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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백석시인의 글

 

입춘(立春)

백석


이번 겨울은 소대한 추위를 모두 천안 삼거리 마른 능수버들 아래 맞았다. 일이 있어 충청도 진천(鎭川)으로 가던 날에 모두 소대한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공교로이 타관 길에서 이런 이름 있는 날의 추위를 떨어가며 절기라는 것의 신묘한 것을 두고두고 생각하였다. 며칠내 마치 봄날같이 땅이 슬슬 녹이고 바람이 푹석하니 불다가도 저녁결에나 밤 사이 날새가 갑자기 차지는가 하면 으레 다음날은 대한이 으등등해서 왔다. 그 동안만 해도 제법 봄비가 풋나물 내음새를 피우며 나리고 땅이 눅눅하니 밈이 돌고 해서 이제는 분명히 봄인가고 했는데 간밤 또 갑자기 바람결이 차지고 눈발이 날리고 하더니 아침은 또 쫑쫑하니 날새가 매찬데 아니나다를까 입춘이 온 것이었다. 나는 실상 해보다 달이 좋고 아침보다 저녁이 좋은 것같이 양력(陽曆)보다는 음력(陰曆)이 좋은데 생각하면 오고가는 절기며 들고나는 밀물이 우리 생활과 얼마나 신비롭게 얽히었는가.

절기가 뜰 적마다 나는 고향의 하늘과 땅과 사람과 눈과 비와 바람과 꽃들을 생각하는데 자연이 시골이 아름답듯이 세월도 시골이 아름답고 사람의 생활도 절대로 시골이 아름다울 것 같다. 이번 입춘이 먼 산 너머서 강 너머서 오는 때 우리 시골서는 이런 이야기가 왔다. 우리 고향서 제일가는 부자가 요즈음 저 혼자 밤에 남포불 아래서 술을 먹다가 남포가 터지면서 불이 옷에 닿아 그만 타죽었다 했다. 평소 인색하기로 소문난 사람인데 술을 먹되 누구와 같이 동무해 먹지 않았고 전등이나 켤 것이지 남포를 켰다가 변을 당했다고 하는 시비가 이야기에 덧묻어 왔다. 또 하나는 역시 우리 고향에서 한때는 남의 셋방살이를 하며 좁쌀도 되술로 말아먹고 지나던 사람이 금광(金鑛)에 돈을 모으고 얼마 전에는 자가용 자동차를 사들였다는 이야긴데 여기에는 또 어떤 분풀이 같은 기운이 말 끝에 채이었다.

오는 입춘과 같이 이런 이야기를 맞으며 나는 생각했다. 내 시골서는 요즈음 누구나 다들 입을 삐치거나 솜씨를 써가며 이 이야기들을 할 것인데 그럴 때마다 돈과 목숨과 생활과 경우와 운수 같은 것에 대해서 컴컴하니 분명치 못한 생각들이 때로는 춥게 때로는 더웁게 그들의 마음의 바람벽에 바람결같이 부딪치고 지나가는 즈음에 입춘이 마을 앞벌에 마을 어귀에 마을 안에 마을의 대문간들에 온 것이라고

이런 고향에서는 이번 입춘에도 몇 번이나 '보리 연자 갔다가 얼어 죽었다'는 말을 하며 입춘이 지나도 추위는 가지 않는다고 할 것인가.

해도 입춘이 넘으면 양지바른 둔덕에는 머리칼풀의 속움이 트는 것이다. 그러기에 입춘만 들면 한겨울내 친했던 창애와 썰매와 발구며 꿩 노루 토끼에 멧돼지며 매 멧새 출출이들과 떠나는 것이 섭섭해서 소년의 마음은 흐리었던 것이다. 높고 무섭고 쓸쓸하고 슬픈 겨울이나 그래도 가깝고 정답고 흥성흥성해서 좋은 겨울이 그만 입춘이 와서 가버리는 것이라고 소년은 슬펐던 것이다.

그런 소년도 이제는 어느덧 가고 외투와 장갑과 마스크를 벗기가 가까워서 서글픈 마음이 없듯이 겨울이 가서 슬퍼하는 슬픔도 가버렸다. 입춘이 오기 전에 벌써 내 썰매도 멧새도 다 가버린 것이다.

입춘이 드는 날 나는 공일무휴(空日無休)의 오피스에 지각을 하는 길에서 겨울이 가는 것을 섭섭히 여기지 못했으나 봄이 오는 것을 즐거이 여기지는 않았다. 봄의 그 현란한 낭만과 미 앞에 내 육체와 정신이 얼마나 약하고 가난할 것인가. 입춘이 와서 봄이 오면 나는 어쩐지 까닭모를 패부(敗負)의 그 읍울을 느끼어야 할 것을 생각하면 나는 차라리 입춘이 없는 세월 속에 있고 싶다.

(조선일보 193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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