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꽃 피다

from 09년 만천리 2009/06/07 00:13

늦은 옥수수 심기(6월 1일/무더움 11-28도)

 

열흘 넘게 비가 오지 않더니 갑자기 모래 비가 온다는 예보다. 안 그래도 이번 주에 비가 오지 않더라도 옥수수며 내일쯤 도착할 고구마를 심으려 했는데 잘 됐지 싶다. 해서 아침엔 남겨두었던 옥수수를 심는다. 다른 이들 옥수수는 벌써 무릎높이까지 자랐지만 부러 늦게 수확해서 늦게까지 옥수수 맛을 보려 남겨두었던 거다. 저녁엔 몰라보게 부쩍 자란 토마토를 지주에 묶어주기 위해 잠시 지주대를 손보고는 또 잡초 뽑기에 매달렸다. 요 며칠 호미질만 했더니 손목이 시큰시큰 하다.

 

잎들깨 심고 나니 폭우(6월 2일/흐린 후 비 15-27도)

 

옥수수 씨앗을 보내주신 분이 잎들깨도 함께 보냈는데 그걸 잊고 있었다. 열흘 전에 참깨며 들깨를 심었는데 하도 싹이 나오지 않아 애만 태우고 있었는데 어제 옥수수를 심다가 그걸 발견한 거다.

 

오후 늦게부터는 비가 온다고 해서 어젠 옥수수를 심었고 오늘 아침엔 그렇게 발견한 잎들깨를 심는다. 지난번 깨들이 줄뿌림이라면 이번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점뿌림으로 한다. 나중에 싹이 트면 솎아 주는 건 마찬가지이나 아무래도 줄뿌림보단 점뿌림이 쉽기도 하고 또 무엇보다 씨앗이 그리 많지 않아서다. 한 시간 동안 들깨 심고는 또 잡초 제거를 하니 금세 해가 중천에 뜨고 후덥지근하다. 당체 비 올 날씨 같지 않다.

 

해도 피하고 점심도 먹을 겸 잠시 집에 오니 며칠 전 주문한 호박고구마 모종이 배달됐다. 급한 마음이지만 늦은 점심에 낮잠까지 달게 한 숨 자고 일어나 밭으로 나가려니 어째 하늘이 어두컴컴한 게 심상치가 않다. 서둘러 호미며 괭이를 챙겨들고 일어서는데 아뿔싸, 후두둑 비가 쏟아지는데 곧 번개에 폭우다.

 

고구마 심기(6월 3일/비온 후 맑음 16-24도)

 

어제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아침 내내 내린다. 그것도 번개까지 동반한 폭우로. 지난주에 배수로를 손보긴 했어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마음은 이미 밭에 가있으나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가기엔 좀 많이 심하다.

 

엊그제 주문했던 매실이라도 닦아 놓을까 했는데 습도가 높아 그러지도 못하고 어영부영 시간만 보낸다. 점심을 먹고도 한참이나 지나서야 겨우 비가 그치고 구름 사이로 해가 잠깐잠깐 보인다. 서둘러 삽자루 챙기고 어제 도착한 고구마 모종도 챙겨 자전거에 오른다.

 

옥수수도 그랬지만 고구마도 부러 늦게 심는다. 물론 때맞춰 심은 것들도 있으니 올 여름 주전부리는 걱정 없다. 지난번에 100개 심었고 오늘 또 100개를 심으니 잘하면 겨우내 먹을 수도 있겠다.

 

지난 번 배수로를 파 놔서 그런지 물 고인 곳이 많지 않다. 그래도 한 번 고인 곳은 또 고여 있으니 아무래도 손을 크게 보긴 봐야할 듯하다. 급한 김에 대충 물길을 내놓고는 고구마를 심는데, 어째 다 심고 나니 원래 심으려고 남겨둔 곳이 절반도 넘게 남았다. 모종 파는 곳에서는 6월 중순까진 고구마를 심으면 수확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하니 지금이라도 더 주문을 해야 하나. 아님 다른 걸 심어야 하나.

 

콩밭 김매기(6월 4-5일/무더움 16-27도, 무더움 13-28도)

 

어젠 아침에 방울토마토 지주끈 묶어주고 오후에 매실 닦기 말고는 종일 콩밭 김매기고 오늘도 역시 오후에 매실액 담근 거 이외엔 콩밭 풀 뽑기다. 이틀을 매달렸는데도 이제 절반 정도 했으니 또 이틀은 꼬박 호미질만 해야 한다. 이젠 손목도 시큰시큰하다.

 

고추꽃 피다(6월 6일/맑음 15-26도)

 

이번 주도 주말에 쉬지 못한다. 모래 비가 온다고 하니 콩밭에 듬성듬성 싹이 나지 않은 곳은 다시 심어줘야 하겠고, 하루가 다르게 덩굴을 뻗어내는 오이와 애호박에 지주대도 세워야 하겠고, 이틀을 뽑았지만 아직도 다 뽑지 못한 풀들도 뽑아줘야 하겠고, 아무튼 하루도 쉬지 않고 밭에 나오는데도 자꾸 일이 밀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낮엔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아침, 저녁엔 선선하니 일하기엔 딱 좋아 다행이다. 해서 오늘 아침엔 또, 또, 김매기하고 저녁엔 아무리 바쁘더라도 잠깐 쉬어가자며, 김매기 대신 고추에 지주끈만 묶어주었다. 고추와 콩은 사이짓기로 심었건만 콩밭 김매기 할 땐 몰랐는데 고추도 많이 컸다. 벌써 꽃도 피우고 있고 어떤 것들은 고추도 매달고 있다. 조만간 첫 풋고추를 수확할 수 있겠다.

 

         

 

 

<맨 위 고추부터 시계방향으로 감자, 고구마, 상추, 참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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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7 00:13 2009/06/07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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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넘다(2006년 4월 16일)

 

어제는 밤이 꽤 깊어서야 천은사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토요일, 일요일 일정은 몸도 마음도 무척 피곤해 웬만하면 피하려했는데 오후 늦게 서야 “또 가자!”며 나선 바람에 그리된 것이다.

 

햇살이 창문에 들어오는 것을 느끼자마자 일어났는데도 7시 밖에 되지 않았으니 해가 길어지긴 길어졌나보다. 번갈아 가며 세수를 하고 아침 뉴스를 보니 낮은 기온에 바람까지 강하게 분다고 한다. 최대한 짐을 가볍게 한다고 겉옷을 준비해오지 않았는데, 걱정이다. 신발 끈을 조여 매고 민박집을 나서니 정말 바람이 장난 아니다. 이러다 지리산을 코앞에 두고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닌가 걱정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천은사 구경이라도 하고 갈 생각으로 산길로 접어드니 한결 바람이 가셔진다. 다행이다.

 

09:08 천은사

천은사를 둘러보고 나니 출출하다. 절 입구 슈퍼, 인심 좋은 아주머니 덕에 맛난 갓김치와 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한다. 비록 차를 위해 닦여진 길이지만 지리산으로 한 발 한 발 들어간다. 햇빛이 정면에서 얼굴을 내리쬐고 있어 무척이나 따갑다.

 

<지리산 하면 으례 화엄사나 실상사를 떠올리지만 천은사는 이에 견줄만 한 숨겨진 보물이다>

 

10:07 해발 600m

산 아래는 벚꽃이 이미 졌고 나무마다 파란 잎새들이 달려있지만 이곳은 이제야 새순이 머리를 내밀고 있다. 구불구불 고갯길을 한참 올랐지만 아직은 거뜬하다.

 

10:35 해발 700m

바람이 거세진다. 아무래도 옷을 너무 얇게 입은 것 같다. 산행을 위해 두터운 옷을 준비했어야 했는데. 가파른 오르막에 이젠 숨도 조금씩 차 오른다.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른다.

 

10:45 해발 800m

10분만에 100m를 더 올랐다. 그만큼 길이 가파르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300m만 오르면 된다’며 힘을 낸다. 평지 길에서는 콧노래도 부르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하는데 지금은 둘 다 땅만 보고 걷는다.

 

10:58

아찔한 벼랑끝 굽이 길을 돌아서니 해발 900m다. 이런 길이 아니더라도 운전대를 잡는 게 무서운 우리들로서는 어찌 이런 길에 차를 끌고 갈 수 있는지 그저 궁금할 따름이다. 곳곳에 ‘이곳은 올 해 추락사고로 0명 사망, 00명 부상’ 플랑카드가 걸려있고, 어떤 것은 사고 당시 사진까지 걸어놨는데도 말이다.

 

11:13 시암재 휴게소

두 고개만 돌아서면 시암재인데 바람이 점점 거세 진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쓴 모자가 오히려 바람 때문에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시암재 휴게소에 도착하니 저만치 발아래 구례 땅이며 하동 땅이 보이는데, 어디선가 난데없이 바람에 날려온 똥 묻은 알록달록한 휴지들 덕에 경치구경은 뒷전이고 모처럼 목젖이 보일 만큼 크게 웃는다.

 

11:29 해발 1,000m

천은사를 출발한지 2시간 20여분만에 해발 1,000m에 도달하다. 하지만 기쁘기보다는 ‘무엇 때문에 이 높은 곳에까지 길을 내었을까?’라는 생각뿐이다. 남원~정령치~심원의 지리산 진입로와 달궁~성삼재~천은사의 일주도로 덕분에 노고단이 쉬이 열리기는 했지만 지리산의 생태계뿐만 아니라 조용했던 인근의 마을들까지도 덩달아 세상을 향해 열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위는 시암재에서 성삼재를 향해 바라본 모습이고 아래는 반대로 성삼재에서 시암재를 본 모습이다>

 

11:44 해발 1,100m

천 미터를 지나고 나니 천백 미터는 그저 안내판에 적힌 숫자, 그 이상의 의미가 없다.

 

11:55 성삼재 휴게소

드디어 차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도착했다. 멀리 굽이굽이 지나온 길이 아득하기만 하다. 헌데 이곳은 봄철 입산금지에서 벗어난 유일한 곳이라 그런지 노고단으로 오르려는, 화엄사계곡으로 내려가려는 등산객들로 매우 혼잡해 오래 머물 곳이 못된다. 요기만 하고 서둘러 달궁으로 향한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13:25

일곱 번째 여행만에 드디어 전라북도로 들어선다. 작년 6월 첫 여행을 시작했으니 근 1년여만에 남도를 벗어난 셈이다. 그동안 사고 없이 이곳까지 온 것에 대해 감사해주고 서로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또 앞으로의 여행에서도 지금까지와 같이 아무 탈 없었으라는 기원도 해본다.

 

15:20 뱀사골입구 반선마을

구례에서부터 시작된 861번 지방도로를 따라 지리산을 넘어온 길을 되짚어보니 20km가 넘는다. 평지 길이면 5시간으로 충분히 걸을 수 있는 거리지만 꾸불꾸불한 산길을 오르고 내려오면서도 6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으니 참 장하다. 계곡물에 발까지 담그고 시원하게 주무르며 전주로 나가는 시외 버스를 기다린다.

 

* 일곱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구례에서 시작되는 861번 지방도로는 성삼재를 지나 전라북도로 넘어가면서 굽이굽이 돌아 실상사 입구까지 이어진다. 우리는 이 길을 따라 천은사에서 뱀사골입구 반선마을까지 약 20km를 걸었다. 걸은 시간은 약 7시간.

 

* 가고, 오고

구례까지는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시외버스가 다니며, 뱀사골에서는 전주나 남원을 경유해야 서울로 올 수 있다. 뱀사골 차편은 뜨문뜨문 있는 것도 문제인데, 시간마저 제 멋 대로니 사전에 꼼꼼히 확인해야 함은 물론이고 웬만하면 버스정류장 한쪽 의자에 앉아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 잠잘 곳

천은사 인근과 성삼재 너머 ‘하늘아래 첫 동네’ 심원마을에는 민박이 몇 있으나 시암재와 성삼재 휴게소를 제외하고는 민박, 음식점이 전혀 없다. 다만 성삼재 넘어 심원마을, 달궁, 반선까지는 군데군데 휴게소를 겸한 매점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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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31 17:33 2009/05/31 17:33

콩, 싹이 나다

from 09년 만천리 2009/05/29 23:20

벌써 잡초가(5월 25일/맑음 12-31도)

 

벌써 잡초가 심상치 않게 올라온다. 아직은 옥수수 싹이 튼 곳과 일찍이 심어 놓은 고구마, 감자 밭이지만 풀 올라오는 모양새가 장난 아니다. 날이 길어지는 것과 비례해 해 뜨는 시간도 빨라지고 해도 빨리 뜨거워지니 서둘러 일을 해야 할 터인데 잠깐 일한 것 같은데 그새 8시, 9시다. 아무래도 밭에 나오는 시간을 더 앞당겨야겠다.

 

지주대 세우기(5월 26일/맑음 14-30도)

 

오며 가며 여남은 개씩 대나무 지주대를 옮기니 사흘이나 걸렸다. 아직까진 고추가 쑥쑥 자라지 않아 나중에 해도 될 터이지만 잡초 뽑아내랴, 남은 옥수수며, 고구마 심으랴 일이 몰릴 듯 해 미리미리 옮겨 세워 놓는다. 며칠 신경을 쓰지 못했던 토마토가 부쩍 자란 걸 보니 내일부터는 토마토며, 오이며, 호박에 지주대를 세워줘야겠다.

 

감자 밭 제초(5월 27일/무더움 14-28도)

 

5월 말인데도 낮 기온이 30도를 육박한다. 일부에선 올 해가 가장 더울 거라 하던데 요즘 날씨를 보면 그러고도 남을 듯하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제부터는 밭에 나오는 시간을 더 당겼다. 새벽에 일어나는 게 아직은 몸에 익지 않았지만 10시만 지나도 벌써 뒷목이 뜨끈뜨끈하니 일 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쪼그리고 앉아 풀 뽑는 일이라 더 그렇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내일이나 모래 아침까지만 더 제초하면 감자 밭은 대충 마무리가 될 듯한데. 오늘은 토마토 지주대 세워준 거 빼면 거의 쉬지도 않고 풀만 잡아 뽑은 것 같다. 허리도 허리지만 허벅지가 땡긴다.

 

콩, 싹이 나다(5월 28일/무더움 16-30도)

 

일교차가 크다. 새벽엔 긴팔 옷에 점퍼까지 입고 나가야 할 만큼 제법 쌀쌀하지만 한낮엔 밭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무지 덥다. 자칫 감기 걸리기 십상이다.

 

엊그제부터 시작한 감자 밭 제초작업을 미처 끝내지 못했다. 감자 밭도 감자 밭이지만 채소며 과일 모종 심어 놓은 곳도 풀이 제법 자라고 있어 서둘러 일을 마쳐야 한다. 지난 주 비오기 전날 심었던 콩에 싹이 났지만 눈길 한 번 주고는 곧 호미질이다.

 

아침엔 감자 밭에서 세 시간 넘게 쪼그려 앉아 풀만 뽑았고 저녁엔 배수로 정비 잠깐 하고 채소 밭에 또 쪼그려 앉아 풀만 뽑았다. 밭은 넓고 풀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땡볕에 일하지 않으려면 더 부지런히 풀 뽑아야한다.

 

호미(5월 29일/무더움 13-25도)

 

밭농사에는 괭이와 호미, 이 둘이면 웬만한 건 다 된다. 이랑을 만들 땐 괭이가 모종을 심거나 잡초를 제거할 땐 호미가, 즉 허리를 굽혀야 할 일엔 호미를, 허리를 펴서 일을 해야 할 땐 괭이를 쓰는 것이다. 그러니 따로 경운을 하지 않는다면 괭이와 호미, 이걸로 일은 끝이다.

 

오늘은 저녁에 잠깐 토마토 지주대 세운 거 빼곤 하루 종일 호미질이다. 대충 심어야 할 것들은 다 심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풀들과 놀 시간인 거다. 감자 밭은 다 끝났고 싹이 나기 시작한 콩 밭과 야채며 과일을 심은 데가 이제부터 손을 보아야 할 곳 들이다. 일단 새벽엔 콩 밭을 저녁엔 야채며 과일 심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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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9 23:20 2009/05/29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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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조계산을 넘어 송광사로(2006년 4월 7일)

 

순천 터미널에 도착하니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우리를 반기고 있다. 여의도 윤중로 벚꽃축제가 내일부터니 지천에 벚꽃일터인데 이 먼 곳까지 와서야 볼 수 있다니. 도시 생활이란 게 얼마나 숨가쁜 것인지.

 

강남터미널에서 6시 40분 순천행 고속버스 첫차, 11시 순천 도착해 송광사행 버스, 잠깐 터미널 앞에서 벚꽃 구경한 것 말고는 지체한 것도 없는데도 송광사에 도착하니 그새 12시다. 오늘은 조계산을 넘어 송광사까지 산행 아닌 산행을 해야 하므로 아쉽지만 선암사 구경은 지난번으로 만족하고 서둘러 산길로 접어든다.

 

선암사 굴목재를 넘고 다시 송광사 굴목재를 넘어 송광사까지 이어지는 등산로는 완연한 봄기운을 여기저기서 느낄 수 있다. 흐르는 계곡 물이 그렇고, 파릇파릇 올라오는 새순이 그렇고, 진달래가 활짝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이 그렇다. 또 몸에 찰랑찰랑 부딪쳐 떨어지는 풀잎 하나 하나에서도 봄 향기가 묻어난다. 다만 만만치 않은 오르막 산길로 조금은 숨이 가빴고, 어중간한 시간 때문에 그 유명한 보리밥 맛도 못보고 그냥 지나친 것이 아쉽다. 봄 계곡의 맑은 물에 손도 담가보지 못한 건 해가 지기 전에 산을 내려가야 한다는 핑계로 돌리지만 못내 아쉽다.

 

  <선암사와 송광사를 이어주는 굴목재>

 

다행이 해가 떨어지기 전에 당도했는데 송광사는 선암사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왕대 숲을 지나 만나게 되는 이 절은 통도사, 해인사와 함께 3보(三寶) 사찰의 하나인 승보사찰(僧寶寺刹)인 만큼 규모 면에서는 꽤 크지만 큰 가운데 아기자기하고 적당한 법당들이 여기저기 제 자리를 잡고 있어 선암사에서와 같이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또 이곳의 지형이 바람이 불면 함께 흔들거리는 형상이라 ‘불일보조국사감로탑’ 하나만을 제외하고는 돌로 된 건물이 하나도 없다는데 이 또한 색다른 맛이다.

 

둘째 날, 벚꽃 70리 길을 걷다(2006년 4월 8일)

 

송광사 입구에서부터 시작되는 벚꽃나무에 정신이 어질어질하다. 순천터미널 앞 벚꽃은 맛보기였던 모양이다. 주암호를 끼고 도는 18번 국도 변은 그야말로 벚꽃행렬이고 지나는 차마저 없어 우리들만의 벚꽃 놀이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조금 걷다 꽃구경하고, 조금 걷다 주암호 구경하고, 발걸음이 더디기만 하다. 30분 걷고는 아예 아침도 먹을 겸 벚꽃과 주암호를 함께 볼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아본다.

 

 

<송광사 입구에서 시작된 벚꽃이 구례까지 이어진다>

 

창촌마을에서 죽곡면까지의 길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길이다. 남도의 푸근함을 느끼기에는 충분한데, 어째 특색이라 할 만한 것도 없고 고만고만한 마을들과 들과 산이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죽곡에서부터는 대황강이라고도 불리는 보성강을 오른편으로 두고 걷는, 곡성 군 길 벚나무들이 다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즐겁기만 하다. 게다가 넓은 갓길에 쉬어가기 좋은 원두막들이 있어 벚꽃 70리 길이 힘든 줄 모른다.

 

압록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그리 번잡스럽지는 않았으나 특별히 볼만한 것도, 마땅히 쉴만한 곳도 없어 오히려 썰렁한 느낌마저 준다. 여름철 피서지로는 적격일지 모르겠지만 보성강과 섬진강이 만나는 곳이라는 것 이외에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아 추천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식당이며, 민박집에서의 푸근한 동네 인심에 편안히 쉬어간다.

 

셋째 날, 섬진강을 따라 지리산 관문 구례로(2006년 4월 9일)

 

오늘은 섬진강을 왼편으로 두고 지리산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구례까지 걸어야 한다. 다만 일요일 오후 늦게 출발했다가는 봄맞이 구경나온 사람들과 뒤엉켜 늦을 수 있다. 해서 아침도 거른 채 일찍부터 길을 나선다.

 

구례로 가는 길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17번 국도와 10번 군도가 있는데 10번 군도를 따라 걷는 것이 나을 듯하다. 어제 70리 길에 이어 벚나무가 또 있는 것도 그렇고 오가는 차가 없는 것도 그렇고 쉬엄쉬엄 쉬어갈 만한 곳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가 걷고 있는 17번 국도변에도 심심지 않게 벚나무를 만날 수 있으며, 식물도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름 모를 들풀들과 철 이른 야생화들이 반기고 있으니 어떤 길이 더 나은지는 알 수 없다.

 

<섬진강을 따라 걷는 길가에서 만난 들꽃>

 

어제오늘 섬진강과 함께 했으니 재첩국 맛은 봐야겠는데 구례구역 앞 꽤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식당이 바로 그곳이다. 섬진강 물빛을 닮은 재첩국을 시켜놓고 지도를 펼쳐보니 ‘이제야 땅 안쪽으로 조금씩 들어오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든다. 다음은 지리산을 넘어야 한다. 둘 다 지리산을 다녀온 지 몇 년씩은 지났으니 아무래도 단단히 준비해야 할 듯하다. 잘 포장된 일주도로라 등산하는 맛은 없겠지만.

 

* 여섯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 첫째 날 : 선암사에서 조계산을 넘어 송광사로. 산길 7km를 약 5시간 동안 걷다.

- 둘째 날 : 송광사에서 압록까지 18번 국도 벚꽃 70리 길을 걷다. 걸은 시간 약 8시간.

- 셋째 날 : 여전히 18번 국도. 압록에서 지리산 아래 구례까지 섬진강을 왼편으로 두고 약 4시간 동안 15km를 걷다.

 

* 가고, 오고

선암사까지 내려가는 것은 다섯 번째 여행 때와 반대방향으로, 즉 순천을 경유해서 쉽게 갈 수 있었는데, 구례에서 서울로 올라올 때 문제가 있었다. 우리는 구례에서 서울로 직접 가는 시외버스 시간을 놓쳐 시간을 절약해보고자 남원을 경유해서 올라왔는데 실제 시간상으로는 구례에서 다음 차편을 기다리는 것이 남원을 거쳐 서울로 오는 것보다 나은 듯하다. 구례에서 남원까지 이동하는 시간도 그렇고 남원에 도착해서 다시 고속버스터미널로 움직여 서울행 버스시간표를 맞추는 것도 그렇고 만만치 않은 시간이 소요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비용도 엇비슷하게 든다.

 

* 잠잘 곳

송광사 인근은 관광지라 그런지 숙박시설이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고 음식점도 여느 관광지와 같이 매우 요란스럽다. 둘째 날 머물렀던 압록은 이름만 요란했지 부담 없이 쉴 수 있는 숙박시설이나 음식점이 별로 없다. 가까운 구례나 곡성은 음식점도 많고 숙박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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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6 10:50 2009/05/26 10:50

 

텔레비전이라면 좀체 가까이 하지 않으면서도 곧잘 챙겨보는 몇 개의 프로그램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매주 토요일 느지막한 저녁 시간에 방송되는 ‘다큐멘터리 3일’이다. 남들이 보기엔 그닥 특별하지도 않는 소소한 일상이나 혹은 곧 사라지게 될 어떤 모습들을 구성에 얽매이지 않고 담백하게 보여주는 이 프로그램은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어느새 그 일상, 그 거리에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데에 그 매력이 있다. 이날 방송도 그랬다. 낮에 잠깐 집 뒤 오솔길을 따라 10여분 오르면 만나게 되는 시립도서관에서 최종규의 <모든 책은 헌책이다>를 빌려와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구르며 헌 책방 나들이를 하다 잠깐 텔레비전을 켰는데, 부산 보수동 헌책방 거리가 화면에 잡힌 것이다. 반갑기 그지없다.

                                                                                                                                          

 

“고르다 보면 꼭 한권씩 눈에 띄는 책이 있거든요. 그럼 그걸 사면 소중하죠. 밥을 안 먹어도 그걸 사면 배부르고요.” ‘책갈피 사이 인생이 머무는 풍경-부산 보수동 책방 골목/다큐멘터리 3일’

 

낯선 길을 걸으면서도 어디선가 본 듯한 풍경이라는 느낌이 이럴까. 돌이켜보면 꼭 일 년 전, 꽤 오랫동안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그래도 느닷없이 춘천으로 이사를 하기로 하고 서둘러 이것저것 정리를 하는 바쁜 와중에도 낙성대며, 신림동이며, 신촌, 청계천, 서대문으로 헌책방 나들이를 나섰던 모습이 겹쳐진다. 거리상으로야 100km도 안되고 시간상으로도 2시간이면 올 수 있는 거리지만 아무래도 서울 출타는커녕 일부러라도 헌책방에 오기는 어려울 듯싶어 마음에 담아두려 부러 시간을 냈던 모습이 말이다. 그리고 그 속에 어디선가 본 듯한 풍경, 낙성대 전철역, 그리고 [흙서점].

 

“<흙서점>은 책방이 썩 넓은 곳은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밭(분야) 책을 많이 꽂아 둘 수는 없지만, 좁은 자리에 놓는다고 해도 그 밭 책을 가볍게 여기는 게 아니라고 해요. 꽤나 많은 책이 들락거리기에 찾을 만한 책은 웬만큼 찾고 즐길 수 있답니다. 자리는 찾는 사람이 많고, 팔리는 책은 많으니까요.” <모든 책은 헌책이다> p.246

 

책표지 안쪽을 보니 ‘2008.3.5 낙성대 흙서점’라고 쓰여 있다. 그러고 보니 꼬박 1년이나 책꽂이에 꽂혀 있었던 셈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첫 느낌은 책의 제목 때문인지 여행 책인 양 싶다. <보거를 찾아 떠난 7일간의 특별한 여행>. ‘파리의 택시운전사’로 유명한 홍세화가 옮겼는데 적장 지은이는 낯설다. 질베르 시누에. 내 기억으론 하도 호들갑을 떨어 대서 고작 ‘Y2K’로밖에 남지 않은, 새천년, 새시기의 첫 해에 쓰였고, 우리나라엔 한 해 뒤인 2001년에 나왔으니 꽤나 오래된 책이다. 게다가 초판본이어서인지 책장도 조금은 누렇다. 하지만 여기저기 전에 읽었던 이가 남겨둔 밑줄을 빼면 새 책이나 다름없는데다 여느 책보다 크기도 작고 페이지 수도 많지 않아 손에 잘 잡힌다. 다만 파리 교외 깡마른 중국인에게서 산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떠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일주일간의 ‘여행’이 결코 유쾌하지 않아 오래도록 책을 붙들게 만든다.

 

“대부분의 실험실들은 자기들의 특허권 옹호를 강조하면서 가난한 환자들은 도저히 구매할 수 없는 약값을 정해 놓고 있다. 약이 상업화되려면 시장이 커야 할 뿐만 아니라 돈을 벌어주어야만 한다. 그것도 아주 빨리. 제약회사들은 미리 가격을 정해 놓고, 증권 시장에서 시세가 오르게 할 시장들만 선정할 뿐이다.” <보거를 찾아 떠난 7일간의 특별한 여행> p. 92 '수요일-루시가 다이아몬드와 함께 하늘에 있네.

 

“리틀톤에서 일어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가상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 이미 출생 인종, 신체적 특징, 즉 눈과 머리의 색깔, 신장, 혈액형 등에 따라 난세포 또는 정액을 선택할 수 있는 ‘목록’이 존재한다. 그밖에 제공자들의 건강 상태와 병치레 경력, 지능지수, 교육 수준에 따라서도 선택할 수 있다. 벌써 그 ‘목록’들은 국립 수정 등기소의 목록처럼 인터넷 망에 올라 있다.” <보거를 찾아 떠난 7일간의 특별한 여행> p. 145. 토요일-네가 어머니의 가슴에 칼을 꽂기 위하여.

 

종종 새것 보다 오래된 것이 더 끌릴 때가 있다. 애주가에게 묵은 술이 깊은 맛을 주고, 1,000만 화소에서 맛볼 수 없는 기다림을 필름 카메라가 줄 때가 그렇다. 막 택배로 도착한 새 책이 내는 잉크냄새보다는 도서관에서 혹은 헌책방에서 풍겨오는 책 냄새가 좋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윤에 쫓겨, 오로지 지배의 대상이 대어 죽어가는 자연, 산업국들의 이기주의로 인한 인간성 파괴, 공동체의 해체와 같은 오래된 질문들은 더 이상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끌지 못한다. 오래된 것은 오래된 만큼 쉽게, 깨끗이 잊힐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로인해 우리의 ‘보거’는 머리가 세 개고 꼬리는 뱀의 꼬리를 닮은 개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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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5 22:40 2009/05/25 2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