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04/11

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4/11/30
    율스만의 사진(2)
    ninita
  2. 2004/11/29
    난쏘공을 다시 읽어야겠다.(6)
    ninita
  3. 2004/11/27
    추운 겨울이 더디 오기를.(2)
    ninita
  4. 2004/11/23
    Burhan Karkutli의 "혁명의 판화"(6)
    ninita
  5. 2004/11/23
    마르셀로의 서명지(5)
    ninita
  6. 2004/11/20
    어미는 50 먹은 아들을 걱정하고.
    ninita
  7. 2004/11/07
    시와
    ninita

율스만의 사진

 

율스만의 사진엔 제목이 없다.

 

호명되지 않으면 의미있는 존재일 수 없다고 노래한 시인이 떠난 밤,

존재가 지워졌으며,

또한 제목이 없음에 누구도 호명할 수 없는 사진을 보며,

희미하게 흥을 느낀다.

 

그런 밤이다.

 

_ 싫다.

 



굿 윌 헌팅을 보면.... 로빈 윌리엄스가 맷 데이먼한테 하는 대사가 있다.

 

_ it's not your fault.

 

_ 네 잘못이 아냐.

_ 네 잘못이 아냐.

_ 네 잘못이 아냐.

 

로빈 윌리엄스는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한다.

 

_ 네 잘못이 아냐.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누군가 내게 _ 네 잘못이 아냐, 라고 말해줬으면.

 

피식.

아무리 짱똘을 굴려봐도 소용없다.

 

_ 내 잘못 맞다.

 

젠장.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난쏘공을 다시 읽어야겠다.

몇 줄만 떼어낼 수 없었다. 평생을 세상과 반목해 왔다는 사람. 어설픈 화해가 자꾸 회자되는 요즘, 그의 존재를 되새길 수 있어서 기뻤다.

 

 

"노동자들 신음소리에 숨이 막힌다" / 이문영 기자

(사진 클릭하면 레이버 투데이 기사로 넘어갑니다.)



이틀 만에 집에 들어와 난쏘공부터 찾았다.

2000년에 새단장하고 나왔을 때 구입한 건데,

지금 보니 이런 말이 적혀 있네.. 훗..


 

나로서는 꽤나 공들여서 또박또박 쓴 글씨다..

요즘은 저렇게 글씨 안 쓰는데...

 

4년 전에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는 기억 안 나는데..

그 때도 깨어있는 사람이고 싶기는 했나보다..

 

아직도 그렇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추운 겨울이 더디 오기를.

(각 사진 클릭하면 관련영상 플레이 됩니다.. 짧은 영상들이니 꼭 한 번씩 봐 주세요..)

 

 photo by 풀벌레

 

- 비정규직노조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스무명에 달하는 비정규직 분들이 머리를 밀었다. 그 날은 날이 푹하더니, 하루만에 한겨울이 와버렸다. 삭풍이 불지 않기를. 이 비정규직 노동자들, 머리 시리지 않게.. (삭발 촬영은 어렵다. 그리고 늘 슬프다. 촬영:나, 편집:허경)

 



 

 

- 이 네 명의 노동자가 국회 옆 공사장의 고공 크레인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크레인에 오르기 전, 그들과의 인터뷰. (촬영:김미례 편집:허경)

 

 

- 지지 방문 왔던 이들은 연행됐다가 곧 풀려났다. (촬영, 편집:허경)


모질고 찬 겨울의 시작이다. 또 이렇게.

박대규 위원장이... 총파업 1일차 무대 위에 올라와, 여느 때처럼 고래고래 외쳐댄 발언 중에...

여러분과 똑같은 몸을 가진 사람들이 45미터 크레인 위에 올라가 있다, 그런 얘길 했다..

 

저 크레인에 올라간 사람들은, 유난히 추위를 덜 타는 사람들도, 유난히 담력이 강한 사람들도 아니다..

그냥 나처럼 추우면 어깨를 옹송거리고, 높은 곳에 올라가면 아래를 잘 내려다보지 못 하는, 보통 사람들일 뿐이다..

 

그런 그들이 크레인에서 어둡고 추운 첫 밤을 보내고 있다.

 

네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고공크레인에 올라가 있다는 거, 한순간도 까먹지 말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Burhan Karkutli의 "혁명의 판화"

 

from. 바끼통


다들 자기 일상에 젖어 즐기면서 잘 살겠지. 다들 이라크에서 죽고 있는 우리 생각 따위는 하지도 않고 밤마다 두 다리 쭉 뻗고 잘 자겠지. 정부에게 압력을 줘서 철군 시킬 생각 같은 건 하지도 않겠지. 이라크에서 죽고 있는 사람들은 그저 ‘나쁜 종자’들일 뿐이고 절대 죽이는 게 아니라 해방 시키는 거겠지. (from. 전범민중재판)

 



캐테 콜비츠

 

 

오윤

 

 

 

최병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마르셀로의 서명지

올해 노동영화제 개막작 감독, 마르셀로 안드라데.

열정적이고 혁명에 대한 신념이 또렷한 이 미디어 활동가는,

한국에 와 있는 기간 동안에도 참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었다.

 

세미나와 토론회 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 농성장에도, 전범민중재판 실행위에서 준비한 만민공동회 자리에도 나타나,

우리의 투쟁을 공유하고 싶어했고,

연대의 수사학을 넘어 joint rebellion을 호소했다.



그리고 나에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한국 일정 막판에 이르자 꼬깃해져버린 서명지다.

 

지난 10월 12일은 베네수엘라 정부에서 지정한 '선주민 저항의 날'이었다.

이 날, 볼리바르 혁명은 미완의 혁명이며 여전히 진행형이라고 믿는,

마르셀로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식민주의, 제국주의의 상징인 콜럼부스 동상을 무너뜨렸다.

차베스는 이를 두고 말 안 듣는 아나키들의 소행, 쯤으로 폄하하며,

마르셀로의 세 명의 동지들을 체포했다.

 

(아직까지는 차베스가 민중 권력에 대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라고 믿기 때문에, 국가 권력 기구, 관료제가 적이지 차베스가 적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마르셀로는 동료의 말을 빌어 차베스의 이러한 정신분열을 두고 '혁명의 비극'이라 말하기도 했다. 대중 연설을 할 때는 모두 점거하라!고 말하면서, 정작 점거를 하고 나면 정부의 노선을 따르지 않는다고 체포하는 이런 아이러니.

액트 원고 때문에 12일 이후의 몇몇 글을 찾아보다가, 차베스 정권과 민중 사이에 친밀감과 긴장감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좀 헷갈렸는데, 문제가 뭔지 명확해졌다.)

 

마르셀로가 어딜 가나 들고 다닌 그 서명지는,

바로 이 동지들을 석방하라고 요구하기 위한 것이다.

듣자 하니 지난 금요일에는, 그나마 괜찮은 판사가 우익의 폭탄 테러로 사망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한다. (만민공동회에서 그 소식을 전하던 마르셀로의 표정은 정말 어두웠다.)

 

이 사진을 클릭하면, 아직 푸에르토리코 인디미디어에 얹혀 있는 베네수엘라 섹션으로 넘어간다. 페이지 중간쯤 이 사진이 있는 기사의 끄트머리에 가면 [English]: Sign Petition for the Release of the Prisoners 온라인 서명을 할 수 있다.

 

joint rebellion과 autonomous라는 말을 쉼없이 쓰던 이 활동가를 오래도록 잊지 못 할 것 같다. 그가 토해냈던 열정적인 문장들과 그것을 통해 쏟아져나온 나의 고민과 화두를 정리할 시간도 필요하고, 내가 선 자리에서 실천하고 행동하는 노력도 필요하고...

 

아. 그런데 요즘은 입에 한숨을 달고 산다. 왜 이렇게 일상이 뻑뻑한 걸까. 즐거워야 하는데 말이다. 사실 즐겁긴 한데, 빡빡해서 탈이다. 당장, 마르셀로는 콜럼부스 동상 뽀갠 거 관련 기사를 써달라는 요청도 했는데, 그조차도 못 하고, 대신 블로그에 끼적거리고나 있으니..

 

어쨌든 마르셀로 안녕, 잘 가요. 몇 시간 뒤면 떠나겠군. 조만간 UT-FPL(파차메리카 해방을 위한 어떤 전선) 프로젝트가 상당히 진행되어서, 파차메리카 대륙에서 제작된 다큐 시리즈를 볼 수 있으면 좋겠네.. 

무너뜨린 동상을 열심히 밀고 있는 두 사람 중 왼쪽 빨간 옷이 마르셀로.

 

(토론회 기사 : 해방의 집단적 의식을 키워가는 프로젝트)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어미는 50 먹은 아들을 걱정하고.


 

빈민대회 때 내 눈에 밟힌 할머니들..

당신의 삶은 어떠하였길래, 손이 다 저렇게 곱았을까.

날바닥의 추위 가리는데, 당신께는 저 얇은 스카프면 정말 충분한 것일까.



의정부 지역 노점상들에 대한 용역들의 폭력 철거가 심각하다는 얘기는 빈민대회 때 들었다.

나이 6,70 먹은 노인들한테도 폭력을 휘두르고 그랬단다.

그저께는 노점상인들이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긴급구제를 요청했다.

거기에 다녀온 동료 기자가 쓴 기사를 읽고 있자니, 이 문장이 눈에 들어와 박혔다.

 

"의정부 지역 노점상인들은 지난 달 28일 부터 의정부 동부광장에서 천막 농성 중이다. 이들은 깨진 머리와 멍든 몸뚱이보다도 앞으로 살아갈 걱정이 더 컸다. 박금녀 씨는 “장사를 못해 오십 먹은 장애인 아들을 굶기고 있다. 불법이라고 매 맞고, 물건 다 빼앗기고, 이제 무엇을 하고 살라는 말인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http://media.jinbo.net/news/view.php?board=news&id=31414

 

칠순의 어매가 몸이 편치 않은 오십 먹은 아들이 배를 곯고 있어 걱정이란다..

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빈민대회 때 내가 보았던 저 손이 곱은 할매일까, 스카프가 얇아 뵈는 저 할매일까,

박금녀 할머니는 그런 할매일 터였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시와

* 이 글은 시와님의 [시와]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사막은, 늘, 그리운 곳. 




꿈 같은 기억이 되어버렸다.

 

이집트. 나의 첫 여행지..

 

그리고 시와. 오아시스가 있던 사막. 태양과 바람, 모래만이 있던 곳.

 

매일같이 무언가 봐야만 할 것 같던 초보 여행자의 강박관념을

완전히 털어내 버리도록 했던 곳.

 

나는 이제 여행지에서 시간을 잊는다.

(때로 여행자의 의무 - 멈추었다가도 곧 떠나가야 하는 - 를 잊을 정도로.)

속도감과 의무로부터 벗어나,

내가 당도한 어떤 공간에 원하는 만큼 잠겨 있으면 그 뿐.

인도 여행이 그랬고, 앞으로 내가 할 모든 여행은 그런 식일 거다.

 

시와는 아주 우연찮게 찾아간 곳이었다.

예상과 달리 하루의 여유가 생겼고, 어디를 갈까 망설이다가 막판에 정한 곳이었는데.

사막에 대한 갈망 따위, 그 때만 해도 갖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사막에 갔을 때.

그 부드럽고도 시원한 모래에 발을 담궜을 때.

그리고 부드럽고도 시원한 바람에 온몸을 맡겼을 때.

 

사막은,

내가 평생을 그리워 할 대상이 되고 말았다.

 

농반 진반으로 내년 여름엔 몽골에 가겠다고 말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다시 떠난다면,

어느 틈에 키워버린 내 안의 환상이 산산이 조각나 버릴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괜찮다. 슬퍼하지 않는다.

 

그리움이란 그런 거니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