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이라면 좀체 가까이 하지 않으면서도 곧잘 챙겨보는 몇 개의 프로그램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매주 토요일 느지막한 저녁 시간에 방송되는 ‘다큐멘터리 3일’이다. 남들이 보기엔 그닥 특별하지도 않는 소소한 일상이나 혹은 곧 사라지게 될 어떤 모습들을 구성에 얽매이지 않고 담백하게 보여주는 이 프로그램은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어느새 그 일상, 그 거리에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데에 그 매력이 있다. 이날 방송도 그랬다. 낮에 잠깐 집 뒤 오솔길을 따라 10여분 오르면 만나게 되는 시립도서관에서 최종규의 <모든 책은 헌책이다>를 빌려와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구르며 헌 책방 나들이를 하다 잠깐 텔레비전을 켰는데, 부산 보수동 헌책방 거리가 화면에 잡힌 것이다. 반갑기 그지없다.

                                                                                                                                          

 

“고르다 보면 꼭 한권씩 눈에 띄는 책이 있거든요. 그럼 그걸 사면 소중하죠. 밥을 안 먹어도 그걸 사면 배부르고요.” ‘책갈피 사이 인생이 머무는 풍경-부산 보수동 책방 골목/다큐멘터리 3일’

 

낯선 길을 걸으면서도 어디선가 본 듯한 풍경이라는 느낌이 이럴까. 돌이켜보면 꼭 일 년 전, 꽤 오랫동안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그래도 느닷없이 춘천으로 이사를 하기로 하고 서둘러 이것저것 정리를 하는 바쁜 와중에도 낙성대며, 신림동이며, 신촌, 청계천, 서대문으로 헌책방 나들이를 나섰던 모습이 겹쳐진다. 거리상으로야 100km도 안되고 시간상으로도 2시간이면 올 수 있는 거리지만 아무래도 서울 출타는커녕 일부러라도 헌책방에 오기는 어려울 듯싶어 마음에 담아두려 부러 시간을 냈던 모습이 말이다. 그리고 그 속에 어디선가 본 듯한 풍경, 낙성대 전철역, 그리고 [흙서점].

 

“<흙서점>은 책방이 썩 넓은 곳은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밭(분야) 책을 많이 꽂아 둘 수는 없지만, 좁은 자리에 놓는다고 해도 그 밭 책을 가볍게 여기는 게 아니라고 해요. 꽤나 많은 책이 들락거리기에 찾을 만한 책은 웬만큼 찾고 즐길 수 있답니다. 자리는 찾는 사람이 많고, 팔리는 책은 많으니까요.” <모든 책은 헌책이다> p.246

 

책표지 안쪽을 보니 ‘2008.3.5 낙성대 흙서점’라고 쓰여 있다. 그러고 보니 꼬박 1년이나 책꽂이에 꽂혀 있었던 셈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첫 느낌은 책의 제목 때문인지 여행 책인 양 싶다. <보거를 찾아 떠난 7일간의 특별한 여행>. ‘파리의 택시운전사’로 유명한 홍세화가 옮겼는데 적장 지은이는 낯설다. 질베르 시누에. 내 기억으론 하도 호들갑을 떨어 대서 고작 ‘Y2K’로밖에 남지 않은, 새천년, 새시기의 첫 해에 쓰였고, 우리나라엔 한 해 뒤인 2001년에 나왔으니 꽤나 오래된 책이다. 게다가 초판본이어서인지 책장도 조금은 누렇다. 하지만 여기저기 전에 읽었던 이가 남겨둔 밑줄을 빼면 새 책이나 다름없는데다 여느 책보다 크기도 작고 페이지 수도 많지 않아 손에 잘 잡힌다. 다만 파리 교외 깡마른 중국인에게서 산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떠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일주일간의 ‘여행’이 결코 유쾌하지 않아 오래도록 책을 붙들게 만든다.

 

“대부분의 실험실들은 자기들의 특허권 옹호를 강조하면서 가난한 환자들은 도저히 구매할 수 없는 약값을 정해 놓고 있다. 약이 상업화되려면 시장이 커야 할 뿐만 아니라 돈을 벌어주어야만 한다. 그것도 아주 빨리. 제약회사들은 미리 가격을 정해 놓고, 증권 시장에서 시세가 오르게 할 시장들만 선정할 뿐이다.” <보거를 찾아 떠난 7일간의 특별한 여행> p. 92 '수요일-루시가 다이아몬드와 함께 하늘에 있네.

 

“리틀톤에서 일어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가상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 이미 출생 인종, 신체적 특징, 즉 눈과 머리의 색깔, 신장, 혈액형 등에 따라 난세포 또는 정액을 선택할 수 있는 ‘목록’이 존재한다. 그밖에 제공자들의 건강 상태와 병치레 경력, 지능지수, 교육 수준에 따라서도 선택할 수 있다. 벌써 그 ‘목록’들은 국립 수정 등기소의 목록처럼 인터넷 망에 올라 있다.” <보거를 찾아 떠난 7일간의 특별한 여행> p. 145. 토요일-네가 어머니의 가슴에 칼을 꽂기 위하여.

 

종종 새것 보다 오래된 것이 더 끌릴 때가 있다. 애주가에게 묵은 술이 깊은 맛을 주고, 1,000만 화소에서 맛볼 수 없는 기다림을 필름 카메라가 줄 때가 그렇다. 막 택배로 도착한 새 책이 내는 잉크냄새보다는 도서관에서 혹은 헌책방에서 풍겨오는 책 냄새가 좋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윤에 쫓겨, 오로지 지배의 대상이 대어 죽어가는 자연, 산업국들의 이기주의로 인한 인간성 파괴, 공동체의 해체와 같은 오래된 질문들은 더 이상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끌지 못한다. 오래된 것은 오래된 만큼 쉽게, 깨끗이 잊힐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로인해 우리의 ‘보거’는 머리가 세 개고 꼬리는 뱀의 꼬리를 닮은 개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5/25 22:40 2009/05/25 22:40

콩밭 만들기(5월 18일/맑고 바람 많음 7-24도)

 

주말마다 비가 오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오일 일하고 이틀 놀게 됐다. 지난주엔 주말 내내 비가 와서 쉬었고, 엊그제는 토요일만 비가 왔는데 그냥 일요일까지 놀았다. 급한 건 대충 다 심어놨고 이제 콩과 깨만 심으면 되기에 늑장을 부리는 셈이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고 한낮에도 그다지 햇볕이 따갑지 않아 일하기엔 좋은 날씨다. 드넓은 콩밭 만들기엔 딱이다. 해서 오늘은 하루 종일 콩밭 만드느라 괭이질이다. 잠깐잠깐 싹이 나왔나 살펴보고 또 잠깐잠깐 잡초도 제거하지만 주된 일은 괭이질이다.

 

깨 심다(5월 19일/맑음 11-27도)

 

생각지도 않게 봄비가 자주 온다. 남들보다는 다소 늦게 이것저것 심어야 하기 때문에 비가 오지 않았다면 물뜨랴, 심으랴 시간이 많이 걸렸을 테다. 그나마 다행이다. 모래 또 비가 내린다고 해서 그동안 미뤄두었던 깨와 콩을 심기로 했다. 해서 오늘은 아침엔 참깨를 오후엔 들깨를 심는다. 하루 종일 쭈그리고 앉아 깨알만한(?) 참깨며, 들깨를 심었더니 손목도 저리고 무릎도 아프다.

 

콩 세알을 심는 농부(5월 20일/흐림 13-27도)

 

할아버지와 손자가 밭에 콩을 심었어요.

손자는 땅에 구멍을 파고 콩 한 알을 묻었어요.

할아버지는 땅에 구멍을 파고 콩 세알을 묻었어요.

손자는 이상해서 할아버지에게 물었죠.

"할아버지, 왜 아깝게 한 구멍에 세알씩 넣으세요?"

할아버지는 여전히 땅에 구멍을 파고

콩 세알을 심으며 말했어요.

"얘야, 한 알은 땅에서 사는 벌레가 먹고

한 알은 하늘에 사는 새가 먹고

마지막 한 알은 싹이 나서 우리가 먹는 것이란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옛말 틀린 게 하나 없다. 둘 혹은 셋이었다면 한나절, 아니 두서너 시간이면 끝날 일을 혼자하려니 하루 종일이다. 한 사람이 구멍 파고 지나가면 뒤에 사람은 콩 넣고 덮고 하면 빠를 텐데 저만큼 구멍 파고 되돌아와 콩 넣고 덮고 하니 일이 더딜 수밖에. 또 지루하면 바꿔서 구멍 파고 콩 넣고 하면 되는데 이건 잠깐 그늘에 쉬는 것 밖에 다른 수가 없다. 힘도 들고 지루하기도 하고, 어제에 이어 연일 호미질이니 손목도 저리고, 고랑사이를 쭈그리고 다니니 무릎도 아프고, 비 소식만 아니면 쉬엄쉬엄할 터인데 그러지도 못한다. 결국 해 넘어갈 때까지 일하고서야 겨우 준비해간 콩을 모두 심을 수 있다.

 

물 고인 밭(5월 22일/맑은 후 흐림 14-24도)

 

밭 한편에 물이 차서 빠지지 않고 있다. 큰일이다. 지난주 이틀에 걸쳐 많은 비가 왔을 땐 괜찮았는데 어찌된 게 어제 하루 내린 비로 물이 찬 거다. 뭐가 문제일까. 아침나절 느긋하게 나오면서 고추 지주대로 쓸 대나무끝단만 몇 개만 가져와 당장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삽은커녕 괭이도 챙겨오지 않은 거다. 결국 멍하니 물 고인 밭만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 또 비가 온다고 하니 오늘 중으로 어떻게 하든 대충이라도 배수로를 정비해둬야 한다. 다행히 점심을 먹고 나니 해는 보이지 않고 먹구름만 잔뜩 끼어 있다. 서둘러 삽이며 괭이를 챙겨들고 밭으로 나가 물 빠질 길을 만드는데 이거야말로 임시방편이다. 아무래도 내일 비 그치고 나면 다시 물 고인 곳을 보아가며 배수로를 파야겠다.

 

마실돌이(5월 23일-24일/흐림 15-19도, 맑음 15-26도)

 

전업으로 농사만 짓는 이들에게 욕 들어 먹기 딱 맞는 소리겠지만 처음부터 할 수 있는 한 주중에만 일하고 주말에는 쉬기로 했다. 겨울 내 별 일 없어 놀기도 하지만 봄부터 가을까지 농사짓는 때에도 일에만 매달리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래야 쉬이 지치지 않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책을 읽기도 하고 짧지만 여행도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해서 어제와 오늘은 선선한 아침과 저녁에 잠깐씩 마실돌이겸 대나무끝단 여남은 개씩만 밖아 두고 왔다. 또 틈틈이 싹이 나기 시작한 감자 밭 제초작업만 조금씩 했다.

 

 

  <며칠 전부터 싹이 나기 시작한 채소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5/25 16:01 2009/05/25 16:01
Tag //

요즘 춘천이 시끌시끌하다. 오는 7월 10일 개통 예정인 서울-춘천간 고속도로 때문이다. 어머님이 의정부에 계시고 아버지가 서울에 사시니 고속도로가 생긴다는 소식은 우리들에게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 시끄러움이 영 거슬리는 건 왜일까. 통장, 반장까지 나서서 서명지를 돌리고, 연일 지역 뉴스에 보도가 되더니 급기야 며칠 전에는 도청 앞에서 대규모 집회까지 열리는 게 마땅치가 않으니 말이다.

 

시내 곳곳에 걸려 있는 플랭카드며, 반장이 들고 온 서명용지를 보면 고속도로 문제와 관련해 요란해 질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적혀있다, 한다. 그런데 이 이유들이란 게 꽤 그럴싸해 자칫 너도나도 휩쓸릴 법도 하다. 그리고 선거철, 신문과 방송이 경마 중계에 빠지듯 지역 여론 전체가 이런 이유들만을 여과 없이 내보내고 있어 이런 저런 찬성 목소리 외에는 전혀 다른 얘기들을 들을 수가 없다. 아마 그래서인지 더 신경질적 반응이 생긴 건 아닐까.

 

그렇다면 이렇게 영 마땅치 않고 신경질적이게 만든 그 이유들이란 게 무얼까. 한마디로 도로가 생기는 건 좋은데 책정된 통행료 6,240원이 너무 비싸다는 거다. 즉, 서울-춘천 고속도로가 민간자본을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건설되었는데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진 다른 고속도로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다는 얘기다. 그래서 제2영동고속도로 경기 광주-강원 원주 구간과 비슷한 4,000원 대로 요금을 낮추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혹여 요금이 낮아진 이유로 회사에 적자가 발생하면 그건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한다. 그동안 길이 좋지 않아 불편을 겪다 이제야 고속도로가 생겨 좀 편해질까 하는데 비싼 통행료 때문에 이용하지 못하면 있으나 마나한 거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인다.

 

<산허리를 뭉턱뭉턱 잘라내야 길이 열린다: 서울-춘천 고속도로 서종IC부근(서울-춘천 고속도로(주)>

 

얼핏 형평성만 따지고 들으면 수긍이 갈 법한 얘기다. 정부 예산으로 지어진 도로와의 통행료 비교는 제쳐놓고서라도 같은 방식으로 지어진 도로의 통행료하고도 많은 차이가 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또 그동안 늘 막히는 길 때문에 불편함을 겪었던 사람들에게 이제 와서 비싼 길 값 내고 다니라 하면 어찌 속는 느낌이 아닐까. 한편으론 이해할 만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무턱대고 통행료를 내리라는 건 영 아니올시다, 이다.

 

우선 비싼 통행료 문제를 보자. 사실 통행료가 이렇게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데에는 서울-춘천간 고속도로 건설이 민자방식으로 결정되면서부터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무슨 말인즉, 고속도로 건설비용이 높다는 이유로 민간사업장에게 이 일을 맡겨버린 이상 통행료와 관련해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즉, 통행료를 다소 비싸게 받든 싸게 받든 그건 전적으로 사업자가 결정할 부분이고 정부로서는 여론에 기대는 것 말고는 달리 어찌할 방도가 없다. 또 민간사업자는 가급적 빠른 시간 내에 투자비용을 회수해야 하는 입장인데, 통행료를 비싸게 한다 하더라도 당분간 서울-춘천간 고속도로를 대체할 다른 도로가 마땅치 않은 상황이므로 일정한 반대 여론이 있어도 밀어붙일 수 있는 입장이다. 게다가 정부로부터 고속도로 개통 후 15년 간 매년 실제 통행료 수입이 보장 기준 통행료 수입에 미달할 경우 그 손실분을 보전 받는다는 약속까지 받았기 때문에 비싼 통행료로 통행량이 적어져 수입이 다소 감소하더라도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상황이 이러한데도 막무가내 식으로 통행료만 낮추면 어찌될까. 물론 통행료 인하의 효과로 서울-춘천간 고속도로 이용 차량이 예측 통행량에 근접하거나 초과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늘어난 통행량에 따른 수익 증가는 고스란히 민간사업자에게 돌아간다. 그러나 통행료를 낮추었다고 해서 반드시 고속도로 이용자가 늘어난다고만 할 수 없다. 실제 서울-춘천간 고속도로의 경우 춘천 도심으로의 원활한 진입을 위해서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다시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해야 한다고 한다. 이밖에 다른 변수도 많다. 고속도로 개통에 따른 인구 유입이라든가 기업 이전 효과가 예측했던 것보다 크지 않을 경우, 춘천-양양 구간의 개통 지연 등등. 이런 상황은 최악의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통행료는 낮아진 상태에 통행량까지 예측 통행량보다 낮아짐으로써 결국 정부가 보전해줘야 할 손실만 더 커질 뿐인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경춘고속도로를 이용하든 이용하지 않든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민간사업자에게 바치는 셈이다.

 

결국 서울-춘천간 고속도로의 수혜자는 정부도, 춘천시민, 도로를 이용하는 이용자도 아니라 손실에 대한 걱정은 처음부터 하지 않아도 됐을 거대 건설 자본에게 있는 것이다. 그것이 비싼 통행료로 인한 수익 증대가 됐든 아니 비싼 통행료로 인해 적자가 생기든 말이다.

 

없던 길이 새로 생기면 아무래도 사람도, 돈도 어느 정도는 몰리게 되고, 그러면 집값도 오르고 땅값도 오르는 게 이 나라 현실이다. 그래서 더 있던 길도 넓히고, 없던 길은 만들고 필요 없는 길도 새로 내고, 다리 놓고, 터널 파고 그러는 거 아닌가. 그리고 거기에 덩달아 다들 대출이라도 껴서 집 사고 땅 사서 이제나 저제나 집값, 땅값 오르기를 기대하는 것 아닌가. 고속도로가 민자방식으로 생기는 지, 정부 예산이든 만들어지는 지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이 말이다. 자 이제 좀 솔직해지자.

 

애당초 민자방식으로 고속도로 만든다고 할 때는 가만히 있다가 지금에 와서야 통행료만을 문제 삼는 건, 그리고 이제 와서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외치는 건,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비싼 통행료 때문에 돈도, 사람도 오지 않으면 어쩔까, 그래서 집값, 땅값 오르지 않으면 어쩔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차 없는 사람들, 그래서 고속버스 타는 것 말고는 그 비싼 고속도로 이용할 일 없는 사람들, 길이 생겼다고 뭐라 이득 될 만한 게 없는 사람들, 에게 통행료를 함께 부담하자는 말이 영 마땅치 않고 신경질 나는 거다. 비싼 통행료. 자업자득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5/20 13:10 2009/05/20 13:10

<죽음의 밥상> - 피터 싱어.짐 메이슨 지음/함규진 옮김

<“먹지마세요” GMO> - 마틴 티틀.킴벌리 월슨 지음/김은영 옮김

 

 

사용자 삽입 이미지1.

봄 농사로 바쁜 하루다. 퇴비 넣어주랴, 밭 갈아주랴, 이랑 만들랴, 눈코 뜰 새 없다. 특히나 비소식이라도 있으면 모종 사다 심으랴, 씨앗 뿌리랴, 그야말로 한 손이라도 아쉽기만 하다. 게다가 올 해 역시 작년과 마찬가지로 밭을 뒤늦게 구하는 바람에 남들보다 곱절은 바쁘다. 급한 마음이지만 서두른다고 드넓은 밭을 한 번에 다 채울 수는 없으니 일기예보에 귀를 쫑긋 세우면서 하나씩, 하나씩 해나가야 한다.

 

며칠 전엔 퇴비를 사러 인근 농협에 들렀다. 농지원부도 모르는 부재지주의 밭을 빌린 탓으로 농협 조합원 가격보다 1포대 당 200원이나 더 주고 퇴비를 사면서 한 참이나 속이 상해 있는데 고추며, 오이며, 호박 모종들이 왜 그리 자꾸 눈에 밟히는지. 아무래도 늦은 밭농사 준비로 마음이 급할 대로 급한 모양이다. 

     

드넓은 밭에 낑낑대며 퇴비를 다 뿌리고 나니 슬슬 여기엔 토마토며 오이를 심고, 저쪽엔 콩 두이랑에 고추 한 이랑을 섞어 심고, 조기엔 여름 내 먹을 옥수수, 저짝엔 겨울 내 먹을 고구마를 심을까 행복한 상상도 해본다. 의욕 넘치는 2년차 새내기 농부로서 조그맣게 비닐하우스 하나 지어 놓고 좋은 씨앗 골라 모종 길러 심고는 싶지만 내 밭이 아닌 이상 그것도 매년 이 밭 저 밭 기웃기웃하며 겨우겨우 밭을 구하는 신세에 그저 마음뿐이다. 허나 내 밭이 있다고 해서 그 꿈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밭작물들은 모종을 내서 옮겨 심어도 되는 것이 있고 씨앗을 뿌려야만 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조그맣게 텃밭농사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잘 아는 얘기일 게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모종을 내서 옮겨 심는 것도 씨앗을 심어 모종을 길러내는 것이니 쪽파나 감자와 같이 구근으로 심는 것을 빼면 모든 작물이 씨앗으로 번식을 하는 셈이다. 그러니 옛날부터 농부네들은 여름 내 땀 흘려 길러낸 작물을 수확하고 나면 가장 실한 것들만 따로 모아 다음 해에 쓸 종자를 만드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겠는가.

 

2.

어머니 49재 음식을 준비할 때였으니 벌써 3년 전 일이다. 동그랑땡이니 적을 만드느라 돼지고기를 만졌는데 전에 없이 빨간 두드러기가 몸 여기저기에 생기는 게 아닌가. 처음엔 그냥 고기가 상했나 싶기도 했지만 그 후로도 두 번인가 더 돼지고기를 접할 기회가,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 번은 입안에 넣었고 한 번은 역시 손에 대기만 했는데도 예의 그 두드러기가 또 나타났다. 이를 어째, 별수 없어 이번엔 한의원엘 찾았는데, 체질이 바뀌었으니 고기를 끊던가, 약을 먹던가, 하란다.

 

쩝. 하지만 어쩌랴. 애당초 시골로 내려가 살게 되면 ‘공산품 고기는 그만 먹어야지’ 하고 맘먹고 있었던 차라 아예 잘 됐다 싶어 그 기회로 육고기를 멀리하기 시작 했다. 그리고는 제사상에 빠지지 않고 올라왔으나 이제껏 관심 밖에 머물러 있던 온갖 나물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때맞춰 봄나물까지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맛을 들이기에는 제격일 것 같았고, 된장에, 고추장에, 초장에, 들기름에, 이렇게 저렇게 맛을 내니 어느새 나물 맛에 흠뻑 빠지게 됐다.

 

그 이후로 어찌된 게 가끔은 생선 한, 두 마리를 밥상에 올리기도 하고, 아직은 멸치국수와 초밥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데도 채식주의자이냐, 묻는 이들이 더러 있다. 아마도 소나 돼지, 양과 같은 붉은 살코기는 먹지 않으나 해산물과 물고기는 먹는 페스코 베지테리안임을 확인하는 것이겠지만 그건 아니다, 라고 말한다. 종교적이거나 문화적으로 혹은 건강상의 이유로 채식주의자가 되는 경우가 있기도 하겠지만 환경적이고 인권적이어야 진정한 채식주의인 것 같아서다.

 

3.

다소 생소하지만 매우 논쟁적인 ‘종(種)차별주의자’라는 용어로 잘 알려진 피터 싱어와 농부이자 변호사이며 싱어와 함께 <동물 농장(Animal Factories)>라는 책을 내기도 했던 짐 메이슨은 두 번째로 펴낸 <죽음의 밥상(The Ethics of What We Eat)>을 통해 이전의 저작에서와 같이 공장형 농장 시스템 속에서 비윤리적이로 수태, 사육, 도살되는 동물들을 밥상에 올리는 것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가,를 묻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들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 인근 대형 마트에서 먹을거리를 구매하는 전형적인 미국식 가족, 가족의 건강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먹을거리를 구매하는 다른 한 가족, 그리고 가장 엄격하게 윤리적인 기준을 지키며 오직 채소만을 먹는 베건 가족의 식탁에 대한 그 길고 잔인한 여정에 대한 논쟁적 탐험에 나선다.

 

부리가 잘린 채 몸을 움직이기도 힘든 사육장에서 길러지다 한 시간 만에 7,200마리를 도살할 수 있는 도살라인에 억지로 밀어 넣어지는 닭. 일생에 한 번도 바깥나들이를 못하며, 풀밭을 밟아보지도 못한 채 콘크리트와 강철로 지어진 축사에 갇혀 성장촉진제와 항생제를 맞으며 크는 돼지. 접시쓰레기(레스토랑의 고기요리 찌꺼기), 닭고기와 돼지고기, 닭장쓰레기(닭똥, 닭 시체, 닭털, 먹다 남은 모이 등등), 그리고 소의 피와 지방이 포함된 사료를 먹고 키워지는 소.

 

대형 마트에서 일주일치 음식을 한꺼번에 쇼핑하고, 패스트푸드점에서 외식을 즐기는 그리고 닭고기와 돼지고기를 즐겨먹는 평범한 현대인의 식단 속에 감춰진 진실들을 들춰내는 것에만 멈췄다면 저자들이 서문에 썼듯이 이전의 저작과 별반 다르지 않은, 단순한 수정.증보에 지나니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싱어와 메이슨 두 저자들은 최근 불고 있는 유기농 열풍, 공정무역(fair trad) 운동, 로컬푸드(local food), 그리고 여러 윤리적 소비주의(ethical consumerism) 등등 더 넓은 쟁점들에 대해 시선을 넓히고 있어,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지에 대해 윤리학적인 접근을 하고자 하는 이들에 부응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4.

서구 사회 어디에서나 관습적으로든 법적으로든 소유권을 인정하는 제도가 갖춰져 있고 사람들은 개인의 소유권을 완벽하게 확립하고 강화하기 위한 투명한 메카니즘을 만드는 일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이 소유권이 하나의 공동체가 보여준 인내와 수 세대에 걸친 집단적인 노력의 소산이었던 식물이나 종자와 같은 자연의 산물들에까지 딱지를 붙일 수 있었던 건 무엇 때문일까?

 

굶주림 혹은 기아의 문제는 작물의 수확량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술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사회, 정치적인 문제라는 점은 이미 1960년대 거대 화학 기업들, 영향력 있는 재단들, 그리고 정부가 나서서 녹색혁명(green revolution)을 주도했던 때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 공학 기업들은 기아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여전히 생산량을 늘려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사실이 그렇다면 이들의 말대로 막대한 양의 식량을 생산하도록, 그냥 그들이 모든 사람들을 먹여 살릴 만큼 생산하도록 놓아두어야 하지 않을까?

 

유전공학의 사회적, 윤리적 의미를 공론화하기 위해 의식 있는 과학자, 의사, 활동가들이 함께 결성한 ‘책임 있는 유전학 위원회(Council for Responsible Genetics: CRG)’ 의장을 맡고 있는 마틴 티틀과 역시 이 위원회 위원이기도 했으며 현재는 그린피스에서 생명공학기술과 관련된 시민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킴벌리 윌슨은 이러한 질문들의 밑바탕에는 바로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 두 저자들은 식품과 관련된 유전자 조작 혁명의 모든 것을 자세히 파헤치고 있다. 유전공학이 작동하는 방식, 유전자를 조작해 만들어진 식품들의 위험성, 이러한 식품들로부터 이익을 얻는 자들은 누구이며 손해를 보는 이들은 누구인지, 굶주린 이 세계를 먹여 살릴 것이라는 거대 다국적 곡물 기업의 망언, 생명을 조작하는 행위가 가지는 윤리적이고 정신적인 측면까지.

 

하지만 <“먹지마세요” GMO>가 앞서의 책과 마찬가지로 단지 유전자 조직 식품의 모든 것만을 알려주는 것에 멈추었다면 GMO에 대한 불편한 진실의 폭로 혹은 유전공학에 대한 위기의식의 환기에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들은 놀라운 힘과 정당한 윤리적 권위를 지닌 평범한 시민들이 행동에 나선다면 안전한 먹을거리를 되찾을 수 있음을 역설함으로써 자칫 무력감에 빠질 수 있는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일상생활에서, 각자의 공동체에서 인정된 유기농 제품을 사고, 자신이 먹을 것은 스스로 기르고, 제철 식품을 구입하고, 편향되지 않은 정보를 얻기 위해 약간의 노력을 기울이고, 지역 단체 혹은 전국 규모의 단체에 가입하는 자그마한 실천으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5/16 15:04 2009/05/16 15:04

고추심기 2

from 09년 만천리 2009/05/16 12:25

고추 심기 - 셋째 날(5월 13일/맑음 10-24도)

 

어제, 그제 내린 비로 간만에 쉴 수 있었다. 겨울 내 빈둥거리다 닥쳐서 준비한 봄 농사로 몸이 파김치가 됐는데 이틀을 그렇게 쉬니 다시 활력이 생긴다.

 

그렇다고 이틀 내내 집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밭을 갈아 주었던 아저씨도, 위에 밭 아저씨도, 밭 한 쪽이 물이 빠지지 않는다는 얘기를 했기에 배수로를 볼 겸 잠시 밭에 나갔다 오긴 했다. 이틀 내 비가 오긴 했지만 양이 많지 않아서인지 다행히 물이 고이거나 이랑이 무너진 곳은 없었다. 마음이 놓이기는 하지만 장마가 오기 전에 배수로 정비를 하긴 해야겠다.

 

토요일에 또 비소식이다. 오늘과 내일, 못 다 심은 고추 모종도 심고 열무며 근대며 채소들 씨앗, 어제 도착한 옥수수 씨앗들을 심어야한다. 해서 오늘은 또 신동농협까지 가서 고추 모종을 사다 선선한 아침나절에 심는다. 그리고 근대, 열무, 치커리도 함께.

 

* 고추 모종 40개 - 4,800원

 

고추 심기 - 마지막 날(5월 14일/맑음 9-27도)

 

고추 심기는 오늘로 끝이다. 겨우 300주도 되지 않은 고추를 심는데 근 일주일 가까이 걸렸으니 꽤나 시간을 많이 잡아먹은 셈이다. 혼자 일하는 것도 일하는 거지만 자전거로 실어 나를 수 있는 양이 한정되어 있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심어야 할 고추가 많지 않아 피망이며 가지며 맷돌호박 모종도 함께 샀다. 하지만 계획했던 수량만큼 사지는 못했는데 이마저 내일부터는 아예 사지를 못한다. 값도 값이지만 품질도 나아 보여 그 동안 농협에서 사왔는데 이젠 중앙시장에서 구해야 한다. 물론 내일 아침 한번 정도면 거의 웬만한 건 다 심으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저녁 해질녘엔 들깨, 참깨, 고구마, 옥수수 심을 곳에 남겨 둔 퇴비도 뿌려주고 먼저 심은 곳에 듬성듬성 자라난 잡초도 뽑아주니 얼추 밭 모양이 눈에 들어온다. 돌아오는 길에 토마토, 오이, 호박에 세워줄 지주대로 쓰기 위해 각목 몇 개 주어왔다.

 

* 고추 모종 20개 - 2,400원

* 피망(노랑) 4개 - 2,000원

* 늙은 호박 4개 - ·1,000원

* 참외 2개 - 5,00원

* 가지 4개 - 1,000원

 

괭이질(5월 15일/흐림 14-22도)

 

밭농사에는 괭이와 호미, 이 둘이면 웬만한 건 다 된다. 이랑을 만들 땐 괭이가 모종을 심거나 잡초를 제거할 땐 호미가, 즉 허리를 굽혀야 할 일엔 호미를, 허리를 펴서 일을 해야 할 땐 괭이를 쓰는 것이다. 그러니 따로 경운을 하지 않는다면 괭이와 호미, 이걸로 일은 끝이다.

 

오늘은 아침에 잠깐 모종 심은 거 빼곤 하루 종일 괭이질이다. 대충 급한 것들은 다 심었으니 이제 콩 밭과 들깨, 참깨 밭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해서 밭갈이 때 트랙터가 만들어 놓은 이랑을 허물기도 하고 이쪽저쪽 이랑들을 하나로 합쳐 새 이랑을 만들기도 하고 일이 많다. 그래도 내일 비 소식 때문인지 해가 들지도 않고 덥지 않아 다행이다. 내일과 모래 이틀 또 쉬고 한 사나흘 괭이질이면 얼추 다 될 듯도 하다.

 

* 피망, 아삭이 고추 모종 각 4개, 8개 - 4,000원(종묘상)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5/16 12:25 2009/05/16 12:25
Ta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