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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4/21
    민망(3)
    무화과
  2. 2006/04/21
    아무일도 없었으면 좋겠다.(4)
    무화과
  3. 2006/04/21
    다리라도 부러져버렸으면 좋겠다
    무화과
  4. 2006/04/20
    하루(3)
    무화과
  5. 2006/04/11
    폭력을 독점한 국가의 최소한의 의무
    무화과
  6. 2006/04/11
    개똥만도 못한 놈들(4)
    무화과
  7. 2006/04/09
    농사꾼과 전쟁꾼들의 싸움(5)
    무화과
  8. 2006/04/04
    (2)
    무화과
  9. 2006/04/02
    섬진강여행(4)
    무화과
  10. 2006/03/30
    착한사람들(4)
    무화과

민망

민망한 상황...

열심히 해서 민망한 상황을 만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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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일도 없었으면 좋겠다.

아직 그다지 긴 인생은 아니지만

살다보니 인생의 몇 가지 부분은 알 것도 같다.

이별은 언제나 순식간에 찾아온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던 사람도,

 항상 변하지 않을거라 믿었던 관계도,

심지어 예정되어 있어서 준비해왔던 이별조차도

어느날 갑자기 다가온다.

 

헤어진 사람은 반드시 다시 만난다는 말을 믿고싶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기도하고 편지 쓰는 것 밖에 없다.

다시 만날때, 모두가 행복해보였으면 좋겠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들이 슬프다.

예정된 이별을 기다리는 짧은 시간이 고통스럽다.

 

한밤의 꿈이면 좋겠다.

내일 아침이면 늘 같은 일상이 나를 포근하게 감싸면 좋겠다.

아침밥 먹으라고 엄마가 깨우면, 동생 깨우면서 장난좀 걸어주고

아랫집에 가자마자 피자매연대와 평화인권연대 문열고 인사하고

전쟁없는세상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저녁때 누구를 꼬셔서 술이나 한잔할까 전화기를 뒤적거리면 좋겠다.

너무 늦게까지 술을 마시다 보면 흑석동에서 자고 갈 수도 있고

백기형님 석직씨와 택시를 탈 수도 있겠다.

 

1년6개월 짧은 시간이지만

아무일도 없었으면 좋겠다.

누구에게도 아무일도 없었으면 좋겠다.

마치 꿈처럼 지난 시간들이 아무일도 없이 지나가있으면 좋겠다.

지나고 나서 대부분의 전화번호를 내가 기억해내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인터넷 아디디와 비밀번호들이 헤깔릴 수도 있지만

버스노선과 지하철 막차시간이 가물가물할 수도 있지만

그런것들은 아무래도 좋다.

 

앞으로 살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더 큰 슬픔의 이별들도 있을 것이다.

고통스러운 이 시간도

몰래 벼갯잎 적시는 엄마의 슬픔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의 아픔도

착한 사람들의 고마운 마음도

황새울 들판의 농부의 땀방울도

모두 아무일도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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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라도 부러져버렸으면 좋겠다

출근하는 엄마를 보내놓고

다리를 주먹으로 마구쳤다.

차라리 다리가 부러져 오늘 집에서 나갈 수 없게 되고 싶었다.

세상에서 못할짓 참 많지만 불효는 정말 못할 짓이다.

평생을 고생하고 살아온 엄마에게

또 한 가득의 근심과 슬픔을 가져다 줄 수밖에 없다.

울고 울고 또 울어도 미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정말 못할짓이다 정말 못할짓이다

 

그저 건강하시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편지 자주 써 드리는 수밖에 없다.

평생을 자식을 위해 살아온 엄마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달랑 이것뿐이다.

 

나를 위해서 일부러 소리내 울지 않는 엄마의

벼갯잎이 축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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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하루의 시간이 남았다.

무엇을 할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짧은 시간이 남았다.

짧은 시간동안 나머지 1년반을 준비해야한다.

 

하지만 할 수 없는 일들도 있다.

시간이 많아도 할 수 없는 일들이다.

난 엄마를 위로할 수가 없다.

엄마를 보면, 내가 먼저 울음이 나올까봐

웃는 모습을 보여들이고 싶은데 내가 먼저 눈물이 나올꺼 같다.

 

남아있는 하루의 시간이 굉장히 길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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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을 독점한 국가의 최소한의 의무

무화과님의 [개똥만도 못한 놈들] 에 관련된 글.
이라기 보다는 그 밑에 달린 '의경'이라는 사람의 덧글에 대한 글.

 

 

이 사람이 진짜로 의경인지 아닌지 알 수 없으나,

정말로 의경이라고 가정하고 글을 쓴다.

이렇게 너무 쉽게 가정해버린 이유는 정말로 이 사람과 같은 태도를

가진 전의경들을 너무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전의경들에게는 존경을 표한다.

 

예전에 전용철 홍덕표 농민이 집회도중에 맞아죽고나서

1001, 1002, 1003 (특수기동단인가?) 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적이 있다.

과잉진압으로 인한 농민사망에 대한 항의와 기동단 해체를 주장하는 기자회견이었다.

그런데 부대안의 풍경이 가관이었다.

부대안에서는 앞에서 기자회견하는 우리 들으라는 듯이

마구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마 떠나가는 선임병들을 축하해주는 듯 했다.

그리고 정문을 막아선 전경들은 아주 노골적으로 기자회견을 하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고 있었다.  "맞을만 했으니까 맞았지" "홍콩이었으면 니넨 다 죽었어"

사람죽여놓고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그리 흔지 않다.

 

집회나 시위장소에서 많은 폭력상황이 발생한다.

때로는 시위대의 준비된 물리력과 폭력이 상황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경찰들의 필요이상의 과잉진압이 폭력상황을 발생시킨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의도하지 않았지만, 몸과 몸이 닿아있는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폭력상황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 우발적 상황은 많은 경우 충분히 막을 수 있다.

왜냐하면 우발적인 상황은 욱하는 감정들이 부딪히며 일어나는데,

대개의 경우 그런 감정은 상대방이 자극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물론 시위대가 전경들을 조롱하거나 모욕하기도 하고

전경들이 시위대를 도발하거나 폭력상황을 조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책임을 시위대나 전경(공권력 혹은 국가권력)에게 똑같이 지울수는 없다.

 

한쪽은 폭력적인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아무런 연습을 안한 그룹이다. 그들은 폭력적인 상황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싸워서 이길것인지, 비폭력으로 맞설것인지, 그들 내부에서도 각기의견이 다르다. 게다가 많은 경우 맨몸이다.

 

한쪽은 밥먹고 하는 일이 그런 폭력적인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연습을 하고 지내는 그룹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몸을 보호할 최소한의 장비들을 갖추고 있고, 상대방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도구를 가지고 있고 그 폭력행사가 법이라는 이름으로 보호되어 진다.

 

현대사회에서 국가는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한다. 그리고 다른 여타의 폭력을 금지시킴으로 폭력을 독점한다. 국가가 어느정도 민주적일 수 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폭력을 독점한 국가의 현재존재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국가는 그 폭력을 어떻게 행사해야 하는가? 한국이라는 국가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이 없다.

 

국가의 공권력은 이미 독점된 폭력이기 때문에 더 많은 책임을 져야한다. 폭력적인 집회문화에 대한 책임을 노동자들이나 농민, 시민단체 사람들에게 떠 넘기는 것은 정말 치졸한 짓이다. 한국 정부는 집회에서 폭력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전경들을 연습시켜야 하지만(그 전에 전의경이 집회에 동원되어서는 안되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어떻게 시위대를 도발하고 때려잡을 수 있는지를 연습시킨다.

 

국가가 폭력을 독점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안들지만(국가 또한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할 권리는 없다) 어쩃든 현재 폭력을 독점하고 있다면 최소한의 의무는 해야할 것이다. 만약 시위대가 폭력시위를 한다고 해도 국가는 최대한 폭력을 자제하도록 전의경들을 훈련시켜야한다. 시위대가 만약 전의경들을 도발하더라도 폭력적이고 우발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국가는 너무 많은 합법적인 폭력수단을 소유하고 있기때문에 폭력상황에 대한 더 큰 책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의 의무도 안하는 국가때문에 저런 생각을 하는 전의경들이 있는 것이다.

저들이 저런 생각으로 집회장소에 나오는 한 평화시위는 이루어 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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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만도 못한 놈들

프레시안기사보기

 

프레시안 기사보다가 너무 열받는다.

아...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온다.

욕이 목구멍언저리까지 치고 올라왔다가

제분에 못이겨 다시 똥구멍까지 치고 내려간다.

 

과격시위자들에 대해서 강력하게 대처하겠단다.

평택에서 누가 과격한지 국회의원이나 국무총리

이따위것들이 한 번 와서 봐야한다.

구속자들이 어떤 과격시위를 했는지,

어떤 이유에서 구속되어야 하는지 한 번

그 잘나고 똑똑한 입으로 이야기 해봐야한다.

 

국가간의 약속이라고...

개뿔 약속이나 평소에 지키는 족속들이 그런말하면

그래도 설득력이라도 있지. 약속을 아침에 똥누듯

하루마다 바꿔치기 하는 놈들이 무슨 국가간의 약속을 들먹이고 지랄이야.

저놈들은 꼭 이런 약속만 지키려고 노력한다.

국민과의 약속은 지키는 꼴아지를 못봤다.

 

공사가 지연되면 막대한 비용의 손실이 생겨 국민의 혈세가 낭비된다고?

국가간의 약속을 위해 국민 내 팽개칠때는 언제고 다시 또

국민의 혈세 걱정해주는 척 한다.

그렇게 국민의 혈세 아까우면 17살밖에 안된 애들

용역으로 멋도 모르고 끌고오는 돈이나 아껴보시지

 

아... 저 양복쟁이들 그냥 내 눈과 귀에서 꺼져주면 참 좋겠다.

개똥은 약에다라도 쓰지. 저놈들은 쓸곳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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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꾼과 전쟁꾼들의 싸움

세상에는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 있다.

같은 방법으로 싸우면서 힘의 차이가 너무 크면 그러하다.

하지만 어떤 경우는 서로 싸우는 방식이 워낙 다르기 때문에

처음부터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어 있는 싸움이 있다.

 

농사꾼과 군인의 싸움이 그러하다.

농사짓는 사람들과 전쟁하는 사람들의 싸움이 그러하다.

 

군인의 싸움의 방식은 다른 사람들을 위협하고 몰살하는 것이다.

군인은 전쟁을 통해서 적들을 하나씩 제거해 간다.

어제의 동지가 때로는 적이 되기도 하고 그들을 죽여야 승리할 수 있다.

그리하여 모든 적을 몰살한 마지막에 기다리는 것은

혼자남은 자의 파멸뿐이다.

 

농사꾼의 싸움은 방식은 농사를 짓는 것이다.

농사꾼은 농사를 지어서 사람들이 먹고 살 것을 만든다.

어제의 적들이 먹고 살기위한 곡식을 재배한다.

그리하여 함께 노동하고 함께 더 많은 곡식을 더 많은 사람들이 나눠먹는 것이 승리다.

그리하여 농사꾼에게는 마지막이 없다.

땅에서 태어나 땅과 더불어 살다가 땅으로 돌아간다.

 

군인은, 군대는, 전쟁은, 국가는 승리를 쌓아갈수록 고립되어가게 되고

농사꾼은 애시당초 승리와 패배가 없는 자연의 딸과 아들이다.

 

죽이고 죽어가고 죽여가다가 마침내 죽는 방식의 싸움을 하는 자들과

키우고 나눠먹고 살아가다 흙으로 돌아가는 방식의 싸움을 하는 자들은

애시당초 싸움을 하기 전에 승패가 갈리워져있다.

승리를 갈구하는 폭력은 마침내 패하고

승리에 관심없는 노동은 마침내 승리하게 된다.

 

군대와 경찰과 관공서가 만약에 이긴다 하더라도,

이겨서 평택주민들이 쫓겨난다 할지라도,

그래도 결국에는 그들의 패배다.

군대없이 농사꾼은 살 수 있지만, 농사꾼 없이 군대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군대는, 전쟁은 적들의 피를 먹고 자신을 키워가고 마침내는 자신도 감당하지 못할

자신의 칼날과 증오심에 먹은 피를 토하고 죽지만,

농사꾼은, 땀과 눈물의 거름으로 키워낸 곡식을 먹고 마침내는 자신도 땅의 일부가되어

자식들의 눈물과 땀을 거두어 드린다.

 

세상에 농사꾼이 전쟁꾼에게 지는 날은 이미 지구상에는 아무도 승리한 자가 없는 날인것이다.  아무도 살지 않는 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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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산을 사이에 두고 초록물이 흐른다.

산에서 하늘에서 나무잎에서 뽑아온 쪽빛의 강물이

하얀 모래를 머금고 흐르다가 굽이쳐 흐르다가

지친몸 잠시 쉬어가는 굽이에서 저들끼리 놀으라며 살며시 놓고 간다.

섬진강에 목숨줄기 닿아있는 뭇 생명도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다.

 

한 생명들의 세월이 흘러간다. 생명이 흘러간다.

덩달아 감옥에 갇혀있는 가엾은 내영혼도 흘러간다.

내 청춘이 흘러간다.

 

 

 

쑥국

 

고단한 몸에 봄을 붙는다.

한숟가락 가득히

진하고 은은한 향내음이

온 몸 가득히 봄기운을 채운다

 

 

 

봄 비

 

하늘에서 봄이 내린다.

따뜻한 물방울이 땅으로 내려온다.

총...총...총...

물방울은 부딪혀 사방으로 튀어간다.

봄이 사방으로 흩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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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여행

지난주말에 섬진강엘 혼자 다녀왔었다.

광주에서 구례를 거쳐 쌍계사로 갔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꽃구경을 하는 차들때문에

길이 엄청 막혔다. 교통 체증으로 버스가 쌍계사까지 올라가지 않아서 화개면에서 쌍계사까지 걸어서 올라가야했다.

 

 

 

쌍계사에 도착할 무렵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떄문에 많은것을 볼 수는 없었지만, 덕분에 입장료를 내지 않았다. 입구의 장승과 바위를 지나서 일주문을 지나가면 대웅전앞에 그 유명한 최치원이 쓴 진감선사부도비가 있다.

 


 


일반 사찰에서는 사천왕(절 들어가는 쪽에서 건물안에 있는 무섭게 생긴, 도깨비 밟고 있는 군상들)상은 많이 있어도 금강역사상은 보기 힘든데 쌍계사에서 볼 수 있었다.

 

 


화개면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평사리까지 걸어서 가기로 했다. 화개면에서 악양면으로 출발하면 화개면을 나서자마자 화개장터가 나온다. 이제는 옛영광은 사라지고 겨우 조그마한 장터가 남아있을 뿐이다. 그나마도 장터라기 보다는 관광특산품이나 웰빙바람의 차를 팔거나 군것질거리를 파는 것이 전부였다.

 

 

 

섬진강가에서 만난 동백꽃. 붉은 꽃이 눈물처럼 뚝뚝 떨어질 것이다.

 

 

 

섬진강은 산을 사이에 두고 흘러내려간다. 때문에 다른 강들과는 다르게 강가에는 그다지 넓은 규모의 평야가 없다. 강물은 유난히 맑고 강가의 모래는 유난히 곱고 희다. 강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섬진강에 와서야 비로서 알게 되었다.

 

 

섬진강가에도 어김없이 인간의 흔적은 남아있다. 그리고 어디서나 마찬가지겠지만, 인간의 흔적은 그리 아름다운 형태는 아니다. 하지만 섬진강은 그 인간의 흔적마저도 감싸안고 오히려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다.

 

 

섬진강가에는 버려져 있는 초가집들이 여러채 있었다. 강이 내려다보이는 이 초가집에서 잠시 쉬었다 갔다. 아마 예전에 주막이었나보다.

 

 

 

아침을 먹고 9시 30분에 출발한 발걸음은 평사리가기전 고소산성으로 향하였다. 12시 30분쯤 이른 점심을 먹고 고소산성에 올랐다. 삼국시대에 지어졌다는 이 산성은 평사리 뒤의 가파른 산을 타고 올라가야한다. 산성에서는 평사리의 들판이 한눈에 보인다.

 

 

 

평야가 드문 섬진강가에 거의 유일한 논농사 지역이 아닌가 싶다. 고소산성에 올라가는 길에서 내려다보이는 이곳이 바로 박경리의 토지에 나오는 평사리이다. 산성을 따라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마을에 내려가보면 드라마 토지의 촬영장을 개조해서 관광상품을 만들어놨다. 최참판댁과 평사리 주민들의 집이 세트장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심지어 입장료까지 받더라만, 고소산성을 넘어 뒷길로 온 나는 이번에도 입장료를 내지 않았다.





평사리에서 하동으로는 버스를 타고 왔다. 10km남짓되는 거리였지만 이미 너무 피곤한 상태였기때문에 걸어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아름다운 섬진강가에서도 안타까운 풍경들은 있었다. 밑의 사진들은 평사리에 남아있는 박정희의 흔적, 위의 두 사진은 하동송림 입구에 있는 풍경이다. 지켜달라고도 안했는데, 저놈의 해병대는 군대 다녀와서도 자신들이 어떤 특수한 계층이라고 생각하나보다.

 

 



하동에서 광양으로 넘어가는 섬진교 밑의 하동송림. 영조때 만들어지 이 소나무 숲은 방풍림의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소나무 숲안에 들어가면 섬진강과는 또 다른 세상이 열린다.

 

 



여행의 마지막 하동역. 하동송림을 보고나서 하동에서 목욕을 한 후 11시10분 기차를 타고 서울로 출발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보너스 사진. 사진찍는걸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는 여행을 할 때에도 거의 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지 않는 편이다. 하동송림과 기차안에서... 여러가지 효과를 첨부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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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사람들

오랫만에 밤이 새도록 즐겁게 놀았다.

덕분에 오늘은 몸이 무겁고 머리가 아프지만,

마음은 훨씬 가벼워지고 기분이 매우 좋다.

 

조백기 박래군이 석방되어서 기쁘것도 있었겠지만,

난 인권활동가들과 노는 것이 좋다.

사람들이 참 착하다. 이 사람들과 놀고 있으면

약골의 말처럼 술을 안마시고도 기분좋게 취하는 느낌이다.

난 인권활동가들이 착해서 좋다

박래군 조백기가 돌아온 기쁨도

그 사람들이 착한사람들이기때문에 더욱 배가 된다.

박래군의 오랜경험때문이 아니라

조백기의 박사학위(아웃팅된ㅋㅋ)떄문이 아니라

착한 사람들의 웃는 얼굴을 옆에서 볼 수 있기때문이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중에 똑똑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참 많다.

영어잘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참 많다.

그런데 착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많이 없다.

 

난 운동을 하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영리함도 아니고 민첩함도 아니고

예리함도 아니고 논리정연함도 아니고 착함과 꾸준함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맑스주의가 바꾸는 것이 아니라 착한 사람들이 바꾼다.

아무리 대단한 사상도 아무리 정교한 이론도 아무리 뛰어난 전술도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꿀수는 없다.

착한사람들만이 함꼐 더불어 사는 사람들을 바꿀 수 있다.

 

그래서, 결론은 어제 참 즐거웠다는 것이다.

즐겁게 술마시고 즐겁게 이야기하고 즐겁게 노래부르고

착한사람들이 웃으며 살 수 있는 세상이 좋은 세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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