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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9/01
    드라마 '주몽'과 현 정치비유
    한울타리
  2. 2006/08/23
    오늘은 잔업없는 날(1)
    한울타리
  3. 2006/08/21
    자동차 FTA, 소비자가 반기는 이유
    한울타리
  4. 2006/08/20
    비정규직투쟁은 시대적 대세이다.
    한울타리
  5. 2006/08/19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혹은 우리가 역사를 왜 하는가?
    한울타리
  6. 2006/08/18
    노동 문제에 대한 기독교인의 관심에 대하여(1)
    한울타리
  7. 2006/08/17
    최창집교수의 기고문
    한울타리
  8. 2006/08/17
    일제의 위안부는 강간방지를 위해서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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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6/08/16
    예쁜 소녀의 그림
    한울타리
  10. 2006/08/16
    작통권 환수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2)
    한울타리

드라마 '주몽'과 현 정치비유

미디어
한나라당은 부여의 대소왕자?
[인터넷은 지금] <주몽>은 시사 드라마? '자주-사대' 갈등 정치권 '복사판'
   
ⓒ MBC
"짐이 생각하는 부국강병은 부러지지 않는 강철창검으로 무장하는 것이 아니라 부러지지 않는 자긍심으로 적을 맞아 싸우는 것이다"

지난 29일 방영된 MBC 드라마 <주몽> 29회에서 금와왕이 외친 말이다. 한나라에 대한 자주와 사대 사이에서 갈등하는 드라마 속 부여의 모습이 전시 작전통제권을 둘러싸고 갈등하고 있는 한국 정치판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네티즌의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부여의 대소왕자?"

30일 <오마이뉴스>가 여야의 전시 작전통제권 공방을 다룬 "'자주'에 국민절반이 최면걸려"-"남의 나라 의원처럼 처신 말라"는 기사에 달린 한 댓글은 한나라당을 <주몽>에 등장하는 대소 왕자에 비유했다.

이 댓글을 쓴 '정도'(필명)는 "부여를 위해 원치않는 결혼까지 하게되는 대소왕자는 결국 왕이 되기 위한 자신의 욕심때문이란 걸 외면한 채 '부여를 위해서'라고 하고 있다"며 "왕이 되고자 고조선 유민이 어떻게 되건, (부여가) 한나라에게 굴욕을 겪든 말든 정권을 잡기 위해 몸부림 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정도'는 이어 "정권을 잡는 것조차 '조국을 위해서'라고 최면을 거는 쪽은 한나라당으로 보인다"며 한나라당의 전시작전권 환수불가 공세를 비판하는 주장을 내놨다.

몇몇 네티즌들이 이 댓글에 공감을 표시하고 나섰다. 다른 독자는 사출도(부여의 4부족, 마가·우가·저가·구가)를 선동, 대소 왕자의 태자책봉을 밀어붙이기 위해 한나라를 공격하려는 금와왕에 반기를 든 마가를 보수세력에, 그 마가측의 사주로 '전쟁불가'를 외치는 신녀들을 보수언론에 비유하기도 했다.

또 다른 독자는 "대소가 허접한 강철검을 얻어놓고 부여의 자주권을 갖다바치는 상황이나 미국이 버린 F-15K를 제돈 주고 샀는데 비행기가 추락하는 상황과 비슷하다"며 여야할 것 없이 정치권 전체를 비난했다.

극중 한나라와 실제 한나라당의 이름의 유사점도 언급됐다. 독자는 "드라마에서도 한나라가 나오던데 한나라당과는 어떤 관계로 봐야하느냐"는 댓글을 달았다.

드라마 <주몽> 속에서 부여 금와왕의 세 아들 중 첫째 왕자인 대소는 자신의 태자책봉을 위해 한나라 현토군 태수인 양정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인물. 그는 부여는 철기군을 갖춘 한나라와 적대시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부여의 자주성을 찾으려는 주인공 주몽과는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주몽> 극중에서 자주성과 사대성이 대립하고 있는 것이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불가를 외치고 있는 한나라당 및 일부 보수세력들의 모습과 비슷하게 보인 것이다.

김근태·손학규 "내가 주몽"...김용갑 "이종석 장관은 세작"

ⓒ MBC
이같이 드라마 <주몽> 속의 인물의 역할과 정치권을 연관짓는 것은 정치권에서 먼저 시작됐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에서 '주몽'을 끄집어냈다. 투자와 고용촉진을 위해 재계와 관계개선을 모색하겠다는 것을 소금 무역이 중단된 부여를 위해 고산국의 소금산을 찾아내는 극중 주몽의 활약에 비유한 것이다. <주몽>에 등장하는 간첩도 정치권에서 응용, 김용갑 한나라당 의원은 이종석 통일부 장관을 '세작'에 빗대기도 했다.

대권주자로 분류되는 이들 중에도 <주몽>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현재 전국을 돌며 민심 100일 대장정을 진행하고 있는 손학규 경기도 지사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지난 7월 '드라마 주몽에 손학규 있다'는 글이 올라왔다.

대소·영포·주몽 왕자 3형제가 태자 경합을 벌이면서 대소와 영포는 궁안에서 관직을 맡는 반면, 주몽이 세상을 배우기 위해 연타발 상단에서 일반 백성의 삶을 사는 것이 100일 대장정을 하고 있는 손 전 지사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자주-사대' 갈등구조에 색깔공세.. "<주몽>이 주체 이데올로기 대변"

그러나 이런 등장인물의 세부적인 모습이 현실 정치인과 비슷하냐 아니냐보다는 역시 <주몽> 줄거리의 큰 틀을 이루는 것은 한나라와 부여의 관계, 즉 사대냐 자주냐라는 갈등 속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극중 주몽의 아버지로 나오는 해모수가 한나라의 속박으로부터 고조선 유민을 구출하기 위해 한나라를 공격할 때도 부여는 해모수를 도울 것인가 말 것인가로 갈등했고, 29회까지는 한나라의 진번·임둔군을 칠 것이냐를 두고 또다시 커다란 갈등을 겪었기 때문이다.

<주몽>이 이처럼 자주와 사대의 갈등 속에 전개되는 양상을 보이자, 드라마에 대한 보수세력의 '색깔공세'가 시작됐다.

보수성향 인터넷신문 <업코리아>는 지난 25일 '주체 이데올로기로 덧칠한 <주몽>과 <연개소문>'이라는 기사를 통해 "때 아니게 고구려와 관련한 드라마가 동시에 상영되고 있다"며 "<주몽>과 <연개소문>은 철저하게 북한의 '주체 이데올로기를 대변한 드라마"라고 결론지었다.

이 기사는 "<주몽>과 <연개소문>을 통해 국민들은 알게 모르게 김정일 정권이 노리는대로 자주 이데올로기와 외세 특히 미국과 일본에 대한 적대의식에 물들어가고 있다"며 "참으로 교묘한 상징조작이 아닐 수 없다"고 주장했다.

"투전판 한번 쉬셔야"에 "바다이야기를 염두에 둔 발언"

ⓒ MBC
<주몽>의 이야기 전개나 인물설정이 정치상황과 맞물리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많은 시청자들은 드라마 중간중간 작은 장면들에서 큰 기쁨을 얻고 있다.

지난 29회 방송에서 단연 화제가 됐던 것은 둘째 왕자 영포와 도치의 부하 한당이 나누는 대화내용.

한나라를 치려는 주몽을 믿고 선봉에 나서겠노라고 큰 소리 쳤던 영포는 대소가 황후세력과 마가를 등에 업고 전쟁을 좌절시키려하자 갈등에 빠진다. 도대체 누구를 따르는게 자신에게 득이 될지 고민하는 영포에게 한당은 "투전판에서 홀인지, 짝인지 모를 땐 어떻게해야 하는지 아십니까"라고 묻곤 "그냥 한 판 쉬십시오"라고 말한다.

심각한 고민에 빠진 영포에게는 황당하게 여겨지는 답이다. 그러나 한당은 이어 "투전판에 낀 사람 중 십중팔구는 절대 쉬지 않는다"며 "괜한 호기를 부리다 돈을 잃는다"고 충고했다. 주몽이나 대소 둘 중 한편에 반드시 붙으려고 하지 말고 물러나서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라는 말인데, 이를 요즘의 세태와 관련 지은 해석도 나왔다.

디지털카메라 동호회 사이트 <디시인사이드>의 주몽갤러리에서 한 네티즌은 "오늘 한당이의 발언은 '바다이야기'를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사행성 게임장에서 쉼없이 도박에 몰두하다가 돈을 잃고 마는 세태에 대한 드라마 <주몽>의 충고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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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잔업없는 날

몇년 전부터 우리는 수요일을 가정의 날로 지키고 있다.

 

물론 노동조합이 강제하는 날이다.

우리가 세계에서 제일 장시간 노동하는 (2700시간~3000시간)나라이고 그중에 제일 많은 시간을 회사라는 일터에서 보내다보니 집에는 잠만 자는 곳이 되어 버렸다.

 

언론에서 우리를 나타내는 표현은 파업때 뿐이어서 귀족들의 파업이라는 수식어로 도배되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우리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그 주일 중 가운데에 위치한 수요일을 잔업없는날로 선포하고 17시 퇴근을 실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니까 주간조 때 수요일이면 잔업을 하지 않으니까 한달이면 두 세번 정도 잔업이 없는 것이다. 잔업없는 날의 명칭을 가정의 날로 바꾼 것은 이날 만은 일찍 집에 들어가 가족과 함께 지내보자는 의미로 하였으나 지금은 변질되어 각종 모임이나 회식을 하는 날로 바뀌고 오히려 집에는 얼큰하게 취해 들어가거나 더 늦게 들어가는 상황으로 변해버렸다.

 

그러던 중 노조가 회사와 단협을 체결하면서 주야 맞교대인 근무형태를 변경하여 2009년부터 심야작업을 하지않는 주간교대근무시대를 열게 되었다.

 

이에 따라 석식 후 잔업을 2시간 하는 현재 근무시간을 우선 석식시간을 없애고 대신 빵과 음료수로 대체한 다음 15분 휴식후 바로 잔업에 (1시간30분동안 근로)임하면서 오후8시 퇴근하던것을 6시45분에 마치는것으로 함에 따라 한동안 수요 가정의날이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조합원들이 반발하여 집행부가 교체되자 다시 복원되기에 이르렀다.

물론 회사와 협의가 되지않자 노동조합이 임으로 한 것이다.

그래서 오늘 나는 집에가서 가족끼리 외식을 하기로 하였다. 모처럼 만의 외식! 무엇을 먹을까 궁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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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FTA, 소비자가 반기는 이유

이글은 '다음'에 올라온 글(권영주기자)로서 본인이 생각하는바와 다르지만 실제 국민들이 이같이 느끼고 있다면 노동조합의 현 투쟁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이곳에 옮겨놓았다.

실제 미국시장에 한미FTA가 통과될경우 현대차는 소나타의 경우 50만원 인하효과가 있지만 미국은 한국에 그 10배 정도의 인하효과가 발생돼 이 때문에 국내 자동차시장이 타격받을 것이기에 반대하는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미자동차업계의 공세는 계속 강화될 것이다.)

이를 핑계로 반대를 내세우는 우리로서는 그동안 보수 언론의 공세속에서 '귀족노조 제밥그릇챙기는 투쟁' 등 대국민의식이 매우 안좋은 상태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같은 인식이 하루 아침에 조성된것은 아니며 지난 50여년 군사정권이후 계속된 정권과 수구언론의 대노조 압살정책에 따른것이다. 또한, 지금도 현대자본의 대 노조 압살적책이 유지되고 있기에 그렇다. 물론 노조도 대 사회환원운동(현자노조 노조소식지 참고)을 통해 인식재고에 나서고 있지만 이는 언론에 보도조차 되지 않고 있다. 

 (기자가 쓴 관계로 대 노조인식에 한계를 가지고 쓴것임을 참고하시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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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자동차 부문 FTA가 체결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

국산-수입, 가격 경쟁 불가피


한국과 미국의 자동차 부문 FTA 체결을 위한 협상이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다. 물론 미국이 배기량 기준의 국내 세금부과 정책에 가격기준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제시, 논란이 있지만 양국 사이의 자동차 부문 FTA 체결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자동차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한미 자동차 부문 FTA가 체결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자동차 부문에서 한국과 미국의 무역 불균형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한 자동차는 모두 70만8,000대 가량이다. 반면 한국에서 판매된 미국차는 불과 3,800대다. 이에 따라 미국은 국내 완성차 수입 관세 인하를 줄기차게 요구해 왔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양국간 자동차 부문 FTA 체결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물론 국내에서 미국산 자동차의 판매가 신통치 않은 이유를 제품력과 브랜드에서 찾을 수 있지만 미국으로선 단 한대라도 한국에서 자동차를 더 팔 수 있다면 FTA를 주저하지 않을 태세다.

 

그렇다면 양국 사이의 자동차 부문 FTA가 체결되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 업계에선 자동차 부문의 경우 한국은 별로 득이 될 게 없는 반면 미국은 지금보다 가격 경쟁력이 더 생겨 유리할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국내 수입차 관세 8% 인하는 결과적으로 세금 등의 인하와 겹쳐 10%의 가격 하락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의 경우 현재 미국 내 현지 생산을 늘리고 있는 상황이어서 미국 내 수입차 관세 2.5% 인하에 따른 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소비자, FTA가 서비스경쟁 부추겨

 

그러나 국내 소비자 측면에서 보면 FTA가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그만큼 수입차와 국산차의 가격차가 줄어 선택폭이 넓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현재 국내 1위 업체인 현대자동차의 쏘나타 2.0 럭셔리 고급형은 2,157만원이다. 다음으로 싼타페 2WD MLX 고급형은 2,591만원이다. 수입차 중 가장 저가인 포드 몬데오 2.0이 2,660만원임을 감안하면 쏘나타 2.0과 몬데오 2.0은 아직 500만원 정도의 가격차를 보이는 셈이다. 또한 싼타페 4WD MLX 고급형은 2,781만원이며, 쏘나타 F24 프리미어는 2,791만원이다.

그러나 미국과의 FTA 체결로 미국산 자동차의 국내 판매가격이 10% 정도 내려가는 점을 고려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쏘나타 2.0 럭셔리 고급형은 2,157만원으로 변함이 없지만 포드 몬데오 2.0의 가격은 2,394만원으로 내려가 두 차종의 가격차는 불과 220만원으로 줄어든다. 아울러 싼타페 2WD MLX 고급형은 가격 변동이 없지만 크라이슬러 PT크루저는 2,990만원에서 2,691만원으로 내려가 싼타페와는 불과 100만원 차이로 좁혀지게 된다. 또한 그랜저와 경쟁하는 포드 파이브 헌드레드는 가격이 3,582만원으로 그랜저 3.3과는 불과 36만원 차이에 그치게 된다. 현재 두 차종의 가격차가 430만원에 달하는 점을 고려하면 직접적인 가격 경쟁이 벌어지게 되는 셈이다.

 

소비자들이 자동차부문 FTA 체결을 원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국산차와 수입차의 가격차가 줄어들어 가격 경쟁이 벌어지면 곧 서비스와 제품의 질적 성장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자동차동호회연합 이동진 대표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같은 가격에서 보다 많은 차종이 구비되는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경쟁이 이루어져 소비자에게는 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이 대표는 “소비자 측면에서 보면 어떤 차를 사든 애국심과는 상관이 없다”며 “경쟁이 이루어지면 국산차의 가격 상승폭도 보다 줄어들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결과적으로 한미 자동차 FTA가 현재 내수시장에서 많은 이익을 취하는 국산차 업계의 전략에 제동을 걸 수 있다고 보는 셈이다. 

 

국내 업체, 팔 수 있을 때 팔아라

 

FTA 체결이 국산차 업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이미 자동차 업계도 다각적인 분석을 마련, 대책을 세워두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국내 1위인 현대차는 FTA가 체결되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았다고 판단해 체결 전까지는 가격을 최대한 끌어 올린다는 내부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안다”며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받겠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어차피 FTA가 체결되면 미국산 자동차와의 가격차가 줄어 섣불리 가격 인상을 단행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젓는다’는 속담처럼 비싼 가격에도 자동차가 팔릴 때 많이 팔아두는 게 가장 효과적인 전략으로 판단한 셈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이 같은 전략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고 있다. 자동차10년타기운동본부 임기상 대표는 “요즘 소비자들은 매우 현명해서 현대차가 해마다 찻값을 인상하는 점에 대해 노조파업 등 회사 내적 요인이 반영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제대로 된 원가상승 요인이 있다 해도 노조파업에 대한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즉, 현대차가 찻값을 인상하면 할수록 인상요인에 대해 섣불리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내부적 비용 상승, 소비자 전가 문제

 

이와 함께 임 대표는 “대부분의 기업은 자신들의 제품이 뛰어나고 훌륭해서 소비자들이 찾아주는 것으로 생각한다”며 “그간 현대차가 커올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국산차를 사야 한다는 소비자들의 신뢰가 바탕이 됐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소비자들이 회사를 키워 준 것이지, 회사가 스스로 커 온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시장 지배력을 활용, 회사의 각종 문제로 인해 발생한 비용을 소비자에게 찻값으로 전가하는 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관행이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의 최대 목표인 이윤을 위해서라면 저항이 있어도 밀어 붙이게 돼 있다”고 전제한 뒤 “수입차 점유율이 일본과 같은 20%까지 도달할 때까지는 현대차가 시장 지배력을 지금보다 광범위하게 활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문제는 소비자들이 피해의식이 있어도 결국 현대차를 많이 사는 것”이라며 “가격 비싸다고 항의의 목소리를 내도 소비자들이 줄기차게 현대차를 구매하는 한 가격 인하 또는 상승폭의 둔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찻값 인상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면서도 기꺼이 비싼 값을 치루고 제품을 구입했던 게 현대차의 배짱을 키워 준 셈이다.

이와 관련, 자동차동호회연합 이동진 대표는 “현대차가 국내 소비자들을 화나게 하는 이유는 회사를 키워 준 국내 소비자들에게 고마워 할 줄 모르는 것”이라며 “만약 정말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면 지금처럼 노조가 매년 파업을 하고, 이어 회사가 찻값을 어김없이 인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생산성 향상이 선결 과제

 

한편, 현대차가 FTA 체결에 따른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는 파업도 이제는 끝나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된 견해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 5년간 평균 8.4%의 임금인상을 얻어 냈다. 이는 같은 기간 평균 물가상승율 3.34%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물가보다 임금이 더 오른 만큼 생활은 넉넉해진 셈이다. 하지만 생산대수는 1.4% 증가에 그쳐 임금은 뛰지만 생산성은 오히려 기는 현상을 초래했다. 지난 2002년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 데는 31.9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2003년은 임금이 8.6% 인상됐음에도 대당 제작 시간은 32.3시간으로 늘었다. 2004년의 경우 임금은 7.8% 올랐지만 대당 제작시간은 33.1시간으로 증가했다. 이에 현대차 관계자는 “조립공장별 근로자의 갈등도 생산성 저하에 걸림돌이 됐다”며 “회사 임의대로 전환배치를 할 수 없다보니 생산성이 쉽게 향상되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현대차에 따르면 공장의 경우 조립공장별로 근로자와 생산 차종이 배치돼 있다. 1공장, 2공장, 3공장 등으로 나눈 뒤 공장별로 생산차종을 투입, 만들어 내는 방식이다. 그러나 공장별로 근로인원과 생산대수는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어 인기차종의 경우 정규시간도 모자라 근로자들이 잔업과 특근을 통해 생산량을 보충하지만 비인기차종의 경우 정규시간도 남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에 따라 일부 생산라인을 전환배치, 생산량을 늘리면 되지만 이는 곧 근로자들의 임금과 직결되는 사안이어서 회사로선 해결이 쉽지 않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생산성, 합리적 방안 강구해야

 

현대차 노조의 경우 정규 근로시간의 시간당 평균 임금은 근로자의 근속연수에 따라 3,900원부터 9,200원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정규 근로시간 외 잔업과 특근을 할 경우 시급의 1.5배를 받게 돼 있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따라서 인기차종을 생산하는 공장의 경우 잔업과 특근으로 많은 임금을 가져갈 수 있다는 점에서 쉽사리 라인의 이전 배치를 반기지 않게 된다. 같은 현대자동차에 근무하고, 같은 기간 근무했다 해도 임금 차이가 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회사로선 이전 배치를 통해 근로강도도 줄이고, 임금도 골고루 나눠줌과 동시에 생산성도 올릴 수 있는 일이지만 근로자들로선 돈이 걸린 문제라는 점에서 공장별로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 한 마땅한 해결책은 없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현대차 관계자는 “공장별로 상생을 하는 방안을 찾아야 하지만 근로자 사이에서도 돈 문제로 적지 않은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며 “간혹 노-노 갈등이 엉뚱하게 회사로 불똥이 튀어 조립라인이 정지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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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투쟁은 시대적 대세이다.

작년 교선부장시 쓰던 글이 메일함에 있길래 옮겨보았다.

제목은 비정규직투쟁은 시대적 대세이다 라는 것이다.

많은 사업장에서 비정규직투쟁이 진행되지만 원.하청이 함께 투쟁하기란 매우 어려운것이 현실이다. 이글은 작년 7월 초에 씌여진것이니 벌써 1년이 훌쩍 지나갔다.

이런식의 노조소식지가 정규직 조합원에게 매주 한차례씩 배포되었다. 원하청간 공식 회의체계로 주1회 정기모임이 있었고 비정규직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왜 우리가 함께 하려는지에 대해 설명회도 가지며 조직율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정작 정규직 조합원들은 비정규직과 함께 투쟁하려는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쉽게 바꿔지질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조합원들은 우리 집행부는  정규직이 아니라 비정규직집행부 같다는 볼맨 소리부터 상당한 불만이 쏟아졌다.

 

그러나 꿋꿋하게 집행기조를 유지했던 것은 원 하청간 집행부의 끈끈한 유대가 원인이였다.

만약 비정규직 집행부가 자신들과 함께하지 못할거라는 식으로 우리를 신뢰하지 못했더라면

벌써 와해 되었을 것이다. 900여명중 500여명이 넘는 조직율을 유지하며 비정규직철폐를 외쳤던것은 집행부에 대한 불만을 참고 이해해준 조합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비정규직이 라인을 끊고 투쟁할 때 비정규직을 향해 오히려 정규직이 큰소리를 쳤더라면 투쟁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현장으로 복귀한지 8개월여

집행부가 바뀌면서 비정규직의 조직력이 와해되고 있다. 이젠 200여명만 남았다는 소리도 들린다. 집행부가 함께하지 못한다는 소위 시늉만한다는 원하천간 신뢰가 깨진것이 원인일것이고 집행의 초보수준이 그 원인일것이다.

지긋지긋한 비정규직 투쟁이다. 솔직히 답이 없는 싸움이다.

법은 자꾸 개악되고 회사는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도 인정치 않는다고 하고 오히려 억울하다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각각의 조합원들도 이젠 지쳐 간다.

어디 비정규직 투쟁을 시원~하게 해결 할 수 있는 답 좀 한번 줘 보슈~~



비정규직 투쟁은 시대적 대세이다.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힘이 마음껏 발산되는 파업투쟁이 시작되고 있다. 파업투쟁을 통해 자신감을 스스로 체득해 나가면서 더욱 강고하게 노동조합으로 단결하고 있다.
1년 6개월이란 짧고도 긴 시간들 속에 때로는 불신과 반목 넘어 이해와 믿음으로 노동조합을 만들어 온 것이다. 파업투쟁을 통해 생산라인을 정지시키고 물리력을 통해 관리자들과 맞짱을 뜨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정규직 노동조합 틀에서 고민하고 주장하는 것은 비정규직 투쟁에 있어 합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법적인 문제를 논하지 않더라도 정규직 노동조합은 그동안의 투쟁을 통해 조직력과 재정능력이 담보되어 있다. 노사간에 기본적인 단체협약도 체결되어 있다. 조합원 가입방식이 ‘유니온 샵’이기 때문에 쪽수가 급격히 줄지 않는다. 또 정규직은 노조활동을 통해 해고가 되어도 현장에서 일하는 조합원과 동일한 생계비를 지원 받는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조합은 조직력과 재정능력이 불안정한 상태이다.
이미 우리는 울산과 아산의 비정규직 투쟁을 통해 소중한 교훈들을 얻고 있다. 사측의 노골적인 탄압이 들어오면 당연히 분노하는 노동자들은 일시적으로 증가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조직력(조합원 수)이 급속히 감소하는 것을 보았다. 또한 재정능력이 불안정하다 보니 해고된 동지들에게 생계비를 지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조건과 현실속에 우리는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더욱 강하게 철옹성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물론 비정규직 주체들의 역할이 핵심이지만 동시에 정규직 동지들의 적극적인 연대가 동반되어야 한다.

 

현대자본은 끊임없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갈라치기 하려는 이데오르기를 유포하고 있다. 탄압방식도 상식을 초월하는 막가파식으로 가고 있다. 89년 현대중공업 시칼테러를 능가하는 방식이 아직도 통용되고 있다.
이런 현대자본의 탄압에 대응하는 방법은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더욱 튼튼하게 만들은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만 터지면 ‘무족건 죽이고 보자’는 식의 대응방법이 현대자본의 속성이다. 그러나 공장 곳곳에서 비정규직이 조직되고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있다.
아산공장, 울산공장, 전주공장, 기아 화성공장, 현대 하이스코공장에서 비정규직 노조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시 정주영회장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노동조합은 안 된다’고 했지만 우리는 노동조합을 만들고 18년의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지금 정몽구 회장이 비정규직 문제를 18년 전처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모든 탄압과 착취를 거부하여 당당하게 투쟁 전선을 만들어 가고 있다. 머지않아 울산, 아산, 전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현대자본을 타격하는 공동의 투쟁전선이 형성될 것이다. 이런 노동의 역사를 누구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정몽구 회장은 직시해야 하며, 그동안의 불법경영을 중단하고 윤리경영을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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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혹은 우리가 역사를 왜 하는가?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혹은 우리가 역사를 왜 하는가?

”저는 나라 만들기 그 자체는 본질적으로 총구를 앞세운 전쟁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가 그러한데다가 사회 자체의 약체성이 한국에서의 국민 국가 만들기를 무척이나 폭력적인 과정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하는 나라 만들기 과정에서 1948년8월에 있었던 대한민국의 건국 그 자체는 겨우 시작이 불과합니다. 어느 정도 그 과정이 일단락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개발 독재가 끝나고 민주화 시대가 열리는 1987년 언저리가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러한 장기적이며 과정적 시각에서 한국 현대사를 이해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볼 때 일제가 남긴 전체주의적 전시 경제 체제를 해체하고 자유시장경제 체제로 대한민국이 성립된 것은 출발로서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 책세상, 2006, 제2권, ”대담”, 식민지 유산의 청산과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 대한 서울대 이영훈 교수의 발언 중에서).

등잔 밑이 어둡다라고 하던가? 나는 대학의 졸업장을 따고 역사를 생업을 한 지 십여 년 ......



등잔 밑이 어둡다라고 하던가? 나는 대학의 졸업장을 따고 역사를 생업을 한 지 십여 년 됐음에도, 역사를 한다는 것은 뭔 의미인지 솔직히 고백하건대 아직도 자기 자신에게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 물론 기술적인 측면이야 하다보니 좀 익혔다.  연구사적 검토부터 시작하여 일차 자료를 뽑고, 기존의 연구자들이 지적하지 않은 부분을 지적하고 끝에 한 시대에 대한 총체적인 결론을 내리는 척 조금 해보고… 생업이다 보니 자료와 연구비만 주면 웬만한 역사의 한 부분을 잘 가위질해서 보기 좋은 논문으로 재구성할 자신이 있다. 한데, 그건 옛날 사람들이 이야기했던 용 (用), 즉 기능이지 체 (體 – 본질)은 아니다. 가위질할 수 있다는 것과, 그 가위질을 연구비를 받으려는 탐심 이외에 도대체 왜 하는지를 본인이 스스로 이해하는 것은 두 개의 다른 이야기다. 산 사람들의 일도 바쁜데, 죽은 자들을 왜 무덤에서 불러내고 그 관련으로 글 장난을 일 삼는가? 역사를 왜 하는가에 대한 정답은 나에게 없지만 적어도 역사의 묘체 (妙體)와 효용 (效用)에 대한 하나의 변명은 준비돼 있다.

 

붓다가 생사 (生死)를 고해 (苦海)로 보고, 마르크스와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같은 뿌리의 근본적 자각을 요즘 말로 표현하여 일차원화 (一次元化)된 인간의 내면까지 스며든 전도된 허위인식, 얼굴이 되고 만 사회적 가면의 이야기를 해왔다. 물론 다른 시각에서 여태까지 인류가 살아온 코스를 낙 (樂)의 증강 과정, 즉 인간 생산 능력의 증가에 따란 소비 능력과 향락 (享樂) 능력의 향상 과정으로 볼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 소비가 일차원화된 인간의 내면적인 황폐화와 자아 상실을 호도하는 기능을 한다고 반박해도 계급 사회의 통사 (痛史)를 낙사 (樂史)로 볼 사람들은 어차피 그렇게 보게 돼 있다. 그런데, 저들에 대해 나로서 최후의 논거 하나 있다. 인류사에서 폭력이 멈추어진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생산 능력이 증가됨에 따라 폭력 능력도 증가될 뿐만 아니라 그 방법마저 교묘해져 폭력도 우민 (愚民)들이 즐겁게 누리는 하나의 소비품이 된다. 2003년, 미국 폭탄들이 바그다드의 허공에서 벌인 불꽃놀이를 텔레비전 앞에서 즐겁게 지켜보고 있었던 그 수많은 미국인들을 한 번 생각해보시기를. 매체라는 이름의 연금술사가 새롭게 도살된 인간의 피와 살을 선남선녀를 즐겁게 할 제호 (醍醐), 옛날 불경들이 이야기했던 하늘 신들이 마시는 최상의 맛의 우유로 만든다. 우리가 신이 된 것인가? 악마가 돼가는 것인가?

 

역사는 부정 (不正)한 사회적 관계, 전도된 의식 속에서 만들어지는 고통의 과정이라면, 죽은 이들을 무덤에서 불러낼 만한 정당한 이유는 딱 한가지 밖에 없을 것이다. 옛날 말로는 중생으로 하여금 이고득락 (離苦得樂)하게 하려고 그들에게 고통과 그 고통을 벗어날 수 있다는 길의 진실을 이야기한다 하는 것이고, 마르크스라는 보살마하살 (菩薩摩訶薩)이 이 세상을 거쳐간 이후의 말로는 계급 사회에서의 지배 관계라는 맥락에서 발생되는 고통과 억압, 그리고 저항을 여실히 보여주고 계급 사회를 벗어나는 길을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제시해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아주 좋게 들려도 구체적으로 가위질하는 그 과정에서는 늘 숱한 문제에 부딪치고 결국 체 (體)를 포기하고 용 (用)만을 요령껏 살리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말이야 쉽지 역사의 속살을 건드리다 보면 억압이 어디에 있고 저항이 어디에 있는지 가끔가다 판단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예컨대 항일 저항 세력으로서 그 사회적 인생을 시작한 김일성은, 인민들을 지배하려는, 또한 지배하고 있는 억압적인 존재가 된 것은 대략 언제부터인가? 주민들에게 숙식 제공을 강요하면서 투쟁하는 유격대라는 ”태생적 조건” 자체 안에서 – 김일성의 유격대가 일제 당국의 보고서에 의거하더라도 상당수의 주민들의 호응을 얻었다고 하지만  – 이미 ”억압성의 씨앗”이 감추어져 있는 것인가? 아니면, 진정한 혁명을 포기한 지 오래 된 스탈린주의 국가 소련의 장교가 됐다는 것은 김일성을 결정적으로 ”해방 투사”에서 ”직업적 간부”로 바꾸었다고 봐야 하는가? 만약 우리가 북한 정권의 성격을 그 초기부터 ”지배와 피지배 관계” 맥락에서 파악한다면, 나중에는 견제 내지 숙청 당했지만 초기에는 그 정권에 적극 참여했던 식민지 시대의 거물급 노동 투사 – 예컨대 1929년에 원산 총파업 후원회 위원장을 했던 오기섭 선생 (吳琪燮: 1903-?)이나 평양, 함흥 등지 적색노조 조직자인 정달헌 선생 (鄭達憲:1899-?) – 의 이북에서의 활동을 과연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식민지 조선에서의 일본인 노동자들을 과연 ”지배 그룹”으로 분류해야 하는가, ”피지배 그룹”으로 분류해야 하는가? 그들이 조선인 노동자들과 함께 파업을 벌이는 경우들도 종종 있었지만 조선인 동료보다 높은 월급을 받으면서 조선인들을 감독하는 위치에 쉽게 올라갈 수 있는, ”포섭된” 노동자이었다는 것도 엄밀히 식민지 역사의 사실이지 않는가? 즉, 우리가 역사를 ”지배”와 ”저항”, ”고통”이라는 그 본질적 내용으로 본다 해도 어떤 정답도 내리기 곤란한 문제들이 무수히 생긴다. 굳이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으로 빠지고 싶지는 않지만, 생산 수단이 피지배자들의 손으로 돌아가게 만들 세계혁명의 순간 이전까지 자본주의적 근대성의 세계에서 ”반란”이 체제 속으로 포획되어 새로운 ”억압”을 낳는 악순환이 계속 반복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을 지우기가 힘들다.

죽은 자를 불러내는 그 허무한 일에서 애타 (愛他)와 미래 지향의 어떤 뜻을 이루어보려는 일념으로 정진을 시도해도, 추상적인 이념이 그저 이념으로 남은 채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얼핏 보면 ”역사하기”가 ”과학하기”보다 한 단계 수월한 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에게 쓸 모 있는 역사를 만들어주기가 풀리지 않는 고민의 연속이다.

 

그런데, 보수, 극우 신문의 ”대서특필” 덕분에 출판되자마자 화제에 올랐던 <… 재인식> (박지향, 김철, 김일영, 이영훈 등 엮음, 2006)을 펴볼 때에 가장 믿어지기 어려운 부분은, ”재인식”이라는 다분히 성찰적 의미의 단어를 제목에까지 올린 이 책에 ”역사하기”의 의미에 대해 이토록 성찰이 담겨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국제적 기준”에 맞추어 ”일국 사학을 극복해보려는”, 다분히 보수적인 입장에서 최근 한 세기의 역사를 다시 돌아보자는 의도 그 자체를, 이념을 달리하는 사람이라 해도 죄악시할 필요야 없다. 만약 보수의 보편적인, ”국제적인” 가치가 예컨대 개인의 자율성이나 남녀 평등이라면 그러한 차원에서 우리 근현대사를 성찰해본다는 것이 의미가 깊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는 가부장적 색채가 꽤나 짙었던 1980년대의 ”운동권” 을 비판해도 좋고 북한 가족에서의 여성의 불평등한 지위와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의 지속 을 비판해도 얼마든지 좋다.  ”진보”를 자임한다고 해서 비판을 받지 않는 성역이 될 권리가 없는 것이고, 보수가 보편적인 가치로부터의 진보의 이탈을 고발한다면 나부터 열렬한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런데, <…재인식>으로 포장된 그 책에서는, 이와 같은 의미의 ”재인식”의 그림자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에 훤히 보이는 것은, 이 글의 모두(冒頭)에서 인용한 이영훈교수의 발언에서와 같은 역사라는 고통의 과정에 대한 승리한 자로서의 무한한 냉소다. ”그렇다, 나와 내가 속하는 계층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민” 공동체가 총구를 앞세워 반대자를 학살해가면서 만든 나라다.

그렇다면 왜? 뭐가 문제냐? 자본주의 국가를 피 흘리면서 만드는 게 정상이고, 그 과정에서는 사유재산제와 시장 질서가 확립화됐으니 다행일 뿐이다. 그것이 나의 재산이기도 하니까 말씀이다. 나의 재산이 지켜지는 이 살기 좋은 나라 만들어지기 위해 반세기 동안이나 반대자들이 시체가 되고 노동자들이 불구가 됐다 해도 그건 나하고 도대체 무슨 상관인가? 나와 나의 계층이 이겼으면 됐지, 이 세상이 이긴 자의 것이다”. 물론 이영훈교수는 그렇게 ”까놓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한데, 그의 발언들의 핵심적인 뜻이자 이 책 편집의 기본적인 뜻은 바로 이와 같은 ”승리자의 개선가 (凱旋歌)”인 것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그 개선가의 가사 중에서는 고통이라는 이름의 역사의 내용도 없고 고통을 어떻게 하면 종식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도 없고 그 동안 고통을 종식시키려고 몸과 마음을 내던진 이들에 대한 별다른 관심도 없다. 이영훈교수와 그 동료들에게 ”지금 그대로”가 좋은 것이고, 이 좋은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밝히기 위해 ”역사하기”에 나선 것이다.   

   

물론 승리자들이 개선가를 부른다고 해서 밟히고 죽고 없어진 패배자들을 아주 잊어버린다는 것은 아니다. 패배자를 기억해서 불러내야 승리의 가치가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지 않는가? 예컨대 <….재인식>을 엮은 이념가 중의 한 명인 박지향 서울대 교수 (서양사)는 우파 쪽에서 여태까지 별로 다루어지지 않았던 전평 (全評: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1945년11월5-6일에 결성됨)에 대한 논문을 <…재인식>에 실었는데 (”한국의 노동 운동과 미국, 1945-1950”, 제2권, 103-140쪽), 그 글에서 패배자를 바라보는 승리자의 태도는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물론 여태까지 반세기 이전의 급진적 노동 운동에 대해 ”동지애”를 느낀 나머지 객관성이 얼마든지 흐릴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연구되었던 전평에 대해 이념적 지향성이 다른 연구자가 냉철하게 접근해본다는 것 자체야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 글을 읽은 뒤의 전반적인 인상은, 박지향교수가 오래 전에 고통스럽게 죽은 전평 활동가들을 ”역사법정”에 세워 놓고 그들의 진술을 별로 경청하지도 않은 채 미리 준비된 공소장을  읽어가면서 그들을 ”혼내주는” 것이었다. 피고인들의 진술을 듣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하면, 박지향 교수가 그 논문에서 미 군정 측의 자료를 폭넓게 이용하는 반면, 해방 직후의 좌파적 신문 (<해방일보>, <청년해방일보>, <노력인민> 등)이나 전평 그 자체의 <회의록>  등의 자료를 극히 소수만 인용하고 대부분 외면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혼내준다”는 것이 무슨 이야기인가? ”전평의 비극”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결론 부분 (138-140쪽)에서 박지향교수는 ”정치 우선의 투쟁을 전개시켜 결국 대중들로부터 소외돼 노동운동을 사이비 대한노총에 넘겨버린” 전평의 ”정치 편향적, 좌편향적 노선”을 소리 높여 고발한다. 박지향교수에 의하면 ”그 당시의 대중들이 온건한 사회주의 방향의 경제 질서와 온건한 좌파 경향의 민족주의적 국가”를 원했음에도 전평이 그것보다 훨씬 급진적인 노선으로 치달아 결국 스스로 고립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군정 세력이 전평을 일관되게 탄압한 것도 아니고 일정 기간 동안 인정하여 협조했다는 점, 그리고 전평을 탄압한 것이 단순히 반공주의 때문이라기보다는 미국이 좌파적으로 정치화된 노동 운동을 이질시하여 ”노동자의 경제적 요구를 우선시하는 미국 식의 자주, 민주적 노동 조합의 문화”에 익숙해져 있어 전평을 정상적인 조합 연합체로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점 등은 박지향교수가 강조하는 요점들이다. 

 

”여러분들을 미군정과 한국 우파가 파멸시킨 것이 아니오, 여러분들이 급진적 좌파 정치에 휘말려 스스로 자신들의 무덤을 팠소!”라고 박지향교수가 외치는 듯하다.  문제는, 서양사가 전공 (!)인 박지향교수가 ”미국식 노동조합 운동”에 대한 놀라울 만큼의 좁고 편협된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부터 시작된다. 미국의 노동조합들이 과연 경제 투쟁에만 매진해왔던가?  1905년에 결성되어 한 때에 약 10만 여 명의 회원수를 자랑했다가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제국주의적 살육에 반대해 싸웠던 ”죄”로 경찰력에 의해 와해 당한 IWW (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 ”세계의 산업 노동자”)의 대단히 급진적인 활동을 논외로 하더라도, 1930-1940년대에도 – AFL (American Federation of Labor: ”미국 노동 연맹”)이라는 보수적인 ”경제주의” 조합 조직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 급진적인 노동 운동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었다.  사실, 미국 학계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1935년에 미국 국회가 ”와그너 (Wagner)법”이라는 노동자의 조합결성권, 단체협상권, 파업권 등을 확립시킨 노동법을 통과시킨 것이 1930년대 초반에 극에 달했던 급진적인 노동 운동에 대한 일종의 ”유화책” 성격의 양보이었다는 것이다 . 1949년에 숙청이 시작됐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CIO (Congress of Industrial Origanizations: ”산업 조합의 협회”) 산하 조합 중에서 공산당의 당원이 위원장을 맡아 조합 내에서 급진적 활동을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 

박지향교수의 귀에 거스를 말씀이지만, 노동 계급이 계급의식으로 무장하여 계급운동을 벌이지 않는 이상 단체협상이나 단체협약 같은 가장 기본적인 노동자의 권리를 지배계급으로부터 얻어내어 지키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고, 미국 노동 계급의 일각에서 계급의식이 현저하게 부족했다 해도 매카시즘의 광풍 이전까지 급진적인 노동 운동이 존재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성과를 따내기도 했다. 미국 점령군이 조선에 쳐들어와서 조선인들의 ”정치화된 노조 운동”을 불신하여 탄압한 것은, ”노동 운동의 문화가 달라서” 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전평을 ”용공 조직”, ”공산주의자들의 영향하의 조직”으로 파악한 그들은, 자신들의 ”일차적인 목표”를 ”한국에서의 소련 지배권을 저지하고 (…) 우리들의 [한반도]에서의 우월적인 지위를 행사하는” 것으로 정한  이상으로 전평을 탄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지향교수가 그 글에서는 미군정의 ”자유주의적 면모”를 살리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하지만, 남의 나라에서 ”우월적인 지위”를 확보하려는 제국이 그때나 지금이나 ”잠재적인 위협”으로 분류되는 단체나 개인들에 대해서 ”민주적인 수단”만을 쓰지 않는다. 그런데 웬일인지 미국의 배후 개입의 의혹이 짙은 김구 암살이나 여운형 암살 같은 해방 전후사의 굵직한 사건에 대해서는 <….재인식>은 언급조차 애써 피한다. 미 제국이 내세우는 ”민주”와 ”자유”의 진면목이 무엇인지 밝혀진다는 것이 그렇게 두려운 일인가?

 

박지향교수의 ”공소장”에서는 전평의 노동 운동가들이 ”감히” 정치영역으로 진출하여 ”민주적이며 자유주의적인” 미국 상전님들의 ”정당한 분노”를 샀다는 것은 그들의 주된 ”죄목”으로 돼 있다. 그런데 전평이 정말로 그렇게까지 ”급진적인” 단체이었던가?  오늘날의 급진파인 나로서 아쉬운 이야기로 들리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애당초에 소련 스탈린주의자들의 ”혁명단계론”의 강한 영향을 받은 전평은 1945년말부터 ”조선 혁명의 당면 단계”를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라고 규정하여 이 단계의 주된 과제로 ”일제 및 봉건주의 유산의 청산, 민족통일전선에 의한 인민정권의 수립”쯤으로 생각했다. 물론 그 ”인민정권의 수립”과 ”민주주의개혁”의 과정에서 무상몰수, 무상분배 원칙하의 토지개혁과 주요 산업시설의 국유화와 같은 진보적 개혁도 이루어져야 됐지만, ”친일파”나 ”대자본가”를 제외한 자산계층, 특히 ”양심적인 민족 자본가”로 분류되는 부류에 대한 전평의 태도는 일단 협조적이었다. 일본인 주인이 버리고 떠난 공장이나 친일파 소유의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공장을 접수하여 관리하는 것을 전평이 환영했지만 조선인 개인 기업에서 노동자들의 ”공장 관리” 시도가 자본가에게 공포감을 주어 자본계층을 ”공동 민주전선”에서 소외시킨다는 것을 애써 경고했다. 전평이 조선인 소유의 개인공장에서의 노동자에 의한 공장 관리를 불필요한 것으로 여기고, 일본인이나 친일파 소유의 공장에서도 노동자들이 단독으로 관리하는 것보다는 ”양심적 민족 자본가”를 받아들여 그 자본가와의 공동 관리하는 것을 권고했다 .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획득하기 위하여” 혁명의 ”초기 단계”에서 ”민족 자본”과의 ”통일전선”을 금과옥조로 여겨왔던 스탈린주의적인 보수적 ”점진주의”의 영향이기도 했지만 ,  또 현실적으로 ”남조선의 해방”이 노동자의 힘이 아닌 외세인 미군에 의해 이루어지고 외세와 국내 자산계급에 비해 노동운동의 역량이 매우 제한돼 있다는 현실 인식의 반영이기도 했다. ”정치화”돼 있었다는 전평이 이 정도로 ”온건하게” 나가는 것은, 미군정의 당국이나 박지향교수가 그렇게도 위험시하는 조선공산당이 전평에 대해 커다란 영향력을 미친 ”덕분”이기도 했다. 본격적인 냉전으로 접어들기 전까지는 소련의 입김에 좌우되는 조선공산당이 점령군인 미군을 ”해방군”이자 ”세계 민주 세력”으로 봤다는 것이다 . 역사에서는 가정법이 없다 하지만, 만의 하나에 한반도가 신탁 통치 시기를 거쳐 핀란드나 오스트리아처럼 냉전 시대의 ”중립 지대”가 됐다면 과연 이와 같은 ”온건 지향”의 전평이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를 위협하는 세력이 될 수 있었겠는가? 공산당의 영향을 받아온 프랑스나 이태리의 전후의 노동 운동의 역사 로 봐서는, 전평도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를 전복하려 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다분히 있다. 전평의 진정한 비극은, 소련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받을 수 있는 노동계급의 조직이 냉전 정치의 과정에서 미 제국에 의해 ”방해물”로 여겨져 제국과 그 지역적인 앞잡이들에 의해 철저하게 궤멸을 당한 데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미 제국에 대한 한 무제한적으로 관대한 박지향교수는 이 자명한 진실을 애써 외면하고 그 대신에 고통스러운 최후를 당한 전평 활동가들에게 ”역사 재판의 공소장”을 내미는 것이다.

 

나의 기대가 너무 과했던 것인가? 솔직하게 <…재인식>을 처음 접했을 때에 내가 ”자유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이 책의 공저자들이 바로 절차적인 민주주의라는 차원에서 전평을 비판적으로 해부할 것을 내심 기대했다. 급진파인 나로서 ”우리 쪽”에 대한 부끄러운 이야기가 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민주주의 개혁”을 표방했던 전평이 아쉽게도 절차적인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에 있어서 꽤나 소홀했다. 전평이 결성됐던 1945년11월5-6일에 일선 노동자들이 보낸 505명의 대표들이 전형위원 19명을 먼저 선출한 뒤에, 그 19명의 전형위원들이 81명의 집행위원들을 뽑은 것이었고, 집행위원들이 위원장 허성택 (許成澤 :1908-1959)을 위시한 여러 상임위원, 즉 최고의 간부들을 뽑았다 . 결성대회 대표-전형위원-집행위원-상임위원… 네 개의 단계를 거쳐 이루어지는 이러한 ”다단계 민주주의”를 사실 진정한 노동자 민주주의로 보기가 힘든 것이다. 특히 ”민주적인 중앙집권주의” 체제하에서 중앙 간부들이 갖고 있는 막강한 영향력을 생각할 때에, 그들이 이처럼 ”간접적인, 매우 간접적인” 투표 방법으로 선출됐다는 것은 해방 직후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감안한다 해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큰 결점이다. 그런데 노동자들의 ”풀 뿌리 민주주의” 문제는, 주로 거시적인 국제 정치 내지 정당 정치, 국가적 차원의 개혁이나 경제 정책 등에 초점을 맞추는 <…재인식>의 공저자들에게 별다른 관심사가 되지 않는 듯하다. 유일하게 해방 이후의 도시의 사회사를 다루는 전상인교수의 논문 (”해방 공간의 사회사”, - 제2권, 141-175쪽)에서는 아직도 계급정치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조선인들의 ”전근대성”에 대한 이야기가 꽤 들어가 있어도 (168-173쪽), 계급 정치의 중요한 시도이었던 노조 운동에 대한 이렇다 할만한 언급이 없다. 직장 차원의 민주주의에 대한 별다른 관심이 보이지 않는 대신에, ”거시적으로 본 1950년대의 역사: 남한의 변화를 중심으로"”(제2권, 433-482쪽)라는 글에서 원로 사학자 유영익 연세대 명예교수는 좌파를 원천적으로 배제한 반공체제하의 ”반쪽 민주주의”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승만 집권기의 제도적 민주주의가 정당 정치의 정착이나 민중들의 정치적인 훈련에 큰 역할을 했다고 역설한다. 물론 제도적 민주주의마저도 압살된 유신 독재나, 민주적인 투표가 처음부터 원천 봉쇄된 북한의 정치 모델  등에 비해서는 이승만 집권기의 정치 제도적 상황은 ”차악”으로 비추어질 여지가 없지 않아 있다. 그런데 민주주의의 유무 여부는 과연 두 보수적인 정당 (자유당과 민주당) 중에서 – 많은 경우에는 경찰의 감시와 개입을 받는 – 투표에서 민중으로서 ”상대적으로 덜 나쁜” 쪽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으로만 판명되는가? 끝없는 ”궐기 대회”에 학생들을 강제 동원하고 회비 징수를 강제로 하면서 학부모들을 경제적으로 수탈하기까지 했던 이승만 집권기의 그 악명이 높았던 ”학도호국단” 같은 전체주의적인 동원 조직이나, ”국부”, ”영명고매 (英明高邁)하신 민족의 지도자” 이승만을 찬양하고 그 명령에 대한 ”준봉 실현”을 요구했던 그 당시의 신문들의 역겨울 정도로 어용적인 ”지도자 옹호” 사설   등을 생각해본다면 ”이승만 정권기 때의 제도적 민주주의 공고화”라는 학설을 재고해볼 만한 여지 역시 다분히 있다. 가톨릭교회 등 외세를 배경으로 한 만큼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조직들과 일제시대 때 양성된 부르주아, 지식층을 배경으로 한 민주당을 궤멸시킬 수 없는 위치에 있었던 이승만은, 어쩌면 ”성공한 민주주의자”라기보다 차라리 ”권력 자원이 약해 결국 성공하지 못한 세계 체제 주변주의 실패한 파시스트”로 보인다.

 

그런데 <…재인식>이라는 이 방대한 논문집에서 이승만 집권기의 학도호국단이 딱 한 번만 (!) 언급되고 만다. 승리자들의 개선가에 어울리지 않는 부분들을 ”재인식”할 마음이 애당초에 없었다고 봐야 하는가? ”재인식”을 내세우는 사람답지 않은 ”침묵”은 학도호국단과 같은 1950년대의 한국 집권층의 ”부끄러운 과거”에 국한되지도 않는다. 예컨대 1959년7월31일의 조봉암의 처형이라는 이승만 정권의 ”법살”이 반(反)이승만 정서가 곧 반미 정서로 발전될 것을 우려했던 미국의 대(對)이승만 절연 (絶緣)을 가져다 주었다는 등 미국의 ”자국 이익에 기반한 한국 민주주의 옹호 정책”이 상당히 자세히 서술돼 있지만 (제2권, 594-606쪽), 민주당이라는 ”민주적 야당”이 조봉암의 ”법살”에 이렇다 할 만한 저항을 한 바 없었다는 사실에 대한 최소한의 언급도 찾기가 힘들다. ”제도 야당”의 ”깨끗한 민주주의적 이미지”를 배려하려는 마음이 그렇게도 간절할 수 있는가?

이승만이나 1950년대 민주당의 ”민주적인” 정치인 (예컨대 ”대한민국을 위해 빨갱이 섬 제주도를 다 태워버려도 된다”고 고함질렀던 조병옥”박사”…)에 대한 보수 학자들의 미련이야 어디까지나 예상할 만도 했다. 대중 독자로서 이 책에서 훨씬 더 충격적인 부분은 물론 일제 시대 때의 일본 지배자와 그 조선 협력자에 대한 ”긍정적인 재인식”이었다. 물론 일제시대에 근대적 지배층으로 부상한 계층의 생물학적, 제도적 후계자들이 지금도 대한민국의 기득권층으로서 이 사회에서 군림하고 있다는 것쯤이야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그들이 자신의 ”계보”에 대해 이 정도의 ”자긍심”을 그렇게 노골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은 좀 새롭다. 옛날 같았으면 적어도 ”정치적으로 올바른” 겉치레로서 민족주의적인 독립운동이라는 ”법통”을 강조했지만, 외국 자본의 영향력이 커지고 한국 자본들도 세계 무대에 보다 강력하게 나서는 ”세계화 시대”라서 그런지 이제는 더 이상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는 모양이다. <…재인식>에서는 독립운동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논문은 아예 없다. 그 대신에 일제 시대의 조선총독부와 일본 자본, 그리고 조선의 예속 엘리트라는 ”지배동맹”에 대한 ”재인식”은 놀라울 만큼 ”전향적”이다. 예컨대 평소에 민족주의 그 자체를 그리 좋게 여기지 않는 ”자본주의적 국제주의자”인 이영훈교수는, 해외 독립 운동 등 식민지 시대의 어느 다른 부류의 민족주의자보다도 ”신흥 중산층의 실용적인 민족주의”에 가장 (호의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고 자백한다 (제2권, 629쪽). ”신흥 중산층”이라고 하니 일본인 소유 공장의 조선인 기술자나 의사, 변호사 등이 당장 떠오르겠지만 이영훈교수가 그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예컨대 경성방직의 김성수 같은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 일가가 1920년에 연간 2만 석의 쌀을 수확하여 대부분을 일본을 수출하는 ”호남 제일의 대지주” 김성수, 김연수 형제 가 ”신흥 중산층”이라고?  물론 이영훈교수가 ”친일 예속 재벌” 같은 용어를 아주 싫어하는 것까지 잘 알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실 관계까지 무시하면 문제다. 이영훈교수가 김성수의 모습에서 근대적 한국 민족주의의 내부적인 모순을 찾고자 한다: ”그는 일본 유학 시절 일본의 강력한 문명에 한없이 경도되지만, 동시에 그만큼이나 강렬하게 조선사람으로서 민족의식을 고취하게 됩니다. 그렇게 한편으로는 친일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민족주의적인 자기를 발견해가는 식으로 근대 민족으로서 한국 사람이 형성되는 과정이 식민지 시기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2권, 629쪽). 친일적 대지주, 대자본가, 지식인들의 이와 같은 ”자기 분열”, 즉 제국에 대한 흠모와 혐오의 이중주를 보여주면서 이영훈교수와 그 공저자들이 오늘날의 지배계급의 전신인 ”친일파”에 대한 독자들의 거의 본능화된 반감을 씻으려 한다. 물론 그들의 말에 일말의 진리가 없지 않아 있다. 민족주의적 독립운동가의 일부가 일본의 부국강병을 흠모할 수 있었던 반면, 일제에 예속돼 있었던 조선 토착 엘리트도 본인들이 스스로 지배민족이 될 수 없었던 이상 지배 민족에 대한 질시와 함께 나름대로의 부르주아 내셔널리즘적 사고를 얼마든지 가질 수 있었다. 식민지에 ”협력”과 ”반항” 사이에 ”회색 지대”가 존재한다는 것이야 이미 여러 연구에서 확인된 것이다 .  문제는, 김성수 같은 자들이 ”민족교육” 등의 여러 분야에다 ”민족주의적 색채”의 투자를 계속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민족반역자”들에 대한 민중의 증오가 해방 직후에 분출됐다가 요즘까지도 이어져가는 이유가 과연 무엇인가 라는 것이다. ”민족주의적 정서”만을 이유로 들기 어려운 것은, <…재인식>의 공저자들도 인정했듯이 한국에서의 민족주의 등의 ”이념”들이 엘리트적인 색채가 짙어 민초들까지 생각보다 그렇게 빨리 확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2권, 622-625쪽). 민중들의 ”친일파” 혐오증을 부추기는 것은, 감상적인 ”민족주의”보다는 김성수 같은 자들의 치부 (致富)가 소작농과 노동자에 대한 철저하고 무자비한 착취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점, 저들이 남에게 ”황군에 입대하라”고 큰 소리를 지르면서 본인들의 일가만큼 철저하게 보호했다는 점 등에 착안하는 일종의 ”계급적 무의식”일 것이다. 그런데, <…재인식>에 실린 식민지 시대의 공업에 관한 논문 (”식민지 시기의 공업화 재론”, 김낙년, 제1권, 188-228쪽)에서는 조선 노동자들의 저임금이 식민지 시대의 조선을 일본과 조선 자본가들의 ”낙토” (樂土)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까지 있지만 (202-203쪽) 과연 김성수를 ”민족주의적 부자”로 만든 경성방직의 여공들이 하루에 얼마 받았는지, 그리고 그 주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파업 등의 투쟁을 어떻게 전개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없다. 자산층, 유식층에 대한, 자산층, 유식층을 위한, 그리고 자산층, 유식층에 의한 ”뉴라이트 사학”에서는 노동자나 빈농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나 같아도 김성수 같은 자들을 ”민족 반역자”로 지정하여 ”민족 정기의 재판”에 세우는 데에 별다른 의미를 발견하지 않는다. 대신에, 저들이 일제와 유착하여 노동자와 소작인들을 어떻게 착취했는지, 자본의 원시 축적 시기의 과(過)착취를 어떤 ”민족” 이데올로기로 어떻게 포장, 호도했는지, 그리고 식민지 시기의 야수적인 자본주의가 1945년의 극우반공 체제하의 ”극단적인 자본주의”로 어떻게 계승됐는지를 비판적으로 해부할 필요는 꼭 있다고 본다. 그런데 자본주의에 대한 어떤 형태의 비판의식도 이 책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일제시대의 ”법치의 체계화와 심화”에서 긍정적인 측면을 열심히 찾아내면서도 그 당시에 만연했던 경찰의 고문 행위를 단 한 줄로만 처리한 (”일제하 법치와 권력”, 이철우, 제1권, 145-187쪽) <…재인식>… 이 책은 오늘날의 승자, 즉 남한의 지배계급의 식민지 때와 그 후의 ”계보”를 거의 긍정 일변도로 ”재인식”하지만, 계급사회 역사의 수레바퀴에 밟혔던 그 수많은 개인들의 신음소리를 철두철미하게 외면한다. 이 책은 민족주의의 ”민족 공동체” 신화를 해체시키고 개인의 복합적인 내면 (예컨대 제국에의 협력과 제국에 대한 혐오의 ”불편한 공존”)을 복원한다고 하지만, 권력과 부, 근대적인 지식이 없는 다수는 이 책의 공저자의 시각으로서는 아마도 ”개인”으로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그들의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한국 근현대사의 구조화된 고통 – 예컨대 경찰 고문이나 군사주의의 폐단, 노동자에 대한 과도한 착취 등 – 이라는 저들의 ”승리”의 어두운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옛날에 붓다가 고통의 실체와 고통을 없애는 길을 이야기하지 않는 모든 ”말”을 불필요한 것으로 본 것이고, 최근에는 마르크스주의가 ”지배”와 ”착취”라는 계급사회의 본질을 외면하는 사회과학을 ”속류”로 규정한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류의 ”역사 아닌 역사”는 단순히 불필요하고 속된 것만이 아니다.  이 책의 내용을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한국적 근대성에 내재돼 있는 수많은 모순점들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이 사회의 통치 그룹에 합류한다면 피지배자와 지배자의 동등한 대화의 가능성이 더욱더 희박해질 것이고, 이 사회의 고질적인 모순들이 평화적으로 해결되지 못한 채 결국 폭발로 이어지고 말 가능성이 더욱더 커질 것이다. 이 책을 묶은 분들이 과연 이와 같은 종국 (終局)을 원하는가? 주관적으로야 원하지 않겠지만, 짓밟힌 이들에 대한 오만한 무관심은 결국 피의 복수를 부른다는 역사의 진리를 잘 모르고 계시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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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문제에 대한 기독교인의 관심에 대하여

노동 문제에 대한 기독교인의 관심에 대하여 라는 글이 진보 종교홈피인 "뉴스앤 조이"라는 곳에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와 있었다.  나도 기독교인으로서 노동조합활동을 하는사람으로서 기독교인들의 노동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들이 아쉬웠던적이 많았다.

이글을 쓴 하종강소장은 특히 현장에서 일어난 사례로 눈앞의 상황을 비유하는 능력이 탁월하여 잔잔한 그의 말에도 확 - 쏠려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가장 바쁜 연설로 전국을 돌며 강의하는 시간이 빽빽하다. 

 

여기에서도 포스코건설노동자의 비유를 노동자와 기독교라는 주제로 성경의 출애굽기와 연관지어 설명하면서 환갑을 넘었거나 그에 가까울 정도로 나이가 많은 건설 노동자 들이 포항에 있는 포스코 본사를 점거하는 행위를 자신이 산재 환자들에게 가서 느낀점을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게 설명하고 있다.

 

또한, 애굽에서 포로생활을 하는 유대인들이 섬기던 그 신이 바로 지금 기독교들이 섬기는 신이라는것, 기독교가 노동자들의 권리를 향상시키는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은 기독교와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매우 성경적인 일이라는것, 노동문제에 관한 매우 친자본입장을 대변하는 일간지에 대한 "이런 언론, 세계 어디에 또 있는지 대 보라’고 말하고 싶다" 라는 그의 분노, 

고대의 노예들은 먹고 살기 위해 자신의 주인인 귀족들에게 창을 들이대는 '불법 행위'를 했지만 결국 그러한 노력이 노예 제도의 철폐라는 역사의 진전을 이뤄냈다는 식의 시원한 풀이까지 우리의 막힌속을 시원스레 뚫어준다.

 

아래 하소장님의 원문을 읽어보시길...



노동 문제에 대한 기독교인의 관심에 대하여

 

내가 지금까지 26년 동안 해 온 일을 '노동운동'이라고 딱히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노동문제와 관련된 일 외에 다른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다. 가끔 언론이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노동운동가'라는 감당하기 어려운 직함으로 소개되는 나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교회에 다니고 있다. 교회에서는 '집사'이다. 가끔 가족들과 함께 기도 제목을 정해 놓고 금식 기도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참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노동 문제'와 '기독교'는 선뜻 서로 잘 연결되지 않는 단어처럼 생각한다.

 

노동 문제에 대한 기독교인의 관심에 대하여

그러나 기독교처럼 '일하는 사람' 즉 노동자들에 대해 관심이 많은 종교도 없다. 신·구약 66권의 성경들 중에서 제1권은 '창세기'다. 그런데 성경은 맨 앞에 있는 창세기부터 순서대로 기록되지 않았다. 맨 처음에 기록된 성경은 '출애굽기'다. 이집트 사람들 밑에서 시민권도 없이 죽어라고 일만 하던 히브리 노예들이 견디다 못해 노예 해방 전쟁을 벌인다. '모세'라는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 홍해를 건너 탈출하면서 자신들의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보는 ‘성경’의 시작이다. '출애굽기'란 글자 그대로 ‘이집트에서 탈출한 기록’이라는 뜻이다. '창세기'는 그 뒤에 기록되기 시작했다.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야훼'는 노예들이 섬기는 신이었다. 기독교가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해주는 일을 당연히 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열심히 노동하면서도 현실 속에서는 행복하게 살 수 없는 피압박자들의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와야 한다. 기독교가 노동자들의 권리를 향상시키는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은 기독교와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매우 성서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지금까지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개선되는 일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우선 노동 문제를 기독교인으로서 올바르게 바라볼 능력이 결여됐을 거라는 겸손한 태도를 가져볼 필요가 있다.

 

겪어본 사람과 겪어보지 못한 사람의 차이에 대하여

일을 하다가 다치거나 병든 노동자들이 모여 만든 단체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나에게 매주 금요일마다 산재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해 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고,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하겠노라고 답했다. 노동 상담을 직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에게 그보다 더 큰 영광도 없을 테니까···. 그러나 이제 와서 고백하건데, 매번의 모임마다 하나라도 더 배운 사람은 그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모임 첫날, 구로시장 허름한 건물 지하에 있는 그 단체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얼마나 습기가 차고 눅눅하던지 바닥에 깔린 비닐 장판은 물기로 미끈거렸다. 복사 용지에 출력해 가져간 교육 자료는 몇 분 만에 습기를 먹고 눅눅해져서 종잇장이 축축 늘어졌다. 그런 곳에서 팔이 잘리고, 허리를 다치고, 화상 입은 노동자들이 열 명쯤 모여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남아서 사무실 구석에 앉아 강의 준비를 마저 하고 있는데, 사무실 한 쪽이 갑자기 소란해졌다. 회원들 사이에 다툼이 생겼는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크게 나무라기 시작했다.

"야, 인마. 너는 잘 된 거야! 팔 하나 잘리고 4000만 원 받았잖아! 네가 앞으로 평생 동안 노동자로 살면서 돈 모으면 현찰로 4000만 원 모을 수 있을 것 같아? 너는 잘 된 거라니까. 팔 하나 잘리고 4000만 원 받았잖아! 행복한 줄 알고 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 거야."

돌아보니,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팔이 없다.

"나는 팔 잘리고 나서 회사가 망하는 바람에 보상금 한 푼도 못 받았어! 너는 4000만 원이나 받았잖아! 너는 네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지?"

산재 사고로 팔을 잘린 뒤 4000만 원을 보상금으로 받고 절망에 빠져있는 노동자에게 그것보다 더 큰 위로는 없었을 것이다. 만일 그날 그 자리에서 그렇게 말한 사람이 나였다면, 아마 사람들에게 몰매를 맞고 쫓겨났을지도 모른다. 팔 다리가 모두 멀쩡한 내가, 팔 하나를 잘린 후 4000만 원의 보상금을 받고 절망에 빠져있는 노동자에게 그렇게 말할 자격은 없다. '아, 위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 큰 고통을 당해 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이로구나···.'

그날 이후 나는 감히 노동자를 위로하겠다는 건방진 생각을 버렸다. 산업 재해를 당한 노동자들과의 모임 이름도 둘째 날부터는 '교육'이라는 주제넘은 단어를 버리고 '간담회'로 바꿨다. 노동자들은 간담회를 마치고 밤늦게 돌아가는 내 머리 뒤에 대고 "바쁜 시간 뺏어서 미안합니다"라고 인사를 했는데, 나는 그 말이 그렇게 섭섭하게 들렸다. 그것은 그 사람들과 나를 철저하게 구별하겠다는 뜻이니까…. 그 노동자들이 성치 않은 몸으로 다른 산재 노동자들을 위해서 밤늦게까지 일하는 것은 당연하고,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은 특별히 미안한 일이라는 뜻이 그 말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직접 일을 겪어본 사람과 겪어보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그토록 크다. 산 것과 죽은 것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예수님이 직접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신 '성육신'의 이유를 나는 그렇게 깨달았다.

이미 환갑을 넘었거나 그에 가까울 정도로 나이가 많은 건설 노동자 2000여 명이 포항에 있는 포스코 본사를 점거하는 '불법 행위'를 아흐레 동안이나 했다. 그들 중에는 나이가 74세나 된 노동자도 있었고 평균 연령은 54세나 되었다. 이들은 도시가 건설되기 시작할 때부터 그곳에 들어와 수십 년 동안 일하면서 "우리가 이 도시를 건설하고 공장들을 세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인생의 막바지에 놓여있는 현실은 건설 노동자로 평생을 살아온 것에 대해 일말의 자부심도 갖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언론과 시민들은 건설 노동자들이 직접 고용계약 관계가 없는 포스코 사무실을 점거했다는 불법 행위를 탓하기에 앞서 이들이 처한 현실에 먼저 주목했어야 했다. 죽음을 각오한 과격한 투쟁 방식은 사회적 약자의 마지막 선택이다. 강한 조직은 굳이 과격한 투쟁을 할 필요가 없다. 건설 노동자들의 투쟁 방식이 지나치게 과격한 불법 행위라고 탓하고 싶은 사람들은 자신이 그 노동자들의 삶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먼저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언론의 보도 행태에 대하여

대학생들에게 강연을 끝내고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데 털모자를 썩 어울리게 쓴 학생이 다가오더니 말했다. "저는 네덜란드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졸업하고 이번에 한국의 대학에 입학한 학생인데요. 며칠 전에 철도노조가 파업을 할 때, 텔레비전 뉴스에서 시민들의 인터뷰를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모두들 한결같이 자기가 불편하다는 것만 이야기하는지···. 파업하는 노동자들 입장에서 말하는 사람이 왜 한 명도 없는지, 참 이상했습니다."

그 학생이 살던 사회에서는 파업이 발생하면 "노동조합의 이러저러한 요구 사항은 타당한 내용이니 정부와 기업은 빨리 받아들여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는 시민들의 모습도 적지 않게 보았을 테니 깜짝 놀란 것도 당연하다. 굳이 '톨레랑스'를 들이대며 비교하지 않더라도 우리처럼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그것이 합법적 파업이든 불법적 파업이든 짙은 혐오감으로 무장한 사회는 별로 없다.

건설 노동자들의 포스코 점거 사건에서도 언론은 대체로 포스코의 기계 설비 건설이 중단되면서 하루 100억여 원씩 손실이 발생하고 대외 신임도가 하락하는 등 그 경제적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는 점과 파업의 불법성과 폭력성을 강조했다. 사설의 제목들만 얼핏 봐도 알 수 있다.

'경찰에 가스불 뿜고 끓는 물 퍼붓는 노조'<세계일보>, '노조, 탈법 폭력 투쟁으로 얻을 게 없다'<국민일보>, '7일째 포철 불법 점거, 공권력은 어디 갔나'<중앙일보>, '이런 노조, 세계 어디에 또 있는지 대 보라'<동아일보>, '노조, 포항에선 불법 示威, 울산에선 배부른 투정'<조선일보>, '시민들도 항의하는 포스코 점거농성'<한국일보> 등이었고 <한겨레>가 '건설노동자 사태, 포스코가 중재력 발휘해야'라는 제목으로 그나마 간신히 체면을 유지했다. 동아일보의 사설 제목을 빗대자면 ‘이런 언론, 세계 어디에 또 있는지 대 보라’고 말하고 싶다.

언론의 이러한 보도 양태는 우리 제도 언론의 수구·보수적 성격에 포스코의 주도면밀한 개입이 맞아 떨어진 결과다. 포항건설노조의 파업과 관련해 포스코가 관계 기관 회의를 통해 이미 지역 언론에 실어야 할 기사 목록과 작성 시기까지 구체적으로 명시했으며 실제로 같은 내용과 제목으로 기사화 됐다지 않은가. 이러한 언론 속에서 우리는 수십 년을 살았다. 건설 노동자들의 포스코 점거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자신의 시각이 이러한 언론으로부터 전형 영향 받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불법 행위'라는 잣대에 대하여

정규직 노동자들이 번듯한 복지 시설을 마음껏 사용하고 있을 때 건설 노동자들은 식당이 없어 비가 오면 빗물에 점심을 말아 먹고, 탈의실이 없어 건물 모퉁이나 차 뒤에서 작업복을 갈아입고, 휴식 시간에는 신문지 한 장으로 땡볕을 가린 채 쉬면서 일해야 했다. 그렇게 '자식에게도 차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운 환경'에서 일하던 건설 노동자들에게 일부 사업장에서 최소한의 시설이라도 마련해 주기 시작한 것은 건설 플랜트 노동자들이 '남의 회사'에 '불법 침입'을 해서 목숨을 건 고공 농성을 며칠씩이나 한 뒤부터이다. 그 '불법행위'가 없었다면 이들의 처지는 아직도 전혀 개선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도 건설 노동자들 대부분은 그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노동자들의 권리 향상은 언제나 이렇게 '불법 행위'로부터 시작되었다. 평화적인 파업을 300일 넘게 벌이고 있는 '한국시멘트노동조합'은 노조가 해산될 지경에 이르렀지만 이렇다 할 불법 행위를 하지 못해 아직도 언론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하고 있다.

1600명의 교사들이 '불법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해직 당하지 않았다면 전교조는 아직까지 합법화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400명의 공무원들이 '불법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파면, 해임 당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 공무원노조는 아직까지도 합법화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현상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전교조나 공무원노조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죄송하게도 그러한 바람은 역사가 받아들이지 않는다. 앞으로 경찰이나 판사들이 노동조합 깃발 아래 모이는 '불법 행위' 역시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선진국 경찰노조나 판사노조가 걸었던 길을 우리는 수십 년 세월이 지난 뒤에 따르는 것뿐이지만 거창하게 말하자면 그것이 '역사의 순리'다. 은행 지점장들의 노조와 의사들의 노조가 우리 사회에도 벌써 설립되지 않았는가?

기독교 역사에서도 그런 일은 숱하게 있었다. 히브리 노예들이 해방되는 과정 속에서 이집트 가정의 장자들을 죽이고 우물물을 독약으로 만들어 사람들이 죽게 만든 것 역시 당시 지배 계급의 시각으로 볼 때는 명백한 '불법 행위'였다.

건설 노동자들은 포스코를 점령한 '불법 행위' 때문에 형사적 처벌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불법 행위'는 다단계 하청이라는 건설 현장의 해묵은 문제를 해결하고 하청 회사 노동자들의 단체교섭 요구에 원청 회사도 응할 책임이 있다는 법원의 판결과 법 제도를 마련하게 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선진국들은 이와 같은 일을 일찍이 겪어서 하청 회사 노동자들의 단체교섭 요구에 원청 회사가 당연히 응하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건설 노동자들의 불법 행위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은, 노동자들이 '불법 행위'를 시작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하나씩 확보해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던 과거의 역사를 한번쯤 뒤돌아 볼 필요도 있다. 고대의 노예들은 먹고 살기 위해 자신의 주인인 귀족들에게 창을 들이대는 '불법 행위'를 했지만 결국 그러한 노력이 노예 제도의 철폐라는 역사의 진전을 이뤄내지 않았는가?

 

하종강 /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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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집교수의 기고문

노동 없이 민주주의 발전 어렵다

 

신간 [현대노동시장의 정치사회학](정이환 지음, 후마니타스, 2006)에 부쳐

최장집(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

 

 

민주화 운동보다 중요한 노동시장 정책

 

IMF금융위기가 미친 가장 중요한 효과의 하나는 노동시장 문제를 한국사회의 중심 문제로 부각시켰다는 데 있다. 금융위기 이전에 노동시장 문제가 없었다거나 중요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 노동시장은 경제생활을 하는 모든 국민들의 관심사였다기보다 산업생산 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문제로 이해되는 정도를 크게 넘지 못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현재 한국사회의 노동시장 문제는 모든 국민들의 삶의 조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대사로 만들어 놓았다. 한마디로 말해 이제 한국 민주주의의 향배는 과거 민주화운동의 경력이 있는 대통령과 정부를 선출하는 문제보다, 향후 한국의 경제구조와 노동시장체제를 어떻게 개혁해 갈 것이냐에 대해 어떤 비전과 대안을 갖는 대통령과 정부를 뽑을 것인가에 더 많이 달려 있다는 것이다.

저성장, 고용불안, 빈부격차, 양극화 등 오늘날 한국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의 중심에는 노동시장 문제가 위치한다.


그것은 정규직-비정규직 문제, 중소기업 내지 영세사업장 노동 문제, 실업자들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대기업의 피용자들이나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을 포함하는 중산층도 예외는 아니다. 노동시장의 높은 유동성과 짧은 고용주기, 빠른 기술진보, 고령화-저출산으로 특징되는 노동인구의 구조변화, 경쟁의 치열함 등은 누구도 고용불안과 실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었고, 이러한 변화는 중산층 이하 모든 사회구성원의 안정적 지위와 삶의 조건을 뿌리부터 뒤흔들어 놓았다.

.....

.....



누구도 이러한 경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시장경쟁에서 탈락하는 열패자의 운명을 면치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노동시장에 대한 학문적 관심과 진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희소한 것이 현실이다. 아마 양적 측면으로만 본다면 연구결과의 수와 규모는 오히려 늘었다고 할 지 모른다. 민주화 이후 정책결정과정에서 전문가에 대한 수요와 각종 연구용역과 프로젝트 사업이 크게 늘면서, 전문가들이나 대학교수들이 양산해 내는 정책보고서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1990년대 이래 노동문제에 대한 연구가 사양 산업화하여 거의 사라지다시피한 대학의 지적 풍경과는 큰 대조를 이룬다.

 

한국 민주주의의 중심 문제로 부각된 노동시장 연구

 

학문과 정책의 밀착은 학문이 현실에 기여한다는 긍정적 요소 못지않게 부정적 요소 또한 컸다. 그 동안의 민주정부들의 경제-노동-사회복지 정책영역은 한국사회에서 노동문제에 대한 보수적 콘센서스의 범위 내에서 움직였기 때문에 많은 연구결과들이 그 협애한 범위에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많은 연구자들이 외국의 이론이나 정책, 제도의 사례들을 맥락을 무시한 채 기계적으로 한국 상황에 적용하는 일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수요자의 요구에 부응하여 이론이나 개념을 자의적으로 사용하는 예도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학자나 전문가에 의한 그간 연구는 이론적으로 부정확할 뿐 아니라 한국적 현실 내지는 현장과 많이 괴리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한국 노동운동은 이론의 빈곤 내지 비교연구의 결핍 때문에 현실에서 실천 가능한 대안을 발전시키지 못함으로 인해 크게 위축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현장의 노동운동 지도부나 활동가들의 문제라기보다 지식인과 전문가들의 책임이다. 노동운동에 친화적인 진보경향의 지적 영역에 있어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날 권위주의 하에서 그리고 민주화운동과정에서 한국의 노동운동은 맑시즘의 강한 영향과 더불어 사회주의 급진이념의 전통을 발전시킨 바 있다. 오늘날에도 관성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이러한 접근은 구체적 경험연구와 앞선 나라들의 사례에 대한 비교연구를 자극하기보다 경시하게 하는 일정한 제약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는 동안 진보경향의 지적 영역에서 또 다른 하나의 흐름을 보게 되는데, 미국식 자유시장 모델에 대한 무조건적 거부와 유럽식 사민주의 체제에 대한 비현실적 선호가 그것이다. 그러다보니 미국식 경제모델은 구체적이고 분석적인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나쁜 것을 집약한 모델”로 단순화되어 버렸고, 반대로 유럽식 모델은 우리가 선택한다면 실현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많았다. 유럽적 사민주의 체제는 오늘의 한국의 경제구조 내지 생산체제와 역사적 경험, 정치적 실천 및 제도, 이데올로기적 특성 등 여러 수준에서 매우 큰 차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사민주의가 한국의 경제체제를 개혁하는 데 준거가 되기 위해서는 거시적 또는 체제적 수준에서가 아니라 미시적 기초를 충분히 분석하고 구체적으로 배우고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늘의 한국사회가 모든 측면에서 미국식에 매우 친화적인 조건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냉정한 이해 없이 자신의 선호를 추상적으로 말하는 것만으로는 크게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책에 주목하는 이유

 

최근 출간된 서울산업대학교 정이환교수의 『현대노동시장의 정치사회학』은 앞에서 말한 이러한 학문적 상황에서 나타난 중요한 저작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최근에 양산되는 정책보고서적 연구의 결과물도 아니고, 현장으로부터 괴리된 순수 학문적 연구도 아니며, 어떤 이데올로기적 편향이나 선진적 거시모델에 무비판적으로 경도된 연구도 아니다.
정 교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따른 산업 및 고용구조의 급격한 변화, 그리고 금융위기 이래 급속히 진행된 한국 노동시장의 분절화, 고용과 실업문제, 사회양극화의 문제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문헌을 섭렵하고 외국과 한국의 경험적 자료를 치밀하게 분석한다. 그리고 그 분석의 결과를 토대로 한국의 현실에서 실현가능한 하나의 대안적 노동시장 체제를 조심스럽게 제시한다.
 
그것은 학문적이고 이론적이면서도 현장성과 현실성을 갖는 것으로 판단된다. 유럽의 사민주의적 경험에 보다 큰 비중과 준거를 두지만 영국과 미국, 일본 등 또 다른 유형의 경험을 두루 검토하고, 이를 토대로 한국현실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나 실천적 대안모색을 위해 미시적으로 문제를 분해하여 우리 현실로 가까이 가져오는 작업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작업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어떤 특정 모델이나 이론에 미리 경도되지 않고, 자신과 특정의 이론 사이에 거리를 유지하며, 대면하고 있는 문제와 비판적 긴장을 유지하는 학문적 자세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째, 현대노동시장의 제 문제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주로 노동-노동시장-사회복지를 주제로 여러 이론을 다루고 있다.
둘째는 사회복지국가의 이념형이라 할 스칸디나비아 복지체제, 유럽대륙의 복지체제를 대표하는 독일, 자유경쟁시장 체제를 대표하는 미국 그리고 한국, 일본, 대만을 묶는 동아시아 노동시장 체제의 경험적 현실 사례를 대비시키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부분에서는 이러한 이론과 다른 나라의 사례들을 비교 검토한 것을 기초로 한국의 노동시장체제를 분석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첫 번째 이론부분에서 저자가 대답하려고 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실제로 세계의 생산체제와 시장구조를 영미식 자유경쟁체제로 수렴시킬 것인가, 즉 유럽의 사회복지체제가 해체되고 자유시장체제로 전환될 것인가 하는 문제라 하겠다. 그에 답하기 위해 그가 소화한 문헌의 범위는 실로 광범위해서 매우 인상적이다. 저자의 광범위한 문헌해석을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간의 학문적 변화 내지는 경향에 대해 언급하는 약간의 우회적 방법이 필요할 것 같다.

 

‘자본주의 대 자본주의’의 문제틀

 

노동-사회복지 문제영역과 관련하여 세계 학계의 이론변화를 보면서 흥미 있게 느끼는 것은, 그 전환의 계기에 있어 1970년대 중반 신자유주의의 확산이 가져온 영향보다 1980년대 말 냉전의 해체에 의한 동구 국가사회주의 체제의 붕괴가 훨씬 컸다는 사실이다.

그 최초의 시발은 1991년(영어판은 1993년) 출간된 프랑스 경제학자 미셀 알베르의 저작 『자본주의 대 자본주의』라 하겠다. 그는 이 책을 통해 현대 자본주의체제를 (1) 자율적 시장경쟁을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앵글로색슨 모델” 또는 "미국식 (자유 시장) 자본주의"와, (2) 조직 노동자를 포함해 생산자집단들이 기업운영의 결정과정에 광범하게 참여하고 사회 전체의 복리를 경제와 사회의 중심적 가치로 하면서 법적, 제도적으로 규율되는, “사회적으로 책임지는 자본주의” 또는 “사회적 시장경제”를 구현하는 독일모델의 두 이념형적 유형으로 구분했다. 원래 프랑스어로 집필된 이 책이 곧 유럽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두 개의 자본주의”라는 말이 대중화되기에 이르렀다.

알베르의 유형분류는 1990년대 초 두 개의 자본주의논쟁을 자극하면서 논의를 더 풍부하게 하는 데 출발점이 되었다. 수잔 버거와 로날드 도어가 편집한 『국가적 다양성과 지구적 자본주의』 (1996), 프랑스 조절이론의 전통을 포함시킨 콜린 크라우치와 볼프강 스트리크 편, 『현대자본주의의 정치경제: 수렴과 다양성을 좌표 짓는 것』 (1997)과 J.로저스 홀링스워쓰, 필립 슈미터, 볼프강 스트리크 편, 『자본주의경제들을 관리하는 것: 경제부문의 수행과 통제』 (1994), 로널드 도어의 『주식시장자본주의 대 복지자본주의』 (2000), 볼프강 스트리크, 코조 야마무라 편, 『비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기원들』 (2001) 등은 1990년대를 통하여 ‘두 개의 자본주의’가 던진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대표적인 성과들이다. 이러한 연구경향을 집대성한 결과물은 정 교수의 책에서도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는 피터 홀, 데이비드 소스키스 편집 『자본주의의 다양성: 비교우위의 제도적 기초들』 (2001)이 아닐까한다. 최근 년에는 요나스 폰투손, 『불평등과 번영: 사회적 유럽 대 자유 미국』 (2005), 모니카 프라사드, 『자유시장의 정치학: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에 있어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의 흥기』 (2006) 등의 연구업적이 발표되고 있다.

미셀 알베르가 던진 ‘자본주의 대 자본주의’의 문제틀은 자본주의생산체제를 바라보는 데 하나의 전기를 이룬다. 명시적이든 또는 암묵적이든 그 이전 세대 학자들이 문제를 바라보았던 방법은 사회주의 체제를 비교의 준거로 자본주의 체제를 분석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입체적이고 구조적인 이해에 많은 진전이 있었다. 만약 하나의 체제, 하나의 지배적인 정책이나 이념만이 존재한다면, 현존하는 체제에 대한 비판이나 대안모색은 더 이상 가능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 말 소련과 동구사회주의의 해체는 체제의 수준에서 대립적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현존하는 생산체제나 시장질서에 대한 기존의 비판적 분석 틀을 해체시켰다. 그러면서 시장자유주의로의 수렴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는 것인지, 현실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교분석 내지 유형화에 기초를 둔 비판적 접근은 불가능하게 된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알베르의 문제제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체제 간 대립이나 차이는 종결되었을지 몰라도 자본주의 내에서 서로 갈등할 수 있고 경쟁적일 수 있는 하위유형들이 존재하며, 그 대립의 강도와 차이는 적어졌을지 모르나 여전히 대비될 수 있는 유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적 시장체제, 앵글로색슨모델, 주식시장 자본주의, 카지노 자본주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등 이를 무엇이라고 부르던 하나의 전일적인 형태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다시 말해 합리적 개인주의, 사유화와 민영화, 최소국가의 실현, 국가의 개입 없는 자유/자율적 시장, 경쟁과 시장효율성,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을 특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시장체제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비경제적 사회유대, 비경쟁적 협력, 집단적 의무, 도덕적 헌신 등의 가치와 규범을 중심으로 조직되고 공동체와 사회에 접맥된 시장체제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 제기되는 가장 중심적인 문제는, 그러한 유럽식 사민주의적 복지국가 모델이 어떤 형태로든 존립할 수 있느냐 하는 데 두어지게 된다.
 
폴 피어슨, 피터 홀, 토벤 아이버슨, 요나스 폰투손 등 이 분야의 여러 이론가들은 유럽의 사회복지국가 모델의 변화를 추적하면서, 유럽의 복지국가체제가 1980년대와는 분명 다르지만 나름대로 시장경제에 적응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복지국가 체제를 발전시키고 있다고 진단하고 또 그렇게 전망한다. 물론 모든 학자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독일의 대표적인 노동사회학자 볼프강 스트리크는, 앞으로 독일의 노동시장은 미국화할 것이며 소득분배 구조는 소수의 부자와 평균소득의 하향화를 보이며 악화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요컨대 고전적 모델이라 할 독일의 복지국가는 해체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Economist 06/02/09, 4). 여전히 신자유주의적 시장체제의 도전과 영향력은 강하고, 그와는 다른 모델의 존립을 주장하고 전망하는 일은 쉽지 않은 과제라 할 수 있다.

 

저자의 관점 : 고용과 평등의 균형적 접근

 

이제 정 교수 책의 내용으로 다시 돌아와 보자.
분석의 초점은 ‘조정된 시장경제’ 체제를 갖는 유럽의 복지국가에서 노동시장 제도가 세계화라는 외부 환경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영미식의 자유시장 체제에 특징적인 제도로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 두어진다.
이를 위해 저자는 역사적 제도주의, 프랑스 규제이론, 사회적 네트워크이론, 자본주의 다양성 이론의 논의들을 다양하게 끌어들인다. 이를 바탕으로 외부의 충격은 기존의 행위자 간의 조율/조정을 통해 만들어진 균형을 허물고 기존의 관행에 도전하지만, 정부가 생산자집단과 유권자의 압력에 따라 조율 양식을 회복하고자 노력하기 때문에, 새롭게 조율된 양식은 과거와 일정한 차이를 가질 수 있겠지만 급진적 변화는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현대 자본주의는 실업과 불평등을 동시에 해결할 수 없는가?”라는 스스로의 질문에 답하면서 세계화된 현대경제체제에서 그 목표를 동시에 실현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그는 요스타 에스핑-안데르센의 논의를 따르면서 실업과 불평등 양자를 동시에 실현할 수 없다면, 차선의 대안은 상쇄적 교환관계(trade-off)에 있는 양자에 대해 최적의 균형점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불평등의 해소보다 실업의 해결, 즉 고용의 확대를 평등의 원리에 우선하는 가치로 설정하고, 따라서 유럽복지체제에 비해 고용실적이 우월한 미국식 자유시장 체제의 장점을 강조한다.
그는 노동시장 경직성이 실업을 증가시킨다는 시장논리를 비판하지만, 또한 실제로 유럽식 복지체제가 창출하는 경직성이 고용을 증가시키지 못하는 한계를 그 체제의 중대한 약점으로 지적한다. 이 부분은 기업경쟁력은 노동비용의 삭감에서 나오며, 낮은 노동비용을 위해 생산을 아웃소싱 할 것이고,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국내 노동비용을 낮추고, 세율을 인하하며, 탈규제를 통해 국내시장을 확대하는 규제변화를 실시할 것이라는 , 신자유주의적 수렴론의 전제들에 비판적인 앞부분에서의 논지와 대조되면서 균형을 이룬다. 그리고 저자는 고용과 평등에 대해 상쇄적 교환관계의 메커니즘으로서 코포라티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저자가 발견하는 대안은 네덜란드의 바쎄나르 협약(Wassenaar Agreement)과 같은 사회협약이고, 이를 수단으로 ‘유연안정성’을 실현하는 노동시장의 창출이다.

 

각국 노동시장 체제의 유형 분류

 

(1) 북유럽 사회복지 모델

 

책의 두 번째 부분은, 노동시장체제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라는 환경변화에 대응하여 어떻게 변화했는가하는 문제를 고용/실업과 불평등이라는 기준으로 각국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 있다. 여기에서 다루는 범위는 매우 넓다. 에스핑-안데르센이 “복지자본주의의 세 가지 세계”(1990)에서 제시한 사회복지국가의 세 이념형이라 할 스칸디나비아의 북유럽, 코포라티즘과 국가중심적 복지체제의 독일, 자유주의적 복지국가의 미국을 포함하는 모든 국가/지역을 다룰 뿐만 아니라 그에 덧붙여 한국, 일본, 대만을 아우르는 동아시아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범위가 넓을 뿐만 아니라, 또 유형을 달리하는 여러 국가의 제도와 실천적 내용이 아주 구체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한국 학자들은 물론 외국학자들 사이에서도 이렇게 넓은 범위를 다루는 연구를 찾기 힘들다.
저자는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를 포함하는 북유럽 복지국가 모두를 다루고 있지만 스웨덴에 초점을 둔다. 일찍이 1980년대 그리고 1990년대 전반 스웨덴 복지국가의 위기와 그에 대한 대응은 세계적으로 커다란 관심의 대상이 된 바 있었다. 저자는 이 시기 노조의 연대임금 정책과 노사 간 중앙교섭이 종식되는 변화를 거쳐 어떻게 새로운 형태의 복지체제가 출현하게 되었는가 하는 과정을 상세히 서술한다. 여기에서 스웨덴복지국가의 거시경제 정책에 대한 이론적 기반이었던 렌-마이드너(Rehn-Meidner) 모델의 성공과 한계에 초점을 맞춘다.

총수요를 증진하는 팽창적 재정정책을 통해 완전고용을 추진했던 전통적 케인즈주의와는 달리 스웨덴의 경험으로부터 이론화한 렌-마이드너 모델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재정팽창이 아니라 생산성향상을 통해 완전고용을 이루려는 것이다. 생산성이 약하고 경쟁력이 없는 사양 산업이나 한계 기업들은 시장에서 도태되도록 하고 경쟁력이 강한 기업을 지원하는 정책으로, 그 방법은 긴축재정 정책을 통해 인플레를 억제하고 간접세 중심의 조세정책을 통해 기업의 투자환경을 지원하는 동시에 완전고용을 실현하는 정책이다. 이를 위해 노조가 해야 할 일은 임금을 평준화하면서도 고용을 위해 임금수준의 전반적 상승을 억제하는 일이다.
그리고 저자는 계급 간 타협의 코포라티즘적 원리가 약화되는 과정과 노사 간 전국 수준에서의 단체교섭과 연대임금 정책이 해체되고, 어떻게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후퇴하게 되었는가 하는 변화의 궤적을 추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스웨덴은 영국식의 신자유주의를 채택하지 않았지만, 금융의 탈규제, 노동시장 유연화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화의 원리를 대폭 수용하면서도, 기존의 노동시장 제도와 사회복지를 유지하고 고실업을 극복하며 경쟁력을 회복하는 나름의 ‘제3의 길’을 발전시킨 성공사례로 제시된다.

 

각국 노동시장 체제의 유형 분류

 

(2) 독일의 국가중심적 코포라티즘 체제

 

유럽대륙의 복지국가 체제를 대표하는 또 다른 모델은 독일이다.
원래 스웨덴보다 훨씬 시장원리를 폭넓게 수용하는 사회적 시장경제를 발전시켰고 유럽 최대의 경제규모가 갖는 영향 면에서도 독일모델의 지속은 유럽 사민주의 모델의 향방에 있어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곧, 독일 복지체제의 최대 문제로 부각된 고실업의 충격으로부터 어떻게 기존의 체제를 유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저자는 독일 노동시장의 특징으로 장기 고용, 평준화된 임금구조, 고숙련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노동시장 제도로 경영참가와 해고규제, 산별교섭 체계, 직업훈련 제도를 상세히 서술한다.
독일 복지제도의 문제의 중심에는 고용보호와 실업보호를 비롯하여 비임금 노동비용이 증가함으로써 고용창출이 저해된다는 점이다.
독일 복지제도는 그 재원이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바도 크지만, 그보다는 주로 노사 기여금에 의존하는 특징을 갖는데, 이는 정치적 저항으로 세금부담은 증가하지 않는 동안 사회보장 기여금 부담을 큰 폭으로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고, 그것은 또한 복지제도에 대한 커다란 압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세계화에 의한 경제환경 변화와 인구구조의 변화로 인한 고실업, 고령화는 실업보험, 고용보험, 건강보험 등에 대한 재정 부담을 지속적으로 증가시키면서 기업의 노동비용 상승을 유발하게 된 것이다. 실업을 사회적으로 수용할 수 있게 만든 제도들이 역으로 실업의 원인이 됨으로써 복지제도의 정당성을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1980년대 중반이후 헬무트 콜 기민당 정부의 <고용촉진법>으로부터 최근 슈뢰더 사민당 정부의 <‘하르츠(Hartz) IV 법>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고용정책, 노동시장 제도, 복지제도 변화를 상세하게 서술한다. <하르츠법>은 실업보호에 대한 완화를 통해 고용을 촉진하고 사회보장에 대한 부담을 축소하는 슈뢰더정부의 대표적인 노동시장 개혁으로서 정치적으로도 논란이 분분했던 정책이다. 논의의 초점은, 전통적으로 잘 제도화된 산별교섭이 단체협약에서 기업별 비중이 증가하고 분권화가 진전되는 변화에도 불구하고 노사관계의 기본 틀로 유지되고 있으며 평준화된 임금구조 또한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각국 노동시장 체제의 유형 분류

 

(3) 미국의 자유주의 노동시장 체제

 

미국 노동시장을 논의함에 있어 저자는, 한국의 비판적 논자들이 미국에 대해 극히 비판적이라는 점을 특별히 유의하면서 '균형 있는 평가'를 강조한다. 그리고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데 큰 주의를 기울인다. 필자의 관점에서 미국 자유시장 체제의 강점은 무엇보다도 고용창출 능력이다. 낮은 실업률도 그렇지만, 고용/실업 구조의 내용에 있어서도 유럽 복지국가 체제가 갖지 못한 여러 장점을 갖는다. 낮은 비정규직 비율, 높은 청년취업 비율, 낮은 장기실업자 비율, 높은 여성취업 비율 등은 유럽에 비해 분명한 상대적 우위를 갖는 요소들이다. 즉 고용분배 면에서는 미국의 시장모델이 유럽에 비해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낮은 실업률이 국민의 삶의 질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왜냐하면 복지혜택이 적은 미국에서는 생존을 위해 취업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은 고용과 해고에 대한 규제가 가장 약한 나라로서 높은 노동시장 유연성을 구현하므로, 높은 고용불안정을 수반한다. 그리고 최근 년의 변화는 고용안정성이 더욱 약화되었고, 임금불평등과 소득격차는 심화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실업률이 낮아진 것이다. 미국의 노조조직률은 한국과 비슷하게 12%대로 선진자본주의 국가 가운데서 최저수준이라 할 수 있고, 단체교섭은 기업수준에서 이루어지므로 임금평준화에 별로 기여하지 못한다. 미국의 법정 최저임금 수준은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교할 때 뚜렷하게 낮은 편이다. 더구나 사회보장제가 발전한 유럽에서 생계비가 적게 든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미국에서의 상대적 최저임금은 더 낮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 실업보험 또한 약하다.
최근 년 미국의 사회복지는 복지 대신 노동, 개인책임, 자활능력, 제재를 통한 규율, 수혜 자격의 제한과 축소의 방향으로 변화했다. 1996년 제정된 <개인책임과 근로기회조정법> (PRWORA)은 상징적이다. 이 법에 의해 미국의 가장 중심적인 공공부조 제도인 저소득층 소득지원을 대상으로 한 <아동부양가족지원제도> (AFDC)는 <한시적 빈곤가정지원제도> (TANF)로 변화했다(Gilbert & Terrell 2005). 그에 따라 이전에는 연방차원의 수혜가 보장되었던 것에서 각 주로 프로그램 운영주체가 이양되었고, 복지수혜 기간이 제한되었으며 성인 수혜자의 근로활동 의무와 벌칙조항이 강화되고, 직업훈련이 민영화되는가 하면, 교회 등 민간단체에 의한 복지서비스가 증가되고, 자녀에 대한 미혼모의 양육, 부모로서의 책임을 강화하는 등 보수적 방향으로 복지체제가 재편되기에 이르렀다. 나아가 미국식 생산체제의 중요 특징은 기술수준의 양극화라 하겠다. 고부가가치 부문의 노동력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고기술에 의한 최고 경쟁력을 갖지만, 저학력 일반 노동자들이 대거 포진돼 있는 생산부문이나 서비스부문은 저임금-저숙련으로 특징되는 양극구조를 갖는다는 것이다. 요컨대 미국의 노동시장은 고용창출에는 성공하고 있지만, 고용불안과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요약된다.

 

각국 노동시장 체제의 유형 분류

 

(4) 동아시아 노동시장체제

 

동아시아를 다루는 부분은 두 가지 점에서 관심을 끈다.
하나는 서구 국가들과 동아시아를 어떤 기준에서 유형 분류할 수 있는가, 바꾸어 말하면 동아시아의 노사관계를 서구와 구분되는 어떤 독자적인 유형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다른 하나는 동아시아 내에서 저자가 다루는 세 국가들 간의 하위유형을 어떻게 특징지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여기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유형 구분은 두 가지 기준을 따라 만들어지는데, 첫째는 구미 국가와 동아시아 국가들을 구분하는 것으로, 이들 국가에서는 구미에서와 같은 직무급 전통이 없고 노동시장을 전체적으로 규제하는 제도가 약한 대신 기업내부 노동시장이 발달되었다는 것, 즉 연공임금과 종신고용, 기업복지로 특징되는 일본의 기업내부 노동시장이 대표적이지만, 한국의 대기업 또는 대만의 국영 대기업의 경우도 일본의 이념형을 일정하게 따랐다는 것이다. 또한 낮은 실업률과 임금격차가 축소되는 경향으로 표현되듯, 상당한 정도의 평등이 병행하는 특성을 통하여 구미 국가들과 동아시아 국가들을 구분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동아시아 국가 간의 차이를 통해 유형을 구분하는 것이다. 첫 번째 구미 국가와 동아시아를 구분했던 차이는 1990년대 초로부터 2,000년에 이르는 사이 괄목할만한 변화가 발생했는데, 동아시아 국가에서도 실업이 증가하고, 그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이라 하겠지만, ‘총중류사회 붕괴’, ‘하류사회’, ‘격차사회’라는 일본식 용어가 나타내듯 일본이나 대만도 결코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동아시아 노동시장 체제의 특성을 세 가지 구분한다. 즉 (1) 시장형, (2) 분권적 교섭형, (3) 조율된 교섭형이 그것인데, 시장형은 미국이 대표적이고, 분권적 교섭형은 캐나다, 영국이 그에 속하고, 조율된 교섭형은 북유럽 국가들, 그리고 독일, 오스트리아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범주화는 임금결정 방식의 차이를 기준으로 한 것으로, 시장형은 시장논리에 따라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분권적 교섭형은 조율되지 않은 기업별, 산별교섭이 지배적이고, 조율된 교섭형은 전국 수준에서의 중앙교섭 또는 조율된 기업별, 산별교섭을 임금결정의 특징으로 한다. 그리고 이들 유형은 각각 그 결정방식이 가져오는 특정의 임금격차를 낳는다. 그리고 이 유형들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사례, 즉 분권적 교섭은 한국, 조율된 교섭은 일본, 시장형은 대만에 각각 적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들 세 나라의 기본 과제는 노동시장 불평등을 줄이고 복지를 확대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성장이 아닌 제도와 정책을 통해 불평등과 빈곤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으로 유럽이 복지삭감과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복지국가를 축소했던 것과는 “반대방향의 과제”를 동아시아 국가들은 안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국의 노동시장체제 분석

 

(1) 한국에서의 고용안정성과 노동시장 불평등

 

책의 세 번째 부분은 한국의 노동시장 체제를 분석한다.
그 첫 번째 부분에서 저자는 한국과 미국의 장기근속과 연공임금을 비교분석한다.
그 결과, 한국 노동자의 고용안정성은 선진국 중에서 고용 안정성이 가장 낮은 미국에 비해 낮으며, 이런 면에서 장기고용이 한국 노동체제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덧붙여 미국에 비해 연공급의 크기도 크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요컨대 그의 분석은 한국의 임금구조가 미국보다 훨씬 연공적이지만 근속연수는 짧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저자의 설명중 하나는 단기근속-저임금 부문과 장기근속-고임금 부문으로 노동시장이 매우 강하게 분절화되어 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기업의 고용관행에 있어 일부 노동자 외에 다수노동자들에게 강한 배제의 기제가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의 결론은 강력하다. 한국에서 장기고용 관행이 있다는 것을 근거로 한국사회가 여전히 공동체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는 견해가 오류라는 것이다. 이제 한국 노동시장의 구조는 공동체 원리가 아닌 시장원리가 지배적이 된 것이다.

 

한국의 노동시장체제 분석

 

(2) 분절화된 한국의 노동시장

 

한국 노동시장분석의 두 번째 부분은 한국 노동시장의 분절화가 만들어내는 정규-비정규직의 분획과 이들 간의 연대의 문제를 다룬다.
때마침 지난 6월 30일 현대차, 기아차, 대우차를 포함한 대공장 13개 노조원들이 개별사업장 노조에서 산별노조로 전환키로 결정한 사례도 있어, 이 문제는 당장 현재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문제에 대해 저자는, 그동안 산별노조로의 전환문제를 둘러싼 논의들이 주로 정규직 사이의 연대에 초점이 두어졌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정규/비정규 노동자 사이의 연대에 초점을 둔다. 저자는 이 작업을 위해 그동안 정규/비정규 간 연대의 성공과 실패의 몇 가지 경험적 사례들을 통해 분석한다.
분석의 결과,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정규직 노동자의 태도는 연대/배제라는 선택의 어느 하나가 아니라 훨씬 다양하다는 것, 조합원들의 이해관계가 절대적 변수가 아니라 운동의 이념이나 규범도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대기업 노동자들의 운동이 본래적으로 연대 지향적이라거나 정반대로 정규직 노동운동이 기본적으로 이기적이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배제하고자 한다는 그 어떤 관점도 대기업 노동운동의 본래적 특성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노동시장체제 분석

 

(3) 고용창출-평등-고용안정을 지향하는 대안

 

한국 노동시장 체제의 대안을 모색코자하는 이 책의 결론은 저자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기준들, 즉 (1) 고용창출(충분한 일자리를 제공하는가), (2) 평등의 원리(사회통합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 공정하고 평등한가), (3) 고용안정(일자리는 안정적이고 괜찮은가)의 세 기준을 통해 노동시장 체제에 관한 그간의 논의들을 평가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민주화이후 형성된 노동시장 체제를 기업별교섭, 기업내부노동시장, 노동시장분절을 그 중심적인 구성요소로 하는 ‘87년 노동체제’라고 말하고 그 체제는 실패했다고 평가한다. 물론 저자가 ‘87년 노동체제‘의 실패라고 말할 때, 그것은 민주화 이후 모든 시기에 관해 말하기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상황을 말한다. 외환위기 이전에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노동시장 분절화가 확대되었다 하더라도, 높은 경제성장률과 낮은 실업률은 기업규모별 임금격차를 축소시키는 효과를 가졌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사태는 크게 악화되어 기업규모별 임금격차가 확대되고 경제구조의 양극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현재 제시되는 대안의 방향은 대체로 세 가지로 나타나는데, 첫째는 대기업 노동운동이 추구하는 것(기업내부노동시장의 재강화), 둘째는 사용자들이 추구하는 것(영미식 방향으로의 탈규제와 유연화), 셋째는 주로 노동운동에 우호적인 학자들이 선호하는 것(사회적 노동시장의 구축)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양극화 해소와 좋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세 번째 사회적 노동시장 구축이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노동운동이 추구하는 기업내부 노동시장의 재강화는 기본적으로 인사이더-아웃사이더 분획을 해소하지 못한다. 그것이 인사이더의 고용안정과 임금인상을 가져올지는 몰라도 고용창출을 실현할 수 없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기업내부노동시장의 노동자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이고, 그에 따라 외부 노동시장의 노동자 수는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저자의 관점에서는 현재 노동운동 쪽에서 대안으로 생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는 기업 간 불평등 및 영세기업의 노동자 문제가 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노동시장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이 결코 될 수 없다.
저자가 사회적 노동시장이 대안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여러 다른 학자들이 말하듯이 유럽식 복지국가 체제를 곧바로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창출과 평등, 고용안정이 실현될 수 있는 한국적 노동시장의 방향을 말하는 것이다.
유럽 복지국가체제는 각 국가마다 제도와 실천이 다양하고, 그들은 각각 그들대로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계가 많다. 따라서 저자는 그러한 모델을 무차별, 무매개적으로 한국에 적용하는 데 부정적이다. 저자는 “특정 체제를 모델로 한 것보다 사회적 합의가 가능한 방향을 설정하고 그 구체적 방안과 접근을 현실에 맞게 모색하는 작업”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

 

지금까지 주요내용을 요약, 정리해 봤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노동시장 문제가 사회적 계층, 직종의 범위를 넘어 한국사회에서 경제생활을 영위하는 모든 일하는 사람들의 중심 문제로 부상된 오늘날 가장 시의적절하면서도 한 사람의 한국 사회과학도가 수행할 수 있는 훌륭한 연구 작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의 내용을 통해서도 볼 수 있듯이 정 교수의 연구는 노동시장과 관련된 거의 모든 주요 문제를 종합적으로 포괄하고, 이 분야에서 새로이 발전되는 이론들과 경험적 연구결과들을 두루 소화하고, 한국사회에 대한 분석과 대안이 매우 정교하고 경험적이며, 진보적이면서도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라면 누가 보아도 그 분석과 대안 제시가 합리적이고 현실에서 실현 가능할 수 있다는 설득력을 준다.
그러나 정 교수의 저서가 갖는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에 못지않은 약점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그것은 학문 발전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의미 있는 토론과 생산적인 비평의 활성화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제일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 연구는 많은 문제들을 제기하고 그에 답하려고 한다. 예컨대 왜 한국의 임금구조는 미국보다 훨씬 연공적인데 근속연수는 짧은가, 왜 한국의 비정규직노동자의 양산은 다른 나라의 유형과 다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것은 모두 중요한 질문들이지만, 이 연구 전체를 관통하면서 내용을 구성하는 각 부분들을 하나의 주제로 조직하는 중심 질문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논문을 전체적으로 조직하는 큰 질문은 그 연구의 주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이 정도의 큰 연구는 여러 다른 작은 질문들을 포함하게 되겠지만, 이러한 작은 질문들이 위계적으로 조직되지 않는 한 각 부분들은 하나의 주제 하에 일관된 논지를 따라 통일적으로 배열될 수 없을 것이다. 이 말은 인과적 연결구조의 위계성을 말하는 것이다. 설명구조의 정점에 큰 질문이 없을 때, 각기의 작은 질문들, 문제들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설명을 독자적으로 시도하는 동안 중심과 초점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게 되고 산만함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결론부분에서 “87년 노동체제의 실패”라고 말했다.
필자가 보기에 이 문제는 중요하다고 본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과 노동운동의 고양은 민주화와 병행했다. 그것은 저자 자신이 말하고 있듯이 그동안 화이트칼라 일부에만 적용되던 기업내부시장이 생산직 노동자들에게도 적용되는 변화와 더불어 노동시장의 중요한 변화를 초래했다. 그 뿐만 아니라 화이트칼라의 조직을 비롯한 노조조직의 확대, 노동자권익의 증진, 노사관계의 변화, 그리고 노동과 자본 간의 사회적 힘의 관계의 변화, 정치적 통치체제의 민주화 등, 노동문제와 관련된 거의 모든 수준에서 커다란 전환이 일어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형성된 노동시장 체제와 그것의 구조적 특징은 무엇인가?
그동안 노동운동을 억압했던 정치 환경이 민주화되고, 사회적 힘의 관계가 변하고, 노사관계, 노동시장체제가 변했다면 그 내용은 무엇인가? 그런데 왜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하여 그 이전의 노동운동의 성과들은 급격하게 역전되었는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효과는 무엇인가? 만약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87년 노동체제의 실패”를 가져왔던 결정적인 변수라면 권위주의로부터 민주주의로의 정치체제의 변화는 이 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며 어떤 영향을 미쳤나? 만약 영향을 미쳤다면 어떤 영향을 미쳤고, 아니라면 왜 그러한가? 만약 외환위기라는 외적 충격이 없었더라면 한국의 노동운동/노동시장체제는 상당히 다른 경로의 발전을 보였을 것인가? 노동시장 체제의 실패에 노동운동과 민주정부가 기여한 요인은 없는가? 대체 민주화 이후 그간의 운동과 정치는 오늘의 노동시장 문제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이었나?

 

모니카 프라사드 연구의 예

 

한국 노동시장 문제가 직면한 문제와 관련해, 최근 출간된 인도 출신 미국 사회학자 모니카 프라사드의 『자유시장의 정치학: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에 있어 신자유주의 경제의 흥기』는 매우 의미 있는 질문을 제기한다. 그녀의 질문은 왜 미국, 영국은 신자유주의적 자유시장 체제를 채택하게 되었고, 독일과 프랑스는 그렇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일견 너무 평범한 질문이어서 문제조차 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답은 그동안 학계에서의 수많은 연구를 통해 확실하게 정립된 이론들과 가정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경험들이 있어 이미 다 알고 있다고 말할지 모른다.
예컨대 세이무어 마틴 립셋의 ‘미국예외주의’ 테제가 말하듯이 미국에서 노동운동은 약하고 사회주의 정당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개인주의적이고 친시장적 문화가 강해서 재분배적 정책을 펼 수 없었고 석유파동 이후 보다 더 친기업적인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막을 수 없었다는 설명도 가능할 것이다. 영국 역시 유럽 대륙의 국가들에 비해 노동운동이 약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 반면 독일과 프랑스는 사회주의 혹은 사민주의적 노동운동의 전통이 강해서 자유시장 정책이 관철될 수 없었다는 것도 하나의 상식적 설명이 될 것이다.

그러나 프라사드의 대답은 이와 정반대이다. 그녀는 우선 1970년대 중반 이전까지 미국과 영국의 조세정책은 진보적이었으며 산업정책은 기업에 적대적이었고 복지체제는 재분배적이었다는 특징을 보여준다. 또한 대처의 신자유주의적 급진개혁이 가능할 수 있었던 영국에서 노동운동은 약했던 것이 아니라, 1970년대 동안 파업을 통해 정부를 붕괴시킬 정도로 강했다는 것을 강조한다.
전후 사회경제적 전환과정에서 노동운동은 중산층과 연대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따라서 대부분의 투표자들은 노동자 계급과 분리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노동조합이 투표자들을 소외시켰고 또 소외되었기 때문에 이를 이용한 보수당은 신자유주의적으로 급진화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 경우 강한 노동운동의 조건은 신자유주의적 급진화를 가속시키는 효과를 낳았던 것이다.
그녀가 볼 때, 두 나라 모두 전후 정치사회 구조와 국민경제 성장과정에 있어서 좌와 우, 노동과 자본이 공존의 틀 위에서 파트너로서가 아니라 적대적 경쟁관계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두 나라 모두에서 전후 사회경제적 전환정책이 좌파 내지 진보적 정부들에 의해 수행된 바 있었다. 그 결과 대부분의 투표자를 두 적대적 분획의 서로 다른 반대쪽으로 움직이게 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자들은 투표자들의 급진적 성향을 알고 그 이점을 활용했다. 독일과 프랑스는 좌우파가 균형을 이루어 어느 일방이 지배적이 되지 못하고 파트너로서 작용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의 과격한 등장과 같은 급진적 반동이 없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파격적인 대답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이 질문과 대답을 뒷받침할 증거자료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프라사드는 1960년부터 1990년대 말까지 각 국가의 조세자료와 산업정책, 복지정책을 면밀하게 분석한다.

찰스 틸리가 격찬하고 있는 그녀의 연구는 상식을 뒤엎는 대담한 문제제기로 앞으로 세계 학계에서 커다란 논쟁을 유발하게 되겠지만 어쨌든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을 새로운 각도에서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녀의 연구는 한국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한국 노동운동은 그 강한 운동성에도 불구하고 왜 노동시장의 급진적 신자유주의화를 막지 못했나? 한국의 노동운동은 왜 중산층을 통합해낼 수 있는 대안을 발전시킬 의지를 갖기는커녕 노동자 전체의 연대조차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었나? 노동운동이 매우 열악한 조건에 처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반노동적인 공세와 분위기는 더욱 강해지고 있나? 한국의 노동운동은 어떻게 투표자들을 소외시키고 또 그들로부터 소외되고 있는가?
일찍이 아담 세보르스키는 지금은 고전이라 할 『자본주의와 사민주의』(1985)에서 보수주의의 강력함에 대해 이론적 설명을 제공한 바 있다. 그것은 지배적 집단이 강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들에 대항하려는 잠재적 경쟁자들이 국가권력을 결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문적 지식과 아울러 대안적 행위가 실제로 가능할 수 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할 능력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노동운동은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에 대해 고통스럽게 획득한 지식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기존 체제가 별다른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더라도 이 체제를 통해서 무언가 이익을 증대하고 경험을 쌓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필자의 소견으로, 오늘의 한국노동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핵심적 문제는 그저 신자유주의에 반대한다고 말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노동자 권익을 실제로 증대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더불어 어떻게 존립할 수 있는가 하는 데 있지 않나 한다.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아니 현재와 같은 민주화와 노동운동의 한계 때문에 오늘의 한국사회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점점 더 무방비로 노출되어 왔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다양성 이론’을 이해하는 방법과 관련해

 

정 교수의 책은 여러 이론 가운데서도 ‘비교자본주의/자본주의다양성’ 이론이 그 중심을 이룬다고 하겠다. 이와 관련하여 세 가지 문제가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유럽 사회복지국가에서 복지체제를 지속토록 하는 힘은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는 복지제도가 자유시장 체제로 수렴되지 않도록 하는 저항적 힘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특정국가의 경제체제에 있어 주요 사회세력, 주요 이해관계의 당사자들이 복지국가의 유지를 더 선호하게 된 원인을 밝히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비교자본주의 이론에 있어 분석의 초점이라고 할 수 있는 문제이다.
둘째, 자본주의 다양성 이론의 중심 토대를 이루는 역사적 제도주의에 있어 핵심 개념인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에 대한 관점이다.
세 번째는 노동-노동시장-복지체제에 있어 사회적 힘의 관계를 반영하는 정치의 중요성, 바꾸어 말하면 제도를 형성, 변화, 작동하도록 하는 행위 주체와 관련된 문제이다.

첫 번째, 누가 복지체제를 유지하기를 바라는가, 또는 누가 이를 폐기하기를 원치 않는가 하는 질문은 분명 매우 새로운 접근이다. 복지국가를 설명함에 있어 고용자/자본가들의 역할을 강조하는 대안적 접근이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을 전후한 시기였고, 이 관점을 통한 연구결과들은 자본주의 다양성 이론으로 불리게 되었다. 예컨대 한 연구자는 회사와 산업이 위험에 크게 노출될 때 그들은 비용과 위험의 분담을 가능케 하는 사회보장체제를 선호할 수 있는데, 그 결과 고용주들이 보편적인 실업보험 및 산재보험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보장은 노동력의 기술획득을 촉진하고 특정 산업부문에 있어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효과를 가지며, 따라서 고기술을 필요로 하는 기업은 관대한 실업보험을 지지하게 된다는 분석을 내놓는다(이사벨 마레스 2003). 그런가 하면 다른 연구자는, 독일의 사회보장 제도와 단체교섭 체제가 어떻게 상호 보완적으로 발전했는가를 밝히면서, 사회보장제도가 어떻게 노조의 임금억지와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했는가를 보여 준다(필립 마노우 2002).

또 다른 연구자는 국제시장에서 효과적으로 경쟁하고 잠재적인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보장을 제도화할 것을 요구한다. 장기적인 고용보장과 실질임금의 안정에 대한 암묵적 협약이 없는 조건에서는 숙련기술을 갖는 노동자들을 확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데, 이를 위해서는 고용주들의 약속 만으로서는 불충분하다. 이것은 왜 정부정책으로서의 사회보장이 필수적인가 하는 것을 말해준다(에스테베스-아베, 아이버슨, 소스키스 2001). 이러한 문제의식은 캐서린 텔렌의 “독일 고용주들은 왜 독일모델을 폐기할 수 없나?”라는 논문 제목으로 잘 집약된다(텔렌 2000). 요컨대 사회보장 체제는 자유시장 논리에서 말하듯이 노동비용 상승과 고용주의 생산비 증가가 경쟁력 약화를 야기하는 체제가 아니라, 노동자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비용을 분담하고 고용안정성을 높이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체제라는 것이다.

 

이처럼 문제를 보는 초점의 전환은 분명 복지국가에 대한 앞선 이론들과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에스핑-안데르센은 복지국가를 “시장에 반(反)하는 국가”로 정의하고, 복지국가의 형성을 중산층과의 계급연합에 의해 실현된 정치적 좌파의 역사적 힘의 발현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국가 대 시장으로 요약되듯이 노동력의 ‘상품화’에 대해 노동자를 강화하고 고용주의 절대적 권위를 약화시키는 ‘탈상품화’를 대치시켰다. 그것은 얼마나 많은 시장이냐, 아니면 얼마나 많은 복지국가냐 하는 제로섬(zero-sum)적 관계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코르피, 에스핑-안데르센, 휴버와 스티븐스 등). 또한 복지국가에 관한 월터 코르피의 ‘권력자원 모델’은, 복지국가는 “기회만 닿으면 그 부담을 벗어던지고자 하면서 억지로 끌려오는 자본가계급의 어깨 위에 건설된 것”으로 정의한다. 분명 자본주의 다양성 이론은 이러한 접근과는 매우 다른 접근이다.

자본주의 다양성 이론과는 다른 방향이기는 하지만, 필립 슈미터와 게르하르트 렘부르크 등이 발전시킨 코포라티즘 역시 문제를 설명하는 초점의 전환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이다. 맑스주의자들은 노동자계급을 종속시키고 그들이 진정한 혁명적 목표를 성취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코포라티즘 제도를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한마디로 코포라티즘은 자본가들의 속임수라고 보았던 것이다. 슈미터 자신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그와는 정반대의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한다(Snyder & Munck 미출간 원고). 맑스주의자들의 주장대로 국가가 자본의 이해를 지켜주는 보장자 역할을 한다면, “자본가들은 왜 스스로를 조직하려 하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자본가들을 위한 제도로 본다면, 코포라티즘은 어떻게든 노동자를 제도의 틀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중요하게 된다. 하지만 슈미터가 실제 경험적으로 발견하게 된 것은 코포라티즘은 노동자계급에게 유익한 결과를 낳았고 동시에 이 제도의 취약성은 자본가계급의 이탈 혹은 그 가능성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처럼 코포라티즘 연구는 기존 노동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초점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는데, 다름 아닌 자본가의 중요성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자본가의 역할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에 반해 코포라티즘 이론가들은 자본가들은 왜 조직하려 하는가, 나라에 따라 산업부문에 따라 왜 다르게 조직되는가, 왜 어떤 나라에서는 자본가들이 매우 강한 ‘정상조직’(peak association)을 갖고 어느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은가, 부문과 수준에 따라 왜 다르게 단체교섭을 하는가 등 새로운 연구주제들을 발전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Streeck and Schmitter 1985; Schimitter 1990; Hollingsworth,Schmitter and Streeck 1994).
정이환교수의 책은 필자가 접한 범위에 있어서 한국의 사회과학도들 사이에서 자본주의다양성/비교자본주의에 대한 문헌을 가장 광범하고 종합적으로 다룬 저서라고 생각한다. 이 자본주의 다양성 논의는 세계 학계에서 이 분야의 이론 발전의 관점에서나, 그리고 한국의 지적 풍토와 노동운동의 전통의 관점에서는 분명 보수화된 이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한국의 대표적인 노동사회학자가 이들 문헌을 상세히 소개하고, 이를 적용해서 한국 문제를 설명하려고 한 시도에 대해 환영하고 또 그것이 이 분야에서 새로운 연구를 자극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그 이론이 한국의 노동문제를 이해하고 그 대안을 모색함에 있어 단순히 온건하고, 유연하고, 상대적으로 비(非)이념적이고,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라는 점 때문만이 아니다. 그것은 노동조합, 노동운동, 노동정당, 노동계급 중심적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일방적, 단선적 관점으로부터 국가, 자본가/사용자, 노동운동, 정당들 간의 복합적인 전략적 상호관계로 시야를 넓혀볼 수 있는 이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다양성 이론은 이 이론을 구성하는 문제와 방법 자체가 종래의 이론들과는 상당히 상이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문제를 본다면, 한국사회의 노사관계, 노동시장, 노동운동에 있어서 자본가들의 이익과 병립할 수 있는 범위가 무엇인가, 이익공유의 영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어렵다면 그 제약들은 무엇인가 등의 문제를 사고하는 데 훨씬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경로의존성에 대한 해석의 문제

 

둘째는 자본주의 다양성 이론의 핵심 요소를 이루는 경로의존성의 문제이다. 유럽 복지국가들에서 행해지고 있는 노동시장 개혁이 왜 자유시장 체제로 수렴되지 않는가를 설명하는데 있어, 복지국가 구조와 이들 국가경제의 광범한 조직적 특성들 사이에 높은 연관관계가 존재한다는 가정들은 커다란 설명력을 갖는다. 이는 제도의 효과를 말하는 것으로, 과거에 만들어진 선택과 그 결과로서의 제도가 그 이후의 선택을 체계적으로 제약한다는 뜻이다. 이 개념은 제도들에 얽혀 있는 상호작용의 체계가 여러 행위자들의 관성적 패턴을 지속시키는 효과를 갖는 것이자 기성 제도에서 혜택을 보는 기득이익이 제도의 지속성을 강화하고 변화를 어렵게 한다는 논리를 말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다양성 이론에 있어 폴 피어슨과 같은 대표적인 경로의존론자들이 갖는 약점은, 특정의 제도가 그와 다른 제도를 갖는 국가로 이식되기 어려운 어떤 강한 분획선을 상정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는 데 있다(Pierson 2004). 처음의 결정과 제도화는 지속적으로 그것을 강화하는 구조를 발전시키기 때문에 그와 다른 제도를 갖는 나라에 이식되기 어렵고, 그렇게 하려면 커다란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보수적인 제도결정론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치명적인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보다 좋은 선택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의 공간과 이를 통한 새로운 제도 창출을 부정하거나 좁힌다는 것이다. 예컨대 오늘날 한국경제의 신자유주의적 발전전략과 노동시장 구조는 필연적인가? 내가 볼 때, 그것은 그동안 민주정부들의 좋은 또는 나쁜 선택의 결과가 더 많이 작용했다. 다른 선택의 가능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쉐보르스키의 말처럼 “모든 것이 경로의존적이라면 제도의 충격에 대해 말하는 것이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 충격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다른 제도들이 동일한 역사적 조건에서 존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반사실적’(counterfactual) 역사들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Snyder & Munck 미출간 원고).

다른 하나는 설명하고자 하는 수준에 따라 연속성과 단절성 또는 신자유주의적 시장체제로의 수렴과 비(非)수렴이 다를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연속성을 강조하는 것은 변화를 자의적으로 설명하지 않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예컨대 오늘의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체제는 과거 권위주의적 산업화 시기에 원인을 두는 경로의존적인 결과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국가-재벌이 성장을 견인하고 노동이 소외된다는 중요한 특성을 보면 그것은 경로의존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권위주의 산업화 시기 한국의 경제에 대한 국가의 역할과 노사관계의 제도 및 관행들은 미국의 자유시장 체제보다 일본의 비(非)자유주의적 체제를 모델로 삼았다.

 

이는 결코 경로의존적이 아니다. 어떤 수준에서 말하느냐가 문제이다. 정이환교수는 자본주의 다양성 이론에 포함된 이 경로의존성 개념에 대해 자신의 분명한 관점을 말하지 않는다. 어떤 때는 이를 비판적으로 말하는 듯 하고(p.48), 또 어떤 때는 이를 긍정적인 것으로 말한다(p.10: 396). 저자가 사회변화는 경로의존적이기 때문에 “가까운 시간 안에 유럽식 노동시장체제가 한국에 뿌리내릴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라고 말할 때, 그렇다면 왜 자본주의 다양성 이론을 이 책의 중심이론으로 불러들이는 것인지 의문이다.

 

사회적 힘의 관계를 반영하는 정치의 중요성

 

셋째 자본주의 다양성 이론의 핵심에 위치하고 있는 정치의 중요성에 관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이론은 경제학에서가 아니라 정치경제/사회학 분야에서 발전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그것은 기본적으로 정치행위자 중심 모델이다. 국가/정부, 정당, 기업, 사용자단체 및 노조를 중심으로 한 생산자집단/이익집단, 선거경쟁과 투표자들이 그들이다. 누가, 즉 어떤 투표자층, 어떤 정치세력 내지는 정치연합이 복지개혁을 어떤 내용으로 추동하나, 누가 복지체제를 유지하기를, 혹은 누가 해체하기를 원하나 하는 등의 복지체제를 둘러싼 정치세력 간 이해관계의 차이 또 이들 간의 힘의 관계가 중심을 이루는 접근이라는 것이다.
필자의 관점에서 자본주의 다양성 이론의 최대 매력은 바로 유럽의 이른바 조율된 시장경제에 바탕을 둔 복지체제가 어떻게 정치체제와 맞물려 제도적 상보성을 가지고 작동하는가를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다양성 분야의 연구들은 대개 정치제도, 생산자 집단의 조직형태, 이들의 이익을 대표하는 정당체제, 생산체제와 노사관계 등에 있어 복지체제 개혁이 어떻게 상호 연관되는가 하는 문제를 다룬다. 즉 정치적 맥락 없이 복지체제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정이환교수의 이번 책에 대한 필자의 가장 큰 불만은 자본주의 다양성 이론이 풍부하게 제시하는 정치적 맥락과 행위자들 간 이해관계의 갈등, 이들 사이의 힘의 관계에 대한 분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책의 접근방법으로서 행위자중심 접근을 강조하고, 권력관계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분석에서는 이러한 접근을 발견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책은 유형분류를 통해 제도의 특성을 말하고 그 변화를 추적하고, 유형분류에 의한 제도변화를 다소 정태적으로 추적하는 것이 내용의 중심을 이룬다. 그러므로 이 책을 통해서는 실제로 유럽의 사회복지국가의 제도들이 어떤 사회경제적 문제를 만들어내고 이에 대응하여 정치행위자들이 어떻게 행위하는가 하는 체제의 동태적 문제는 발견하기 어렵다. 따라서 스칸디나비아형, 독일형, 영미형 등 가장 거시적인 수준에서의 이들 시장체제의 특성에 관한 서술과 극히 기술적이고 미시적 문제들이 자주 혼재됨으로써 설명과 서술의 위계적 연관관계를 놓칠 때가 많다. 정치적 다이내믹스를 통하여 문제를 그 체제 안으로부터 보고 그 체제가 안고 있는 제약과 개혁의 방향 및 내용을 분석하고 그것이 가져온 효과를 평가해야 할 것이다.

 

대처의 영국과 콜의 독일이 다른 결과를 낳은 이유

 

필자는 앞에서 왜 미국과 영국은 신자유주의적 자유 시장체제를 급진적으로 수용했고, 독일과 프랑스는 그 체제를 수용하지 않았는가 하는 사회학자 프라사드의 질문을 좋은 문제제기의 한 사례로 들었다.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냈던 것은 경제논리 그 자체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정치제도의 차이와 관련된 정치적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슈트와트 우드는 영국과 독일 두 나라의 사례를 들어 이 문제를 더 구체적으로 다룬다(Wood 2001).

1979년 영국의 대처 보수당정부의 집권과 1980년대 초 신자유주의적 대처혁명의 시작과 거의 같은 시기인 1983년 서독에서는 헬무트 콜 기민-자유 연립정부가 성립됐다. 콜은 “더 작은 국가, 더 많은 자유”라는 슬로건과 함께 신자유주의적 테마를 앞세워 캠페인에 임했고, 집권과 더불어 복지국가에 대한 개혁을 시도했다. 그러나 영국에서 성공했던 신자유주의적 혁명은 독일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왜 그러한가?

정치적 수준에서 이 문제를 간단히 설명한다면 영국의 정치체제가 다수결 민주주의의 모델이고 독일체제는 합의적 체제의 전형적 모델이라는 사실과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 영국의 급진 보수혁명의 시발은, 기업계와의 교감 속에서 추진된 인플레이션 억지정책, 실업의 급증을 허용한 1981년의 긴축예산과 더불어 시작되었는데, 이 시점에서 사민당의 분당에 따른 노동당의 분열은 영국의 선거제도가 단순다수제라는 사실에 힘입어 대처정부에게 다수의석을 보장해주는 결과를 만들었다. 대처정부는 노동조합이 향유했던 기존의 권력을 해체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개혁을 단행할 수 있는 조건을 갖게 된 것이다.
영국의 제도적 맥락에서는, 양당체제하에서 다수를 획득하는 정당이 권력을 독점하는 구조로 인하여 입법과정에서 정치경제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기 때문에 공급측면에서 경제행위자들을 조정하는 것이 어렵다. 정부가 정책의 급진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능력을 갖기 때문에 기업은 위험부담이 높은 장기적인 투자에 소극적이다. 안정적인 장기투자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경제행위자들 간의 조정을 위한 네트워크를 발전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조율된 경제 네트워크를 발전시키지 못하는 영국기업들은 시장확대 정책에 대한 강력한 인센티브를 가지고 정부를 압박하게 된다. 조정되지 않은 기업, 제약 없는 정부가 맞물려 움직이는 정치경제체제라는 영국적 특징은 신자유주의로의 급진적 전환을 가능케 한 요인이 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독일은 이와는 완전히 다른 정치경제체제를 발전시켰고, 또 완전히 다른 정책적 결과를 가져왔다. 독일의 노동조합은 사회당에 의해 더 많이 대표되지만, 기민당에 의해서도 대표된다. 콜 정부가 시장확대를 지향하는 노동시장개혁을 추구했을 때, 실제로 그것을 좌절시켰던 것은 야당인 사민당이 아니라, 기민당의 친노동그룹인 ‘사회위원회’들의 역할이었다. 1986년 노동개혁의 내용은 개혁과 그에 대한 반대라는 두 입장 간의 고전적인 타협의 형태로 귀결되었다.
당내 저항에 부딪쳐 정부의 원래 노동개혁의 방향과 내용은 완화되고, 결국 노조의 파업권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환경변화에 따라 조정하는 방향으로 개혁은 종결되었다. 고용주들의 입장에서는, 힘을 행사하기보다 자제하는 것이 더 큰 인센티브를 갖는 것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개혁은 보수적 노동시장 개혁을 지지했던 영국 고용주들과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노조의 파업조건을 바꾸는 개혁안은 노조의 파업비용을 증가시키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단체교섭의 주체로서 기업이든 노동이든 어느 편에게도 협의를 거부할 인센티브를 주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용주들은 법적 개입을 통하지 않고서도 보다 질서 있는 단체교섭이 가능할 수 있도록 노조가 가질 수 있는 인센티브를 재조정하는 개혁을 지지했던 것이다.

콜 기민당 연립정부내의 신자유주의파들이 추진했던 또 다른 개혁이슈는 1976년 <공동결정법>에 의거하여 제정된 기업 내 노동평의회 선거절차에 관한 개정문제였다. 그것은 군소 노조들, 즉 기독교계열의 다른 총연맹들의 대표권을 사실상 배제하고 DGB(독일노동조합총연맹) 가맹조합 대표의 독점을 보장하는 절차를 말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기민당 내 사회위원회들은 노조의 지위를 약화시킬지도 모를 어떤 개혁조치에도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
이 절차에 대한 개혁 문제는 신기술을 도입하는 문제까지 공동결정제를 확대하려는 것과 중간급 경영위원회를 설치하려는 것과 같은 다른 이슈와 연결된 것이기도 했다. 이 이슈로 인하여 콜 정부는 또다시 연립정부와 당내그룹 간 내부 갈등에 휘말려 결국 개혁시도는 좌절되었다. 독일 고용주들은, 이러한 개혁의 목적이 기업 내 작업장수준에서 노조의 권력을 약화시키려는 데 있다 하더라도 이 개혁안에 강력하게 반대했다. 이러한 입장은 노사관계에 있어 조정/조절의 논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납득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기업이 견고하고 성실한 협력자로 노동을 수용하는 태도와 가치가 실천되는 데서 발생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자유시장은 그것대로 효율성을 가질지 몰라도 갈등과 불신을 수반할 것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고용주들은 작업현장에서 노조의 요구가 분열되기보다 ‘한 목소리로 말하는’것을 원하며 그 제도적 장치가 노동평의회인 것이다. <공동결정법>과 <노동헌법>이 규정하는 노동평의회의 대표성 문제는 지난 2005년 9월 독일총선에서도 이슈가 된 바 있었고, 현재의 메르켈 기민-사민당 대연정 정부에서도 문제가 되었으나 필자는 현재까지 그것이 개혁의제에 올라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영국 보수당의 의회 리더십이 정당정책과 선거전략에서 완전히 자율적인 것과는 달리 기민당 사례에서 보듯 독일의 정당체제는 사용자 단체나 노조와 같은 정당 밖 이익집단들과 밀접한 상호관계를 가지며 그들에 의해 제약된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 독일의 기업은 고도로 조절된다. 그리고 그들은 극히 제약된 권력과 제한된 자율성을 갖는 정부를 상대한다. 독일의 정부, 기업, 노조 간의 상호관계에 기초한 조절된 시장질서는 정치체제의 제도들에 의해 뒷받침되고 그것과 연동하여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와 사회의 중요한 집단, 행위자들이 권력을 분점하는 체제는 피터 카첸슈타인이 말하는 ‘준주권적 국가/중앙정부’(semi-sovereign state)라는 현상의 내용이라 하겠다(Katzenstein 1987). 여러 주요 정책영역이 연방정부의 관장사항이라는 사실과 함께 독일의 연방제는 연방정부의 권한 자체를 제약한다. 다른 나라의 상원들과는 달리 독일의 상원은 하원에 못지않은 큰 권한을 가지고 하원에서의 다수결정을 견제한다. 국가기구 내의 강력한 헌법재판소 이외에 국가영역 밖에도 연방은행, 상공회의소와 같은 공적 권력을 갖는 사적기구들 역시 정부의 자율성과 정책독주를 제약한다. 말하자면 정부가 개혁적 정책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고자 할 때 그 정책방향에 대한 비토의 지점이 많다.
그보다 이러한 제도와 함께 정치가 실제로 작동하는 방법을 보면 독일의 정치체제를 왜 합의적 결정의 모델이라고 부르는가 하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정부 형태에 있어 연정은 예외가 아니라 정상이고, 그럼으로써 한 정당의 정책이 설사 그것이 최대다수의 집권정당이라 하더라도 그 정책목표를 전일적으로 실현할 수는 없다. 더욱이 선거제도 역시 영국의 소선거구 단순다수제와 그에 기초한 양당제와 달리 대표적인 비례대표제의 다당제라는 점에서 하나의 정당이 압도적 우위를 점할 수 없다.


앞에서 콜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시도에서 보듯이 다른 정당의 도전을 받기 전에 같은 정당 내에서 저항에 부딪친다. 기민당의 구성 자체부터가, 자유시장을 지지하는 친기업 그룹으로 대표되는 경제적 우파로부터 노조를 대표하는 사회위원회 그룹과 같은 좌파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이 넓다. ‘국민정당’(Volksparteien)이라는 사실 자체가 기민당을 제약하는 조건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정치체제의 차원에서 본 것이다. 이와 병행해서 노사관계의 체제가 있다. 전국 수준에서는 노동자와 기업이익을 대표하는 정상조직들이 존재한다. 그 아래 수준인 산업부문에서도 기업이익을 대표하는 여러 업종의 부문별 사용자단체들이 존재하고 그와 대응하여 산별노조들이 존재한다. 독일에서 가장 강력한 노조라 할 수 있는 독일금속노조(IG Metal)는은 이 수준의 노조이고 전국총연맹인 DGB의 중심 조직이다. 그리고 맨 아래에는 기업의 작업장 수준에서 노동평의회가 존재한다.

 

기민당, 사민당의 중심 기반을 이루는 조직은 이들 사용자단체와 노조들이며, 이들 생산자집단들은 정당에 대해 어떤 다른 사회 집단보다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독일의 임금인상률을 포함하여 노동시장의 여러 문제들에 대한 결정들은 대체로 여러 부문의 산별수준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맨 아래 수준에는 기업운영과 노동현장에서의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공동결정제와 이를 통한 노동평의회의 역할이 있다. 정치의 대표를 선출하는 데에만 주기적인 선거가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현장에서 기업운영을 위한 노동평의원 대표를 선출하기 위해서도 공동결정법에 따른 주기적인 선거가 있다.
독일의 헌정체제, 정치체제, 노사관계체제들은 마치 옛날 우리나라의 한옥(韓屋) 구조를 연상케 한다. 못을 사용하지 않았던 한옥은 기둥과 구조들을 서로 맞물리게 연결해 놓아 전부를 해체하지 않고서는 집을 무너뜨릴 수 없는 구조를 갖기 때문이다. 필자의 생각으로 이러한 구조를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제도는, 맨 아래 수준에 위치하는 제도 즉 공동결정제의 원리에 입각한 노동평의회이다. 독일의 공동결정제는 다른 유럽 복지국가들이 대부분 이를 채택한 원형으로서, 조절된 시장체제를 뒷받침하는 노사관계의 근간을 이루는 제도라 하겠다.

이 제도에 따라 노동평의회의 대표성이 사용자 대표와 노동자 대표를 동수로 하는 이른바 대표의 ‘동등원칙’(parity principle)은 이 제도의 핵심 원리라 하겠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원리를 자본주의 시장의 운영주체인 기업운영에 적용했다는 점에서 제도적 혁신이 아닐 수 없다. 동등원칙은 폭스바겐과 같은 독일 최대기업에서부터 작은 기업에 이르기까지 예외 없이 관철된다. 폭스바겐의 경우, 폭스바겐을 구성하는 세 주체들, 즉 주식소유 대표, 정치 대표, 노동 대표들이 노동평의회의 감독이사회를 구성한다. 이사의 수는 총 20명으로서 경영과 노동 각각 9명, 정치인대표가 2명으로 구성된다. 정이환교수가 책에서도 소개했던 <하르츠법>은 슈뢰더 정부가 폭스바겐 인사담당 책임자이자 감독이사회의 위원이었던 피터 하르츠에게 개혁안 작성을 위임해서 만들어진 노동시장 및 복지 개혁법이다. 실업수혜비와 사회보장혜택을 삭감하고 취업재배치와 고용창출을 목적으로 했던 <하르츠법>은 2005년 총선을 준비하면서 슈뢰더 정부가 내놓은 가장 야심적인 프로젝트였다.

 

정치 없는 정책, 노동 없는 정책이 지배하는 한국 현실

 

필자는 앞에서 독일의 사례를 들어 노동시장 체제가 어떻게 구성되었고 또 어떻게 작동하며, 특정 개혁안이 어떤 맥락에서 제기되고, 그것은 어떻게 성공하고 실패했는지를 말하기 위해 그 정치적 맥락과 행위자들의 이해관계를 통해 다소 장황할 정도로 설명했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노동시장문제, 노동과 사회복지체제에 대해 논의하는 데는 정치적 힘의 관계와 맥락, 그리고 행위자들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중요한 변수로 불러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다. 즉, 노동문제에 대한 논의가 정치적 문제의식과 밀착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한국의 노동시장 문제를 논의할 때 선진국의 제도를 수용하거나 정책의 모델로 삼기 위해서는, 그 정치적 맥락을 함께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렇지 못할 때 현실에 대한 호소력은 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경제정책은 말할 것도 없고 노동-사회복지-사회정책 등 그리고 이로부터 파생되는 이슈들인 고용, 소득분배, 사회양극화와 같이 노동과 관련된 문제영역을 논의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이를 정치적 맥락과 분리시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어떠하든 그것은 자연히 노동문제의 중심적 행위자로서 노동자, 노조, 노동운동을 사상하고 논의하는 구조를 발전시켰다. 그것은 정부의 노동정책의 결정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정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 정책자문 그룹과 전문가들, 학계의 학자들 모두에게 있어 공통적인 특징이 아닐까 한다.
 
오늘날 한국의 노동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개혁의 필요를 느끼면서 노동문제를 접근하는 지식인 또는 학자들이 해야 할 일의 하나는, 노동문제가 얼마나 정치적 문제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을 일깨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정치적 문제, 정치적 맥락은 민주주의의 제도적 틀을 통해 노동문제를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고, 어떤 개혁 내용과 전략이 모색될 수 있는가를 탐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유럽 복지국가 모델이 정치적 맥락과 분리될 때, 사회복지, 노동시장, 노사관계 등의 제도나 정책 내용들은 파편화된 부분으로서 우리에게 이해된다. 그럼으로써 정책결정자들이나, 정치인들이나, 정책자문가들이나, 학자들을 통해 불러들여지는 스칸디나비아, 독일 또는 네덜란드의 사례들은 한국에서의 고용확대나 사회복지개혁을 위해 참고할 준거 혹은 우리가 수용해야 할 모델로서 논의되고, 그것은 정책의 내용 속으로 부분적으로 수용된다. 앞에서 독일의 사례를 보았지만, 유럽의 사회복지체제, 노동시장 제도를 그 정치적 기반과 맥락을 함께 이해한다면, 유럽 복지국가 모델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마치 동독 사회주의 해체 이후 서독의 제도를 전체적으로 이식하듯 ‘제도이전’(institution transfer)을 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제도나 정책을 부분적으로 수용하는 경우에라도 그 정치적 맥락을 이해하는 것은, 그 제도를 가져왔을 때 소기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물론, 그 제도나 정책 자체를 이해하는 데에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잘못된 사회협약론의 문제

 

한국에서 ‘코포라티즘’이나 ‘사회협약’ 만큼 널리 사용되면서도 정치권과 지식인 사회에서 그 개념이 소비될 때 편의적으로 변용되고 있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코포라티즘이든 사회협약이든, 그것은 자본주의체제에서 두 중심적인 생산자집단으로서 사용자단체의 대표와 노동자단체의 대표들 간의 이해관계, 정책목표의 타협/교환에 의한 결정, 그리고 이들 간의 합의를 중재하는 국가/정부의 개입을 통한 3자결정의 메커니즘이다.


의제의 설정과 협상과정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이들 집단이다.
오늘날 노사정 사회협약처럼, 정부와 기업이 주도하는 사회통합, 사회대타협, 양극화해소 등 그것이 어떤 슬로건이나 목적을 위한 것이든 노조를 수동적으로 또는 형식적으로 그 협의과정에 참여시키는 것이 사회협약은 아니다.

최근 열린우리당의 김근태 의장은 자신의 사회협약안을 제시하면서 정치권과 사회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내용의 핵심은 2단계의 타협으로 첫 번째는 정부와 기업 간에 이루어진다. 즉 정부는 재계가 요구하는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경영권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각종 규제완화와 같은 조처를 하고, 경제계는 국내투자의 확대, 신규채용 확대, 중소기업에 대한 하청관행 개선, 취약계층 노동자를 배려하는 조처를 교환하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내용이 분명히 제시되고 있지 않지만 아마 노동계와의 대화를 통해 이 협약에 노동을 끌어들이는 것이 될 것이다.

김 의장의 제안은, 그동안 정부여당의 정책결정자들이나 자문위원들 사이에서 간헐적으로 제기되고, 최근에는 일상적 담론이 되다시피 한 사회협약의 내용을 구체화한 것으로 보여 진다. 그리고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서유럽 복지국가들에서 정부/기업/노조 간의 사회협약에 의한 투자활성화, 국제경쟁력 제고, 고용유지 및 창출이라는 경제업적을 만들었던 모델들, 대표적으로 네덜란드나 아일랜드의 성공사례들을 모델로 한 발상이고 정책제안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이 서평의 주제와 관련해 볼 때 김 의장의 협약안은 서유럽의 코포라티즘 내지는 사회협약을 근본적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
사회협약의 중심 내용은, 그동안 복지국가를 지탱했던 높은 수준의 노동비용을 포함하는 복지비, 규제되고 조정된 시장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논리에 적응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하는 것으로, 복지국가의 비용 삭감과 노동시장 유연화가 그 핵심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서 기업은 일정한 재정적 부담과 신기술 도입에도 불구하고 고용을 보호하는 대신, 노조는 임금인상과 파업을 자제하고 고용안정을 얻는 교환이 중심이다. 결과는 이 책에서도 자세히 살펴보고 있듯이 노사관계의 안정과 유연화를 실현하는 이른바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이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신자유주의적 독트린의 과격하고도 전면적인 일련의 개혁들을 통해 그 원래 모델인 미국보다 더 시장원리를 따르고 세계 최고의 노동시장 유연성을 실현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기업과 노동은 무엇과 무엇을 교환할 수 있을까?

현재 교환의 대상으로 김 의장이 기업에 제안한 내용은, 시장원리를 얼마나 더 확대할 것인가 혹은 아닌가 하는 문제이기보다는 정부의 기본적 역할, 즉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위해 최소한의 법의 지배를 실현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 그것은 사회협약의 이름으로 정부와 기업 간의 교환을 말하는 것일지는 몰라도 근본적으로 사회협약이나 코포라티즘의 본래 성격과는 크게 다른 것이다.

 

서유럽의 경우 교환의 대상은 지나치게 보호된 노동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노동시장에 한정해 말한다면, 유럽복지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고용, 실업, 임금보호를 내용으로 하는 사회보장에 시장유연성을 결합하는 사회협약, 그럼으로써 ‘유연 + 안정성’(flexibility + security = flexicurity)을 실현하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어떤 형태의 사회협약이라는 말이 가능하려면, 외환위기 이후에 더 허약해지고 열악하고 불안정해진 노동자의 지위와 권익을 증진하는 것이 사회협약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유연화에서 더 유연화의 방향이 아니라, 유연화에서 안정성을 지향하는, 그 방향이 서유럽과는 정반대인 한국적인 유연안전성을 지향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유럽 복지국가의 사례들을 볼 때 한국사회에서 사회협약이라는 말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권익을 대표할 노동의 조직화가 선결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10% 초반대로 하락한 노조조직률은 한국 노동운동의 위상이 얼마나 허약해졌는가를 단적으로 상징한다. 이 조직률은 노동자전체는 고사하고, 노동자다수를 대변할 수 없다. 전국수준에서 기업-노동-정부 대표들 간의 협약이 이렇듯 대표성이 낮은 노조를 통해 관철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한국에서의 진정한 사회협약은 노사관계 수준에서 서유럽처럼 기업이 노동을 경영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적어도 생산의 파트너로서 인정하고, 노동에게 기본적인 사회적 시민권을 부여하는, 노동자에 대한 인정을 포함하는 것을 그 출발점으로 해야 한다고 본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위해 노사관계를 민주화하는 사회적 협약을 주도하는 일이다.

 

최근 한 세미나에 참여한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의 말과 같이 “어느 날 갑자기 회의에 오라고 연락 와서 가서 도장 찍고 악수하고 사진 찍는 세리모니가 사회협약은 아닌 것”이다. 또 최근 우리는 정부 여당의 정책결정자들이나 지도자들이, 정부의 정책목표와 기업이익 간의 교환 또는 타협을 사회협약이라고 말하는 것을 본다. 그것이 네덜란드의 바세나협약, 또는 아일란드의 협약 또는 어떤 사례로 뒷받침되든 그것은 실제의 사회협약의 정신과는 무관하다고 할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사회협약은 실제 유럽에서 수행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기능, 즉 그것이 해결하고자 했던 실제 이슈를 한국에서는 없애버리는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정치적 문제의 중요성과 관련하여 현재 가장 중요한 이슈의 하나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지위문제에 대한 저자의 대안에 대해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저자가 제시하는 내용의 핵심은 현재의 비정규직법안에 있어 비정규직노동자의 고용을 2년으로 제한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기간제 노동사유를 규제하는 것이 필수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의 한국 실정에서 그 대안은 상당히 현실적인 것으로 보인다.
기간제 노동사유를 규제해야 하느냐, 하지 않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는 실제로 고용주들의 이해관계 측면에서 중요하고, 그럼으로써 이 법안의 핵심쟁점이 될는지 모른다. 필자는 이러한 구체적이고 기술적인 문제를 판단할 지식을 갖지 못한다. 다만 필자가 여기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한국의 노사관계와 노동시장 수준에서만 문제를 보고 대안을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것이 발생하고 전개되는 정치적?사회적 힘의 관계라는 또 다른 수준, 즉 노동운동이 전개되고 노사관계가 실제로 발생하는 정치적 매트릭스에 관한 이해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노동자 권익을 실현하는 것이나 특정의 제도가 작동하는 것은 노사관계의 정치적 매트릭스로서 실제 정치적?사회적 힘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최근 금속노조들의 산별체제로의 전환과 그 효과를 분석하고 전망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노사관계에만 한정해서 그 전환의 효과가 얼마나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를 판단하기란 매우 불확실하다. 그 효과를 실제로 만들어내는 것은 정부의 정책이고, 정치적?사회적 힘 관계의 변화이고 궁극적으로는 법이 적용되는 방법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필자는 정이환교수의 이번 저작이 가질 수 있는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몇 가지 문제들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이 저자의 연구업적을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이 책이 비교자본주의이론, 자본주의 다양성 이론을 한국에 종합적으로 소개하고 이를 통해 한국 노동시장 문제를 분석한, 이 분야에서의 개척적 연구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 방향에서의 연구의 시작이기 때문에 저자 자신이 이를 지속하든, 다른 사람이 이를 발전시키든 이 책은 이 분야 연구의 초석이 될 것으로 본다. 이 책을 바탕으로 노동시장 연구가 질적으로 크게 성장하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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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위안부는 강간방지를 위해서 였다.

다음 메인화면에 있던것을 퍼온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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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소녀의 그림

어느곳에서 퍼온건지 모름.

이 예쁜 소녀를 그리신 분에겐 죄송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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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통권 환수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주권국가가 전시에 자신의 최종적 물리력이 되는 군대에 대한 통제권을 갖는 것이 논란이 되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일 것이다. 전 세계 나라들 중에서 군대가 없는 나라는 있어도, 있는 군대에 대한 지휘통제를 다른 나라에 갖다 바친 나라는 찾아 볼 수 없다. 현실이 이런데도 일부 몰상식한 무리들은 상식을 바로잡는 것에 시비질을 하고 있다. 언제까지 우리나라는 미국의 치마자락을 붙잡으면서 국가보위를 외세에 맡긴단 말인가.

 

간도 쓸게도 없는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미국과 일본이 우리민중을 무시하고 깔 보는것은 박정희의 64년 일본과 수교 직전 일본재벌로 부터 한일수교대가로 자그만치 6천6백만불의 뇌물을 받아먹은 일과 미국의 강요에도 다른 친미국가들은 거부하였는데, 베트남 전에 의료진 1개대대를 보냈다가 미국의 수차에 걸친 1개군단 이상의 전투부대 파견에 응하지 않다가 무려60억불 받아먹은 후 10여만명의 전투부태를 보낸것이다.

 

요즘 노대통령의 전시작전권 환수에 쌍수를 들고 반대하는 족속들 면면을 살펴보자. 이자들 은 아이러니 하게도 이들이 높은 감투썼을 때 전시작전 통제권 한국이양을 강력히 주장한자들이니. 입이 열이라도 말할 자격이 없다.
묻고 싶다. 한 때는 자주국방한다며 고혈을 짜내 국방예산을 턱없이 올리더니 이제는 나라가 죽고 사는 문제를 기껏 ‘안보공세’, ‘권력게임’으로 갖고 노는 수구세력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들인가?

 

작통권 빼고 어떻게 주권국가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작통권환수가 시기 상조라 하고 있는데, 북한의 위협이 사라지고 우리의 국력이 막강한데 오히려 늦었다는게 많은 학자들의 일치된 평가다. 왜 우리는 작통권 환수를 서둘러야 하는가. 아주 간단하다. 한반도에 항국적 평화정책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한미동맹은 1953년 10월 1일 와싱톤에서 체결된것이며, 한국이 북한의 남침을 받으면, 미국은 자동적으로 개입한다고 명시되어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군사력은 북한에 3배이상이며, 경제력은 10배가 훨신 넘는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런데 무엇이 두려워서 미군 이동 또는 철수말만 나오면 깜박 죽는 시늉을 하는지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


미국의 전쟁도발을 사전 억제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작통권은 우리가 환수하여야 한다. 그것도 빠르면 빠를 수 좋다. 그리고 독립국가로서 작전계획5027은 폐기하고 자주적 방위작전계획을 별도로 만들어야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한국정부와 상의없이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수 있기때문이다.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이름으로, 신속기동군화를 목표로 하는 주한미군은 이제 한미연합사라는 '족쇄'가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작통권 환수는 이같은 미국의 요구와 자주국방을 향한 한국민의 의지가 결합된 결과물이다.

우리민중의 운명이 달려있는 전쟁이냐 평화냐 하는 중대한 문제를 당리 당략으로 이용 하려는 보수세력은 언제가는 반드시 그 대가를 톡톡히 받을것이다. 전시작전권문제는 정치가 아니라 우리국민이 해결해야 할 평화수호의 문제이며 주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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