.” 단순한 재현이 아닌 인위적인 구성을 통해 새로운 것을 드러내는 것, 그것이 바로 몽타주이다. 벤야민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상생활의 사소하기 짝이 없는 진실한 파편들이 회화보다도 더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 마치 책갈피에 찍혀 있는 살인자의 피 묻은 지문이 텍스트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와 같은 혁명적 내용의 많은 부분은 사진의 몽타주 속에서 구제되고 있다. 책의 커버를 정치적 수단으로 삼고 있는 죤 하트필드의 작품만 보더라도 우리는 이러한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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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 처마 밑, 벌거벗은 여인네

 

 

어제 강화도 전등사에 다녀왔습니다.
오랜 전통을 가진 절이라기에 나름 기대를 하고 있었지요.
들어갈 때 부터 입장료를 내라더니 여기저기 돈달라는 글귀와 소리가 메아리 치네요.
언제부터일까요? 그렇게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는 것이 미덕처럼 되어 버린게...
대웅전에 갔더니 대웅전 처마를 벌거벗은 여인네가 받치고 있더군요.

이 절을 짓던 목수와 사랑에 빠진 여인네가 있었는데, 그 여인이 그만 도망을 갔다는군요.
목수는 그 여인네를 벌하려 전등사 대웅전의 지붕을 지키도록 했다는군요.

여성들은 왜 항상 죄를 저지르는자 혹은 그 죄를 짊어지고 사는 삶의 표상이 되는 것일까요.

대웅전 안에는 조용히 절할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보살님도 한 분 계시지요.
그런데 왠걸요, 쌩뚱맞게 부처상의 정면 맞은편에는 CCTV가 달려 있었습니다.
대체 뭘 감시 하고 있는 걸까요?
부처는 CCTV를 CCTV는 신자를, 신자는 부처를 바라보는 이 일방향적 시선의 삼각형이 쓸쓸하게 느껴 집니다.

 

그분과 그녀의 조용한 대화에 끼어 있는 저 감시의 시선은 또 다른 메타적 응시이겠죠.

아마도 현대 사회의 신의 시선은 CCTV처럼, 그렇게 현현하는듯 보입니다.

우리도 모르게 우리를 바라보고 감시하는 신의 보살핌으로서의 시선, 그것이 바로 CCTV 아니겠습니까.

이런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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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혹은 남성들의 변명... 그리고 성폭력범 K교수

1. '사실' 그리고 '성폭행 미수'라는 언어

   불과 2,3일 전의 일이다. 민주노총 간부에의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다고 알려진 것이.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자마자 민주노총은 "사실 관계에 대해 피해자 확인 및 민주노총의 공식적인 확인도 없이 보도된 내용은 전부 허위 사실"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입장 표명을 할 때 그들은 이 일을 '간부의 성폭행 미수 사건'이라고 지칭했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언어들 속에는 가해자 (주로)남성의 자기 정당화 논리/변명들이 스며 있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그 사건의 가해나 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들이 제시되어야 한다. 확실한 증거가 제시되면 그것은 하나의 사실로 인정받는다. 사건에는 사실을 뒷바침하는 물증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성폭력 사건에서 물증이란 무엇인가. 성폭력 사건에서 물증이 제시된다는 것이 가능하긴 한것일까. 물증이 쉽게 제시될 수 없다는 것은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거기에는 물리적, 육체적 흔적이 아닌 정신적 상처가 기입된다. 민주노총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표명하며 사용한 '사실', 혹은 '허위 사실'이라는 언어들 속에는 성폭력 사건에 대한 남성들의 절대적 무지가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남성들의 무지가 만들어낸 폭력적 구조가 바로 가부장제이다. 가부장제는 타인에 대한 통제와 배제를 통해 유지되는 전형적인 남성적 향유의 산물이다. 민주노총은 자신들의 "공식적인 확인도 없이 보도된 내용"은 "허위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민주노총의 공식적인 확인(보통은 이것을 검열이라고 한다)도 없이 보도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탄원자의 목소리이다. 그들이 통제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탄원자 (주로)여성의 목소리이다. 

   '성폭행 미수'라는 언어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왜 그것을 미수라고 표현하는가. 우선 그것은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사건에 대한 그들의 지칭이다. 그러나 방금 언급했듯 성폭력 문제에서 그들이 요구하는 '사실을 확인'한다는 것은 불가능한다. 때문에 이 사건은 계속 '미수'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여기서 '미수'는 남성적 권력이 한 여성을 대상으로 성공적으로 수행되지 못했음을 지칭하는 언어이다.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별 것아닌 사건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성공하지 못한 성폭력은 죄질도 가벼울 것이라는 논리가 숨어 있는듯 하다. 그러나 성적 수치심과 혐오감이 정신적 외상으로 각인되는 '과정'은 성폭력이 '결과'적으로 성공했는지 여부와는 필연적 관계를 갖지 않는다. 이미 상처받은 사람이 존재할 뿐이다. 

   설피보면 사실이나 미수라는 언어가 객관적, 중립적 기술 처럼 보일 수 있다. 사실 관계의 확인이나 미수라는 언어는 확인(성공)되지 않은 것들을 가리키는 법적 용어이다. 그 법적 용어 속에 객관적, 중립적 기술이라는 환상이 자리잡고 있다. 성폭력 문제는 법에 기입되어 있는 언어들이 결코 객관적이지도 중립적이지도 않다는 환상을 폭로한다. 오히려 그 언어들은 가부장적 질서의 표상체일 뿐이다. 성폭력 사건은 동등한 지위를 가진 두 개인 사이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사건이 발생하는 조직(혹은 사회)의 감성과 지성 자체가 가해자를 중심으로 체계화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폭력 사건에서 객관적, 중립적 입장은 존재하지 않으며,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하나의 윤리적 입장만이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변명들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개관적-중립적 언어라는 환상의 외피를 통해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윤리적 입장을 배제하려는 가해자의 논리이다.

2. '언론보도=2차 가해'라는 변명

   민주노총은 또한 언론보도가 있자마자 '언론보도는 2차 가해'라고 주장하며 이 사건이 더 이상 공론화 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통의 성폭력 사건에서 사건의 공론화는 조심스럽게 다루어진다. 탄원자에게 부과될 수 있는 타인들의 편견에 찬 시선이나 접근을 막고, 심리적 상처를 상기시킴으로써 탄원자에게 가해질 수 있는 또 다른 피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조직 안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2차 가해를 막기 위한 노력은 이런 목적 하에서 이루어진다. 2차 가해를 막기 위한 노력은 조직의 배려를 확인하고 탄원자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언론보도=2차 가해'라는 주장은 조직 보존이라는 맥락에서 제기된 것으로, 오히려 탄원자의 상처를 인정하지 않고 이 사건 자체를 은폐 시키려는 반치유의 과정이며 2차 가해의 과정이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2차 가해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피해자가 공개를 원치 않는 성폭력 사건을 공개하는 행위도 2차 가해에 해당하지만, 성희롱 및 성폭력 발생시 사건을 방관하는 행위, 신고자의 신고를 방해하거나 위증하는 행위, 피해자에게 사건의 책임을 전가하려는 행위, 피해자에게 피해사실의 구체적인 진술을 강요하는 행위, 그리고 사건을 은폐 축소 시키려는 행위 이 모든 것들이 2차 가해가 되는 것이다. 

3. 개인책임이라는 변명

   이번 사건에서도 민주노총 일부에서는 개인책임론이 등장했다. 특정 조직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빠짐 없이 나오는 주장 중 하나가 성폭력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시키는 것이다(심할 경우에는 책임 추궁이 가해자가 아닌 탄원자에게로 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충격적인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사건의 범인을 정신적 장애를 앓고 있는 예외적 개인으로 규정하는 것을 볼 수 있다(무크지 문화사회 3호, 최철웅의 글 참조).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 사회는 성폭력 문제에 대한 사회적 안정감을 유지한다. 그러나 그것을 스캔들화 시키는 것은 이미 사회가 성폭력 문제에 극도로 둔감한 야만상태임을 감추기 위한 일종의 저지전략처럼 보인다. 사실 우리 사회가 성폭력의 야만상태임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사회적 편견이 두려워 자신이 성폭력 피해자임을 감추는 일이 허다하고, 용기내어 성폭력 문제를 고발한 탄원자는 상처 투성이가 되기 쉽다. 법정에 가도 재판은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며 끝나버리는 일이 허다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의 성폭력 사건 언론보도에 대한 입장 발표가 있던 2월 5일 오전 중앙대에서 제자에게 성폭력을 행하여 고소된 K교수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 K교수는 사건이 있은 직후 탄원자에게 전화해 돈을 줄테니 합의하자고 하며 통장으로 돈을 입금했다가, 성폭력 사건이 죄를 입증하기 힘들다는 점과 자신의 권력이 학교에서 우월하다는 점을 확인한 이후 입금한 돈을 지불중지시켰다. 이 사건의 진실은 누가봐도 명백한 것이었지만, 법정에서는 K교수에게 면죄부를 부여했다. K교수는 사건 직후 태도를 바꾼 이후 집요하게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으며, 비열한 사적 수단과 친분을 이용해 탄원자를 압박하기도 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성폭력 사건을 바라보는 학교와 사회의 무책임한 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성폭력은 결코 어느 한 예외적 개인의 잘못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폭력은 성폭력 행위를 묵인, 방치, 은폐해 온 단체나 조직 나아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한다. 그것은 개인의 특수성이 아닌 조직과 사회의 (성)문화의 일부로 여겨져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구성원들은 일정정도 문제의 책임을 지니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때문에 성폭력의 재발을 막기 위한 노력들은 특정한 개인이 아닌 구성원 모두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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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과잉이라고? 과잉의 폭력이 아니고?

   언제부터인가 폭력의 문제가 도덕의 문제로 환원되어 가고 있다. 이번 민노당의 강기갑 의원이 벌인 ‘액션 활극’을 두고 말이 많다. 조선일보는 국회가 “폭력에 굴복”했다고 진술하고 있으며, 자유선진당의 이회창은 “이번 폭력사태를 야기한 행위자”인 강기갑 의원에 대해 “즉각 고발 등의 조치”를 취하여 “엄격한 법적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기갑 의원만이 문제가 아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폭력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규탄하고 있다. 오늘도(1/9) 한나라당의 홍준표는 “민주당이 또 폭력으로 상임위를 틀어막겠다고 하면 국민들도 이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어떤 목표가 있더라도 수단이 정당하지 않으면, 특히 폭력이 그 수단이라면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도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언의 근저에는 폭력은 무조건 도덕적 해악이라는 판단이, 혹은 그러한 판단을 유도하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다.

   좀 더 멀리 가서 (벌써 ‘작년’이라고 불러야 하는) 2008년에 있었던 촛불집회를 생각해보자. 생각지 못했던 많은 이슈들을 만들어낸 이 집회에서 별로 다루어지지 않은 중요한 쟁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폭력의 문제이다. 시종일관 비폭력을 외치며 정부에 도덕적 우위를 차지하려했다.(물론 집회 참가자와 경찰들의 잦은 충돌이 발생했지만, 이것이 촛불집회의 비폭력적 경향의 반증이 되지는 못한다) 집회 내부에서는 몇 번의 논쟁이 있었다. 물대포 앞에서, 명박산성 앞에서, 전경에게 구타당한 어느 시민 앞에서 말이다. 그러나 매번 논쟁은 폭력의 의미에 대한 성찰보다는 폭력의 도덕적 결함으로 결론지어졌다. 집회 참가자와 경찰의 충돌이 발생할 때, 누가 더 많은 피해자를 양산했는가? 누가 더 많은 폭력을 행사했는가가 언론의 집중적인 보도 대상이 된다. 정작 집회 참가자와 경찰 신분으로 참여한 사람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폭력은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부각되고,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현실에서 발생한 폭력보다 더 많은 폭력들이 보도 되고, 그 의미도 과잉되어 간다. 이 과잉된 이미지들을 통해 폭력은 그것이 가진 의미를 상실한다. 이 지점에서 타협이 불가능한 윤리의 잣대로 폭력을 재단하고 그 의미를 초월해버리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폭력은 언제나 바로잡아야 할 예외상태로 상정된다. 그것은 정상에서 벗어난 것이고, 포섭되지 않은 낯선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상태, 즉 정상을 유지하기 위해 폭력은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 된다. 거꾸로 생각해 보자. 지금의 상태(State, 국가/상태)가 온갖 모순으로 가득차 있다면?

   폭력이 그 모순을 드러내는 적극적인 정치적 역할을 수행한다면? 프로이센의 군사학자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라고 이야기 했다. 아렌트는 이를 역전시켜 “정치는 전쟁의 연속”이라고 주장한다. 정치에 정상 상태란 없고, 일상적인 예외상태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사회나 정치의 안정적인 자기 기반이라는 것은 없고, 이 사회는 오직 예외적 수단, 체제 외적 강제력을 통해서만 유지된다. (때로)폭력이 드러내는 것은 정치의 일상적인 모순 상태(/국가)라는 금지된 실재의 영역이다.

   나는 지금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폭력들은 상처받은 사람들을 양산한다는 점에서 분명 해악이다. 그러나 그 중의 어떤 폭력은 맹목적으로 비난하기(과잉) 보다 그 폭력이 드러내는 의미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종종 언론을 통해 수십 년 간 매맞고 살던 아내가 특정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편을 공격했다는 (결과적으로 남편에게 치명적인 손상을 입혔다는) 소식을 접하곤 한다. 누가, 쉽게, 폭력을 휘둘렀다는 이유로 그 아내에게 절대악이라는 낙인을 찍을 수 있겠는가? 그 아내의 폭력은 공고화된 가부장제에 균열을 내는 폭력은 아니었을까? 이런 일상 속의 폭력 이외에 정치적, 경제적 시스템에 매개된 구조적 폭력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노동자를 노동자로 영구히 호명하는 노동법들 속에 녹아 있는 폭력도 있다. 파업은 이러한 구조적 폭력에 맞서는 다른 방식의 폭력이다.(조르주 소렐에 찬양하는 폭력은 바로 자본주의적 구조에 균열을 내는 총파업이라는 대항폭력이었다.)

   폭력은, 악으로 낙인찍힐 수 없는, 보다 세밀하게 분석되어야할 현상이다. 예를 들어 비비오르카가 제시한 정치이하(infrapolitical)의 폭력과 정치상위(metapolitical)라는 폭력의 구분, 조나단 프리드먼이 제시한 수평적 분단화와 수직적 분극화라는 구분, 마틴 루터 킹의 적대성을 드러내는 것으로서의 폭력, 사르트르나 파농의 적대와 치유로서의 폭력 등 폭력이라는 이름만으로 매도될 수 없는 수 많은 폭력이 존재하는 것이다. 폭력을 거부하는 많은 사람들이 외치는 비폭력의 의미 역시 좀 더 세밀한 고찰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비폭력은 언론을 통해 자신을 비극적인 것으로 제시함으로써 발생하는 스펙타클이라는 정치적 계산 없이는 무의미한 희생을 낳을 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경우 비폭력은 무폭력의 의미로 쓰인다. 비폭력의 사상적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간디는 비폭력을 무폭력의 의미로 사용하지 않았다. 간디에게 비폭력은 ‘직접행동’ 없이는 무의미한 것이며, “본질적으로는 피비린내나는 무기의 사용을 동반하는 운동보다도 훨씬 적극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폭력, 혹은 그것이 발생하는 장소는 거부하거나 회피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개입해 해석해야 할 정치적 저항의 근원(적 장소)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것이다. 강기갑 의원, 민주당, 촛불집회에서 폭력이 가진 의미를 초월해 악으로 낙인 찍는 행위야 말로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폭력을 탈정치화 시키는 사건들을 정치적으로 읽어내는 작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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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Erfahrung) - 발터 벤야민, 1913, trans by 민호

벤야민이 1913년에 쓴 ‘경험(Erfahrung)’이라는 글이다.

원문은 독일어이지만 내가 독일어를 못하는 관계로 영역본을 기초로 번역했다.

내가 참고한 영역본은 Havard University Press에서 나온 벤야민 선집이고(이 선집에서 이 글은 제일 처음 실려 있다), Lloyd Spencer와 Stefan Jost가 영역했다.

벤야민 영역본에는 경험(Erfahrung)과 체험(Erlebnis)이 구분되지 않고, 둘 다 Experience로 번역되어 있다고 들은 기억이 있다. 이 글에서도 경험(experience)이라는 단어만 나오고 있다. 아직 독어판과 비교해 보지 못한터라 Erlebnis도 Experience로 번역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경험과 체험이 이 글에서도 (표기는 경험으로 되어 있지만, 내포된 의미를 보면)명확히 구분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뒷부분에서 경험으로 번역한 몇몇 부분은 체험으로 옮겨 적어야 의미가 명확해 질 듯 하다. 이 구분은 벤야민의 사상을 연구할 때 핵심적인 내용을 가진 것이므로 개념적으로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벤야민은 영상 매체가 대중에게 던지는 충격을 체험이라고 말한다. 경험에 대한 체험의 관계는,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상징계에 대한 실재의 침입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나는 여기서 경험=상징계, 체험=실재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벤야민에게서 이 두 개념의 구분은 핵심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떠들어도 이 글을 번역해서 올리는 것은 개인적으로 이 글을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태해지려할 때, 무엇인가를 시작할 때, 어떤 것이든 전환점이 필요할 때 즐겨 읽는 글이다. 내 영어(와 번역_ 실력의 미천함 때문에 읽는 사람에게 폐를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읽기 싫은 사람은 안 읽으면 되니 내 책임은 아니겠지... 라고 정당화해 본다. 아직 초벌 번역이라 문장이 이상한 데가 많을테니 감안하고 읽어 보시길.


추가 : 연구소의 로아님이 벤야민 독어판 전집을 가지고 있어서 비교해 본 결과, 이 글에 나오는 경험이라는 단어는 모두 Erfahrung으로 나와 있었다고 합니다(로아님 확인 감사^^). 그리고 영어로 sprit(독어 Geist)이라고 되어 있는 용어를 제가 영혼이라고 번역했는데, 보통 독어의 Geist는 영어로 spirit로 번역되는데 한글로도 정신으로 옮기는 것이 통례라고 지적해주셨습니다. 제가 영혼이라고 번역한 것들(옆에 spirit이라고 영문표기를 달아놓았습니다)은 정신(geist)라고 생각하고 읽으시면 됩니다. 다만 제가 spirit을 영혼으로 옮긴 것은 without spirit과 같은 문구가 나와서 인데, 이것을 우리말로 옮기면 '정신 없이'정도가 되서 어감상 오해의 여지가 있으리라 판단해서입니다. 정신없다는 말은 우리말에서는 관영어구처럼 쓰이기 때문에 벤야민이 쓰는 맥락과 조금 다르게 다가올수 있으니까요. 어쨋든 이런 점 주의해서 읽으시면 될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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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Experience, Erfahrung, 1913) - 발터 벤야민


adami-benjamin_2.jpg   책임을 위한 투쟁에서, 우리는 가면 쓴 이들에 맞서 싸운다. 어른들의 가면은 ‘경험’이라고 불린다. 그것은 표현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고 항상 동일하다. 어른은 항상 이미 모든 것을 경험했다: 젊음, 이상, 희망, 여성. 그것은 모두 환상이다. - 종종 우리는 겁먹거나 괴로워한다. 아마도 그는 옳다. 우리의 반론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했다.[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가면을 벗기려 시도해 보자. 어른이 경험한 것은 무엇일까? 그가 우리에게 증명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결국, 그 역시 한 때 젊었었다는 것, 그 역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원했었다는 것, 그 역시 그의 부모에 대한 믿음을 거절당했다는 것, 그러나 그들이 옳다는 것을 삶이 그에게 가르쳐 주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해보자, 그는 훌륭한 방식으로 웃는다. 우리도 그렇게 할 것이다. - 그는 미리 우리가 살아갈 (진지한 삶의 기나긴 엄숙함 이전에 오는)철없는 환희의 세월들을 평가 절하한다. 이렇게 선한 것, 교화된 것. 우리는 우리에게 짧은 젊음을 허용조차 하지 않는 씁쓸함(bitterness)이라는 다른 선생들을 알고 있다: 진지하고 엄한, 그들은 우리들을 삶의 고역으로 바로 밀어 넣는다. 양자의 태도는 우리의 세월들을 평가절하하고 파괴한다. 게다가 감정에 엄습 당한다: 우리의 젊음은 짧은 밤이다(환희로 채워라); 그것은, 타협의 세월들, 관념의 빈곤, 그리고 활력의 결여와 같은, 거대한 ‘경험’에 뒤따라 올 것이다. 그런 것이 인생이다. 그것이 어른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 그리고 그들이 경험한 것이다.

   그렇다, 그것이 그들의 경험이다. 이 하나, 결코 다를 것 없는: 인생의 무의미함. 그것은 잔인하다. 그들이 우리에게 훌륭하거나 새롭거나 진취적인 어떤 것을 장려한 적이 있던가? 아니다, 명확히도 이것들은 경험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의미 - 진실된 것, 선한 것, 아름다운 것 - 는 그 자신 안에 지평을 수립한다. 그럼, 경험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 그리고 이 속에 비밀이 놓여 있다. 왜냐하면 그는 결코 위대한 것, 의미 있는 것에 시선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속물(the philistine)은 경험을 그의 복음으로 취한다. 그것은 그에게 인생의 공통성에 관한 메시지가 된다. 그러나 그는 결코 거기에 경험과는 다른,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경험될 수 없는 가치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점을 포착하지 못한다.

   속물에게는 왜 삶이 의미도, 이유도 없는 것일까? 그는 (다른 것은 모른채) 경험만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영혼(sprit)의 부재와 황량함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공통적인 것 그리고 항상-이미-낡은 것 외에 다른 것과 내적 관계를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경험이 우리에게 줄 수도 앗아갈 수도 없는)다른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 비록 지금까지의 모든 사상들이 잘못된 것이라 해도, 진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혹은 비록 아직까지 그 누구도 완료하지 못했다 해도 지속되어야 하는 충실함을 알고 있다. 그런 것들은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 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나이든 이들은, 피곤한 몸짓과 초연한 절망으로, 모든 것에서 옳은 것일까? 다시 말해, 우리가 경험한 것은 후회일 것이고, 초석이 되는 용기, 희망, 의미는 경험될 수 없는 것이라는게 옳은 것일까? 그렇다면 영혼(spirit)은 자유로울 게다. 하지만 또 다시 삶은 쇠약해질 것이다. (경험의 총체인)삶은 위안 없는 것일 뿐이므로.

   그러나, 우리는 결코 그런 물음들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영혼(spirit)과 함께 그런 낯선 삶을 인도해야 하는가? 그들의 나태한 자아는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 같은 삶에 의해 농락당해야 하는가? 아니다. 우리 각자의 경험은 값어치가 있다. 우리 자신은 우리만의 영혼으로 그것들에 값어치를 투여한다 - 경솔한 그는 착오에 만족한다. 그는 탐색자에게 “너는 절대 진리를 찾을 수 없어”라고 외친다. “그것이 내 경험이야.” 그러나 탐색자에게 ‘착오는 진리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스피노자). 다만 어리석은 자에게 그것은 의미와 영혼이 결여된 경험이다. 아마 맞서는 자에게 경험은 고통스럽겠지만, 그를 절망으로 인도하지 않을 것이다.

   어째든, 그는 결코 덤덤하게 포기하지도, 속물의 리듬에 마취되지도 않을 것이다. 당신은 속물에게 ‘(당신은)모든 새로운 무의미함 속에서 기쁨만 느낄 수 있다’고 지적할 것이다. 그는 옳음 속에 잔존한다. 그는 스스로 재-확신 한다: 영혼(spirit)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영혼’ 앞에서 위대한 경외와 가혹한 복종을 요구하는 이는 없다. 왜냐하면 만약 그가 비판적이 된다면, 그도 그가 만들 수 없는 것을 창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의지에 반해 그가 겪는) 영혼의 경험 조차도 그에게는 무관심한 것이 된다. 


그에게 말하라
그가 한 사람의 남자/어른(a man)이 되었을 때
그는 그의 젊음의 꿈을 우러러보아야 한다는 것을.
(프리드리히 실러, 돈 카를로스 중)


   속물에게는 “그의 젊음의 꿈”만큼 꺼림칙한 것이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 동안, 감성적임은 그의 혐오의 보호적 위장이다. 왜냐하면 그의 꿈에서 그에게 나타난 것은 (모두에게 그렇듯이, 예전의 그를 부르는)영혼의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젊음이 끊임없이 그리고 불길하게 그를 일깨우는 어떤 것이다. 그것이 그가 젊음에 적대적인 이유이다. 그는 어린 사람들에게 그런 무서움(압도적인 경험)에 대해 말하고, 그들에게 그들 자신을 비웃도록 가르친다. 특히 영혼 없이 경험하는 것이 편하다고, 만약 되찾을 수 없다면.

   다시: 우리는 다른 경험을 알고 있다. 그것은 영혼에 적대적이고, 피어나는 꿈을 파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범접할수 없고, 가장 직접적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젊음을 유지하는 동안 결코 영혼 없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짜라투스트라가 말했듯이, 개인은 방황의 끝에서만 자신을 경험할 수 있다. 속물은 그만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영속적인 영혼없음(spiritlessness) 중의 하나이다. 젊음은 영혼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가 덜 쉽게 위대함을 얻을수록, 방황속에서, 사람들 속에서 영혼과 더 많이 대면할 것이다. - 그가 남자/어른이 되었을 때, 젊음은 측은하게 될 것이다. 속물은 불관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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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을 둘러싼 쟁점들 - copyright? copywrong!!

     저작권을 둘러싼 수많은 쟁점이 존재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 주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저작권을 둘러싼 논의는 창작자에 대한 경제적 보상과 그 방식에 집중되어 있다. 창작에 대한 경제적 보상은 창작의 유발동기이기 때문에 보다 다양한 문화를 즐기고 활성화하기 위해서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며, 그것은 강력한 법적(처벌)장치를 통해서만 보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저작권에 대한 강한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두 가지 축일 뿐이다. 이제는 저작권에 대한 왜곡된 담론을 넘어 보다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질 때가 되었다. 이렇게 물어보자.
     저작권을 통해 실재로 경제적 이익을 얻는 자는 누구인가? 저작권은 왜 저자의 권리(author's right)가 아니라 복제의 권리(copyright)인가? 저작물 혹은 창작물은 왜(그리고 어떻게) 향유의 대상이 아니라 단속의 대상이 되었는가? 과연 특정인이 문화적 생산물에 대한 독점적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 문화를 풍부하게 할 수 있는가? 오히려 문화적 생산물을 함께 공유하고 향유하는 것이 문화를 풍부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창작물은 풍부한 문화적 토양 위에서 그것들을 향유함으로써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저작물은 완전히 고립된 개인만의 창작물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저작물의 독점적 소유권자로 상상되는 저자란 무엇인가?
     이번 강좌는 위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이 질문과 그것에 답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저작권과 그것이 놓여 있는 사회적 환경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제1강 저작권의 철학적 쟁점 : 구텐베르크의 신화, 창작자의 권리와 집합지성(01/7/수)
            신승철 / 홍익대 강사
제2강 저작권의 역사적 형성 : 자본주의의 정보적 확장(01/14/수)
             민호 / 문화사회연구소 간사
제3강 저작권을 둘러싼 현실적 쟁점 : 법적, 기술적 쟁점(01/21/수)
            오병일 / 정보공유연대 활동가
제4강 대안은 수없이 많다": 해커 공동체에서 정보공유 문화까지(01/28/수)
            조동원 / 미디어 활동가,연구자
* 4강은 저녁 6시에 시작해서 저작권과 관련된 영화를 한 편 본 후 7시에 강의를 시작합니다. (상영작 : 이 영화를 훔쳐라, 60분, 이 영화는 http://stealthisfilm.com에서 다운로드 받아 미리 보실 수 있습니다.)
 
• 일 시 : 2009년 01월 07일 ~ 01월 28일(매주 수 저녁 7시)
• 장 소 : 문화연대 강의실(지하철 5,6호선 공덕역 4번 출구)
• 문의 및 신청 : 02-745-1603 / cultures21@naver.com
• 수 강 료 : 4만원(문화연대, 정보공유연대 회원 2만원)
• 홈페이지 : http://www.kccs.or.kr(문화사회연구소)
                      http://www.ipleft.or.kr(정보공유연대)
• 입금계좌 : 하나은행 162-910007-32504(예금주: 사단법인 문화사회연구소)
• 주 관 : (사)문화사회연구소
• 공동주최 : (사) 문화사회연구소, 정보공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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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떨림(동경이야기, 오즈 야스지로)

 

 

식상하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자신만의 색을 찾아나가길 원하는 이들(혹은 그를 통해 재미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식상하다는 말은 그리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다. 식상하다는 말에는 뻔하거나 진부하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고 그래서 한마디로 말하면 ‘너는 재미없는 인간이야’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식상함을 저주하는 우리(자주 듣는다고 해서 그 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는 직접 겪어 보지 않아도 영화나 드라마, 소설을 통해서 세상의 온갖 충격적인 더러움에 대해서는 모두 알아버렸고, 세상의 운영원리도 대충은 꿰고 있다(딴거 있을까? ‘힘쎈놈이 이긴다 + 인간은 원래 외롭다 = 사는건 꽤나 어려운 일이다’ 정도의 결론만 있으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대충 아는 거다). 이렇게 위대한 진리를 알고 나니 웬만한 일은 재미없고 식상한 일이 되어 버린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더 많은 새로움, 더 많은 자극, 더 많은 특이함, 더 많은...’ 이렇게 살아가게 되는게 아닐까? 정말이지 끝이 없다. 그렇게 끊임없이 감정을 착취하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식상하다고 말하는 그 모든 것들이 정말로 식상한걸까? 혹시 그 식상함들은 언젠가 눈을 돌려 자신들을 봐달라고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건 아닐까? 방을 한 번 둘러보자. 책장에 꽂혀 있지만 읽지 않은 책들이 있다. 사놓고 아직 보지 않은 영화들이 있다. 침대 밑에서 구조되길 기다리는 동전과 볼펜들도 있다. 어릴 적 쓴 일기와 고등학교 때 친구와 주고받던 애매한 편지는 책상 서랍 속에 묻혀 있다. 식상함이라는 말로, 너무 익숙해서 재미없다는 느낌으로 버려지고 있는 일상의 흔적들이 우리 주위에 널부러져 있다.


<동경 이야기>에는 버려진 일상의 흔적들이 있다. 일상은 삼각대 다리를 잘라내고 담아낼 사람의 눈높이에 카메라를 맞추면서부터 포착할 수 있는 것이다. 여행가서 쓸 공기배게를 찾으려고 주고받는 노부부의 대화 속에, 목욕하고, 밥 먹고, 간식 먹고, 잠자는 - 심지어 여관의 시끄러운 유흥 속에서 일상은 발견된다. 일상은 더 이상 식상한게 아니라 발견되길 기다리는 삶의 흔적이 된다. 그렇다고 일상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다. 일상은 삶의 내밀함을 들여다보기에는 너무 얇은 표층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삶에 표층 이외에 무엇이 있는가?) 오즈는 일상을 보여줄 뿐 말하지 않는다. 과도하게 의미 부여된 것은 일상의 모습도 아닐뿐더러, 감정을 착취하는 도구일 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오즈의 뛰어남이 있다. 표층을 통해서 삶의 내밀함을 보여주는 그의 방식이 그것이다. 내면성이 배제된 상태에서 드러나는 표층의 모습인 일상. 그 일상이 조금씩 쌓여 축적이 이루어질 때, 일상의 농도는 점점 짙어지게 되고, 일상의 농도를 통해 그 삶이 거쳐 왔을 심연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영화 막바지에는 늙은 여인의 죽음이 있다. 스필버그라면 늙은 여인의 죽음을 좀 더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을 게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죽음이 극화된다면, 바로 그 순간 일상은 그 맛을 잃고 표류하게 되고, 전통적 가족상이 붕괴되어 가는 일본의 모습도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오즈는 죽음을 극화시키지 않는다. 오즈는 편안하게 돌아가셨다는 늙은 여인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오즈는 영상이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솔직히 이야기 한다. 대신 오즈는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관객이 스스로 그 죽음의 얼굴을 연상하게 한다. 오즈에게는 관객이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 적극적인 정치적 주체로 발화토록하는 그런 종류의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삶과 언제나 공존하지만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회피하고 있는 죽음의 일상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영화는 한편의 영화라는 외연을 넘어 관객의 삶 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동경이야기>에는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얻게 되는 이 충만함이 있다. 그것은 신선함과 재미, 새로움과 활력으로 삶을 채워나가는 데에만 익숙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솔직히 말하면 나에게) 하나의 울림으로 다가온다. 다시 한 번 그 메시지를 되돌아 본다. (여백이라고 불러야 더 적당할 것 같은) 결여는 그 자신이 결여 되어 있기 때문에 보충할 수 있다. 일상 속의 결여를 채워나가는 것은 누군가 대신해 줄 수 있는게 아니다. 오즈는 나의 결여(나의 결여는 식상함이 아니라 식상함이라는 말로 매도되는 일상에 대한 애정의 결핍이다)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동시에 그 결여를 채울 수 있는 것은 자신 밖에 없다고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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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영화이다보니 참 좋은 영화를 낳는 모티브가 되었다.
그 가슴 따뜻한 등 돌린 식사가 나오는 카페 뤼미에르...


세속적 각성이라고 하면 그야말로 남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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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론 - 소렐, 벤야민, 데리다, 파농, 아렌트의 논의를 중심으로 - 박홍규

폭력론
-소렐, 벤야민, 데리다, 파농, 아렌트의 논의를 중심으로

박홍규 • 영남대학교 교수/ 법학


1. 폭력의 뜻

국어사전에서 폭력이란 ‘함부로 난폭한 행동을 하는 힘’으로 풀이되고, ‘폭력을 써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단체’가 폭력단이라고 설명된다. 그리고 폭력주의자는 테러리스트, 폭력주의는 테러리즘이라고 한다. 즉 폭력은 테러라는 것이 국어사전의 이해이다. 그러나 국어사전에서는 폭력의 영어를 force라고 표기한다. 일반적으로 영어에서 폭력은 테러(terror)도 힘(force)도 아닌 violence를 말한다. 영어사전에서 violence란 ‘비공인의 완력이나 물리적 힘에 의한 강습’을 뜻하고, 공인된 군대나 경찰의 경우에는 사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전쟁이나 경찰력의 행사는 폭력이 아니게 된다. 이는 폭력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으로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재산에 손해를 입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로 정의하는 입장과 같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일반적으로 규정하는 폭력이 그런 것이다. 이러한 폭력 개념은 윤리나 정치 또는 법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관념이 되고 있는 것으로 폭력을 힘의 비합법적인 행사인 악으로 보는 전통적인 개념이다.
이런 입장은 ‘구체적인 행동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제한적이라고 비판하는 견해가 있다. 조희연․조현연, 「국가폭력․민주주의 투쟁․희생에 대한 총론적 이해」, 조희연 편, ꡔ국가폭력, 민주주의 투쟁, 그리고 희생ꡕ, 함께읽는책, 2002, 26쪽.
그러한 견해는 이러한 비판을 하면서도 달리 폭력을 정의하지 않고서, 억압의 폭력(기성 지배체제가 휘두르는 제도적 폭력, 공격적 폭력)과 해방의 폭력(필연적으로 불법적인 저항적 폭력, 생존의 방어를 위한 폭력)이란 개념을 사용하여 제도나 저항까지 폭력에 포함한다. 그러나 그런 개념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폭력 개념을 구체적인 행동에만 집중한다고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이유는 이러한 견해에서 사용되는 폭력이란 개념은 매우 특수하기 때문이다. 즉 종래의 일반적인 폭력 개념은 억압의 폭력이나 해방의 폭력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고, 폭력이란 개념은 억압과 해방이라고 하는 정치 사회적인 맥락에서 특수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위 견해는 억압의 폭력을 전쟁, 고문, 살인, 학살 등으로 상징되는 ‘국가폭력’이란 말로 이해한다. 위의 책.
그러나 그러한 국가폭력도 구체적인 행동을 뜻하는 점은 마찬가지이다. 물론 위 견해는 그런 국가폭력을 낳는 근거인 유신체제와 같은 악법을 ‘제도적 폭력’이라고 보고 있으나, 법제도까지 폭력이라고 보는 경우 폭력에 대한 더욱 엄밀한 정의가 필요하다.
폭력에 대한 구조적인 정의는 빈곤을 비롯한 사회적 부정의를 말하는 더욱 광범한 개념으로도 사용된다. 예컨대 Johan Galtung, “Violence, Peace and Peace Research," The Journal of Peace Research6(2), 1969, pp. 167-91. 특히 p. 168과 p. 173. 또한 N. Garver, “What Violence Is," in J. Rachels and F. A. Tilman (eds), Philosophical Issues: A Contemporary Introduction, New York: Harper & Row, 1972, pp. 223-8. 또한 빈곤과 관련해서는 S. Lee, 'Poverty and Violence', Social Theory and Practice 22 (1) 1996, pp. 67-82.
그것은 개인이나 제도에 의해 또는 사회 자체에 의해 가해지는 물질적인 피해는 물론 심리적인 피해까지 낳는 것을 포함한다고 주장된다. 주로 평화 연구의 영역에서 평화를 저해하는 모든 반평화적 행태나 제도를 폭력으로 보려는 이러한 태도에 대해서는 그것이 너무나도 광범하고 모호하다는 비판도 있다. C. A. J. Coady, “The Idea of Violence," Journal of Applied Philosophy 3 (1) 1986, pp 3-19.

이와 달리 폭력=테러라는 말은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여러 정부가 이슬람 또는 그 일부 세력 그리고 북한 등을 비난하며 지칭하는 개념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행사하는 힘은 ‘폭력’이 아니라 ‘정의’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슬람 등은 미국 등이 정의라고 주장하는 것을 폭력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국제관계에서 사용되는 폭력 논의는 그 판단이 쉽지 않으나, 어느 측이든 자신을 폭력이라고 말하지 않고 상대방을 비난하는 개념으로 사용함은 확실하다.
이처럼 폭력이란 말의 사용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적어도 법적으로 폭력은 불법이므로 그 합법성이 논의될 수 없다. 물론 법적인 차원에서도 가령 범죄의 피침해자가 자력구제를 가하는 경우라든가 또는 노동자나 노동조합의 쟁의행위와 같이 그 폭력에 대한 법적 판단이 반드시 구체적인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나, 어디까지나 예외적이다. 그러나 그런 법적 평가와 무관하게 억압적 국가 권력 자체를 ‘합법적 폭력’이라고 보는 경우도 있으나, 그것에 대한 법적인 판단은 국가 권력 자체를 폭력이 아니라 합법적인 ‘권력’이라고 보는 것을 전제로 하여, 권력의 부당한 폭력적 행사에 대해서만 법은 적어도 원칙적으로 그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여하튼 그런 부당한 권력의 폭력적 행사에 대해 비폭력을 주장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예컨대 인도의 간디처럼) 유효할 수도 있으나, 도리어 대부분의 경우 더욱 큰 권력의 폭력적 행사를 초래할 수도 있고, 그런 경우에는 도리어 폭력적 저항(예컨대 알제리를 비롯한 대부분의 식민지 해방 투쟁)이 유효할 수 있다. 따라서 적어도 해방 전략의 차원에서 무조건적인 비폭력 주장은 반드시 유효한 것이 아니고, 폭력이 역사적으로 정당성을 갖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여하튼 이 글은 폭력에 대한 엄밀한 정의를 시도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정의에 대해서는 각종 사회과학 사전이나 문헌을 살펴볼 수 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더 이상 다루지 않는다. 대신 이 글에서는 소렐, 벤야민, 데리다, 파농, 아렌트의 폭력 논의를 중심으로 폭력에 대한 사상을 검토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논의의 핵심은 국가폭력과 그것에 대항하는 저항폭력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두 가지 개념에서 사용되는 폭력은 위에서 본 일반적인 폭력의 개념과는 다른 차원에 있다. 즉 국가 권력의 부당한 폭력의 행사와 그것에 저항하는 정당한 폭력의 행사를 대립시켜 그 범주에서만 폭력을 검토하는 것이다.



2. 국가폭력과 저항폭력

사회과학에서는 흔히 근대 국가를 일정한 영토적 공간에서의 힘(force)의 합법적 독점체로 규정한다. 예컨대 앤터니 기든스, ꡔ현대사회학ꡕ, 김미숙 외 역, 을유문화사, 1992, 276쪽.
여기서 힘이라고 한 force를 우리말 번역에서는 ‘폭력’이라고 하나, 그 폭력은 당연히 위에서 말한 법적인 개념이 아니라 정치학적, 사회학적 개념으로써 힘을 말하는 것이므로 위에서 말한 법적 폭력과는 구별해야 한다. 여기서 국가의 폭력이라 함은 법적 차원에서 권력이라고 불리는 것의 다른 이름이다. 적어도 합법적 폭력인 권력인 한 그것을 불법적인 폭력이라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국가 자체를 폭력 조직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이는 적어도 민주주의 국가에서 당연한 것이리라.
문제는 근대 국가가 합법적인 힘(폭력)의 독점인 권력을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경우에 따라 권력의 이름으로 부당한 폭력을 행사하기 일쑤이고, 이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시민에 의한 저항의 폭력이 당연히 발생한다는 점에 있다. 이처럼 국가 기관이나 국가 관련 요원이 그 부당한 폭력에 의한 직간접의 희생자인 시민들에게 공포감과 복종심을 가질 수 있도록 폭력이나 위협행동을 의도적으로 행하는 것을 ‘국가폭력’(State Terror)이라고 할 수 있고, 이에 정당하게 저항하는 ‘저항폭력’을 대치시킬 수 있다. 따라서 저항폭력은 본질적으로 수동적인 것이고 정당성을 갖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두 폭력의 대치는 흔히 위기 상황에서 나타난다. 그 하나가 1920대의 독일에서였다. 즉 1917년 러시아에서 2월혁명(부르주아 혁명)과 10월혁명(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거쳐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되고, 이어 1918년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11월 혁명이 터져 제국이 무너져 각지에서 혁명적 폭력 기관으로서 병사․노동자평의회가 수립되었다. 그 후 12월부터 이듬해 1월에 걸쳐 칼 리프크네히트와 로자 룩셈부르그에 의한 스팔타카스단의 폭력 봉기가 일어났으나 실패했다. 그런 가운데 프롤레타리아의 비권력적인 폭력에의 기대가 지식인들과 민중 사이에서 높아졌다.
이 시기에 와서, 시민적 권리=시민법의 주체로서 각 시민이, 자연상태에서 행사하는 ‘폭력’을 ‘법’의 경계선 안에서 하나의 ‘권력’으로 독점시킨다는 전제에 선 근대 시민사회는 중대한 위기를 맞았다. 즉 국가는 그 ‘권력’을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해 권력의 본질인 ‘폭력’을 계속 추구하여 가장 야만적인 폭력인 제국주의 전쟁과 계급 갈등의 유지에로 나아갔고, 이에 대해 시민사회는 그것을 억제하기는커녕 도리어 국가가 주장하는 ‘이성’이나 ‘도덕’ 및 ‘법’이라는 것에 순응했다. 근대 국가의 시민법 질서 틀 안에서 ‘주체’로 자기를 형성한 ‘시민’에게는 법의 목표인 실질적인 ‘정의’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혁명적 에너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즉 부르주아 국가 틀이 온존되고 시민이 그 속에 존재하는 한 법과 정의의 괴리는 극복될 수 없었다.
이 시기에 브로흐, 루카치, 그람시 같은 지식인들이 급속하게 공산당에 접근하고, 프랑크푸르트대학 사회연구소에 모인 폴록이나 호르크하이머 같은 젊은 학자들이 네오 맑스주의적인 관점에서 계몽된 시민사회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게 된 배경에는, 폭력적인 국가 권력 앞에 무력한 부르주아 시민문화에 대한 절망이 있었다. 따라서 부르주아적인 권력 쟁탈과는 무관한 ‘정의’를 목표로 한 프롤레타리아 ‘폭력’의 가능성을 논의하여 ‘근대’라는 감옥을 탈출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당대 지식인의 급선무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서 벤야민의 폭력론이 나왔다.
3. 소렐과 벤야민의 폭력론

벤야민의 폭력론은 조르주 소렐의 ꡔ폭력론ꡕ(1908)에 근거한다. 소렐은 공포 정치로 변질된 프랑스 대혁명(1789)의 담당자인 부르주아에 의한 국가 권력의 남용과, 노동조합의 총파업을 통해 ‘법’의 지배를 타파하고자 한 프롤레타리아의 폭력을 명확히 구별한다. 즉 부르주아가 혁명적 정치 행동을 야기해도 그것은 ‘법’에 의해 기존의 국가 형태를 온존시키면서 권력을 특권자의 것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것에 불과하나, 프롤레타리아의 폭력은 ‘법’을 떠나 어떤 종류의 국가 권력 형태도 용인하지 않고 순수한 아나키를 지향한다고 소렐은 주장했다.
이러한 소렐의 주장 역시 20세기 초엽 프랑스의 위기 상황을 의식한 것이나, 소렐의 폭력론이 나온 지 13년 뒤에 쓰여진 벤야민의 「폭력비판론」은 위에서 설명한 1920년대 독일의 현실적 위기에서 소렐의 논의를 발전시킨 것이다. 소렐의 논의에서 중요한 점은 ‘법’에 의하느냐 아니냐 하는 점이다. 이를 벤야민은 Rechtssetzung이라는 개념으로 부른다. 일본에서는 이를 법차정(法借定)이라고 번역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이에 따르는 견해가 있으나, 차정이란 우리말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말이니 우리말로 삼기에는 어색하다. 여기서는 반드시 정확한 번역이라고 볼 수 없으나, 편의상 ‘법준거’라는 말로 옮기도록 하자. 벤야민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법준거에서 폭력의 기능은 아래와 같은 의미에서 이중적이다. 즉 법준거는 폭력을 수단으로 하여 법으로 제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추구하나, 목적이 된 것이 법으로 제정된 순간 폭 력을 해고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더욱 엄밀한 의미에서 게다가 직접적으로 폭력을―폭력으로부터 자유롭고 독립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그리고 은밀하게 폭력과 결부되어 있는 목적을 권력의 이름으로 법으로 제정함에 따라―법준거적인 폭력으로 만들게 된다. 법 준거는 권력준거이고, 그 점에서 폭력을 직접 선언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정의가 온전 히 신적인 목적준거의 원리임에 대해 권력은 온전히 신화적인 법준거의 원리이다. Walter Benjamin, Zur Kritik der Gewalt, in: Angelus Novus=Ausgewälte Schriften 2, 1966 Frankfurte a. M. (Shurkamp), S. 61.


벤야민은 자기 목적화 되지 않는 폭력의 최종 도달 목표인 ‘정의’와, 일단 준거되어 폭력적인 ‘권력’ 행사의 근거로 변한 ‘법’을 구별한다. 이는 영어와 프랑스어에서 정의를 뜻하는 justice가 라틴어의 ius에서 파생된 말인 것과 달리 독일어에서는 각각 Gerechtigkeit와 Recht가 구별되는 점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벤야민에 의하면 법은 권력자의 ‘법 이전 특권’(Vor-recht)을 유지하기 위해 그 권력이 미치는 경계선을 정하고 고정화한다. 그리고 그 경계선을 침범하는 자를 범죄자로 보고 속죄를 요구한다. 이를 벤야민은 신화적인 법이 지배하는 세계로 본다. 그 세계에서 법=권리의 주체인 각자는 시원적인 폭력을 통해 준거된 법의 경계선 안에 머물도록 강요된다고 벤야민은 주장한다.
벤야민은 이러한 법적 폭력을 법 수호적 폭력(기존의 법을 유지하기 위한 폭력)과 법 형성적 폭력(새로운 법을 제기하는 폭력)으로 구분하면서도 그 둘 모두 법에 의한 지배를 전제함으로써 지배 권력관계를 재생산하는 신화적 폭력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여기서 신화적이란 법을 변화시킴에 의해 지배 권력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이 두 가지 개념은 법에서 흔히 실정법과 자연법으로 구분하는 것에 각각 대응된다. 즉 벤야민은 실정법과 자연법에서 폭력의 개념이 모두 정당한 목적과 수단의 관계라는 도그마를 공유한다고 비판하고, 시인된 합법적 폭력과 시인되지 않은 불법적 폭력의 구별이 법과 관련된 폭력성을 간과한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반면 벤야민이 신적 폭력이라고 부르는 것은 법과의 연관을 부정하는 혁명적 폭력으로서, 법적 폭력-신화적 폭력을 폐기하기 위한 것이다. 즉 법의 경계선을 파괴하고 ‘법권력’ 하에서의 죄를 제거하기 위한 폭력이다. 파괴적인 작용을 결과한다는 점에서 신적 폭력도 신화적 폭력과 유사하나, 전자가 파괴적인 것은 오직 재화, 법=권리, 생활과 같은 외적 사항과 관련되고, 생명 있는 것의 영혼을 파괴하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고 벤야민은 주장한다. 즉 신적인 폭력은 희생의 피를 흐르게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대립을 벤야민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모든 영역에서 신화에 신이 대립하듯이, 신화적 폭력에는 신적인 폭력이 대립한다. 게다가 모든 점에서 대립한다. 신화적 폭력이 법에 준거하는 것이라면 신적 폭력은 법을 파괴한다. 전자가 경계를 설정한다면 후자는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전자가 죄를 만들고 속죄하게 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죄를 제거한다. 전자가 협박적이라면 후자는 충격적이고, 전자가 피의 냄새를 풍긴다면 후자는 피의 냄새가 없고 치명적이다. 위의 글, S. 63.


이러한 신적인 폭력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신화적 폭력과 달리 명확하지 않다. 벤야민 자신은 그런 신적인 폭력의 보기로서 「폭력비판론」의 마지막에 구약성경의 예를 들고 있다. 즉 민수기(民數記)의 전설에 나오는 신의 심판이다. 그것은 예고도 협박도 없이 특권자인 제사장(레비) 무리에게 퍼부어져 그들을 섬멸시키는 심판이다.
따라서 이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부패한 법과 결별한 정의를 긍정하기 위하여 논리적으로 요청되는 어떤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게다가 문제는 신적 폭력이 목적과 수단이라는 관계를 면제받는 순수 폭력이라는 보증은 어디에도 없다는 점이다. 이를 데리다도 ꡔꡔ법의 힘ꡕ에서 비판한다. 즉 그에 의하면 벤야민은 법을 창설하는 ‘힘의 일격’이라는 것의 근거 없음을 폭로하여 법을 탈구축하면서도 다시 탈구축할 수 없는 정의를 내세워 법과의 구분을 시도했으나, 그 정의란 것이 다른 법으로 타락하지 않을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신적 폭력이라고 하는 것도 언제나 신화적 폭력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벤야민은 그가 말한 신화적 폭력에 의해 근대 초월을 목표로 한 나치스가 집권하여 망명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서도 프롤레타리아를 주체로 하는 비권력적인 신적 폭력에 의한 폭력혁명의 가능성을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복제기술시대의 예술작품」(1936)의 마지막에서 나치즘에 의한 정치의 ‘미학-감성화’에 대해 프롤레타리아는 그와 반대로 미학의 정치화에 의해 응하리라고 낙관했다.
그러나 현실의 역사는 반대였고, 결국 벤야민은 현실에 대한 비관 끝에 자살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벤야민이 그 의도와는 전혀 거꾸로 그가 반대한 나치스의 이데올로기에 접근했다고 하는 아이러니한 점이다. 즉 나치스에 의해 폭력에 의해 계몽화된 시민사회의 법질서를 근본으로부터 파괴하고자 하는 혁명적-메시아적 근본주의가 점증하는 가운데 벤야민의 주장은 나치스의 주장, 특히 칼 슈미트의 정치신학과 결과적으로는 일치되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그가 주장한 신적 폭력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 폭력 혁명도 이미 1930년대에 스탈린주의에 의해 그 허구성 역시 명백히 드러났다고 하는 사실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4. 데리다의 폭력론

1989년은 프랑스 대혁명 200주년을 맞은 해였다. 그 해 데리다가 미국에서 행한 「법에서 정의로」라는 강연과, 이듬해 발표한 「벤야민의 이름」이라는 논문을 합쳐 발표된 책이 데리다의 ꡔ법의 힘ꡕ(1994)이었다. 1989년 프랑스는 1921년 독일의 벤야민처럼 권력으로 변질되지 않은 순수한 폭력을 논의하기에는 그 역사적 상황이 너무 달랐다. 당시 2세기에 걸친 프랑스 혁명의 성과가 요란하게 축하되었으나, 혁명이 초래한 두 가지 정치 형태인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특히 사회주의가 패배한 시점이었다. 즉 벤야민이 주장한 프롤레타리아의 순수한 폭력에 의해 비권력적인 최종의 해방을 목표로 삼았어야 할 사회주의 국가는 부르주아 국가 이상으로 자신에게 권력을 집중시킨 결과, 당시 폴란드에서 보듯이 노동조합 총파업 등을 통한 프롤레타리아 법질서가 붕괴되었다. 게다가 데리다의 첫 강연이 있고 난 직후 베를린장벽이 붕괴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데리다는 벤야민을 비판한다. 우선 그는 벤야민이 신화적 폭력과 신적 폭력을 구별함은 그리스적인 것과 유태적인 것의 이분법에 대응하고, 벤야민의 관점은 유태적인 것이라고 본다. 마찬가지로 그런 유태적 관점에 입각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선언」이 그렇듯이 벤야민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자 했으나, 그 파괴 이후 다시금 법준거의 권력으로 타락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데리다는 비판한다.
데리다는 벤야민이 말하는 폭력(Gewalt)이 독일에서는 입법권(gesetzgebende Gewalt), 영적 권위(geistische Gewalt), 국가권력(Staatsgewalt) 등과 같이 권력이나 권위를 뜻함을 지적한다. 데리다에 의하면 기성 법질서에 근거한 권력이 폐기하는 ‘신적 폭력’은 그 폐기를 선언한 그 순간부터 그것을 대신하는 새로운 권력으로 변모한다. 즉 폭력의 선언은 동시에 법준거의 선언이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신화적 법권력으로 변한 폭력은 역사 과정 속에서 부패하고 신적인 순수함으로부터 먼 것임을 폭로한다고 데리다는 본다. 벤야민은 법권력으로 준거된 그러한 부패를 극복하기 위해 신적 폭력을 요구하지만, ‘신적’인 것은 기성의 신화적 폭력의 폐기를 선언하는 순간 스스로 신화적인 성격을 갖게 된다고 데리다는 비판한 것이다.
여기서 데리다는 폭력이 나타나는 순간만은 순수하다는 주장을 새롭게 제기한다. 즉 벤야민이 순수한 신적 폭력에 역사적인 희망을 거는 것과 달리, 데리다는 그 순간을 특권화하지 않고 우리가 일상에서 직면하는 법 앞에서의 ‘결단’ 속에서 폭력에 의한 단절의 순간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데리다는 그 순간에 정의를 향한 일보를 딛게 되나, 동시에 그 순간은 광기를 가져 폭력을 증폭시킬 수도 있음을 경고하면서 그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데리다는 정의를 향한 발걸음에서 시간적으로는 물론 공간적으로도 무한한 타인에 대한 책임이 수반된다고 주장한다. 법을 개혁하고 혁명을 반복해도 법 자체의 근원적인 부정적 성격은 근절되지 않고 정의는 회복 불가능할 정도가 되기 마련이라고 보면서도, 데리다는 타인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갖는 결단을 통해 다시금 정의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데리다가 말하는 정의란 ‘불가능한 것에 대한 경험’으로 규정된다.
이러한 데리다의 주장은 그의 탈구축 또는 해체와 정치, 윤리, 법의 관계를 논의한 것으로 주목된다. 그러나 ‘탈구축이 정의이다’라는 그의 결론은 대단히 난해하다. ‘불가능한 것에 대한 경험’은 어떻게 가능하고, 그것을 정의로 삼는 순수한 결단의 폭력이란 어떻게 있을 수 있는가? 그의 논의가 모두 그렇듯이 논리적으로 그 내용을 확정하기란 어렵다. 이상의 주장에서도 그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분명한 점은 그가 벤야민의 메시아주의를 비판하면서도 벤야민식의 메시아주의에서 그리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논리 이전의 심정적 또는 상황적 동감을 부정할 수 없는 점은 사실이다. 특히 벤야민의 「폭력비판론」이 1968년 범세계적인 학생운동에서 경전처럼 읽힌 점, 또한 데리다의 폭력론 역시 그 경험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또한 그 전후의 모든 사회적 저항에서 그들의 주장이 정당화되는 것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광주민중저항을 비롯한 저항운동에서 그들의 주장은 충분히 원용될 수 있다.
특히 데리다의 논의 중에서 마지막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서구 근대의 이성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비이성적인 폭력에 의해 행사되었다고 지적하는 점이다. 데리다는 이를 ‘국내 식민지주의’라고 한다. 데리다에 의하면 그것은 언어에 의해 강요된 폭력이다.

주지하듯이 과거에도 현재에도 대부분의 나라에서 법이나 국가법을 수립하는 폭력은, 국가에 의해 재편성된 소수 민족 또는 소수 종족에 하나의 언어를 강제하는 것에 있다. 프랑스에서 이 사태는 적어도 두 가지 경우에 생겼다. 그 최초의 것은 1539년의 왕령이 사법과 행정 용어로 불어를 강제하고 라틴어를 금지함에 의해 군주제 국가를 통합한 것이 었다. 이어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프랑스혁명이었다. 당시 언어의 통일은 가장 억압적인 교육상의 전환을 초래했다. Jacques Derrida, “Force of Law: The "Mystical Foundation of Authority," in Drucilla Cornell, Michael Rosenfeld, David Gray Carlson eds., Deconstruction and the Possibility of Justice, New York, 1992, p. 21.


데리다는 ‘법에 있어서, 그리고 법에 관한 두 종류의 폭력’을 구별한다. 즉 ‘법을 수립하는 폭력, 곧 법을 제정하고 배치하는 폭력과, 법을 유지하는 폭력, 곧 법의 영속력과 강제력을 유지하고 확정하며 보증하는 폭력’이다. 위의 책, p. 31.
이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근대성 역사의 특징이다. 제3 세계에서도 제1 유형의 폭력―수립하는 폭력―이 제2 유형의 폭력에 대한 제3 세계 민중의 관계에 의해 대부분 결정되고 있는 것은 쉽게 발견된다. 문제는 그러한 폭력이 식민 종주국에서는 ‘국내 식민지주의’로 나타나도 근대화를 뜻했으나 식민지에서는 반드시 그렇지 못했다고 하는 점이다. 예컨대 제3세계에서는 여전히 국가 기구의 법적 강제인 경찰에 의해 고문이 가해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근대적 역사관은 실패한다. 따라서 유일한 방법은 피억압자로부터 배우는 것이 된다. 물론 근대적 역사관이 무조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예컨대 분배에 관한 정의의 관념 그 자체가 필요하다는 것은 시민, 민주주의, 복지를 둘러싼 근대적 개념이 모든 계급―특히 피억압 계급―에 가능하도록 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그러나 그러한 역사관이 진정으로 피억압자의 대화에서 생겨난 것인지는 의문이다. 대화는 목적론적이어서는 안 된다. 즉 어떤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선험적으로 옳다는 것을 전제해서는 안 된다.
극단적으로 피억압자가 혁명에 이르게 되는 경우라도 그들이 그 혁명에 필요한 것들을 충분히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람시는 그 점을 인정하고서 피억압자는 혁명적 지식인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다.

피억압 계급은 스스로가 <국가>로 되기까지 통일되어 있지 않고 통일될 수도 없다. 그 역사는 필연적으로 단편화되고 있는 삽화풍이다. 이러한 집단의 역사적 활동에는 (적어도 어느 정도 잠정적 단계의) 통일에의 경향이 확실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 경향은 지배자 집단의 활동에 의해 끊임없이 중단된다. 실제로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피억압집단은 자신들을 방위하고자 급급하는 것에 불과하다. Antonio Gramsci, Selections from the Prison Notebooks of Antonio Gramsci, trans. and ed. Quintin Hoare and Geoffrey Nowell Smith, New York, 1971, pp. 52, 54-55.

우리는 국가에 의해 구조화된 사회에 살고 있고 피억압자는 그 현실과 결부된 지식 형태를 필요로 하고 있다. 여기서 새로운 지식 형태는 국가나 정부, 전체와 결부된 것이어서는 안 된다. 즉 계몽적 합리주의의 유산과는 결별하는 것이어야 한다. 결국 데리다의 논의는 지식인 논의로 나아간다.


5. 파농의 폭력론

이상은 서구에서의 폭력론에 대한 검토이다. 우리는 식민지 차원의 폭력론으로 파농의 그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파농은 식민지화란 어떤 땅에 대포와 기계의 힘으로 침략해온 타종족이 그 원주민을 지배하여 토지와 인간을 사유화하는 폭력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식민지 사회란 포식과 기아로 분할된 사회, 곧 그 경계가 경찰과 군대에 의해 직접 유지되는 인종차별적인 폭력 사회라고 규정한다. 그곳에서 원주민은 절대악이고, 반가치이며, 동물이나 물건에 가까운 수동적인 존재, 요컨대 비인간적인 것으로 식민자에 의해 조작된 대상이다. 이러한 식민지화 역사의 배후에, 식민지 사회 구조의 근본에는 식민자=타자의 폭력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을 해방하고 그 주체성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식민지 체제를 타도해야 한다고 파농은 주장한다. 즉 비식민지화란 폭력 현상이고 인간 종족의 교대를 뜻한다. 즉 식민지화 역사를 통하여 심신이 모두 억제되고 고통당하며 동물화 되고 사물화된 원주민이 자신의 비인간성에 눈을 떠서, 내면에 저장된 폭력(내면화된 타자의 폭력)을 공격성(반대 폭력)으로 반전시키는 운동이 비식민지화 운동이라고 파농은 주장한다.
요컨대 폭력이 폭력을 낳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비식민지화 과정은 식민지화 과정 속에 이미 잠재적으로 존재하며, 그것은 역사의 필연적인 과정이 된다고 파농은 말한다. 그에 의하면 식민지주의는 생각하는 기계도 아니고, 이성을 부여받은 육체도 아니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의 폭력으로서, 그것 이상으로 ‘더욱 큰 폭력’에 의해서만 굴복하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더욱 큰 폭력’을 구현하고 인수하며 담당하는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파농은 먼저 식민지 시대에는 정당, 지식인, 상인 등이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나, 참으로 혁명적인 폭력을 구현하는 자는 농민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음의 해방 투쟁기에는 도시에서 산골로 도망간 지식인과 소수의 활동가가 농민을 만남에 의해 인민의 의식이 전진한다고 본다. 이어 봉기가 폭발하면 도시 주변부에 집결하는 룸펜 프롤레타리아를 통하여 그것은 확대된다고 주장한다.
파농은 식민지 사회에서 도시 프롤레타리아, 기술자, 관리 등은 특권층으로서, 식민지주의와 타협하여 비폭력을 주장한다고 본다. 이에 대해 농민대중, 그리고 토지를 수탈당하여 도시주변을 방황하는 부랑자, 범죄자, 실업자들이 식민지주의의 이익으로부터 제외되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존재라고 본다. 그들만이 비타협적이고, 오직 폭력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파농은 비식민지화 운동을 단순히 인간 종족의 교대로만 본 것은 아니다. 이 운동이 동시에 ‘새로운 인간의 창조’라는 것, 존재의 ‘근본적인 변경’이라는 것, 곧 가치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어떤 이념이나 추상의 차원이 아니라 ‘대지에 저주받은 자들’이 비식민지화 운동을 통하여 형성하는 역사적인 존재라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비식민화 운동이 폭력현상인 바 그 존재는 또한 폭력적 존재이기도 하다.
파농에 의하면 실제로 ‘새로운 인간’은 먼저 ‘식민지화된 신체’로 제출된다. 바로 굶주리고 억눌린 존재로서이다. 그러한 존재는 하루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에 대한 최초의 반응은 싸움과 범죄 및 부족 항쟁으로, 또한 원시적 종교와 마술에 대한 신앙 및 집단무용으로 나타난다. 억압이 강하면 강할수록 억압에 대한 눈뜸은 늦어지고 장기화된다.
파농과 달리 혁명 이론가들은 그러한 타락과 일탈 및 후퇴를 직시하지 않고 자각은 직선적으로 달성된다고들 했다. 그러나 파농은 종교도 주술도 ‘아편’으로 보지 않고 몽상도 광기도 부정적인 요인으로 배척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이 모든 것을 폭력의 과정으로, 반대 폭력에 대한 성숙으로 ‘새로운 인간의 창조’를 향한 최초의 단계, 곧 ‘폭력의 분위기’로 보았다. 파농에 의하면 이러한 ‘폭력의 분위기’는 차차 ‘행동화한 폭력’으로 나아간다. 그 계기는 식민지의 탄압이다. 여기서 폭력은 신체의 긴장과 이완, 집단 무용이나 축제로는 처리될 수 없다. 먹느냐 먹히느냐가 지배하는 반란의 초기 단계에 신체상 중요한 것은 노동이다. 그러나 여기서 노동이란 생산 노동을 뜻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식민지체제에 협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리어 태만이야말로 비협력이자, 저항으로 평가된다. 반대로 원주민에게 가치 있는 노동이란 식민주의를 타도하는 노동이다.
파농은 말한다. ‘새로운 인간’, 곧 ‘완전한 인간’은 근육과 두뇌를 분리시키지 않고 노동 속에서 양자를 통일하는 인간이고, 능률과 효율이 아니라 자기 신체와 두뇌의 리듬에 따라 노동하는 인간이다. 그리고 도구나 기술에 지배당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이 받아들이는 목적에 따라서만 도구나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이다. 또한 일-행동의 계획으로부터 실현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타인과 함께 의식적으로 참가하고 그 의미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인간이다. 그리고 자율적인 공동체의 자율적인 구성원으로서 타인에 대한 겸양, 배려, 사랑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동료와의 협력이나 의사소통에 가치를 두는 인간이다. 나아가 타자-타민족의 착취와 지배를 거부하고 타자-타민족과의 공생을 원리로 삼는 인간이다. 이러한 새로운 인간상이 자본주의는 물론 사회주의에서도 불가능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자율적인 공동체와 완전한 인간의 미래는 그 어느 것도 아닌 제3 세계에서만 가능하다고 파농은 믿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파농의 희망 역시 제3 세계에서 과연 현실적으로 구현되었는지 의심할 수 있다.
6. 아렌트의 폭력론

아렌트는 유럽과 달리 정당한 법의 근거를 폭력을 비롯한 다른 것에서 구하려는 전통이 없는 미국을 통해 위에서 지적한 소렐, 벤야민, 데리다, 파농을 비판하면서 나름의 해결을 강구하고자 한다. 따라서 언뜻 보면 아렌트는 소렐 등이 말한 저항폭력을 부정하고, 그들이 국가폭력이라고 한 권력을 긍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주장은 그녀의 ꡔ폭력론ꡕ(1970)에서 중점적으로 제기되고 있으나,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ꡔ인간의 조건ꡕ(1958)을 비롯한 그녀의 정치사상 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먼저 ꡔ폭력론ꡕ에서 그녀는 폭력은 권력과 대립한다는 전통적인 주장을 전제한다. 그녀에 의하면 폭력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나, 권력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토론하고 행동하여 생기는 것으로 그 자체가 정당성을 갖는다. 따라서 권력이 폭력을 사용하면 이미 권력이 아니고 정당성도 없다. 그녀에 의하면 소렐 이후 폭력론이 등장한 것은 근대 사회의 이성이나 진보라는 획일화에 의해 토론과 행동을 통한 공공권이 소멸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미국을 그러한 근대적 전통에서 해방된 개인, 그 개인이 자유로운 의사를 서로 표명할 수 있는 공적 생활에 기초를 둔 공화제의 원리로 체현한 나라로 본다. 물론 그녀는 미국에도 많은 소수 인종에 대한 차별을 당연히 인정하나, 이는 자유의 영역인 정치=공공권과는 무관한 사회의 영역으로 본다.
아렌트는 ꡔ인간의 조건ꡕ에서 그런 정치의 이상을 고대 그리스에서 생긴 공공권에서 발견한다. 그녀가 말하는 공공권이란 생물적 욕구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사람들이 언론과 설득에 의해 자유롭게 활동하는 공간을 뜻한다. 반면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에서 가계가 추구되었다고 본다. 그런데 근대 국가에 와서 가계가 가정을 뛰어넘어 국가의 관심사가 되어 사회적 영역이 나타났고, 인종차별과 같은 폭력은 그런 영역에서 문제된다고 아렌트는 본다.
아렌트는 근대 시민혁명의 두 가지인 1776년의 미국 독립 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을 본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본다. 그녀는 우리가 말하는 자유를 Liberation, 즉 물질적으로 결핍된 상태나 물리적으로 억압된 상태로부터의 해방을 뜻하는 소극적 개념과, Freedom, 즉 자신의 정신적 활동의 단서를 스스로 만들고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스스로 형성해 가는 능동적인 개념으로 구별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Freedom이 중심이었으나, 근대 국가에서는 Liberation이 중심이 되었고, 이는 맑스를 거쳐 사회주의 혁명에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말하는 전체주의는 나치즘이나 스탈린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19-20세기 질서를 묘사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그녀가 말하는 19세기 서구형 국민 국가는 자본주의를 강력히 추진하여 제국주의적 팽창을 결과했다. 그것은 또한 인종주의와 결탁하여 ‘피와 땅의 공동체’로 변질되어 반유태주의를 격화시켰고, 마찬가지로 제국 사이의 대립도 격화시켜 제1차대전을 낳았다. 그 후 20세기는 경찰 조직과 강제수용소를 통해, ‘국민’의 인종화와 전쟁에 의해 대량 생산된 무국적자=무권리자를 국민에서 배제했다.
아렌트에 의하면 프랑스 대혁명 시 로베스피에르의 공포 정치는 자유로운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사람들 사이를 무시하고 개인의 마음 속 문제인 동정을 통일적 원리로 삼아 인간을 일반의지를 갖는 공동체로 조직하려고 한 시도였다. 그녀는 이러한 ‘동정에의 열광’에 근거한 정치가 폭력적 충동을 인간의 자연적 본능으로 보아 인민을 하나의 육체처럼 움직이고 하나의 의지를 갖는 것처럼 행위하는 영혼으로 변모시켰다고 본다. 어떤 이성적 제약도 받지 않는 이 육체는 스스로에게 동화할 수 없는 것을 폭력에 의해 파괴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폴리스적인 자유와는 상용될 수 없는 자연적 폭력을 해방시킨 프랑스 혁명에 반해 미국 혁명은 ‘자유의 창설’이라는 본래 목적을 잃지 않고 계속 추구했다고 아렌트는 주장한다. 그녀에 의하면 미국에도 빈민은 존재했으나 프랑스나 독일처럼 비참하지는 않았고, 경제적 격차는 정치가 아니라 사회 문제로 여겨져 빈곤으로부터의 해방 요구에 의해 혁명의 방향이 결정되거나 변질되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관심도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자유의 창설에 대한 참여였다는 것이다.
아렌트에 의하면 미국에서도 인민(people)은 존재했으나, 그것은 프랑스처럼 자연적 충동에 의해 하나의 의지를 갖는 육체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성을 보증하는 자유로운 결합체를 의미했다. 이는 제퍼슨이나 매디슨 같은 초기 대통령들이 정치적 자유의 본질을 복수성에서 구한 것에 알 수 있다고 아렌트는 주장한다. 즉 그들은 상이한 의견을 갖는 사람들 사이의 교환이 있음으로 비로소 상대를 변론에 의해 설득하고자 하는 활동의 계기가 생긴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와 같이 일반의지가 지배하는 여론에는 다양성이 포함될 여지가 없으나, 미국 공화제에서는 처음부터 전원일치의 허구가 거부되고 서로의 논의를 통해 개인적인 이성의 잘못을 교정하면서 공공생활권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는 것이 아렌트의 주장이다. 즉 상이한 의견의 당파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 미국 통치형태의 특징이라고 아렌트는 주장한다.
아렌트는 자신의 자유로운 활동이 아니라 자신과 다른 존재에 의해 형이상학적으로 근거되는 삶의 방식을 인간성에 반하는 것으로 거부한다. 그녀에 의하면 형이상학적 원리에 의해 일원적으로 지배되는 세계에는 복수성에 근거한 인간성을 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가 없다. 따라서 종교적, 초월적 권위에 의해 외부로부터 정당화된 중세 기독교 세계의 통치체제는 인간성에 반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아렌트는 근대 혁명 속에서 탈형이상학적, 세속적인 정치권력 창설의 계기를 발견하고자 한다. 그러나 현실 혁명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자기 통치의 근거를 자신이 창설한 자유가 아니라, 어떤 형태의 신적인 원리에서 구한 혁명 전권은 형이상학에 빠져 자유로운 활동을 위한 공간을 스스로 파괴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반의지’의 표현이라는 여론에 의해 자기 통치를 신성화하고자 한 로베스피에르를 비롯한 혁명가는 좌절했다고 아렌트는 분석한다. 즉 앙시앙 레짐의 절대군주제로부터 자기를 해방하고자 한 그들은 절대군주를 대신하는 새로운 절대자를 실체적으로 창출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렌트에 의하면 식민지 미국에서는 그 지배자인 영국에서 절대군주제가 없어졌고 ‘법에 의해 제한된’ 군주제가 있었던 탓으로 미국인들은 ‘법을 초월한 절대적 지배자’라는 환상에 빠지지 않았다. 반면 더욱 강력한 권위를 갖는 절대자를 인민에게 구한 프랑스에서는 자신의 절대성과 동화될 수 없는 것을 파괴하고자 하는 ‘정치 이전의 자연적 폭력’으로 변질되었다. 인민이라는 이름으로 절대화된 군중의 폭력은 절대군주제를 붕괴시켰으나, 동시에 같은 폭력에 의해 혁명 정부 자체가 파괴되었다는 것이다.
아렌트는 정치에서 절대자가 담당하는 기능을 다음 둘로 본다. 하나는 인간에 의한 법제정을 둘러싼 악순환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시작이라고 하는 악순환이다. 첫째는 입법의 타당성과 합법성을 외부, 즉 ‘더욱 고차원의 법’에서 구하는 것으로서 인위적인 법을 언제나 다른 권위에서 구하는 악순환이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불완전하므로 결국은 자신의 이름으로 둘째의 새로운 시작을 선언하게 된다. 즉 인민의 이름으로이다. 이는 바로 앞에서 본 소렐이나 벤야민 또는 데리다까지의 ‘신화적 폭력’이라는 문제의식이었다.
아렌트는 혁명에서 절대자는, 이러한 두 가지 악순환을 회피하여 합법적인 통치체제를 수립하고자 하는 경우 논리적으로 요구된다고 본다. 즉 근대초의 절대군주제는 중세 기독교 세계의 신적인 합법성을 차단하고 세속 권력을 수립하고자 하여 생긴 것으로 중세적 권위의 잔재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편 프랑스 혁명에서는 절대군주제 대신 군중=인민이 절대자로 나타났다. 이는 법에 구속되지 않는 자연적 폭력을 해방시켰다.
반면 미국에서는 인민이 권력의 담당자로 여겨졌으나 법의 원천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고 아렌트는 주장한다. 대신 법은 풀뿌리 차원의 인민의 의지를 넘는 초월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여겨졌고, 그 법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혁명 과정과 함께 갱신되는 것으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즉 Freedom의 영역을 새로이 창설하고자 하는 혁명운동의 과정이 법의 원천이고 ‘보다 높은 법’은 언제나 생성되는 것이었다. 아렌트에 의하면 실체화되지 않고 언제나 자기생산을 계속하는 법이 ‘인민에 의한 통치’를 구속하고, ‘정치 이전의 폭력’을 봉쇄하는 메커니즘이 생김에 의해 미국 혁명은 절대자를 둘러싼 세속화된 형이상학에 빠지지 않았다. 즉 절대자가 실체적으로 표상화되지 않았기에 권력이 폭력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렌트가 말하는 역사의 새로운 시작은 역사를 초월한 절대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창설’하는 ‘행위’ 그 자체 속에 있다. 즉 행위가 절대이지 주체가 절대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앞에서 본 소렐-벤야민-데리다의 문제는 아렌트에 와서 자신의 창설 행위 자체를 절대적인 것으로 보는 미국 혁명에서 해답을 보이게 된다. 아렌트는 ꡔ공화국의 위기ꡕ(1972)에서 미국 헌법의 기본으로 시민적 불복종을 다루었다. 즉 그것은 위법적 폭력행위가 아니라 헌법 옹호의 행위로서 합법화된 것이었다. 여기서 폭력론은 시민적 불복종의 논의로 나아간다.


7. 맺음말

지금까지 소렐, 벤야민, 데리다, 파농의 저항적 폭력론과 그것에 비판적인 아렌트의 폭력론을 살펴보았다. 그것들은 나름대로의 현실 상황에서 생겨난 논의들로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 어떤 주장이 반드시 옳고 그르다고 재단할 필요는 없을 것이나, 필자의 입장은 아렌트의 주장에 가깝다. 여하튼 위에서 언급하지 않은 한 두 가지를 더하면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하나는 국민형성의 폭력적 구조 문제이다. 근대사에서 국민형성의 폭력이란 ‘국민’이 ‘되는’ 과정을 말하는 것으로, 전쟁에서 가장 현저하게 나타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전쟁이 비상사태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생활과 관련된다고 하는 점이다. ‘전시동원’이란 신체의 동원으로서 생활의 규율화를 통해 가능하고, 생활 규율로부터 군사 규율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군사 규율은 생활 규율로 다시 내면화된다. 우리는 그러한 폭력적 구조를 식민지 시대와 군사독재 시대에 경험했고, 그러한 구조는 분단에 의한 냉전 의식이 여전히 팽배한 지금도 상당 부분 온존되고 있다.
이러한 생활 구조적인 폭력성은 특히 성의 측면에서 나타난다. 근대 국가가 성을 제도로써 통제하고자 한 것은 단순히 전시성 성폭력인 ‘종군위안부’ 문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쟁 이전부터 소위 ‘훌륭한 국민’을 재생산하기 위한 성과 생식의 통제를 가한 것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현모양처’와 ‘종군위안부’라는 여성에 대한 이중 기준이 남성에 의해 이용되어 성폭력은 모든 국민에게 작용했다. 이러한 이중 기준은 식민지 전쟁과 6.25 전쟁이 끝난 후에는 물론, 지금까지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식민지의 경우 가해자 일본만이 아니라 피해자 조선-한국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그것은 서양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제도를 모방하여 발전시킨 것으로서, 서양에서도 식민지에서 더욱 가혹한 형태를 취했다. 그 근본인 경제의 논리와 민족 차별의 논리는 성 차별에도 그대로 관철되었으며, 일본의 그것은 서양식 성 관리 정책에 다름이 아니었고, 그 유습이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러한 성에 대한 폭력적 구조는 노동, 사상, 교육 등등 국민형성의 모든 요소 속에 동일하게 유지되어 이미 기성의 신화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한 신화적 폭력에 대항하는 저항적 폭력, 벤야민이나 데리다 또는 파농이 말하는 신적 폭력 또는 결단적 폭력 등은 우리에게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그것도 다시금 신화적 폭력으로 변질되지 않고 그 순수성을 어떻게 가질 수 있을 것인가? 또는 그 대안으로 아렌트가 말하는 폭력과 대치되는, 토론과 행동의 권력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원문 : http://jbreview.jinbo.net/maynews/readview.php?table=organ&item=&no=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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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안의 여인(Woman in Window) - 프리츠 랑(Fritz Lang)

어떤 외로운 심리학 교수가 그의 클럽 입구 옆에 있는 가게 진열창 안에 걸려 있는 요부(female fatale)의 초상화에 매혹을 느낀다. 가족들이 휴가를 즐기러 떠나고 난 뒤에 그는 클럽에서 깜박 잠든다. 점원 하나가 11시에 그를 개우자 그는 일어나 클럽을 떠나면서 여느 때처럼 그 초상화를 힐끗 쳐다본다. 그런데 이번에는 거울에 비친 거리를 지나던 거무스름한 피부의 아름다운 여인과 진열창 속의 그림이 겹쳐지면서 초상화의 여인이 살아난다. 그 여인은 교수를 유혹한다. 그리하여 교수는 그녀와 성 관계를 갖고, 그녀의 애인과 싸우다가 그를 죽이게 되며, 그 후 이 살인사건의 조사과정에 대해 경위인 친구에게서 정보를 입수한다. 이제 곧 그를 체포하러 경찰이 들이닥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의자에 앉아 독약을 마시려다가 그는 깜박 잠이 든다. 그 때 점원이 11시라면서 그를 깨우고 그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안심한 그는 거무스름한 피부의 요부가 꾸민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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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급작스런 결말을 단순히 헐리우드적 약호에 대한 타협이나 순응이라고 보아서는 안된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위안을 주는 것이 아니다. 즉 “그건 단지 꿈이었고 현실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평범한 사람이야! 살인자가 아니락!”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 우리의 욕망의 실재에 있어 우리는 모두 살인자들이다”가 이 영화의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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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수가 계속해서 (주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정상적인 사람이라는) 그의 꿈을 유지하기 위해서, 다시 말해 자신의 욕망의 실재(심리적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깨어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깨어 있는 상태란 “그의 꿈의 의식에 불과하다”
라캉이 참조한 것 가운데 하나인 장자와 나비의 비유를 여기에다 다시 적용하자면 우리는 한 순간 살인자이기를 꿈꾸는 조용하고 친절하며 점잖은 부르주아 교수를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반대로 일상생활 속에서는 그저 점잖은 부르주아 교수이기를 꿈꾸는 살인자다.
 
- 지젝, <삐딱하게 보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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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집(Black House) - 패트리시아 하이스미스(Patricia Highsmith)

사건은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데, 그 곳 사람들은 해질 무렵이면 마을의 선술집에 모여서 마을 근처 언덕 위에 있는 오래된 폐가와 어떤 식으로든 관련되어 있는 향수어린 추억과 마을의 전설들 - 대개는 그들의 젊은 시절 모험담을 - 되새기곤 한다. 이 신비로운 ‘검은 집’은 어떤 저주에 걸려 있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누구도 그 곳에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암묵적인 동의가 이루어져 있다. 그 곳에 들어가는 것은 목숨을 건 위험한 일이라고(그 집에 유령이 나타난다든지, 침입자는 모두 죽이는 정신병자가 혼자 살고 있다든지 하는 소문이 퍼져 있다) 여겨졌지만, 동시에 이 ‘검은 집’은 그들 모두를 젊은 시절의 추억과 연결해주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 곳은 그들이 최초로 저지른 범죄, 그 중에서도 성적 경험과 관련된(남자들은 몇 년 전에 마을에서 제일 예쁜 소녀와 어떻게 그 집에서 최초의 성 관계를 가졌는지, 어떻게 그 곳에서 처음 담배를 피웠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늘어놓는다) 장소였던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그 마을에 이사온 지 얼마되지 않은 젊은 엔지니어다. ‘검은 집’에 대한 전설을 모두 듣고난 그는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내일 저녁 이 수수께끼에 싸인 집을 탐험해보겠다고 공표한다. 함께 있던 사람들은 그의 발언에 대해서 아무 말도 안했지만 암묵적으로 강한 반대의사를 표명한다. 다음 날 저녁 젊은 엔지니어는 뭔가 끔찍한 사건이, 최소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질 것을 기대하면서 그 집을 찾아간다. 잔뜩 긴장한 채 어둡고 낡은 폐가에 접근한 그는 삐거덕거리는 계단을 올라가서 방마다 모두 조사해보지만 마루 위에 있는 몇 개의 썩은 매트 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곧바로 선술집으로 돌아온 그는 의기양양하게 그 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말한다. 그들의 ‘검은 집’은 단지 낡고 더러운 폐가에 불과하며 신비스럽거나 매력적인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노라고. 그의 말에 사람들은 충격을 받고, 그 엔지니어가 떠나려 하자 그들 중 한 사람이 사납게 그를 공격한다. 불행하게도 젊은 엔지니어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죽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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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새로 이사온 사람이 한 행동이 마을 사람들을 그토록 공포스럽게 했을까? 현실과 환상의 공간의 ‘다른 장면(other scene)’간의 차이에 주목함으로써 그들이 느꼇던 적대감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검은 집’은 바로 그들 자신의 향수어린 욕망과 왜곡된 추억들을 투가할 수 있는 하나의 빈 공간 구실을 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출입이 금지되었던 것이다. ‘검은 집’이 그저 낡은 폐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진술함으로써 젊은 침입자는 그들의 환상 공간을 일상적이고 흔해빠진 현실로 환원시켜버렸다. 결국 그는 현실과 환상 공간의 차이를 제거함으로써 그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접합할 수 있었던 장소를 그들에게 박탈했던 것이다.
환상 공간이 갖는 생생한 내용들의 매혹적인 현존은 단지 이 텅빈 공백을 메우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 지젝, <삐딱하게 보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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