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칠레를 얘기할라치면 미제국주의가 만들어 낸 독재자 피노체트, 그리고 그 독재자에 의해 살해된, 선거로 세워진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아엔데 정부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우리와 같이 쿠테타로 점철된 역사를 갖고 있는 제3세계를 되돌아볼 때면 말이죠. 하지만 사회주의 정부를 세우는데 앞장섰던 다른 많은 이들에 대한 얘기는 잘 모릅니다. 이 책 <끝나지 않은 노래 Victor: An Unfinished Song by Joan Jara>에 등장하는 이들. 앙헬, 이사벨 파라 부부, 킬라파윤, 인티 이이마니 그룹의 멤버들, 파트리시오 카스티요, 인민연합을 구성하고 있던 이름 없는 수많은 칠레 민중, 그리고 여기 주인공인 빅토르 하라와 그의 노래와 투쟁을 전해주는 조안 하라가 그러합니다.
 
2.
빅토르 하라(Victor Lidio Jara Martinez 1932-1973)는 칠레, 아니 남미의 살아있는 연극 연출가이자, 민요, 민중 가수입니다. 그리고 하라는 그의 노래들의 가사들처럼 늘 칠레 민중, 남미의 억압받고 착취당하나 끝내 희망을 움켜쥐고 전진하는 민중들과 연대했던 문화운동가였습니다. 
 
다시 한 번 그들은 내 조국을
노동자 민중의 피로 더럽히려 하네
입으로는 자유를 말하나
두 손은 죄의 흔적이 새겨진 자들
우리들의 자녀와 그 어머니들을
갈라놓으려 하네
그리스도가 졌던 십자가를
다시 지우려 하네
 
그들은 수백 년 동안 대물림해온
수치를 감추려 하나
살인자의 표지들은
그들의 얼굴에서 지워지지 않네
이미 수천 수만 명이
그들의 피를 희생으로 바쳐
그 흐르는 피의 강(江)이
빵 덩어리의 숫자를 불려왔건만
 
이제는 나는 살고 싶어라
내 아이와 형제와 더불어
우리 모두가 매일매일
건설하고 있는 새 세상에서
너희들의 위협도 나는 두렵지 않다
비참함의 주인들 너희들이여
희망의 저 별은
언제까지나 우리들의 것이니
 
민중의 바람이 나를 부르고 있다
민중의 바람이 나를 실어간다
그 바람은 내 가슴을 열어젖히고
내 목을 통과해서 불어간다
그래서 시인의 음성은 들리게 되리라
죽음이 나를 앗아갈 때까지
민중이 가는 그 길을 따라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 「민중의 바람」(<아직 끝나지 않은 노래) pp.293-294)
 
또 하라는. 죽음을 앞둔 그에게 기타를 던져주며 노래를 불러보라 조롱하던 그 순간에도 민중의 노래를 끝내 부르고야 말았던 혁명가였습니다.
 
3. 
90년대 초반, 대학에 갓 들어간 어느 날. 도서관 앞에서 벌어졌던 집회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던 선배들의 모습에 전율을 느꼈더랬습니다. 국기에 대한 맹세는커녕 애국가조차 부르지 않다니. 그리고는 움켜진 주먹을 하늘로 뻗으며 난생 처음 듣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좀 나중에야 알았는데 이걸 ‘민중의례’라 했습니다). 엊그제 입학식 때만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노래도 노래지만 선배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어찌나 굳어 있던지요.
 
그 후로 학생회실에서, 대성리로 갔던 첫 MT에서, 지랄탄이 어지럽게 구르던 종로 거리에서. 이제까지 들어왔던, 불러왔던 노래들과는 전혀 다른, ‘민가’로 속칭했던 ‘민중가요’란 걸 ‘대중가요’ 보다 더 많이 듣고, 또 부르게 됐지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 「임을 위한 행진곡」*
 
4.
MB이 공식 석상에서 공무원노조의 ‘민중의례’에 대해 한마디 했다고 하지요. 그리고 MB의 이 한마디에 곧장 행정안전부는 징계 회부 운운하며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민중의례’가 무에, ‘공무원 품위에 떨어진다’고 그러는지 말입니다. 참말로 궁색하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저들은요. 이렇게 말도 되지 않는 이유를 들어가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못하도록 하는 건요.
 
그래요. MB은 알고 있는 겁니다. 노래의 힘을 말이죠. 그것도 민중의 분노와 의지가 담긴 노래라면 더 그렇다는 걸 말입니다. 그래서 독재자 피노체트도 칠레의 음악혁명가 빅토르 하라를 그렇게, 다시는 기타를 치지 못하도록 손목을 꺾으면서까지 죽였던 것이구요. MB 역시 공무원 노동자들이 민중의 편에 서는 걸 막아보려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입에 올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요. 
 
* <임을 위한 행진곡>은 백기완 선생의 시 ‘묏비나리’에서 따온 것인데요. 1982년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 있었던 광주민중항쟁 시민군 대변인 故 윤상원과 故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에서 처음 빛을 봤습니다. 당시 전두환 군부독재의 폭정으로 작곡을 했던 김종률 씨는  수차례 수사기관에 끌려 다니며 고초를 겪었다 하구요. 백기완 선생의 싯구절을 따 작사를 한 소설가 황석영 씨는 광주 운암동 산중턱에 있던 자신의 집에서 비밀리에 카세트레코더를 이용, 녹음할 수 있게 했답니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임을 위한 행진곡>은 집회는 물론이고 각종 행사와 회의 시작 전, 국민의례를 대신해 불리고 있으며, 민중의 희망을 위해 싸우다 먼저 산화해간 열사들에 대한 묵념과 함께 ‘민중의례’로 자리 잡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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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3 10:06 2009/11/23 10:06

온 산하를 불도저로 밀어내면서도 ‘저탄소 녹색성장’ 운운하는 MB정부가 또 꼼수를 부리고 있습니다. 연일 언론에서 호들갑을 떨어대는 중기(202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그겁니다. 애당초 목표치를 확정하기 전부터 산업계의 눈치만 살피더니. 딱 기대했던 만큼만을 한 것도 모자라 자화자찬에. 온갖 꼼수들만 다 동원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도 그러는지 무척 궁금한데요. 감축 목표를 확정한 국무회의에 내복에 조끼까지 입고, 평소 20도인 실내온도를 19도로 낮추는 ‘쇼’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도 이번 감축안을 두고 산업계에선 벌써부터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매번 써먹는 수법이지만 또 ‘수출경쟁력 약화’ 운운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과 달리 에너지 소비가 많은 제조업 중심이라 상당한 부담이라는 둥, 개도국 가운데 왜 우리만 선제적으로 최고 수준에서 감축하느냐는 둥, 경제가 어려워 직원들 월급주기도 힘든 판에 온실가스 감축 관련 설비투자는 엄두도 못 낸다는 둥 말이죠. 이미 정부 감축안이 산업계의 눈치만 살피다 이 모양으로 된 건데도 온갖 엄살을 부리는 게. 앞으로 구체적인 감축 계획이 만들어질 텐데 벌써부터 압력을 행사하려는 게 빤한 속셈 아니겠습니까.

 

하지만요. 산업계가 이렇게 ‘떼법’식 협박을 하는 거야 그렇다, 쳐도. 정부가 내놓은 이번 감축안이, 틈만 나면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MB의 말처럼 과연 그러한지는 꼼꼼히 따져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보내야 하는 이유가 그런 것처럼 말이죠.   

 

헌데요. 국무회의가 끝난 직후 지식경제부가 내놓은 보도 자료를 보니까요. 어찌된 게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것하고는 조금 다른 뉘앙스가 풍깁니다. 어디에선 ‘선제적’ 감축 목표라고 까지도 하는데. ‘202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2005년 대비 4%(2020년 배출 전망 대비 30%) 감축’이라는 게 대부분의 언론 보도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요. 보도자료에는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절대량 기준이 아닌 “’20년 배출전망 대비 30% 감축”’이라고 못 박고 있습니다. 그리고 목표 추진과정에서 산업경쟁력에 대한 배려도 약속하고 있구요. 자, 이제 정부의 꼼수가 조금씩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정부는 현재 시점에서의 온실가스 ‘배출확정치’를 기준으로 감축안을 세운 게 결코 아니었습니다. 보도 자료에도 설명돼 있듯이 ‘향후 경제성장률, 유가 등 객관적 경제상황이 변동될 경우 배출전망도 변동가능’한 BAU(Business As Usual)를 기준으로 삼은 겁니다. 쉽게 말해 앞으로 어찌될지도 명확하지 않은 기준들을 가지고 감축안을 내놓은 것이죠.

 

게다가 이 BAU라는 것이 말이죠.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배출될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 전망치를 말하는 것인데요. 그럼 2020년까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준을 삼았다는 건데. 그래서 매년 2.1%씩 배출량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한 건데. 거 참, 2020년이면 너무 늦은 거 아닙니까. 그리고 그동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을 걸 기준으로 삼다니요. 지금부터라 줄여가는 과정에서 얼마나 더 줄일 것이냐를 고민해야 옳은 거 아닙니까. 그러면서도 언론플레이를 하는 건지 2005년이라는 ‘절대량 기준’으로 감축 목표를 세운 것처럼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정부는 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번 감축안은 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가 제시하는 비의무국 권고수준인 15~30% 수준에서는 가장 높은 것이라구요. 헌데 말입니다. 감축 계획을 세우면서 말이죠. 우리나라가 OECD 가입 국가이자 내년엔 G20 정상회의까지 개최한다는 건 잊으셨나봅니다. 또 세계 9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이자 누적배출량 세계22위라는 것도 함께 잊으셨나봅니다. 한마디로 경제 수준은 선진국 수준인데 반해 감축안은 ‘확실하게 신축적인 비의무감축국(개도국) 방식’으로 한 겁니다. 이러면서 어찌 ‘국제적으로 권고하는 최고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지요.     

 

더구나 정부는 산업계의 협박에 못 이겨 ‘건물, 교통 등 비산업분야를 중심으로 감축노력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말로는 ‘경제성장 및 일자리와 직결되는 산업경쟁력 부담을 최소화’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분야에 대해 그런 배려를 한다면 무슨 수로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건물, 교통 등 비산업 분야에서도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해야겠지요. 하지만 말입니다. 산업분야에서의 대폭적인 감축이 선행되지 않는다면요. 국민들 상대로 내복 입어라, 온도 낮춰라, 지하철 타고 다녀라, 징징댈 게 뻔하지 않나요. 

 

기후변화협약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관한 의정서인 <교토의정서>상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지고 있는 선진국들은 기준점을 1990년으로 잡고 있답니다. 이 기준에 따라서 일본은 1990년 대비 최대 25%까지 감축할 것을,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선진국 권고 최대치인 40%까지 줄이겠다고 했구요. 그리고 최근 인도네시아는 선진국이 지원을 해준다는 전제 조건이 있지만 BAU 대비 최대 41%까지 감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또 브라질도 최대 40%까지 감축할 수 있음을 발표했습니다. 개발도상국들이 온실가스 감축에 있어 훨씬 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점들을 감안한다면요. 이번 MB정부가 발표한 감축안은 전혀 ‘선제적’이지도, 결코 야심차다, 고 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아니 요란스럽게 떠들어대지는 않을망정 꼼수는 부리지 말아야지요. 겨우 생색내기만도 못한 감축안을 내놓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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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9 18:26 2009/11/19 18:26

콩 타작 - 다섯째 날(11월 12일/바람 셈 6-10도)

 

바람이 세게 부니 체감온도는 10도보다도 훨씬 낮게 느껴진다. 콩 터는 데는 좋은 날씨겠지만 자전거 타기엔 쉽지 않다. 바람이 뒤에서 분다면야 낫겠지만. 어찌된 게 맞바람만. 페달을 열심히 돌리지만 오르막에선 기진맥진이다.

 

찬바람을 맞으며 네 시간 가까이 콩 타작을 하니. 많이 털긴 했지만 몸이 영 심상치 않다. 감기 기운이 있는 건 아니지만 온 몸이 두들겨 맞은 듯. 근육이 다 뭉친 듯하다. 결국 털어온 콩을 다 골라내지도 못하고 10시 채 못 돼 곯아떨어진다.

 

겨울이 성큼 다가오다(11월 14일/ 3-11도)

 

어제 또 비가 왔다. 이렇게 사나흘 혹은 일주일마다 비가 오다간. 콩 터는 데 보름이 넘게 걸릴 듯하다. 비가 오고 나면 적어도 이틀은 햇볕에 말려야 털 수 있는데. 때맞추는 것처럼 말렸다 털어볼까 하면 비가 오고. 또 말렸다 털려하면 비가오니.

 

이맘때 오는 비는 항상 추위를 달고 온다. 어제 내린 비도 예외 없다. 오늘 저녁부터 기온이 내려가면서 내일은 영하로 떨어진다고 한다. 게다가 이번 추위는 다음 주 중반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아무래도 또 배추는 퇴비비닐로 덮어줘야 할 듯.

 

아침 일찍 밭에 나갔지만 바람이 세다. 예보로는 오후부터 추워진다고 하던데. 무야 지난 번 추위 때 땅에 묻어놨고. 오늘은 지난번처럼 배추만 손보면 되니. 열심히 바람을 뚫고 자전거를 타고 밭으로 나간 시간이 머쓱하다. 10분도 채 안 돼 일이 끝났으니. 맘 같아선 콩도 털어내고 싶지만. 어제 내린 비 때문에 아직 타작은 안 된다. 휘휘해진 밭을 한 바퀴 돌고는 다시 자전거에 오르니 바람이 더 세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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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6 11:19 2009/11/16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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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괴산의 화양구곡, 선유구곡을 지나 문경의 선유동계곡까지(2006년 9월 30일)
 
근 10여 일에 가까운 연휴다. 다행히 연휴의 뒤쪽에 추석이 있어 앞쪽의 5일을 온전히 걷기여행을 위해 쓸 수 있게 됐다. 물론 아껴둔 여름휴가 일주일 가운데 하루를 쓴 덕이긴 하지만. 해서 여지껏 여행보다도 긴 일정의 여행이 될 듯하다. 하지만 그만큼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 챙겨가야 할 것도 많다. 덩달아 가방 무게도 제법이다.
 
<먼저 만나는 화양구곡>
 
화양구곡과 선유구곡은 계곡의 크기만큼이나 사람들의 발길이 제 각각이라는 데서 상반된다. 예컨대 화양구곡이 그 크기만큼이나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는 곳이라면 선유구곡은 반대로 그 크기만큼이나 발길이 잦지 않은 곳이다. 그래도 처음엔 화양구곡의 크고 깊은 아름다움에 반해 걸음이 늦어지는가 싶더니 후에는 선유구곡의 아기자기한 맛에 아예 발걸음을 멈추고 오랫동안 머무르지 않을 수 없어 재미가 쏠쏠하다.
 
<뒤이어 선유구곡이.....>
그렇게 세 시간이 넘도록 18구곡의 풍경에 빠져있다 정신을 차리니 이번엔 하, 중, 상관평을 거쳐 경상도 땅으로 이어지는 긴 오르막의 517번 지방도로가 우리를 기다린다. 예전에는 이곳까지 길이 나지 않아 물길을 건너 청천 읍내에 장을 보러 다니셨다는, 관평슈퍼 앞에서 만난 할머니와 두런두런 지나온 길을 이야기하며 잠시 숨을 고르는데 해가 산머리에 걸린다.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될 텐데, 할머니께서 ‘용추계곡까지는 갈 수 있겄네. 저기 저 보이는 산만 넘으면 되니께’ 하신다. 안심이다.
 
충청도와 경상도를 이어주는 숯가마골을 넘어 용추계곡에 도착하니 말씀대로 아직은 해가 남아있다. 헌데 이런. 마땅히 숙박할 만한 곳이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날은 조금씩 어두워 오고, 동네 개 짖는 소리는 점점 요란해지고. 어쩌나. 아무래도 오늘은 문경이나 점촌으로 나가야 할 듯한데, 때마침 읍내로 나가는 맘씨 좋은 부부를 만나 무사히 나올 수 있다. 또 점촌 사람들의 친절한 길 안내에 쉬이 잠 잘 곳을 찾을 수 있다.
 
 
둘째 날, 용추계곡에서 문경읍내까지 쉼 없이 걷다(2006년 10월 1일)
 
점촌에서 첫차를 타고 부지런히 움직여 어제 저녁 우리의 발목을 잡았던 용추계곡 입구에 당도했는데도 시계를 보니 9시가 넘어도 훌쩍 넘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발걸음을 빨리 하지 않으면 안 될 듯하다. 그래도 이강년 생가 구경이며, 비록 볼일이 급해 발을 들여놨지만 작고 예쁜 희양분교 구경이며, 250년 된 느티나무 아래 멀리 노랗게 익어 가는 벼 구경이며, 이제는 찾는 이 없어 고즈넉이 서 있는 가은역 구경에 점심때마저 놓친다.
 
 
 
가은 인근은 예전 탄을 캐던 곳이 곳곳에 있었던 만큼 석탄박물관이 널리 이름이 알려졌으나 구경하지 못하고 늦은 점심만 간단히 해결하고 곧 출발이다. 그래도 진남역 주변에는 전에는 탄을 실어 날랐던 철로의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어 눈길을 잡아끈다.
 
부지런히 걸어서인지 어둠이 내리기 전 문경읍까지는 들어갈 수 있을 듯하다. 오늘은 새재 아래까지가 목표였는데 아침에 늦게 출발한 탓인지라 아무래도 오늘은 문경읍내에서 머물러야겠다. 들판 너머 읍내 불빛들은 꽤 가까운 것처럼 보이는데 그래도 걸음으로는 한참이다. 대신 늦은 저녁 생각에 발걸음만은 빠르다.
 
셋째 날, 문경새재를 지나 마폐봉을 넘어 월악산 덕주사까지(2006년 10월 2일)
 
오늘은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문경새재 옛길을 걷다가 지금은 마역봉으로 불리나 예전에는 마폐봉으로 일컬어졌던 산자락을 넘어야 한다. 새재 길이야 잘 정비된 길이고 사람들도 많이 왕래하는 길이라 걱정이 없지만 마폐봉을 넘어 가는 산행 길이 아무래도 걱정이다. 백두대간을 지나는 길목이라 지도상으로는 쉬이 찾아볼 수 있지만 조령 3관문인 조령관에서부터 정상으로 오르는 길과 반대편 월악산 국립공원 사문리 매표소로 내려가는 길은 그리 만만치 않은 듯해서다. 해서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다.
 
읍내에서 새재 입구까지는 생각보다 먼 길인데다 10월 햇살 같지 않은 따가운 햇빛에 무척 힘이 든다. 그래도 새재 입구에 당도하니 제법 가을을 맛볼 수 있는 낙엽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마음은 한결 가볍다.
 
새재 1관문인 주흘관서부터는 흙 길이다. 마음 같아서는 신발에 양말까지 벗어 던지고 걷고 싶으나 발걸음을 빨리 해야 하는 탓에 흙 길의 느낌을 맛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더구나 이른 아침이어서 인지 오가는 이들이 없어 오랜만에 한가로이 길을 걸을 수 있다.
 
<새재길은 1관문인 주흘관을 시작으로 2관문 조곡관, 3관문 조령관까지 이어진다>
 
2관문 조곡관까지는 그리 길지 않은 길인데다 가파르지도 않아 금방이다. 그래도 아침부터 움직인 탓에 몸이 뻐근하다. 잠시 숨도 고르고 몸도 풀고는 길을 나서는데. 이런. 가을 소풍이라도 온 것일까?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무더기로 내려오는데 이건 끝도 없다. 아니 급기야는 유치원 아이들까지 가세한다. 결국 그렇게 사람 구경만 하다 제3관문인 조령관에 도착하니 12시가 조금 넘었다. 이제부터는 산행을 해야 하는데 아침을 든든히 먹어서인지 아직은 배도 고프지 않고 그동안 길러진 체력 탓에 거뜬하다.
                                                                                                   
마폐봉 오르는 길은 생각만큼이나 그다지 어려운 길은 아닌 듯하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1시간 조금 넘게 오르며 간간이 미끄러운 곳을 만나기는 했어도 쉬이 올라왔으니 말이다. 정상에 서니 내려가는 길 멀리 월악산 영봉이 보이고, 올라온 길 멀리 꾸불꾸불 새재길이 보인다. 잠시 숨도 고르면서 좋은 풍경을 배경 삼아 사진도 찍고 싶지만 허기진 배만 채우고는 서둘러 길을 나선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온 것과 달리 거리도 길고 그만큼 시간도 많이 걸린다고 들었기에.
 
산을 내려오기 시작한지 한 시간 반 만에 사문리 매표소에 당도했다. 여기서부터는 우리가 걷기여행을 하도록 마음먹게 해 준 아름다운 길이다. 미륵사지 입구에서 시원한 동동주까지 얻어 마셨던 식당이며, 덕주사 입구에서 하루 머물렀던 민박집이며, 계곡 물에 손을 담그며 물장난을 쳤던 송계계곡이며, 오티마을로 넘어가는 지도에도 나오지 않은 오티고개며, 꼬부랑길을 한참을 걸어서야 만날 수 있었던 예쁜 마을 물태리까지. 그때 걸었던 길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감회가 새롭다.
 
미륵사지터는 지난번에 둘러보았기에 구경하지 않는 대신 동동주에 파전까지 시켜놓고는 느긋한 점심을 즐긴다. 헌데 입이 즐거운 만큼 몸은 고생이라고, 점심 후 발걸음이 자꾸만 늦어진다. 좋은 길을 걸으며 좋은 경치를 감상하는 탓도 있지만 아무래도 술기운이 발걸음을 잡는 것 같다. 잠시 쉬어가야겠는데 닷돈재 너머 멀리 덕주사 입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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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4 23:22 2009/11/14 23:22

가을이 다 가고서야 낙엽을 밟습니다 그려. 그도 그럴 것이 농부에게 이 계절이란 이루 다 말할 수도 없이 바쁜 하루하루겠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십분만 걸어 나가도 온통 붉고, 노란데 무에 그리도 일이 많은지요. 근 2년 만에 얼굴을 본 이도 ‘농부가 농부 같아야지’라며 도통 농사짓는 모양새가 아니라며 허허 웃는데도 말입니다.

 

<10분만 걸어나가도 가을을 볼 수 있는데도 뭐가 그리 바쁜가요(공치전)>

 

춘천으로 오고 나니 꽤나 많은 이들이 사는 것, 농사짓는 것, 이런 저런 구경삼아 오겠다, 고들 하더군요. 또 어떤 이들은 강촌의 구곡폭포니, 가평의 남이섬, 그리고 이곳 춘천의 중도를 떠올리면서 꼭 한 번 더 가보고 싶다고들 합니다. 헌데 다들 사는 게. 그래 그리 녹녹치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 오겠다던 사람들. 전화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바로 엊그제네요. 주말도 아닌 월요일 아침. 느닷없이 오겠다는, 여기 춘천엘 놀러오겠다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답니다. 그것도. 그래요. 좀 전에도 말했지요. 근 2년 동안이나 얼굴도 못 본(사실은 지지난주, 서울에 볼일을 보러 갔다 저녁 술 한잔 했으니 ‘통’이란 한 글자를 넣어야 하겠네요) 선배의 전화를 말입니다.

 

실은 누가 여기 춘천에를 온다고 하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랍니다. 뭐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서도 모두들 알 듯 모를 듯한 어떤 뭔가에 이끌려오곤 하지만. 딱히 어딜 함께 갈만한 곳도. 함께 먹을 만한 것도 마땅치가 않기 때문에 말입니다. 이름만 들으면 아련한 뭔가가 떠오르긴 한데. 막상 가보면. 그래요. 뭐 별 거 없는 게 괜스레 미망하기만 하더라구요.  

 

<올 봄, 산책길에서 본 중도예요. 멀리 배가 보이지요?>

 

   <5분 남짓 배를 타면. 중도에 다 왔습니다>

중도. 

그래요. 중도도 그런 곳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하는. 배를 타고 건너진 않았지만 왠지 그럴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러랬습니다. 그건 아마도. 짬짬이 산책을 다니던 길가에서 의암호 너머로 늘 보이는 모습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거길 다녀왔다던 사람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하던 이야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거, 뭐 볼 거라곤 하나도 없어요’

 

근화동쪽 뱃터를 이용하면 차를 실을 수 있지만 가격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그래 보통은 뱃터 혹은 삼천동쪽 선착장 앞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는 가벼이 몸만 싣습니다. 호수 이쪽에서는 섬이 꽤나 커 보이지만. 걸어서도 넉넉잡고 서너 시간이면 둘러보는데 충분하거든요. 그러니 굳이 차를 가지고 들어갈 이유가 없답니다.

 

날 좋은 봄이나 가을, 혹은 여름 한철에는 배가 쉼 없이 오가지만. 바람 불고 낙엽 다 떨어진 요맘때. 것도 평일 아침이라면 배에 오르기 전 이런 말을 듣기도 한답니다. 대략 5분 남짓이면 저편에서 이편으로, 이편에서 저편으로 오가는데도 말입니다.

 

‘나오시려거든 미리 전화를 주세요. 언제 배가 들어가는지 확인하셔야 하니까요’

 

 

 

<어때요. 종일 걷고, 쉬고, 보며, 얘기하기에 딱이지 않습니까>

 

중도는 의암댐이 들어서면서 생겨났답니다. 쉽게 말해 물길을 막기 전엔 걸어서 다녔던 곳이란 거죠. 그렇게 만들어진 섬은 크게 상중도와 하중도로 나뉘는데요. 이 가운데 하중도가 흔히들 알고 있는 중도유원지이구요. 상중도는 농사를 짓는 이들이 살고 있는, 여느 시골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중도는 딱히 볼만한 거리들이라곤, 딱히 즐길만한 놀이시설이라곤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춘천을 배경으로 찍은 ‘겨울연가’와 ‘와니와 준하’ 촬영지, 섬을 둘러싸고 있는 산책길 과 자전거길, 선착장 바로 옆 선사유적지, 저렴한 가격의 통나무집과 민박, 들을 빼고 나면. 널따란 잔디, 사방에서 보이는 강, 나무와 조그만 숲이 다니까요. 하지만 이런 점들이 오히려 중도의 매력이 아닐까 싶기도 하는데요. 이번 방문이 그런 느낌을 가져다 주었더랬거든요.

  

2년여 만에 봤기도 했지만. 배를 전세 낸 듯 둘이서만 타고서. 다 떨어진, 이제는 색까지 다 바랜 낙엽을 밟으며. 좀 세차긴 했지만 시원한 강바람도 맞으며. 그동안 살아왔던 얘기들. 앞으로 살아갈 얘기들. 다른 이들이 사는 얘기들. 걷다. 가끔은 나무 아래, 호숫가에 쉬기도. 추위를 녹이려 자판기 커피를 한잔씩 마시기도. 섬으로 들어오는 배를 말없이 바라보기도. 하니, 중도. 이 섬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더라니까요.    

 

이제 누군가가 또 춘천엘 온다면 함께 들를만한 곳으로. 그래요. 중도를 추가해야겠습니다. 다소 뱃삯이 비싸기는 하지만. 종일 걷기에 이만한 곳이 어디 또 있을까 싶으니. 종일 사람 사는 얘기를 나눌 수 있을 만한 곳이 어디 또 있을까 싶으니.

 

꽃망울이 터진 봄이면 어떻고, 낙엽이 다 진 이 가을이면 또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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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1 11:47 2009/11/11 1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