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수확

from 09년 만천리 2009/08/09 22:23

<크기는 그리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겨우 반 이랑만을 캐냈는데도 박스가 가득 찬다>

 

감자 수확 - 둘째 날(8월 3일/맑음 21-27도)

 

겨우 이틀째 감자를 수확했는데 베란다가 꽉 찼다. 감자를 오래 보관하려면 햇볕에 한 이틀 정도 내놓은 다음 서늘한 곳에 놓아야 한다기에 베란다에 늘어놓았는데 그새 놓을 데가 없다. 이제 한 이랑을 파냈고 다섯 이랑이 더 남았으니 아무래도 감자를 어찌 처리해야 할 지 빨리 알아봐야겠다. 중곡동이며, 의정부, 김해로 한 상자씩 보낸다 해도 지금 대로라면 적어도 두 상자는 더 넘게 남을 듯하다.

 

콩 밭 김매기(8월 4일/무더움 20-31도)

 

콩 심은 곳은 두 번이나 김매기를 해줘서인지 그닥 신경을 쓰지 않았어도 풀로 엉망이 되지 않았다. 다행이지 싶다. 이 바쁜 와중에 콩 밭까지 김매기를 했다면 정말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판이니 말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감자 수확 와중에 콩 밭을 들여다보니 고랑에 풀이 허리만큼 자라 있다. 해서 엊그제부터 한 시간은 감자 캐내고 한 시간은 콩 밭 김매기하고 마지막으로 한 시간은 고추 밭 정리를 한다.

 

모라꼿(8월 7일/흐림 20-31도)

 

어제 밤, 이틀을 또 서울에서 보내고 춘천으로 돌아오는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태국어로 에머랄드를 뜻하는 태풍 모라꼿의 영향이다. 국지적으로 집중호우를 대비하라고 하던데 다행히 아침에 눈을 뜨니 구름이 많고 흐리기는 하나 비가 쏟아질 것 같진 않다.

 

7월 초부터 매일 적게는 두어 개에서 많게는 예닐곱 개까지 열매를 맺어줬던 참외와 역시 많게는 비닐로 한 봉지 이상을 딸 수 있었던 방울토마토 심은 곳에 풀이 잔뜩 이다. 월요일쯤 여기저기 감자를 보내려 생각하고 감자 캘 생각으로 나왔는데 이 꼴을 보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겠다. 해서 감자 캘 호미가 참외, 방울토마토 심은 곳으로 향한다.

 

두 시간 가까이 땀을 뻘뻘 흘리며 풀을 다 뽑아주고 참깨 심은 곳까지 김매기를 하니 바지까지 땀으로 흠뻑 젖는다. 저녁 먹을 때가 지났으니 배가 고프고, 배가 고픈 건 토마토를 따 먹고 참외를 깎아 먹으면 된다지만 땀으로 젖은 옷은 어찌할 방도가 없다. 서둘러 땀이 식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감자 수확 - 셋째 날(8월 9일/무더움 23-33도)


어제는 모라꼿의 영향으로 소나기가 간간이 내렸다. 덕분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바쁜 가운데 하루를 쉬게 됐다. 며칠 전 병들어 죽은 고추 밭에 또 고추 몇 주가 시들시들해 뽑아도 줘야 하고, 비 내린 후면 부쩍 풀이 자라나는 고구마 밭도 김매기를 해줘야 하고, 또 캐다 만 감자도 캐내야 하는데 말이다. 

 

아침부터 마음은 벌써 밭에 가 있지만 올 들어 가장 무더운 날이라는 게 실감나듯 내려쬐는 햇볕 때문에 감히 나설지 못한다. 결국 5시가 넘어서야 겨우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밟으니 벌써 해가 뉘엿뉘엿하다. 서둘러 감자 반 이랑 정도 캐내고 제일 급한 고추 밭 정리에 나선다. 일단 아래부터 타들어가듯 죽은 고추는 떼 내고 바짝 마르고 시들해지긴 했지만 빨갛게 된 고추는 따로 봉지에 담아둔다.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한 번 햇볕에 말려볼까 해서 말이다.

 

감자를 반 이랑 조금 넘게 캐냈는데도 가지고 간 10kg짜리 쌀 포대가 반 넘게 찬다. 힘겹게 자전거 뒤 짐받이에 실고 출발하려니 무게가 심상치 않다. 게다가 무거워 바람이 빠진 건지, 펑크가 나서 바람이 빠진 건지 바퀴에 바람이 잔뜩 빠져 있다. 아무래도 집에 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겠다. 

 

<씨감자 하나 심은 곳에 알감자 조림 하기 딱 좋은 것부터 꽤 씨알이 굵은 것까지 다양하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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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9 22:23 2009/08/09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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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저병??

from 09년 만천리 2009/08/07 15:52

허리까지 자란 콩(7월 28일/흐림 21-28도)

 

어제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다녀와서인지 꽤나 늦은 시간에 일어나고 말았다. 덕분에 늦잠을 자긴 했지만 점심 먹고 나서부터 죽 안절부절 못한다. 가뜩이나 일이 밀려있는데 날씨까지 오락가락, 어찌해야 하나 갈팡질팡 이다.

 

결국 5시가 다 돼서야 급한 것만 하고 오자, 며 자전거에 오르는데 막상 밭에 도착하니 그게 쉽지가 않다. 허리까지 자란 콩 밭 김매기에, 이제 막 줄기를 뻗어내고 있는 고구마 밭 제초 작업까지 해 질 때까지 일이다.

 

맑은 하늘(7월 29일/무더움 20-31도)

 

장맛비가 그치고 나니 무더위가 기승이다. 연일 30도를 오르내리는데, 이런 날씨에 밭에 가면 가만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그래도 엊그제부터는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데다 맑고 높은 하늘이 보여 가만 앉아 있으면 기분만은 좋다. 해질녘 잠시 밭에 나가 고구마 심은 곳 김매기 쬐끔하고는 참외를 또 한 바구니 담아 온다.   

 

탄저병??(7월 30일/무더움 20-32도)

 

고추 몇 주가 죽어 뽑아내고 말았다. 아래쪽 빨갛게 된 고추부터 시작해서 위쪽 고추까지 마치 타들어 간 것처럼 죽어간 것이다. 아무래도 죽어 가는 모양새를 보니 탄저병이 아닌 가 싶다. 연작을 하거나 고온다습하면서 비가 많이 오는 경우 발생한다고 하던 데. 이, 삼주 장맛비가 퍼붓듯 내리고 난 후 급격하게 기온이 오른 탓인지, 고추 심은 곳이 작년에도 고추를 심었던 곳이었던 게 이유인지 확실치는 않다. 아무튼, 이유야 뭐든 간에 탄저병이라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병이 더 번지기 전에 서둘러 목초액이라도 희석해서 뿌려줘야겠다.

 

          

 

 

감자수확 - 첫째 날(8월 1일/무더움 22-30도)

 

5월 7일과 8일에 감자를 심었으니 이제 감자를 수확할 때다. 물론 2주 전쯤인가부터 조금씩 감자를 캐서 삶아 먹기도 하고 된장국에 넣어 먹기도 하고 해서 감자 맛을 보기는 했다. 이제 강원도 감자 맛을 본격적으로 볼 수 있는 게다.

 

감자 심은 이랑이 모두 6개가 넘으니 한 번에 다 캐내기는 어렵다. 혼자 일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보니 한 번에 감자를 실을 수 있는 양이 한도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 해서 조금씩 수확해 집으로 옮겨야하는데, 오늘만 반 이랑 정도를 캐냈는데도 자전거 뒤 짐받이가 넘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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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7 15:52 2009/08/07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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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무주군 설천면에서 민주지산 아래 조동리 산촌마을까지(2006년 7월 1일)

 

중독이다. 장마전선이 북상하고 주말에는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사나흘 전부터 있었고, 오늘 아침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보고서도 기차에 앉아 있는 걸 보니. 이젠 연휴나 휴가만이 아니라 주말만 다가오면 부쩍 마음이 동하고, 몸이 근질근질하니.

 

천안역을 지나면서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가 대전역을 지나니 제법 굵어진다. 당연 비옷과 우산을 준비했고, 비가 오더라도 ‘오늘은 무조건 걷자’며 나섰지만 그래도 걱정이다. 영동역에 내리니 이건 굵은 정도가 아니라 장대비고, 우산을 펼쳐들었지만 금세 옷이 다 젖는다. 늦은 점심도 해결할 겸 역 앞 분식집에 들어가니 무주로 가는 버스 시간이 바로 코앞이다. 허겁지겁 깁밥 몇 줄 집어 들고는 버스에 오른다.

 

무주에서 한 번 더 버스를 갈아타고 설천에 도착하니 다행히 빗줄기가 조금은 가늘어졌다. 비옷을 걸치고 길을 나서니 걱정보다는 되려 ‘시원하다’.

 

설천을 출발한지 30여분 만에 충청북도로 들어선다. 일곱 번째 여행에서 전라북도로 넘어와 다시 여덟 번째 여행부터는 경상남도의 길을 걸었는데 이제 열 번째 여행에서 충청북도에 발을 디딘 것이다. 다시 쏟아지는 빗줄기에 옷이며 신발까지 다 젖었지만 서로 안아주며 다독인다.

 

맑은 날이었다면 민주지산을 바라보고 걸었을 텐데 지금은 세찬 빗줄기 너머 산허리 구름만 보일 뿐이다. 그래도 지나는 차하나 없어 길을 전세 낸 마냥 걸으며 목청 높여 노래도 불러본다.

 

민주지산 아래 산촌마을로 유명한 조동리에 도착하니 아직 해가 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두 시간이 넘게 빗속을 걸은 덕에 속옷까지는 아니지만 신발이며, 바지 등이 축축이 젖어 서둘러 민박집을 정한다. 주인 아주머니가 손수 해주신 맛난 저녁을 먹고 나니 어둑어둑하다. 들어설 때는 꽤나 넓은 방인 거 같았는데 두 짝의 젖은 신발 속에 신문지를 한 줌씩 말아 넣고, 두 짝의 위, 아래 젖은 옷가지들을 방바닥에 죽 펼쳐 늘어놓으니, 겨우 둘이 나란히 누울 수 있는 자리만 남는다. 내일은 비가 그쳐야하는데.

 

<저 오솔길 아래가 하룻밤 묵어갔던 조동리 산촌마을이다>

 

둘째 날, 해발 800m 도마령을 넘어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과 호두나무를 따라 황간까지(2006년 7월 2일)

 

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길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신발도 뽀송뽀송 말랐고, 비도 그친 데다 길은 오르막이지만 맑은 주위 풍경에 몸과 마음 모두 가뿐했으니. 헌데 오르막길을 30여분 올랐을까? 빗줄기가 조금씩 굵어지더니 이내 장대비가 내린다. 버스정류장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데 마치 우리를 유혹이라도 하듯 몇 시간에 한 대씩 온다는 시내버스가 저 아래서 올라온다. 어쩔까. 비가 그치기를 기다릴까. 이대로 집으로 돌아갈까. 어제 일기예보는 오전까지만 오고 그친다고 하던데.

 

우리 앞에 서 있었던 버스가 저만치 고갯길을 내려 보이지 않지만 한참을 멍하니 서있다 다시 길을 나선다. 비가 그치지는 않았지만 버스도 떠난 마당에 언제까지 이곳에 머물러 있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굽이굽이 해발 800m에 자리 잡고 있는 도마령을 향해 한참을 오르니 비구름 속으로 들어와서인지 비는 그치고 안개가 잔뜩 긴 것 마냥 바로 코 앞 길마저 분간하기 힘들다. 날이 좋았다면 멀리 어제 지나온 길들과 포도밭이 발아래 펼쳐질 텐데, 것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아쉽다.

 

도마령을 넘어 산 아래로 조금씩 내려오니 구름 아래라 그런지 또 비가 내린다. 어설프게 구름 중간에 있느니 아예 구름 속으로 들어가던가 저만치 구름 아래에 있던가 해야 할 듯하다. 해서 발걸음을 빨리 해 산 아래로 내려간다. 얄궂은 이름의 고자리를 지나 고자천을 따라.

 

 

<도마령을 힘겹게 넘으니 하루종일 걸어야 겨우 차 한, 두대 지나가는 호젓한 길을 만나게 된다>

 

논이 조금씩 있는 걸 보니 산 아래로 많이 내려온 듯하다. 헌데 어째 지나는 마을마다 가게 하나 보이지를 않고 쉬어 갈만한 곳도 보이지 않는다. 버스 정류장도 어제 넘어온 길보다 더 뜨문뜨문 있고 지나는 차도 없다시피 하다. 게다가 4시간이 넘게 걸었는데도 아직 골짜기에 있는 듯한 느낌이고 산을 돌아서면 너른 들이 보이겠거니 하며 많은 산을 돌아섰는데도 또 산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아직 다 여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실컷 포도와 호도도 구경하고, 깊은 산세를 느낄 수 있기에 힘든지 모른다.

 

1시가 넘어서야 상촌면 면소재지에 도착했다. 그 사이 비는 그쳤고 구름 사이로 간간이 따가운 햇볕이 비치는 가운데 5시간이 넘게 걸으면서 발을 뻗으며 쉬지 못한지라 몸이 천근만근이다. 그래도 뜨거워서 시원한 올갱이국밥과 차가워서 시원한 냉콩국수로 배를 채우고는 파출소 옆 쉼터에서 한참을 쉬고 나니 살 것 같다.

 

구름 사이로 자꾸만 얼굴을 내미는 해를 피해 그렇게 3시까지 쉬다 다시 길을 나선다. 하지만 도마령 넘어 딱 한 번 밖에 보지 못하고 있는 이정표 때문에 길을 걷는 게 여간 지루하지 않을 수 없다. 대체 얼마나 가야 황간인지, 얼마나 걸어왔는지 알 수 없는 데다 가지고 있는 지도마저 그 거리를 가늠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까짓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야 이정표 없어도 몇 킬로미터는 금방 이겠지만 걷는 이들에게는 한나절이고, 배려가 아쉬울 뿐이다.

 

황간을 바로 코앞에 두고 다시 소나기를 만났는데, 어제오늘 함께 한 비옷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다. 거의 뛰다시피 해서 터미널에 겨우 도착하니 길 위에 퍼붓듯이 쏟아지는 비가 오히려 시원하다.

 

* 열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 첫째 날 : 무주군 설천면 사무소에서 민주지산 바로 아래 충청북도 영동군 조동리 산촌마을까지 약 10km. 걸은 시간 2시간 30분.

- 둘째 날 : 조동리에서 끝없는 포도밭과 호두나무를 따라 황간까지 49번 지방도로를 따라 약 32km. 걸은 시간 8시간 40분.

 

* 가고, 오고

영등포에서 무주군 설천면까지는 기차와 두 차례의 버스 갈아타기 끝에 도착할 수 있다. 영동역까지는 열차편이 금방금방 있어 쉬이 갈 수 있으나 영동에서 무주, 무주에서 설천으로의 이동은 버스시간이 거의 한 시간 간격이어서 시간 맞추기가 어렵다. 미리미리 준비를 잘 해두어야 한다. 황간에서는 구미발 강남터미널행 고속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오후 1시 30분과 저녁 8시 달랑 하루 두 차례밖에 없는 기차보다 편하다.

 

* 잠잘 곳

도마령을 넘기 전에는 조동리 산촌마을과 민주지산 휴양림 인근에 민박을 쉬이 구할 수 있으나 음식점은 민박집에 부탁을 해야 한다. 조동리에서 도마령을 넘어 황간까지는 상촌면과 매곡면 면소재지를 제외하고는 음식점은커녕 슈퍼하나 찾아볼 수 없다. 하니 조동리에서 출발한다면 그곳에서 간식과 물 등을 단단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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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30 21:45 2009/07/30 21:45

올 초, 역시나 밭 구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좀 더 좋은 밭을 얻어 보겠다는 욕심 아닌 욕심으로 작년에 지었던 밭을 놓쳤던 게 일의 시작이었고 안 되겠다 싶어 생활정보지까지 뒤적거리다 장학리로, 사우동 솔밭으로, 정족리로, 송암동으로 연일 허탕을 치더니 종국엔 농지원부가 뭔지도 모르는 지금 밭주인을 겨우 겨우 만났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작년보단 작물들이 꽤나 잘 자라는 것 같아 구할 때 가졌던 마음 졸임을 다 잊고 있으니 썩 나쁜 기억으로만 남을 것 같진 않습니다.

  

<집은 춘천 서쪽 끝트머리에, 밭은 동쪽 끝트머리에 있답니다. 어찌..... 밭이 넓나요?>

 

작년에 농사를 지었던 밭은 평수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처음 농사를 짓는 거라 처음부터 무리하지 말자는 생각에 작은 밭을 구했거든요. 그때도 생활정보지에 내 놓은 광고를 보고 구했습니다. 연고라고는 친구 하나 없는 곳에서 인데다 급하게 이사를 하느라 시내에 아파트를 얻었기에 밭 구하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그래도 봄농사 시작하기엔 좀 늦긴 했지만 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밭을 구했으니 정말 다행이었죠.

 

<집을 나서 처음 만나게 되는 순환도로에는 지금 경춘복선전철 공사가 한창이랍니다> 

 

연일 장맛비가 계속 내리니 밭에 나가는 시간도 자연스레 줄었습니다. 애초 한 낮 더위는 피해 새벽녘과 해질녘을 전후해 서너 시간씩만 일을 하기로 했던지라 지금처럼 비가 계속되면 다른 이들보다 일이 더 쌓이게 되지요. 하지만 고추 몇 주가 쓰러진 거 빼곤 큰 피해도 없고 제때 풀을 잡아주지 못해 무릎까지 풀이 난 곳만 빼면 크게 손 볼 곳이 없으니 다행입니다. 그래도 가끔씩 맑은 하늘이 보이거나 잔뜩 흐려있어도 비가 오지 않으면 바로 바로 자전거에 오릅니다. 틈날 때마다 김매기도 해주고, 지주대도 다시 묶어주고, 열무며, 알타리를 심을 곳도 손봐야 하니까요.

 

<공지교에서 대룡산을 바라본 보습입니다. 다리 아래로는 의암호로 흘러들어가는 공지천이 흐릅니다>

 

밭은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대략 6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문전옥답(門前沃畓)이란 말이 있듯이 집 근처에 밭이 있다면 좋으련만 그렇지가 않은 거죠. 해서 밭에 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고 시간도 꽤나 걸린답니다. 차가 있다면 채 10분도 걸리지 않을텐데, 자전거로 위험한 곡예를 하듯 찻길을 따라 때론 긴 오르막길도 넘어 가려니 그런 것이죠.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남들은 시간 내고 돈 내서 운동한다던데 뭐 운동하는 셈치고 열심히 페달을 밟습니다. 그래도 가끔 힘이 부칠 때면 집 뒤 조그만 산 하나만 넘으면 금방이었던 작년 밭이 떠오르긴 합니다.

 

<작년에 텃밭 농사를 지었던 곳은 이런 멋진 호숫길을 따라 갈 수 있었답니다>

 

아직도 춘천하면, 중도와 아침 안개가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정작 춘천으로 이사한 이후로도 여태 호수를 건너 둘러보지 못했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학교와도 거리가 꽤 멀고 교통편도 그리 좋지 않은데도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가 왠지 모르게 처음 본 순간부터 꽤나 끌렸습니다. 베란다에서나마 뒷산을 볼 수 있는 것도 그렇고, 조그만 오솔길을 지나 만나게 되는 도서관도 그렇고, 무엇보다 공지천에서부터 의암호를 끼고 돌아 중도에를 건널 수 있는 배터까지 연결된 산책길이 마음에 들었던 겁니다.

 

<초기 도시계획 단계에서 각 교차로에 1호, 2호, 식으로 불렀던 것이 그대로 지명으로 남은 팔호광장입니다>

 

<팔호광장을 지나면 곧 긴 오르막이 나타납니다. 이 언덕만 아니었으면 밭에 가는 길이 꽤 수월할텐데.....>

 

올 해 얻은 밭에 가는 길은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 보기엔 우습기까지 하겠지만 도심을 가로질러 가야합니다. 다행히 시청을 중심으로 한 명동 한복판을 지나지는 않지만 남부시장과 운교사거리며, 팔호광장 등을 거쳐야 하니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집은 춘천 서쪽 끄트머리에 밭은 동쪽 끄트머리에 있네요. 아무튼 이리 도심을 가로질러 가려니 도무지 밭에 가는 맛이 나질 않습니다. 게다가 자전거 뒤 짐받이에는 괭이며 삽을, 앞 짐바구니에는 호미며 낫을 싣고는 밀짚모자를 쓴 채 질주하는 모습이라니. 참 멋대가리 없습니다. 그려.

 

그에 비해 작년에 얻었던 밭에 가는 길은 나름 농사짓는 폼을 잡을 수 있을만했더랬습니다. 집이 워낙 변두리에 있었던 터라 고개 하나만 넘으면 곧 산과 논과 밭이 흩어져 있어 자전거를 타고 갈라치면 경운기도 ‘털털털털’ 다니고 소똥 냄새도 엔간히 났으니까요. 게다가 좀 전에도 얘기했던, 의암호에 자리 잡고 있는 중도를 바라보며 달릴 수 있는 산책길이 집까지 연결돼 있었으니까요.

 

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움직여야겠습니다. 지난주까지 퍼붓던 장맛비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거든요. 하루걸러 200미리, 130미리 장대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물이 아직도 빠지질 않고 있습니다. 또 고추도 몇 주 쓰러졌고 오이, 호박, 토마토, 방울토마토에 세워줬던 지주대도 흔들흔들하거든요. 게다가 모처럼만에 어제 서울 나들이를 하는 바람에 또 이틀을 밭에 나가지 못했답니다. 그래 일이 많거든요. 아 참. 내일은 밭에 다녀오는 길에 잠시 자전거포에 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상하게시리 며칠 전부터 페달이 ‘삐걱삐걱’ 소리를 내는 게 기어도 뻑뻑하니 아무래도 손을 좀 봐야 할 것 같거든요. 밭에 오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자전거가 고장이라도 나면. 당장 걷고, 버스타고, 또 걷고. 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합니다.

 

 

 

 

 

<이제 밭이 코 앞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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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8 23:05 2009/07/28 23:05

 

<장맛비에 쓰러지길 두 어번, 잎이 누렇게 되고 아래쪽 고추부터 썩어가기 시작했다(위).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했으나 결국 10여주를 뽑아낼 수밖에 없었다(아래).>

 

장마 소강상태(7월 21일/무더움 23-30도)

 

거의 일주일 넘게 이틀 간격으로 쏟아 붓던 장맛비가 그쳤다. 예보로는 당분간 비가 오지 않겠다고 하는데 밭 상태를 봐선 정말 다행이지 싶다. 어제 하루를 쉬고 나왔는데도 아직까지 고추 밭 배수로에 물이 쫄쫄 흐르고 있으니 말이다. 아마 이대로 며칠 더 비가 왔다면 고추 농사 끝났을 거다.

 

모처럼 아침 일찍 나왔더니 꽤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심어놓고 통 들여다보지 못했던 옥수수 밭 김매기도 하고, 한 번 풀을 뽑아줬던 고구마 밭도 조금 손을 댔으니. 하지만 신발은 이슬에 다 젖고 옷은 땀으로 범벅이니 꼭 아침이라고 해서 일하기 쉬운 것만은 아니다. 더구나 일 끝내고 돌아갈 때쯤이면 해가 중천에 떠서 되려 더 덥기만 하다.

 

장맛비가 그렇게 내렸는데도 빨간 토마토와 방울토마토가 주렁주렁이다. 참외도 서너 개 노랗게 됐고. 요즘만 같으면 과일 주전부리가 부족함이 없겠다. 매일매일 따내도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또 열리니 말이다.

 

아침안개(7월 22일/무더움 19-30도)

 

장맛비가 그치니 춘천 본래의 날씨로 되돌아 왔다. 큰 일교차, 그리고 그로 인한 안개.

 

저녁나절에 일하는 것과 아침녘에 일하는 것, 둘 다 장단점이 있다. 우선 저녁에 일을 할 경우, 우선 일하는 데 덥지가 않아 좋다. 밭 주변에 그늘을 만들어 줄만한 거라고는 거의 다 지어가고 있는 아파트뿐인데 밭에서 보면 서쪽 방향에 있어 해질녘에 그 덕을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늘을 만들어 주는 시간에 맞춰 나가다 보면 금세 어둑어둑해져 일하는 시간이 짧아진다.

 

다음 아침에 일하는 경우는, 그 반대라고나 할까. 일단 밭에 도착할 때까진 선선한 게 좋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해가 뜨는 속도와 비례해 기온이 오르기 시작한다. 그러다 배가 고파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면 벌써 한 낮 더위와 맞먹게 된다. 그리고 곧 땀으로 범벅이다. 그러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얼마나 멀게만 느껴질까. 하지만 저녁때 두어 시간 일하는 거에 비하면 근 서, 너 시간은 너끈히 있을 수 있으니 딱 언제가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장맛비 때문이기도 하고 무더위 때문이기도 하고 저녁나절에 일하다 오늘부터는 다시 아침에 나오기로 했다. 앞에서 말했듯 더운 게 문제이긴 하지만 워낙 일이 밀려 있기 때문이다. 엉성해진 지주대도 다시 묶어줘야 하고,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김매기도 해야 하고, 곧 감자도 캐야 하기 때문이다.

 

토마토케첩(7월 23일/무더움 20-29도)

 

연일 토마토가 빨갛게 열린다. 둘이 먹기엔 만만치 않은 양이다. 사실 토마토만 그런 게 아니다. 참외도 그렇고, 방울토마토도 그렇고, 채소는 모종을 10개, 20개만 심어도 한참 열매를 만들어 낼 땐 주체하기 힘들다.

 

작년엔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탓에 채 익지도 않은 토마토를 두 바구니가 넘게 따서 식초에 담구기도 했다. 설탕 조절을 잘못해서인지 그다지 맛이 나지 않아 아직까지 세 병이나 남아 있긴 하지만 그런대로 오래두고 먹을 수 있게 만든 셈이다.

 

오전에 세 시간 가량 옥수수 심은 곳과 채소 심은 곳 김매기를 해주고, 지난 장맛비에 엉망이 된 지주대도 다시 튼튼히 세워도 주고, 역시나 빨간 토마토 한 바구니를 따서 집으로 오니 냉장고 과일 칸이 가득 찬다. 대체 이 많은 걸 어쩌나.

 

결국 토마토를 다 끄집어내고는 무르거나 따온 지 오래된 것들을 골라내 작년에 담갔던 매실액을 섞어 케첩을 만든다. 토마토가 워낙에 단맛이 많아 매실액을 조금만 넣었는데도 다 만들고 나니 어찌된 게 파는 것 마냥 달기만 하다. 그래서일까. 할 땐 많아 보였는데 만들면서 맛보고, 다 만들고 밥에 조금 비벼먹고, 또 감자에 묻혀먹으니 한 병도 채 안 된다. 이런.

 

고추를 뽑아내다(7월 25일/흐림 18-25도)

 

결국 고추 10여주를 뽑아내고 말았다. 지난주까지 퍼붓던 장맛비에 쓰러졌다, 일으켜 세웠다, 다시 쓰러졌다, 를 반복했던 고추들이 시들시들하더니 몇 주는 살아나고 몇 주는 잎이 몽땅 시들해지며 아래쪽 고추부터 말라가 하는 수 없이 뽑아 버린 것이다. 그래도 짱아찌나 부각이라도 만들 요량으로 말라비틀어진 것들을 빼고 나머지 고추를 다 거두니 비닐봉지로 세 봉지다.

 

죽어가는 고추를 다 뽑아내고는 어제 내린 비로 또 물이 쫄쫄 빠지고 있는 배수로를 다시 파내고 나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난다. 서둘러 호박 지주대도 다시 튼튼히 묶어주고 고추와 콩 심은 곳에 제초 작업을 두 이랑 하고 곧 자전거에 오른다. 모래 있을 조카 백일 선물 때문에 저녁에는 시내로 나가야하기에.

 

<참외, 토마토, 호박, 오이, 방울토마토, 가지... 우와 하루에 이만큼씩이나? 감자는 좀 있다 한 번에 캐야겠다>

 

풍성한 여름(7월 26일/맑음 18-25도)

 

내일은 모처럼 서울 나들이다. 겸사겸사, 올라가는 김에 맛 뵈기로 한참 많은 열매를 만들어주는 호박이며, 참외, 토마토 등을 한 바구니씩 따가야겠다. 해서 일요일이라 쉬려했지만 잠시 밭에 들르는데, 조금씩만 담는다고 했는데도 이것저것 담으니 자전거가 다 무거울 지경이다. 정말 풍성한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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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7 20:33 2009/07/27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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