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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대회소회] 20년동안 8시간을 달려서 온 서울이던가?

이번 노동자대회처럼 고생스런 하루가 있을까? 8시간을 버스속에서 갖혀있다시피 하고 도착한 서울의 밤은 쓸쓸하였고, 상암동의 칼바람 추위는 우리 노동자들의 가슴을 더욱 쓰리게 했던가!

 

전날 울산에 내려갔다가 몇몇 동지들과 교대제관련 토의를 하고는 바로 올라오기 어려워서 기어코 하루밤을 보냈다. 그 다음날, 바로 전야제날.. 울산 자동차 동지들이 버스를 대절하여 올라간다기에.. 버스 맨 앞자리에 조그마한 자리를 하나 빌어서 올라탔다. 버스속에서는 고속도로에서 경찰이 막으면 어떻게 할까? 라는 이야기가 한창이고 ... 경상남도의 독특한 억양과 짧고 절제있는 언어표현 등을 재미있게 귀담아 들으면서 설레임속에 나는 버스가 출발하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1시에 출발..  1시에 출발했느니 6시쯤이면 도착하겠거니.. 하고 버스속에서 새우등을 하고, 한참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이천.. 벌써 6시가 넘었다. 칠곡에서 한번 쉬고, 이천에서 밥을 먹고 다시 출발하는데 왜 이렇게 버스가 느림보걸음인지.. 서울에 도착하고 나서 올림픽 도로인가 뭐신가 위에서 버스는 마냥 서있었다. 20년동안 노동자대회에 참석했다는 뒤에 앉은 동지들은 오히려 느긋한데.. 나만 발을 동동 굴렀다.

 

"누구도 만나보아야하고.. 멀리서 온 동지도 보아야 하고......" "5시간정도 걸릴줄 알았지.. 이렇게 걸릴줄 정말 몰랐다" "서울을 가로지르지 왜 하필이면 꽉 막혀있는 올림픽도로냐?"  라면서 투덜거리는 것은 나 혼자였다. 이런, 이 양반들은 이미 모든 것을 통달하고, 도를 닦은 분들이란 말인가?

 

9시가 넘어서 상암동 언저리에 도착한 우리들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노래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벌써 집회는 끝나고... 전야제 문화제행사장으로 이동하고 있는 대오들... 춥고, 배고픈 가운데. 몇몇 아는 얼굴을 만나니 조금 살것 같았다.

 

상암동 운동장을 질러서 들어가보지 못하고, 주변을 둘러싼 우리들이 조금은 가련하고 측은하기도 하고.. 매서운 칼바람에 몸은 점점 오그라들고.. 매서운 추위속에 아는 동지들의 얼굴이 왜 그렇게 반갑던지......

 

노동자노래 95곡이 실린 cd도 있고.. 비정규직 철폐라고 쓰여진 방한용 마스크도 있고.... 마우스 받침대도 있다... 주머니에 단돈 10000원뿐이란 것을 확인한 나는 그 가판대앞을 그냥 지나치면서 어찌나 미안했던지...... 집에 갈 차비도 없는데.. 어쩌란 말이냐?

 

올해는 만나고 싶은 동지들을 못보았다. 말은 하지 않았어도 몇몇 동지들을 해마다 보기는 하지만.. 조금 더 욕심을 냈었는데.. 추위와 좁은 장소로 인해 돌아다니는 것을 이내 포기하였다. 남쪽에서 올라온 여자후배를 만나 반가왔지만. 너무 바쁜 그녀...... 

 

작년엔 여의도 강바람에 울더니, 올핸 상암동 운동장 칼바람에 울다니......

 

나는 거의 죽다시피하면서 간신히 집으로 가서 쓰러졌다.

 

다음날..... 노동자대회...... 이미 전날부터 봉쇄를 한다고 자본은 엄포를 놓고 있고.. 그래도 가야한다는 생각에 전철을 집어탔다. 전철을 타고 시청까지 오는 동안은 어찌나 평온하던지.. 예전에는 지하철 곳곳에도 노동자대회 전날이면 붙여지는 플랭카드와 전단지들이 하나 둘은 보일 법도 한데.... 올해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철도가 파업을 한다는데.. 지하철은 왜 이렇게 조용한가 요새?

 

시청에 가까이 오니, 그제서야 동지들의 면면이 보인다.. 한 동지를 만나서 시청 앞 원형 잔디밭을 건너는데, 역시나 대오는 잔디밭에 없다. 그곳에는 올겨울에 무슨 스케이트장을 만든다나 어쩐다나.. 올해 푹 날씨가 더워서 얼음이나 얼지 말아라..

 

시청에서 조금 더 나가 신작로에 대오가 모여있다. 역시, 집회를 불허했더니, 투쟁대오가 자연히 만들어졌구만... 이래서 불법집회가 좋은거여...  나는 속으로 불법집회를 환영했고, 대오 앞쪽에서 얼쩡거렸다. 87년, 90년, 96-97... 치열하고 처절했던 투쟁에 비하면 지금은 매우 양호한 편... 그래서 내가 맨 앞을 얼쩡거려도 아무렇지도 않은지도 모른다. 싸움의 수위가 너무 약해졌지 않은가?

 

그래도 올 노동자대회에서는 상암동 홈에버 앞에서 비정규직 철폐투쟁을 상징적으로 했고, 청와대진격투쟁을 했다. 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전체 대오를 이끌 지도력이 부족했고, 상징적인 구호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아마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나의 조급함에서 온느 조바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8시간을 버스속에 있으면서도 20년동안을 해마다 8시간씩, 왕복 16시간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도 도착해서는 인상한번 찌푸리지않고 반갑게 인사했던 울산 동지들...... 작년이고 제작년이고 그들이 올라올때, 그렇게 힘들게 올라오는 것인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들은 서울로 올라오는 자체가 투쟁이요, 전투였던 것이다.

 

나는 어떠한 어려움속에서도 씩씩하고 의연한,

 

그들의 낙천적인 투쟁관을 또 오늘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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