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타작

from 09년 만천리 2009/11/10 15:56

콩 타작 - 셋째 날(11월 5일/맑음 1-13도)

 

비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잠깐씩 내렸지만. 콩 타작 하는 일 이외엔 밭에 나와도 딱히 할 일이 없기에 모처럼 나흘을 푹 쉬었다. 쉬는 동안 시래기도 삶아 말리고 전주에 털기만 했던 콩도 골라내긴 했지만 오랜만에 뒹굴뒹굴.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오늘은 이른 점심을 먹고는 해가 질 때까지 도리깨로 두 시간 타작. 나무막대기로 두 시간 타작. 대충 한 시간 돌 고르고 콩깍지 고르고. 덕분에 콩이 자루에 가득하다.

 

콩 타작 - 넷째 날(11월 7일/맑음 8-19도)

 

날이 좋은 날 놀지 말고 부지런히 콩을 털어야 할 텐데. 마음만 그렇다. 어제는 과학관 구경에 나섰다가 모처럼 서점에도 들르고 명동에도 들르고 했다. 밭에 쌓아둔 콩 더미를 생각하면 늦은 오후라도 밭에 나갔어야 했는데. 부러 여유를 부린 것이다. 비만 오지 않는다면 날이 조금 춥더라도 콩 터는 데는 별 문제가 없으리란 생각으로.

 

오늘도 그제처럼 이른 점심을 먹고 밭에 나가 네 시간 넘게 열심히 콩을 털지만 겨우 묶어 세워둔 콩 더미로 세 더미 밖에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아무래도 나중에 심은 것들을 터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듯하다. 그래 가만히 보니 일찍 심은 것들은 키는 큰데 콩깍지가 많이 달리지 않고. 나중에 심은 것들은 키는 작지만 콩깍지는 훨씬 많은게. 뭐든 시기를 잘 맞춰야 수확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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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0 15:56 2009/11/1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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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걷이

from 09년 만천리 2009/11/02 18:23

지주 뽑아내다(10월 26일/안개 후 맑음 9-19도)

 

오랜만에 안개다. 날이 쌀쌀할 땐 안개가 안 생겼는데 날이 푸근해지니 다시 안개가 낀 것이다. 안개가 오죽 짙게 끼었으면 점심때가 다 돼서야 겨우 해가 보인다. 어제만큼 해가 나온다면 한 이틀 고추를 바짝 말려 빻으려 했는데. 하루, 이틀 더 날씨를 봐야겠다.

 

오늘로 아래 밭에 심은 고구마는 모두 수확이 끝난다. 애초 사흘 정도 잡고 캐낼 생각이었는데. 위쪽 밭에 비하면 겨우 이틀 만에 다 캐냈으니 수확량으로 따져도 5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물론 씨알도 자잘한 것만 있을 뿐이다.

 

고구마를 다 캐고 나니 시간이 어중간하다. 곧 점심때가 될 터이긴 하나 느지막이 아침을 먹고 나와 배 속 사정은 여유가 있고. 고구마도 채 한 시간도 안 돼 다 캐냈으니. 해서 여름 내내 밥상을 풍성하게 해줬던 오이며, 호박 지주를 뽑아낸다. 주말에 중곡동 식구들이 온다고 하니 그때까진 고추 지주까지 다 뽑아야 한다. 그래야 차를 이용해 한 번에 다 나를 수 있으니.

 

어중간한 시간에 일을 시작한 것도 있지만. 생각보다 지주를 뽑아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아 점심때가 한 참 넘어서야 일이 끝났다. 오이며, 호박 줄기에 달린 매듭을 일일이 잘라내야 하고, 지주에 칭칭 묶인 비닐 끈도 일일이 다 풀어내야 하고, 흙도 탈탈 털어내야 하기에, 그리고 혹여 땅에 떨어지거나 잡초에 숨은 끈은 없는지 확인도 해야 하고. 서둘러 고구마를 자루에 담아 자전거에 오르니 한 시가 훌쩍 넘는다. 일할 땐 몰랐는데 시계를 보고나니 배가 고프다. 서둘러야지.   

 

열무김치(10월 27일/맑음 9-21도)

 

20도까지 올라가는 낮 기온만 놓고 보면 완연한(?) 봄이다. 하지만 아침, 저녁으로 일교차가 큰 탓에 감기 걸리기 딱 좋은 날씨고. 춘천에 온지 1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여전히 적응이 되질 않는다. 어쩌겠나. 알아서 몸조심하는 수밖에.

 

올 봄에도 열무며 아욱 등을 심었는데 어찌하다보니 때를 놓쳐 맛을 못 봤다. 열심히 키우기만 한 셈인데. 올 가을엔 벌써 아욱된장국을 두, 서너 번 먹었고 오늘은 열무를 수확하니 바쁜 일이 없긴 없나보다.

 

열무를 두 줄만 뽑아내서 손질을 했는데도 둘이 먹긴 양이 수월치 않다. 아무래도 훌쩍 자란 놈들은 시래기로 만들어야겠고. 아욱은 웬만큼 크는 대로 때 놓치지 않고 따가 된장국에 넣어 먹어야겠다.

 

열무만 손질해 한 자루 싣고 돌아오려니 30분 넘게 자전거 타고 온 시간이 아깝단 생각이 들어 고추 두 이랑 지주를 뽑아낸다. 역시나 지주 뽑는 시간은 10분인데 끈 정리하는데 1시간이 넘게 걸린다. 암만 봐도 뭔 수를 내도 내야할 듯하다.   

 

도리깨(10월 28일/맑음 6-18도)

 

백 평 농사를 짓던 이천 평 농사를 짓던 있어야 할 건 있어야 한다던데. 이건 좀 비싼 거 아닌가 싶다. 도리깨 하나에 1만원, 2미터×3미터 바닥 천 하나에 1만 5천원인데. 다음에 또 오라며 2천원 깎아서 2만 3천원. 콩 농사 조금 지어서 2만 3천원 어치나 나오려나.

 

늦은 아침을 먹고 밭에 나가 바닥 천을 깔고 도리깨질을 하는데. 이게 생각보단 쉽진 않다. 바닥 천이 작아서인지. 도리깨질 한 번에 이리 저리 튀는 콩들이 바닥 천을 벗어나기 일쑤다. 요령이 없어서일지 모르겠지만서도 겨우 묶어 세워놓은 콩 두 단 털고 나니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아무래도 내일부턴 뭔 수를 내야겠다.

 

그래도 털어 온 콩을 저녁 내내 돌아가며 골라내니 작년에 수확한 콩 양을 훌쩍 넘는다. 묶어 세워놓은 콩이 오늘 턴 것에 대략 20배는 될 터이니. 아무래도 이번 콩 수확도 성공이지 싶다.

 

* 도리깨 - 1만원 / 바닥 천 - 1만 3천원

 

콩 타작 - 둘째 날(10월 29일/맑음 6-22도)

 

생각보다 콩 터는 게 쉽지 않다. 일이 힘든 거 보단 시간이 많이 걸려서 그렇다. 얼추 사나흘 도리깨로 타작하고 바람 부는 날 한 이틀 키질하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가는 모양새론 어림도 없다.

 

모래 비가 오고나면 날씨가 추워질 거란 예보에 두 이랑 남은 고구마를 캐야 하는데 도리깨를 잡고 있으니 아무래도 양이 많은 콩이 부담이 되나보다. 또 일요일 오후에 중곡동 식구들과 남은 고구마를 캐면 손을 줄일 수 있다는 계산도 콩 타작에 나서게 한다. 하지만 두 시간이 넘게 일을 해도 겨우 반 자루니. 언제 다 털려나. 

 

다시 고구마 캐다 - 첫째 날(10월 30일/맑음 9-23도)

 

예정대로였다면 오늘 오후 서울에서 오는 손님들과 또 일요일에 찾아오는 중곡동 식구들을 위해 고구마를 조금 남겨뒀었다. 멀리서 얼굴 보러, 밭 구경 하러 부러 오는데 고구마라도 캘 수 있게 해야 할 것 같아서였다. 헌데.

 

내일 오후부터 내리는 비가 그치고 나면 영하로 떨어지는 추위가 온다고 한다. 비록 이틀 정도 새벽에 영하로 내려가는 거지만. 고구마에겐 치명적이기에 하는 수 없이 고구마를 캐내다. 그래도 중곡동 식구들을 위해서 조금은 남겨두는데. 어차피 혼자 캐내서 옮기려면 벅차기도 하기 때문에.

 

고구마를 두 자루 넘게 캐내고는 고추단도 다 뽑아내고, 옥수숫대도 베어내고, 고추끈도 정리한다. 콩은 이미 다 뽑아 말리고 있고 며칠 전엔 오이, 가지, 호박 지주도 뽑아냈으니. 밭이 휘휘하다. 이제 고추 뽑아내고, 콩 다 털고, 배추, 무 뽑아내면 올 농사 끝이다.

 

다시 고구마 캐다 - 둘째 날(10월 31일/흐린 후 비 10-16도)

 

아침부터 날씨가 꾸물꾸물하다. 하늘을 보니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먹구름이 가득한데. 서둘러 밭으로 나가 남은 고구마도 캐내고 열무며 아욱도 수확해야 할 텐데. 며칠 간 낮엔 밭일을 밤엔 밭에서 가져온 콩 고르기에 고추 닦기에 쉬지를 않았더니 몸이 무거워 꼼지락댄다.

 

겨우 10시가 조금 넘어 밭으로 나가 남은 고구마를 캐내고 나니 하늘이 거멓다. 모르긴 해도 30분 내에 비가 올 듯한데. 서둘러 자루에 고구마를 담고 자전거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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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2 18:23 2009/11/02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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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우고전선 가운데 8번째이네요. 1987년 개정 4쇄판으로 읽었답니다>
 

 
존 번연(John Bunyan 1628-1688)은 동시대를 살았던 존 밀턴(John Milton 1608-1674)과 함께 17세기 영국 청교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에게 이런 명성을 가져다 준 책이 바로 <천로역정(天路歷程 The Pilgrim's Progress)>입니다.
 
하지만 <천로역정>은 그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어떤 의도(意圖)에 따라 저술된 것이 아니라 일련의 여러 사건들을, ‘거룩한 땅’으로 안내하기 위해 짜 맞추듯 늘어놓고 있어 보기에 따라서는 도식적이다, 거북스럽다, 느낄 수도 있을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로역정>이 존 번연의 대표작이라는, 단순한 종교서적으로 특정인들 사이에서만 읽혀진 것이 아니라, 당대는 물론 후대에도 걸작으로 인정받는 데에는,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1737-1809)이 쓴 <인간의 권리 Rights of Men>와 더불어 영국 노동계급 운동의 양대 기본 문헌 가운데 하나로 널리 읽혔기 때문입니다(E.P. Thompson, <영국노동계급의 형성 The Making of the English Working Class>, 나종일 외 옮김 p.44). 즉, <천로역정>은 주인공인 크리스천이 고난과 역경을 넘어 ‘천성(天城)’에 당도한다는, ‘신앙의 문제를 우화(寓話) 형식으로 형상화한 종교소설’을 뛰어넘어 ‘1790년에서 1850년까지의 노동계급 운동의 기본 바탕을 이룬 이념과 입장의 형성에 가장 크게 기여(<영국노동계급의 형성> pp.44-45)한 ‘복음서’인 셈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들에도 불구하고 <천로역정>에 등장하는 무수한 비유(譬喩)들 속에서 ‘18세기를 통해 내내 보존되어 19세기에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터져 나오곤 했던 잠재된 급진주의(<영국노동계급의 형성> p.44)’의 흔적들을 읽어내기란 녹녹치가 않습니다. 그리고 또, 혹 그런 흔적들을 읽어냈다손 치더라도 곳곳에서 드러나는 ‘과장된 감동, 현세에 복종적인 태도, 개인적 구원에 대한 자기 중점적 추구(<영국노동계급의 형성> p.49)’,들을 보고 있자면 역시나 종교소설이라는 틀을 벗겨내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아무래도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17세기와 18, 19세기 영국의 정치, 경제, 사회적 배경에 대한 또 다른 읽기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러할 때에야 비로소 <천로역정>을 특정인들 사이에서만 읽히는 ‘복음서’에서 ‘해방’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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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30 12:37 2009/10/30 12:37

급할수록 돌아가자(10월 19일/바람 셈 7-15도)

 

9일 밭에 나왔었으니 꼭 열흘 만이다. 일이 그렇게 돼서 어쩔 수가 없었지만 잠깐이라도 짬을 낼 수 있으려니 했는데.

 

하도 오랜만이기도 하고 엊그제부터 밤엔 번개에 돌풍이 불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묶어 세워 높은 콩대가 쓰러지지나 않았는지. 때를 놓쳐 고구마 캐낼 시기를 놓친 건 아닌지. 속이 여물기 시작한 배추를 서둘러 묶어 줘야 하는데. 걱정에 마음까지 급하다.

 

그래도 이럴 때일수록 돌아가야 한다. 생각하기엔 일이 많은 듯해도 고구마 캐기와 콩 털기를 빼고 나면 그리 크게 손 볼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행이도 밭은 열흘 전과 그대로다.

 

* 이번 주 할 일

화 - 배추 묶어주기, 나머지 콩대 뽑기,

수, 목, 금 - 고구마 캐기

토, 일 - 고추밭 정리(풋고추 따기, 지주 뽑기)

* 다음 주 할 일

콩 털기 

 

배추 묶고 고구마 캐다(10월 20일/바람 셈 4-16도)

 

어제에 이어 오늘도 바람이 세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고추를 말릴 요량으로 옥상에 올랐다 그냥 내려올 정도니. 이럴 땐 뭐든 말리는 게 쉽지가 않다. 하루 이틀이면 다 말리고 고춧가루를 만들 수 있을 텐데 날씨가 얄밉기만 하다. 

 

고추 말리기는 포기하고 자전거에 오르는데. 이런 바람이 센 만큼 공기도 차다. 하긴 한로도 지났고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상강이니 추울 만도 하다. 그래도 그렇지 일주일사이로 이리 추워질 줄이야.

 

이번 주엔 고구마를 다 캐내야 한다. 어제 맛보기로 두 줄기를 캐내봤는데 알도 굵고 양도 제법이다. 또 색깔도 맛깔난데, 삶아 먹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어찌나 달고 맛나던지. 올 핸 뭐든 잘 돼서 참 다행이다.

 

느지막이 나와 한 두 시간 배추도 묶고 콩대도 뽑고 고구마도 캐니 추위는 참을만한데 뱃속에서 계속 ‘꼬르륵’이다. 혹여나 하고 가져간 팔뚝만한 고구마를 먹어도 그때뿐이니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다. 

 

고구마 캐기 - 둘째 날(10월 21일/맑음 4-19도)

 

요 며칠 천둥, 번개와 비가 내리고 강풍이 불면서 날이 차가워졌는데 오늘은 바람도 잠잠하고 햇볕도 땃땃하다. 덕분에 근 10여일 만에 고추도 널어놓고 고구마 순도 삶을 수 있다. 앞으로 더도 말고 열흘만 오늘 같았으면 좋겠다.

 

어제에 이어 팔뚝만한 고구마를 자전거가 휘청할 만큼 캐냈다. 거기다 덤으로 고구마 순도 한 바구니이니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배는 걸린다. 오르막길에 자전거를 끌고 올라오느라 그렇다. 덕분에 오랜만에 힘도 들고 등줄기에 땀도 흐른다.

 

고구마 캐기 - 셋째 날(10월 23일/맑음 7-18도)

 

오후에는 서울 나들이를 해야 하기에 오전 일찍 밭에 다녀왔다. 마음 같아서는 고추대도 뽑아주고 비닐도 걷고 싶으나 서두르지 않으면 은행 마감시간 4시를 맞추는 게 쉽지 않기에 금방 집으로 올 수밖에 없다. 해서 오늘은 두 시간 남짓, 고구마 두 자루만 캐낸다.

 

고구마 캐기 - 넷째 날(10월 25일/흐림 9-20도)

 

다시 날이 푸근해진다. 최저 기온이 10 가까이 올라오고 낮 기온은 20도를 웃도니 겨울로 가다 도로 봄이 된 것 같다. 지난주만 해도 갑자기 추워져 콩이며, 고구마 수확에 마음이 급했는데 날이 풀리니 괜스레 걱정한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언제 또 날이 쌀쌀해질지 모르니 손을 댄 김에 다음 주까지 해서 정리를 해야 한다.

 

서울에 다녀온 노독이 있어서인지 어제는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더니 오늘은 좀 낫다. 그래도 눈을 떠보니 해가 머리 위에 떴고 서둘러 밭에 나왔으나 이미 점심때다. 할 수 없이 오늘도 고구마만 캐다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아래 밭 고구마가 위 밭 고구마 보다는 씨알도 작고 수확량도 작은 게 예상대로다. 똑같이 옥수수를 심어도, 콩을 심어도 위 밭은 키도 크고 알이 많이 맺히는데 아래 밭은 그렇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시간 남짓 고구마를 캐내니 그래도 한 자루는 너끈히 나온다.

 

자전거에 고구마를 싣고는 짱아지 담글 요량으로 김장 무 두 개를 뽑아내는데. 생각보다 꽤나 크다. 이 정도면 김장도 담그고 남은 건 무말랭이도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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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7 19:16 2009/10/27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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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적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지요. 이러다 해를 넘기지나 않을런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래서일까요. 요즘 들어 부쩍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행사들이 열리고 있습니다. 지난 18일에 열린 국민법정이 그러했구요. 19일에는 세계 각국의 평화운동가들로 이뤄진 ‘평화와 비폭력을 위한 세계행진단’이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MB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네요. 겨우 유족들을 만나 거짓 눈물을 흘릴 줄만 알고 말이죠.
 
2.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 파업을 벌였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가운데 2명이 자살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신문기사를 보니 한 분은 ‘경찰이 허위 자백을 강요했다’는 취지의 유서를 남겼구요, 또 다른 한 분은 정리해고 이후 심적 고통으로 괴로워하다 계속되는 경찰 조사에 생계마저 막막해지자 자살을 시도했답니다. 애당초 기술력만 빼돌릴 게 뻔한데도 쌍용자동차를 팔아넘긴 정부관료와 경영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는데 말이죠.      
 
 <2006년도에 개정판이 나왔네요. 초판 발행 시 미비했던 점들이 보충됐구요. 별면 화보가 추가 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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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우리 사회에 남긴 유산(遺産)으로는 뭐가 있을까요. 김동춘 샘(성공회대 사회과학부)은 이런 물음에 ‘전쟁이 사회 운영원리로 내재화되고 냉전적 정치경제 질서가 가장 철저하게 착근된 사회’라고 답합니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는 여전히 ‘전쟁’중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김동춘 샘은 또 이런 이야기도 합니다. 이 ‘전쟁’ 중인 사회에서 힘없는 민중들은 끊임없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피난’ 행렬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4.
용산참사 때도 그랬고 쌍용자동차 파업 때도 그랬습니다. 시시각각 전해지는 화면을 보고 있자니 이건. 그래요. 누가 이런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하라 한다면, 주저 없이 ‘전쟁터’라 할만 했습니다. 다들 보셔서 아시겠지만 이 나라 공권력은 용산참사 농성자들과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마치 전쟁터에서 맞닥뜨린 ‘적’으로 간주하고 있는 듯했거든요. 그렇지 않다면야 어디 ‘여기 사람이 있어요.’라며 울부짖는 이들을 그리 무자비하게 대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노무현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는 주저 없이 발길을 옮기면서도 용산 참사 현장은 애써 외면하는. 한 집 건너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고 또 한 집 건너 정리해고자가 넘쳐나면서도 노동조합에는 거침없이 비난을 쏟아내는 국민들을 보고 있자니. 그래요. 우리 국민들은 자기 목숨 건사하기 위해 여전히 ‘피난’을 떠나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더랬습니다.    
 
5.
검찰이 용산참사 농성자 전원에게 중형을 선고했다고 합니다. 쌍용자동차 파업노동자들 가운데 이미 40여명이 구속된 상태이고 앞으로 30여명은 더 구속될 것 같다는 얘기들이 있는 걸로 봐선. 아무래도 모두 감옥살이를 각오해야 할 것 같은데. 혹 김동춘 샘이 쓴 <전쟁과 사회>의 분석틀로 보자면 ‘전쟁터’에서 ‘포로’로 붙들린 이들에게 이 정도 처분이면 오히려 과분하다,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이놈에 ‘피난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마냥 ‘피난’ 행렬에 뛰어드는 것 말고는 정말 할 수 있는 게 없는 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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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1 21:10 2009/10/21 2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