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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물든 날에 열린 겉치레 선거

피로 물든 날에 열린 겉치레 선거
Hollow Election Held on Bloody Day
Inter Press Service. 2005. 1. 30
Dahr Jamail

 

두 명의 미국인가 다른 네명을 죽게 한 바그다드 미대사관에 대한 전날밤의 로켓공격은 투표일의 분위기를 결정지었다. 하루동안 적어도 29명이 투표소와 투표자에 대한 공격에서 죽었다. 7시에 투표소가 열리고나서 한시간 후 박격포 공격소리가 수도에 울려퍼지기 시작했고 시시각각 공격이 이루어졌다.

대부분의 이라크인들은 저항세력들이 “거리를 피로 씻을 것”이라고 위협한 이후 집에 머물렀다. 바그다드 서부 몬수르 지역 보안검문소에서 자살폭탄공격은 경관 한명을 죽게 했고 두명을 부상당하게 했다. 폭발물을 몸에 찬 한 남자는 바그다드 사드르시티에서 스스로를 폭파해 자신과 적어도 다른 네명을 죽게 했다.
투표하려던 많은 이라크인들은 바그다드 시내에 울리는 총성때문에 집에 있었다. 하루 종일 투표소에 대한 박격포 공격이 있었다.
32살의 아흐메드 모하메드는 “어제 자전거폭탄이 이웃의 누군가를 죽였다. 이 부당한 선거에 절대 투표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투표하려 했더라도 이런 조건에서는 나갈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엄격한 보안조치 때문에 폭탄공격 희생자를 구조하러 달려가던 일부 앰뷸런스조차 보안검문소에서 돌려보내 지기도 했다.

고등학교 영어교사인 라일라 압둘 라흐만은 “바그다드는 선거가 아니라 전쟁을 치르는 것 같다. 거리는 탱크와 병사들로 가득하고 다리는 폐쇄되었다. 우리가 듣는 것이라곤 폭탄소리이고 지난 이틀밤동안에는 지속적인 전투가 있었다. 이 끔찍한 치안상태에서 선거는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에 선거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바그다드 전역의 공격에 이은 저항세력의 위협은 투표를 확실히 감소시켰다.
바그다드 주민 압둘라 하미드는 “집을 떠나기도 너무 무서운데 이것을 어떻게 민주주의라 부를수 있는가. 이러한 폭격때문에 여기서는 투표가 물론 낮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힐라, 모술, 키르쿠크, 바스라, 바쿠바에서도 연속적인 폭격이 보고되었다. 사마라에서는 미군 정찰차가 노상에서 폭파되었고 보도에 따르면 거기 거리에서는 투표자도 경찰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사마라 지역의회의장 타하 후사인은 “이런 치안상황에서는 사마라에서 아무도 투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기자에게 말했다.
미국이 임명한 과도정부의 총리 아야드 알라위는 일요일에, 계엄령이 한달 더 연장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선거가 치안과 안정을 가져올 것이라는 많은 이라크인들의 희망은 계속 희미해지고 있다.

쿠르드 통치하의 이라크 북부의 투표와 시아파가 지배적인 남부지역의 투표는 높았으나 수도의 대부분의 투표소와 이라크 중부지역은 상대적으로 텅비었다.
치안때문이 아니라도, 많은 이라크인들은 이 선거의 정당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때문에 투표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그들은 원칙이 잘못되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브레머(전 미점령행정처 행정관)에 의해 임명되다. 그런데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우리가 정당한 선거를 가질수 있겠는가”라고 바그다드 카라다지역의 사바 라흐와니가 말했다. “이 선거는 점령자들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지 이라크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는 부시를 위한 정치선전일 뿐이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토요일의 주간 라디오 연설에서 “민주주의가 이라크에서 확립되어도 미국의 임무는 계속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부시행정부는 최근에 또한 미군이 적어도 2006년까지 이라크에 주둔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일요일 선거에 의해 뽑힌 의회는 새 헌법의 초안을 만들 것이다. 헌법초안에 대한 국민투표는 10월 15일로 예정되어 있고 그 이후 총선이 12월 15일에 다시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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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어떻게 누구를 위해 투표하라는 것인가?

어디서, 어떻게, 누구를 위해 투표를 하라는 것인가?

by Dahr Jamail; Inter Press Service; January 26, 2005

*바그다드, 1월 26일(IPS) - 선거가 4일 남았는데 많은 이라크인들은 어떻게 투표해야 하는지, 혹은 심지어 투표소가 어디에 있는지도 여전히 잘알지 못한다.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폭력인 것으로 보인다. 또다른 정치적 살해가 발생했는데, 카이스 하심 알-샤마리 판사가 그의 처남과 함께 화요일 바그다드 동부 그의 자택에서 나오다가 살해당했다. 이번주에 적어도 미군 6명이 바그다드에서 죽었다. 병사 한명은 길가의 폭탄에 그의 순찰차가 터져 월요일에 죽었다. 5명은 군대가 “교통사고”라고 하는 것으로 인해 죽었다. 같은날 차량 폭탄이 임시정부 총리 이야드 알라위의 정당 본부 근처에서 터졌다. 적어도 5명이 죽었고 그 중 4명은 경찰관이었다. 바그다드 북부 바쿠파에서는 화요일에 정당 사무실들이 공격당했다. 적어도 경찰관 한명이 죽었다.

그러한 사건의 한복판에서 사람들은 투표소와 후보자들을 둘러싼 게임을 추측하고 있다. 지금은 투표소가 아마도 학교건물에 설치될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선거관리위원회는 안전문제로 아직 투표소 위치도 발표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그다드 주변의 많은 학교건물들은 모래장벽, 콘크리트 블록, 날카로운 철사로 둘러쳐지고 있다.
“내 집에서도 이전보다 훨씬 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어요”라고 퇴직한 엔지니어 하심 알-오베이디가 말했다. 그의 집 근처 학교건물은 투표소로 준비되고 있다. “미군 병사들이 장벽들을 설치하는 것을 봤어요. 학교가 만약 공격받으면 시멘트가 우리집을 내리칠까 걱정되요.” 바그다드 중심부 그의 집 바깥에 서서 그는 벽이 무너지고 색칠이 바랜 오래된 노란색 학교건물 바깥의 커다란 모래장벽을 가리켰다. “그들은 이미 우리 학교 체계를 심각하게 손상시켰어요. 그들은 아무것도 재건하지 않았고 지금은 학교들을 더 파괴하려 해요”라고 그는 말했다. 45살된 경호원 살만은 투표소로 준비되고 있는 또다른 학교건물에서 “투표땜에 미치겠어요. 그건 지금 너무 위험해요.”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어느 학교에 투표하러 갈수 있는지 아직 알지 못한다.

많은 이라크인들은 위법적인 선거를 보는 것에 대해 좌절감을 표시한다.
지금은 정부를 위해 일하는 컴퓨터과학 전문가 쇼켓 다우드 교수는 투표소의 불확실성과 폭력의 공포가 유일한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누가 출마하는지도 아직 모르는데 왜 투표해야 합니까?”라고 했다.
7,000명 이상의 출마리스트상의 후보들은 투표일 이전에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출마한다고 여겨지는 적어도 8명의 정당 지도자들이 살해당했다. 다른 많은 이들도 죽음의 위협을 받는다.
그러나 일부 이라크인들은 여전히 투표할 것이라고 말한다. “식량배급을 깎일 수 없으니 투표할 겁니다.”라고 바그다드에서 자동차정비소를 소유하고 있는 52살된 아민 하자르는 말했다. “우리가 투표하지 않으면 배급이 중단될 것이라는 소문이 있어요. 그리고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하면 나와 내 가족들은 굶어 죽을거예요.”

최근에 월례 식량배급을 받았을 때 그는 투표자 등록을 했다는 서류에 사인하도록 강제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이것을 그가 투표했는지 여부를 추적하는데 사용할지도 모른다고 믿고 있다. 이 소문은 전혀 사실로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바그다드 일대에 광범위하게 퍼졌다.
바그다드의 카라다 지역 근처에서 채소가게를 하는 아부 사바는 선거가 헷갈린다고 말한다. 선거가 갑자기 다가왔고 적어도 83개나 되는 정당연합들이 대부분 후보자를 밝히지 않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것이다. “점령과 계엄령 기간동안과 전쟁지역에서도 알지 못했던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선거를 해야 한다고 누가 말할수 있습니까? 만약 운이 좋아 한 두명의 이름을 안다해도 후보자 전체에 대해 투표하라고 하는데 왜 투표해야 합니까?”라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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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천막을 걷으며

12월 31일. 마지막 국보폐지 촛불집회에 가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오늘 파병연장 통과되면 파병 천막 뜯어야 할테니 오라고. 국보 쪽도 밤에 철거한다고 했다.

먼저 이동화에게 연락했다. 계속 농성장을 제 집처럼 썼으니 물품이 많다. 천막 뜯기전에 치워야 한다고 전했다. 동화는 형님 차를 빌려서 몰고 왔다.

 

선전물을 뜯어내고 비닐을 뜯고 천막을 해체하고 물건을 치웠다.

파병연장 반대 농성천막을 언제 쳤더라. 11월 27일 인가 그랬다. 한밤에 모여서 조그맣게 뚝딱 치고 다음날 들어앉아 회의하면서 흐뭇해 했다. 그땐 다들 파병연장 어차피 막아낼 수 없지만 할 수 있는건 해보자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돌아가면서 당번을 짜고, 난로를 가져오고 선전물로 꾸미고... 생각해보니 난 하루밤밖에 안잤다. 당번 짠게 한번 순환하고 나서는 거의 이동화가 농성장을 지켰다. 1인시위도 하고. 막판에 함께 촛불시위도 하고.

난 최선을 다한건가. 다하지 않은건가 다하지 못한건가.

 

천막을 철거하여 짐을 싣고 사무실로 와서 대충 풀어 놓고 뉴스를 검색해 보니 파병연장안이 좀전에 통과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반대와 기권이 꽤 되었다. 뭐 진짜 전쟁을 반대하는 마음으로 반대나 기권에 표를 던지지 않은 이들도 있겠지. 국회 표결을 보면야 통과시킨 놈들이 죽일놈들이지만 정작 그 뒤의 노무현은 가려져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정작 그 놈이 나쁜놈인데.

 

하반기에 파병연장 반대투쟁은 잘 되지 않았다. 짜임새 있는 계획도 부족했고 쟁점화도 잘 시켜내지 못했다. 31일 파병시한 2시간 남겨놓고 허겁지겁 통과시킬 정도로 열우당이나 한나라당이나 제1의 과제는 파병연장 동의안 통과였는데, 운동 진영이 좀더 힘을 기울였어야 하지 않을까. 특히 국보투쟁에는 참 아쉬운게 많다. 그것도 평가를 해봐야겠지만 어떻든 파병이나 쌀개방, 공무원법 등 여타 쟁점을 압도해버린 것은 사실이다. 주체들도 대부분 겹쳤다. 거기에 올인한 사람들은 파병연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현실적으로 역량을 투여하지 못하는 걸 안타까와 했을까.

 

어쨌든 그 많던 천막들은 하룻밤 사이에 거의 다 없어졌을 것이다. 매년 말이면 국회를 바라보고 하소연할 수밖에 없는 천막들이 점점 늘어간다. 별로 안좋다. 기본적으로 국회압박 그림이고, 이슈별로 제각각 찢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또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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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의 승리, 팔루자 그리고 세계평화운동에 대한 공화당 우파의 도전

부시의 승리, 팔루자 그리고 세계 평화운동에 대한 공화당 우파의 도전
(2004. 11. 8 www.focusweb.org)
 
월든 벨로 (Walden Bello)
(*방콕 소재 ‘남반구포커스(Focus on the Global South) 대표, 필리핀대학교 사회학 교수)


사기꾼의 믿을만한 진술이 계속되는데 특히 오하이오 주의 선거집계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민주당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미국은 조지 부시가 존 케리에 3백 5십만표 차이로 앞서 대통령에 재선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헤게모니 블록?
그러나 무서운 진실은, 일방적으로 기울어지진 않았지만 공화당의 승리는 견고했다는 것이다. 이는 1980년 로널드 레이건에 의해 시작된 정치혁명의 또다른 양상인데, 2004년 선거는 미국 정치의 중심이 중도우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극우파에 있다는 것을 확고하게 했다. 이제 미국이 거의 양분되었다는 것이 진실로 남았다. 그러나 선거, 시민사회, 미디어의 모든 수준에서 권력을 획득할 전략을 만들고 이행하고 그 근본에 강제적 비전을 제시한 것은 공화당 우파이다. 자유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은 허우적거렸으나, 과격 우파들은 이질적이었지만 극히 단순한 비전 하에서 단결했다. 남부와 남서부에서 신자유주의 경제혁명과 기업적인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자들로부터 혜택을 본 상류층과 중산층인 백인 남성의 다수가 그들이다. 이러한 비전은 본질적으로 의식되지 않는 것이고 큰 정부 지향의 자유주의자, 난잡한 게이와 레즈비언, 불법 이주자들, 가증스러운 제3세계 출신 인종, 미국의 번영과 권력을 질투하는 나약한 유럽인들 연합에 의해 안으로부터 약화된 국가의 비전이다.




실제로 두 종류의 미국인이 있는데 하나는 혼란스럽고 조직되지 않은 이들이고 다른 하나는 우월한 전략과 조직만이 줄 수 있는 확신과 거만을 발산하는 이들이다. 과격 우파들은 이상적인 공동체-대략 1950년의 초기 백인 기독교 마을-로 돌아가는 비전으로, 이탈리아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헤게모니 블록”이라 부른 것을 형성하였다.

민주주의, 경제적 권리, 개인적 권리, 소수자 권리의 미래는 미국에서 어두워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아마도 두번째 충격요법-첫번째는 1980년 레이건의 승리-을 통해서일 것인데, 그것은 진보적인 미국이 결국 대세가 바뀌는 것에 직면한다는 것이다. 즉 조금도 기대하지 않아야 하고 아무것도 줄 수 없어야 하고 실수도 저지를 여유가 없는, 이데올로기적이고 조직적인 헤게모니를 위한 모든 방면에서의 전투이다.

 

 

제국의 위기

그러나 미국이 오른쪽으로 가더라도 그것으로 세계를 이끌수 없다. 실제로 미국을 제외한 세계의 대부분은 반대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부시가 재선된 바로 그 주간에 일어난 사건보다 더 이를 잘 묘사하는 것은 없는데, 우루과이에서는 좌파정당 연합이 권력을 잡았고, 라틴 아메리카에서 미국의 새로운 복수의 여신인 휴고 차베스는 베네주엘라에서 선거를 휩쓸었다. 헝가리는 이라크에서 300명의 군대를 철수한다고 발표하였다. 미국 우파가 국내적으로 위력을 강화하고 있지만 그것은 워싱턴의 헤게모니를 세계적으로 관철시킬 수 없다. 과잉확대의 위기라고 부른 것의 주요 원인, 또는 제국적 야심에서 기인한 목적과 수단의 불일치는 이라크 침략이라는 거대한 계산착오이다. 이 위기는 부시 집권 2기에서는 가속화되지 않는다면 계속될 것이다. 이러한 제국의 딜레마의 핵심적인 징후는 다음과 같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최근 아프가니스타에서 미국이 선거를 후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카르자이 정부는 카불과 2-3개 도시만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유엔 사무총장 코피 아난이 언급한 것처럼, 선거에도 불구하고 “기능적인 국가기구가 국민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새 정부의 권위와 정당성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 사례에 관한 한, 아프가니스탄은 13,500명의 국내 미군과 35,000의 국외 지원인력을 잡아두려 할 것이다.

알 카에다와 그 동맹이 2001년보다 현재에 훨씬 더 강력해짐으로써 미국의 대테러 전쟁은 완전히 실패했다. 이와 관련해서, 오사마 빈라덴의 선거 이전의 비디오테잎은 수천마디 말의 값어치가 있다. 부시의 이전 반테러 참모였던 리차드 클라크에 따르면 이라크 침략은 테러와의 전쟁을 탈선시켰고 최상의 알 카에다 대원모집 장치가 되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이 없었더라도 테러에 대해 경찰과 군대를 활용하여 탄압하는 워싱턴의 방법은 이미 수백만 무슬림들을 이반시켰다. 태국 남부가 이를 극명하게 묘사해주는데, 반테러에 대한 미국의 권고는 이 지역의 불만세력을 반란세력으로 바꿔놓았다. 팔레스타인 국가 출현을 방해하는 아리엘 샤론의 이길수 없는 전략을 완전히 지지하게되면서 워싱턴은 지금은 사문화되었지만 오슬로 협정을 중재함으로써 아랍 내에서 획득한 [미국의] 모든 정치적 자산을 몰수하게 되었다. 더욱이 샤론과 함께가는 전략은 이라크 점령정책과 더불어, 아랍엘리트 내에 있는 워싱턴의 동맹자들을 노출시켰고 불신받게 했으며 비난받게 했다.

대서양 동맹은 끝났다. 다가오는 시기에 무역분쟁은 정치적 차이와 결합되어 미국과 유럽을 훨씬 더 분리시킬 것이다. 유럽은 미 제국의 지속가능성에 있어 핵심이다. 네오콘의 저술가 로버트 케이건이 말한대로 “미국은 유럽이 제공할 수 있는 정당성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그것을 보장하는데 당연히 실패할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좌선회는 가속화될 것이다. 우루과이에서 좌파연합의 승리는 베네수엘라, 에쿠아도르, 아르헨티나, 브라질에 이어 진보세력에 의한 일련의 선거 승리에 있어 가장 최근의 사건일 뿐이다. 선거에서 좌선회와 함께, 2003년 1월 볼리비아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대규모 반란이 또한 생겨날 것이다. 좌선회와 제국으로부터의 이탈에 대해 미국의 친구이자 전 멕시코 외교부장관이었던 호르게 카스타네다는 상황을 정확하게 평가한다. “미국의 친구들은 이러한 반미적인 분노의 불길을 느끼고 있다. 그들은 친미적이거나 미국에 의해 조장된 것으로 평가되는 그들의 정책을 방어하고, 워싱턴의 요구와 희망에 대한 저항을 강화하기 위해 스스로의 수사와 태도를 바꿀 것으로 강제되고 있다.”

 

 

이라크 : 지구적 저항의 시련

이라크는 물론 제국의 해결책의 근원이다. 이라크 민중들의 저항은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식민 점령을 좌절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똑같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베트남의 승리를 오래된 역사로 여기는 전 세계의 새로운 반제국주의의  세대에게 제국에 맞서 싸워서 그것을 궁지에 몰고 실제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가까운 시일내에 이를 인정할 가망성은 없다. 그들은 필사적인 착각으로 팔루자를 공격할 것이고 반란의 작전 센터를 파괴할 것이다. 그러나 팔루자는 작전센터가 아니라 이미 그 역할을 다한 상징적 센터이며 그 ‘함락’이 이라크 전역에 걸쳐 확산되어 있고 깊어져 있는 탈중심화된 저항운동을 중단시키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팔루자 저항세력들은 사마라에서처럼 치고 빠져서 퇴각하는, 게릴라에 적합한 전통적 도시방어를 사용할 것이다. 이는 미군과 그 이라크 용병들을 괴롭히고 속박할 것이다.
55개 도시와 마을이 이미 미군이 갈수 없는 지역으로 분류됨에 따라 부시행정부는 도시 중심부들을 탈환하고 점령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곧 깨달을 것이다. 오늘날 이라크에는 13만명의 미군이 있다. 게릴라들을 소탕하기 위해서만 해도 오늘날 이라크에서 저항의 수준을 고려한다면 적어도 50만명이 필요하다. 이는 부시행정부가 징병제를 도입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고 그것은 현재의 공화당 헤게모니를 위협하는 시민 불복종을 초래할 것이 틀림없다.
워싱턴의 대안은 철수해서 요새화된 기지에서 참호를 파고, 주기적으로 그 깃발을 보여주기 위해 출격하는 것이다.
이것은 실제로 미국의 패배를 의미할 것이고, 이라크 민중들의 저항이 합법적으로 영토를 통제하고 주권을 선언하고 진정으로 민족적인 정부를 수립하는 과정을 의미할 것이다.

 

 

운동의 과제

이라크 민중들의 선택으로 민족적인 정부를 창출하기 위한 주권의 공간을 만드는 투쟁을 지지하는 것은 세계 반전운동의 두가지 최우선 과제 가운데 하나다.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팔레스타인 민중의 권리 유린을 종식시키는 것이다. 미국에서 우파가 부활하고 제국의 위기가 지구적으로 계속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무엇보다도 운동은 자연발생성을 넘어서서 초국경적인 조직화의 새로운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 이는 전쟁에 반대하는 연례 공동행동의 날을 넘어서는 것이다. 전쟁의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결정적인 다수를 만드는 것은 1968-1972 사이에 수백만의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활동하게 만든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와 비슷한 지구적인 저항의 물결 없이는 성취할 수 없다. 더욱이 국제적인 공동의 활동은 대중 시위를 조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시민불복종, 세계적 미디어에 대한 작업, 정부 관리들에 대한 날마다의 압력행사, 정치적 교육을 의미한다. 물론 반전 활동에 대한 더 효과적인 기획과 전문화는 우리 운동의 트레이드마크인 자발적인 참여과정을 희생시켜 달성되어서는 안된다.

두번째, 전술과 관련해서는 새로운 항의 형태가 개입되어야 한다. 제재와 보이콧은 실행되어야 하는 수단이다. 올해 초 뭄바이 세계사회포럼에서 아룬다티 로이는 핼리버튼과 벡텔과 같이 전쟁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이익을 얻는 1-2개의 미국 기업에 대해 그들의 작동을 폐쇄시키는 세계적인 운동을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이제 미국 기업뿐 아니라 이스라엘 기업과 그 제품에 대해서도 그녀의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할 때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장려되는 점점 더 많은 시민불복종과 기업에 대한 비폭력적 파멸과 함께 투쟁의 수준도 제기되어야 한다. 우리는 워싱턴과 그 동맹자들에게 전쟁이 지속되는 한 예전과 같은 비즈니스는 있을 수 없다고 말해야 한다. 영국에서 나타나는 논쟁, 즉 평화시위를 밀어줄 것이냐 시민불복종을 밀어줄 것이냐 하는 것은 실익이 없는데, 왜냐하면 둘다 중요하고 혁신적이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결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활동가들은 헨리 데이빗 소로우, 퀘이커교도들, 베리건 형제와 같은 사람들에게 행동의 동기를 부여한, 부당한 법률에 대한 불복종이라는 굉장히 강력한 전통을 이끌어낼 수 있다. 실제로 이러한 저항은 제국적 흐름뿐 아니라 정치적 자유와 민주주의 제한을 제동시키는데 있어서 핵심이 될 수 있다. 선거에 의한 선택이 가버린 오늘이야말로 더 높은 법을 발동하여 제국적 지배에 저항하는 것이 훨씬 더 필요하다.

세번째, 영국과 이태리-특히 영국-가 미국 바깥에서 부시의 전쟁정책을 지지하는 주역이라는 것이 명백하다. 부시는 항상 이 정부들이 미국의 모험 정당화하도록 이들을 동원하는 것에 의지했다. 이태리에서 일어나는 것은 영국에서 일어나는 일에 영향을 미친다. 이 두나라는 전쟁에 반대하는 견고한 다수가 있다. 이들은 미국의 전쟁에 공범자인 정부에 의해 통치되는 그들 나라에서 이제 이를 분쇄하기 위해 강력한 세력으로 전화되어야 한다. 이 두나라는 총파업의 신성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는 대중적인 시민불복종과 결합하여, 그들 정부에게 워싱턴을 지지하는 비용에 대해 심각하게 제기할 수 있다. 2004년 3월 20일 시위가 2003년 2월의 시위보다 훨씬 더 적은 사람들을 이끌어 낸 원인에 대해 영국과 이태리의 많은 활동가들은 대답한다. 사람들이 그들의 행동이 미국의 전쟁을 막을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그러한 패배주의와 사기저하는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을 낮추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높이고 비폭력 시민저항 행위로써 그들을 전선에 서도록 요청하는 것에 의해 맞설 수 있다.

네번째, 향후 몇십년동안 중동이 전략적 전장이 될 것이다. 이는 세계 평화운동과 아랍세계 사이에 연계를 형성하는데 중요하게 될 것이다. 중동 정부들은 미국에 관련해서는 무기력한 것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유럽에서처럼 시민들의 운동 사이에서 연대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실제로 용기있고 논쟁적인 진전인데 왜냐하면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반미운동의 일부는 미국이나 일부 유럽정부에 의해 “테러리스트”나 “테러리스트 동조자” 딱지가 붙어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협력하기 위한 기반을 확인하려고 서로에게 접촉하는 사람들 앞에 미국이 부과한 정의를 제거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 운동과 이스라엘의 안티 시오니즘 평화운동에 있어 정부가 부과한 꼬리표를 넘어서, 이스라엘의 점령을 끝내기 위해 협력하는 방식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서, 2004년 9월 중순에 아랍 전역에서 지구적 평화운동과 사회운동들의 대표들이 압도적으로 결집한 베이루트 반전운동 총회는 이 방향에서 뜻깊은 전진이었다.
집권 2기로 들어서면서도 부시의 의제는 동일하다. 세계적 지배가 그것이다. 우리의 대응도 동일하다. 세계적 저항이다. 이라크, 팔레스타인, 그 외 다른 곳에서 제국의 흉악한 목표를 좌절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다. 그것은 세계 민중들의 전투적 연대이다. 그 연대를 실질적이고 강력하게 하고 결국 승리적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 앞에 놓인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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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사회포럼(10.15-17) 관련 기사

유럽사회포럼 관련 글들을 검색하다가 평이한 기사 하나를 옮겼습니다.
아래 기사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www.indymedia.org.uk 싸이트 등을 보면 이번 유럽사회포럼과 관련된 여러가지 사건이 나와 있습니다.

먼저, 런던시장인 켄 리빙스턴(노동당 좌파인데 탈퇴했다가 다시 가입)이 4십만파운드를 후원했다네요. 등록자 2만명에게 런던시내 프리패스도 제공했고요. 여기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비판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행진 도중 리빙스턴 시장의 발언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일부 활동가들이 단상을 점거해서 '켄의 정당은 전쟁정당'과 같은 플랭카드를 펼치고 항의해서 연설이 취소되기도 했다네요. 여하튼 준비와 진행과정에서 민주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기업적이었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관련해서 SWP(사회주의노동자당)를 비난하는 글도 많습니다. 이에 대해 캘리니코스는 오히려 이번 포럼이 굉장한 성공이었다고 하면서 1)반전운동에 비해 약했던 영국의 반자본주의 운동에 도움이 되었다. 2) 2005년 3월 19-20일 국제시위와 7월 G8 회담반대 시위에 합의했다. 3) 운동의 미래에 대한 토론에 도움을 주었다 라고 세가지 성과를 꼽았습니다. (Socialist Worker Issue 2004. 10. 20)
한편 영국반전연합이 조직한 세션인 '이라크 점령종식'에서는 Subhi Al Mashadari라는 이라크노총위원장(?)의 발언여부가 논란이 되었다고 하는데요, 참가자들이 그가 임시정부에 의해 임명된 인물이라며 발언시키지 말 것을 주장했는데 결국 투표를 했답니다. 발언을 들어보자는 것이 다수였는데, 사회자가 듣기 싫은 사람은 나가라고 하는 등 파행을 겪다가 결국 세션이 열리지 못하고 중단되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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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사회포럼 : 또다른 세계, 그런데 어떻게?

샌제이 수리

런던 -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훌륭한 플랭카드 아래에서 지난 일요일 런런에서 막을 내린 제3회 유럽사회포럼은 항상 ‘어떻게?’라는 질문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 질문은 작년 파리에서 열린 유럽사회포럼에서 계속 제기되었다. 항의를 넘어 행동으로 나아가는 제안으로 이제 이동해야할 때라는 것이 다수의 견해이다.
ATTAC(시민을위한금융거래과세연합) 대표인 베르나르 카상은 “사회포럼은 그동안 대중의 대학, 대중교육기관이었다.”라고 파리 유럽사회포럼 말미에서 말했다. ATTACDM은 파리 유럽사회포럼의 주요 조직자였다. 또한 카상은 “이제 세계의 지배자들에 대해 항의하는 사회포럼을 조직하는 것은 성공했지만, 대안 세계화 운동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내야 한다”고 했다.
키워드인 “대안세계화”는 국제적 협력, 인간적인 개발, 사회적 정의에 기반을 둔 새로운 형태의 세계화를 의미한다. 생각으로서뿐 아니라 행동으로서도 그러하다.

지난주에 열린 유럽사회포럼은 그러한 아이디어를 더 심화시키고 또다른 세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대답을 도출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더 나은 세계는 250명 이상이 연설한 500개 이상의 프로그램에서 토론되었다. 그 대답은 10월 15-17일 3일 동안에 걸친 “사회운동 총회 호소문”형태로 서술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포럼 말미에 대변인은 “지난 3일은 실로 주목할만한 시간이었다. 영국과 세계 각지로부터 온 우리에게 기운을 불어넣었고 우리는 또다른 세계를 가능하게 만든다는 목적에 대한 열정과 토론의 힘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같은 질문 ‘도대체 어떻게?’를 회피하는 화려한 말들

‘호소문’은 부당한 것들의 긴 목록을 포함한다. 이라크 점령, 중동에서 이스라엘의 점령, 기후변화, G8 권력, 시장주도 경제, 유전자조작식품, 성차별주의, 인종주의, 유럽연합 헌법초안, 사유화, 보다 일반적으로 신자유주의 등이 그것들이다.
행동과 관련해서는 유럽사회포럼에 모인 이들은 이라크 점령에 반대하여 런던에서 항의행진을 하였다. 그리고 ‘11월 9일~16일 분리장벽(팔레스타인)에 반대하는 국제행동주간’과 ‘유엔 인권협약 비준일인 12월 10-11의 유럽 행동의 날’에 지지를 모으기로 결정했다.
내년 1월 니스에서 열리는 북태평양조약기구(NATO) 정상회담에 대한 항의계획도 발표되었다. “우리는 2005년 7월 스코틀랜드에서 열리는 G8 정상회담에 대한 대규모 시위 조직을 결의한다.”는 선언도 덧붙여졌다. G8은 미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태리, 일본, 영국, 러시아를 포함하는 선진국 회의이다.

선언문은 사실 항의일정이고 이미 알려진 입장을 다시 서술한 것이다. 일년전에 제안된 “대안세계화”로 운동이 나아갈수 있는 방안은 거의 제안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이 민중의 힘이다. 우리는 정부가 아니다. 이 이외에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한 활동가는 말했다. 그녀는 이라크 전쟁에 대항하여 그토록 강력한 시위를 만들어낸 것은 민중의 힘이라고 했다. 또한 G8 회담에 대한 시위는 각국 지도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정책을 다시 사고하게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계획들이 만들어지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느슨한 유럽좌파들에게 합의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인정했다.
영국에 기반을 둔 NGO인 ‘사회적유럽센터’의 수석연구원 그레이엄 쿠프는 유럽사회포럼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유럽 NGO들 사이에 “비공식적(informal) 네트워크”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IPS(Institute for policy)에 말했다. “정보를 교환하는데 매우 도움이 되었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 노조의 분석을 듣고 나서야, 우리는 서비스에 대한 EU의 지침이 얼마나 나쁜지 깨달을 수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유럽연합 행정부인 유럽위원회가 제기한 지침은 서비스 공급방식에 있어 국가간 장벽을 없애려고 하는데 이는 노동자와 소비자에 대한 법적인 보호가 가장 약한 나라의 사례를 다른 나라에 적용하게끔 하는 것이다.
유럽사회포럼은 또한 조직들간의 새롭고 보다 직접적인 접촉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우리는 프랑스 사회당 좌파가 유럽연합 헌법 초안에 반대했다는 것까지는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럽사회포럼에서의 네트워킹은 “프랑스 사회당 좌파와 영국 노동당 좌파가 보다 직접적으로 협력”하는데 이를 수 있다.

유럽사회포럼이 훨씬 더 많은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하는 다른 사람들도 있다. 이태리 재건공산당의 파우스토 베르티노티는 대안이 없이 항의를 조직하는 것에 대해 작년에 "우리는 민주주의 사망의 시끄러운 목격자가 되는 것을 무릅쓰고 있다“고 경고했다.
유럽사회포럼에 모인 새로운 유럽사회운동의 차질은 한편으로는 이태리나 영국에서 작년에 강력한 반전운동이 보여준 것처럼 그것이 정당이나 정치지도자들보다는 종종 광범위한 민중과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아니라, 다른 한편으로 그룹들이 이러한 힘을 더 큰 효과로 만드는 경로를 아직 개척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폴 킹스노스(Paul Kingsnorth)라고 에콜로지스트 잡지 부편집자로 일하다가 지금은 독립적으로 활동하면서 저술도 하는 활동가가 자기 블로그에 쓴 글입니다.(www.paulkingsnorth.net) 참고로 그는 최근에 한국에서 출간된 '세계화와 싸운다(one no. many yeses)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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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좌파(Hard Left)의 낡은 속임수
- 사회주의노동자당(SWP)는 진정한 급진 정치에 심각한 위협이다

New Statesman, 2004. 10. 25

2004년 유럽사회포럼 중간 시기인 토요일(10월 16일) 저녁, 더 나은 세상을 찾기 위한 유럽 급진파들의 결집으로 제안된 행사가 있었다. 그 회합에서 런던 시장인 켄 리빙스턴이 연설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무대가 점거당했다. 300여명의 활동가들이 말하고 깃발을 흔들더니 곧이어 무대는 자본주의나 전쟁이 아니라 포럼 조직 자체에 반대하여 항의하는 사람들로 둘러쌓였다. 한 여성이 마이크를 빼앗아 “사회포럼이 다시는 이번처럼 조직되어서는 안된다”라고 발언했다. “이것은 민주주의를 희화화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대답은 세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사회주의 노동자 당(Socialist Workers Party). 런던시당국(유럽사회포럼에 4십만파운드를 제공했다고 평가된다)과 리빙스턴 지지자 가운데 트로츠키 정파로 알려진 사회주의 행동(Socialist Action)과 함께, SWP는 포럼 주최를 요구하기 위해 1년동안 노력해왔다. 그 극좌파가 낡은 속임수를 다시 쓴 것이다. 이번에는 거의 국제적인 사태를 초래했다.

“SWP와 런던시당국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었다”고 이름 밝히기를 원하지 않는 한 주요 영국활동가가 나에게 말했다. “그들은 런던에서 포럼을 개최하기 위한 최초 지망을 함께냈고 아무에게도 그것을 보여주려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그들은 모든 것들을 그들의 신문을 팔고 새 회원을 가입시키는 것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한다.
불행하게도 이것은 음모론이 아니다. 또는 만약 그렇다해도 그것은 일부 주요 NGO들이 지지하는 이론이다. 세계발전운동(World Development Movement)의 편집장인 데이브 팀스는 “내가 참석자들의 적어도 1/3이 SWP회원인 회합에 많이 참여했는데, 그들은 다양한 형태로 가장하고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저항의 세계화(Globalise Resistance), 반전연합(Stop the War Coalition), 프로젝트 K로 불렀다. 그러나 항상 같은 사람들이었고 시종일관 회의장을 채웠고 자기네 사람들이 의장이나 연사, 조직가로 되도록 투표했다.
팀스의 비판은 그린피스나 옥스팸을 포함하여 10대 NGO들이 올해 초 비판한 것과 공명하는 것이다. 그들은 누가 포럼에서 연설할 것인지 결정하는 회의에서 SWP가 어떻게 “그들의 지지자들과 함께 회의장을 채웠는지”에 대해 썼다. 또한 그들은 “이는 영국에서 운동을 넓히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썼다.

이태리 조직위에서는 SWP와 Socialist Action이 파리 회의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에 대해 6월에 공공연히 불만을 제기했다. “그들은 항상 실질적인 대화로 나아가기를 꺼려하면서 그들만의 방식을 강제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이미 몇시간 전에 내려진 결정이나 명칭을 받아들이기 거부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종종 거만하게 굴거나 공갈쳤다”는 것이다.

몇 년동안 유럽사회포럼을 조직하는 일을 해온 War on Want의 닉 디어든은 지금 포기하고 싶은 느낌이라고 말한다. “올해의 모든 것은 처음부터 심하게 타협되었다. 우리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조직화 과정을 개방하고 모든 이들을 참여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SWP는 토론을 그만두고 그들만의 행사를 하고싶어 했다. 내 생각에 그것은 영국의 급진주의를 실제로 후퇴시켰다.”고 했다.

“지구적 정의 운동(global justice movement)은 알려진 것처럼 민주주의에 깊이 전념하고 있고 신선한 아이디어에 열중한다. 반면에 SWP는 새로운 운동의 이러한 에너지를 스스로의 목적에 사용하려는 비민주적이고 퇴보적인 조직이다. SWP의 투여는 올해 유럽사회포럼을 때때로 퇴영적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새로운 세계가 태어날 장소라기보다 극좌파가 결집하는 장소로 말이다.

다음번에는 더 나은 행운을 희망해보자.

 

 

런던 유럽사회포럼의 몇가지 문제점들에 대하여

 

- 베르나르 카상, 아닉 쿠페, 엘리자베스 고티에, 로랑 제소베르, 피에르 칼파, 미셸 루소, 소피 자파리 (유럽사회포럼 프랑스 참가단)

 

우리 각자가 속한 조직에서 런던 유럽사회포럼에 대해 평가하겠지만 그보다 먼저 우리는 사소한 사건처럼 보이지만 중대한 문제들에 대해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유럽사회포럼 사상 처음으로 우리는 특정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었다. 이는 문제가 있는 행사들과 태도를 포함하는 것이다.

몇몇 세션에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주제에 관해 논쟁은 언어적 공격이나 심지어 욕설과 비난으로 변했고(머리 스카프[히잡-프랑스에서 이슬람여학생들의 학내 히잡착용을 금했음]에 대한 세미나에서의 인종주의 비난), 그 때문에 근본적인 문제들에 관한 실질적 토론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라크 세션은 일부 그룹이 연설자 가운데 한사람의 발언을 금지하고자 하여 취소되었다.

전투적 활동가들이 비폭력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사회포럼 근처에서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특히 우리는 바벨[국제통역자네트워크]의 멤버인 자비에르가 트라팔가 광장에서 열린 시위도중 체포되어 80파운드의 벌금이 부과되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우리는 영국 조직위가 벌금을 내는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한다.

영국 조직위와의 관계에 대한 바벨 네트워크의 총괄적인 집단적 평가는 아주 부정적이다.

유럽사회포럼 폐막행진 말미에 포럼 총회의 기본구조 내에서 토론되거나 준비되지 않은 회의가 열렸다.

우리는 언론에 ‘반유대주의자’나 ‘블랙블록[아나키스트]’으로 언급된 젊은 이의제기자들이 파시즘과 극우파에 관한 세션에 밀고 들어온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들은 그들이 보기에 대단히 폐쇄적이고 상업적인 유럽사회포럼의 성격과, 계획되어 있던 켄 리빙스턴의 참석에 항의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의 관점을 공유하지 않으며 그들의 행동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그러한 언어적 공격은 의견차이를 극복하는데 도움되지 않는다.

유럽사회포럼에서 이러한 난점들을 극복하는 방식은 토론과 포섭을 통해서이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사회포럼 과정 내에서 충분한 다양성과 토론 보장을 생략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한 일들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특히 다음번 그리스에서 열리는 유럽사회포럼에서 발생하지 않도록 이러한 경험으로부터 집단적으로 교훈을 배워야 한다.

 

 

런던 유럽사회포럼에 대한 몇가지 평가

 

- 피에르 베르노치, 마르코 베르사니, 라파엘라 볼리니, 살바토레 카나보, 로베르토 지우디치, 모리지오 구비오티, 피에로 마에스트리, 알레산드라 메코치, 펠리스 모메티, 루치아노 물바우어, 알피오 니코트라, 안나 피초, 프랑코 루소 (이태리 조직위)


1년동안 오리는 런던 유럽사회포럼 조직화를 위해 일했다. 우리는 영국의 상황이 복잡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영국은 강한 조직력 - 특히 전쟁에 반대해서 - 이 있고 광범위한 사회적 참여가 단결을 지향하는 관련 집단들과 일치하지 않았다.

유럽사회포럼 조직화를 위해 노동조합에서 대규모 연합체들에 이르는 영국조직위가 만들어졌지만 전체적인 과정에서 갈등과 긴장을 극복할 수 없었다. 런던시당국의 지도하에 정부기구 대표가 추가되면서, 특히 영국의 정치적 조직과 노조와 풀뿌리조직 간의 풀기 힘든 관계에서 그러했다.

유럽사회포럼의 이탈리아 준비위로서 우리는 준비기간 동안 적극적 기여를 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경험에서 볼때 모든 이들을 민주적으로 포괄하는 것이 운동들의 운동에 있어 근본적인 전제조건이고 2006년 봄 아테네 유럽사회포럼으로 가는 길에서 본질적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우리는 공공적 공간으로서 포럼의 본질이 보호되어야 한다고 확신하면서, 다른 나라 참가단들과 함께 그 긴장이 화해할수 없는 단절에 이르지 않도록, 차이가 공존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우리는 자율적 영역을 포럼의 일부로 만든 베를린 회의의 합의를 적극적으로 환영했다.

전 유럽에서 대규모로 참가 - 2만명이 넘는 개인들, 대부분 젊은이들인데 이들은 3일동안 회의와 세미나를 채웠다 - 한 것은 이 합의가 옳고 이것을 만드는 노력이 가치가 있다는 것을 확언하는 것이다.

물론 포럼 기간 내내 우리는 발생하는 갈등에 대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해결을 위해 전적으로 노력했다. 이러한 마음으로 우리는 다른 유럽 참가단들과 함께, 토요일 오후에 리빙스턴 시장이 원래 연설하기로 되어 있던 세션에서 방해를 조직한 1백명 가량의 사람들에게 포럼이 개방적이기 위해 중재했다.

같은 날 저녁 사회운동 총회 준비회의에서는 경찰의 행위-경찰은 알렉산드라 궁 밖의 시위대를 공격했고 일부를 체포했다-를 비난하는 성명이 합의되었고 그들의 석방을 보장하기로 약속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우리는 유럽사회포럼 사상 처음으로 집단적으로 합의된 토론이 불가능했다는 사실을 조심스럽게 평가해야 한다고 본다.

이는 두가지 사건에서 발생했다. 하나는 리빙스턴이 연설하기로 했던 장소에서의 논쟁이고 다른 하나는 그에 앞서 이라크 관련 세션에서의 논쟁이다.
각기 다른 이유와 다른 그룹의 행동으로 두가지 뚜렷한 중단 사건이 발생했다. 이라크 세션이 취소되어야 했던 것과는 달리 첫번째 사건에서 회합은 재개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포럼과 같이 공개된 공간 내에서 차이가 소통 불가능으로 변했을때 문제가 발생했다.

일요일 오전 사회운동 총회가 시작될 때 전날의 항의 이유를 설명하는 두 발언이 있었고 회의에서는 한번더 체포된 동지들에게 연대를 표현했다.
그 회의에서 전쟁과 인종주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운동의 단결된 입장을 재확인하는 길고 구속력있는 호소문이 채택되었다. 그 회의가 성공한 것은 특히 지도부가 광범위하고 단결된 유럽의 참여적인 민주주의를 위한 적극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차이를 존중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일요일 오후 시위는 전적으로 영국조직위가 조직한 것이다. 이전에 플로렌스와 파리에서와는 달리 여타 유럽의 참가자들은 조직 과정에 참가할 길이 없었다. 시위 구성이나 발언자 결정에서 그러했고 무대위에서는 모두가 영국 발언자들이었다. 유일하게 브뤼셀에서 마지막 유럽 준비회의가 열렸을때 개입할 수 있었는데, 지리한 토론후에 공동의 ‘원칙’이 채택되었다. 그러나 후에 영국조직위가 선정한 슬로건들이 이를 덮었다.

아침에 킹스 크로스에서 시위자들이 봉쇄당하고 체포되었다는 것을 들었을때 우리는 유럽의회 의원들의 도움으로 즉각 영국조직위에 개입하여 영국경찰로 하여금 봉쇄를 풀고 체포된 이들을 석방하라고 압박했다.

무대 아래에서 발생한 이어진 사태는 갈등에 대한 소통과 정치적 해결의 부재가 운동에 어떠한 이점도 가져다주지 않는 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런던 유럽사회포럼 조직화 초기부터 함께한 동지가 운동공간 내에서 체포될 수 있다는 것은 모든 이들에게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유럽사회포럼이 열려진 대중적 공간이고 모두를 포괄하고 다문화적이라는 것을 보장하기 위한 우리의 임무는 최근 우리의 경험에 의해 강화되었다. 우리는 12월에 열릴 평가회의에 이러한 확고한 신념을 제출할 것이다. 거기서 우리는 깊은 토론을 통해 지난 2년간의 경험을 제기해야 하고 미래에 어떤 길을 택할 것인지 논의해야 할 것이다. n the future.

런던 유럽사회포럼에서의 보여준 대규모 자발적 참여는 그 진로가 살아있고 광범위한 요구에 부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운동은 그 단일한 결집과 기본원칙, 의제들을 통해 점점 더 ‘운동들의 운동’이 되고 있다. 이는 포럼이 준중하고 강조하며 그들의 소통과 네트워킹을 촉진시켜야 하는 것이다. 포럼 조직은 개방적이고 차이를 포괄할 수 있어야 하며, 보다 참여적인 방식으로 포럼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내부갈등을 예방하거나 적어도 처리할 능력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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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이라크에서 무엇을 달성했는가?”

 

“미국은 이라크에서 무엇을 달성했는가?”


임마뉴엘 월러스틴


2004. 9. 15 논평 145

http://fbc.binghamton.edu/commentr.htm


세계 대부분은 미국의 이라크 정책이 정치적으로 실패였다고 생각한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유권자의 다수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부시 체제를 어지럽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부시 체제는 그 정책을 커다란 성공으로 주장한다. (그리고 심지어 정발로 그렇게 믿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현 상황을 검토해보자.


우선 미 행정부가 무엇을 성공으로 가장 크게 주장하는지 살펴보자. 사담 후세인은 축출되었고 죄수가 되어 어느 시점에 재판정에 서야할 운명이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나는 성공란에 다른 무엇이 놓일수 있는지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무엇도 나오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나는 가능하거나 주장된 미국의 다른 8가지 목적을 수집했고 그 각각에 있어 의문점과 완전히 부정적인 결과를 찾았다.




(1) 첫째는 바트당과 미래 이라크에 있어서 바트당의 정치적 영향력을 파괴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당은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그리고 처음에 미 점령당국은 이라크 기관들에서 바트주의자들을 제거해갔다(군대는 해산되었고 경찰은 재조직되었다. 그리고 대학들, 행정부들). 그러나 몰아낼 수 없는 저항세력과 팔루자에서 직면했을 때, 미국은 휴전을 가져오고 미군 철수 이후에도 지역 질서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 전직 바트주의자 지도자들로 돌아가는 것임을 알았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전직 바트주의자들이 결국 미국 요원이라는 꼬리표가 지역 대중들에 의해 붙여진다는 것을 뉴욕타임즈에서 알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사임하거나 현재 팔루자 뿐 아니라 이라크 서부 많은 수니파 지역을 통제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 그룹에 대한 충성을 바꾸도록 강제되었다. 따라서 미국은 팔루자와 그 근교에서 전직 바트주의자 그룹의 몰락을 유감스러워하는 이상한 위치에 있다. 아프카니스탄에서 미국은 1980년대에 비종교적인 공산주의 체제를 축출하고 탈리반 정권을 세웠다. 그들은 실제로 훨씬 더 나빴다. 미국은 이라크 수니파 지역에서 이와 유사한 일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2) 둘째는 세계 석유 공급을 통제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3년전보다 나은 상황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파이프라인에 대한 지속적인 게릴라 공격 때문에 이라크의 석유수출은 변덕스럽다. 정치적 상황이 해결되면 (이것은 오래 걸릴수 있지만) 미국은 이라크가 석유 카드를 써먹는 것에 있어 프랑스나 러시아보다 실제로 더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3) 셋째는 미국에 대한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공격능력이나 적대적 목적을 달성하는 능력을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종종 얘기되곤 하는 모든 넌센스에도 불구하고 2003년 이전에 사담 후세인은 이러한 그룹들이 이라크를 기반으로 하여 작전을 펼치도록 하지 않았다. 지금 이 “테러리스트” 그룹들은 이라크에서 자유롭게 활보하며 인질을 잡고 새로운 참가자를 모집한다. 다른 곳에서 이에 관한 미국의 목적이 어느 정도 달성되었든간에 (알-카에다의 자금줄을 끊고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기지를 파괴하는 것) 이라크 침략이 미국의 목적을 상당히 진전시켰다고 말할 수 없다.


(4) 넷째는 이라크에서 안정적이고 친미적인 정부를 세우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확실히 거기에 이르지 못하였다. 현재의 알라위 임시정부 체제는 모든 면에서 허약하다 - 군사력과 경찰력, 정치적 통제력, 대중적 정당성 등. 무크타다 알-사드르와 그의 마흐디 민병대에 대항하여 알라위와 미군이 나자프에서 최근에 공격한 것은 알라위의 지위를 거의 높이지 못했다. 당장에 임시정부는 여전히 전적으로 미군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만약 정부가 정당성을 얻고자 한다면 군사력을 급격히 증가시키거나(요원해 보이지만) 정당성을 증가시켜야 한다(이는 미국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이다). 알라위는 또 다른 사담 후세인이 되기를 열망할지 모르나 그렇게 되려면 한참 남아 있다. 만약 그렇게 되면 그런 안정적인 정부가 진정으로 “친미적”인 것이 될까?


(5) 다섯째는 대량살상무기의 위협을 끝내는 것이다. 그것은 부시 정부가 이라크에서 그러한 무기를 찾지 못했다는 것뿐 아니라 이라크 침공이 핵무기 비확산 프로그램의 마지막 조각마저 당연히 없앴다는 것이다. 이란과 북한은 노력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 아니라 명백히 높였다. 남한도 그들의 발자국을 따르고 있는지 모른다고 지금 발표되었다. 만약 그렇다면 일본과 대만은 가만있을 수 있을까? 미국은 무엇을 할수 있을까? UN은? 해볼테면 해보라고 덤벼드는 것이 당연했다.


(6) 여섯째는 중동 지역에 “민주주의”를 확산시킨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든 달성이 되었는지 나는 찾을 수 없다. 민주주의가 제한없는 다당제 선거를 의미한다면 지금 이 순간 그러한 선거는 - 이라크, 이집트,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많은 나라들에서 - 지금의 체제보다 미국의 구미에 못미치는 체제를 만들어낼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부시정부는 이라크에서 그러한 선거를 최대속도로 촉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발을 빼왔다. “민주주의”는 부시일파에 좋은 결과만 가져다줄 때 선호되는 것 같다. 그들은 불행히도 뒤틀린 사람들이다.


(7) 일곱째는 그 지역과 세계에 걸쳐 친구들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미국에서 부시행정부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들조차도 그 정책이 정반대 효과를 낳았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들은 “만들어지지 않은” 친구를 갖고 있고 사람들에게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소위 친구들은 부시일파로 하여금 이것이 중요하지 않고 미국은 그 정책을 명령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게 할만큼 [부시일파를] 쇠락시켰다. 


(8) 여덟째는 미국의 모든 잠재적인 적과 방해자들에 대한 억지력으로서 미 군사력의 신뢰를 확립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사력 사용, 특히 압도적인 군사력은 부시행정부의 독특한  말인 “충격과 공포”로 끝날 경우에만 작동한다. 우리는 공포가 아니라 충격을 보았다. 거대한 미군이 이라크에서 날마다 커가는 대중 저항에 의해 저지될 때 그것은 공포라고 하기 어렵다. 미군이 부대원의 의미에서 극한까지 늘려져 있고 가까운 시일 내에 그 숫자를 확장할 수단이 거의 없다는 것이 명백할 때 그것은 공포라고 하기 어렵다. 미국의 군사 및 정보 대원들의 그들의 민간이 상관들에게 신중함을 요구할 때 그것은 공포라고 하기 어렵다.


신뢰를 보여주는 것에 있어 문제는, 성공이 성공을 토대로 한다면 성공 결핍은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부시체제는 이 달갑지 않은 목표를 달성했다. 이것이 만약 학교 숙제라면 성적은 “훌륭한”이나 “매우 좋음”이 아니라 기껏해야 “가까스로 통과한”이고 최악으로는 철저한 실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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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루트 가서 찍은 사진들 3


팔레스타인 저항을 나타내는 기념품 판매대


베이루트 팔레스타인 거주지역내 물을 파는 상점


팔레스타인 거주지역 내 총탄자국이 박힌 건물들

 


베이루트 국제회의 장면


영국의 조지 갤로웨이 의원. 그는 반전운동을 열심히 하여 노동당에서 제명되었다.


이라크인 참가단


 






팔레스타인 참가단

 


팔레스타인 저항 슬라이드


이스라엘 보이콧 캠페인 슬라이드


 


아시아 지역회의 모습

 


레바논의 저항투쟁에 대해 레바논 사람들이 준비한 연극


군사주의와 세계화 그룹 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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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루트 가서 찍은 사진들 2


이스라엘에 대한 투쟁, 감옥으로부터의 해방을 나타내는 벽화


국경 근처에서 이스라엘 초소에 폭탄을 싣고 돌진한 투사와 그 투쟁을 기념하는 간판


레바논과 이스라엘(옛 팔레스타인영토)의 국경을 나타내는 철망이 죽 이어져 있고 불과 몇미터 저쪽에 이스라엘 초소가 있다.


헤즈볼라의 투쟁을 나타내는 그림




원래 팔레스타인 땅이나 지금은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땅


베이루트 시내 팔레스타인 주거지역인 사브라&샤틸라 학살사건 사진. 이스라엘이 베이루트를 침공하여 2500명(공식기록상)의 팔레스타인 사람을 학살했다. (1982년 사건)


 


 


 


 


 


팔루자에서 온 셰이크 (성직자)


사브라&샤틸라 추모식 장면 (오른쪽이 그 지역 시장)


 팔레스타인 어린이


추모식에 서 있는 월든 벨로 교수


팔레스타인 거주지역의 아파트


 


베이루트 팔레스타인 거주지역 내 벽화그림. 팔레스타인 청소년 문화그룹이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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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루트 가서 찍은 사진들 1

베이루트 가서 찍은 사진 올립니다.

 

팔레스타인 영토인데 지금은 이스라엘이 점령하여 정착촌을 만든지역 (레바논 남부 국경지대에서 바라본 것)


헤즈볼라 깃발 사진

 

알-키암 감옥 정문. 이스라엘이 불법적으로 레바논 남부를 점령했을 당시 세운 감옥. 모진 고문이 자행되었다. 2000년에 헤즈볼라가 이 지역을 해방시킴에 따라 지금은 역사교육 장소가 되었다.

 


감옥 정문옆 안내판. 이스라엘 점령 당시 국제적십자가 들어온 이후에야 3개월에 한번씩 면회가 허용되었다.

 


고문을 나타내는 그림. 그 옆은 고문에 희생된 사람들 사진.




10일에 한번 10분씩 여성수감자들이 햇빛을 쬐는 공간

 


여성감옥 입구

 

감옥 내에서 저항하면 사진과 같은 작은 철제 상자속에 갇혔다고 한다.


 

 


묻고, 차고, 때리는 고문, 전기고문, 뜨거운 물 고문 등 온갖 고문이 행해졌던 장소. 사진속 인물은 감옥안내 가이드인데 11년간 이 감옥에 갇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가이드를 하는 것은 그때의 고통을 떠올리게 하지만 지금 저항활동의 일부라고 생각하기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감옥을 견학하는 베이루트 국제회의 참가자들


2년째 이스라엘 감옥에 갇혀있는 남편을 생각하며 흐느끼는 팔레스타인 여성. 2년동안 한번 면회했다고 한다.


징벌방. 하루~4개월까지 갇혔다.


사람들을 잡아들이던 차. 지금도 이 차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잡아간다고 한다.


헤즈볼라 지도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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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루트 갔다왔어요.


 - 헤즈볼라 깃발 사진

 

 

모든 점령과 침략에 맞서 저항하라 !
- 9. 17 ~ 19 베이루트 국제 반전 반세계화 전략회의 리포트

 


베이루트 국제회의가 열리기까지

국제적인 수준에서 반전운동은 2003년 2월 15일 전 세계적으로 1천 5백만명을 거리로 불러내 이라크 침략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성공적으로 조직함으로써 뉴욕타임즈에서도 미국과 다른 또하나의 ‘수퍼파워’라고 할 만큼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어서 5월에는 자카르타에서 국제회의가 개최되어 ‘자카르타 평화 컨센서스’를 이끌어냈다. 자카르타 평화 컨센서스는 ‘단결 선언’, ‘이라크에 대한 입장과 행동계획’, ‘세계화와 군사주의에 대한 행동계획’ 등 세가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반전운동의 기본 입장과 운동계획이라고 할 만하다. 이는 2004년 1월 인도 뭄바이의 반전운동 총회로 이어진다. 여기에서는 이라크 침략 1년이 되는 3월 20일 국제행동이 광범위하게 호소되고 합의되었다. 이번 베이루트 회의는 이러한 운동의 연장선에서 이라크와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반전(반세계화)운동 회의를 열자는 문제의식 하에 개최되었다. 또한 제안문에서도 말하는 바, “중동 지역의 반전 반세계화 운동과 밀착된 관계를 만들려는 의식적인 노력의 일부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전쟁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관련된 최근의 상황에 대해 어떻게 운동이 능동적으로 대처할 것인지 전략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이 회의의 주요 조직자인 ‘남반구 포커스’의 월든 벨로 교수는 발제문에서 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중요한 시기에 우리는 여기 베이루트에 모였다. 상황은 복합적이다. 이라크에서 미국은 점점 더 깊숙이 베트남과 같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는데, 2003년 3월 20일 침공 이후 미군 병사들의 사망 숫자는 9월 첫째주에 1000명을 넘어섰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아직도 시오니스트 장벽[팔레스타인 분리장벽]이 하루에 1킬로미터 비율로 건설중이다...오늘, 기업주도 세계화의 최고 기구인 WTO는 지난달에 개도국에 대한 경제적 무장해제를 촉진시키도록 고안된 ‘제네바 기본골격’ 합의를 가지고 제 발로 다시 돌아왔다.”


 




40여개 국가 260여명이 2박 3일동안 토론

베이루트 국제회의에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조직을 대표하는 참가자들이 모였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MST(브라질의 무토지농민운동), 캐나다자동차노조, 팔레스타인노조, 청년단체 등 풀뿌리 대중조직부터 각국의 반전단체들(영국, 호주, 그리스, 남아공 등의 반전연합, 미국의 정의평화연합), 팔레스타인 관련 단체들, 평화운동 단체들, 반세계화운동 단체들, 이태리공산주의재건당, 그리스녹색당, 레바논공산당, 헤즈볼라 등 정치조직들, 연구단체들 등등 다양한 스펙트럼이었고, 나라별로 보아도 태평양의 피지에서부터 동티모르, 남쪽의 아르헨티나에서 북쪽의 노르웨이까지 한자리에 모였다. 무엇보다 레바논, 이라크, 팔레스타인, 요르단, 이집트 등 현지 중동지역의 활동가들이 대거 참가하였고 거의 과반수에 이르렀다. 아랍지역의 반전 반세계화 운동이 처음으로 이렇게 국제적인 연대에 함께하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사회진보연대, 다함께, 이라크평화네트워크 등에서 참가하였다. 회의규모는 당초 예상을 훨씬 넘었는데 그만큼 국제적으로 반전 반세계화 운동의 향후 방향 토론에 대해 관심이 깊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각 대륙의 반전 반세계화 운동

회의 첫날 오전 레바논 조직위원회 단체들(헤즈볼라, 레바논공산당, 진보사회주의당, NGO네트워크, 알-레카클럽)의 환영사 이후 레바논에 대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점령 반대투쟁 사례를 들었고 오후에는 각 대륙의 운동 상황 보고를 들었다. 다음은 각 보고자들의 간략한 보고내용이다. 남아공에서는 100명 이상의 활동가들이 사회운동을 수행하고 있는데 반전연합을 결성해서 전쟁과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다국적기업 반대, 미제국주의 반대, 이라크전쟁 반대, 팔레스타인 해방을 주요 이슈로 하고 있다. 아프리카는 많은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팔레스타인 같은 경우도 허다하다. 반전활동가들이 대부분 반세계화활동가로서 제국주의와 다국적기업의 침략에 저항하는 운동을 조직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플랜 콜롬비아’와 같은 미국의 군사적 개입 문제에 대한 저항운동이 벌어지고 있고 수많은 미군기지에 반대하는 운동이 있다. 푸에르토리코 같은 곳에서는 승리하기도 했다. 또한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반대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유럽의 경우 미국과 마찬가지로 유럽 군사주의가 문제다. 한편 독일에서의 Monday Demonstration과 같이 신자유주의의 복지삭감, 사유화, 탈규제 등에 반대하는 운동이 반전이슈와 연결되고 있다. 10월 14일부터는 유럽사회포럼이 개최된다. 미국의 경우 미 정부는 국가 안팎에서 전쟁과 세계화를 벌이고 있는데, 민주당의 정체성도 공화당과 비슷하다. 즉 사회복지 삭감, 예방공격 등이다. 또한 미국 내에는 6000여개 군사기지가 있고 세계적으로는 120개 국가에 1000여개 기지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은 군사주의, 사유화 정책을 강제한다. 다가오는 대선에서 부시가 질 것이지만 전쟁과 세계화가 지속될 것이기 때문에 운동과 시위는 계속될 것이다.
중동에서 미국의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10년 이상의 이라크 제재정책도 실패했다. 시오니즘과 미제국주의에 대항하여 아랍 민중들은 저항하고 있다.

 

무엇이 토론되었나

둘째날인 18일에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되었다. 토론주제는 1) 전쟁을 저지하지 못해서 운동이 지금 위기에 빠져 있는가? 2) 우리가 전쟁을 저지할 수 있었나? 3) 우리 행동, 정치, 조직의 한계는 무엇인가? 4) 각기 다른 운동간의 관계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힘인가 한계인가? 5) 우리는 이라크나 팔레스타인의 저항에 대해 공통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가? 6) 미 대선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질 것인가? 7) 체첸이나 콜롬비아, 다르푸르(수단) 같은 곳의 갈등은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이었다. 나온 의견들을 대략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대부분 우리 운동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점령이 실패하고 있다. 2) 반전운동이 사회복지 삭감 항의 등 반신자유주의운동과 연계하고 있다. (독일의 먼데이 시위나 미국의 50만 시위)
3)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의 저항운동에 조건없이 지지 연대해야 한다. 이라크 민중들의 투쟁은 이라크만의 것이 아니라 아랍, 세계 전체의 투쟁이다. 4) 운동의 다양성을 강점으로 확대해야 한다.(인종, 성적차이, 인권, 민주주의 등등) 보편성을 강화해야 한다. 5) 미디어의 역할을 고발하고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6) 부시가 이라크에서 패배해도 운동은 더 강화되어야 한다. 미국의 실패는 미국 자본주의의 실패이므로, 자본주의 전체에 대해 투쟁해야 한다. 7) 여성의 권리에 대한 운동이 확장되어야 한다. 8) 전쟁범죄에 대한 침묵을 폭로하면서 대중을 조직하자. 국제 이라크전범 법정을 확대시키자. 9) 국제 행동의 날에 집중하고 이라크 민중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 10) 아랍국가들 내에서 민주주의 투쟁도 중요하다. 아랍운동들간의 연대를 실현해야 한다. 11) 미0년 대선에서 부시가 재선된다면 전쟁이 더 확대될 것이다. 부시를 반드시 떨어뜨리기 위한 국제적 시위가 대선에 즈음해서 필요하다. 12) 전쟁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위기와 연계되어 있다. 20년 동안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고통받는 모든 민중들의 투쟁에 연대하자. 12) 내년 이라크 헌법제정 회의 개최시 이에 대응하는 국제회의를 바그다드에서 개최하자.
한편 20-30명의 이라크 참가단과의 토론에서는 팔루자에서 온 셰이크(성직자) 아이만 모하메드가 “현재 이라크는 야만적인 공격을 받고 있고 종교시설마저 파괴되고 있다. 저항이 미군 등에 의해 테러리즘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미국의 이해에 해가 되면 테러리즘인 것이다. 안전은 그들만의 것이고 이라크인들의 것이 아니다. 이라크 정부는 미국을 쫓아내지 못한다. 이라크 저항은 순수한 저항이다.”라고 하면서 이라크 저항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이라크 참가단의 주요 제안은 저항을 조건없이 지지하고 연대해달라는 것이고, 내년에 헌법제정회의시 바그다드에서 국제회의를 개최하자는 것이다. 또한 감옥에 갇힌 이라크 여성의 문제도 중요하게 제기되었다.


팔레스타인 참가단과의 토론에서는 주로 분리장벽 철폐운동이 다뤄졌다. 역사적으로 점점 팔레스타인 지역은 축소되어 왔고 현재 가자, 라파, 예루살렘, 나블루스 등에서 장벽이 건설되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외부로부터 고립되어 있다. 또한 인접 국가들에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촌의 법적, 사회적, 정치적 상황도 가혹하다. 거의 생존조건 이하로 살고 있고 미숙련 하층 직업에만 종사해야 한다. 수자원을 비롯한 각종 자원도 이스라엘이 장악하고 있다. 이에 분리장벽을 철폐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이스라엘을 보이콧하는 캠페인을 해야 하고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갈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라크 국제회의에 대한 논란

회의 3일째인 19일은 원래 오전에 선언문 초안을 논의하고 오후에 최종 선언문을 논의하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그런데 일정이 변경되어 오전에는 브라질 활동가가 2005년 세계사회포럼에 대해 설명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회포럼 순서가 끝난 이후에는 1)이라크 점령 반대 2)팔레스타인 저항 3)경제적 군사적 세계화 등 세 그룹으로 나눠서 행동계획 논의를 하였다. 이라크 관련 행동제안은 점령감시센터 재개(Iraq Occupation Watch Center가 여러 문제로 인해 4월에 중단되었음), 10월 13-14일 일본에서 열리는 재건기금마련 회의 반대 성명서 조직, 전쟁기업 반대캠페인, 저항세력에게 식량과 의약품 지원, 이라크 전범 국제 민중법정, 외국용병 철수 캠페인, 10월 17일 국제행동, 국제적 이라크법률가위원회 구성, 내년 이라크의 헌법제정회의 개최시 이에 대응하는 국제회의 바그다드에서 개최 등이 발표되었다.
팔레스타인 문제 관련해서는 분리장벽 반대 캠페인, 이스라엘 보이콧, 국제방문단 조직, 11월 9-16일 국제행동, 12월 10일 세계인권의 날에 맞춘 국제행동, 내년 5월 15일 국제행동 등이 제안되었다. 경제적 군사적 세계화에 대해서는 군사기지 반대 캠페인, 2005년 WTO 6차 각료회의 저지투쟁, 이를 위한 대중교육과 캠페인, 국제금융기구에 대한 반대운동 등이 제안되었다.

이후 선언문 초안과 행동계획을 논의하게 되었는데 이때 이라크 대표단, 헌법제정회의에 대응하는 바그다드 국제회의에 대한 논란이 벌어졌다. 애초 이번 회의에 참가한 이라크 대표단에서 '이라크 내에서 정치적 공간을 창출하기 위해 내년 헌법제정 회의시 국제회의를 바그다드에서 열자'고 제안했고 월든 벨로 등등이 이를 지지했는데, 이에 대한 반대가 영국 등에서 제기된 것이다. 내용인즉슨 핵심은 지금 참가한 이라크 대표단이 대표성이 없는 작은 집단이라는 것이고, 이라크 내에서 모종의 정치적 기획을 하여 정치적 입지를 넓히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해 이라크 대표단을 조직한 것으로 보이는 활동가는 "물론 이라크 저항세력 모두를 대표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들은 팔루자, 사마라, 쿠파, 바그다드 등에서 왔고 저항을 하고 있다.“면서 문제제기를 일축했다. 몇 번의 인신공격성 발언들도 오갔고 ”이라크 저항세력의 광범위한 부분이 추진하여 요청하면 바그다드에서 국제회의를 할 수도 있지만 지금과 같이 작은 부분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추진하는 것은 할 수 없다“는 제기도 이어졌다. 급기야 이라크 대표단들이 회의장에서 철수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이라크에서 국제회의를 열자는 제안과 관련해서 문구가 3가지 제안되었는데 이것도 논란을 거듭하다가 '통과시키지 말고 선언문과 따로 분리하되 서명할 곳은 서명하자'는 의견이 제기되어 이에 동의하면서 논의를 마무리지었다. 이에 따라 선언문만이 합의된 것으로 되었고 앞서 많이 제안된 행동계획은 합의되지 못한채 남게 되었고 향후 메일링리스트를 통해 지지 연명을 받기로 하였다.


베이루트 회의가 남긴 것들
전체적으로 대략 평가해 보자면 첫째, 아랍지역 조직들이 대거 참석함으로써 국제적인 반전 반세계화 운동과 아랍의 운동이 연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레바논, 팔레스타인, 이라크, 요르단, 이집트, 모로코, 튀니지, 시리아 등에서 참여하여 운동의 관심사를 논의하고 인적 교류를 맺은 것이 이번 회의의 가장 큰 성과가 아닌가 한다. 둘째, 이 연장선상에서 이라크,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조건없이 지지하는 것에 동의했고 그들과 직접 토론함으로써 구체적인 과제들을 활발하게 제안할 수 있었다. 특히 팔레스타인 문제는 과제와 행동계획이 잘 조직되어 제출되었고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의 자체가 제대로 준비되지 못하여 일정이 계속 변경되었고 지나치게 팔레스타인, 이라크 문제만 부각되어 전체적인 군사주의의 문제, WTO-세계화 문제는 미흡하게 다뤄졌다. 넷째, 이라크에서의 국제회의 문제에 대한 논란때문에 선언문만 합의되고 행동계획이 합의되지 못하였다. 물론 이라크 저항세력이 어떻게 대표될 수 있는지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지나치게 대표성 문제와 국제회의 개최여부만 논쟁됨으로써 다른 행동계획이 충분히 토론되지 못한 것이다.

노르웨이 ATTAC의 한 활동가는 이번 회의가 여러 가지 경험을 공유하고 입장과 계획을 광범위하게 토론할 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다고 평가하였다. 반면에 그리스의 한 활동가는 바그다드 국제회의가 이라크 내에서 행동을 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텐데 이에 대해 개최 결론을 내리지 않은 것이 크게 아쉽다고 말하였다. 이라크에서 온 한 사람도 그것이 결정되지 않은 것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다. 이러한 평가는 다양하게 표출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세계의 반전 반세계화 운동이 서로 긴밀한 연관을 맺으면서 신자유주의 무장한 세계화에 맞서도록 지속적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반전 반세계화 운동 역시 그러한 국제적 운동의 일부로서 연대와 투쟁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전범 민중재판 운동, FTA-WTO 반대투쟁 등 현실적인 투쟁을 강화하면서 그러한 계기를 살려나가자.


 

- 베이루트 회의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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