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밭 만들기(5월 18일/맑고 바람 많음 7-24도)

 

주말마다 비가 오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오일 일하고 이틀 놀게 됐다. 지난주엔 주말 내내 비가 와서 쉬었고, 엊그제는 토요일만 비가 왔는데 그냥 일요일까지 놀았다. 급한 건 대충 다 심어놨고 이제 콩과 깨만 심으면 되기에 늑장을 부리는 셈이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고 한낮에도 그다지 햇볕이 따갑지 않아 일하기엔 좋은 날씨다. 드넓은 콩밭 만들기엔 딱이다. 해서 오늘은 하루 종일 콩밭 만드느라 괭이질이다. 잠깐잠깐 싹이 나왔나 살펴보고 또 잠깐잠깐 잡초도 제거하지만 주된 일은 괭이질이다.

 

깨 심다(5월 19일/맑음 11-27도)

 

생각지도 않게 봄비가 자주 온다. 남들보다는 다소 늦게 이것저것 심어야 하기 때문에 비가 오지 않았다면 물뜨랴, 심으랴 시간이 많이 걸렸을 테다. 그나마 다행이다. 모래 또 비가 내린다고 해서 그동안 미뤄두었던 깨와 콩을 심기로 했다. 해서 오늘은 아침엔 참깨를 오후엔 들깨를 심는다. 하루 종일 쭈그리고 앉아 깨알만한(?) 참깨며, 들깨를 심었더니 손목도 저리고 무릎도 아프다.

 

콩 세알을 심는 농부(5월 20일/흐림 13-27도)

 

할아버지와 손자가 밭에 콩을 심었어요.

손자는 땅에 구멍을 파고 콩 한 알을 묻었어요.

할아버지는 땅에 구멍을 파고 콩 세알을 묻었어요.

손자는 이상해서 할아버지에게 물었죠.

"할아버지, 왜 아깝게 한 구멍에 세알씩 넣으세요?"

할아버지는 여전히 땅에 구멍을 파고

콩 세알을 심으며 말했어요.

"얘야, 한 알은 땅에서 사는 벌레가 먹고

한 알은 하늘에 사는 새가 먹고

마지막 한 알은 싹이 나서 우리가 먹는 것이란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옛말 틀린 게 하나 없다. 둘 혹은 셋이었다면 한나절, 아니 두서너 시간이면 끝날 일을 혼자하려니 하루 종일이다. 한 사람이 구멍 파고 지나가면 뒤에 사람은 콩 넣고 덮고 하면 빠를 텐데 저만큼 구멍 파고 되돌아와 콩 넣고 덮고 하니 일이 더딜 수밖에. 또 지루하면 바꿔서 구멍 파고 콩 넣고 하면 되는데 이건 잠깐 그늘에 쉬는 것 밖에 다른 수가 없다. 힘도 들고 지루하기도 하고, 어제에 이어 연일 호미질이니 손목도 저리고, 고랑사이를 쭈그리고 다니니 무릎도 아프고, 비 소식만 아니면 쉬엄쉬엄할 터인데 그러지도 못한다. 결국 해 넘어갈 때까지 일하고서야 겨우 준비해간 콩을 모두 심을 수 있다.

 

물 고인 밭(5월 22일/맑은 후 흐림 14-24도)

 

밭 한편에 물이 차서 빠지지 않고 있다. 큰일이다. 지난주 이틀에 걸쳐 많은 비가 왔을 땐 괜찮았는데 어찌된 게 어제 하루 내린 비로 물이 찬 거다. 뭐가 문제일까. 아침나절 느긋하게 나오면서 고추 지주대로 쓸 대나무끝단만 몇 개만 가져와 당장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삽은커녕 괭이도 챙겨오지 않은 거다. 결국 멍하니 물 고인 밭만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 또 비가 온다고 하니 오늘 중으로 어떻게 하든 대충이라도 배수로를 정비해둬야 한다. 다행히 점심을 먹고 나니 해는 보이지 않고 먹구름만 잔뜩 끼어 있다. 서둘러 삽이며 괭이를 챙겨들고 밭으로 나가 물 빠질 길을 만드는데 이거야말로 임시방편이다. 아무래도 내일 비 그치고 나면 다시 물 고인 곳을 보아가며 배수로를 파야겠다.

 

마실돌이(5월 23일-24일/흐림 15-19도, 맑음 15-26도)

 

전업으로 농사만 짓는 이들에게 욕 들어 먹기 딱 맞는 소리겠지만 처음부터 할 수 있는 한 주중에만 일하고 주말에는 쉬기로 했다. 겨울 내 별 일 없어 놀기도 하지만 봄부터 가을까지 농사짓는 때에도 일에만 매달리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래야 쉬이 지치지 않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책을 읽기도 하고 짧지만 여행도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해서 어제와 오늘은 선선한 아침과 저녁에 잠깐씩 마실돌이겸 대나무끝단 여남은 개씩만 밖아 두고 왔다. 또 틈틈이 싹이 나기 시작한 감자 밭 제초작업만 조금씩 했다.

 

 

  <며칠 전부터 싹이 나기 시작한 채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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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5 16:01 2009/05/2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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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춘천이 시끌시끌하다. 오는 7월 10일 개통 예정인 서울-춘천간 고속도로 때문이다. 어머님이 의정부에 계시고 아버지가 서울에 사시니 고속도로가 생긴다는 소식은 우리들에게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 시끄러움이 영 거슬리는 건 왜일까. 통장, 반장까지 나서서 서명지를 돌리고, 연일 지역 뉴스에 보도가 되더니 급기야 며칠 전에는 도청 앞에서 대규모 집회까지 열리는 게 마땅치가 않으니 말이다.

 

시내 곳곳에 걸려 있는 플랭카드며, 반장이 들고 온 서명용지를 보면 고속도로 문제와 관련해 요란해 질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적혀있다, 한다. 그런데 이 이유들이란 게 꽤 그럴싸해 자칫 너도나도 휩쓸릴 법도 하다. 그리고 선거철, 신문과 방송이 경마 중계에 빠지듯 지역 여론 전체가 이런 이유들만을 여과 없이 내보내고 있어 이런 저런 찬성 목소리 외에는 전혀 다른 얘기들을 들을 수가 없다. 아마 그래서인지 더 신경질적 반응이 생긴 건 아닐까.

 

그렇다면 이렇게 영 마땅치 않고 신경질적이게 만든 그 이유들이란 게 무얼까. 한마디로 도로가 생기는 건 좋은데 책정된 통행료 6,240원이 너무 비싸다는 거다. 즉, 서울-춘천 고속도로가 민간자본을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건설되었는데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진 다른 고속도로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다는 얘기다. 그래서 제2영동고속도로 경기 광주-강원 원주 구간과 비슷한 4,000원 대로 요금을 낮추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혹여 요금이 낮아진 이유로 회사에 적자가 발생하면 그건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한다. 그동안 길이 좋지 않아 불편을 겪다 이제야 고속도로가 생겨 좀 편해질까 하는데 비싼 통행료 때문에 이용하지 못하면 있으나 마나한 거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인다.

 

<산허리를 뭉턱뭉턱 잘라내야 길이 열린다: 서울-춘천 고속도로 서종IC부근(서울-춘천 고속도로(주)>

 

얼핏 형평성만 따지고 들으면 수긍이 갈 법한 얘기다. 정부 예산으로 지어진 도로와의 통행료 비교는 제쳐놓고서라도 같은 방식으로 지어진 도로의 통행료하고도 많은 차이가 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또 그동안 늘 막히는 길 때문에 불편함을 겪었던 사람들에게 이제 와서 비싼 길 값 내고 다니라 하면 어찌 속는 느낌이 아닐까. 한편으론 이해할 만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무턱대고 통행료를 내리라는 건 영 아니올시다, 이다.

 

우선 비싼 통행료 문제를 보자. 사실 통행료가 이렇게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데에는 서울-춘천간 고속도로 건설이 민자방식으로 결정되면서부터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무슨 말인즉, 고속도로 건설비용이 높다는 이유로 민간사업장에게 이 일을 맡겨버린 이상 통행료와 관련해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즉, 통행료를 다소 비싸게 받든 싸게 받든 그건 전적으로 사업자가 결정할 부분이고 정부로서는 여론에 기대는 것 말고는 달리 어찌할 방도가 없다. 또 민간사업자는 가급적 빠른 시간 내에 투자비용을 회수해야 하는 입장인데, 통행료를 비싸게 한다 하더라도 당분간 서울-춘천간 고속도로를 대체할 다른 도로가 마땅치 않은 상황이므로 일정한 반대 여론이 있어도 밀어붙일 수 있는 입장이다. 게다가 정부로부터 고속도로 개통 후 15년 간 매년 실제 통행료 수입이 보장 기준 통행료 수입에 미달할 경우 그 손실분을 보전 받는다는 약속까지 받았기 때문에 비싼 통행료로 통행량이 적어져 수입이 다소 감소하더라도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상황이 이러한데도 막무가내 식으로 통행료만 낮추면 어찌될까. 물론 통행료 인하의 효과로 서울-춘천간 고속도로 이용 차량이 예측 통행량에 근접하거나 초과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늘어난 통행량에 따른 수익 증가는 고스란히 민간사업자에게 돌아간다. 그러나 통행료를 낮추었다고 해서 반드시 고속도로 이용자가 늘어난다고만 할 수 없다. 실제 서울-춘천간 고속도로의 경우 춘천 도심으로의 원활한 진입을 위해서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다시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해야 한다고 한다. 이밖에 다른 변수도 많다. 고속도로 개통에 따른 인구 유입이라든가 기업 이전 효과가 예측했던 것보다 크지 않을 경우, 춘천-양양 구간의 개통 지연 등등. 이런 상황은 최악의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통행료는 낮아진 상태에 통행량까지 예측 통행량보다 낮아짐으로써 결국 정부가 보전해줘야 할 손실만 더 커질 뿐인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경춘고속도로를 이용하든 이용하지 않든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민간사업자에게 바치는 셈이다.

 

결국 서울-춘천간 고속도로의 수혜자는 정부도, 춘천시민, 도로를 이용하는 이용자도 아니라 손실에 대한 걱정은 처음부터 하지 않아도 됐을 거대 건설 자본에게 있는 것이다. 그것이 비싼 통행료로 인한 수익 증대가 됐든 아니 비싼 통행료로 인해 적자가 생기든 말이다.

 

없던 길이 새로 생기면 아무래도 사람도, 돈도 어느 정도는 몰리게 되고, 그러면 집값도 오르고 땅값도 오르는 게 이 나라 현실이다. 그래서 더 있던 길도 넓히고, 없던 길은 만들고 필요 없는 길도 새로 내고, 다리 놓고, 터널 파고 그러는 거 아닌가. 그리고 거기에 덩달아 다들 대출이라도 껴서 집 사고 땅 사서 이제나 저제나 집값, 땅값 오르기를 기대하는 것 아닌가. 고속도로가 민자방식으로 생기는 지, 정부 예산이든 만들어지는 지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이 말이다. 자 이제 좀 솔직해지자.

 

애당초 민자방식으로 고속도로 만든다고 할 때는 가만히 있다가 지금에 와서야 통행료만을 문제 삼는 건, 그리고 이제 와서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외치는 건,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비싼 통행료 때문에 돈도, 사람도 오지 않으면 어쩔까, 그래서 집값, 땅값 오르지 않으면 어쩔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차 없는 사람들, 그래서 고속버스 타는 것 말고는 그 비싼 고속도로 이용할 일 없는 사람들, 길이 생겼다고 뭐라 이득 될 만한 게 없는 사람들, 에게 통행료를 함께 부담하자는 말이 영 마땅치 않고 신경질 나는 거다. 비싼 통행료. 자업자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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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0 13:10 2009/05/20 13:10

<죽음의 밥상> - 피터 싱어.짐 메이슨 지음/함규진 옮김

<“먹지마세요” GMO> - 마틴 티틀.킴벌리 월슨 지음/김은영 옮김

 

 

사용자 삽입 이미지1.

봄 농사로 바쁜 하루다. 퇴비 넣어주랴, 밭 갈아주랴, 이랑 만들랴, 눈코 뜰 새 없다. 특히나 비소식이라도 있으면 모종 사다 심으랴, 씨앗 뿌리랴, 그야말로 한 손이라도 아쉽기만 하다. 게다가 올 해 역시 작년과 마찬가지로 밭을 뒤늦게 구하는 바람에 남들보다 곱절은 바쁘다. 급한 마음이지만 서두른다고 드넓은 밭을 한 번에 다 채울 수는 없으니 일기예보에 귀를 쫑긋 세우면서 하나씩, 하나씩 해나가야 한다.

 

며칠 전엔 퇴비를 사러 인근 농협에 들렀다. 농지원부도 모르는 부재지주의 밭을 빌린 탓으로 농협 조합원 가격보다 1포대 당 200원이나 더 주고 퇴비를 사면서 한 참이나 속이 상해 있는데 고추며, 오이며, 호박 모종들이 왜 그리 자꾸 눈에 밟히는지. 아무래도 늦은 밭농사 준비로 마음이 급할 대로 급한 모양이다. 

     

드넓은 밭에 낑낑대며 퇴비를 다 뿌리고 나니 슬슬 여기엔 토마토며 오이를 심고, 저쪽엔 콩 두이랑에 고추 한 이랑을 섞어 심고, 조기엔 여름 내 먹을 옥수수, 저짝엔 겨울 내 먹을 고구마를 심을까 행복한 상상도 해본다. 의욕 넘치는 2년차 새내기 농부로서 조그맣게 비닐하우스 하나 지어 놓고 좋은 씨앗 골라 모종 길러 심고는 싶지만 내 밭이 아닌 이상 그것도 매년 이 밭 저 밭 기웃기웃하며 겨우겨우 밭을 구하는 신세에 그저 마음뿐이다. 허나 내 밭이 있다고 해서 그 꿈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밭작물들은 모종을 내서 옮겨 심어도 되는 것이 있고 씨앗을 뿌려야만 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조그맣게 텃밭농사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잘 아는 얘기일 게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모종을 내서 옮겨 심는 것도 씨앗을 심어 모종을 길러내는 것이니 쪽파나 감자와 같이 구근으로 심는 것을 빼면 모든 작물이 씨앗으로 번식을 하는 셈이다. 그러니 옛날부터 농부네들은 여름 내 땀 흘려 길러낸 작물을 수확하고 나면 가장 실한 것들만 따로 모아 다음 해에 쓸 종자를 만드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겠는가.

 

2.

어머니 49재 음식을 준비할 때였으니 벌써 3년 전 일이다. 동그랑땡이니 적을 만드느라 돼지고기를 만졌는데 전에 없이 빨간 두드러기가 몸 여기저기에 생기는 게 아닌가. 처음엔 그냥 고기가 상했나 싶기도 했지만 그 후로도 두 번인가 더 돼지고기를 접할 기회가,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 번은 입안에 넣었고 한 번은 역시 손에 대기만 했는데도 예의 그 두드러기가 또 나타났다. 이를 어째, 별수 없어 이번엔 한의원엘 찾았는데, 체질이 바뀌었으니 고기를 끊던가, 약을 먹던가, 하란다.

 

쩝. 하지만 어쩌랴. 애당초 시골로 내려가 살게 되면 ‘공산품 고기는 그만 먹어야지’ 하고 맘먹고 있었던 차라 아예 잘 됐다 싶어 그 기회로 육고기를 멀리하기 시작 했다. 그리고는 제사상에 빠지지 않고 올라왔으나 이제껏 관심 밖에 머물러 있던 온갖 나물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때맞춰 봄나물까지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맛을 들이기에는 제격일 것 같았고, 된장에, 고추장에, 초장에, 들기름에, 이렇게 저렇게 맛을 내니 어느새 나물 맛에 흠뻑 빠지게 됐다.

 

그 이후로 어찌된 게 가끔은 생선 한, 두 마리를 밥상에 올리기도 하고, 아직은 멸치국수와 초밥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데도 채식주의자이냐, 묻는 이들이 더러 있다. 아마도 소나 돼지, 양과 같은 붉은 살코기는 먹지 않으나 해산물과 물고기는 먹는 페스코 베지테리안임을 확인하는 것이겠지만 그건 아니다, 라고 말한다. 종교적이거나 문화적으로 혹은 건강상의 이유로 채식주의자가 되는 경우가 있기도 하겠지만 환경적이고 인권적이어야 진정한 채식주의인 것 같아서다.

 

3.

다소 생소하지만 매우 논쟁적인 ‘종(種)차별주의자’라는 용어로 잘 알려진 피터 싱어와 농부이자 변호사이며 싱어와 함께 <동물 농장(Animal Factories)>라는 책을 내기도 했던 짐 메이슨은 두 번째로 펴낸 <죽음의 밥상(The Ethics of What We Eat)>을 통해 이전의 저작에서와 같이 공장형 농장 시스템 속에서 비윤리적이로 수태, 사육, 도살되는 동물들을 밥상에 올리는 것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가,를 묻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들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 인근 대형 마트에서 먹을거리를 구매하는 전형적인 미국식 가족, 가족의 건강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먹을거리를 구매하는 다른 한 가족, 그리고 가장 엄격하게 윤리적인 기준을 지키며 오직 채소만을 먹는 베건 가족의 식탁에 대한 그 길고 잔인한 여정에 대한 논쟁적 탐험에 나선다.

 

부리가 잘린 채 몸을 움직이기도 힘든 사육장에서 길러지다 한 시간 만에 7,200마리를 도살할 수 있는 도살라인에 억지로 밀어 넣어지는 닭. 일생에 한 번도 바깥나들이를 못하며, 풀밭을 밟아보지도 못한 채 콘크리트와 강철로 지어진 축사에 갇혀 성장촉진제와 항생제를 맞으며 크는 돼지. 접시쓰레기(레스토랑의 고기요리 찌꺼기), 닭고기와 돼지고기, 닭장쓰레기(닭똥, 닭 시체, 닭털, 먹다 남은 모이 등등), 그리고 소의 피와 지방이 포함된 사료를 먹고 키워지는 소.

 

대형 마트에서 일주일치 음식을 한꺼번에 쇼핑하고, 패스트푸드점에서 외식을 즐기는 그리고 닭고기와 돼지고기를 즐겨먹는 평범한 현대인의 식단 속에 감춰진 진실들을 들춰내는 것에만 멈췄다면 저자들이 서문에 썼듯이 이전의 저작과 별반 다르지 않은, 단순한 수정.증보에 지나니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싱어와 메이슨 두 저자들은 최근 불고 있는 유기농 열풍, 공정무역(fair trad) 운동, 로컬푸드(local food), 그리고 여러 윤리적 소비주의(ethical consumerism) 등등 더 넓은 쟁점들에 대해 시선을 넓히고 있어,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지에 대해 윤리학적인 접근을 하고자 하는 이들에 부응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4.

서구 사회 어디에서나 관습적으로든 법적으로든 소유권을 인정하는 제도가 갖춰져 있고 사람들은 개인의 소유권을 완벽하게 확립하고 강화하기 위한 투명한 메카니즘을 만드는 일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이 소유권이 하나의 공동체가 보여준 인내와 수 세대에 걸친 집단적인 노력의 소산이었던 식물이나 종자와 같은 자연의 산물들에까지 딱지를 붙일 수 있었던 건 무엇 때문일까?

 

굶주림 혹은 기아의 문제는 작물의 수확량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술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사회, 정치적인 문제라는 점은 이미 1960년대 거대 화학 기업들, 영향력 있는 재단들, 그리고 정부가 나서서 녹색혁명(green revolution)을 주도했던 때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 공학 기업들은 기아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여전히 생산량을 늘려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사실이 그렇다면 이들의 말대로 막대한 양의 식량을 생산하도록, 그냥 그들이 모든 사람들을 먹여 살릴 만큼 생산하도록 놓아두어야 하지 않을까?

 

유전공학의 사회적, 윤리적 의미를 공론화하기 위해 의식 있는 과학자, 의사, 활동가들이 함께 결성한 ‘책임 있는 유전학 위원회(Council for Responsible Genetics: CRG)’ 의장을 맡고 있는 마틴 티틀과 역시 이 위원회 위원이기도 했으며 현재는 그린피스에서 생명공학기술과 관련된 시민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킴벌리 윌슨은 이러한 질문들의 밑바탕에는 바로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 두 저자들은 식품과 관련된 유전자 조작 혁명의 모든 것을 자세히 파헤치고 있다. 유전공학이 작동하는 방식, 유전자를 조작해 만들어진 식품들의 위험성, 이러한 식품들로부터 이익을 얻는 자들은 누구이며 손해를 보는 이들은 누구인지, 굶주린 이 세계를 먹여 살릴 것이라는 거대 다국적 곡물 기업의 망언, 생명을 조작하는 행위가 가지는 윤리적이고 정신적인 측면까지.

 

하지만 <“먹지마세요” GMO>가 앞서의 책과 마찬가지로 단지 유전자 조직 식품의 모든 것만을 알려주는 것에 멈추었다면 GMO에 대한 불편한 진실의 폭로 혹은 유전공학에 대한 위기의식의 환기에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들은 놀라운 힘과 정당한 윤리적 권위를 지닌 평범한 시민들이 행동에 나선다면 안전한 먹을거리를 되찾을 수 있음을 역설함으로써 자칫 무력감에 빠질 수 있는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일상생활에서, 각자의 공동체에서 인정된 유기농 제품을 사고, 자신이 먹을 것은 스스로 기르고, 제철 식품을 구입하고, 편향되지 않은 정보를 얻기 위해 약간의 노력을 기울이고, 지역 단체 혹은 전국 규모의 단체에 가입하는 자그마한 실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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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6 15:04 2009/05/16 15:04

고추심기 2

from 09년 만천리 2009/05/16 12:25

고추 심기 - 셋째 날(5월 13일/맑음 10-24도)

 

어제, 그제 내린 비로 간만에 쉴 수 있었다. 겨울 내 빈둥거리다 닥쳐서 준비한 봄 농사로 몸이 파김치가 됐는데 이틀을 그렇게 쉬니 다시 활력이 생긴다.

 

그렇다고 이틀 내내 집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밭을 갈아 주었던 아저씨도, 위에 밭 아저씨도, 밭 한 쪽이 물이 빠지지 않는다는 얘기를 했기에 배수로를 볼 겸 잠시 밭에 나갔다 오긴 했다. 이틀 내 비가 오긴 했지만 양이 많지 않아서인지 다행히 물이 고이거나 이랑이 무너진 곳은 없었다. 마음이 놓이기는 하지만 장마가 오기 전에 배수로 정비를 하긴 해야겠다.

 

토요일에 또 비소식이다. 오늘과 내일, 못 다 심은 고추 모종도 심고 열무며 근대며 채소들 씨앗, 어제 도착한 옥수수 씨앗들을 심어야한다. 해서 오늘은 또 신동농협까지 가서 고추 모종을 사다 선선한 아침나절에 심는다. 그리고 근대, 열무, 치커리도 함께.

 

* 고추 모종 40개 - 4,800원

 

고추 심기 - 마지막 날(5월 14일/맑음 9-27도)

 

고추 심기는 오늘로 끝이다. 겨우 300주도 되지 않은 고추를 심는데 근 일주일 가까이 걸렸으니 꽤나 시간을 많이 잡아먹은 셈이다. 혼자 일하는 것도 일하는 거지만 자전거로 실어 나를 수 있는 양이 한정되어 있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심어야 할 고추가 많지 않아 피망이며 가지며 맷돌호박 모종도 함께 샀다. 하지만 계획했던 수량만큼 사지는 못했는데 이마저 내일부터는 아예 사지를 못한다. 값도 값이지만 품질도 나아 보여 그 동안 농협에서 사왔는데 이젠 중앙시장에서 구해야 한다. 물론 내일 아침 한번 정도면 거의 웬만한 건 다 심으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저녁 해질녘엔 들깨, 참깨, 고구마, 옥수수 심을 곳에 남겨 둔 퇴비도 뿌려주고 먼저 심은 곳에 듬성듬성 자라난 잡초도 뽑아주니 얼추 밭 모양이 눈에 들어온다. 돌아오는 길에 토마토, 오이, 호박에 세워줄 지주대로 쓰기 위해 각목 몇 개 주어왔다.

 

* 고추 모종 20개 - 2,400원

* 피망(노랑) 4개 - 2,000원

* 늙은 호박 4개 - ·1,000원

* 참외 2개 - 5,00원

* 가지 4개 - 1,000원

 

괭이질(5월 15일/흐림 14-22도)

 

밭농사에는 괭이와 호미, 이 둘이면 웬만한 건 다 된다. 이랑을 만들 땐 괭이가 모종을 심거나 잡초를 제거할 땐 호미가, 즉 허리를 굽혀야 할 일엔 호미를, 허리를 펴서 일을 해야 할 땐 괭이를 쓰는 것이다. 그러니 따로 경운을 하지 않는다면 괭이와 호미, 이걸로 일은 끝이다.

 

오늘은 아침에 잠깐 모종 심은 거 빼곤 하루 종일 괭이질이다. 대충 급한 것들은 다 심었으니 이제 콩 밭과 들깨, 참깨 밭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해서 밭갈이 때 트랙터가 만들어 놓은 이랑을 허물기도 하고 이쪽저쪽 이랑들을 하나로 합쳐 새 이랑을 만들기도 하고 일이 많다. 그래도 내일 비 소식 때문인지 해가 들지도 않고 덥지 않아 다행이다. 내일과 모래 이틀 또 쉬고 한 사나흘 괭이질이면 얼추 다 될 듯도 하다.

 

* 피망, 아삭이 고추 모종 각 4개, 8개 - 4,000원(종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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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6 12:25 2009/05/16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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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경내에 들어서기 전 만나게 되는 승선교와 강선루>

 

첫째 날, 해가 꼴까닥 넘어갈 때까지 정신없이 선암사로(2006년 3월 25일)

 

정말 해가 꼴까닥 넘어갈 때까지 정신없이 걷고 나서야 겨우 선암사에 도착했다. 도중에 낙안읍성에서 한 시간 정도 머물며 이것저것 구경하느라 시간을 보내기는 했어도 시간이 이리 많이 걸릴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덕분에 길을 걷는 재미를 느끼지도 못했고 제법 높은 고개를 두 개나 넘으면서 제대로 쉬지도 않았다. 게다가 순천시에서 만든 관광안내도가 길잡이 노릇을 해주기는 하지만 걷고 있는 이 길이 오르막길인지 내리막길인지, 얼마나 왔는지 얼마나 남았는지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 무척이나 답답했다.

 

후에「청연」이라는 영화 속에서 다시 볼 수 있었던 낙안읍성은 마치 잘 꾸며진 세트장 같았다. 재작년 제천 어디에선가 보았던 드라마 촬영장과 역시 재작년 부안 채석강 인근에서 보았던 불멸의 어쩌구처럼. 그래도 여느 세트장과는 달리 지금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들이 있어 그런지 ‘대체 이런델 왜 구경 오는 거지?’ 라는 생각보다는 다른 느낌을 주기는 한데 딱히 그게 뭐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휴일을 맞아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제대로 둘러보지도 못하고 사람들을 피해 성곽만 따라 걸으며 잠깐 잠깐씩 기웃거렸는데도 한 시간이 금새 지난다. 해서 천연염색을 한 갖가지 물품들을 파는 곳에서 따가운 햇살을 가릴 요량으로 모자를 하나씩 사서 머리에 얹고는 다시 길을 나선다.

 

읍성을 지나자마자 고개다. 관광안내도를 보니 별다른 표시가 없어 금방 모퉁이만 돌면 내리막길이겠거니 하면서 걸은 게 꽤 됐는데도 아직 한참이다. 쉬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고 발걸음은 무겁지만 내리막길에서 쉬어가자며 고갯마루까지 쉼 없이 오른다.

 

두 번째, 율치재다. 헌데 이 건 좀 전에 넘었던 고개와는 또 다르다. 아래에서 봐도 만만치 않은 높이고 경사도 가파르다. 다시 안내도를 펼쳐드는데 이것 역시 어떤 표시도 없다. 아마도 차를 타고 여행하는 이들에게는 여기가 고개인지 고개면 얼마나 높은 고개인지가 별 필요가 없겠지. 길만이 아니라 관광안내도 역시 걸어서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인색하다는 것을 확인한다. 하지만 어쩌랴. 마음을 단단히 먹는 수밖에. 하지만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데 이건 매 앞에 장사 없는 격이다. 차길을 벗어나 산길을 오르기도 했지만 고갯마루까지는 숨을 헉헉거리며 그렇게 한 참을 더 올라야 했다.

 

죽학삼거리까지는 줄곧 내리막길이다. 고개를 넘자 왼편으로 호수도 보이나 크기도 작고 볼 것도 그다지 없다. 다만 길 양편으로 죽(竹)이 많아 틈틈이 죽 구경에 한눈을 판다. 그러고 보니 간간이 마주했던 마을들 이름에 ‘죽’ 한 글자씩은 꼭 들어간 것 같으니 사방이 ‘竹’인가 보다.

 

선암사 입구에 도착하니 해는 이미 산 너머로 넘어간지 한참이고 길게 헤드라이트를 켜고 지나는 차 이외에는 오가는 사람도 없다. 어둠 속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서둘러 묵을 곳을 찾아 나서는데 걷기여행 중에 처음 보는 찜질방까지 있어 그리 어렵지 않다.

  

       

<선암사 경내에서 만난 풍경>

 

둘째 날, 선암사 뒤깐구경과 굴목재 오르기(2006년 3월 26일)

 

오늘은 요전에 초당과 백련사를 이어주는 만덕산 오솔길을 걸었듯이 선암사와 송광사를 이어주는 조계산을 넘는 오솔길을 걸어야 한다. 거리상으로는 6.8Km밖에 되지 않으나 선암사 굴목재와 송광사 굴목재, 이 두 고개를 넘어야 하므로 오솔길을 걷는다기보다는 등산을 한다 해야 옳을 듯한데, 등산화도 준비하지 못해 걱정이다.

 

승선교, 달마전, 원통전 등을 품고 있는 단아한 자태의 선암사는 어느새 터뜨린 벚꽃과 목련들의 꽃망울들로 아름다움 그 자체다. 또 이름 모를 나무들에 돋아난 파릇파릇한 새순들은 또 어떤가. 그저 넋을 놓고 바라볼 수밖에. 그러다 돌담길을 걸으며 한껏 봄 내음을 맡기도 한다. 그리고 볼일이 없을지라도 세상사를 잊기에 알맞은 곳이지만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진 선암사 ‘뒤깐’도 둘러본다. 하지만 뒤깐은 본래의 용도보다는 사람들의 사진기와 비디오카메라 속에만 담겨지고 있어 왠지 모르게 씁쓸하다. 송광사 스님들, 이제 어디서 해우(解憂)를 하실런지.

 

선암사 뒤편으로 이어진 대나무 숲과 편백나무 숲을 지나니 오르막길이다. 마음을 다잡고, 신발 끈도 단단히 조여 묶고 산길을 오르기 시작하는데 30분도 채 안돼서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내려오는 사람들 이야기로는 조금만 오르면 굴목재 정상이라고 하는데 아래에서 보니 가파른 오르막길의 끝이 보이질 않는다. 시간은 충분한 것 같은데 아무래도 준비를 너무 하지 않았나 보다.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기를 쓰고 오르기보다는 내려갈 길을 걱정하고 있으니.

 

결국 1시간 넘게 올랐던 길을 다시 되짚어 내려왔다. 무리해서 더 가다가는 무릎과 발목이 고장 날 듯해서다. 아쉽지만 조계산 등산은 다음번으로 미룰 수밖에. 어제 하루해가 꼴까닥 넘어갈 때까지 정신없이 걸었던 길을 버스를 타고 거꾸로 거슬러 순천에 도착하니 어느새 해가 저물고 있다. 서울 가는 버스는 있으려나?

 

* 다섯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 첫째 날 : 벌교에서 낙안읍성까지는 평탄하고 한가로운 길이나 이후 선암사까지는 두 개의 큰 고개를 넘어야 한다. 하지만 고개 너머로는 주암호를 끼고 걷는 매우 호젓한 길이다. 벌교에서 죽학삼거리까지는 857번 지방도로를 따라 걷는다. 걸은 시간 약 7시간. 20km.

- 둘째 날 : 선암사와 송광사를 이어주는 조계산의 선암사굴목재까지 산행. 걸은 시간 약 4시간.

 

* 가고, 오고

서울에서 벌교까지는 이른 아침부터 부산을 떨지 않으면 하루를 그냥 다 길 위에서 보낼 수 있으니 가능하면 강남터미널에서 6시 10분에 출발하는 순천행 첫차 또는 영등포에서 07시에 출발하는 무궁화호 열차를 이용해야 한다. 가격은 우등고속이 26,200원, 무궁화호는 22,000원이고 시간은 열차보다 고속버스가 30분 가량 빠른데 대략 4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우리는 서두른다고 했는데도 첫차를 놓치고 6시 40분에 출발하는 우등고속버스를 이용했다. 순천에서 벌교는 터미널 앞 또는 기차역 앞에서 수시로 오가는 시내버스를, 선암사에서 순천은 선암사 입구에서 출발하는 직행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 잠잘 곳

낙안읍성에는 초가집에서 체험민박을 할 수 있다. 선암사 입구는 요란한 관광지의 모습을 갖고 있지 않으나 민박, 음식점 등이 다수 있고,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찜질방도 하나 있다. 벌교에서 선암사까지 가는 길에는 읍성 주변을 제외하고는 음식점은커녕 변변한 슈퍼하나 찾기 힘드니 생수나 간식거리는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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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2 11:10 2009/05/12 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