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할수록 돌아가자(10월 19일/바람 셈 7-15도)

 

9일 밭에 나왔었으니 꼭 열흘 만이다. 일이 그렇게 돼서 어쩔 수가 없었지만 잠깐이라도 짬을 낼 수 있으려니 했는데.

 

하도 오랜만이기도 하고 엊그제부터 밤엔 번개에 돌풍이 불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묶어 세워 높은 콩대가 쓰러지지나 않았는지. 때를 놓쳐 고구마 캐낼 시기를 놓친 건 아닌지. 속이 여물기 시작한 배추를 서둘러 묶어 줘야 하는데. 걱정에 마음까지 급하다.

 

그래도 이럴 때일수록 돌아가야 한다. 생각하기엔 일이 많은 듯해도 고구마 캐기와 콩 털기를 빼고 나면 그리 크게 손 볼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행이도 밭은 열흘 전과 그대로다.

 

* 이번 주 할 일

화 - 배추 묶어주기, 나머지 콩대 뽑기,

수, 목, 금 - 고구마 캐기

토, 일 - 고추밭 정리(풋고추 따기, 지주 뽑기)

* 다음 주 할 일

콩 털기 

 

배추 묶고 고구마 캐다(10월 20일/바람 셈 4-16도)

 

어제에 이어 오늘도 바람이 세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고추를 말릴 요량으로 옥상에 올랐다 그냥 내려올 정도니. 이럴 땐 뭐든 말리는 게 쉽지가 않다. 하루 이틀이면 다 말리고 고춧가루를 만들 수 있을 텐데 날씨가 얄밉기만 하다. 

 

고추 말리기는 포기하고 자전거에 오르는데. 이런 바람이 센 만큼 공기도 차다. 하긴 한로도 지났고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상강이니 추울 만도 하다. 그래도 그렇지 일주일사이로 이리 추워질 줄이야.

 

이번 주엔 고구마를 다 캐내야 한다. 어제 맛보기로 두 줄기를 캐내봤는데 알도 굵고 양도 제법이다. 또 색깔도 맛깔난데, 삶아 먹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어찌나 달고 맛나던지. 올 핸 뭐든 잘 돼서 참 다행이다.

 

느지막이 나와 한 두 시간 배추도 묶고 콩대도 뽑고 고구마도 캐니 추위는 참을만한데 뱃속에서 계속 ‘꼬르륵’이다. 혹여나 하고 가져간 팔뚝만한 고구마를 먹어도 그때뿐이니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다. 

 

고구마 캐기 - 둘째 날(10월 21일/맑음 4-19도)

 

요 며칠 천둥, 번개와 비가 내리고 강풍이 불면서 날이 차가워졌는데 오늘은 바람도 잠잠하고 햇볕도 땃땃하다. 덕분에 근 10여일 만에 고추도 널어놓고 고구마 순도 삶을 수 있다. 앞으로 더도 말고 열흘만 오늘 같았으면 좋겠다.

 

어제에 이어 팔뚝만한 고구마를 자전거가 휘청할 만큼 캐냈다. 거기다 덤으로 고구마 순도 한 바구니이니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배는 걸린다. 오르막길에 자전거를 끌고 올라오느라 그렇다. 덕분에 오랜만에 힘도 들고 등줄기에 땀도 흐른다.

 

고구마 캐기 - 셋째 날(10월 23일/맑음 7-18도)

 

오후에는 서울 나들이를 해야 하기에 오전 일찍 밭에 다녀왔다. 마음 같아서는 고추대도 뽑아주고 비닐도 걷고 싶으나 서두르지 않으면 은행 마감시간 4시를 맞추는 게 쉽지 않기에 금방 집으로 올 수밖에 없다. 해서 오늘은 두 시간 남짓, 고구마 두 자루만 캐낸다.

 

고구마 캐기 - 넷째 날(10월 25일/흐림 9-20도)

 

다시 날이 푸근해진다. 최저 기온이 10 가까이 올라오고 낮 기온은 20도를 웃도니 겨울로 가다 도로 봄이 된 것 같다. 지난주만 해도 갑자기 추워져 콩이며, 고구마 수확에 마음이 급했는데 날이 풀리니 괜스레 걱정한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언제 또 날이 쌀쌀해질지 모르니 손을 댄 김에 다음 주까지 해서 정리를 해야 한다.

 

서울에 다녀온 노독이 있어서인지 어제는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더니 오늘은 좀 낫다. 그래도 눈을 떠보니 해가 머리 위에 떴고 서둘러 밭에 나왔으나 이미 점심때다. 할 수 없이 오늘도 고구마만 캐다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아래 밭 고구마가 위 밭 고구마 보다는 씨알도 작고 수확량도 작은 게 예상대로다. 똑같이 옥수수를 심어도, 콩을 심어도 위 밭은 키도 크고 알이 많이 맺히는데 아래 밭은 그렇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시간 남짓 고구마를 캐내니 그래도 한 자루는 너끈히 나온다.

 

자전거에 고구마를 싣고는 짱아지 담글 요량으로 김장 무 두 개를 뽑아내는데. 생각보다 꽤나 크다. 이 정도면 김장도 담그고 남은 건 무말랭이도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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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7 19:16 2009/10/27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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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적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지요. 이러다 해를 넘기지나 않을런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래서일까요. 요즘 들어 부쩍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행사들이 열리고 있습니다. 지난 18일에 열린 국민법정이 그러했구요. 19일에는 세계 각국의 평화운동가들로 이뤄진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세계행진단’이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MB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네요. 겨우 유족들을 만나 거짓 눈물을 흘릴 줄만 알고 말이죠.
 
2.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 파업을 벌였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가운데 2명이 자살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신문기사를 보니 한 분은 ‘경찰이 허위 자백을 강요했다’는 취지의 유서를 남겼구요, 또 다른 한 분은 정리해고 이후 심적 고통으로 괴로워하다 계속되는 경찰 조사에 생계마저 막막해지자 자살을 시도했답니다. 애당초 기술력만 빼돌릴 게 뻔한데도 쌍용자동차를 팔아넘긴 정부관료와 경영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는데 말이죠.      
 
 <2006년도에 개정판이 나왔네요. 초판 발행 시 미비했던 점들이 보충됐구요. 별면 화보가 추가 됐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3.
한국전쟁이 우리 사회에 남긴 유산(遺産)으로는 뭐가 있을까요. 김동춘 샘(성공회대 사회과학부)은 이런 물음에 ‘전쟁이 사회 운영원리로 내재화되고 냉전적 정치경제 질서가 가장 철저하게 착근된 사회’라고 답합니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는 여전히 ‘전쟁’중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김동춘 샘은 또 이런 이야기도 합니다. 이 ‘전쟁’ 중인 사회에서 힘없는 민중들은 끊임없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피난’ 행렬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4.
용산참사 때도 그랬고 쌍용자동차 파업 때도 그랬습니다. 시시각각 전해지는 화면을 보고 있자니 이건. 그래요. 누가 이런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하라 한다면, 주저 없이 ‘전쟁터’라 할만 했습니다. 다들 보셔서 아시겠지만 이 나라 공권력은 용산참사 농성자들과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마치 전쟁터에서 맞닥뜨린 ‘적’으로 간주하고 있는 듯했거든요. 그렇지 않다면야 어디 ‘여기 사람이 있어요.’라며 울부짖는 이들을 그리 무자비하게 대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노무현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는 주저 없이 발길을 옮기면서도 용산 참사 현장은 애써 외면하는. 한 집 건너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고 또 한 집 건너 정리해고자가 넘쳐나면서도 노동조합에는 거침없이 비난을 쏟아내는 국민들을 보고 있자니. 그래요. 우리 국민들은 자기 목숨 건사하기 위해 여전히 ‘피난’을 떠나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더랬습니다.    
 
5.
검찰이 용산참사 농성자 전원에게 중형을 선고했다고 합니다. 쌍용자동차 파업노동자들 가운데 이미 40여명이 구속된 상태이고 앞으로 30여명은 더 구속될 것 같다는 얘기들이 있는 걸로 봐선. 아무래도 모두 감옥살이를 각오해야 할 것 같은데. 혹 김동춘 샘이 쓴 <전쟁과 사회>의 분석틀로 보자면 ‘전쟁터’에서 ‘포로’로 붙들린 이들에게 이 정도 처분이면 오히려 과분하다,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이놈에 ‘피난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마냥 ‘피난’ 행렬에 뛰어드는 것 말고는 정말 할 수 있는 게 없는 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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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1 21:10 2009/10/21 21:10

콩대 뽑기

from 09년 만천리 2009/10/19 15:16

콩대 뽑기 - 첫째 날(10월 6일/맑음 10-25도)

 

근 보름여 만에 밭에 나왔다. 중간에 추석이 끼여 있었다 해도 그야말로 모처럼만에 나온 셈이다. 고추 수확에 말리기를 하고 나니 급하게 할 일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명절을 전후해 부쩍 날씨가 쌀쌀해지니 콩깍지가 조금씩 벌어지는 듯하다. 서둘러 콩대를 뽑아 말려야한다. 이제 밭에 남은 거라곤 콩과 고구마이니 천천히 일을 해도 되겠지만 갑자기 추워지는 춘천 날씨를 감안하면 늘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콩대 뽑기 - 둘째 날(10월 7일/바람 강함 10-22도)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떨어지는데. 오늘은 바람까지 강하게 불어 더 춥게 느껴진다. 이대로 초겨울로 들어가진 않겠지만 그래도 걱정이 된다. 아무래도 이번 주까진 콩대를 다 뽑아 말려야하고. 다음 주 주말쯤엔 털어야겠다. 그리고 나면. 쉬엄쉬엄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 고구마 캐기만 남는다. 이제 올 농사도 거진 다 끝나간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켠이 휑하다. 

 

콩대 뽑기 - 셋째 날(10월 8일/바람 강함 9-20도)

 

어제보다 바람이 더 세게 부는 것 같다. 기온도 더 떨어졌고. 이젠 자전거를 타도 땀이 나질 않는다. 한여름 잡초와 씨름하며 지낸 여름이 어느새 다 지났구나, 생각하니 또 마음 한켠히 휑하기만 하다.

 

나중에 심은 것이나 일찍 심은 것이나 콩이 여무는 건 비슷한 듯하다. 일지를 보니 일찍 심은 것은 5월 초에, 나중에 심은 것은 6월 초이니 근 한 달 간격이지만 똑같이 콩깍지가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일찍 심은 것이 키를 높이 키워냈고, 그만큼 콩도 더 매달리고 있지만. 아무래도 내년엔 좀 더 일찍 감자를 심어 뒷구르로 콩을 심는 게 낫을 듯싶다.

 

콩대 뽑기 - 넷째 날(10월 9일/맑음 6-21도)

 

낮 기온은 아직 20도를 오르내리지만 아침기온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진다. 벌써 춘천으로 이사를 온지도 1년 9개월이고, 겨울을 한 차례 나기는 했지만 이렇게 급강하 하는 아침, 저녁 날씨엔 아직도 적응하기 쉽지 않다.

 

오늘까지 대충 콩대를 다 뽑아 세웠다. 아직 여물지 않은 것들만 남겨뒀는데 그닥 많지 않으니 다음 주엔 콩을 털어야 한다. 가을 가뭄이 심하다고는 하지만 그때까지 비 소식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돌아오는 길에 고추장아찌나 담글 요량으로 여적까지 매달려 있는 풋고추들을 한가득 따왔다.

 

<이제 햇볕에 잘 말려 털면 콩농사도 마무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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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9 15:16 2009/10/19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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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계곡에서 화양동계곡까지, 아직 괴산(2006년 9월 23일)
 
속리산엘 다녀오고 나니 추석이 가까워서인지 여기저기서 벌초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다른 때와 달리 서울로 올라오는 길이 유난히 막혔는데 그 때문이었나 보다. 여하간, 어째 벌초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다들 남정네들인데 하나같이 자기네 조상들 벌초 다녀왔다는 이야기들뿐이다. ‘혹시 처갓집 벌초는 다녀들 오셨나요?’ 한마디하고 싶은데 그냥 꾹 참는다.
 
아무튼 남정네들이 그렇게 자기네 조상들 무덤 찾아다녔던 그 좋은 날씨 속에서 정말 걷기 좋은 길을 걸었다. 지도에도 없는 시골길을 걷기도 했고, 걷는 내내 맑은 가을하늘과 가을바람, 맑은 계곡이 함께 했다. 많은 이들이 남도지역을 최고의 여행지로 꼽지만 우리 생각엔 충청도가 훨씬 나은 듯하다. 무주를 지나면서 만났던 민주지산을 품고 있는 황간, 드넓은 포도밭의 영동, 속리산 자락을 따라 걸었던 보은, 그리고 여기 아기자기한 골짜기를 연이어 펼쳐 보이고 있는 괴산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아름다운 길들이다.
 
 
 
어제 저녁 늦은 시간이었지만 서울을 떠나 괴산까지 온 덕에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었고, 덕분에 하루짜리 여행이었으면서도 20km가 넘게 걸었다. 이제는 한 시간에 4km 걷는 속도는 완전히 몸에 배었고, 두 시간은 걸어야 ‘힘들다’ 생각이 들 정도로 체력이 생겼으니 이는 생각지 못한 성과다.
 
여행 때면 늘 그렇듯 6시에 일어나 한 시간 반이 넘게 버스를 타고 사담에 도착하니 9시가 코앞이다. 괴산 읍내에서 아침을 해결하지 못해 혹시나 하고 빵 한쪽씩, 과자 부스러기 몇 개를 준비했는데, 역시나. 민박 간판은 여기저기 보이나 음식점은 몇 보이지 않고, 보이는 음식점들은 이른 시간인지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하는 수 없다. 준비해간 빵 한 입 베어 물고 길을 나선다.
 
헌데 이런. 이렇게 높은 하늘과 맑은 계곡을 봤던 게 언제지? 게다가 시원한 가을바람까지 옷깃을 파고드는데 뱃속에서 나는 ‘꾸르륵’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 좋다’라는 표현 외에 또 어떤 말이 있을까? 아직 길가에 코스모스는 보이지 않아도 가을을 느끼기에는 한없이 좋은 날씨와 한없이 좋은 길이다.
 
 
 
 
 
 
 
 
 
 
 
 
 
 
 
  
 
 
 
 
사담리를 출발해 그렇게 가을을 한껏 즐기며 두 시간을 넘게 걸으니 아무리 좋아도 잠시 쉬어가야 하나보다. 몸에서 여러 가지 신호를 보내는 걸 보니.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프고, 등 뒤로는 땀도 한 방울씩 한 방울씩 맺힌다. 배도 채우고 다리도 주무르며 쉬어가야겠는데 다행이 마을 입구에 정자 하나가 마중 나와 있다. 에라, 모르겠다. 땀이 배지는 않았어도 신발에 양말까지 벗어 던져 놓고는 아침에 한 입 먹고 남은 빵이며 과자까지 꺼내들고 안방에 누운 것 마냥 대(大)자로 눕는다.
 
 
괴산군 관광안내도에 따르면 멧돼지와 토종돼지로 유명하다던데, 이름도 거기서 따온 듯 보이는 멧돼지휴게소를 조금 지나면서부터는 지도에도 잘 나타나 있지 않는 샛길로 빠진다. 후평숲이 있다고 나와 있기는 해도, 그리고 왕복 2차선의 잘 닦여진 도로라고 해도, 이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지나는 마을이 무슨 마을이지, 대체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수려한 풍경에, 오가는 차도 없고, 때로는 차선도 없는 시골길을 걸으니 기분 하나는 계속 죽여준다. 카메라를 꺼내들고 풍경을 담아내느라 속도가 더디기는 하지만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그렇게 지도에도 없는 길을 따라 두 시간을 넘게 걸어 화양동계곡 입구에 당도하니 2시가 가깝다. 배고픈 거야 출발할 때부터였으니 뭐 그렇다 쳐도 벌써 시간이 이리됐을까? 계획했던 시간보다 2시간이나 지체됐다. 아무래도 방금 지나온 이름 모를 길을 걸어서일 테다. 그래도 오랜만에 만났던 시골풍경에, 시골길을 걸어와 아쉬움은 없다. 다만 당초 목표로 했던 송면까지 갈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멀리 속리산국립공원 매표소가 보이는 게 화양동계곡을 지나려면 아무래도 입장료까지 내야 할듯하다. 물론 계곡을 저만치 돌아가는 길을 걷는다면 돈은 아낄 수 있겠지만. 계곡 입구 다리 옆에 붙어 있는 안내도를 보면서 대충 거리를 가늠해보니 송면까지만 해도 5km는 넘는 듯하다. 그럼 두 시간은 잡아야하는데. 바로 점심을 먹고 출발한다 해도 네 시가 넘어서야 도착할 듯.
 
계곡 입구에서 한참을 어찌할까 생각해보지만 아무래도 무리라는 판단이다. 게다가 청주까지 나가는 시외버스 시간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자꾸 거슬린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자꾸만 드는지 발길은 계곡 쪽으로만 향하는데. 해서 계곡이 내려 보이는 식당 앞 평상에 자리를 잡고 아쉬운 마음을 달랜다. 늦은 점심에 시원한 동동주 한잔 걸치니, 음,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 열네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괴산 사담리 계곡에서 화양동계곡까지 약 20km. 걸은 시간 5시간.
 
* 가고, 오고
괴산까지는 전날 동서울터미널에서 저녁 8시 10분에 출발하는 시외버스를 타고 이동했으며, 괴산에서 사담까지는 다행히도 아침 7시 10분에 출발하는 시내버스를 탈 수 있어 쉽게 갈 수 있었다. 화양동계곡에서는 일단 청주로 나간 후에 강남, 남부, 동서울 혹은 광명 등지로 가는 시외버스, 고속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편할 듯하다.
 
* 잠잘 곳
사담계곡과 화양동계곡에는 민박과 음식점이 다수 있으니 그리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다만 우리가 걸었던 길에는 화양동계곡까지 음식점은커녕 변변한 구멍가게 하나 보기 힘드니 멧돼지휴게소에서 미리미리 먹을 것을 챙겨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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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5 13:50 2009/10/05 13:50

그리도 총리가 되는 게 소원이었는지 인사청문회 내내 제기 된 온갖 비리 의혹과 구설수, 위법, 탈법에 대해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가던 정운찬이 결국 그 소원을 이뤘네요. 엊그제 청와대로부터 임명장을 받았으니 말입니다.

 

청문회 내내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추악한 모습을 되새김질 할 필요는 없으니 그와 관련된 무수한 일들을 다시 꺼내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반쪽짜리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통과된 직후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해준 말이라며 던진 그의 한마디 말은 되짚어 봐야겠습니다. 

 

“‘가마를 타게 되면 가마꾼의 어깨를 먼저 생각하라.’는 어머니의 마지막 말씀을 되새기겠다.”

 

모 일간지에서는 사설을 통해 정운찬의 이 말을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의 정신까지 연결해 가며 ‘서민총리’ 운운하던데요. 그 사설을 쓴 사람이나 정운찬이나 여전히 한 나라의 재상을 가마에 올라타 아랫것들의 머리 조아림을 받아야 하는 이로 여기고 있다니.

 

그야말로 언제 적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사고인지 모르겠습니다. 백성을 가마꾼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가마에 올라타 온갖 위세를 부릴 저 뻔뻔한 재상. 당체 맘에 들지 않습니다. 가마꾼은 총리, 대통령이어야 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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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1 23:56 2009/10/01 2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