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리나라가 2년 연속 출산율 ‘꼴찌’를 기록했다며 연일 호들갑을 떨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재작년 기준으로 평균 1.2명을 낳았다는데, 뭐든 ‘일등’, ‘일류’만 외치다 ‘꼴찌’를 해서인가요. 헌데 따지고 보면 어디 ‘꼴찌’가 이 출산율 하나뿐일까요. 어찌 보면 애들을 낳지 않는 건 애들과 관련된 것들이 모조리 ‘꼴찌’를 하고 있기 때문일 터인데 말입니다. 육아에 대한 가족 책임 주의, 낳아서 대학 졸업시키는 데까지 ‘억’소리가 나는 교육비와 서열화, 경쟁에만 열을 올리는 교육제도, 그리고 이를 철저히 제도화하는 신계급사회, 돈 없으면 죽으라는 사유화 정책에 내몰리고 있는 의료시스템 등등 말입니다. 그런데도 애 안 낳는다고 성화만 해대니. 그러고 보니 지자체별로 애 가진 가족이 주소를 이전하면 선물을 준다느니, 둘째 애, 셋째 애를 낳으면 출산장려금을 준다느니 요란한 걸 보니 바야흐로 우리나라는 애 낳기 운동 중인가 봅니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둘도 많다 하나만 낳자’며 산하 제한 운동을 벌이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요란들을 떤다고 애 안 낳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갑자기 순풍, 순풍 애들을 낳아 댈까요.

 

지난 주말이었죠. 11일이 ‘인구의 날’이었답니다. 뉴스에서 ‘초고령사회’니 ‘인구감소’니 하며 잔뜩 우려석인 말들을 쏟아내지 않았더라면 그날이 ‘인구의 날’이었는지도 모르고 지났을 겁니다. 아무튼 ‘인구의 날’이란 게 세계 인구가 50억을 넘은 것을 기해 인류가 장차 직면하게 될 사태에 대비해 인구전략을 모색하자는 의미로 국제연합이 지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날 우리 언론이 보여준 태도는 아직도 경제발전지상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걸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우리 사회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환기시키는 듯하지만 ‘노년부양비율’, ‘국가경쟁력’, 등등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결국은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 경제력이 위축될 것이라는 말만 하니 말입니다. 심지어는 국가 안보 능력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까지도 합니다. 어쨌든 이윤창출이 지상최대의 목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착취 가능한 노동력의 지속적인 확보는 매우 중요한, 아니 필사적으로 수행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니 그러려니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전세계적으로 인구밀도가 평방킬로미터 당 51명이라고 합니다. 헌데 우리나라는 이보다 무려 10배 가까이나 많은 490명이랍니다. 이 정도면 방글라데시와 대만 정도를 제외 하고 우리나라 보다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가 없으니 가히 세계 최고의 수준이라 할 만합니다. 상황이 이러니 땅을 넓히려고 그 넓은 갯벌들을 다 메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야 골프장 하나라도 더 짓을 수 있으니까요. 아무튼 이 통계수치를 보니 참 좁은 땅 덩어리에 많이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인구밀도가 높다면서도 합계출산율이 너무 낮다느니 그래서 세계 인구 순위가 46위로 밀려날 거라느니 말하는 걸 보면 아직은 살만한가, 봅니다. 하기사 이 나라는 땅을 일구며 사는 것 보다는 핸드폰 팔아서, 자동차 팔아서 밥 사먹고 고기 사먹을 작정을 했으니 땅이 좁은 들, 사람이 많은 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누군가 이런 계산을 했더군요. 지구별의 역사를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1년이라는 시간 단위로 놓아보았더니 마치 지구별을 제 것인 양 마구 파헤치며 생채기를 내는 인간이란 족속이 등장한 게 겨우 12월하고도 31일, 그것도 밤 8시 경의 일이었다는 겁니다. 그야말로 지구 나이에 비하면 그 찬찬한 인간 역사는 새발에 피인 셈이죠. 그러면서도 이 인간이란 종(種)이 하는 짓이란 게 지구별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는커녕 그저 주인 된 양 착취와 수탈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있으니 참으로 어리석기 이를 데 없습니다. 사실 인구가 줄어들어 이런저런 문제가 생긴다는 건 그야말로 인간들 입장에서만 바라본 거 아니겠습니까. 천년만년 문명이라 칭하는 것을 이어가야겠다고 애쓰는 인간들만의 입장에서 말입니다. 하지만 이 작은 지구별의 진짜 주인인 지구 처지에서 보면 인구가 준다는 건 되려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까요. 그토록 짧은 시간 안에 지구별을 망신창이로 만든 이들이 이들 말고 또 누가 있었는가를 생각해보면 말입니다. 결국 이제는 인간 스스로가 무한정 지구별 자원을 마구 퍼다 쓰는 짓을 줄이던가, 지구별이 감당할 만한 적절한 부양능력을 스스로 갖춰야 할 겁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인구가 줄어든다고 그리 호들갑을 떨거나 우려할 만한 일은 아닐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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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5 15:01 2009/07/15 15:01

씀바귀(7월 6일/무더움 20-31도)

 

엊그제 모처럼 서울엘 다녀왔다. 춘천으로 이사를 오고 난 후 간간이 서울 혹은 의정부엘 가게 되는데 엊그제도 그랬듯이 어찌 그리 사람 많은 곳에서 살았는지 매번 의문이 생긴다. 아마 그 안에서 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면 절대 모를 일일지만 말이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다고 한다. 서울에 다녀오지 않았어도 주말에는 웬간해선 일하지 말자, 했기에 그러려니 했지만 불과 이틀새 풀이 무릎까지 올라왔다. 물론 애벌도 못해준 콩 밭 한쪽은 키 높이로 풀이 자랐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하지만 모처럼 어머니까지 함께 밭에 나왔기에 일보다는 아삭이며, 호박이며, 오이, 참외, 방울토마토 수확에만 매달린다. 또 밭 한쪽 귀퉁이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지만 뭔지도 모르는 주인만나 눈길조차 한 번 받아보지 못했던 씀바귀도 한 바구니 가득 담아낸다. 아무래도 내일 낮엔 비빔밥을 먹게 될 것 같다.

 

소서(小暑)(7월 7일/무더움 22-29도)

 

본격적인 더운 날씨로 접어든다는 소서다. 이맘때가 되면 밭농사에는 김매기가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농약을 쓰지 않으려면 아침, 저녁으로 호미를 들고 밭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땅심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농사를 지으려면 농부가 감내해야 할 몫이지만 아직은 힘만 든다는 생각뿐이니, 농부 되는 길이 쉽지 않다.

 

남쪽 지방엔 기록적인 비로 작물 피해가 났다는 얘기가 들리는데 여긴 새벽에 잠깐 온 것 빼곤 감감무소식이다. 아니 한 낮엔 이글거리는 해 때문에 밖에 나가기가 두려울 지경이다. 또 해질녘 쯤 되면 선선한 바람이 불던 것도 그쳤다. 한마디로 일하기 쉽지 않다는 말이다.

 

무더위가 계속되니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일하는 시간이 줄어드니 사방이 풀천지다. 그래도 이제 하루 이틀이면 대충 콩 밭은 정리가 될 것 같아 다른 쪽에도 신경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급한 건 옥수수를 심어놓은 곳과 한 차례 김을 매주기는 했지만 또 풀이 정강이까지 올라온 고구마 밭이다. 모래 장맛비 후엔 여기부터 손을 봐줘야겠다.

 

                          

     <오른쪽은 고구마 줄기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낫으로나마 김매기를 해준 왼쪽은 그래도 좀 낫다>

 

낫으로 하는 김매기(7월 8일/무더움 21-30도)

 

고구마와 감자를 심어놓은 곳은 한 번 김매기를 했지만 콩 밭 풀 잡느라 신경을 안 썼더니 무릎까지 풀이 올라왔다. 다행히 오늘로 콩 밭 김매기가 끝나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감자는 호미로 풀을 매면서 함께 북주기도 하면 좋으련만 워낙 손봐야 할 곳이 많아 결국 낫으로 쓱쓱 잘라내고 만다. 아무래도 고구마, 감자 밭은 이제 호미는 무용지물일 듯하다.

 

장마(7월 10일/무더움 17-29도)

 

며칠 동안 비는커녕 무더위가 계속돼 장마예보가 무색했었는데 어제 비로 체면치레는 한 것 같다. 춘천만 해도 무려 200미리가 넘는 장대비가 하루 종일 지속됐으니 말이다. 덕분에 하루 잘 쉬기는 했지만 잡초란 게 비가 오고 나면 급속히 자라는 속성이 있어 이만저만 걱정이 크다. 게다가 이틀 정도 쉬었다 또 많은 비가 온다고 하니 고추 지주끈도 한 번 더 묶어줘야 하고, 이래저래 일이 꽤 된다. 또 느지막이 밭에 나가봤더니 고추밭에 물이 빠지지 않은 곳도 있으니 내일은 일찍부터 움직여야 할 듯하다.

 

마음은 급한데 비는 내리고(7월 12일/흐리고 비 18-28도)

 

내일부터 또 비소식인데 이번엔 제대로 된 장맛비다. 월요일에 잠깐 그쳤다 다시 수요일까지 쭉 비다. 그리도 목요일쯤 쉬었다 또 주말에 비다. 뉴스에선 장마예보를 하지 않기로 했던 기상청이 머쓱해졌다고 하는데 그러고도 남겠다.

 

어제 비 그치고 나온 밭 한쪽에 물이 고인 게 보였었다. 또 콩 밭 김매기에 잠시 소홀했던 고구마 밭과 고추 밭에 풀이 꽤 올라왔다. 수확하는 재미에 풀 올라오는 줄 몰랐던 채소밭도 손봐줘야 한다. 한마디로 할 일이 태산이란 얘기다.

 

일단 급한 게 고추 밭 배수로 정비인 것 같아 괭이부터 집어 든다. 고추는 배수가 잘 돼야 병이 오지 않는다고 하던데 물이 고였으니 어쩔 수 없다. 한 삼십 분 괭이질을 한 것뿐인데 온 몸이 땀으로 젖는다. 하루 종일 흐린 날씨에 해가 보이 않았는데 땀으로 젖는 걸 보니 아무래도 곧 비가 오려나보다.

 

어제 대충 감자 밭 제초를 했으니 오늘은 고구마 밭인데 통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어느새 덩굴을 뻗어내고 있는 줄기를 피해 낫질을 하려니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결국 두 시간 가까이 낫을 놀렸는데도 두 이랑을 다 못했다. 게다가 이런. 아까부터 심상치 않았는데 한 방울, 두 방울, 빗방울이 떨어진다. 마음은 급한데 비는 내리고, 난감지사다. 서둘러 노랗게 익은 참외 예닐곱 개와 고추, 상추, 치커리 등을 바구니에 담는데 빗방울이 점차 굵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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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2 11:39 2009/07/12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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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가는 기차는 청량리에서 출발하지요. 하지만 요즘은 종종 성북역을 이용한답니다>

돌이켜보니 꽤나 춘천가는 기차를 탔었던 듯 한데. 정작 이사 오기 바로 전 해이던 재재작년에 잠시 다녀왔던 게 처음이었으니 춘천과의 인연이란 게 특별나지 않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 누구 하나 마음을 나눌 이가 있기는커녕 딱히 알만한 이도 하나 없으니 대체 왜 춘천이란 이 낯선 곳으로 왔는지 아직까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1년이란 시간이 언제 그리 훌쩍 지났나 싶을 만큼 나름 적응을 잘 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요. 물론 때론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짜증이 치솟을 때도 있었고 이유 없는 답답함에 싸우기도 하며 물갈이를 하긴 했지만 말입니다.

 

애당초 춘천으로 가자, 정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저 교대가 있는 도시들을 지도에 죽 표시해 놓고 여기가 좋을까, 저기가 좋을까, 고민을 하다 그래도 비빌 언덕이 하나라도 있어야 한다며 골랐던 진주와 되려 그 반대 이유로 무작정 밀어붙인 춘천을 두고 한참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다 아직은 부모님들이 계시는 곳과 가까워야겠다, 는 생각에, 사과나무에 복숭아까지 심을 수 있을 만치 앞으로 농사지을 만한 곳으로 딱 좋게다, 싶어 춘천가는 기차를 타게 된 겁니다.

  

춘천과 처음 만났던 때, 작고 조용한 도시와 그 도시를 감싸고 있는 너른 물이 가장 마음에 들었어랬습니다. 또 청평사를 오르던 길에 소복히 쌓이던 눈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마음에 담아둔 풍경이었고, 조금만 걸어도 금세 아파트 숲을 벗어날 수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의 기쁨은 지금도 여전하답니다. 남들이 듣자면 조금 웃기긴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가 맘에 들었던 것도 이런 이유들에서였고요. 오솔길을 따라 오르는 도서관도 그렇고 강을 따라 걷다 가 만나게 되는 너른 둔치가 또 그렇기 맘에 들었기 때문이랍니다.

 

요즘은 어찌된 게 서울에 있을 때보다도 더 자주 가족들과 만나게 됩니다. 같이 살자 하고 한 집에 있은 후로 제사 때나 어버이날, 추석, 설 등 명절이외엔 통 얼굴 보기가 힘들었었는데 말입니다. 거리상으로 그리고 시간상으로 따지자면야 서울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혹은 북쪽 끝으로 가는 게 춘천에서 서울 가는 것보다 훨씬 짧겠지만서도 다들 이리로 오는 건 무슨 까닭일까요. 심지어 저 아래 김해에서도 벌써 세 번이나 다녀갔구요, 초대도 없었던 집들이에, 부러 찾아 온 친구도 여럿이랍니다.

 

올 초, 밭이 딸린 집을 구한다며 잠시 여기저기 쏘다녔던 적이 있었더랬습니다. 작년에 밭을 구하느라 고생했던 기억도 있었고 어차피 시골 가서 살 거면 이번 기회에 시내에서 벗어나자, 했던 겁니다. 그래 집을 내놓고는 생활정보지도 뒤적거리고 인터넷도 들락날락, 짬짬이 부동산까지 찾아다녔었는데. 그리 다니다보니 이런, 1년 가까이 춘천에 살면서도 이리 둘러보지 못한 곳이 많았습니까. 나름 다닌다, 다닌다 했는데도 고작 집 주변만 맴돌았던 셈이었습니다.

 

 

<춘천가는 기차(위)와 차창 밖 풍경(아래)>

 

춘천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습니다. 호수, 안개, 남이섬, 청평사, 중도, 위도.... 춘천가는 기차라는 노래도 그 중 하나일 겁니다. 헌데 김현철씨는 곡을 다 만들고 난 후에야 춘천엘 다녀왔다고 하네요. 하지만 그게 머 대수겠습니까. 꼭 기차를 타지 않더라도 춘천하면 아련한 무엇이 떠오르는 게 있으니까요. 그리고 춘천가는 기차, 타봤자 딱히 별 볼일 없더라, 해도 말입니다.

 

조금은 지쳐 있었나봐

쫓기는 듯한 내 생활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몸을 부대어 오면

 

힘들게 올라탄 기차는

어딘고 하니 춘천행

지난 일이 생각나

차라리 혼자도 좋겠네

 

춘천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오월에 내 사랑이 숨쉬는 곳

지금은 눈이 내린 끝없는 철길 위에

초라한 내 모습만 이 길을 따라가네

그리운 사람

 

차창 가득 뽀얗게 서린

입김을 닦아내 보니

흘러가는 한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고

 

그곳에 도착하게 되면

술 한잔 마시고 싶어

저녁때 돌아오는

내 취한 모습도 좋겠네

 

춘천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오월에 내 사랑이 숨쉬는 곳

지금은 눈이 내린 끝없는 철길 위에

초라한 내 모습만 이 길을 따라가네

그리운 사람

 

 <조만간 사라지게 될 풍경이라고 하니 오래도록 눈에 담아두어야겠습니다>

 

조만간 춘천가는 기차가 사라지게 됩니다. 에둘러 강을 끼고 산을 돌아 이 역, 저 역 사람들을 실어 나르던 그 기차가 사라진다는 겁니다. 대체 무에 그리 바쁜 것인지. 산허리를 잘라내고 강바닥에 콘크리트를 밖아 그렇게 다리를 세워 기찻길을 곧게 펴고, 구석구석 추억이 묻어 있을 그 조그만 강변역들, 마석, 대성리, 강촌역도 다 허물고 새로 짓는답니다. 아직은 서울에 갈 일이 많은 지라 복선전철화되면 웬만하면 좋게 생각하려해도, 글쎄요. 쉬이 그렇게 될 것 같진 않습니다. 아무리 책 읽기를 좋아한다, 해도 아직은 컴컴한 터널 속에서 책장만 넘기는 것보단 창밖으로 스쳐가는 들과 산에 한눈팔고 싶거든요. 그래, 요즘 서울 다녀오는 길이 무척 남다르답니다. 오래도록 아주 오래도록 눈에 담아두어도 곧 잊혀지게 될 많은 것들이 벌써부터 그리움으로 다가 오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래도 아직은 시간이 조금 남았습니다. 다행인가요. 아무래도 아쉬움이 켜켜이 쌓이기 전, 춘천가는 기차 더 많이 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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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0 14:17 2009/07/10 14:17

1.

뒷간에서 책을 보면 변비 혹은 치질에 걸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될 수 있으면 빨리 뒷간에서 나와야 하는데 책 읽기에 빠져 있다 보면 일을 그르치기 일쑤기 때문일 테지요. 그럼에도 뒷간에서 읽은 책 맛은 담배를 끊기 전 뒷간에서 피우던 담배 맛 만큼이나 중독성이 있습니다. 그래도 변비 혹은 치질에 대한 긴장 때문인지라 늘상 읽는 책들을 가지고 들어가기에는 긴 문장만큼이나 끊기가 힘들고 긴 장(chapter)만큼이나 길기만 합니다. 그래서 여기 이 두 권의 책을 뒷간 세면대 옆 한쪽에 놓아두거나 뒷간 가장 가까운 책장에 나란히 세워두고는 합니다. 둘 다 10분 이내에 읽을 수 있는 꼭지들로만 구성돼 있어 끊기도 쉽고 다른 책들에 비한다면 가볍기 그지없어 어디든 가져가기 부담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름난 이들이 한껏 멋 내서 쓴 글보다는 옆집 아줌마, 아저씨, 누나, 동생 혹은 우리 엄마, 아빠가 살면서 느낀 점들을 아무 멋도 내지 않고 쓴 글들이 더 많아 입에, 눈에 감칠맛 나기 때문이죠. 또 춘천으로 오고 난 후 가끔, 아주 가끔씩 도지는 물갈이에 딱 맞는 처방약이기 때문이랍니다.

 

2.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사무실을 영등포로 옮기고 난 후이니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이네요. 매년 받아오던 건강검진에 또 위염과 십이지장염이 발병을 했다는 얘기를 의사로부터 들었더랬습니다. 매일매일 시달리는 스트레스에 불규칙한 식사, 한 번 시작되면 삼차까진 가야 정리되는 술자리, 20년 넘게 피워 온 담배. 의사말로는 되려 이 정도면 다행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당장 담배부터 끊으라고 호통을 칩니다. “그거 못 끊으면 병 못 고칩니다.” 짝지와 함께 병원을 나와 약국에 들러 위장약을 사고 나오는 길에 그때까지도 웃도리 호주머니에 곤히 모셔져있던 담배를 휴지통에 쳐 넣었습니다. 오늘부터 담배 끊는다! 담배를 끊는 건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남들은 금단현상에 손을 떨다 삼일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손을 댔다고 하던데, 어찌된 게 금단 현상은커녕 혹여 누가 옆에서 담배를 필라치면 구토까지 나오면서 싫어지니. 모르는 이들은 참 독한 사람이다, 이 말, 저 말, 말들이 많더군요. 아무튼 그렇게 담배 냄새가 싫어지기는 했지만 딱 한 군데, 화장실에서 만큼은 싫지가 않더군요. 아니 끊었다, 생각했던 담배가 그곳에서만큼은 생각이 나는 거였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3.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 있는 책들을 보니 그세 또 2년이 지났네요. 다행히 담배는 끊었더랬습니다. 하지만 그 해 가을은 지나온 절반의 삶과 앞으로 올 절반의 삶에 대한 고민으로 마주 앉아 많은 얘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명확한 답을 찾진 못했지만 말이예요. 그리고 그 해 가을은, 함께 다녔으면 좋았을터인데 어째 시간이 허락치 않아 혼자서 귀농학교를 다녔더랬습니다. 엊그제 명예퇴직을 한 이로부터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이까지, 생협에서 필수교육으로 이수해야했던 이들로부터 부부가 함께 손잡고 온 이들과 말입니다. 또 아주 잠깐이기 했지만서도 벽제로 화천으로(벽제는 또 혼자였는데 화천은 다행히 짝지와 함께 했더랬습니다.) 땅을 일구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귀농길잡이>, <자연을 꿈꾸는 뒷간>, <내손으로 받는 우리종자>, <흙을 알아야 농사가 산다>, <소농-누가 지구를 지켜왔는가>와 같은 책들도 접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귀농학교를 수료하면서는 귀농운동본부 회원으로 가입을 했습니다. 마음을 굳힌 건 아니었지만 일단 서울은 뜨기로 의기투합한 거였죠. 지금보다는 천천히, 단순하게, 자유롭게 살기로 한 겁니다. 하지만 또 무슨 일이 그리도 많았는지 언제 귀농학교를 다녔었는지조차 잊어버리고 지냈던 어느 날, 계절이 바뀌어 눈발이 내리던 그 날, 생각지도 못했던 책 한권이 집으로 배달됐답니다.

 

4.

춘천으로 이사한 지도 그새 1년이 훌쩍 지났네요. 그동안 잘 적응했나, 싶기도 하다가 이유 없이 싸우기도 하고 또 이유 없이 짜증이 나기도 하는 걸 보니 아직은 물갈이 중인가 봅니다. 그래도 5년 전 화장실에 갈 적마다 담배 대신 사무실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낡은 책장에서 꺼내든 <작은책>과 2년 전 서울을 뜨기로 의기투합하며 귀농본부 회원에 가입하면서부터 계절이 바뀔 때쯤이면 빠짐없이 배달돼 오는 <귀농통문>이 어느새 책장 한 켠을 빼꼭히 채우고 있는 걸 보니 이제 담배는 확실히 끊은 것 같기도 하고, 무작정 서울을 뜨기도 했으니 귀농에 한 걸음 다가왔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담배는 피운 기간만큼이나 끊어야 정말 끊었다, 할 수 있고, 내 땅 한 뼘 없어도 시골로 내려가 땅을 일궈야 의기투합을 이뤘다, 할 수 있으니 아직은 아닐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잠시 뒷간에 들어가 <작은책> 혹은 <귀농통문>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처음 마음 잃지 않고 되새김질하는 것. 그것 하나면 이 물갈이, 힘들지만은 않겠다,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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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8 11:06 2009/07/08 11:06

첫째 날, 함양에서 안의까지(2006년 6월 3일)

 

함양행 시외버스에 오르니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 벌써부터 뜨거운 햇살이 느껴진다. 요 몇 일 한여름 날씨가 지속될 거라고 하더니 한낮도 아니고 차안인데도 열기가 심상치 않다. 아무래도 이번 여행은 더위와 한바탕 해야할 듯.

 

함양에 도착하니 이런, 걷기는커녕 땡볕에 일분도 채 서있지 못하겠다. 배낭을 짊어진 등뒤로는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무조건 쉬기로 하지 않았어도 이거야말로 쉬어가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날씨다. 다만 함양에 왔으니 가까운 곳에 위치한 상림에서 쉬어가야 할텐데 그곳까지 몸을 이끌지 못하는 게 다 저 뜨거운 햇살 때문이다.

 

결국 읍내 한 패스트푸드점에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이곳은 어린아이들의 놀이마당이다. 생일잔치를 하는 아이들이 벌써 두 팀이다. 첫 번째 팀은 여자아이들과 남자아이들이 섞여 한참 동안 매장안을 휘젓고 다니며 소란을 피우더니 두 번째 팀은 남자아이들만 대 여섯이 들어와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며 서로 쑥스러운 모양으로 선물을 건네주고, 받고 한다. 어쩜 저리도 예쁠까. 너무너무 사랑스러운 모습들이다.

 

4시가 넘어 출발했는데도 땅 밑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로 숨이 턱턱 막힌다. 걷기 시작한지 이제 한 시간도 안됐는데 옷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고 발바닥은 후끈후끈 하다. 땀도 식히고 쉬어갈 겸 부야마을 부야상회에 들어가는데, 인심 좋은 아주머니 덕에 비록 찬밥과 쉰 김치이지만 생각지도 않게 허기까지 달랠 수 있다. 오랜만에 다시 느껴보는 푸근한 시골 인심이다.

 

함양에서 안의로 이어진 24번 국도변에는 정여창고택과 옥계신도비, 허삼둘가옥 등이 있는데 모두 지나쳤고, 그렇게 한 눈 팔지 않고 걸었는데도 안의에 도착하니 해가 완전히 저물어 사방이 어둡다. 읍내에는 여관이 몇 눈에 띄기는 하나 미리 준비해 둔 민박집에 전화를 걸고는 찾아 나서는데.

 

<덕유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송계사를 찾아 가는 길에 만난 황산마을>

 

푸근한 인상을 가진 할머니 한 분이 저만치서 마중을 나오시는데, 귓속말로 “집에 방이 없어. 어찌 마루에서라도 잘텨? 딴데 가서 야그하면 안 되는데. 다믄 만원만 주고 자”하신다. 우리로서는 마다 할 이유가 없다. 해서 오늘은 단돈 만원으로 숙박을 해결한다.

 

둘째 날, 안의에서 덕유산 아래 송계사까지(2006년 6월 4일)

 

땡볕에 걷는 것을 피하고자 오늘은 아침과 저녁나절에만 걷기로 했다. 해서 5시에 일어나 어제 저녁 준비해 둔 과일과 빵으로 이른 아침을 해결하고는 길을 나선다. 하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서인지 몸이 뻐근하고 졸음이 쏟아진다. 길가에 앉아 스트레칭도 해보고 한참을 쉬기도 하나 여전히 몸은 무겁기만 하다.

 

바래기재를 넘어 고학리에 도착하니 예전 같았으면 이제 일어났을 시간인 7시 30분. 약수정 식당에서 맛난 청국장에 아침을 먹고 급한 화장실도 해결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조금 전과는 달리 한결 다르게 몸도 가볍다. 역시 사람은 먹고, 싸고를 해결해야만 하는가보다. 하지만 졸음은 먹고 나서인지 더 쏟아진다.

 

점심을 먹으면서 쉬기로 했던 수승대까지의 길은 오가는 차도 많은데다 길을 내기 위해 여러 곳에서 공사를 하는 바람에 공사차량까지 질주를 해 무척 걷기 힘들다. 그리고 중간중간 거창군에서 펴낸 관광안내도에 나온 명소들 구경을 잔뜩 기대를 했지만 그다지 볼거리들은 아닌 듯하다.

 

장풍숲은 길가에 있다는 것 빼고는 남도지방이라면 쉽게 볼 수 있는 적송 숲으로 이루어져있어 시시한데다 석재상, 기와공장, 기도원, 모텔 등이 제각각 주변에 몰려 있어 영 마뜩치 않다. 또 수승대는 국민관광지라는 요란한 이름으로 입장료까지 받고 있지만 어째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명색이 계곡이라지만 썩 맑지 않은 물도 그렇고 눈썰매장까지 갖춘 모양새도 그렇다. 하지만 벌써부터 아이들이 계곡에서 물장난을 치는 걸 보면 한여름 피서철로는 어떨지 모르겠다. 해서 우리는 수승대 못 미쳐 만날 수 있는 이름 모를 적송 숲 속에서 늘어지게 낮잠도 자다가 책도 보다가 하면서 4시까지 쉬어간다.

 

햇볕이 한 숨 죽었거니 하고 나왔는데 아직도 땡볕이다. 불볕더위라는 말이 새삼스럽다. 그 땡볕에 황산마을 고가촌 돌담길을 걸었으이 고즈넉한 맛은커녕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라 아쉬움이 크다. 에둘러 마을길을 길게 돌고 또 논길을 따라 걸으며 눈으로 담아둔다.

 

 

<에둘러 둘러봐야 할 황산마을 돌담길>

 

황산마을을 지나 송계사 입구까지의 길은 오전에 걸었던 길과는 달리 오가는 차도 거의 없고 소나무 숲과 벚꽃나무, 그리고 은행나무가 번갈아 가며 이어지고 있어 걷기에 참 좋은 길이다. 게다가 햇볕도 많이 잦아든 데다 북상면 13경 몇 몇은 쉬엄쉬엄 둘러보며 눈요기를 할 수 있어 아침과는 다르다.

 

송계사 입구에 도착하니 해는 이미 저물었다. 다행히 며칠 전 새로 문을 연 송계산장이 있어 거창이나 낮에 지나쳐왔던 수승대로 나가지 않아도 될 듯하다. 게다가 속리산 자락에 들어와서인지 하늘 가득 별이 반짝인다. 기분 좋은 밤이다. 하지만 늦은 저녁에 동동주로 목을 축이니 눈까풀이 자꾸만 내려앉아 오랜만에 하는 별 구경이 짧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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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7 21:34 2009/07/07 2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