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가는 기차는 청량리에서 출발하지요. 하지만 요즘은 종종 성북역을 이용한답니다>

돌이켜보니 꽤나 춘천가는 기차를 탔었던 듯 한데. 정작 이사 오기 바로 전 해이던 재재작년에 잠시 다녀왔던 게 처음이었으니 춘천과의 인연이란 게 특별나지 않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 누구 하나 마음을 나눌 이가 있기는커녕 딱히 알만한 이도 하나 없으니 대체 왜 춘천이란 이 낯선 곳으로 왔는지 아직까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1년이란 시간이 언제 그리 훌쩍 지났나 싶을 만큼 나름 적응을 잘 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요. 물론 때론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짜증이 치솟을 때도 있었고 이유 없는 답답함에 싸우기도 하며 물갈이를 하긴 했지만 말입니다.

 

애당초 춘천으로 가자, 정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저 교대가 있는 도시들을 지도에 죽 표시해 놓고 여기가 좋을까, 저기가 좋을까, 고민을 하다 그래도 비빌 언덕이 하나라도 있어야 한다며 골랐던 진주와 되려 그 반대 이유로 무작정 밀어붙인 춘천을 두고 한참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다 아직은 부모님들이 계시는 곳과 가까워야겠다, 는 생각에, 사과나무에 복숭아까지 심을 수 있을 만치 앞으로 농사지을 만한 곳으로 딱 좋게다, 싶어 춘천가는 기차를 타게 된 겁니다.

  

춘천과 처음 만났던 때, 작고 조용한 도시와 그 도시를 감싸고 있는 너른 물이 가장 마음에 들었어랬습니다. 또 청평사를 오르던 길에 소복히 쌓이던 눈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마음에 담아둔 풍경이었고, 조금만 걸어도 금세 아파트 숲을 벗어날 수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의 기쁨은 지금도 여전하답니다. 남들이 듣자면 조금 웃기긴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가 맘에 들었던 것도 이런 이유들에서였고요. 오솔길을 따라 오르는 도서관도 그렇고 강을 따라 걷다 가 만나게 되는 너른 둔치가 또 그렇기 맘에 들었기 때문이랍니다.

 

요즘은 어찌된 게 서울에 있을 때보다도 더 자주 가족들과 만나게 됩니다. 같이 살자 하고 한 집에 있은 후로 제사 때나 어버이날, 추석, 설 등 명절이외엔 통 얼굴 보기가 힘들었었는데 말입니다. 거리상으로 그리고 시간상으로 따지자면야 서울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혹은 북쪽 끝으로 가는 게 춘천에서 서울 가는 것보다 훨씬 짧겠지만서도 다들 이리로 오는 건 무슨 까닭일까요. 심지어 저 아래 김해에서도 벌써 세 번이나 다녀갔구요, 초대도 없었던 집들이에, 부러 찾아 온 친구도 여럿이랍니다.

 

올 초, 밭이 딸린 집을 구한다며 잠시 여기저기 쏘다녔던 적이 있었더랬습니다. 작년에 밭을 구하느라 고생했던 기억도 있었고 어차피 시골 가서 살 거면 이번 기회에 시내에서 벗어나자, 했던 겁니다. 그래 집을 내놓고는 생활정보지도 뒤적거리고 인터넷도 들락날락, 짬짬이 부동산까지 찾아다녔었는데. 그리 다니다보니 이런, 1년 가까이 춘천에 살면서도 이리 둘러보지 못한 곳이 많았습니까. 나름 다닌다, 다닌다 했는데도 고작 집 주변만 맴돌았던 셈이었습니다.

 

 

<춘천가는 기차(위)와 차창 밖 풍경(아래)>

 

춘천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습니다. 호수, 안개, 남이섬, 청평사, 중도, 위도.... 춘천가는 기차라는 노래도 그 중 하나일 겁니다. 헌데 김현철씨는 곡을 다 만들고 난 후에야 춘천엘 다녀왔다고 하네요. 하지만 그게 머 대수겠습니까. 꼭 기차를 타지 않더라도 춘천하면 아련한 무엇이 떠오르는 게 있으니까요. 그리고 춘천가는 기차, 타봤자 딱히 별 볼일 없더라, 해도 말입니다.

 

조금은 지쳐 있었나봐

쫓기는 듯한 내 생활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몸을 부대어 오면

 

힘들게 올라탄 기차는

어딘고 하니 춘천행

지난 일이 생각나

차라리 혼자도 좋겠네

 

춘천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오월에 내 사랑이 숨쉬는 곳

지금은 눈이 내린 끝없는 철길 위에

초라한 내 모습만 이 길을 따라가네

그리운 사람

 

차창 가득 뽀얗게 서린

입김을 닦아내 보니

흘러가는 한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고

 

그곳에 도착하게 되면

술 한잔 마시고 싶어

저녁때 돌아오는

내 취한 모습도 좋겠네

 

춘천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오월에 내 사랑이 숨쉬는 곳

지금은 눈이 내린 끝없는 철길 위에

초라한 내 모습만 이 길을 따라가네

그리운 사람

 

 <조만간 사라지게 될 풍경이라고 하니 오래도록 눈에 담아두어야겠습니다>

 

조만간 춘천가는 기차가 사라지게 됩니다. 에둘러 강을 끼고 산을 돌아 이 역, 저 역 사람들을 실어 나르던 그 기차가 사라진다는 겁니다. 대체 무에 그리 바쁜 것인지. 산허리를 잘라내고 강바닥에 콘크리트를 밖아 그렇게 다리를 세워 기찻길을 곧게 펴고, 구석구석 추억이 묻어 있을 그 조그만 강변역들, 마석, 대성리, 강촌역도 다 허물고 새로 짓는답니다. 아직은 서울에 갈 일이 많은 지라 복선전철화되면 웬만하면 좋게 생각하려해도, 글쎄요. 쉬이 그렇게 될 것 같진 않습니다. 아무리 책 읽기를 좋아한다, 해도 아직은 컴컴한 터널 속에서 책장만 넘기는 것보단 창밖으로 스쳐가는 들과 산에 한눈팔고 싶거든요. 그래, 요즘 서울 다녀오는 길이 무척 남다르답니다. 오래도록 아주 오래도록 눈에 담아두어도 곧 잊혀지게 될 많은 것들이 벌써부터 그리움으로 다가 오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래도 아직은 시간이 조금 남았습니다. 다행인가요. 아무래도 아쉬움이 켜켜이 쌓이기 전, 춘천가는 기차 더 많이 타야겠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7/10 14:17 2009/07/10 14:17

1.

뒷간에서 책을 보면 변비 혹은 치질에 걸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될 수 있으면 빨리 뒷간에서 나와야 하는데 책 읽기에 빠져 있다 보면 일을 그르치기 일쑤기 때문일 테지요. 그럼에도 뒷간에서 읽은 책 맛은 담배를 끊기 전 뒷간에서 피우던 담배 맛 만큼이나 중독성이 있습니다. 그래도 변비 혹은 치질에 대한 긴장 때문인지라 늘상 읽는 책들을 가지고 들어가기에는 긴 문장만큼이나 끊기가 힘들고 긴 장(chapter)만큼이나 길기만 합니다. 그래서 여기 이 두 권의 책을 뒷간 세면대 옆 한쪽에 놓아두거나 뒷간 가장 가까운 책장에 나란히 세워두고는 합니다. 둘 다 10분 이내에 읽을 수 있는 꼭지들로만 구성돼 있어 끊기도 쉽고 다른 책들에 비한다면 가볍기 그지없어 어디든 가져가기 부담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름난 이들이 한껏 멋 내서 쓴 글보다는 옆집 아줌마, 아저씨, 누나, 동생 혹은 우리 엄마, 아빠가 살면서 느낀 점들을 아무 멋도 내지 않고 쓴 글들이 더 많아 입에, 눈에 감칠맛 나기 때문이죠. 또 춘천으로 오고 난 후 가끔, 아주 가끔씩 도지는 물갈이에 딱 맞는 처방약이기 때문이랍니다.

 

2.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사무실을 영등포로 옮기고 난 후이니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이네요. 매년 받아오던 건강검진에 또 위염과 십이지장염이 발병을 했다는 얘기를 의사로부터 들었더랬습니다. 매일매일 시달리는 스트레스에 불규칙한 식사, 한 번 시작되면 삼차까진 가야 정리되는 술자리, 20년 넘게 피워 온 담배. 의사말로는 되려 이 정도면 다행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당장 담배부터 끊으라고 호통을 칩니다. “그거 못 끊으면 병 못 고칩니다.” 짝지와 함께 병원을 나와 약국에 들러 위장약을 사고 나오는 길에 그때까지도 웃도리 호주머니에 곤히 모셔져있던 담배를 휴지통에 쳐 넣었습니다. 오늘부터 담배 끊는다! 담배를 끊는 건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남들은 금단현상에 손을 떨다 삼일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손을 댔다고 하던데, 어찌된 게 금단 현상은커녕 혹여 누가 옆에서 담배를 필라치면 구토까지 나오면서 싫어지니. 모르는 이들은 참 독한 사람이다, 이 말, 저 말, 말들이 많더군요. 아무튼 그렇게 담배 냄새가 싫어지기는 했지만 딱 한 군데, 화장실에서 만큼은 싫지가 않더군요. 아니 끊었다, 생각했던 담배가 그곳에서만큼은 생각이 나는 거였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3.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들을 보니 그세 또 2년이 지났네요. 다행히 담배는 끊었더랬습니다. 하지만 그 해 가을은 지나온 절반의 삶과 앞으로 올 절반의 삶에 대한 고민으로 마주 앉아 많은 얘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명확한 답을 찾진 못했지만 말이예요. 그리고 그 해 가을은, 함께 다녔으면 좋았을터인데 어째 시간이 허락치 않아 혼자서 귀농학교를 다녔더랬습니다. 엊그제 명예퇴직을 한 이로부터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이까지, 생협에서 필수교육으로 이수해야했던 이들로부터 부부가 함께 손잡고 온 이들과 말입니다. 또 아주 잠깐이기 했지만서도 벽제로 화천으로(벽제는 또 혼자였는데 화천은 다행히 짝지와 함께 했더랬습니다.) 땅을 일구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귀농길잡이>, <자연을 꿈꾸는 뒷간>, <내손으로 받는 우리종자>, <흙을 알아야 농사가 산다>, <소농-누가 지구를 지켜왔는가>와 같은 책들도 접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귀농학교를 수료하면서는 귀농운동본부 회원으로 가입을 했습니다. 마음을 굳힌 건 아니었지만 일단 서울은 뜨기로 의기투합한 거였죠. 지금보다는 천천히, 단순하게, 자유롭게 살기로 한 겁니다. 하지만 또 무슨 일이 그리도 많았는지 언제 귀농학교를 다녔었는지조차 잊어버리고 지냈던 어느 날, 계절이 바뀌어 눈발이 내리던 그 날, 생각지도 못했던 책 한권이 집으로 배달됐답니다.

 

4.

춘천으로 이사한 지도 그새 1년이 훌쩍 지났네요. 그동안 잘 적응했나, 싶기도 하다가 이유 없이 싸우기도 하고 또 이유 없이 짜증이 나기도 하는 걸 보니 아직은 물갈이 중인가 봅니다. 그래도 5년 전 화장실에 갈 적마다 담배 대신 사무실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낡은 책장에서 꺼내든 <작은책>과 2년 전 서울을 뜨기로 의기투합하며 귀농본부 회원에 가입하면서부터 계절이 바뀔 때쯤이면 빠짐없이 배달돼 오는 <귀농통문>이 어느새 책장 한 켠을 빼꼭히 채우고 있는 걸 보니 이제 담배는 확실히 끊은 것 같기도 하고, 무작정 서울을 뜨기도 했으니 귀농에 한 걸음 다가왔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담배는 피운 기간만큼이나 끊어야 정말 끊었다, 할 수 있고, 내 땅 한 뼘 없어도 시골로 내려가 땅을 일궈야 의기투합을 이뤘다, 할 수 있으니 아직은 아닐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잠시 뒷간에 들어가 <작은책> 혹은 <귀농통문>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처음 마음 잃지 않고 되새김질하는 것. 그것 하나면 이 물갈이, 힘들지만은 않겠다, 생각됩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7/08 11:06 2009/07/08 11:06

첫째 날, 함양에서 안의까지(2006년 6월 3일)

 

함양행 시외버스에 오르니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 벌써부터 뜨거운 햇살이 느껴진다. 요 몇 일 한여름 날씨가 지속될 거라고 하더니 한낮도 아니고 차안인데도 열기가 심상치 않다. 아무래도 이번 여행은 더위와 한바탕 해야할 듯.

 

함양에 도착하니 이런, 걷기는커녕 땡볕에 일분도 채 서있지 못하겠다. 배낭을 짊어진 등뒤로는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무조건 쉬기로 하지 않았어도 이거야말로 쉬어가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날씨다. 다만 함양에 왔으니 가까운 곳에 위치한 상림에서 쉬어가야 할텐데 그곳까지 몸을 이끌지 못하는 게 다 저 뜨거운 햇살 때문이다.

 

결국 읍내 한 패스트푸드점에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이곳은 어린아이들의 놀이마당이다. 생일잔치를 하는 아이들이 벌써 두 팀이다. 첫 번째 팀은 여자아이들과 남자아이들이 섞여 한참 동안 매장안을 휘젓고 다니며 소란을 피우더니 두 번째 팀은 남자아이들만 대 여섯이 들어와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며 서로 쑥스러운 모양으로 선물을 건네주고, 받고 한다. 어쩜 저리도 예쁠까. 너무너무 사랑스러운 모습들이다.

 

4시가 넘어 출발했는데도 땅 밑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로 숨이 턱턱 막힌다. 걷기 시작한지 이제 한 시간도 안됐는데 옷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고 발바닥은 후끈후끈 하다. 땀도 식히고 쉬어갈 겸 부야마을 부야상회에 들어가는데, 인심 좋은 아주머니 덕에 비록 찬밥과 쉰 김치이지만 생각지도 않게 허기까지 달랠 수 있다. 오랜만에 다시 느껴보는 푸근한 시골 인심이다.

 

함양에서 안의로 이어진 24번 국도변에는 정여창고택과 옥계신도비, 허삼둘가옥 등이 있는데 모두 지나쳤고, 그렇게 한 눈 팔지 않고 걸었는데도 안의에 도착하니 해가 완전히 저물어 사방이 어둡다. 읍내에는 여관이 몇 눈에 띄기는 하나 미리 준비해 둔 민박집에 전화를 걸고는 찾아 나서는데.

 

<덕유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송계사를 찾아 가는 길에 만난 황산마을>

 

푸근한 인상을 가진 할머니 한 분이 저만치서 마중을 나오시는데, 귓속말로 “집에 방이 없어. 어찌 마루에서라도 잘텨? 딴데 가서 야그하면 안 되는데. 다믄 만원만 주고 자”하신다. 우리로서는 마다 할 이유가 없다. 해서 오늘은 단돈 만원으로 숙박을 해결한다.

 

둘째 날, 안의에서 덕유산 아래 송계사까지(2006년 6월 4일)

 

땡볕에 걷는 것을 피하고자 오늘은 아침과 저녁나절에만 걷기로 했다. 해서 5시에 일어나 어제 저녁 준비해 둔 과일과 빵으로 이른 아침을 해결하고는 길을 나선다. 하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서인지 몸이 뻐근하고 졸음이 쏟아진다. 길가에 앉아 스트레칭도 해보고 한참을 쉬기도 하나 여전히 몸은 무겁기만 하다.

 

바래기재를 넘어 고학리에 도착하니 예전 같았으면 이제 일어났을 시간인 7시 30분. 약수정 식당에서 맛난 청국장에 아침을 먹고 급한 화장실도 해결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조금 전과는 달리 한결 다르게 몸도 가볍다. 역시 사람은 먹고, 싸고를 해결해야만 하는가보다. 하지만 졸음은 먹고 나서인지 더 쏟아진다.

 

점심을 먹으면서 쉬기로 했던 수승대까지의 길은 오가는 차도 많은데다 길을 내기 위해 여러 곳에서 공사를 하는 바람에 공사차량까지 질주를 해 무척 걷기 힘들다. 그리고 중간중간 거창군에서 펴낸 관광안내도에 나온 명소들 구경을 잔뜩 기대를 했지만 그다지 볼거리들은 아닌 듯하다.

 

장풍숲은 길가에 있다는 것 빼고는 남도지방이라면 쉽게 볼 수 있는 적송 숲으로 이루어져있어 시시한데다 석재상, 기와공장, 기도원, 모텔 등이 제각각 주변에 몰려 있어 영 마뜩치 않다. 또 수승대는 국민관광지라는 요란한 이름으로 입장료까지 받고 있지만 어째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명색이 계곡이라지만 썩 맑지 않은 물도 그렇고 눈썰매장까지 갖춘 모양새도 그렇다. 하지만 벌써부터 아이들이 계곡에서 물장난을 치는 걸 보면 한여름 피서철로는 어떨지 모르겠다. 해서 우리는 수승대 못 미쳐 만날 수 있는 이름 모를 적송 숲 속에서 늘어지게 낮잠도 자다가 책도 보다가 하면서 4시까지 쉬어간다.

 

햇볕이 한 숨 죽었거니 하고 나왔는데 아직도 땡볕이다. 불볕더위라는 말이 새삼스럽다. 그 땡볕에 황산마을 고가촌 돌담길을 걸었으이 고즈넉한 맛은커녕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라 아쉬움이 크다. 에둘러 마을길을 길게 돌고 또 논길을 따라 걸으며 눈으로 담아둔다.

 

 

<에둘러 둘러봐야 할 황산마을 돌담길>

 

황산마을을 지나 송계사 입구까지의 길은 오전에 걸었던 길과는 달리 오가는 차도 거의 없고 소나무 숲과 벚꽃나무, 그리고 은행나무가 번갈아 가며 이어지고 있어 걷기에 참 좋은 길이다. 게다가 햇볕도 많이 잦아든 데다 북상면 13경 몇 몇은 쉬엄쉬엄 둘러보며 눈요기를 할 수 있어 아침과는 다르다.

 

송계사 입구에 도착하니 해는 이미 저물었다. 다행히 며칠 전 새로 문을 연 송계산장이 있어 거창이나 낮에 지나쳐왔던 수승대로 나가지 않아도 될 듯하다. 게다가 속리산 자락에 들어와서인지 하늘 가득 별이 반짝인다. 기분 좋은 밤이다. 하지만 늦은 저녁에 동동주로 목을 축이니 눈까풀이 자꾸만 내려앉아 오랜만에 하는 별 구경이 짧기만 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7/07 21:34 2009/07/07 21:34

참외

from 09년 만천리 2009/07/06 08:10

찜통더위(6월 30일/무더움 23-28도)

 

온다던 장맛비는 오지 않고 찜통더위다. 그냥 기온만 높은 게 아니라 습도까지 함께 높은 찜통더위인 게다. 이런 날엔 삼심분만 밭에 나가 있어도 땀범벅이다. 아니나 다를까 적당히 선선해졌다 싶은 시간에 나갔는데도 한 시간도 못돼서 땀으로 흠뻑 젖는다. 휴~ 한여름엔 어찌 일하지?

 

모기에 물리다(7월 1일/무더움 21-28도)

 

따가운 햇볕 때문이라도 긴팔 옷을 입어야 하지만 가끔씩 피를 빨아대는 모기를 피하기 위해서도 그래야 하니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땀이 줄줄 흐른다. 엊그제도 호박 지주끈을 묶어주다 손목에 살포시 내려앉은 모기에 된통 물렸는데 오늘은 콩 밭 호미질하는 동안 목덜미를 두 군데 물렸다. 가뜩이나 땀으로 범벅이 된 데다 가렵기까지 하니 흙 묻은 손으로 긁지도 못하고 난리도 아니다. 하지만 어쩌겠나. 꾹 참고 호미만 계속 놀린다.

 

요즘 같은 날씨엔 한낮을 피해 밭에 나온다 해도 또 아무리 얇은 셔츠를 입었는 해도 바람 한 점 불지 않으면 그야말로 사우나에 앉아 있는 것 마냥 일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오늘은 장맛비 영향인지 바람이 선선히 불어 다른 날보다는 낫다. 조금 전에 모기에게 두 방 물린 것만 빼면. 어제부터 손대기 시작한 고구마 밭 제초하고 장아찌 담글 요량으로 풋고추 한 봉지를 가득 딴다.

 

 

 

참외(7월 2일/무더움 19-25도)

 

올 해 처음 재배한 것들이 몇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참외다. 참외는 기르기가 까다롭다는 얘기를 많이 들은 데다 노지에서 기르려니 자신이 없어 모종만 20개를 사다 심었다. 또 비가림 시설은 못할망정 열매가 흙에 닿아 무르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 이랑에 비닐을 깔았다. 그리고 순지르기는 제때 못해줬어도 밑거름을 충분히 줬다. 그래서일까. 생각지도 않게 참외가 여럿 달린다. 아직 노랗게 되려면 한 참 더 있어야 하고 또 노랗게 된 후에도 녹색이 다 없어질 때까지 더 기다려야 하니 참외 맛을 보려면 아직은 멀었다. 이제 순지르기에 신경만 조금 더 쓰면 꽤 수확을 할 수 있을 듯하다.

 

마른장마(7월 3일/무더움 19-25도)

 

장마전선이 오르락내리락 한다고 하는데 아직 춘천까진 올라오지 못했나보다. 또 다른 곳은 때 아닌 집중호우로 피해를 본다고도 하는데 여기 춘천엔 비가 오긴 와도 피해가 날 정도는 아니다. 장마는 장마인데 마른장마인 게다.

 

모처럼 내일과 모래 서울, 의정부 나들이를 간다. 밭 상태를 봐선 이 이틀 때문에 다음 일주일은 고생 좀 해야겠지만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이젠 웬만한 풀을 봐선 그냥 지나칠 정도다. 죽자, 살자 풀 뽑아봐야 돌아서면 또 풀은 이만큼 자라있고, 하루아침에 싹 뽑아내지 않을 거면 그냥저냥 작물에 큰 피해 가지 않는 선에서 풀과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두는 게 몸도 맘도 편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7/06 08:10 2009/07/06 08:10
Tag //

풀과 자라는 콩(6월 22일/무더움 21-29도)

 

이제 6월 말인데 벌써부터 폭염이다. 엊그제 비가 오고 나니 더 더워지는 것 같기도 한데, 급기야 어제 밤에는 기온이 20도에서 내려오지를 않았다. 그리고 오늘 낮엔 30도에 육박하는 무더위다. 이 정도면 한여름 날씨가 아니고 뭔가.

 

한차례 비가 왔으니 작물들도 많이 자랐겠지만 풀들도 함께 쑥쑥 올라왔을 거라 생각되니 아침부터 걱정이다. 하지만 불볕더위에 감히 나갈 생각을 못하다 해가 한 숨 잦아들 때쯤 겨우 자전거에 오른다.

 

이런. 아니나 다를까. 토마토며, 호박, 오이는 비가 오기 전에 한 번씩 지주끈을 더 해줬는데도 벌써 웃자랐는데. 미처 다 풀을 잡아주지 못했던 콩밭에 풀들이 무릎 높이까지 올라온 게 아닌가. 이건 콩보다도 더 자란 꼴이다. 아무래도 이번 주는 이 풀들 잡느라 시간 다 보내게 생겼다.

 

자전거 펑크(6월 23일/무더움 16-30도)

 

며칠 전부터 이유 없이 자전거 앞바퀴에 바람이 슬슬 빠지더니 집을 나선지 500미터도 채 가지 못하고 타어이가 쭈글쭈글해졌다. 아무래도 어딘가에 구멍이 난 듯하다. 결국 자전거점까지 끌고 가서 다시 30분을 기다린 후 펑크 난 곳을 때우고 나니 이런, 해가 뉘엿뉘엿. 서둘러 밭에 나가보지만 잠깐 콩 밭에 풀 뽑고 나니 벌써 어두워진다.

 

                               

    <풀과 자라는 콩(왼쪽)과 풀을 잡아준 콩(오른쪽), 잘 보면 풀과 자라는 콩들이 더 키가 크다. 이유가?>

 

치커리, 호박(6월 24일/무더움 16-30도)

 

작년과 달리 채소를 꽤 많이 심었더니 요즘 밥상이 풍성하다. 오이, 상추는 진즉에 수확을 했고 근대며, 아욱, 알타리, 열무 등이 곧 먹을 수 있을만치 자라고 있다. 제때 풀을 잡아주지 못한 대파만 제외하면 아직까지 채소 농사는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은 첫 호박을 수확하고 미처 눈에 들어오지 않아 제멋대로 자라고 있는 치커리도 한 봉지 가득 담는다.

 

폭염과 장마(6월 25일/무더움 17-29도)

 

남부지방은 폭염주의보란다. 35도를 넘나든다. 밤까지 열대야가 이어지는 무더위가 계속되는 중이다. 다행히 춘천은 그만큼은 아니다. 물론 낮에는 30도 가까이 기온이 오르지만 한참 때를 피하면 아직은 일할 만하다. 또 해가 뜨기 전 후, 그리고 해지기 전, 후엔 금세 선선한 바람도 불고 기온이 떨어져 일하기 좋다. 한마디로 요즘 날씨는 일교차가 크다는 특징이 있는 춘천 날씨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며칠간 계속 콩 밭 김매기에 매달리고 있는데도 아직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있다. 돌아서면 이쪽에 풀이 자라고 이쪽 풀매고 나면 저쪽에 풀이 자라고. 그뿐만 아니라 하루가 다르게 줄기를 뻗어내는 줄기 작물 손봐주랴, 고추끈 묶어주랴 없는 듯 있는 듯 일이 밀리기 때문이다.

 

예전엔 무더위가 있기 전에 장마전선이 많은 비를 뿌렸지만 요즘은 장마와 무더위가 함께 오는 듯하다. 아니 오히려 무더위가 먼저 오고 장마가 나중에 오는 것 같다. 해서 요즘이 한참 김매기를 할 때인데 드문드문 많은 비도 오면서 기온은 갑자가 높아져 일하기가 어중간하다. 물론 한 낮 무더위만 피하면 아직은 일하기 좋은 날씨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밭 모양새를 보니 아침에 시간을 좀 내야겠다.

 

끝없는 김매기(6월 26일/무더움 17-29도)

 

옛말에 소농은 풀을 보고도 안 매고, 중농은 풀을 보아야 매고, 대농은 풀이 나기 전에 맨다고 한다. 또 거친 두벌이 꼼꼼 애벌보다 낫다는 말도 있는데 지금 밭 모양새를 보면 어찌 그리 이 말들이 꼭 들어맞는지 모르겠다.

 

뭐하느라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풀이 한참 자라기 시작해서야 겨우 호미를 잡은 데다 성격 탓인지 꼼꼼히 풀을 잡아가느라 속도도 느려 이쪽 풀을 매고 있으면 저쪽에서 풀이 자라고, 저쪽 풀을 매고 있으면 또 이쪽 풀이 자라고 있어 끝이 보이질 않는다. 다행히 장마전선이 남부지방 쪽에 머물러 있어 풀 잡을 시간이 아주 없진 않다. 아무래도 이번 주는 주말에도 풀 뽑으러 나와야겠다. 대충 콩 밭은 정리가 되가는데 먼저 매줬던 감자, 옥수수, 고구마 심어놓은 곳에 풀이 무릎까지 올라왔기 때문이다.

 

“거, 제초제 뿌려버려요” (6월 28일/무더움 20-31도)

 

오랜만에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오늘 밤부터 장맛비가 온다고 하니 마음이 급하다. 고랑에 무릎까지 올라온 풀들을 다 잡지는 못할망정 대충 낫질이라도 해둬야 하기 때문이다. 또 김매느라 신경을 못 썼던 고추들도 지주대며 지주끈이 튼튼한지 손봐줘야 하고, 여전히 풀 속에 파묻혀 있다시피 하고 있는 콩들도 호미질을 해줘야 한다.

 

비가 온다고 해서 그러나 안개 때문에 그러나 5시가 넘어 해가 떠도 공기가 눅눅하다. 덕분에 호미질 30분, 낫질 30분 만에 온몸이 흠뻑 땀으로 젖었다. 목도 축일 겸 잠깐 손에서 호미를 놓고 쉬고 있는데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동네 아저씨 한 분이 목소리를 높인다.

 

“거, 제초제 뿌려버려요. 풀 어찌 다 잡으려고?”

 

올해엔 어찌 제초제 소리 안 듣나 했는데 간만에 일찍 나온 오늘이 딱 그날인가보다. 뭐라 대꾸할 기운도 없고 또 대꾸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작년에 경험했기에 그냥 씩 한 번 웃고 만다. 아저씨도 더 말을 않고 그냥 물끄러미 내 모양을 보고 가던 길을 가신다. 그런데 저 아저씨 어디서 봤더라?

 

8시가 조금 넘자 벌써 햇볕이 따갑다. 마음 같아서는 콩 밭에 난 풀을 조금 더 뽑아주고 싶지만 이미 속옷까지 다 젖은 터라 힘이 부친다. 몰라보게 부쩍 자란 고추에서 풋고추 한 봉지 가득, 매일 밥상에 오르고 있는 오이도 몇 개 따니 땀 흘린 보람을 느낀다. 아무래도 이 맛에 농사짓나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6/29 15:31 2009/06/29 15:31
Ta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