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산하를 불도저로 밀어내면서도 ‘저탄소 녹색성장’ 운운하는 MB정부가 또 꼼수를 부리고 있습니다. 연일 언론에서 호들갑을 떨어대는 중기(202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그겁니다. 애당초 목표치를 확정하기 전부터 산업계의 눈치만 살피더니. 딱 기대했던 만큼만을 한 것도 모자라 자화자찬에. 온갖 꼼수들만 다 동원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도 그러는지 무척 궁금한데요. 감축 목표를 확정한 국무회의에 내복에 조끼까지 입고, 평소 20도인 실내온도를 19도로 낮추는 ‘쇼’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도 이번 감축안을 두고 산업계에선 벌써부터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매번 써먹는 수법이지만 또 ‘수출경쟁력 약화’ 운운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과 달리 에너지 소비가 많은 제조업 중심이라 상당한 부담이라는 둥, 개도국 가운데 왜 우리만 선제적으로 최고 수준에서 감축하느냐는 둥, 경제가 어려워 직원들 월급주기도 힘든 판에 온실가스 감축 관련 설비투자는 엄두도 못 낸다는 둥 말이죠. 이미 정부 감축안이 산업계의 눈치만 살피다 이 모양으로 된 건데도 온갖 엄살을 부리는 게. 앞으로 구체적인 감축 계획이 만들어질 텐데 벌써부터 압력을 행사하려는 게 빤한 속셈 아니겠습니까.
하지만요. 산업계가 이렇게 ‘떼법’식 협박을 하는 거야 그렇다, 쳐도. 정부가 내놓은 이번 감축안이, 틈만 나면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MB의 말처럼 과연 그러한지는 꼼꼼히 따져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보내야 하는 이유가 그런 것처럼 말이죠.
헌데요. 국무회의가 끝난 직후 지식경제부가 내놓은 보도 자료를 보니까요. 어찌된 게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것하고는 조금 다른 뉘앙스가 풍깁니다. 어디에선 ‘선제적’ 감축 목표라고 까지도 하는데. ‘202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2005년 대비 4%(2020년 배출 전망 대비 30%) 감축’이라는 게 대부분의 언론 보도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요. 보도자료에는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절대량 기준이 아닌 “’20년 배출전망 대비 30% 감축”’이라고 못 박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표 추진과정에서 산업경쟁력에 대한 배려도 약속하고 있구요. 자, 이제 정부의 꼼수가 조금씩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정부는 현재 시점에서의 온실가스 ‘배출확정치’를 기준으로 감축안을 세운 게 결코 아니었습니다. 보도 자료에도 설명돼 있듯이 ‘향후 경제성장률, 유가 등 객관적 경제상황이 변동될 경우 배출전망도 변동가능’한 BAU(Business As Usual)를 기준으로 삼은 겁니다. 쉽게 말해 앞으로 어찌될지도 명확하지 않은 기준들을 가지고 감축안을 내놓은 것이죠.
게다가 이 BAU라는 것이 말이죠.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배출될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 전망치를 말하는 것인데요. 그럼 2020년까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준을 삼았다는 건데. 그래서 매년 2.1%씩 배출량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한 건데. 거 참, 2020년이면 너무 늦은 거 아닙니까. 그리고 그동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을 걸 기준으로 삼다니요. 지금부터라 줄여가는 과정에서 얼마나 더 줄일 것이냐를 고민해야 옳은 거 아닙니까. 그러면서도 언론플레이를 하는 건지 2005년이라는 ‘절대량 기준’으로 감축 목표를 세운 것처럼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정부는 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번 감축안은 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가 제시하는 비의무국 권고수준인 15~30% 수준에서는 가장 높은 것이라구요. 헌데 말입니다. 감축 계획을 세우면서 말이죠. 우리나라가 OECD 가입 국가이자 내년엔 G20 정상회의까지 개최한다는 건 잊으셨나봅니다. 또 세계 9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이자 누적배출량 세계22위라는 것도 함께 잊으셨나봅니다. 한마디로 경제 수준은 선진국 수준인데 반해 감축안은 ‘확실하게 신축적인 비의무감축국(개도국) 방식’으로 한 겁니다. 이러면서 어찌 ‘국제적으로 권고하는 최고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지요.
더구나 정부는 산업계의 협박에 못 이겨 ‘건물, 교통 등 비산업분야를 중심으로 감축노력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말로는 ‘경제성장 및 일자리와 직결되는 산업경쟁력 부담을 최소화’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분야에 대해 그런 배려를 한다면 무슨 수로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건물, 교통 등 비산업 분야에서도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해야겠지요. 하지만 말입니다. 산업분야에서의 대폭적인 감축이 선행되지 않는다면요. 국민들 상대로 내복 입어라, 온도 낮춰라, 지하철 타고 다녀라, 징징댈 게 뻔하지 않나요.
기후변화협약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관한 의정서인 <교토의정서>상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지고 있는 선진국들은 기준점을 1990년으로 잡고 있답니다. 이 기준에 따라서 일본은 1990년 대비 최대 25%까지 감축할 것을,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선진국 권고 최대치인 40%까지 줄이겠다고 했구요. 그리고 최근 인도네시아는 선진국이 지원을 해준다는 전제 조건이 있지만 BAU 대비 최대 41%까지 감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또 브라질도 최대 40%까지 감축할 수 있음을 발표했습니다. 개발도상국들이 온실가스 감축에 있어 훨씬 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점들을 감안한다면요. 이번 MB정부가 발표한 감축안은 전혀 ‘선제적’이지도, 결코 야심차다, 고 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아니 요란스럽게 떠들어대지는 않을망정 꼼수는 부리지 말아야지요. 겨우 생색내기만도 못한 감축안을 내놓고 말입니다.
콩 타작 - 다섯째 날(11월 12일/바람 셈 6-10도)
바람이 세게 부니 체감온도는 10도보다도 훨씬 낮게 느껴진다. 콩 터는 데는 좋은 날씨겠지만 자전거 타기엔 쉽지 않다. 바람이 뒤에서 분다면야 낫겠지만. 어찌된 게 맞바람만. 페달을 열심히 돌리지만 오르막에선 기진맥진이다.
찬바람을 맞으며 네 시간 가까이 콩 타작을 하니. 많이 털긴 했지만 몸이 영 심상치 않다. 감기 기운이 있는 건 아니지만 온 몸이 두들겨 맞은 듯. 근육이 다 뭉친 듯하다. 결국 털어온 콩을 다 골라내지도 못하고 10시 채 못 돼 곯아떨어진다.
겨울이 성큼 다가오다(11월 14일/ 3-11도)
어제 또 비가 왔다. 이렇게 사나흘 혹은 일주일마다 비가 오다간. 콩 터는 데 보름이 넘게 걸릴 듯하다. 비가 오고 나면 적어도 이틀은 햇볕에 말려야 털 수 있는데. 때맞추는 것처럼 말렸다 털어볼까 하면 비가 오고. 또 말렸다 털려하면 비가오니.
이맘때 오는 비는 항상 추위를 달고 온다. 어제 내린 비도 예외 없다. 오늘 저녁부터 기온이 내려가면서 내일은 영하로 떨어진다고 한다. 게다가 이번 추위는 다음 주 중반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아무래도 또 배추는 퇴비비닐로 덮어줘야 할 듯.
아침 일찍 밭에 나갔지만 바람이 세다. 예보로는 오후부터 추워진다고 하던데. 무야 지난 번 추위 때 땅에 묻어놨고. 오늘은 지난번처럼 배추만 손보면 되니. 열심히 바람을 뚫고 자전거를 타고 밭으로 나간 시간이 머쓱하다. 10분도 채 안 돼 일이 끝났으니. 맘 같아선 콩도 털어내고 싶지만. 어제 내린 비 때문에 아직 타작은 안 된다. 휘휘해진 밭을 한 바퀴 돌고는 다시 자전거에 오르니 바람이 더 세차다.
가을이 다 가고서야 낙엽을 밟습니다 그려. 그도 그럴 것이 농부에게 이 계절이란 이루 다 말할 수도 없이 바쁜 하루하루겠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십분만 걸어 나가도 온통 붉고, 노란데 무에 그리도 일이 많은지요. 근 2년 만에 얼굴을 본 이도 ‘농부가 농부 같아야지’라며 도통 농사짓는 모양새가 아니라며 허허 웃는데도 말입니다.
<10분만 걸어나가도 가을을 볼 수 있는데도 뭐가 그리 바쁜가요(공치전)>
춘천으로 오고 나니 꽤나 많은 이들이 사는 것, 농사짓는 것, 이런 저런 구경삼아 오겠다, 고들 하더군요. 또 어떤 이들은 강촌의 구곡폭포니, 가평의 남이섬, 그리고 이곳 춘천의 중도를 떠올리면서 꼭 한 번 더 가보고 싶다고들 합니다. 헌데 다들 사는 게. 그래 그리 녹녹치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 오겠다던 사람들. 전화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바로 엊그제네요. 주말도 아닌 월요일 아침. 느닷없이 오겠다는, 여기 춘천엘 놀러오겠다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답니다. 그것도. 그래요. 좀 전에도 말했지요. 근 2년 동안이나 얼굴도 못 본(사실은 지지난주, 서울에 볼일을 보러 갔다 저녁 술 한잔 했으니 ‘통’이란 한 글자를 넣어야 하겠네요) 선배의 전화를 말입니다.
실은 누가 여기 춘천에를 온다고 하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랍니다. 뭐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서도 모두들 알 듯 모를 듯한 어떤 뭔가에 이끌려오곤 하지만. 딱히 어딜 함께 갈만한 곳도. 함께 먹을 만한 것도 마땅치가 않기 때문에 말입니다. 이름만 들으면 아련한 뭔가가 떠오르긴 한데. 막상 가보면. 그래요. 뭐 별 거 없는 게 괜스레 미망하기만 하더라구요.
<올 봄, 산책길에서 본 중도예요. 멀리 배가 보이지요?>
<5분 남짓 배를 타면. 중도에 다 왔습니다>
중도.
그래요. 중도도 그런 곳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하는. 배를 타고 건너진 않았지만 왠지 그럴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러랬습니다. 그건 아마도. 짬짬이 산책을 다니던 길가에서 의암호 너머로 늘 보이는 모습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거길 다녀왔다던 사람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하던 이야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거, 뭐 볼 거라곤 하나도 없어요’
근화동쪽 뱃터를 이용하면 차를 실을 수 있지만 가격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래 보통은 뱃터 혹은 삼천동쪽 선착장 앞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는 가벼이 몸만 싣습니다. 호수 이쪽에서는 섬이 꽤나 커 보이지만. 걸어서도 넉넉잡고 서너 시간이면 둘러보는데 충분하거든요. 그러니 굳이 차를 가지고 들어갈 이유가 없답니다.
날 좋은 봄이나 가을, 혹은 여름 한철에는 배가 쉼 없이 오가지만. 바람 불고 낙엽 다 떨어진 요맘때. 것도 평일 아침이라면 배에 오르기 전 이런 말을 듣기도 한답니다. 대략 5분 남짓이면 저편에서 이편으로, 이편에서 저편으로 오가는데도 말입니다.
‘나오시려거든 미리 전화를 주세요. 언제 배가 들어가는지 확인하셔야 하니까요’
<어때요. 종일 걷고, 쉬고, 보며, 얘기하기에 딱이지 않습니까>
중도는 의암댐이 들어서면서 생겨났답니다. 쉽게 말해 물길을 막기 전엔 걸어서 다녔던 곳이란 거죠. 그렇게 만들어진 섬은 크게 상중도와 하중도로 나뉘는데요. 이 가운데 하중도가 흔히들 알고 있는 중도유원지이구요. 상중도는 농사를 짓는 이들이 살고 있는, 여느 시골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중도는 딱히 볼만한 거리들이라곤, 딱히 즐길만한 놀이시설이라곤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춘천을 배경으로 찍은 ‘겨울연가’와 ‘와니와 준하’ 촬영지, 섬을 둘러싸고 있는 산책길 과 자전거길, 선착장 바로 옆 선사유적지, 저렴한 가격의 통나무집과 민박, 들을 빼고 나면. 널따란 잔디, 사방에서 보이는 강, 나무와 조그만 숲이 다니까요. 하지만 이런 점들이 오히려 중도의 매력이 아닐까 싶기도 하는데요. 이번 방문이 그런 느낌을 가져다 주었더랬거든요.
2년여 만에 봤기도 했지만. 배를 전세 낸 듯 둘이서만 타고서. 다 떨어진, 이제는 색까지 다 바랜 낙엽을 밟으며. 좀 세차긴 했지만 시원한 강바람도 맞으며. 그동안 살아왔던 얘기들. 앞으로 살아갈 얘기들. 다른 이들이 사는 얘기들. 걷다. 가끔은 나무 아래, 호숫가에 쉬기도. 추위를 녹이려 자판기 커피를 한잔씩 마시기도. 섬으로 들어오는 배를 말없이 바라보기도. 하니, 중도. 이 섬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더라니까요.
이제 누군가가 또 춘천엘 온다면 함께 들를만한 곳으로. 그래요. 중도를 추가해야겠습니다. 다소 뱃삯이 비싸기는 하지만. 종일 걷기에 이만한 곳이 어디 또 있을까 싶으니. 종일 사람 사는 얘기를 나눌 수 있을 만한 곳이 어디 또 있을까 싶으니.
꽃망울이 터진 봄이면 어떻고, 낙엽이 다 진 이 가을이면 또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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