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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2/05
    가엾은 내사랑 빈집에 갇혔네(1)
    무화과
  2. 2006/02/04
    아무것도 아닌 일(1)
    무화과
  3. 2006/01/28
    완전한 사랑(3)
    무화과
  4. 2006/01/27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3)
    무화과
  5. 2006/01/22
    지리산(1)
    무화과
  6. 2006/01/20
    지율스님과 함께, 내가 할 수 있는 일-자전거를 타자
    무화과
  7. 2006/01/18
    내 마음을 울린 글(3)
    무화과
  8. 2006/01/18
    전문가 나부랭이 따위가 되기는 싫어(2)
    무화과
  9. 2006/01/17
    상처(5)
    무화과
  10. 2006/01/17
    흐린겨울날
    무화과

가엾은 내사랑 빈집에 갇혔네

특별한 기억은 추억이 된다.

일상의 소소한 일조차도 특별한 기억이 되면

추억이 되고 그 기억의 영역에 다른 이들이 침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문득 채널을 돌리던 티비에서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이 흘러나온다.

나에게는 특별한 기억의 이 노래.

사실 이노래가 알려지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나에게만 특별했던 노래가 모든이에게 알려지고,

또 사랑받고, 또 특별해지는 것이 썩 기쁘지는 않았다.

나만의 추억의 영역을 누군가가 빼앗아버린 느낌이었다.

 

그리고 추억은 끊겼다.

추억으로 기억할 수 있는 아주 짧은 시간만이 나에게 남아있을 뿐이다.

벌써 세월이 꽤 흘렀지만, 내 추억은 그 시간대에서 멈추었다.

짧은 추억은 그 보다 더 긴 시간동안 그저 리플레이 될 뿐이다.

기억은 단절되었고, 추억으로부터 심지어 나는 아무것도 상상해나가지도 못했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다.

 

이제 추억은 아무래도 좋다. 추억할만한 기억의 단절 또한 아무래도 좋다.

그저 난 내가 그리고 모두가 웃는 얼굴로 남아있기를 바랄 뿐이다.

누구보다도 바로 나와 네가 웃는 얼굴로 남아있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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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 일

나는 나의 병역거부가 나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아닌일이 되기를 바란다.

무가치한 일이라는 뜻이 아니라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라

일상적인 성찰과 실천, 즉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도 병역거부를 어떤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그 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나의 삶은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은 나에게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특별하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요새 문득문득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감옥가는 것이 완전한 이별이 아니겠지만,

내 인생이 단절되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지나고보면 또 달라져 있을지 모르지만 2006년은

왠지 새해계획조차 못세우고 있는 올해는

나에게는 없는 년도로 인식되는 듯 하다.

 

그리고 괜시리 예전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원래도 과거에서 그다지 자유롭지 않은 인간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쨋든 아팠던 기억과 아름다웠던 기억과

사람들이 떠오르고 때로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차오른다.

 

사람들이 마구 보고 싶어진다.

나도 잘 알지 못하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

함께하면 즐거운 사람들,

1년 6개월조차도 타의로 떨어져서 살고싶지 않은

사람들이 보고싶어진다.

 

아무것도 아닌 일.

아무것도 아닌 일.

아무것도 아닌 일.

 

억지로 덤덤할 필요는 없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나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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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사랑

지리산에 내려갈적에 약간의 걱정이 불현듯 떠올랐다.

밤기차를 타고 내려가면서 우리는 지율스님을 걱정했다.

우리가 지라산에 가있는 동안이 어쩌면

이세상의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뭐 서울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을테지만.

 

지율스님의 사랑을 보면서

그리고 지율스님의 사랑하는 여러분들의

고귀한 글들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울컥 치밀어 오른다.

지율스님을 박근혜에 비교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율스님에게서 전태일을 보고, 예수를 보고, 석가모니를

보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과 나약하고 아름다운 인간됨이

지율스님의 사랑과 더불어 나를 울린다.

 

실로 스님은 완전한 사랑을 보내고 있는 인간이 아닌가 싶다.

사랑은 받는 자보다 하는 사람들이 배울것이 많다고 했나.

지율스님은 자신이 아닌 모든 존재를 자신처럼 사랑하고 있나보다.

무자비한 개발과 지독한 발전지상주의에 염증을 느끼면서도

천성산과 도롱뇽이 고속철도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산은 산이고 나는 나일뿐인데, 산과 함께 살려고 노력할 수는 있어도

산과 함께 죽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이 순간들이 많은 분들의 생각처럼 나의 마음에도

지율스님은 이 세상에 존재하되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닌것 같다.

세상에 존재하지 못하는 완전한 사랑을,

예수의 사랑을, 석가의 사랑을, 전태일의 사랑을

그렇게 우리와는 다른 사랑의 방식과 그릇을 가지고 있는 분이라고 느껴진다.

 

지율스님의 사랑앞에서

나의 보잘것 없는 실천과 이론과 사랑이

눈물겨워진다.

 

지율의 완전한 사랑앞에서...

나는 세상이 너무 슬퍼진다. 김곰치씨의 말대로 이 순간들은

지율스님이 세상의 모든 아픔을 흡수해서 완전한 사랑일지 몰라도

나는 왠지 너무 슬프다. 아프다.

이 슬픔과 아픔은 아마 지율스님의 사랑을 배우는 아주 조그만 대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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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지리산엘 다녀왔다.

얼굴이 약간 탔나보다.

아마도 눈덮인 산에 반사되는 햇빛때문이었을 것이다.

내 소중한 인연이 산사람이라면 놀린다.

 

천왕봉의 일출은 아쉽게도 보지 못했다.

구름낀 하늘은 일출을 못보게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지리산은 나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보듬어 주었다.

그 깊고 깊은 첩첩히 땅으로 내려앉은 자태로

그저 보듬어 주었다.

 

그리고 나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산에게도. 나에게도. 나의 친구들에게도.

 

그저 묵묵히 나를 보듬어준 지리산이

아름다웠고, 슬펐다.

사방을 둘러 오로지 산 밖에 안보이는

그 거대하고 웅장하고 세심하고

그리고 슬픈 역사가 울고 있는 그 산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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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지리산간다.

오늘 밤기차타고 내일 새벽부터...

이번겨울 남쪽지방에 내린 눈이 하나도

녹지 않고 있겠지.

산에 가면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어디다 잃어버린지도 모르는,

무엇을 잃어버린지도 모르는,

내 인생의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천왕봉 일출을 볼 수 있게 되기를...

 

2월달에는 죽도록 놀러다녀야지.

네멋대로해라 촬영지들을 꼬옥! 가보고

새만금도 가봐야지.

자전거타고 가봐야지.

그리고 오랜 친구들을 만나러 광주로 경산으로

다니다 보면 어느새 짧은 내 인생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겠지.

 

지리산 깊은 산 어느 계곡에선가

얼음속에 봉인되어 있는 나를 만날까봐

설레이고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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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스님과 함께, 내가 할 수 있는 일-자전거를 타자

30kg도 안되는 지율스님의 사진을 보고있으려면 자꾸 눈물이 난다.

지율스님을 아끼는 여러사람들이 각종언론에 쓴 글을 봐도 눈물이 난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지율스님의 외로운 단식앞에서

천성산개발을 막을 수도 없고, 지율스님을 다시 이세상의 삶의 영역으로

되돌려 올 수도 없는 내가 초라해서 눈물이 또 난다.

 

"지율스님만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소설가 김곰치씨의 말에

내가 있는 세상이 한껏 부끄러워진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지율스님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함께 보고 있지만, 지율처럼 천성산 더불어 삶과 죽음을

감히 상상하지는 못한다. 도롱뇽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도롱뇽이 살 수 없는

곳에서는 인간도 살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천성산이 개발되고 도롱뇽이 사라져도

우리는 잘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멀지 않은 미래의 재앙을 무시한채...

 

사실은 KTX가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와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은 도롱뇽이지 육중한 무쇠덩어리의 어마어마한

속도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단지 KTX는 빠르고 편할 뿐이다.

빠르고 편하기위해 우리는 다른 많은 생명을 빼앗고 있다.

근데 그 빠름과 편함이라는 것이 한 번 경험해보면 떨쳐버리기 쉽지 않다.

모두가 바쁜 이 시대에 느린 것은 자기 시간을 버린다고 생각되어 버린다.

자본주의와 물질문명이 준 달콤한 독약을 우리는 천천히 음미하고 있다.

이미 중독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좀 더 자세히 알아야한다.

빠르게 사는 것은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것이다.

남들보다 빠르게 일하고 바쁘게 일해야한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천천히 가면서 경치도 구경하고 사람들과 수다도 떨고

하늘과 바람과 산과 강을 벗삼는 일따위는 아무런 이윤창출이 안된다.

한시간이라도 아껴서 빨리가서 일하는 시간이 길어야한다.

심지어 이동시간자체도 쉬는 시간으로 놓아두지 않는다.

노트북과 핸드폰을 가지고 일을 하거나,

DMB나 미니게임기를 가지고 자본주의의 상품을 소비해야 한다.

 

느리게 사는 것. 그것이 가장 반자본주의적인 투쟁이다.

 

지율스님이 우리에게 온몸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도 같은 의미라고 생각한다.

지구생명공동체 전체의 파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자신이 만들어낸 기차와도 같은 이 멈추지 않는 자본주의의 멀지않은 미래를

경고하는 것이다.

 

지율스님의 단식앞에서 무기력하게 바라만 보고 있어서는 안되겠다.

언제나 그렇듯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본다.

대단한 사람이 아니어서 대단한 일은 할 수 없지만, 그렇기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또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는 일이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자전거를 타는 것이다. 이미 많은 자동차와 자동차들이 다니는 아스팔트가

있는데, 더 이상의 개발이 왜 필요한지를 자전거를 통해 이야기해야겠다.

또 빠르게 가기위해 다른 생명을 죽일 수밖에 없는 자동차 대신에

자전거를 타면서 내가 살고 있는 땅의 생김새를 관찰하고 그 주변의 풍경을 음미하며

길에서 만나는 인연들을 소중히하고 천천히 느리게 사는 삶의 행복함을 보여줘야겠다.

익숙해진 편리함을 던져버리면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편리함이란 사실은 고통을 망각하게 해주는 독약이라는 것을.

인간의 삶은 고통속에서 성숙하고 아픈만큼 성장한다는 것을.

 

그리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느리게 살고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지율스님의 앙상한 육신이 슬프도록 아름다워 보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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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울린 글

오늘처럼 일하기 싫은 날은(거의 대부분의 나날들ㅋㅋ)

해야할 일들 미뤄두고 딴짓거리 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던중 미뤄둔 일들은 다 해버리는것 보다 더 보람된 사간을

만끽하기도 한다. 마치 오늘처럼

 

녹색평론 2005년 11~12월호에 실린 이계삼 선생님의 글중에

나를 울컥하게 만드는 시들을 발견했다.

 

 

오줌이 누고 싶어서

변소에 갔더니

해바라기가

내 자지를 볼라고 한다

나는 안 비에(보여)줬다

                                -이오덕 지도, 경북 안동 대곡분교 3년 이재흠 1969.10.4

 

 

청개구리가 나무에 앉아서 운다

내가 큰 돌로 나무를 때리니

뒷다리 두개를 발발 떨었다

얼마나 아파서 저럴까?

나는 죄될까봐 하늘 보고 절을 하였다.

                                -이오덕 지도, 경북 안동 대곡분교 3년 백석현, 1969.5.3

 

 

내 어릴 적 못물골 골짝에 예닐곱살 먹은 일근이란 아이가 살았는데, 하루는 우리 동네로 놀러 나온 거야. 늘 산골에서 혼자 식구들하고만 지내다 보니 심심해서 나왔겠지. 동네 애들하고 비석치기 하다가 싸움이 붙은 거야. 못물골 일근이하고 우리 동네 춘근이하고. 어린아이들 싸우는 것 보면 몸으로 엉겨붙어 싸우기만 하는 건 아니잖아. 입으로는 온갖 욕을 다하잖아,. 그래 춘근이가 먼저 욕을 하기 시작한 거야. "야이 씨발놈, 개새끼야, 좆만새끼, 호로자석..." 이렇게 춘근이가 한바탕 욕을 끌어붓자, 멍하니 듣고 있던 일근이가 맞서 대거리한다는 것이 이러는 거야. "야이 참나무야, 대나무야, 밤나무야, 옻나무야..." 못물골 인근이는 그때까지 욕을 몰랐던 거지. 늘 보고 듣는 것이라고는 소나무, 대나무, 밤나무, 노루, 산토끼, 새소리, 몰소리, 바람소실 이런 것뿐이었으니까.

                               -구자행 할머니 구술, <삶을 가꾸는 글쓰기> 2001년 4월호에서

 

 

이 시와 이야기들의 주인공은 벌써 어른이 되어도 한참전에 되어서 지금은 어찌 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마음들이 내 마음을 울린다. 해바라기를 대하는 마음과, 개구리에게 미안해하는 마음과 죄될까봐 절하는 마음, 그리고 기껏 한다는 욕이 나무 이름인 마음.

정말이지 오랫만에 마음속으로 펑펑울었다. 울음속에서 깨끗해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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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나부랭이 따위가 되기는 싫어

KBS 시사집중인가 하는 프로에서 병역거부를 가지고 인터뷰를 하게되었다.

생방송으로 하는 프로인지라 바짝 긴장도 하였다.

스튜디오에는 이재승교수와 정창인박사 패널로 초청되어 있었다.

중계차가 우리 사무실에서는 전파수신을 못한다고 하여 광화문에 가서

인터뷰를 하였다. 인터뷰 시간은 대략 10분정도.

그런데 그 10분을 위해서 우리는 2시간 30분을 미리가서 기다려야했다.

'이 사람들이 활동가들의 시간을 똥으로 아나...'화가 치밀어오를 무렵

한 명이 와서 프로그램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스튜디오에는 전문가를 모시고 비전문가나 생활과 연관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인터뷰를 딴다고... 

 

안그래도 타오르고 있는 불꽃에 기름을 부었다.

아니 전문가와 비전문가라니...

내가 아무리 무식하기로서니(무식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나름 병역거부에 대해서

이야기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소위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공중파 방송에서 병역거부자를 강간범에 비유하는 무시한 언행은 하지 않는다.

활동가들이 교수나 박사님들보다 더 못할것이 없다. 오히려 현실속에서 직접 경험한

생생한 날 것의 체험들은 그 어떤 대단한 지식보다도 많은 것을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

교수님들은 인권의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평화주의 이론에 대한 뛰어난 지식을

자랑할 수는 있지만, 활동가들은 인권이 침해받는 현장에서 숨쉬고 평화를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단련한다. 교수나 학자들은 진리를 연구하면서 탐구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진리를 찾아간다. 자신의 연구가 삶과 동떨어지지 않은 사람은 교수나 학자이기 이전에

생활인이고, 학문적 성과 이전의 인간으로서 성찰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재승씨가 티비에서 병역거부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남들보다 지식이 조금 더 많아서가 아니라,

교수여서가 아니라, 병역거부자들의 인권과 평화의 문제를

삶속에서 함께 성찰했기 때문이다.

논리가 세상을 설득시키고 바꿀 수 있다고 믿겠지만, 진리가 인간의 논리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진리를 행하는 것이 오히려 설명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일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전문가는 사실은 능력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학위, 혹은 직위에 대한 생각일뿐이다. 제 아무리 박사라고 해도, 지 아무리 교수라고 해도

사람들은 결국에는 모르는 것 투성이고, 기껏해야 전공분야에 대해서

남들보다 조금 더 알 뿐이다.

비전문가라고 생각하는 특별한 직위나 학위가 없는 생활과 연관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들이다. 소위 말하는 전문가는 사실은 사기꾼에 불과하다.

부족하기 짝이없는(스스로는 꺠닫지 못하고) 지식나부랭이로 그 잘난 입으로

지식권력을 독점하며 뻥을 치고 있는 것이다. 권력과 관계없는 지식은 없다.

모든 지식은 특정한 권력의 이익에 봉사하게 된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과학자라고

칭송해마지않던 황우석이 어느날 사기꾼으로 돌변한 이 사건은 어쩌면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본질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에 의존하지 않는 세상이 좀 더 건강하고 아름다운 세상이다.

난 전문가 나부랭이 따위는 되지 않으련다.

병역거부에 대해서도 전문가 따위는 되지 않으련다.

대신 '그냥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서 살아가야겠다.

공부는 전문가가 되어서 남들에서 사기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들에게 속아넘어가지 않기 위해서 할 것이다.

먼저 알고 많이 아는 사람보다는 먼저 아프고 많이 성찰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전문가 따위의 이름은 그런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목걸이로

얼굴보다 크고 몸집보다 무거운 목걸이로 걸어줘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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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아름답다'의 어원이 '앓다'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들었다.

앓는 것은 스스로를 치유해가는 과정이다.

감기가 걸렸을 때, 열이 나는 것이 '아픈'것이 아니라 몸이 감기와

싸우는 과정이듯이, 앓는 것은 무언가 우리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일이다.

우리는 대체로 즐거운 상황보다는 아픈 상황에서 성숙하기 마련이다.

H2의 히로도 그랬다. 이기는 경기보다는 지는 경기에서 배울 것이 더 많다고...

 

또 어디선가 읽은 글귀가 생각난다. 아는 것은 상처받는 것이라고.

사랑이 끝날 경우, 사랑을 받는 사람보다는 사랑을 주는 사람이 더 상처받기 마련이다.

우리는 사랑을 받는 것에서보다는 사랑을 하는 것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사랑뒤 찾아오는 아픔은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한 대가인것이다.

사랑으로부터 배울바 없는 사랑받는자는 아플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인권활동가대회에서 약골과 경내씨와 이야기를 하면서

새삼 느끼게 되었다. 난 상처받지 않는다. 어쩌면 상처받기를 두려워한다.

난 눈물이 많은 편이었다. 친구가 나에게 붙여준 별명중의 하나는 '내마음은 물두부'였다.

언제부턴가눈물을 흘리지 않게 되었다. 아마도 그 이후부터 나는

상처를 잘 받지 않고 사실은 기대를 잘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있었고, 아픔을 겪지 않으려 노력하고

그것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배우지 못하였다.

 

크게 앓고 난 후 부쩍 아름다워져 있는 내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제 두려움의 문을 열어야 한다.

마음 속 깊이 숨겨둔 나조차도 속여버린 내 아픔을 울어준 그 사람의 마음으로.

그 마음을 다시는 모른척하거나 배반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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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겨울날

이렇게 흐린 겨울날이 좋다.

맑은 날 또한 내 마음을 환하게 해주겠지만,

맑은 날만 있는 세상은 끔찍하다.

우리 삶이 그러하듯이 흐린날도 있고,

또 사람들은 대체로 아픔속에서 성숙하고

흐린날에 나는 더 많은 성찰을 한다.

흐린하늘밑을 하늘하늘 발걸음을 옮기며

지나온 길들을 돌아보고 마주쳤던 사람들을 기억하며

스쳐간 사람들을 떠올린다.

 

지나온 길들은 나즈마한 언덕배기

나는 그 길을 슬프게 울면서 걸어왔다.

 

몇 일 전 만난 여러 사람들.

중의 한 명은 자신의 과거를 통째로 부정했다.

난 그 모습이 싫다. 싫든 좋든 예전과는 생각이 어떻게 변하든

그 때의 나도 나이고 지금의 나도 나이고.

지금이나 예전이나, 이제나 저제나 세상은 흐리고

내 마음 또한 흐린기운을 잔뜩 머금고 있다.

 

항상 즐거운 세상살이에

흐린날씨가 제법 어울린다.

 

흐린 날의 하늘밑을 걸어가는 기분은

슬프고 아름답고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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