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사 경내에 들어서기 전 만나게 되는 승선교와 강선루>

 

첫째 날, 해가 꼴까닥 넘어갈 때까지 정신없이 선암사로(2006년 3월 25일)

 

정말 해가 꼴까닥 넘어갈 때까지 정신없이 걷고 나서야 겨우 선암사에 도착했다. 도중에 낙안읍성에서 한 시간 정도 머물며 이것저것 구경하느라 시간을 보내기는 했어도 시간이 이리 많이 걸릴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덕분에 길을 걷는 재미를 느끼지도 못했고 제법 높은 고개를 두 개나 넘으면서 제대로 쉬지도 않았다. 게다가 순천시에서 만든 관광안내도가 길잡이 노릇을 해주기는 하지만 걷고 있는 이 길이 오르막길인지 내리막길인지, 얼마나 왔는지 얼마나 남았는지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 무척이나 답답했다.

 

후에「청연」이라는 영화 속에서 다시 볼 수 있었던 낙안읍성은 마치 잘 꾸며진 세트장 같았다. 재작년 제천 어디에선가 보았던 드라마 촬영장과 역시 재작년 부안 채석강 인근에서 보았던 불멸의 어쩌구처럼. 그래도 여느 세트장과는 달리 지금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들이 있어 그런지 ‘대체 이런델 왜 구경 오는 거지?’ 라는 생각보다는 다른 느낌을 주기는 한데 딱히 그게 뭐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휴일을 맞아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제대로 둘러보지도 못하고 사람들을 피해 성곽만 따라 걸으며 잠깐 잠깐씩 기웃거렸는데도 한 시간이 금새 지난다. 해서 천연염색을 한 갖가지 물품들을 파는 곳에서 따가운 햇살을 가릴 요량으로 모자를 하나씩 사서 머리에 얹고는 다시 길을 나선다.

 

읍성을 지나자마자 고개다. 관광안내도를 보니 별다른 표시가 없어 금방 모퉁이만 돌면 내리막길이겠거니 하면서 걸은 게 꽤 됐는데도 아직 한참이다. 쉬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고 발걸음은 무겁지만 내리막길에서 쉬어가자며 고갯마루까지 쉼 없이 오른다.

 

두 번째, 율치재다. 헌데 이 건 좀 전에 넘었던 고개와는 또 다르다. 아래에서 봐도 만만치 않은 높이고 경사도 가파르다. 다시 안내도를 펼쳐드는데 이것 역시 어떤 표시도 없다. 아마도 차를 타고 여행하는 이들에게는 여기가 고개인지 고개면 얼마나 높은 고개인지가 별 필요가 없겠지. 길만이 아니라 관광안내도 역시 걸어서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인색하다는 것을 확인한다. 하지만 어쩌랴. 마음을 단단히 먹는 수밖에. 하지만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데 이건 매 앞에 장사 없는 격이다. 차길을 벗어나 산길을 오르기도 했지만 고갯마루까지는 숨을 헉헉거리며 그렇게 한 참을 더 올라야 했다.

 

죽학삼거리까지는 줄곧 내리막길이다. 고개를 넘자 왼편으로 호수도 보이나 크기도 작고 볼 것도 그다지 없다. 다만 길 양편으로 죽(竹)이 많아 틈틈이 죽 구경에 한눈을 판다. 그러고 보니 간간이 마주했던 마을들 이름에 ‘죽’ 한 글자씩은 꼭 들어간 것 같으니 사방이 ‘竹’인가 보다.

 

선암사 입구에 도착하니 해는 이미 산 너머로 넘어간지 한참이고 길게 헤드라이트를 켜고 지나는 차 이외에는 오가는 사람도 없다. 어둠 속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서둘러 묵을 곳을 찾아 나서는데 걷기여행 중에 처음 보는 찜질방까지 있어 그리 어렵지 않다.

  

       

<선암사 경내에서 만난 풍경>

 

둘째 날, 선암사 뒤깐구경과 굴목재 오르기(2006년 3월 26일)

 

오늘은 요전에 초당과 백련사를 이어주는 만덕산 오솔길을 걸었듯이 선암사와 송광사를 이어주는 조계산을 넘는 오솔길을 걸어야 한다. 거리상으로는 6.8Km밖에 되지 않으나 선암사 굴목재와 송광사 굴목재, 이 두 고개를 넘어야 하므로 오솔길을 걷는다기보다는 등산을 한다 해야 옳을 듯한데, 등산화도 준비하지 못해 걱정이다.

 

승선교, 달마전, 원통전 등을 품고 있는 단아한 자태의 선암사는 어느새 터뜨린 벚꽃과 목련들의 꽃망울들로 아름다움 그 자체다. 또 이름 모를 나무들에 돋아난 파릇파릇한 새순들은 또 어떤가. 그저 넋을 놓고 바라볼 수밖에. 그러다 돌담길을 걸으며 한껏 봄 내음을 맡기도 한다. 그리고 볼일이 없을지라도 세상사를 잊기에 알맞은 곳이지만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진 선암사 ‘뒤깐’도 둘러본다. 하지만 뒤깐은 본래의 용도보다는 사람들의 사진기와 비디오카메라 속에만 담겨지고 있어 왠지 모르게 씁쓸하다. 송광사 스님들, 이제 어디서 해우(解憂)를 하실런지.

 

선암사 뒤편으로 이어진 대나무 숲과 편백나무 숲을 지나니 오르막길이다. 마음을 다잡고, 신발 끈도 단단히 조여 묶고 산길을 오르기 시작하는데 30분도 채 안돼서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내려오는 사람들 이야기로는 조금만 오르면 굴목재 정상이라고 하는데 아래에서 보니 가파른 오르막길의 끝이 보이질 않는다. 시간은 충분한 것 같은데 아무래도 준비를 너무 하지 않았나 보다.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기를 쓰고 오르기보다는 내려갈 길을 걱정하고 있으니.

 

결국 1시간 넘게 올랐던 길을 다시 되짚어 내려왔다. 무리해서 더 가다가는 무릎과 발목이 고장 날 듯해서다. 아쉽지만 조계산 등산은 다음번으로 미룰 수밖에. 어제 하루해가 꼴까닥 넘어갈 때까지 정신없이 걸었던 길을 버스를 타고 거꾸로 거슬러 순천에 도착하니 어느새 해가 저물고 있다. 서울 가는 버스는 있으려나?

 

* 다섯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 첫째 날 : 벌교에서 낙안읍성까지는 평탄하고 한가로운 길이나 이후 선암사까지는 두 개의 큰 고개를 넘어야 한다. 하지만 고개 너머로는 주암호를 끼고 걷는 매우 호젓한 길이다. 벌교에서 죽학삼거리까지는 857번 지방도로를 따라 걷는다. 걸은 시간 약 7시간. 20km.

- 둘째 날 : 선암사와 송광사를 이어주는 조계산의 선암사굴목재까지 산행. 걸은 시간 약 4시간.

 

* 가고, 오고

서울에서 벌교까지는 이른 아침부터 부산을 떨지 않으면 하루를 그냥 다 길 위에서 보낼 수 있으니 가능하면 강남터미널에서 6시 10분에 출발하는 순천행 첫차 또는 영등포에서 07시에 출발하는 무궁화호 열차를 이용해야 한다. 가격은 우등고속이 26,200원, 무궁화호는 22,000원이고 시간은 열차보다 고속버스가 30분 가량 빠른데 대략 4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우리는 서두른다고 했는데도 첫차를 놓치고 6시 40분에 출발하는 우등고속버스를 이용했다. 순천에서 벌교는 터미널 앞 또는 기차역 앞에서 수시로 오가는 시내버스를, 선암사에서 순천은 선암사 입구에서 출발하는 직행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 잠잘 곳

낙안읍성에는 초가집에서 체험민박을 할 수 있다. 선암사 입구는 요란한 관광지의 모습을 갖고 있지 않으나 민박, 음식점 등이 다수 있고,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찜질방도 하나 있다. 벌교에서 선암사까지 가는 길에는 읍성 주변을 제외하고는 음식점은커녕 변변한 슈퍼하나 찾기 힘드니 생수나 간식거리는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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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2 11:10 2009/05/12 11:10

감자, 고추심기

from 09년 만천리 2009/05/11 14:30

이랑 만들기 - 둘째 날(5월 4일/무더움 7-28도)

 

아침 8시에 집을 나섰는데 밭에 도착하기도 전에 벌써 목덜미로 땀이 흐른다. 내일이 입하니 절기상으로는 여름이겠지만 벌써부터 한여름 같은 무더위라니. 아무래도 밭에 나오는 시간을 더 앞당겨야겠다. 이래가지고는 두 시간도 채 일하기 어렵겠다.

 

어제 하루 밭에 나오지 않았더니 몸이 많이 가뿐하다. 다리에 배긴 알통은 오히려 움직이면서 풀렸는데 몸은 더 무거워졌기에 쉬었는데 그게 보약이었나 보다. 감자밭 이랑 만들기는 오늘 중으로 다 마칠 듯하다.

 

작년에 얻었던 밭은 주위에 야트막한 산자락이 둘러싸고 있어 아침나절엔 요쪽이 저녁나절엔 저쪽이 그늘이 생겨 아침엔 요쪽에 저녁엔 저쪽에서 일할 수 있었다. 헌데 지금 괭이질 하고 있는 이 밭은 당체 그늘을 만들어줄 만한 것들이 없다. 밭 한 귀퉁이에 심어져있는 키 작은 나무 한 그루를 빼곤 말이다. 저 키 작은 나무마저 없었다면 어쨌을까나. 작년에 이 밭에서 밭일 했던 사람이 누굴까 새삼 궁금하다.

 

쉬엄쉬엄해야지 마음먹었건만 시간이 지날수록 뜨거워지는 햇빛 때문에 빨리 끝내고 집으로 가야겠단 생각에 겨우 물 한 모금 마시고 괭이질하고, 또 물 한 모금 마시고 괭이질이다. 덕분에 오전 중으로 계획했던 일을 다 마쳤기는 하지만 땀으로 범벅이 되고 말았다. 이제 잠깐 쉬었다 고추밭 비닐 멀칭을 위해 농협으로 비닐이나 사러가야겠다. 농사 시작하면서 비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쓰지 않기로 했건만 결국 무너졌다. 내년엔 미리미리 플랑카드 모아놓으라 부탁해야겠다.

 

* 멀칭용 비닐: 20,000원(120cm☓500m)

 

고추밭 비닐 씌우기(5월 5일/무더움 10-28도)

 

버스를 기다리다 한 참을 싸웠더니 일찍 집에서 나왔는데 밭에 오니 열기가 훅훅 올라온다. 그래도 고추 심을 네 이랑과 참외 심을 두 이랑만 비닐을 씌우면 되니 일이 많지는 않다. 또 구불구불한 이랑 덕에 애도 먹고 뜨거운 햇빛 덕에 속도는 덜 나지만 혼자 일하다 둘이 일하니 속도도 나고 심심하지 않아 좋다. 같이 일한다고 얘기를 많이 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쉬이 일을 마치고 감자전에 막걸리 한 잔 걸치고 집에 돌아오니 케이블에서 폐비닐도 재활용을 한다는 프로그램을 한다. 거의 끝나갈 때쯤부터 보기 시작해서인지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으나 각종 폐비닐이나 플라스틱도 공업용 재료로 심지어는 석유로도 재사용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한편으로는 이런 방향으로 기술이 발전하는 거라면 과학기술의 발전을 마냥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기술력이 있으니 지금처럼 화학제품들을 대량으로 사용해도 된다는 식의 사고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처음엔 비닐을 쓰고 만 거에 대한 왠지 모를 보상 심리로 관심 있게 지켜봤는데 마지막 끝맺음을 보고 나니 역시 이건 아니다,는 마음만 다잡게 된다. 내년엔 꼭 딴 방법을 찾아야지.

 

이랑 만들기 - 셋째 날(5월 6일/무더움 11-31도)

 

아침

기온이 오를수록 일어나는 시간도 빨라진다. 그제는 8시, 어제는 7시, 오늘은 6시다. 한낮에 일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 오늘부터는 주작물인 콩 심을 곳을 만들어야 한다. 이달 중순까지만 심으면 되니 슬슬 해도 될 터이지만 워낙 콩 심을 곳을 넓게 잡아서 미리미리 해야 할 터. 하지만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어도 10시가 지나니 땀이 비 오듯 해 진도는 많이 나가지 못했다.

 

징검다리 연휴 기간에 주문했던 씨감자가 도착했다. 보통 3월 중순이나 말에는 심어야 하니 늦어도 많이 늦었다. 하지만 지금 심으면 장마 끝나고 수확할 수 있어 조금 늦게라도 감자 맛을 볼 수 있으니 내일이라도 심어야겠다. 30도가 넘는 때 아닌 폭염을 피해 느지막이 밭에 나가 개울물을 쓰는데 필요한 사다리 만들고 콩 밭 이랑 세 개 만들고 오다.

 

감자 심기 - 첫째 날(5월 7일/무더움 10-30도)

 

주문한 씨감자가 어제 도착했을 땐 크기가 제법 큰 것들은 잘라 써야지 했지만 생각보다 씨알이 큰 것들이 없어 몇 개 자르다 그만두었다. 계란 보다 크면 잘라 쓰라고들 하는데 어찌된 게 계란 보다는 큰데 그렇다고 자르자니 자르고 나면 크기가 너무 작아서였다.

 

오늘도 어제만큼 더울 거란 얘기에 일찍 집을 나서 씨감자를 심었는데, 이런 9시도 채 되지 않아 일이 끝났다. 물론 자전거로 오느라 씨감자를 많이 가져오지 못했기도 있지만 더 더워지기 전에 일을 끝내야 한다는 마음에 쉬지도 않고 일을 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종묘상에 들러 상추며, 열무며, 근대, 아욱 등 채소 씨앗을 사올 수 있는 시간이 됐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낮 시간엔 쉬었다 해질녘에 다시 나와 마저 감자를 심으니 얼추 절반은 심은 것 같다.

 

* 씨앗

얼갈이 - 3,000원

상추 - 2,000원

열무 - 3,000원

아욱 - 2,000원

근대 - 2,000원

치커리 - 2,000원

파 - 1,000원

 

감자 심기 - 둘째 날(5월 8일/무더움 10-29도)

 

다음 주 월요일 비가 온다는 예보에 이번 주 계획을 많이 바꿨다. 원래는 밭 만들기를 주말까지 끝마치고 감자, 채소, 고추, 콩, 고구마 순으로 심으려고 했는데 주말까지 감자와 고추를 모두 심기로 했다. 중간중간 토마토며, 오이, 가지 등 채소도 심고.

 

어제와 오늘 아침, 저녁으로 나와 감자를 심으니 20kg짜리 한 상자를 모두 심었다. 오늘은 아침나절엔 학곡리 농협까지 가서 토마토와 방울토마토, 가지를 각각 20개씩 사와 심기도 했고 저녁나절엔 사다리도 보수하고 또 학곡리 농협까지 가서 내일 아침에 심을 고추도 사왔으니 감자 심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진 않은 셈이다.

 

* 물뿌리개 - 5,000원

* 토마토, 방울토마토, 오이 모종 각각 20개씩 - 15,000원(1개당 250원)

* 고추 모종 50개 - 6,000원(1개당 120원)

 

고추 심기 - 첫째 날(5월 9일/무더움 13-28도)

 

아침엔 어제 저녁 농협에서 사다 놓았던 고추 50개를 다 심고도 중앙시장 종묘상에서 42개를 사다 심었다. 또 저녁엔 다시 학곡리 농협으로 가서 고추 50개를 다시 사다 심었다. 왕복 1시간이 걸리는 농협까지 가서 고추를 산 이유는 종묘상 고추와 농협 고추가 가격은 같은데 품질이 현저히 다르기 때문이다. 힘들더라도 또 시간이 걸리더라도 농협에서 사다 심어야한다.

 

* 고추 모종 42개 - 5,000원(종묘상)

* 고추 모종 50개 - 6,000원(농협)

 

고추 심기 - 둘째 날(5월 10일/차차 흐려짐 12-26도)

 

오랜만에 내리는 비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하루가 다르게 모종이 무척 귀하다. 때문에 아침에는 겨우 고추 모종 45개를 살 수 있었고 저녁에는 이마저도 구하지 못했다. 물론 아침에는 너무 이른 시간에 갔기에 어제 팔다 남은 거를 산거였겠고 저녁에는 너무 늦은 시간에 가서 모종이 다 팔렸겠지만 말이다. 덕분에 생각지도 않았던 고구마 100개를 심었고 비 그치고 심으려 했던 참외와 애호박까지 심기는 했지만 마저 고추를 다 심지 못해 아쉽다. 다음 주말에 또 비가 온다 하니 그 동안 콩 심을 곳하고 참깨며 들깨 심을 곳 정리하고 그때 또 심어야겠다.

 

* 고추 모종 45개 - 5,400원

* 고구마 모종 100개 - 5,500원

* 참외, 애호박 모종 각 20개 - 10,000원(1개당 2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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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1 14:30 2009/05/1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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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마니타스가 펴낸 이소선.여든의 기억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1.

같이 살기 시작한 이후 올 초까지만 해도 우리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았다. 심지어 작년에 춘천으로 이사를 하면서는 아예 텔레비전을 베란다 한쪽 구석 광에 처넣기까지 했다. 그러다 우연치 않게 텔레비전을 잠시 꺼내놓을 기회가 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처음엔 작은 방 한쪽 구석에 놓여있던 텔레비전이 버젓이 마루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뭐. 그렇다고 텔레비전을 하루 종일 켜놓고 있다던가,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일일연속극에 빠져 있는 건 아니다. 그저 뉴스는 봐야지, 내일 날씨는 어떻지, 라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며 다시 광으로 들여놓지 않고 있을 뿐이다.

 

헌데 이렇게 텔레비전이 눈에 띄는 곳에 나와 있으니 하루 종일 집에 있는 날이면 자연스레 리모컨에 손이 가게 된다. 뭐 재미난 거 없나, 하고 말이다. 하지만 기대는 잠시뿐 케이블까지 합하면 족히 서른 개가 넘는 채널을 위로 올리면서 눌러보고 아래로 내리면서 눌러봐도 어째 그리 ‘지겹도록’ 재미가 없을까.

 

2.

며칠 전 동네 아저씨께 밭을 갈아 달라 부탁을 했기에 엊그제는 하루 종일 밭 정리를 해야 했다. 작년에 농사를 지었던 분이 무슨 급한 일이 있으셨던지 고춧대며 옥수숫대를 뽑아내지도 않고 그대로 두셨고, 심지어는 관리기까지 밭 한가운데 놓고 가셨기 때문이다. 물론 지주대도 그대로이고 멀칭용 비닐도 여기저기 널려져 있다. 해서 아침부터 일찍 밭에 나가 밭 정리를 하는데 고춧대며, 옥수숫대 치우는 건 일도 아니다. 밭 여기저기 씌어져 있는 검정색 비닐, 참으로 난감하다.

 

처음엔 비닐 한쪽을 잡고 죽 잡아당기니 쉬이 치워지는 것 같았는데 그런 건 아주 운이 좋은 거였다. 조금 당기면 당긴 만큼만 손에 잡히고 그 나머지는 여전히 흙 속에 파묻혀 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여기저기 날아다니고 겨우겨우 다 걷어 놓은 비닐을 한쪽으로 옮기려니 발에 걸려 넘어지고, 아주 난리도 아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땅 속에 들어가면 썩는데 100년도 넘게 걸린다는 비닐을 ‘지겹도록’ 치웠다.

 

3.

‘전태일’이라는 노동자의 어머니인 이소선은 지금껏 그 한 노동자의 어머니만이 아닌 이 땅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로의 삶을 살아왔다. 이소선이 그렇게 서슬 퍼런 독재정권 시절에도, 남들은 민주화가 됐다던 지난 정권에서도 ‘노동자의 어머니’로 살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죽음을 앞에 두고서도 자신에게만은 다짐을 받아야겠다고 울부짖었던 ‘전태일’이 항상 늘 곁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소선은 ‘민주노총’이 합법화되고 모든 노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노동자대회를 열었던 그 때에도 ‘전태일’이와 같은 생각을 같은 목소리로 높일 수 있다.

 

“입으로만 노동자는 하나라고 외치면 뭐하냐, 가장 밑바닥에서 소외받고 고통당하는 비정규직을 나 몰라라 해서 어찌 민주노총이라 할 수 있냐, 지금 정규직이라고 천년만년 정규직 할 것 같냐, 정규직이 비정규직과 손을 잡고 싸우지 않으면 얼마 못가 정규직도 비정규직 신세가 되어 발목에 쇠사슬 차고 노예처럼 일하게 된다”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p. 70

 

그러나 이소선은 이야기 한다.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사랑하는 ‘전태일’이 죽고 난 뒤엔 그저 “미쳐서 지금까지 이러고 살지만 남들이 어떻게 나처럼 평생 미쳐서 살겠냐”고. 그랬다. 어머니 이소선은 사랑하는 ‘태일’이가 죽음을 앞에 두고서도 자신에게만은 끝내 약속을, 다짐을 받아야겠다며 울부짖은 이후로는 ‘미쳐서’ 살아왔다. 아니 ‘미쳐서’ 살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얼마나 사랑했던 ‘태일’이었는데. 하지만 이소선에게는 어느새 하나 둘 늘어나는 자식들이 ‘태일’이의 빈자리를 메워주었다.

 

“나 걔네들 없었으면 지금 살아있지도 못했어. 태일이가 죽고 병원에 찾아와서 이제 지네들이 내 아들이라고 그라는 거야. 정말 태일이 친구들을 내 아들이라고 생각했어. 얼마나 나한테 잘해 줬다고. 배곯아 가며 두들겨 맞아 가며 청계를 만들고 지켜 오지 않았으면 내가 태일이하고 한 약속을 어떻게 지킬 수도 없었지. 난 그냥 미쳐서 죽었을 거야. 어머니니라고 얼마나 챙겨 주는지 몰라. 순덕이 결혼할 때도, 동준이랑 동명이 대학 들어갈 때도 개들이 태일이 노릇 다 해줬지”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pp. 273-274

 

그리고 이소선은 또 이렇게 이야기 한다. 홍성우 변호사, 조영래 변호사, 남산에 잡혀갔을 때 동상이 심한 자기의 발을 보고 약을 구해와 발에 발라주었던 이름 모를 친구, 이석규 때 수배당하면서 결핵에 걸려 고생했는데 자기 집에 숨겨 두고 주사도 나주고 했던 간호사, 그때 나와서 택시를 탔는데 나를 알아보고 돈을 쥐어주던 젊은 부부, 참 많이 아껴주었던 문익환 목사님, 자식 잃고 남편 잃고 운동이 뭔지도 모르면서 함께 싸워온 유가협 어머니, 아버지들, 이 사람들이 ‘전태일’과의 약속을 지키게 해주었다고.

 

4.

사람들은 흔히 하기 싫거나 보고 싶지 않은 걸 두고 ‘지겹다’는 표현을 쓴다. “텔레비전에 MB 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여기 틀어도 나오고, 저기 틀어도 나오고, 아주 지겹다. 지겨워.”, “하루 웬 종일 비닐과 씨름했더니 이젠 비닐만 봐도 구토나 나려고 하네. 저리 치워라 비닐. 아주 지겹다.” 하지만 이 ‘지겹다’는 말을 평생을 두고 고마운 사람들에게 쓸 때에도 같은 어감일까? “그 사람들, 내겐 아주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이야.”

 

전태일기념사업회에 갔다 별 생각 없이 인사만 드리고 나오려는데 문 앞까지 따라 나선 이소선이 “이제 일 년이나 살겠어. 이게 마지막이지”라는 말에 만 이년을 함께 하며 어머니가 간직한 여든의 기억을 꼼꼼히 적어낸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는 ‘지겹다’는 말이 이렇게 아름답게도 쓰일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해준다. 또 때로는 이소선 그 자신의 목소리로 또 때로는 작가의 목소리로 꾸미지도, 덧붙이지도 않으며 담담하게 써내려간 이 ‘여든의 기억’은 매일 매일의 힘든 싸움에 지쳐가는 이들에게 저마다의 소중한 삶과 사람과 그리고 관계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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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5 22:34 2009/05/05 22:34

둘째 날, 선소마을에서 태백산맥의 무대 벌교까지(2006년 2월 12일)

 

 <방조제로 사라진 갯벌에 예당평야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핸드폰 알람 소리에 눈을 떠 마당으로 나오니 어제는 밤이라서 보이지 않았던 바다 풍경이 민박 집 담 너머로 가득 들어온다. 언젠간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풍경이다. 디카를 꺼내 이리저리 렌즈에 담아보려 하지만 아무리해도 다 담기지 않는다. 그저 우리들 눈으로 담아두는 수밖에. 집 밖에까지 나와 손을 흔들어주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뒤로 두고 다시 길을 나선다.

 

오늘은 태백산맥의 무대인 벌교까지 가야한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만만치 않은 거리다. 부지런히 걸어야겠다. 때문에 선소마을을 유명하게 해준 공룡알 화석지는 구경하지 않기로 한다. 하지만 줄곧 바다와 나란히 이어지는 이 아름다운 길을 땅만 보고 걷을 수는 없어 군데군데 바다풍경을 보라고 놓여져 있는 의자에 앉아 푸른 바다를 바라보느라, 사진기를 꺼내느라, 걸음걸이는 자꾸 늦어진다.

 

강진에서 마량으로 이어지는 23번 국도가 이름난 해안도로라면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이 845번 지방도로는 이름나지 않은 해안도로다. 하지만 23번 국도가 세심정과 양이정을 오르는 길을 빼면 바다와 나란히 이어지고 있지 않아 해안도로라는 이름이 무색한데 비해,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야말로 해안도로라는 이름으로 불려야 한다. 줄곧 바다와 나란히 이어지고 있으므로.

 

한참을 그렇게 바다와 나란히 걷다 해평리를 끝으로 바다와는 이제 당분간은 작별이다. 지금은 넓은 간척지로 바뀌었지만 전에는 그곳에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던 해평리의 너른 들판을 가로지르는 길을 시작으로 이제 땅 안쪽으로 들어가야 하기에.

 

해평리는 마을 입구에 나란히 서있는 돌장승이 유명한데 바삐 걷느라 구경하지 못한다. 또 당초 득량을 거쳐 예당, 벌교로 가는 길을 잡았는데, 시간 절약을 해볼 요량으로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는 넓은 간척지를 가로지르는 길로 접어든다.

 

쉬지 않고 30분을 걸었는데 아직도 들판의 중간이다. 참 넓기도 하다. 재작년 들렀던 부안의 해창갯벌도 이만큼이나 할까? 아니 더 넓겠지. 가뜩이나 세찬 바람에 난감지사인데, 갯벌과 함께 숨쉬고 있었던 엽낭게며, 콩게며, 백합이며, 조개들이 자꾸만 떠올라 싱숭생숭하다.

 

예당역 인근 골목길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식당에서 간만에 제대로 된 밥상을 마주한다. 내친김에 조성까지 가서 점심을 먹을까도 했지만 여기까지 오는 동안 쉬지 않고 걷느라 발도 아픈데다 바람 마저 더 거세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제 저녁 맘씨 좋은 할머니, 할아버지 덕에 오곡밥을 먹기는 했어도 오늘 아침도 또 빵으로 때웠으니 속이 허한 게 당연하지 않은가.

 

점심을 먹고 난 이후에는 무조건 2시까지 쉬기로 했는데 오늘은 숟가락을 놓기가 무섭게 신발 끈을 조여 묶는다. 당초 일정에서 많이 늦어져서 그렇다. 그래도 영화 속 간이역 같은 예쁜 모양의 예당역에서는 잠시 기찻길을 걸어보기도 한다. 바뿐 가운데 느끼는 여유다.

 

예당에서 벌교로 이어진 2번 국도는 걷기여행을 하면서 처음 걷게 되는 4차선 도로다. 헌데 이런 길은 겉보기에야 시원하고 넓게 뚫려있다 뿐이지 걷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좋지 않다. 질주하는 차량들을 위해 길을 냈기에 차도만 넓을 뿐이고 갓길은 매우 인색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정표 하나는 잘 정비되어 있어, 얼마나 걸어왔는지 또 얼마나 걸어야 하는지를 쉽게 알 수는 있다. 하니 걸어서 여행을 할 요량이라면 4차선 이상으로 넓게 뚫린 국도보다는 지방도로를, 그리고 군도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물론 걸을 수만 있다면야 산길이나 흙 길이 더 좋다는 것은 잔소리다.

 

한참을 4차선 도로의 인색하기 만한 갓길에 바짝 붙어 걷다가, 아예 경운기가 다니는 옆길로 새기도 한다. 그래도 지루하고 힘들기는 매한가지인데 다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길가에 꼬막을 판다는 간판을 내걸은 상점들이 자주 눈에 띈다. 이제야 벌교에 가까워진 모양이다. 하지만 해가 뉘엿뉘엿 산머리에 걸려 있는 걸 보니 벌교에 도착하더라도 「태백산맥」의 무대로 잘 알려진 현부자네 집, 소화다리, 철다리, 김범우의 집, 남도여관 등은 구경하지 못할 듯 하다. 아쉽지만 다음 여행으로 미뤄두는 수밖에.

 

땅거미가 조금씩 내려앉기는 해도 햇살의 따가움은 여전하다. 길에서 잠시 옆으로 비껴서 어제, 오늘 무지무지 고생한 다리를 서로 주물러 주기도 하면서 쉬엄쉬엄 걷는다. 해가 지기 전에 벌교에 도착해야 하는데.

 

 

 

* 네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 첫째 날 : 수문해수욕장에서 율포를 지나 해안도로인 845번 지방도로를 따라 선소마을까지 약 21km. 걸은 시간 약 5시간.

- 둘째 날 : 선소마을에서 예당까지는 845번 지방도로를, 여기서부터 4차선 2번 국도를 따라 태백산맥의 무대 벌교까지 약 28km. 걸은 시간 약 7시간.

 

* 가고, 오고

세 번째 여행 때까지와는 달리 서울에서 광주까지는 아침 5시 30분에 출발하는 첫차를 이용했다. 시간상으로는 밤에 이동하는 것 보다 세 시간 정도 차이가 났으나 전날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무리하게 이동하는 것보다 나은 것 같다. 벌교에서 서울은 열차편이 있기는 하나 아침 9시 26분에 출발하는 무궁화호 열차 딱 한 대뿐이라서 가까운 순천으로 나가는 것이 편하다. 순천에서는 고속버스와 열차가 자주 있다.

 

* 잠잘 곳

수문과 율포에는 숙박할 만한 곳이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율포에서 득량까지는 우리가 묵었던 선소마을 이외에는 숙박 할 만한 곳도, 식사를 할 만한 곳도 없다고 보아야 한다. 득량과 예당에는 모텔과 펜션이 몇 있다. 예당에서 벌교에 이르는 길은 4차선 국도로 오가는 차도 많을 뿐더러 매우 빠른 속도로 질주를 하니 매우 조심해야 한다. 식사를 할 만한 곳은 곳곳에 많은 편이며, 벌교는 숙박과 식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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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3 12:48 2009/05/03 12:48

첫째 날, 수문해수욕장에서 넉넉한 득량만을 품고 있는 비봉리 선소마을까지(2006년 2월 11일)

 

어제 밤늦게까지 가니 못 가니 다투다 첫차를 타고서야 장흥에 올 수 있었다. 쉼 없이 오기도 했지만 아침에 움직였는데도 11시가 채 안 돼 도착했으니 생각보다 빠르다. 밤새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다니는 것보다 첫차를 타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컴퓨터까지 쓸 수 있게 해주는 맘씨 좋은 장흥 우체국 직원 분들 덕에 밤새 우리를 실랑이하게 만들었던 일을 너무나 쉽게 처리했다. 마음이 한결 놓인다. 하지만 당초 계획은 율포해수욕장을 지나 득량까지 걷는 것인데 어쨌거나 오전을 다 내버린 지라 일정조정이 필요하다. 허나 맘이 급해서일까? 어디까지 걷자 말도 없이, 점심까지 대충 때울 요량으로 빵 한 봉지씩을 사들고는 세 번째 여행의 종착지이자 네 번째 여행의 출발지인 수문해수욕장 행 군내버스에 오른다.

 

수문에서 율포까지는 7km가 넘는 거리인데도 쉬지 않고 걸었다. 걷는 거야 이번이 벌써 네 번째이니 조금은 이력이 났으나 뱃속에서 나는 요란한 소리가 자꾸만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아무래도 늦은 점심을 먹어야 할 듯 한데, 오늘 걸어야 할 길이 아직 반도 넘게 남았다. 밥이고 뭐고 과자 부스러기 몇 개 사들고는 또 출발이다. 다만 수문에서도 그랬고 율포에서도 그랬고 명색이 해수욕장에 왔는데 모래사장에 발도 디뎌 보지 못하고 가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수문과 율포에 자리하고 있는 모래사장>

 

날씨가 많이 풀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바닷바람이 무척 차다. 하지만 지나는 차도 많지 않은데다 오른쪽으로 넉넉한 보성만이 얼굴을 보였다가 감췄다가 하며 따라오는 것이 마음만은 가볍게 한다. 헌데 율포를 지나 두 시간쯤 걸었을까? 오른쪽 어깨가 자꾸만 결린다. 잠을 못 자서 그런가? 배낭을 잘 못 꾸려서 그런가?

 

사실 우리의 걷기여행이라는 것이 한 번에 길어야 4일 걷는 거고 보통은 이틀 내지 삼일을 걷는 것이기에 짐이 많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짐을 싸다보면 이것저것 챙길 것이 많아 금새 배낭이 묵직해지곤 한다. 이럴 땐 망설이고 자시고 없이 과감히 짐을 빼야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핸드폰 충전기 같은 것들을 넣었다면 말이다. 옷도 마찬가지다. 여벌의 속옷, 양말만 있으면 처음 출발할 때 입은 옷으로 대충 삼, 사일은 버틸 수 있으니 그 외의 옷들은 과감히 빼야한다. 대신 구급약과 지도는 ‘뭔 일이야 나겠냐’하고 빼 놓는다면 반드시 후회할 일이 생기니 반드시 챙겨야 한다.

 

오늘 아침에도 짐을 싸면서 이것저것 불필요 한 것들을 뺐다 싶었는데, 아무래도 배낭을 잘 못 꾸렸나보다. 간만에 한참을 쉬면서 스트레칭도 한다. 한결 낫다. 배낭도 뒤집어엎고 다시 꾸린다. 아래서부터 가벼운 것으로, 위로 무거운 것들로. 그리고 무게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화죽에서 갈림길이다. 밤길을 걷는 일이 있어도 845번 지방도로를 타고 득량까지 갈 것인가, 아님 해안도로인 2번 군도를 따라 가다 어디선가에서 하루 밤을 보낼 것인가? 수문에서 출발하기 전에 일정조정을 했어야 했는데. 지도를 펼쳐놓고 보니 아무래도 득량까지는 힘들 것 같다. 해서 해안도로를 따라 걷는데 아무래도 숙박이 문제다. 민박촌은 없는 것 같고 큰 마을도 없다. 난감하다. 이리저리 전화를 돌리다 다행히도 선소마을 어촌계장님과 통화가 되면서 어렵사리 숙박이 해결된다. 한숨이 놓인다. 하지만 어림잡아 봐도 선소마을까지도 만만찮은 거리다. 게다가 해는 이미 산꼭대기에 걸려 있으니. 서둘러야 한다.

 

전에는 배를 만들던 곳이라 해서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으나 공룡알과 공룡뼈가 발견되고 나서는 그걸로 더 유명해진 비봉리 선소마을*에 도착하니 가로등에 불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한다. 해가 수평선을 넘어가기 전에 도착해 다행이다. 마을회관 앞에서 어촌계장님을 기다리고 있자니 동네 어르신들이 오며가며 한마디씩 하시는데 정겨움이 가득 묻어있다.

 

 “여서 잘라꼬? 이장을 찾아야 쓰겄는디”

 “안 그래도 어촌계장님 기다리고 있는 중이예요”

 “그려. 근디 여그는 어떻게 알고 왔는꼬. 뭐 볼게 있다꼬. 지금은 버스도 안댕길덴디?

 “장흥에서부터 걸어왔고요.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은 벌교까지 갈꺼에요”

 “어허 거그를 걸어서 왔다꼬?”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잖아요. 차로 다니는 거보다는 걷는 게 더 좋아요”

 “암튼 울 마을에 왔응께롱. 잘 쉬었다들 가게”

 

기다리던 어촌계장님은 나오시지 않고 대신 계장님 부인께서 나오셨다. 헌데 민박은 어찌 있겠지만 식사까지는 안 된단다. 아침은 굶고, 점심은 빵과 과자로 대충 때우고, 아무래도 오늘은 밥 구경하기 틀린 것 같다. 지난 설 이후 물건을 실은 차가 오지 않아 날짜 지난 물건들이 많은 마을회관 옆 가게에서 요기할만한 것들을 집어들고는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자리잡고 민박집으로 향한다.

 

저녁거리라고 해봐야 컵 라면과 과자부스러기가 전부다. 그래도 슈퍼에서 얻어온 김치에 라면이라도 먹을 요량으로 물을 끓이는데, 언제 나오셨는지 할머니께서 내일이 보름인데 맛이나 보라며 오곡밥을 퍼 주신다. 그것도 고봉으로 두 공기나. 결국 오늘이 가기 전에 이곳에서 밥 구경을 하게 된다. 맛나게 오곡밥을 먹고 나니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새벽 추위에 일어나 보니 텔레비전마저 켜 놓은 채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 여행 후에야 오봉리와 비봉리 등 득량의 여러 마을들을 소개하는 홈페이지(http://dr.invil.org/village/)가 있다는 걸 알았다. 화죽 갈림길에서 우리는 2번 군도를 따라 비봉리 선소마을에서 하루 쉬었는데 845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면 이금재, 이용욱, 이식래 가옥 등 전통가옥을 볼 수 있는 오봉리에 닿는다. 홈페이지에서는 우리가 하루 밤 묵었던 곳도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이름이 그곳의 위치나 경치만큼이나 잘 어울리는 ‘쉴만한 물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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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3 12:36 2009/05/03 1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