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물고추

from 09년 만천리 2009/08/18 21:16

빨간 고추(8월 10일/무더움 20-30도)  

 

확실히 작년에 비해 고추 농사는 잘 되가는 듯하다. 아직까진. 일단 몇 개가 죽어나가긴 했지만 장마를 별 탈 없이 보냈고, 빨간 고추가 아래쪽부터 서서히 올라오는 게 이대로만 간다면 꽤나 많은 고추를 수확할 수 있을 것 같으니 말이다. 그래도 통풍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또 이미 달린 고추에 영양을 더 주기 위해서도 곁가지로 나온 고추 잎들을 따주어야 한다.

 

두 시간이나 무릎으로 기다시피 하며 하나하나 일일이 고추 잎을 따니 땀도 많이 나고 무릎도 아프다. 게다가 웬 모기떼가 이리도 극성인지. 아마도 땀 냄새를 많고 모여든 것일 텐데, 땀 식힐 시간이 있다면야 어찌 해보겠지만 내일부터 비가 온다고 하니 그러지도 못한다. 하는 수 없다. 모기가 물든 어쩌든 해질 때 까진 아무 생각 없이 일만 하는 수밖에. 

 

첫물고추 - 첫째 날(8월 11일/흐린 후 비 22-25도)

 

오후부터 장대비가 온다고 한다. 이 비는 내일까지 중부지방에 많은 비를 쏟아낸다고 한다. 지난 번 장맛비로 이미 고추 몇 주를 뽑아냈으니 비가 더 온다고 해도 비 피해를 받진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걱정이다.

 

비가 그치고 나면 또 무더위가 지속될 거라는 장기예보가 있으니 아무래도 첫물고추를 수확해야할 듯하다. 해서 어제부터 시작한 고추 밭 정리를 잠시 멈추고 빨간 고추 수확에 나선다.

 

비 온다는 소식에 서둘러 밭에 나왔는데도 겨우 한 시간이나 고추를 땄나. 비가 후두둑 떨어진다. 조금만 더 따면 한 이랑은 딸 수 있건만, 어찌할까 잠시 고민이다. 아무래도 비가 오는 가운데 고추를 따게 되면 좋지 않을 것 같아서다. 하지만 마음만 그렇지 몸은 정반대다. 다섯, 여섯 주만 손을 보면 한 이랑을 끝낸다는 눈치에 쏟아지는 빗속에서 고추를 따낸다.

 

결국 10여분 더 일을 한 후에 한 이랑에 달린 고추를 다 따낸 후에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에휴. 이게 뭔 사서 고생이람. 그래도 따 온 첫물고추 무게를 재보니 7.3kg이나 된다. 아직 네 이랑이나 더 남았고, 아직 빨갛게 되지 않은 고추들이 빨간 고추보다 세 배는 더 많으니. 오늘만 같으면 아무리 비가 오고 일이 많아도 힘들지 않겠다.

 

* 첫물고추 수확량 - 7.3kg

 

<꼭지를 따내고 햇볕에 말리기 시작했습니다>

 

첫물고추 - 둘째 날(8월 13일/무더움 20-32도)

 

계획대로라면 벌써 감자를 다 캐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자리에 김장무와 배추를 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자를 두 이랑도 채 다 캐지 못했다. 생각보다 감자 양이 많은 것도 이유라면 이유고 어제부터 수확하기 시작한 고추에 밀린 것도 이유라면 이유다. 하지만 무와 배추를 심기 전에 퇴비도 넣어주려면 늦어도 이번 주까진 감자를 다 캐야 할 것 같다.

 

감자를 캘 요량으로 호미질을 했는데 아무래도 어제, 그제 내린 비 때문인지 감자에 흙이 많이 묻어난다. 아무래도 하루, 이틀 정도는 더 기다렸다 캐야할 듯하다. 괜히 땅에 물기가 다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캐냈다간 감자 맛이 안 좋을 것 같아서다.

 

해서 비 오기 전, 한 이랑밖에 수확하지 못한 첫물고추를 마저 따기로 하고 고추 밭으로 들어선다. 헌데 더운 날씨만큼이나 달려드는 모기 때문에 고추 따기가 영 쉽지만은 않다. 고추 서너 개 따고 모기 잡고, 또 고추 한 주 따고 모기 잡고. 진도도 나가지 못하고 신경질만 나는 게, 어째 오늘은 일을 많이 못 할 것만 같다. 결국 한 이랑밖에 고추를 따지 못하고 자전거에 오른다.

 

* 첫물고추 수확량 - 6kg

 

   <옥상에서 잘 마르고 있습니다>

첫물고추 - 셋째 날(8월 14일/무더움 22-33도)

 

오후엔 고추 말리는 데 쓸 요량으로 차광막을 사러 시장에 다녀왔다.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차광막을 깔고 부직포를 덮어 말리면 뒤집어 주는 수고도 덜할 수 있고 희나리도 생기지 않는다고 해서 일단 차광막부터 사려 한 것이다. 헌데 종묘상에 갔더니 특별한 이름은 없지만 고추 말리는 데 쓰라고 나온 게 있다고 한다. 얘기를 더 들어보니 차광막은 고추 꼭지가 걸려 뒤집기가 어려운데 이건 그렇지가 않단다. 그리고 값도 차광막보단 조금 싼 것 같다. 해서 차광막대신 그걸 사왔다.

 

저녁나절에 또 한 이랑에서 첫물고추를 따왔다. 어제 고추를 따면서 흘낏 봤더니 꽤 고추가 많이 빨갛게 된 것 같아 쌀 포대를 두 개 준비해 왔는데 다행일까. 한 이랑을 다 따고 나니 거의 두 포대에 가득이다. 낑낑대며 자전거 뒤 짐받이에 묶어 세워 힘들게 오르막길을 오르지만 콧노래가 나오는 건 왜일까. 헤, 이 맛에 농사짓는 건 아닌지.

 

* 첫물고추 수확량 - 11.3kg    

 

  

첫물고추 - 넷째 날(8월 15일/무더움 20-34도)

 

하루에 한 이랑씩 모두 나흘 만에 첫물고추를 다 수확했다. 첫날 따온 고추는 벌써 아파트 옥상에서 일광욕 중이고, 둘째 날과 셋째 날 따온 고추는 마루를 차지하고 앉아 후숙 중이다. 이제 오늘 수확한 고추를 작은 방에 널어놓으면 한 숨 돌릴 수 있겠다. 지금까지 따온 고추 수확량은 28.9kg. 사실 고추가 빨갛게 될 무렵 다 죽어버렸던 작년에 비한다면 이만큼만 해도 대성공이다. 하지만 아직 고추 밭엔 따온 고추보다 더 많은 고추가 달려 있으니 잘만 하면 고추 대풍을 만들 수도 있겠다.

 

저녁나절엔 다음 주 김장 배추와 무 심을 곳을 만들기 위해 고추 수확 때문에 잠시 미뤄뒀던 감자 캐기에 나선다. 헌데 날이 무덥긴 무더운가 보다. 해질녘에 나갔는데도 불과 한 시간 만에 온 몸이 다 젖고 만다. 정말 밭일하기 괴롭다. 그래도 겨우 반 이랑밖에 캐지 않았어도 감자가 쌀 포대에 가득이다. 덥기도 하거니와 자전거로 실어 나를 수 있는 양이 한 정돼 있으니 이젠 집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    

 

* 첫물고추 수확량 - 4.3kg

* 감자 수확량 - 11.9kg

 

감자 수확 - 넷째 날(8월 16일/무더움 20-34도)

 

연일 폭염이다. 어제도 34도, 오늘도 34도다.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고는 있지만 한낮엔 그야말로 땡볕인 셈이다. 덕분에 첫물고추 말리기는 잘 될 듯싶지만 밭에 나가 있는 시간이 줄어드니 딱히 좋다고만 할 수는 없다.

 

다음 주 수요일쯤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으니 오늘까진 감자를 마저 캐고 내일은 농협에 들러 퇴비를 사다 넣어야 한다. 해서 오랜만에 삽을 챙겨든다. 감자는 대충 한 포대만 캐고 무 심을 이랑을 만들기 위해서다.

 

확실히 감자 꽃이 많이 올라온 곳이 알도 굵다. 또 알만 굵은 게 아니라 양도 많다. 지금까지 두 이랑을 조금 넘게 감자를 캤는데 씨알도 작고 수확량도 적은 게 역시 꽃도 적게 올라온 것들이었으니 말이다.

 

감자알이 굵으니 조금만 캐냈는데도 금방 포대가 가득 찬다. 덕분에 무 심을 이랑에 준비해간 삽으로나마 위, 아래 흙을 섞어줄 수 있다.  

 

* 감자 수확량 - 10.8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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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8 21:16 2009/08/18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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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문을 나서면 곧 도서관으로 오르는 길이 시작됩니다>

아침나절에 첫물고추를 따왔습니다. 오후에 비가 온다는 얘기에 서둘러 나갔는데도 밭에 도착한 지 삼십분 남짓 됐을까요.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에 고작 한 이랑밖에 일을 하지 못했네요. 그래도 수확한 고추가 무려 7.3kg이나 된답니다. 첫물고추가 이 정도니 올 고추 농사, 잘 된 듯싶네요. 하지만 이제부터가 더 중요한데, 따가운 햇볕과 적당한 바람, 아무래도 하늘이 많이 도와줘야겠지요.

 

디지털시대입니다. 버스를 타도, 길을 걷다가도 손 안에 자그마한 단말기로 영화도 보고 메일도 확인하니 말입니다. 하기야 지금은 뭐, 이런 모습이 제법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은 그래도 가끔은 이 작은 기계로 책까지 읽는 걸 보고 있자면 놀라는 건 매한가지입니다. 아무리 디지털시대라고는 하지만 무릇 책장을 넘겨가며 읽어야 제 맛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써는 말입니다. 하지만 작년이었던가요. 60돌을 맞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가장 큰 화두가 전자책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콘텐츠의 성장세였다고 하니 조만간 열에 넷, 다섯은 종이책 대신 디지털기기를 들여다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오늘 아침엔 밭보단 도서관에 가려했었습니다. 평소에도 일주일에 두어 번, 저녁을 먹고 난 후나 졸음이 몰려오는 주말 오후쯤엔 으레 산책삼아 길을 나서 도서관에 들르곤 했었는데 지난주엔 무에 그리 바쁜 일이 많았는지 그러지를 못했거든요. 헌데 비가 온다는 소식에 밭엘 먼저 들렀던 것입니다. 그리고 점심때가 되긴 했지만 아직은 배가 그리 고프지도 않고 빗줄기도 굵지 않아 우산을 받쳐 들고 집을 나섭니다.

 

     

  <문을 지나면 갈림길인데요, 왼쪽은 제철 야생화가 오른쪽은 자작나무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자책은 대부분 ‘플래시 애니메이션’, ‘XML', 'PDF', 'iBOOK' 파일 형태로 제공된다고 하지요. 종이책에 비해 40-50% 수준으로 저렴한 가격에 인터넷만 연결되면 언제 어느 때고 다운 받아 편하게 읽을 수가 있으니 사실 매력덩이이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종이책이 가지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서 더욱 많은 정보를 더욱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게 한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이들은 저자와 독자들 간에 양방향 소통이 이루어짐에 따라 독서환경과 출판문화에 평등과 민주적 가치를 실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도 말합니다. 어찌 보면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이런 방식의 읽기는 당연한 결과인 듯싶기도 하고, 이렇게라도 책을 가까이 하고 비록 가상공간이라 할지라도 서로 소통할 수만 있다면야 되려 좋은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기는 하네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자책이 읽기의 즐거움을 오롯이 만끽할 수는 있을까요.   

 

                                                                                                                              <한여름에도 시원한 오솔길입니다>

10분 정도만 시간을 내면 답답한 아파트 숲을 벗어나 제철 한껏 흐드러지게 핀 구절초며, 개미초가 반겨주는 오솔길을 걸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입니다. 그런 점에서 도서관 가는 길은 굳이 책을 보러 가지 않더라도 그저 산책삼아 걷기에도 제격입니다. 그래도 그렇게 나선 발걸음은 늘 책으로 둘러싸인 도서관으로 향하고는 하는데요. 아마도 그곳에서 풍겨오는, 오래된 책에서만 맡을 수 있는 특유의 냄새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사각사각, 고요함 속에 들리는 책장 넘기는 소리 또한 뿌리칠 수 없는 유혹입니다. 거기에다 발돋움을 해야 겨우 닿을 수 있는 곳에서 꺼내든 오래된 책 표지에 내려앉은 먼지들이며, 누군가 옮겨 적으려 끼어놓은 작은 종잇조각들을 발견할 때면 왠지 모를 설렘이 생겨나곤 한답니다. 또 때론 따뜻한 햇볕을 한가득 받으며 창가에 책을 베개 삼아 쪽잠을 자기도 하고, 마음을 나누는 이와 마주 앉아 몇 시간이고 눈과 책을 번갈아 마주치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이는 전자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읽기가 갖는 또 다른 즐거움이지 싶습니다.  

 

오늘은 도서관에서 책 세 권을 빌렸습니다. 잭 런던의 <강철군화>, 김재호가 쓴 멕시코 여행기 <멕시코 일요일 2시>, 한길사에서 나온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1>, 이렇게 세 권을 말입니다. 잭 런던의 <강철군화>는 10년도 전에 읽었기는 한데 하도 오래돼놔서 기억나는 내용이 없어 다시 읽어보려 꺼내들었구요. 1년에 한 권씩 모두 15년에 걸쳐 15권이 나왔다고 하는데 1년에 한 권씩만이라도 읽어볼까 해서 <로마인 이야기 1>을 빌렸답니다. 마지막으로 김재호씨의 책 <멕시코 일요일 2시>는 화장실에서 쉬엄쉬엄 읽기에 딱 좋을 것 같아 보였구요. 아무튼 그렇게 세 권의 책을 들고 도서관을 나서는데, 이런. 아까 집을 나왔을 때 보다 비가 더 세차게 내리고 있습니다. 곳에 따라 집중호우도 있을 거라고 하는데 아마도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비가 올려나 봅니다. 그래도 어떻습니까. 지난 번 장맛비에 고추 몇 주를 뽑아내기도 해 조금 걱정이 되긴 하지만, 간만에 비오는 오솔길도 걸었고 재밌는 책도 세 권이나 빌렸으니. 이만하면 도서관 가는 길, 좋지 아니한가요.

 

<이제 도서관에 다와갑니다>

 

<누군가 급히 들어갔나 봅니다. 도서관 앞 의자에 종이컵만이 홀로 비를 다 담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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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2 19:32 2009/08/12 19:32
첫째 날,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영동군 황간면에서 용산면까지(2006년 7월 29일)
 
일기예보로는 지루한 장마가 끝나고 이제 한여름 무더위가 시작된다고 하던데, 수원에서부터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가 평택에 들어서자 제법 굵어지고 있다. 비옷이고 우산이고 어느 하나 준비하지 않았는데, 걱정이 앞선다. 다행이 대전을 지나면서부터는 빗줄기가 가늘어지고 있기는 한데, 비구름이 여전히 하늘을 덮고 있어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황간에 도착하니 산허리에 잔뜩 먹구름이 끼어 있고 굵지는 않지만 빗방울이 머리 위로 떨어진다. 서둘러 역사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저 멀리 민주지산에 걸린 비구름이 눈에 들어온다. 아무래도 어째 오늘은 해 구경하기 힘들 듯 하다. 그래도 빗줄기가 더 굵어지지 않는 게 고마울 뿐이다. 뜨거운 햇빛을 가리기 위해 준비해 온 모자로 대충 빗줄기는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월류봉을 지나 긴 오르막길(위)을 지나고 나니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하늘이 맑아지는데 아예 덥다(아래)>
 
읍내를 벗어나자마자 오른편 저쪽에서부터 왼편 월류봉 아래로 제법 거센 흙탕물이 흐른다. 몇 주간 쉴 틈도 없이 내린 장맛비 때문 일게다. 들리는 소식에는 이곳에도 많은 비가 내렸고 곳곳에 산사태에 도로가 끊겼다고는 하는데, 우리가 걷는 이 길엔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비 때문인지, 원래 보수를 하려고 한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곳, 딱 한 곳을 지나쳤다.
 
월류봉을 지나니 곧 오르막길이다. 제법 긴 오르막길인데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쉬지 않고 내리는 비로 옷마저 축축해 무척 힘이 부친다. 게다가 지나는 차들은 길을 걷는 이들은 보이지 않는 듯 물살을 일으키며 질주하고 있어 조금 걷다 갓길 저만치로 피하고, 조금 걷다 또 갓길로 저만치 피하고 하는 바람에 발걸음이 더디기만 한다.
 
고갯길을 넘고 나니 어느새 비가 그치고 먹구름 사이로 간간이 따가운 햇살이 머리를 비추는데 이건, 좀 전까지는 비 때문에 걸음이 늦어졌다면 이제는 햇빛 때문에 걸음이 늦어지는 꼴이다. 아무래도 잠시 쉬어가야겠다. 용암리 마을 입구 버스정류장에 잠시 배낭을 벗어 던지고는 어깨며, 발목을 번갈아 가며 주물러준다.
 
황간을 출발한지 두 시간이 조금 넘어 용암 삼거리에서 514번 지방도로로 바꿔 탄다. 오늘은 옥천군 청산면까지 가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는데 아무래도 이 속도라면 다 못 갈 듯 싶다. 큰일이다. 황간면에서 청산면까지는 하루 밤 쉬어 갈만한 곳을 전혀 찾아볼 수 없으니. 그런데도 이상스레 몸이 무거울 뿐만 아니라 발걸음마저 더디기만 한다.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쉬어가면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결국 용산면소재지에서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한다. 혹 근처에 민박집이 있을까 해서 이리저리 전화도 돌려보지만 마땅히 쉴 만한 곳을 찾지 못하고 대신 저녁이나 해결할까, 중국집에 들어선다. 하지만 허기진 뱃속과는 달리 잠자리 걱정 때문인지 자장면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른다. 어쩔 수 없다. 영동이나 옥천으로 나가는 수밖에. 이리저리 재고자시고 없이 가장 먼저 도착한 버스에 올라타니 영동으로 나가는 차다.
 
둘째 날, 옥천군으로 넘어와 청산면까지(2006년 7월 30일)
 
용산행 첫 차가 5시 50인데 아침에 눈을 뜨니 5시 20분이다. 세면은커녕 서둘러 옷만 갈아입고는 버스정류장으로 허겁지겁 달려간다. 이른 아침인데다 일요일 이어서인지 오가는 차도 없고 버스를 타는 사람도 우리 둘 이외에 딱 두 명이 더 있었을 뿐이다. 어제는 30분이 조금 넘게 걸린 길을 오늘은 15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용산에 당도하니 사방이 자욱한 안개다. 물가 쪽에는 물안개가 자욱이 피어오르고 있고 산허리 쪽에도 안개가 자욱하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날씨가 우리의 여행을 도와주지 않는 듯하다. 발걸음이 계속 무겁다. 게다가 용산을 벗어나자마자 시작되는 길이 국도라 오가는 차량도 많아 불편하기 짝이 없다.
 
법화리에서 한 번 쉬고 나니 고갯길이고, 고갯길 정상에 오르니 옥천군이다. 멀리 ‘인삼의 고향 옥천’이라는 커다란 입간판이 보이는데 아니나 다를까 열 번째 여행 내내 길 양옆으로 짙은 포도향을 내던 포도송이들 대신 이번엔 끝없는 인삼밭이 펼쳐져 있는 게 아닌가. 내리막길에, 빨갛게 핀 인삼 꽃구경에, 오랜만에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당초 10시 이후에는 걷지 않기로 했지만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도 벌써부터 땅 밑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보통이 아니다. 간간이 구름들이 햇빛을 가려주기는 하지만 그래도 머리 위로 내리쬐는 따가운 햇살에,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등 뒤로 땀이 ‘주르륵’ 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출발하기 전 준비했던 물마저 바닥이다. 또 마을은 보이지도 않는다. 조금 걷고 그늘에서 쉬고, 또 조금 걷고 그늘에서 쉬고 하니 시간만은 잘도 가는데 진도는 나가지 않는다. 조금 더 지나면 정말 땡볕 속에서 걸어야 할 텐데.
 
예정대로라면 어제 밤 하루 쉬어가야 했을 청산면에 도착하니 9시다. 일단 아침은 먹어야겠는데 더 걸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벌써부터 한여름 찜통인데다 온 몸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은 상태라 그렇다. 아무래도 더 이상은 걷는 게 무리다. 다행히 버스 시간이 잘 맞아 떨어져 시간 낭비 없이 청산에서 영동으로, 영동에서 서울로, 또 무더위를 피해 쉬이 올라올 수 있다.
 
* 열한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 첫째 날 : 영동군 황간면에서 용산면까지 약 12km. 걸은 시간 3시간.
- 둘째 날 : 영동군 용산면에서 옥천군 청산면까지 약 11km. 걸은 시간 어제와 마찬가지로 약 3시간.
 
* 가고, 오고
영등포에서 황간까지는 12시 29분에 출발하는 무궁화호 열차를 이용했다. 옥천군 청산면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은 보은이나 영동 쪽으로 나와야 하는데, 우리는 영동으로 나왔다. 다행이 버스 시간이 잘 맞아서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었으나 아무래도 사전 버스 시간 확인은 필수인 것 같다.
 
* 잠잘 곳
황간에서 당초 머물려고 했던 옥천군 청산면까지는 거의 숙박할 만한 곳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우리가 첫날 도착했던 용산면에는 허름한 여관이 하나 있을 뿐이다. 대신 음식점은 곳곳에 꽤 있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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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1 16:02 2009/08/11 16:02

감자 수확

from 09년 만천리 2009/08/09 22:23

<크기는 그리 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겨우 반 이랑만을 캐냈는데도 박스가 가득 찬다>

 

감자 수확 - 둘째 날(8월 3일/맑음 21-27도)

 

겨우 이틀째 감자를 수확했는데 베란다가 꽉 찼다. 감자를 오래 보관하려면 햇볕에 한 이틀 정도 내놓은 다음 서늘한 곳에 놓아야 한다기에 베란다에 늘어놓았는데 그새 놓을 데가 없다. 이제 한 이랑을 파냈고 다섯 이랑이 더 남았으니 아무래도 감자를 어찌 처리해야 할 지 빨리 알아봐야겠다. 중곡동이며, 의정부, 김해로 한 상자씩 보낸다 해도 지금 대로라면 적어도 두 상자는 더 넘게 남을 듯하다.

 

콩 밭 김매기(8월 4일/무더움 20-31도)

 

콩 심은 곳은 두 번이나 김매기를 해줘서인지 그닥 신경을 쓰지 않았어도 풀로 엉망이 되지 않았다. 다행이지 싶다. 이 바쁜 와중에 콩 밭까지 김매기를 했다면 정말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판이니 말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감자 수확 와중에 콩 밭을 들여다보니 고랑에 풀이 허리만큼 자라 있다. 해서 엊그제부터 한 시간은 감자 캐내고 한 시간은 콩 밭 김매기하고 마지막으로 한 시간은 고추 밭 정리를 한다.

 

모라꼿(8월 7일/흐림 20-31도)

 

어제 밤, 이틀을 또 서울에서 보내고 춘천으로 돌아오는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태국어로 에머랄드를 뜻하는 태풍 모라꼿의 영향이다. 국지적으로 집중호우를 대비하라고 하던데 다행히 아침에 눈을 뜨니 구름이 많고 흐리기는 하나 비가 쏟아질 것 같진 않다.

 

7월 초부터 매일 적게는 두어 개에서 많게는 예닐곱 개까지 열매를 맺어줬던 참외와 역시 많게는 비닐로 한 봉지 이상을 딸 수 있었던 방울토마토 심은 곳에 풀이 잔뜩 이다. 월요일쯤 여기저기 감자를 보내려 생각하고 감자 캘 생각으로 나왔는데 이 꼴을 보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겠다. 해서 감자 캘 호미가 참외, 방울토마토 심은 곳으로 향한다.

 

두 시간 가까이 땀을 뻘뻘 흘리며 풀을 다 뽑아주고 참깨 심은 곳까지 김매기를 하니 바지까지 땀으로 흠뻑 젖는다. 저녁 먹을 때가 지났으니 배가 고프고, 배가 고픈 건 토마토를 따 먹고 참외를 깎아 먹으면 된다지만 땀으로 젖은 옷은 어찌할 방도가 없다. 서둘러 땀이 식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감자 수확 - 셋째 날(8월 9일/무더움 23-33도)


어제는 모라꼿의 영향으로 소나기가 간간이 내렸다. 덕분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바쁜 가운데 하루를 쉬게 됐다. 며칠 전 병들어 죽은 고추 밭에 또 고추 몇 주가 시들시들해 뽑아도 줘야 하고, 비 내린 후면 부쩍 풀이 자라나는 고구마 밭도 김매기를 해줘야 하고, 또 캐다 만 감자도 캐내야 하는데 말이다. 

 

아침부터 마음은 벌써 밭에 가 있지만 올 들어 가장 무더운 날이라는 게 실감나듯 내려쬐는 햇볕 때문에 감히 나설지 못한다. 결국 5시가 넘어서야 겨우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밟으니 벌써 해가 뉘엿뉘엿하다. 서둘러 감자 반 이랑 정도 캐내고 제일 급한 고추 밭 정리에 나선다. 일단 아래부터 타들어가듯 죽은 고추는 떼 내고 바짝 마르고 시들해지긴 했지만 빨갛게 된 고추는 따로 봉지에 담아둔다.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한 번 햇볕에 말려볼까 해서 말이다.

 

감자를 반 이랑 조금 넘게 캐냈는데도 가지고 간 10kg짜리 쌀 포대가 반 넘게 찬다. 힘겹게 자전거 뒤 짐받이에 실고 출발하려니 무게가 심상치 않다. 게다가 무거워 바람이 빠진 건지, 펑크가 나서 바람이 빠진 건지 바퀴에 바람이 잔뜩 빠져 있다. 아무래도 집에 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겠다. 

 

<씨감자 하나 심은 곳에 알감자 조림 하기 딱 좋은 것부터 꽤 씨알이 굵은 것까지 다양하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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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9 22:23 2009/08/09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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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저병??

from 09년 만천리 2009/08/07 15:52

허리까지 자란 콩(7월 28일/흐림 21-28도)

 

어제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다녀와서인지 꽤나 늦은 시간에 일어나고 말았다. 덕분에 늦잠을 자긴 했지만 점심 먹고 나서부터 죽 안절부절 못한다. 가뜩이나 일이 밀려있는데 날씨까지 오락가락, 어찌해야 하나 갈팡질팡 이다.

 

결국 5시가 다 돼서야 급한 것만 하고 오자, 며 자전거에 오르는데 막상 밭에 도착하니 그게 쉽지가 않다. 허리까지 자란 콩 밭 김매기에, 이제 막 줄기를 뻗어내고 있는 고구마 밭 제초 작업까지 해 질 때까지 일이다.

 

맑은 하늘(7월 29일/무더움 20-31도)

 

장맛비가 그치고 나니 무더위가 기승이다. 연일 30도를 오르내리는데, 이런 날씨에 밭에 가면 가만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그래도 엊그제부터는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데다 맑고 높은 하늘이 보여 가만 앉아 있으면 기분만은 좋다. 해질녘 잠시 밭에 나가 고구마 심은 곳 김매기 쬐끔하고는 참외를 또 한 바구니 담아 온다.   

 

탄저병??(7월 30일/무더움 20-32도)

 

고추 몇 주가 죽어 뽑아내고 말았다. 아래쪽 빨갛게 된 고추부터 시작해서 위쪽 고추까지 마치 타들어 간 것처럼 죽어간 것이다. 아무래도 죽어 가는 모양새를 보니 탄저병이 아닌 가 싶다. 연작을 하거나 고온다습하면서 비가 많이 오는 경우 발생한다고 하던 데. 이, 삼주 장맛비가 퍼붓듯 내리고 난 후 급격하게 기온이 오른 탓인지, 고추 심은 곳이 작년에도 고추를 심었던 곳이었던 게 이유인지 확실치는 않다. 아무튼, 이유야 뭐든 간에 탄저병이라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병이 더 번지기 전에 서둘러 목초액이라도 희석해서 뿌려줘야겠다.

 

          

 

 

감자수확 - 첫째 날(8월 1일/무더움 22-30도)

 

5월 7일과 8일에 감자를 심었으니 이제 감자를 수확할 때다. 물론 2주 전쯤인가부터 조금씩 감자를 캐서 삶아 먹기도 하고 된장국에 넣어 먹기도 하고 해서 감자 맛을 보기는 했다. 이제 강원도 감자 맛을 본격적으로 볼 수 있는 게다.

 

감자 심은 이랑이 모두 6개가 넘으니 한 번에 다 캐내기는 어렵다. 혼자 일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보니 한 번에 감자를 실을 수 있는 양이 한도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 해서 조금씩 수확해 집으로 옮겨야하는데, 오늘만 반 이랑 정도를 캐냈는데도 자전거 뒤 짐받이가 넘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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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7 15:52 2009/08/07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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