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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텍알씨디조합원.. 전원 산재 불승인..

2002년 임단협 때부터 본격화되었다는 사측의 탄압.

40여일에 이르는 지회장 단식.

조합원들만 골라서 6개월 여 공격적 직장폐쇄.

(이 기간 동안 조합원들은 회사 안에서 물도, 밥도 먹을 수 없었다.)

설 연휴 앞두고 5명의 조합원 부당해고.

(노조가 있음에도 비조합원과 사측이 노사협의회를 만들고 2개월 밖에 안 된 관리자가 징계위원회를 열어 10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세 개의 생산라인 중 가운데에 조합원 라인 꾸리고 양옆에서 감시케 함.

CCTV 설치.

관리자들이 수시로 감시하며 작은 꼬투리만 잡아도 소리 지르고 도발함.

지노위, 중노위에서 복직판정이 났음에도 사측은 불이행.

...

 

4년차에 이르는 고된 투쟁 속에 해고자 5명 포함 13명의 조합원들 모두 '우울증을 동반한 만성 적응장애'라는 정신질환을 앓게 되었다. 지난 5월 10일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조합원 감시와 차별로 인한 집단정신질환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서를 접수했다.

 

산재신청 처리 기간은 7일.

 

그러나 그 기간을 훨씬 넘긴 27일 저녁,

오전부터 근로복지공단 앞 보도블럭에 자리깔고 땡볕아래 기다린 조합원들에게 돌아온 대답은 '전원 불승인'이었다.

 

 



하이텍알씨디코리아는 서울에서는 꽤나 유명한 장투사업장이다.

참세상 속보에 목요집회를 알리는 글이 꾸준히 올라와 이름은 들은 터였다.

그러다 지난 3월 현장활동가대회에서 김혜진 지회장이 발언하는 것을 들으면서부터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자근자근하지만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말하던 키작은 여성노동자.  

하이텍공대위 기자회견에 굳이 촬영하러 가겠다고 나선 건,

실은 그녀에 대한 호감에서였다.

그 날 두 명의 조합원을 인터뷰했는데,

두 분 다 감시로 인한 고통, 비조합원과의 차별로 인한 고통 등을 눈물로 호소했다.

'왜 노동자가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데 미쳐가면서 해야 하냔 말이예요'

 

조합 사무실에 한 번 찾아가고, 현장조사 때도 쫓아간 데다

조합원이라고 해야 13명 뿐이어서, 금방 얼굴을 틀 수 있었다.

10년 이상씩, 하이텍 노조 역사 18년을 함께 한 노동자들은

동네에서 쉽게 마주칠 법한 유순한 인상의 아주머니들이 대부분이었다.

연민이 생겼다.

이 분들은 4년을 한결같이 싸워왔고, 함께 아파하고 있었다.

 

자문의사협의회는 26일 근로복지공단 관악지사 8층 회의실에서 열렸다.

좁은 복도에 옹당옹당 모여앉은 조합원들은

시작도 전에 긴장감을 이기지 못 하고 울기 시작했다. 

한 명씩 불려갔다 올 때면, 조합원들은 자문의사들의 태도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디귿자로 둘러앉아 몸은 삐딱하게 하고서 과자 씹으며 '편안하게 말씀하시라'....

'요즘은 어디에나 cctv가 있는데 신경 안 쓰면 되지 않느냐' 하는 무지한 질문.

과거 병력에 대해 집요하게 캐물으면서 가뜩이나 위축된 조합원을 더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막판에는 시간이 없다고 두 명, 세 명씩 불러들이고..

 

협의회가 종료되고, 공대위는 공단 측에 자문결과를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부족함이 있다면 좀더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혹여나 추후 공단에서 자문결과를 뒤엎을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정보공개요청 절차를 따로 밟았지만

지사장까지 나와서 '나를 죽여도 못 보여준다' 막말을 하며 거부했다.

보상부장이라는 자는 행정처분(결과통보) 이후에 이의제기를 하던 행정소송을 하던 알아서 하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6시가 지나면서 연대집회 하러 온 대오도 8층으로 올라와 복도는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꽉 찼다. 그러나 어떠한 정보도 공개되지 않았고, 연대대오는 자문의사들이 불안해 한다고 해서 엘리베이터에서 저만치 물러나야 했다.

아무도 위협하지 않았다. 복도에서는 크게 떠들지도 않았다.

긴장하다 못해 탈진한 조합원들이 있을 뿐이었다.

 

27일 아침, 조합원들은 경찰에 의해 공단 출입을 저지당했다. 공단에서 시설보호요청을 했기 때문이란다. 경찰은, 감시로 인해 정신질환을 겪게된 조합원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어 채증을 했다. 오후에 현장으로 찾아갔을 때, 한바탕 하고 난 조합원들은 이미 녹초가 되어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누워 있었다.

 

몇 차례의 면담 요청, 10시간 가까운 기다림 끝에 들려온 대답은,

전원 산재 불승인.

 

상황보고를 위해 불려나온 공대위 의장은 말을 잇지 못 하고 금속연맹 산안부장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헌신했던 수습노무사는 결국 눈물을 보였고, 담당노무사의 실망과 좌절은 말할 수 없이 컸다.

 

한 중국집에서의 늦은 저녁 식사.

조합원들은 되려 노무사를 격려했다.

노무사님 화려한 경력에 우리가 누를 끼친 거 아니예요? 농을 치며..

누군 되고 누군 안 되느니 차라리 잘 됐다, 우린 늘 탄압만 당해 왔다 별 기대 안 했다 괜찮다, 위로를 할라치면 놀랄만큼 담담한 반응이 나왔다. 아들이 죽는 꿈을 꿨다며 한없이 눈물을 흘리던 조합원조차 결과를 듣고서는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지회장은 면담 차 올라갔다가 8층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단다.

그런데 아래를 내려다 보니 조합원들 모습이 보여서 정신을 차렸단다.

헤어질 때 서로서로 안아주며 격려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40대 언니 조합원들은 지회장이 혹시 무슨 일이라도 낼까 걱정하고,

지회장은 그런 조합원들이 있어주어 마음을 다잡고..

 

연대올 만한 대오가 죄다 울산에 간 터라

거진 그녀들만의 외로운 투쟁을 하고 결과마저 절망스러운 날이었지만,

그녀들은 그 절망을 안으로 삭힐 뿐 표현하지 않았다.

내일도 출근해서 하하호호 웃어줄 거랜다.

지회장은 케익이라도 사들고 갈까요? 하며 웃는다.

 

어디 마음이야 편켔냐마는, 그렇게라도 웃어주어 고마웠다.

 

하이텍 자본의 노동탄압은 삼성에 버금간다면 서러울 수준이다.

그 끔찍한 과정을 견뎌내며 노조를 지키고 있는 13명의 여성노동자들에게

연대와 격려의 박수를 쳐주고 싶다.

 

산재 불승인은 그녀들의 투쟁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 할 거다.

그만큼 그녀들은 강하니까.

다만 이후에도 계속될 투쟁에 더 많은 동지들이 연대했으면 좋겠고,

그리하여 그녀들의 투쟁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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