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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1/17
    오랫만의 잔차질(4)
    무화과
  2. 2006/01/16
    인어공주의 슬픔(1)
    무화과
  3. 2006/01/16
    앉아서 오줌을 싸자(1)
    무화과
  4. 2006/01/11
    뒤늦게 2005년을 기억하며(1)
    무화과
  5. 2006/01/06
    사립학교의 추억(3)
    무화과
  6. 2006/01/05
    막말
    무화과
  7. 2006/01/05
    착각은 나의 힘(1)
    무화과
  8. 2005/12/30
    쉽지않은 문제(2)
    무화과
  9. 2005/12/26
    기분나쁜하루
    무화과
  10. 2005/12/23
    기동단이여,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라(4)
    무화과

오랫만의 잔차질

다음주에 지리산에 가기때문에 준비운동도 할 겸

내 무릎의 상태가 어떤지 체크도 할 겸

오랫만에 자전거를 탔다. 서대문에서 흑석동까지. 흑석동에서 온수까지.

사실 한달이 넘게 사무실에 세워뒀던 자전거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또한 머릿속이 온갖 잡념으로 가득차고 마음속이 답답하여

자전거를 타고 겨울바람에 다 날려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활동가대회 자전거방이 자전거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자전거에 대한 feel을 마구마구 불어넣었다.

 

오랫만에 잔차질은 몸을 고되게하여

내 몸안의 땀찌거기와 복잡하게 얽혀있는 생각의 타래를

삐질삐질 몸밖으로 배출해버렸다.

 

이제 남은 2006년의 시간을 되도록 많이 여행을 다니려고 한다.

어딘가 먼곳으로 가는 것 만 여행은 아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모든 곳은 여행이 된다.

한동안 만나지 못할 사람들과 하늘과 물과 익숙한 풍경들을

더 느끼고 싶다.

 

자전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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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의 슬픔

목소리가 돌아오지 않는다.

내 목소리는 원래 나의 트레이드마크였다.

난 원치 않았지만 사람들은 나의 허스키하고

언제나 쉬어있는 목소리로 나를 기억했다.

선천적으로 목이 약한지라 너무 무리해서 수술도 했었다.

그리고 수술이후에 대부분 인정하지 않지만,

딱 하루동안의 성시경을 거쳐서 다시 내목소리로 돌아왔다.

그래도 수술전만큼 목이 쉬어있거나, 자주 쉬거나 하지는 않는다.

 

인권활동가대회와 그 이후에 계속되는 술자리의 여파로

내 목소리는 수술하기 전의 목소리가 되어버렸다.

예전에 '인어공주의 슬픔'이란 제목으로 글을 쓴것이 기억난다.

 

잃어버린 내 목소리는 어쩌면

인어공주처럼 무언가 다른 것을 얻기위한 대가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물거품이 되어 사라질지도 모른다.

 

사실 생각해보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모두 그러한 거 같다.

난 완벽하지 않고 모든걸 가질 수 없다. 무언가를 위해서는

다른 무언가가 포기되어야 할 것이다.

군대를 거부함으로써 나의 신념을 지킨다면,

가족들의 마음을 아프하게 하는 것은 감내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역시 죽는 일 또한 모두 그러하다.

우리 모두는 사실은 인어공주처럼 사라진다.

죽는 것이 아니라 사라진다. 그리고 서서히 잊혀진다.

 

.

.

.

어쨋든 내 목소리!!! 얼른 돌아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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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서 오줌을 싸자

인권활동가대회에 다녀왔다.

3회대회는 많이 배우러 갔다면

이번대회는 많이 나누러 갔다.

그래서 일부러 준비팀에 참여해서 활동가 대회가

더 즐겁고 더 여유있을 수 있게 하려고 했다.

 

활동가대회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것을 나누고 많은 것을 배우고

그래서 쓸말은 너무 많지만

너무 피곤해서 귀찮은 관계로

딱 한가지만 써보자.

 

아마 '여성의 눈'으로 시간에 대안적인 픽토그램을

그리면서 나온 이야기일 것이다.

그리고 난 이제 앉아서 오줌을 싸야겠다고 생각했다.

뭐 소변기에서 앉아서 쌀 수는 없지만,

좌변기에서는 앉아서 싸야겠다.

서서싸는 것이 익숙할 뿐이었다.

그리고 나도 뭇 남성들도 알고 있다.

서서 싸면 오뭊이 주변에 많이 튀기도 하고 나중에 냄새가

나기도 해서 위생상 안좋다.

이제 항상 앉아서 오줌을 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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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2005년을 기억하며

원래 해가 가는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던지라...

요새는 년도를 표기할 때, 2005년이라고 실수를 자주한다.

사실 한달전과 지금이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리고 사는 것 또한 대단할 것이 없는지라,

물론 뜻밖의 대단한 일들이 찾아오곤 하지만,

해마다 찾아오는 것도 아니어서리.

 

나에게 2005년은 뭐 무난한 한 해였다.

무난하다는 것은 아무일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4년부터 시작한 전쟁없는세상에서의 활동이

더욱더 안정을 찾아갔고,

나 또한 병역거부운동을 2004년과 다를 바 없게 했으니.

더 바쁘긴했었지만. 2004년 채식을 시작한것도

2005년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것도

나에게는 그다지 큰 의미를 가지지는 않는다.

뭐 사는 것이 특별할 수도 있지만,

그것들이 내 일상이 되기를 바라기때문에.

 

그래서 지금 내 몸에 가장 큰 흔적을 남긴 2005년은

교!통!사!고!

 

지금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교통사고의 후유증.

과연 내 무릎은 사고전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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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학교의 추억

1.

 

전학을 많이 다녀서인지 초중고 그리고 대학까지 총 9개 학교를 다녔다.

그중 5개가 국공립이었고, 나머지 4개가 사립이었다.

5개는 모두 초등학교였다.

나의 기억속에서 초등학교까지는 국공립과 사립의 차이는

평범한 아이들과 잘사는 집 아이들의 차이였을 뿐이다.

교복을 입고 스쿨버스를 타는 것은 사립학교아이들의 특권이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사립과 국공립의 차이는 전혀 인식되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선택해서 가는 것도 아니고 등록금의 차이가 있는것도 아닌데,

게다가 사립에서 국공립으로, 혹은 국공립에서 사립으로의 전학도 가능했다.

대학은 사립과 국공립의 차이는 등록금의 차이였다.

보통 각 지역의 국공립 신입생들의 수능점수가 높은 것은 사실이나

나에게는 국공립의 가장 큰 특징은 저렴한 등록금이었다.

내가 선생님이 되어보지 않아서 모를수도 있지만,

선생님들에게도 사립학교와 국공립학교 모두 별차이가 없을거라 생각된다.

대학교와 초등학교는 다르겠지만,

중고등학교에서는 아이들과의 만남에 있어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2.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중학교와 같이 있었다.(두 개 모두) 그 중 하나는

내가 그 학교에 전학가기 한 해 전인가 두 해 전인가 돌아가신,

아니 그 때도 살아있었나? 어쨋든 그 이사장의 아들이 교장이었다.

기억이 확실하진 않지만 중학교 교장도 그의 일가 친척이었다.

뭐 김일성의 아들인 김정일이 국가권력을 세습하고

이병철의 아들 이건희가, 이건희의 아들 이재용이 경영권을 세습하는

사회이니 그것은 익숙한 풍경이었다. 제기랄.

 

내가 2학년 때 영어선생님 한 명이 새로 부임했다.

학원선생을 하다가 학교에 오게된 사람이었다.

아이들 사이에선 진짜인지 거짓인지 모를 이야기가 떠돌았다.

2천만원내고 들어왔다. 아니다 3천만원이다.

뭐 우리 학생들의 정보력으로 진위를 파악할 수 없었지만,

어쨋든 돈을 바치고 학교에 들어왔다고 하는 소문이 충분히

사실로 느껴질 수 있을정도로 그런 일들은 비일비재하였다.

 

3.

 

제주도의 사립학교들이 신입생배정을 거부한다고 한다.

어허 이런. 그들도 부당한 국가권력에 맞서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인가?

그들도 양심에 따른 거부자들인가?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가진것을 버리진 않는다.

오히려 가지고 더 가지기 위해 앙탈 부리는 것이다.

그들중 누구가 감옥에 갈 것을 감내하고라도 신입생배정을 거부하겠는가.

싸가지 없는 새끼들.

 

4.

 

내가 마지막을 졸업한 사립학교를 같이 다니던 내 친한 친구가 이번에 졸업한다.

그이는 먹고 살 걱정과 함께 청소년 운동을 하고 싶어한다.

원래 예전부터 청소년운동에 관심이 많고 실제로 많은 활동을 해오던 친구다.

청소년들이 귀찮기만한 나로서는 정말 존경스런 친구다.

갑자기 그 친구가 생각이 나고 그 친구가 너무 소중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소중한 존재이다.

국회마저 마비시킨 사립학교를 둘러싼 논란에서 당사자인 청소년들의

의사는 어느새 묻혀있다. 사립학교법을 둘러싼 논란을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개정에 따라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청소년들이 당연히 논의의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 청소년운동이 정말 필요하다.

 

5.

 

아쉽게도 난 청소년이 아니다. 그리고 난 그다지 청소년들에게 관심이 없다.

물론 지금 내가 다시 학생이 된다면, 각 학교에 있는 철조망(땡땡이 못치게하려고

담에다 박아놓은)들을 끊고 다닐텐데, 이런상상은 해보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어차피 나는 나의 생활을 기반해서 살아가는

것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하는 것이 운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모르겠다.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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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

난 때로 말을 너무 쉽게 해버린다.

내가 감정이 무디게 때문에

남들이 상처받는 부분에서

잘 상처를 받지 않아서일까

생각하지 않고 내 뱉은 말들이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또 나는 후회하고 후회하고 후회한다.

바보같이.

언제나 미안할 짓 하고 미안해한다.

바보같이.

이미 저지르고 미안함은 무책임이다.

그래도 미안하다.

바보같이 나는 아직도 바보같이 살고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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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은 나의 힘

착각은 상상에서 시작된다.

나의 희망은 속세에 속하지 않은 상상을 타고

나래를 펼쳐간다.

때론 너무 멀리 날아가버릴 때,

현실은 존재하지만, 상상을 통해서 인식이 된다.

난 착각 속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내가 만든 희망과 내가 만든 착각 속에서

현재의 삶은 행복하게 살아지고 있다.

 

그러다 행복한 희망이 착각임을 알게된다.

대부분의 착각은 사실 원래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법으로 이어져오던 나의 행복이여!

현실을 인정하는 것과

행복을 연속하는 것 사이에서

나의 사랑은 나의 소원대로 슬픈사랑이 된다.

 

희망을 가지고,

행복을 느끼고,

착각임을 깨닫고,

비극과 희극이 교차하며

나의 삶은 아름답게 살아지고 사라져간다.

 

착각을 깨달았었어도 슬퍼지지 않기위해

나에게 거는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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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않은 문제

관계...

나는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것일까?

하지만 싫다.

내가 상처받기. 내가 지치기.

그래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되어지는 관계에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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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나쁜하루

가끔씩 기분이 아주 안좋아질 때가 있다.

뭐 여러가지 이유에서 기분은 안좋아질 수 있다.

이유가 중요하기 보다는 기분이 안좋다는 사실 자체가

짜증스런 상황이 된다. 지금이 그렇다.

 

이럴 때는 대체로 아무 것도 하고싶지 않아진다.

할 일은 엄청 쌓여 있는데,

결국 하나도 못하고 하루가 지나갔다.

왠지 일 하기 싫은 것을 기분 핑계 대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쨋든 이럴 때는 시간이 빨리 가버리거나

 

만나면 기분좋아지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그런 추억들을 여행해야 한다.

 

빨리 잠이나 자자. 잠도 안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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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단이여,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라

 

오늘아침 기동단과 특수기동대 정문앞에서 기자회견이 있었다.

인권활동가들을 앞에두고 문 저쪽의 기동단은 "맞을만 하니까 맞았지"

등등의 상식이하의 태도를 보였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다가 갑자기 찬바람이 머리를 스쳐가며

문득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아마... 적어도 그들 중의 하나는...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있을거라는

당연하지만 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는 전제에서 생각은 시작되었다.

인간의 마음은 인간으로서의 양심을 자극하고 인간답지 못한 행동을

거부하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조금씩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누구도 오태양을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리고 국가의 의무를 거부하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지만, 그것은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우리는 그 누구도 강철민을 상상하지 못했지만,

군인이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또한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담 농민들을 무자비하게 때려죽인 그 기동단놈들 중에도

그래도 인간의 마음을 가진 자가 있다면, 그 또한

부당한 명령에 거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이에 생각이 미치자 기동단 안에서도 부당한 명령에 거부하는, 이를테면

시위해산을 넘어서서 시위대에 대한 무차별한 폭행의 명령에 항명하는

병역거부자를 상상하게 되었다.

물론 지금의 기동대 안에서, 사람죽여놓고 "맞을만 하니까 맞았지"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에게서 기대할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혹시나 기대한다. 혹시나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박래군선배의 말대로 그들은 진정 그들이 저지르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는

인간으로서 가지는 기본적인 권리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면 가르쳐주자. 집회때마다, 그들을 만날때마다, 그들을 접촉할때마다

당신들이 하고 있는 짓거리가 무엇인지를, 당신들이 가질 수 있는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권리에 대해서, 오태양과 강철민이 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물론 말하기도 전에 나는 그들에게 두들겨 맞을 수도 있지만

그리고 너무 무섭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


물론 가장 큰 책임은 더 큰 구조속에서 국가권력이 가지는 폭력성과

대한민국경찰이 가지는 야만성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어떤 잘못된 구조도 구조에 협조하는 사람들이 없으면 작동하지

않는 다는 것을. 바꿔말하면 때로는 불의에 저항하지 않는 것이

불의를 키워간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그저 상부에서 시켰다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개인의 책임에서 용납될 수는 없다.

나치의 명령에 따라 유태인을 학살했던 병사들에 대해서 유죄를 선고했던

그 유명한 뉘렌베르크원칙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 항명의 '죄'가 아니라,

부당한 명령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인간에 대한 '죄'인 것이다.


그리해서 저들에게 알려주자.

저들이 저지르고 있는 범죄는,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시위 진압은,

항명죄보다 더 막중한 인간에 대한 대죄라는 것을.


또한 알려주자

당신들은 군인이기 이전에 인간이고, 명령에 대한 복종 이전에

인간에 대한 존중을 마음속 뿌리깊게 담아두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저들로 하여금

다시 인간의 마음을 회복한 자로 하여금

이제 불의에 순응함으로써 불의를 키워가는 것을 거부하도록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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