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을 다시 구하다(4월 28일)

 

우여곡절 끝에 다시 밭을 구했다. 엊그제 얘기된 밭은 주인이 500평만 따로 경계를 긋기도 뭐하고 2000평을 한 사람에게 주는 게 관리하기도 편하다며 다른 밭을 소개해줬기 때문이다. 밭을 가진 주인 입장에서야 그렇기도 하겠지만 늦게 밭을 구하는 사람에겐 하루, 이틀도 아까운 시간이라 급한 맘에 속이 상하긴 했어도 금새 다른 밭을 구해 다행이긴 하다.

 

아무튼 내일 하루 비닐 좀 걷어내고 널려져 있는 잡다한 것들 치워내면 윗동네 사시는 분에게 부탁해서 서둘러 밭갈이부터 해야겠다. 주말에 비소식이 있으니 내일 밭갈이, 모래 퇴비 넣어주기, 주말 휴식, 다음 주 본격적인 농사 시작, 또 작년처럼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올 봄농사 이제 시작이다.

 

비닐 걷기, 그리고 알통(4월 29일/맑음, 4-22도)

 

귀농인들이 겨울 내 체력훈련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뭔 체력훈련이다냐, 며 웃어넘겼는데, 오늘 하루 비닐 걷기를 하고 나니 뭔 얘긴지 알 것 같다. 한참 농사지을 때야 모르겠지만 겨울 내내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다 보니 체력이 많이 떨어지긴 떨어지나보다.

 

어째 하루 종일 비닐을 걷어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일할 땐 몰랐어도 저녁 먹고 나니 슬슬 허리며 다리통이 쑤셔댄다. 허리 아픈 거야 찜질기로 어찌할 수 있겠는데 허벅지며 종아리가 땡기는 데는 어쩔 줄 모르겠다. 아니나 다를까 허벅지 양쪽에 알통이 배기고 종아리도 뻐근한 게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다. 겨우 하루 일하고 비실비실이라니. 걱정이다. 그래도 내일은 트랙터로 밭을 갈아주기만 하면 되니 그나마 다행이다.

 

온종일 검은 비닐과 씨름하고 났더니 꿈자리에 검은 비닐이 오락가락이다. 당분간 검은 비닐봉지만 봐도 속이 안 좋을 듯 싶다.

 

밭 갈기 1시간 만에 끝(4월 30일/맑고 바람 조금, 4-24도)

 

아마 삽으로 했으면 보름은 꼬박 걸렸을 게다. 가까이서 보니 덩치도 덩치거니와 육중한 소리 때문에 벌써 기를 딱 막아 세우는 트랙터 한 대가 그 넓은 밭을 두 번 갈아엎고, 고랑까지 만드는데 1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그야말로 입이 쩍 벌어진다. 기계로 밭을 갈면 땅 심이 약해진다고 해 별로 좋지는 않지만 마땅히 일 할 사람이 없는 농촌에선 어찌 보면 당연히 기계를 쓸 수밖에 없을 듯싶기도 하다.

 

금세 일을 마친 윗동네 아저씨 분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나누는데, 밭은 좋은 밭인데 너무 비싸게 빌렸다, 한다.

 

“아, 땅 가진 사람이야 땅값 있으니 50만원 받겠다고 하겠지만 농사짓는 사람은 밭 갈고, 모종 사고, 품 팔아 농사져서 도지세 내고 나면 뭐가 남아? 내년엔 비싸서 못하겠다고 자빠져. 400평에 30만원이면 됐지. 안 그랴?

 

작년까진 동네에 노는 밭 죄다 하느라 1만평도 넘게 농사를 지었는데 막상 한 해 농사 끝마치고 나니 손에 쥐어지는 게 없어 더 농사를 지을 지 고민이라는 아저씨. 그래도 그 비싼 트랙터도 갖고 있으니 조금은 낫지 않을까 싶기는 하지만 고것도 다 빚일 거라 생각하니 씁쓸하다.

 

이왕 밭에 나온 거 오후에 퇴비도 사다 넣어 줄까, 해서 밭주인과 통화를 했더니 먼 곳에 나왔다며 내일 아침에 농협에서 보잔다. 음. 별 수 없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 밭 설계나 다시 해야겠다.

 

주작물 : 콩, 고구마

작년에 비해 넉넉히 심을 것: 고추, 옥수수, 들깨

올 해 처음 도전하는 것: 감자

채소류: 상추, 오이, 가지, 호박, 부추, 열무, 배추, 무 등

과일류: 토마토, 방울토마토, 참외

 

400평

콩 - 100평 / 고구마 - 100평

고추 - 50평 / 감자 - 50평

옥수수 - 20평 / 들깨 - 20평 / 참깨 - 20평 / 참외 - 10평

오이 - 5평

호박 - 5평

토마토 - 5평

방울토마토 - 5평

상추 - 2평

가지 - 2평

열무 - 2평

부추 - 1평

기타 야채 - 10평

여분 - 10평

지렁이 - 3평

 

토마토, 방울토마토, 오이, 호박(각 20개씩): 120cm * 400cm

가지(4개): 120cm * 100cm

참외(20개): 120cm * 400cm

 

 퇴비 넣어주기(5월 1일/맑음, 5-24도)

 

아침부터 이리해야 하나 저리해야 하나 정신이 없다. 농지원부도 모르는 부재지주 때문에 1포대에 200원씩이나 더 주고 퇴비를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다 겨우 사기로 결정했는데, 연휴라 다음 주 수요일이 되어야 배달이 된다고 해 또 용달을 불러 사갈까 그냥 다음 주에 배달해 달라 할까 또 고민이다. 용달 부르는 데 드는 돈 3만원이 아깝기는 하지만 때를 놓치면 작년처럼 보름이상 또 늦어질 것 같아 서둘러 용달차 불러 퇴비 싫고 밭으로 가니 해가 중천이다. 내일 비소식이 있으니 오늘 중으로 사다 놓은 퇴비를 넣어주어야 하는데 마음만 급할 뿐이고 몸은 그늘을 찾는다.

 

햇볕이 한 숨 잦아들 때쯤 다시 밭에 나와 퇴비를 넣어주는데 작년에 해 본 경험이 있어서 인지 요령이 있다. 20kg짜리 퇴비 한 포가 그래도 쪼매 무겁기 하지만 옆구리에 끼고 고랑을 따라가며 슬슬 뿌려주면 삽으로 퍼 넣어주는 것 마냥 효과가 있다. 그래도 사온 퇴비 30포대 가운데 나중에 고구마 심을 때 쓸 것으로 5포대만 남기고 다 넣어주니 온 몸이 천근만근 뻐근하다. 하지만 잠깐 물마시며 한 숨 돌리고는 곧바로 채소와 과일 심을 곳에 이랑까지 만든다. 이거야 원, 노동절인데 이리 일해도 되는 거야?

 

* 도지세: 50만원

* 퇴비: 10,200원(20kg 1포대에 3,400원짜리 30포대)

* 용달: 30,000원

* 호미: 6,000원(논호미 작은 거, 큰 거 각 1개씩, 제초호미 1개)

 

이랑 만들기 - 첫째 날(5월 2일/흐리고 비, 9-16도)

 

오후에 비 소식이다. 해서 아침부터 밭에 나와 괭이질이다. 그래도 어제 오후 채소와 과일 심을 이랑을 만들어 놓아 일이 바쁘지만은 않다. 급한 게 채소며 고추와 감자 심는 건데 채소 심을 곳은 만들어 놨으니 말이다.

 

고추는 작년 경험에 비춰봤을 때 아무래도 플랑카드를 씌우던가 해야겠지만 지금 상황으론 아무래도 최악의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비닐은 쓰지 않겠다, 다짐했지만 그걸 쓸 가능성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미리미리 부탁했으면 플랑카드를 구할 수 있겠지만 그리 한 것도 아니기에.

 

예보로는 12시 이후에 비가 온다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10시가 쪼금 넘었는데 먹구름이 가득하고 바람이 모자를 날린다. 곧 비가 쏟아질 것 같다. 겨우 고추 심을 곳 이랑 네 개 만들고 감자 심을 곳은 절반도 만들지 못했는데. 급한 마음에 쉬지도 않고 괭지질을 하는데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진다. 서둘러 자전거에 오르는데 벌써 윗도리가 흠뻑 젖는다.

 

* 다음 주에 할 일

4일(월) 이랑 만들기 - 감자밭

5일(화) 비닐 씌우기 - 고추밭 / 이랑 만들기 - 콩밭

6일(수) 이랑 만들기 - 콩밭, 고구마밭

7일(목) 씨뿌리기 - 상추, 치커리, 부추, 열무

8일(금) 고구마 심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5/02 14:18 2009/05/02 14:18
Tag //

첫째 날, 마량항에서 천관산 입구까지(2005년 10월 22일)

 

강진에서 마량항에 이르는 23번 국도. 누군가는 이 길을 ‘횡재한 길’이라 했지만 실은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이름난 길로 꽤 많은 사람들이 지났다. 물론 차를 타고 지나기보다는 천천히 걸으면서 느끼기에 더 좋은 길이기는 하다. 헌데 이 좋은 길이 마량항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으니, 다시 천관산으로 향하는 길. 지번은 77번으로 바뀌었어도 여전히 아름다운 길.

  

지난번과는 달리 이제는 철이 지난 코스모스들과 제철을 맞은 억새풀들이 길 양옆에 줄지어 서 있다. 오른쪽으로는 멀리 남해바다가 머리를 내밀었다가 숨었다 하며 약을 올리고, 높고 파란 가을 하늘은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거기에 알맞게 부는 가을바람이 걸음을 가볍게 하니, 이건 분명 또 다른 ‘횡재'다.

 

<마량에서 관산으로 가는 77번 국도 변> 

 

마량항에서 출발한 시간이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고, 12km가 조금 넘는 거리인 대덕읍에 11시가 안 되어 도착했으니 이 속도에 몸이 익숙해졌나보다. 다만 여기까지 오는 도중에 그 흔한 주유소 하나, 음식점 하나 보이지가 않아 급한 볼일을 참아가면서 오는 바람에 길을 걷는 여유를 느끼지도, 지나치는 마을들을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또 폐교를 개조해 천연염색을 하는 곳도 지났는데 이 역시 지나쳐왔다.

 

대덕읍은 제법 큰 마을임에도 마땅한 식당을 찾기가 어렵다. 대충 빵으로 때울 까도 했는데 아침을 일찍 먹어서 그런지 배속의 요란함이 그리 하지 못하게 한다. 다행인지 어쩐지 모양새만큼이나 맛도 그다지 좋지 않은 허름한 식당에서 주린 배를 채운다.

 

오늘은 천관산 아래에 머무른다. 대덕읍에서 천관산 아래 방촌문화마을까지는 10km밖에 되지 않아 3시밖에 안 되어서 도착했지만 이곳에는 이것저것 ‘보물찾기’ 놀이를 할 만한 것들이 꽤나 있어서 부러 일정을 그리 했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숨어있는 고인돌 군이며, 길 양옆에 마주보고 나란히 서있는 남, 여 장승, 집성촌인 장흥 위씨 마을에 흩어져 있는 고택(古宅)들과 천관산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장천재()는 훌륭한 숨은 ‘보물’들이다.

 

마음 같아서는 이참에 하루 더 머무르며 30만평에 달한다는 천관산 가을 억새 물결도 구경하고, 산 이쪽저쪽에 흩어져 있는 문학공원, 돌탑, 문학비 등도 찾아보고, 동학농민전쟁의 최후 혈전이 치러졌던 석대들과 이 전투 이후 살아남은 농민군이 마지막 항전을 벌인 옥당리도 들러 묵도라도 올려야 할 것이나 시간이 허락지 않음이 아쉬울 뿐이다.

 

둘째 날, 천관산 입구에서 수문해수욕장까지(2005년 10월 23일)

 

어제와는 달리 읍내를 지나자마자 길게 이어진 고갯마루에 이어 색색의 등산복을 입은 이들을 싫은 차들이 연이어 질주하는 바람에 걸음걸이가 더디다. 그래도 길가에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구경에, 빨갛게 익어 가는 감나무 구경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헌데 이 좋은 풍경 뒤로 ‘쌀 협상 무효’, ‘WTO 반대' 구호가 쓰인 대나무 깃발이 자주 보인다. 또 오가는 트럭과 트랙터에도 ‘殺農반대’ 깃발이 꽂혀 있고, 읍, 면소재지에는 어김없이 농민회에서 야적해 놓은 쌀가마들로 가득하다. 쌀 개방에 대한 농민들의 항의 표시다.

 

<한 시간 가량 낮잠을 즐겼던 관흥삼거리 쉼터에 걸려 있는 ‘WTO반대’ 깃발. 이번 여행에는 이런 깃발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용산면사무소 앞 삼거리에서 수문과 율포를 거쳐 벌교로 가는 길을 걷기 위해 또 옆길로 샌다. 마량에서부터 쭉 함께 한 길을 따라 곧장 간다면 장흥읍으로 나갈 수 있지만.

 

안량우체국 앞 사거리까지는 식당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뱃속은 요란하기만 한데 뾰족한 수가 없다. 별 수 없어 사거리 슈퍼에서 늦은 점심을 빵과 우유로 때우고는 18번 국도를 따라 수문해수욕장으로 가는 길로 접어든다. 여기서부터는 다른 곳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종려나무가 열 맞추어 사열하고 있는데 색다른 느낌을 준다는 것 빼고는 그다지 볼거리는 아닌 것 같다. 허나 우리를 돌아가게 한 이유 중에 하나이니 소개할 수밖에.

 

일제시대에 한센병 환자들이 소록도로 가기 위해 배를 기다리다 더위에 지쳐 목욕을 했더니 몸이 가뿐해지고 병도 완치되어 이후에 해수욕장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품고 있는 수문에 도착하니 어느새 득량도(得粮島) 넘어 해가 수평선에 목을 걸치고 넘어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색다른 색과 맛을 내는 해물수제비를 국물까지 깨끗이 비워내니 짙은 어둠이다.

 

장흥으로 나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시간이라도 때울 요랑으로 모래사장에 내려서니 까짓 하루 더 있을까, 유혹이 생기는데, 때마침 도착한 버스에 아쉬움만 남기고 차에 오른다.

 

 

* 세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 첫째 날 : 마량항에서 대덕읍을 지나 천관산 아래 방촌문화마을까지 억새와 코스모스가 피어있는 77번 국도를 따라 약 21km. 걸은 시간 7시간.

- 둘째 날 : 77번과 18번 국도로 바꿔가며, 방촌문화마을에서 용산삼거리, 안량사거리를 거쳐 수문해수욕장까지 약 25km. 걸은 시간 8시간.

 

* 가고, 오고

첫 번째, 두 번째 여행과는 달리 서울에서 광주까지는 새벽 2시에 출발하는 심야고속 마지막 편을 이용했다. 요금이 열차보다는 3,000원 정도는 더 비싸지만(무궁화 기준) 조금이라도 잠을 편하게 자면서 이동하고자 한다면 버스가 훨씬 낫다. 게다가 마량항까지 운행하는 4시 50분 직행버스 첫차도 바로 이용할 수 있다. 수문에서는 일단 장흥으로 나와야만 광주가 됐던 서울이 됐던 움직일 수 있는데, 서울행 고속버스는 하루 세 번밖에 운행하지 않는데다가 오후 4시가 막차다. 결국 광주로 한 번 더 나와야 쉬이 서울로 올라올 수 있는데 다행히 장흥에서 광주로 나가는 차편은 꽤 늦게까지, 꽤 자주 있는 것 같다.

 

* 잠잘 곳

마량항에서 방촌문화마을까지는 대덕 읍내를 제외하고는 식사할 만한 곳이 전혀 없다. 대신 숙박은 인근 관산 읍내에 모텔과 여관이 몇, 그리고 장천재로 가는 길목에 천관산관광농원과 우리가 하루 밤 묵었던 담소원이 있다. 방촌문화마을에서 수문해수욕장까지 가는 길은 음식점은 다수 있으나 비수기에는 문을 열지 않은 곳이 많다. 또 숙박을 할 만한 곳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대신 수문해수욕장에는 음식점과 숙박할 만한 곳이 다양하게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4/30 23:55 2009/04/30 23:55

강진만이 오른편으로 보이는, 잠시 돌아가는 길(2005년 10월 2일)

  

<전날 머물렀던 월출산 자락>

 

갈림길이다. 영암과 나주를 거쳐 광주로 가는 길과 장흥과 보성, 그리고 벌교를 거쳐 구례로 가는 길. 앞의 길은 우리보다 앞서서 혼자 고성까지 걸었던 한비야씨가 택했고, 뒤의 길은 나중에 알게 된, 역시 혼자 길을 떠났던 까탈이씨가 또 먼저 걸었다. 어느 길을 가더라도 걷기에 좋은 길과 그렇지 않은 길이 번갈아 가며 기다리고 있을 뿐일 터이고, 아쉬운 것은 둘 모두를 걸을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까탈이씨가 걸었던 길을 따라가기로 한다. 다만 누구와 경쟁하는 것도 아니고, 또 뭐 그리 바쁘게 위로만 올라가야 할 이유가 딱히 없기에 강진만을 오른편을 두고 잠시 돌아가기로 한다. 누군가는 마랑향으로 이어지는 이 23번 국도를 두고 ‘횡재한 길’이라고 부를 정도로 꼭 놓치지 말기를 당부했으므로.

  

오전 9시, 강진 읍내를 벗어나자마자 해남 땅에서 한 번 맛을 봤던 <경치 좋은 길 시작>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저 안내판 너머에는 어떤 길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을까? 잔뜩 기대된다.

 

  

<강진에서 마량항까지 이어진 23번 국도>

 

오른편으로는 구강포 넘어 다산초당과 백련사가 좌우로 자리잡고 있는 만덕산이 저 만치서 손을 내밀고 왼편으로는 고만고만한 산들이 머리를 내밀며 우리 앞을 나선다. 길 양옆으로는 제 철 맞은 코스모스가 줄지어 서있고, 가을바람은 등줄기의 땀을 날릴 만큼 충분하다. 햇살은 따사롭게 내리쬐고 추수를 앞둔 벼들은 황금색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런 이건 횡재가 정도가 아니라 꼭 걸어야 할 길 목록에 넣어야 할 것이다.

  

오늘 길잡이 노릇은 <강진군관광안내도>가 톡톡히 한다. 첫 번째 여행 때에는 이런 관광안내도가 있는 지 몰라 걸어야 할 길, 잠잘 곳 등등을 인터넷과 여행관련 책 등을 통해 준비를 했었다. 헌데 이렇게 준비 하다보니 숙박지는 숙박지대로 따로 메모를 해야했고, 지도는 지도대로 프린트를 하던가 지도책을 가져가야 했다. 그러다 강진터미널 매표소에서 이 놈을 발견했는데 이 놈은 숙박지면 숙박지, 음식점이면 음식점, 게다가 지도까지 한 장에 모두 담고 있는 거 아닌가. 게다가 나중에 알기는 했지만 군 홈페이지에 신청을 하면 집까지 보내주니, 우리처럼 걷기여행을 하고자하는 사람들이라면 하나씩은 준비해야겠다.

  

칠량 면소재지를 조금 지나 길 오른편에 자리잡고 있는 「모범음식점」 금강휴게소가 이곳까지 오는 도중에 만나게 된 유일한 식당이다. 낮 12시가 조금 넘었으니 요기를 채워야겠는데 역시나 5천 원에 15가지나 되는 백반이 있어 주문하기가 쉽다.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싹싹 밥그릇을 비워내고는 식당 한 구석에 발을 쭉 펴고 누워 또 2시까지 무조건 쉰다.

 

세심정으로 가는 오르막길, 숨은 조금씩 가빠지는데 차에 받쳐 죽은 뱀의 시체가 눈에 들어와 갓길 바깥쪽으로 바짝 붙어 걷느라 힘이 든다. 그래도 고갯마루에서는 강진만의 넉넉함을 한껏 볼 수 있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기분이 좋아진다. 헌데 양이정으로 오르는 길에 죽어 있는 생명이 또 보인다. 바짝 말라붙어 있어 뚜렷한 형체는 알아볼 수 없지만 이번엔 다람쥐인 것 같다.

 

월 평균 71마리, 하루 평균 2.4마리의 야생동물이 차에 받쳐 죽는다는 ‘로드킬(road-kill)’이 벌써 두 번째다. 언젠가 신문에서 2004년 말 현재 전국 도로연장이 총 10만 278km인데 반해 동물들의 이동통로는 고작 2,760m라는 기사를 봤던 기억이 난다. 자기 편하자고 산, 땅, 강은 다 파헤쳐 길을 내면서도 이리도 생명체들의 길을 내는데는 인색한 것인지.

 

양이정을 뒤로 두고 내리막길을 내려오는데 멀리 해안가 도로를 따라 많은 허수아비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이 보인다. 가까이서 보니 어느 것들은 창을 쥐고 있기도 하고, 화살을 쏘는 자세로 있기도 하고, 화포로 무장하기도 했다. 또 딴 것들은 장수복을 입기도 했고, 수군복을 입기도 했고, 승복을 입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여자들도 있고, 남자들도 있다. 임진왜란 당시의 전투 장면을 재연한 것이라는 안내판이 있기는 한데, 어째 만들어진 모양새가 허술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그 허수아비들과 함께 어린애들처럼 장난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참을 논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 길을 걷고 있는데 이런, 지도에도 없는 해안도로를 걷고 있는 게 아닌가? 아마도 바람에 실려오는 갯내음에 이끌려 바다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가 길도 확인하지 않고 걸은 것일테다. 그 바람에 구경하고자 마음먹었던 고려청자박물관이며 도요지, 청자촌, 그리고 당전부락 입구에 있다는 500여 년 된 푸조나무 등을 지나치고 말았다.

  

<가우도(駕牛導) 너머 멀리 초당과 백련사가 자리잡고 있는 만덕산이 보인다>

 

멀리 만호성(萬戶城)이 보이니 저 고개만 넘으면 마량항(馬良港)이다. 시계를 보니 5시가 조금 넘었다. 마지막 힘을 낸다. 당초 이번 걷기 여행은 2박 3일간의 일정으로 강진에서 관산까지 가는 것이었는데 어제 하루 월출산의 이쪽 저쪽에 자리잡고 있는 무위사며, 월남사지터며, 금릉경포대며, 강진다원 등을 둘러보느라 마량항이 마침점인 된 것이다.

 

마량항 방파제를 따라 바다로 고개를 돌리니 까막섬이 코앞이다. 하루 종일 번갈아 가며 따라오던 죽도, 가우도, 비래도, 내호도, 외호도에 이어 우리와 함께 이곳에 멈춰선 까막섬이.

 

* 두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강진만을 오른편으로 두고 강진 읍내에서 칠량면, 대구면을 거쳐 마량항까지 이어지는 23번 국도를 따라 약 25km. 걸은 시간 7시간.

  

* 가고, 오고/잠잘 곳

서울에서 강진까지 교통편은 첫 번째 여행 때와 같다. 첫날 머물렀던 월출산 경포대 근처에는 민박에서부터 최근 지어진 펜션까지 다양하게 있으며, 둘째 날 걸었던 강진에서 마량항까지 23번 국도변에는 음식점은 몇 있으나 숙박할 만한 곳은 없다. 다만 마량항에는 숙박시설과 식당이 잘 갖추어져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4/30 23:16 2009/04/30 23:16

둘째 날, 걷기 힘든 길 그러다 다산초당으로 가는 여유로운 길(2005년 6월 5일)

  

오늘은 다산초당까지다. 욕심을 부린다면야 강진까지도 갈 수 있겠지만 만덕산 이쪽저쪽에 자리잡고 있는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한꺼번에 구경하고자, 또 둘을 이어주는 오솔길도 걸어보고자 부러 그렇게 잡았다.

  

남창사거리서부터는 55번 지방도로다. 헌데 이 길은 어제 묵었던 여관을 나서자마자 나타나는 쇄노재 고개에 이어 좌일과 신월을 지나 도암에 이르기까지 대형트럭과 연휴를 맞아 때지어 몰려오는 관광버스가 질주하는 바람에, 게다가 갓길마저 여유가 없어 걷기에는 무척 좋지 않다. 그래도 우리는 쉼 없이 걷는다. 다행히 도암을 지나 만나게 되는 3번 군도는 모치재를 넘어 초당까지 지나는 차도, 사람도 없어 하루의 피곤이 가신다.

  

당초 유물박물관은 구경할 생각도 없었기에 민박을 정하자마자 초당 구경에 나섰는데도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헌데 이 늦은 시간에 무신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지. 에휴 정신 없어라. 그리고, 어라? 웬 기와집? 어둑어둑한 산길에, 내려오는 사람들까지 피해가며 오르막길을 오르느라 숨도 가쁜데 초당 앞에 도착하고 보니, 초가집은 간데 없고 떡 하니 기와집이, 그것도 세 채나 버티고 있는 게 아닌가.

  

그 역시 사대부 집안의 자식이었으나 당대의 지배이데올로기였던 성리학을 대신해 백성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사회구조를 바꾸어야 한다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개혁적인 사고와 사회비판적인 의식을 만들어갔던 다산이 머물던 그 초당이 사대부 집안의 사랑채와 같은 자태로 서 있으니, 현세의 사람들이 다산을 되려 사대부 사람으로 돌려놓은 듯 해 씁쓸하다.

 

그래도 초당 양옆으로 다산이 해배(解配)를 앞두고 직접 쓰고 새겼다는 ‘정석(定石)’이란 글씨와 역시 다산이 직접 파서 만들었다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약천(藥泉), 그리고 이 약천 한쪽에 서있는, 바닷가의 돌을 주워 만들었다는 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 또 초당 앞에 반듯이 놓여 있는, 솔방울을 지펴 차를 끓였다던 ‘다조(茶竈)’라는 널찍한 반석 등이 있어 다산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다.

 

셋째 날, 만복산 오솔길을 따라 백련사로, 다시 이번 여행의 첫 번째 종착지인 강진으로(6월 6일)

 

아침 6시. 서울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시간에 일어나 고양이 세수를 하고는 누가 볼새라 마당 평상에 앉아 사진 한 장 찍고 있는데, 언제 보셨는지 집 뒤 텃밭에서 고추를 따고 계시던 주인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번갈아 가며 한마디씩 하신다. 헌데 우리가 도보여행 중이라는 건 어찌 아셨을까?

 

“잠들은 잘 잤는가? 걸어서들 여행 하는가보네. 오늘은 어디까지 가는고?”

 “예. 오늘은 강진까지만 가려구요. 내일 출근도 해야하고 해서 오늘은 서울에 올라가야 하거든요"

 “그려..... 젊은이들이 참 보기 좋네. 고생들하고 다음에 또 놀러오면 울 집으로 와"

 “예. 꼭 그렇게 할게요. 잘 쉬었다 갑니다"

 

민박집 간판을 달기는 했으나 실은 자식들이 쓰고 있는 방을 그냥 손님들에게 내주는 것이라 오히려 더 정겹고 시골집 같은 만복슈퍼. 다시 이곳에 오게된다면 꼭 들릴게요.

 

어제의 그 정신 없던 초당 가는 길이 오늘 아침에는 제법 운치가 있다. 오가는 사람들도 없는데다가 때마침 낀 아침 안개 때문이다. 백련사로 넘어가는 오솔길은 양옆으로 대나무와 고송들이 드리워져 있어 서울에서는 맛볼 수 없는 숲 내음을 한껏 맡을 수 있어 마음까지 상쾌하다. 그리고 촉촉이 젖은 산길이라. 휴양림과는 또 다른 맛이다.

 

강진에서 10시 40분에 출발하는 서울 행 일반고속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아쉽지만 백련사는 둘러보지 못하고 먼발치서 대웅전 처마만 바라본다. 다행히 내려가는 산길에는 300년에서 최대는 600년 정도 됐다는 동백나무들이며, 이 동백림 속에 숨어 있는 고만고만한 부도들을 찾아가는 맛이 있어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때아닌 날파리 때들과 한바탕 전쟁을 치르기도 하고, 길가의 원두막에서 올라 잠시 쉬기도 하고,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걸으니 어느새 강진이다. 늦은 아침을 먼저 해결할까하다 오늘이 연휴 마지막 날임을 상기하고는 매표소로 향한다. 지방의 버스터미널들이라 그런지 카드결재가 안 된다. 게다가 돈을 찾아 표를 끊고 현금영수증을 달라고 하니 ‘무신 소린가?’ 하듯 쳐다본다. 음. 괜히 손해보는 느낌이다.

 

어제그제 맛보았던 백반하고는 달리 반찬 가지 수로나 맛으로나 한참 떨어지는, 터미널 근처 식당에서 아침을 때우고 나니 어느새 버스 출발 시간이다. 언제일런지는 몰라도 우리의 무작정 걷기 두 번째 여행은 다시 이곳에서 시작될 것이다. 강진관광안내도 앞에서 사진 한 장 찍고 버스에 오른다.

 

* 첫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 첫째 날 : 땅끝마을에서 남창사거리 지나 남창관광여관까지 77번 국도를 타고 약 23km. 왼쪽으로는 산이 오른쪽으로는 바다가 번갈아 가며 뒤따라오는 아름다운 길. 걸은 시간 6시간.

- 둘째 날 : 남창관광여관에서 다산초당 앞까지 약 25km. 55번 지방도로는 남창사거리에서 도암을 지나 동일레미콘 앞 삼거리까지. 여기서 오른쪽 다산초당 가는 3번 군도로 빠져듦. 초당 가는 3번 군도를 빼고는 차량통행도 무지 많고 지루한 길. 걸은 시간 7시간.

- 셋째 날 : 다산초당에서 강진 읍내까지 약 10km. 다산초당 뒤 편 오솔길을 따라 만덕산을 넘어 백련사로, 백련사에서 다시 3번 군도로 빠져 양옆으로 논이 펼쳐진 길. 걸은 시간 3시간.

 

* 가고, 오고

- 가는 길 : 서울에서 광주로 가는 마지막 기차는 영등포역을 기준으로 밤 11시 17분이다. 요금은 19,600원. 3시 30분 경이면 광주역에 도착하게 되는데 역에서 버스터미널까지는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다. 택시로 이동하면 대략 10분도 안돼서 도착할 수 있으나 도보로는 넉넉잡아 40분 정도 걸린다. 땅끝으로 가는 첫 버스는 4시 40분이며, 요금은 10,000원이다.

- 오는 길 : 강진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편은 하루에 여섯 번 정도 인 것으로 기억하나 정확한 것은 일반고속이 오전 11시와 오후 3시 30분 두 차례뿐이라는 것이다. 일반고속 요금은 17,300원이다.

 

* 잠잘 곳

땅끝마을은 콘도에서 민박까지 다양하게 있으며, 남창리까지는 해수욕장 등 군데군데 민박, 여관 등이 있으나 남창리에는 남영여관과 남창관광여관 두 곳이 있을 뿐이다. 초당 근처에는 농촌체험민박 등 숙박할 만한 곳이 꽤 있으나 그 외 지역은 없다고 보아야한다. 물론 강진 읍내에는 숙박할 곳이 많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4/30 23:10 2009/04/30 23:10

밭을 구하다

from 09년 만천리 2009/04/30 22:49

밭을 구하다(4월 24일)

 

봄에 밭이 딸린 집을 구해 이사를 하겠다고 집구하러 다니다 시간 다 보내더니 결국 이사도 못하고 작년에 농사지었던 밭마저 놓치고 말았다. 뒤늦게 여기저기 밭 구한다고 동분서주했지만 터무니없는 도지세를 요구하는 사람, 공짜로 그것도 세빠지게 한 닷새는 일해야 밭모양이 될 듯한 밭을 빌려주겠다는 사람 등등을 만나면서 마음만 상하다 겨우겨우 밭을 구했다.

 

동면 장학리까지 가야하니 거리로 따지면 작년보다 거의 세 배 이상 멀긴 하지만 더 늦어지면 밭을 구한다 해도 때를 많이 놓칠 듯도 하고 또 이젠 밭을 빌려주겠다는 사람을 만나기도 힘들 듯 해서 아침 일찍 밭 구경 후에 하겠다고 했다. 평당 천원의 도지세니 500평에 5십만원이다. 100평 농사짓다 500평 하겠다고 해버렸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밭 전체가 2천평이니 1/4만 쓰는 건데도 밭 크기에 일단 기가 죽는다. 남들은 천평, 이천평 밭에 또 천평, 이천평 논농사까지 한다는데.... 쩝.

 

암튼 작년처럼 시작은 좀 늦긴 하지만 올 해 농사가 이제 막 시작이다. 새로운 마음으로 도전에 나선다.

 

무엇을 심을까(4월 26일)

 

늦었지만 어찌어찌 또 밭을 구했으니 무엇을 심을 지 정해야한다. 작년엔 100평 밭에 주작물로 고구마와 콩을 했는데 올 해 역시 주작물은 콩과 고구마다. 콩은 절반 이상을 심어야겠고 고구마 역시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 같다. 감자는 씨감자가 아직 남았다면 50평 정도는 심어야한다. 그밖에 고추며, 들깨, 옥수수는 조금 넉넉히 심어야겠고, 오이, 호박, 토마토, 방울토마토 등도 밭이 넓으니 조금씩 더 심을 수 있다. 대충 목록을 적어보니 500평이라도 만만치 않을 듯 싶다. 퇴비 넣어주면서 밭 설계를 잘해야겠다.

 

주작물 : 콩, 고구마

작년에 비해 넉넉히 심을 것: 고추, 옥수수, 들깨

올 해 처음 도전하는 것: 감자

채소류: 상추, 오이, 가지, 호박, 부추, 열무, 배추, 무 등

과일류: 토마토, 방울토마토, 참외

 

500평

감자 - 50평

고구마 - 50평

고추 - 50평

옥수수 - 20평

들깨 - 20평

콩 - 200평

상추 - 2평

오이 - 5평

가지 - 2평

호박 - 5평

부추 - 1평

토마토 - 5평

방울토마토 - 5평

참외 - 10평

열무 - 2평

부추 - 1평

기타 야채 - 10평

여분 - 10평

지렁이 - 5평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4/30 22:49 2009/04/30 22:49
Ta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