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을 번역한 이(문애희)는 열여섯 명의 남성 작가와 아홉 명의 여성 작가의 단편소설 40편을 아랍 사회에서 한국 사회로 내보낸다고 합니다. 마치 유수프 이드리스의 작품에서 40일 이후에 출생 신고서를 작성하러 처음으로 집 밖을 나오는 아기 엄마들처럼 말이지요. 그래요. 엮은이의 말처럼 제목부터가 조금은 낯선 <천국에도 그 여자의 자리는 없다>는 그렇게 우리 사회에 출생 신고를 마쳤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들어서야 아랍, 이슬람의 역사와 사회를 소개하는 딱딱한 책들이 여럿 나오기는 했지만. 그이네들이 쓴, 그이네들의 문화와 생활양식, 관습 등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작가들이 고등교육을 마치고 또 유럽에서의 생활을 거쳤거나 하고 있음으로 인해 어쩌면 조금은 굴절된 시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랍 문학이 첫 울음을 터뜨린 것이지요.

 

2.

처음엔 이게 맞고 저게 틀리다, 쉽게 판단했던 것 같은데. 곰곰이 따져볼수록, 또 알려고, 이해하려고 할수록 이건 잘 못된 것이다, 저건 맞는 것이다, 판단한 것이. 정해진 잣대로, 그것도 누군가의 눈으로 들여다 본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서와 같이 외국인에게도 베일 착용을 요구해 영공에 진입하는 순간 베일을 꺼내어 쓴다는 얘기가 있을 만큼. 때에 따라서는 꽤나 폐쇄적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느닷없이 벌어졌던 프랑스에서의 히잡 벗기기나 국제축구연맹이 최근 히잡 착용을 금지함에 따라 이란 여자 축구팀이 유스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게 됐다는 얘기들은.

 

혹 여성 억압과 극단적 근본주의의 상징이라는 획일화된 잣대로 ‘철퇴’를 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가이 듭니다. 물론 남편이 죽도록 때려서 친정으로 가도 다시 아버지에게 매를 맞아 다시 돌아가야 하는, 오직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그럴께요’라는 단 한마디만을 알고 있었던 그녀(나왈 알쓰으다위 <천국에도 그 여자의 자리는 없다>), 겨우 열세 살밖에 되지도 않은 그녀를 취하기 위해 아내의 돈으로 아들과 강제로 결혼을 시키거나(푸아드 알타카를리 <사그라드는 등잔>), 아직 사춘기에도 이르지 않은 소녀와의 결혼은 2백 디나르라를 요구하는 소녀의 아버지와 백 디나르라를 되받아치는 ‘나’의 아버지 사이에서 벌어지는 흥정일 뿐(마이파 압드 알라흐만 <아니싸와 나 사이에 일어난 일>)이며, 형부의 아이를 학교 화장실에서 낳았던 그녀 역시 채 열네 살도 채 되지 않았다(라일라 알우쓰만 <벽이 찢어지다>는 얘기들을 읽어 내려가고 있노라면. 통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만은. 또 무척이나 여성들에게 폭력적인 사회구나, 공감이 됩니다만은.  

 

3.

아랍 혹은 이슬람 사회라고 하면 거의 즉자적으로 어딘가 모르게 암울하고 그늘진, 그리고 폐쇄적인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물론 이런 느낌이 아랍, 이슬람 사회에 대해 이해하려 하거나 알고자 하려는 의지가 배제된 채 서구, 더 정확히는 9.11 이후 급속도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이슬람 혐오주의에 오염된 우리 언론 탓이 클 것입니다. 또 막대한 자본이 투하된 헐리웃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아랍인, 이슬람인들에 대한 묘사, 여기에 덧칠된 정체불명의 이러저러한 정보들이 한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지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랍, 이슬람 사회에 대한 왜곡된 느낌들의 배경에는 미국과 유럽을 세계의 중심이라고 놓고 보는 이른바 서구 중심주의의 역사관 혹은 사회관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 이러한 역사관과 사회관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좁디좁은 우리의 지적 인식 수준과 아랍, 혹은 이슬람 사회에 대한 진지한 통찰을 위한 내재적 접근을 통 허락하지 않는, 아니 시도조차 하지 않는 모습들이 이런 이미지들을 만들어 내는 근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일까요. 「열린책들」에서 묶어낸 현대아랍문학선 <천국에도 그 여자의 자리는 없다>는 비록 소설이라는 문학적 시선이긴 하지만 아랍, 이슬람 사회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소중한 책이라고 생각되네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5/01 13:42 2010/05/01 13:42

이것저것 심는다

from 10년 만천리 2010/04/26 17:25

감자와 호밀 심기(4월 19일/가끔 비 10-19도)

 

감자는 어제에 이어 이틀째다. 작년에도 이틀에 걸쳐 씨감자를 심었는데. 올해도 이틀째 감자를 심는다. 아무래도 자전거로는 나를 수 있는 무게가 한정돼 있어 일을 해나가는데 시간이 다소 걸린다. 박스채로 갖다놓으면 반나절이면 끝날 일이 늘 이틀, 사흘이 걸리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일기예보로는 한때 비가 온다고 하더니 아침부터 하늘이 잔뜩 찌푸려있다. 양은 많지 않을 거라 하니 일을 하는 데는 지장이 없겠지만. 그래도 밭에 나가 있는 동안 비가 오면 대략 난감이다. 비를 피할 곳은커녕 그늘 여름 땡볕에 그늘 하나 만들지 못하는 게 지금의 밭이니.

 

거의 감자를 다 심을 쯤 결국 비가 쏟아졌다. 서둘러 일을 마무리 짓고 자전거에 오르는데 언제 비가 왔냐 싶게 그치니. 쏟아졌다는 표현은 쫌 그렇다. 모래부턴 비가 제법 온다고 하니 오후에는 호밀을 심어야 하는데. 비가 오락가락 하니.

 

다행인지 점심 먹고 또 한잠 푹 자고 나서 밭에 오는 길에 잠깐 비가 오더니 이내 그친다. 20도 가까이 오르는 더위에 비까지 오락가락하니 등이며 목에서 땀이 난다.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밭에 나온 지 두 시간 만에 감자 심은 곳과 고추 심을 곳 이랑과 이랑사이에 호밀을 산파(散播)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어둑어둑하다.  

 

호밀 심기 - 둘째 날(4월 20일/맑음 10-24도)

 

어제부터 급 따뜻해졌다. 아니 조금만 늦어도 금세 20도까지 오른다. 해서 아침 일찍 나오더라도 서둘러 일을 마쳐야 한다. 시간상으론 세 시간 남짓이다. 아무래도 다음 주부터는 새벽에 나와 일을 하고 늦은 아침을 먹는 걸로 바꿔야 할 듯하다.

 

오늘도 11시가 조금 지나자 땀이 주르륵 난다. 넓디넓은 콩 밭을 보니 오후에 다시 나와 할까,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모래 비가 온다는 얘기에 연신 땀을 훔치며 호밀을 뿌린다.

 

“거, 뭘 그리 심으슈?”

“아, 예. 호밀이요”

“호밀? 호밀은 가을에나 심는 거 아닌가?”

 

아까부터 밭 둘레에 나있는 나물을 캐던 할머니께서 일하는 모양새를 보고 궁금해서 물어오는데. 이런. 한참 더운 것도 더운 데다. 이젠 종아리며, 허벅지까지 당기며 온 몸이 뻐근한 바람에 뭐라 대꾸도 못한다.

 

‘아. 예. 호밀로 잡초를 잡으려구요. 지금 뿌리면 잡초가 자라기 전에 호밀이 자리를 잡아 잡초가 발을 못 뻗는다고 하네요.’

 

마음 같아선 할머니께서 캐고 계시는 나물이 뭔지, 먹을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어떻게 구분하는지, 나물의 종류에 대해 이것저것 묻고도 싶고. 호밀로 제초를 할 수 있다는 데 올 해 처음 시도하는 거라 얘기도 하고 싶지만 말이다.

 

결국 할머니께서 저만치 다른 밭으로 가시는 동안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일을 끝마치고는 연장 챙겨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채소 씨앗(4월 21일/흐린 후 비 9-18도)

 

곡식의 싹을 틔우는 단비가 내린다는 곡우(穀雨)가 어제였다. 딱 맞춰 내리지는 않았지만 올 해도 어김없이 비가 내린다. 절기만 알아도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다고 하더니. 먼저 농사를 지었던 농부님들의 지혜가 남다르기만 하다.

 

예보로는 밤늦게나 온다고 했는데. 오전에 상추며, 치커리, 아욱, 근대, 장파 등 여러 가지 채소 씨앗을 뿌리고 돌아와 점심 먹고 또 밭에 나서려고 하니. 심상치 않던 어둑어둑한 하늘에서 곧 비가 후두둑 떨어진다.  

   

채소 씨앗 - 둘째 날(4월 25일/맑음 2-22도)

 

또 비가 온다고 하니 아직 다 심지 못한 채소 씨앗을 뿌려야한다. 엊그제는 오랜만에 학곡리 농협에 들러 시금치며, 부추, 봄무우 씨앗도 사고. 모종이 언제쯤 나오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종묘상이나 시장통에는 벌써 고추며, 토마토 모종이 나왔으나 농협은 다음 달이나 돼야 판다고 하니. 느긋하게 못다 심은 채소도 더 심고. 땅콩과 옥수수도 심어야 할 듯.

 

벌써부터 낮 기온이 20도에 육박하니. 씨 뿌리는 일이 아니어도 일찌감치 나와야 한다. 조금만 늦어도 등줄기로 땀이 흐르니 말이다.

 

 

 

옥수수는 두 번에 나누어 심는데. 오늘은 위쪽 밭에 채소를 심어 놓은 곳 둘레와 고추며, 고구마를 심을 곳 둘레다. 그리고 아래쪽 밭은 보름이나 다음 달 말쯤에 심을 예정인데. 이래야 두고두고 옥수수를 나눠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옥수수와 농협에서 사온 씨앗을 다 심고 나니 어중간한 시간이 돼버렸다. 밭에 나온 지 채 한 시간도 안 된데다 밥까지 든든하게 먹고 나온 바람에 이대로 돌아가기 뭔가 아쉽기만 하다. 해서 땅콩 심을 곳 두둑을 손보자며 괭이를 집어 들었는데.

 

어째. 땅콩은 골이 넓어야 한다는 말이 있어 두둑 하나를 무너뜨리고 양쪽으로 쌓았더니. 이번엔 골이 너무 넓어져 버렸다. 두둑을 손대기 전엔 너무 좁아 보였는데 일을 하고 나니 이번엔 넓어 보이는 게다. 어쩔 수 없다. 땅콩은 올 해 처음 도전하는 것이니. 한쪽은 골을 쪼금(?) 넓게. 한쪽은 쪼금(?) 좁게 해서 어느 것이 나은지 나중에 판단하기로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4/26 17:25 2010/04/26 17:25
Tag //

밭 만들기

from 10년 만천리 2010/04/19 14:20

밭 갈기(4월 14일/흐림 0-8도)

 

그제 비만 아니었어도 밭을 다 갈고 이랑을 만들고 있을 터인데. 주말에는 서울에 다녀오느라 일을 못하고. 월요일엔 밭 갈아줄 아저씨하고 토요일에나 연락이 되서 못하고. 어젠 그제 내린 비 때문에 하루 쉬고. 마음은 급한데 이래저래 일이 더디다.

 

분명 아침 10시에 보자고 했는데 사람이 없다. 혹 늦나 싶어 20분 남짓 기다리다 전화를 하니. 헉. 따른 밭일을 먼저 하고 계신다. 어찌된 일이냐고 하니. 되레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이 무신 소린가. 미안하단 말 한마디 하고 금방 오겠다고 하면 될 것을. 끝까지 10시에 왔는데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더 얘기해봐야 안 될 것 같고. 빨리 끝내고 오시라고 부탁할 수밖에. 기계 가진 이는 저쪽이고. 급한 건 이쪽이니. 하는 수 없다.

 

1시간이면 온다고 해놓고는 결국 12시가 훌쩍 넘어서야 나타난 아저씨.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할 때쯤이었는데. 넉살좋게 웃으시는 모습에 할 말이 없다. 서둘러 달라는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일을 시작하시는데. 급한 일이 있으면 먼저 가라고 하신다. 알아서 잘 해놓고 가시겠다며.

 

위쪽 밭 로터리 치는 것까지만 보고 자전거에 올라 시계를 보니 그새 1시가 넘었다. 아저씨 오시기 전까지 1시간가량 떨어진 콩 주운 거 빼곤. 찬바람 쌩쌩 부는 밭에 세 시간 넘게 하릴없이 서있었더니 으슬으슬 춥다.  

 

<손으로 했다면 며칠은 걸렸을 일이 금방 끝난다. 하지만 땅에게는 그리 좋은 일이 아닐 터이다>

 

밭 만들기 - 첫째 날(4월 15일/ *3-14도)

 

퇴비도 넣었고 밭도 갈았으니 이제 심을 것에 따라 이랑을 만들어야 한다. 채소와 고추 심을 곳은 평이랑을 감자와 고구마, 콩 등을 심을 곳은 골이랑으로. 해서 당분간은 괭이질을 해야 하는데. 일단 오늘은 채소와 고추 심을 데만 손을 댔다.    

 

밭 만들기 - 둘째 날(4월 16일/ *1-15도)

 

어제 아래쪽 밭을 마저 갈아주신다고 했는데 아침에 나오니 그대로다. 마음 같아선 당장 전화를 하고는 싶지만. 아침나절부터 전화하기가 조금 그런 것 같아 한 시간 남짓 괭이질을 하고 난 후에야 겨우 통화를 한다.

 

다행이도 마실 나왔다 집에 들어가시는 아저씨를 직접 보고 말씀을 드렸다. 월요일과 수요일에 비가 오니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중으로는 마저 다 갈아야 한다고. 아저씨 말로는 이가 아파 병원에 다녀오는 길인데 걱정 말라 하시는데. 헌데 어제도 그렇고 처음 약속했던 그제도 그렇고. 영 못 미덥다. 하지만 어쩌랴. 기다리는 수밖에. 내일 또 서울에 올라갈 일이 있어 모래 일요일에나 밭에 나올 수 있는데. 만약 밭이 그대로라면.

 

어제에 이어 오늘도 고추 심을 곳과 채소 심을 데에 이랑 만들고 나니 뭐 한 것도 없는데 시간이 훌쩍 지난다. 오후에는 씨감자도 주문해야 하고. 시외버스터미널에 나가 버스도 예매해야 하니 시간이 없는데. 겨우 정신없이 땅콩 심을 곳 이랑만 만들고 터미널로 향한다.  

 

<채소를 심을 곳은 평이랑으로, 고구마, 땅콩, 콩 등을 심을 곳은 골이랑으로 만들어야 한다>

 

감자 심기 - 첫째 날(4월 18일/맑음 3-18도)

 

올해는 강원도농업기술원 특화작물시험장(평창분소)에서 구한 씨감자로 감자 농사를 짓게 됐다. 값도 값이거니와 다른 때보다 빨리 준비를 할 수 있게 돼서 다행이다.

 

사실 전업농이라면 전년도에 미리 씨감자를 주문해 준비를 하겠지만. 텃밭 수준의 농사를 짓는 사람일 경우엔 이게 쉽지 않다. 아는 이장이 있다면 모를까. 결국 종묘상이나 개인 농장에서 씨감자를 구입해야 하는데. 일단 정부에서 공급하는 것에 비해 값이 비싸다. 또 때를 놓치면 이마저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자칫 감자 농사를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금요일에 통화를 했는데 어제 도착했으니. 월요일과 수요일 비 소식을 감안하면 딱 맞춰 온 셈이다. 서울에 다녀올 일만 아니었으면 어제와 오늘, 이틀 작업으로 씨감자를 다 심을 수 있었을 테지만. 또 자전거만 잃어버리지 않았더라면 오늘 아침부터 일을 해서. 씨감자 다 심고 내일은 호밀도 뿌릴 수 있었을 텐데.

 

한창 햇볕이 따가울 때를 피해 새로 장만한 자전거에 씨감자를 가득 싣고 나와 두 시간 만에 다 심고 나니 남겨두지 말고 다 가져올 걸, 아쉬움이 남는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4/19 14:20 2010/04/19 14:20
Tag //

1.

처음 궁동 주말농장에서 5평 남짓한 밭을 빌렸을 땐. 작은 모종이 어느새 자라 토마토며 고추며 가지를 만들어내는 게 신기해 연신 사진만 찍어댔지요. 

 

삼천동 밭 100평을 임대해 모양새는 좀 나는 밭농사다운 밭농사를 했던 재작년엔. 사진만 찍던 것에서 조금 더 나아가 농사일지라는 걸 쓰기 시작했습니다. 언제 무엇을 심었고, 언제 무엇을 수확했는지 정리한 것이지요.

 

올해도 농사를 짓게 된 만천리 밭을 만난 작년엔. 무엇을 심고 무엇을 수확한 것에 덧붙여 밭에 나간 날만큼은 날씨까지 적으면서 나름 농사일지 다운 일지를 써보겠다고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올해. 올해엔 재작년과 작년보다 더 꼼꼼히 적어야겠다, 마음을 먹습니다. 작물이 자라는 모양새에 절기의 변화에 따른 농사준비까지 말이지요. 이렇게 하나하나 기록을 하다보면 어떤 땅에서 어떤 게 잘 자라고, 어떤 날씨에 어떤 건 잘 안 되는지. 작물별로 그 특성들을 자연스레 알 수 있지 않을까요.

 

2.

궁동 주말농장에선 써 놓은 게 없으니 정확치는 않지만. 찍어 놓은 사진을 보니 4월 29일에 상추며, 고추 모종을 옮겨 심은 것 같구요. 춘천으로 와 처음 밭농사를 했던 재작년엔 4월 30일에 퇴비를 뿌리고, 5월 13일에 첫 모종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작년엔 5월 7일에 감자를 시작으로 토마토, 가지, 오이, 애호박 등을 9일부턴 고추를 심었구요. 올해엔.

 

밭을 다시 구하고 어쩌고 하지는 않았다고 쳐도. 또 당장 뭘 심지는 않을 것이긴 하지만. 4월 7일에 퇴비를 뿌리고 엊그제 밭을 갈았는데도. 어찌된 게 빠르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으니요. 겨우 삼년 텃밭 수준의 농사짓고 이런 말을 하는 게 우습기도 하겠지만. 농사를 시작하는 날짜가 조금씩 앞당겨지고 있다는 게 심상치가 않습니다. 

 

그리고 지난주엔 4월 초순 날씨라고는 믿기지 않게 낮 기온이 20도까지 오르기도 하고. 예년에 비해 많았던 겨울눈과 비, 그리고 꽃샘추위 때문에 일조량이 낮아 꽃 피는 시기가 작년에 비해 좀 느리다고는 하지만. 평년에 비하면 개나리며, 진달래, 벚꽃 등이 빠른 건 열흘까지도 빨리 폈다고 하니까요. 뭔가 좀 이상하긴 하지요.

 

3. 

여기저기서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책을 만든다고 토론회다, 책이다, 벌이고 펴내고 있습니다. 또 무슨무슨 센터를 만드네, 부처를 새로 신설하네, 분주합니다. 그리고 날씨가 변하면 가장 많은 영향을, 또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농업분야에서도 이런저런 준비를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얘기들을 들어보고 있자니. “제주도와 남해안 일부 지역에 해당했던 아열대 기후가 점차 충청도와 경기도로 확장될 것으로 예측”되니 “기후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새로운 품종개발과 농업용수 관리, 생산기술 개발 등이 절실하다”는 말들이 꽤나 많습니다. 그리고 그 말들 속에는 벼 이모작 확대, 난대성 및 아열대 과일 재배기술 보급, 아열대 채소류 적응 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따라 나오고 있구요.

 

사실 강원도로 이사를 가자, 결정하게 된 데에는 앞으로 농사를 짓는데 딱 이다, 싶은 판단이 들어서였지요. 벌써 사과는 물론이고 포도까지 재배가 가능한 걸 보면. 비록 다른 지역에 비해 땅이 척박하고 산지 지형이라는 약점이 있기는 하지만. 따뜻해지는 날씨 덕에 그동안은 엄두도 내지 못했던 여러 작물들을 길러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던 겁니다.

 

물론 변화하는 기후에 발맞춰 새로운 작물을 심기도 하고 그러면서 적응력을 길러내는 것도 중요하겠지요. 하지만 농업용수 관리라는 이유를 들어 자연스런 물길을 막거나 부러 곧게 펴는 것은 옳은 방향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갯벌을 메워 만든 새만금에, ‘녹색성장’이란 되도 않는 말을 갖다 붙이면서 농업부문 전진기지를 개발하자고 하는 건 그야말로 혹세무민일 뿐입니다.        

 

4. 

언제부터인가 날이 좀 추워진다 싶으면 그새 겨울이고, 풀린다 싶으면 금방 더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봄, 가을이 짧아진 게지요. 또 눈이든 비든 내렸다하면 감당하지 못할 만큼 쏟아내는 일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송이다 언론에선 하루는 지구 반대편에서 발생한 또 하루는 바로 이웃 동네에서 일어난 이상 기후 현상들을 토해내고 있지만. 

 

어느새 한여름엔 창문을 꽁꽁 닫아두고는 전기로 찬바람 만들고. 겨울엔 여름에나 입을 반팔 옷을 입으면서도 또 전기로 따뜻한 공기를 만들어내는 데 무척이나 익숙해져만 가고 있는 모습에. 

 

가만두면 스스로 정화하고 치유하는 강물에 삽을 들어 생채기를 내고. 기껏 발전 기업에 부과된 ‘신재생 에너지 할당’을 채워주려 또 갯벌을 막으려하고.* 기후변화에 따른 곡물가격의 상승에 대비해 GMO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노력을 하자고 하는 이 나라 국책농업연구기관의 연구관이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빨라지는 봄을 걱정하는 건. 하늘을 보며 내일의 날씨를 점치고. 때를 맞춰 씨를 뿌리고 곡식을 거두는. 들판의 농부님네들만일런지요.

 

* 영종도, 용유도, 장봉도와 강화도 남부의 갯벌과 해류를 틀어막는 '인천만 조력발전소', 강화 본섬과 석모도, 서검도, 교동도를 북쪽으로 이어 역시 그 일대의 갯벌과 해류를 막는 세우는 '강화 조력발전소'가  2012년부터 전체 발전량의 10퍼센트'까지 이른바 '신재생 에너지'로 충당해야 하는 '신재생 에너지 의무 할당제'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는데요. 벌금 액수가 상당해 발전 기업마다 태양력이니, 풍력, 소수력, 지력, 조력과 같은 신재생 에너지원을 확보하는 일이 시급하답니다. 이 때문에 여기저기 무분별한 '개발'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는 게 작금의 '신재생 에너지' 정책입니다.

 

**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00416030004   4월 16일자 서울신문 기고문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4/16 17:40 2010/04/16 17:40

퇴비 넣어주기

from 10년 만천리 2010/04/12 12:40

퇴비를 사다놓고(4월 5일/맑음 0-18도)

 

아침부터 부산하다. 마음 같아선 퇴비를 사는 김에 아예 다 뿌려놓을까도 싶지만. 한쪽에 다 털지 못한 콩도 남아있고. 밭을 갈기 전 비닐 쪼가리 하나라도 더 집어내려면 아무래도 무리일 듯싶다.

 

퇴비는 작년에 비해 포대 당 이백 원이 내려갔는데 용달비는 만원이 올랐다. 기름 값도 안 나온다는 말에 그럽시다, 했지만. 삼십분이면 끝나는 일에 사만원이라니. 좀 심하다 싶다. 하지만 그렇게 일하고 나면 오전 중엔 다른 일을 하기가 쉽지 않으니 이쪽 입장에선 비싸다해도 저쪽 입장에선 그렇지가 않을테다. 그래. 아무 말 않고, 고맙습니다, 하고 말았다.

 

한 귀퉁이에 퇴비를 쌓아놓고는 콩을 밭 가운데 경계가 되는 돌무더기 쪽으로 옮기고 나니 여기저기 떨어진 콩이 꽤나 많다. 우선 눈에 띄는 비닐부터 치우고 또 지주들도 한쪽으로 옮겨놓고는. 근 한 시간 반이 넘게 쭈그리고 앉아 콩을 줍는데. 오가는 사람들마다 뭐 하는가 싶어 힐끗힐끗 쳐다본다. 봄나물이라도 캐는가 싶어서.

 

그렇게 콩 줍고 쌓아놓은 퇴비에 가림막을 쳐놓으니 그새 점심때다. 많이 오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내일 오전에 비소식이 있어 마음 같아선 퇴비를 다 뿌리고 싶지만 뱃속 시계가 어찌나 정확한지. 아무래도 퇴비는 내일이나 뿌려야 할 듯. 

 

퇴비 넣어주기(4월 6일/맑고 바람 셈 5-14도)

 

잔뜩 찌푸린 날씨 탓에 하늘만 바라보다 허망하게 오전을 다 보냈다. 예보로도 비가 온다고 했고,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것처럼 먹구름이 있었는데. 빗방울 하나 떨어지지 않더니 점심때가 되서는 해가 배꼼 얼굴을 내민다. 이런.

 

서둘러 이른 점심을 먹고 밭에 나가 어제 사다 놓은 퇴비를 넣어준다. 바람이 세게 불긴 해도. 4월 날씨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치 따가운 햇볕에 땀이 날 지경인지라 되레 이편이 낫다. 두 시간 남짓 퇴비 뿌리고 어제 줍다만 콩 마저 주워 담으니. 밥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그새 배가 고프다.   

 

게으른 농부(4월 8일/맑음 *1-19도)

 

작년 가을에 털어내지 못한 콩이 아직 밭 한쪽 편에 쌓여있다. 다 게으른 탓이다. 부지런히 오고가며 일했다면 마저 다 수확을 했을 텐데. 쉬엄쉬엄 다니니 일이 그리 되고 만 것이다. 겨울 내내 썩지 않고 있어준 것만도 다행이지 싶다.

 

그제 퇴비를 넣어줬으니 밭을 갈고 이랑을 만들기 전까지 시간이 있으니 콩을 털어내야 한다. 씨감자며 고구마도 주문을 해야 하고 고추대도 손봐줘야 하니 이래저래 오늘과 내일 중으로 일을 끝내야 한다.

 

엊그제 바람이 불 때 콩을 털고 골라냈으면 좀 나았을 것을. 오늘은 어째 바람이 시원치 않다. 터는 데는 금방인데 아무래도 콩깍지며 돌 골라내는 게 쉽지가 않다. 겨우겨우 절반 넘게 털고 골라내고 나니. 어이쿠. 또 밥 먹을 때다. 참 시간도 빨리 간다.

 

* 다음 주 금요일에는 씨감자를 주문해야 한다. 잊지 말자!!

 

때 이른 더위(4월 9일/맑음 1-20도)

 

농사만큼이나 날씨로부터 받는 영향이 큰 것도 없을 터인데. 4월 초 치곤 더운 날씨가 걱정이다. 오늘은 낮 기온이 20도까지 올라간다고 하니. 이만하면 초여름 날씨니. 갑자기 따뜻해진 것도 그렇지만. 점점 빨리 찾아오는 봄 같지 않은 봄 날씨가 이래저래 반갑지만은 않다. 

 

아침부터 부쩍 기온이 오르지만 그래도 바람이 좀 부니 낫기는 하다. 그리고 마저 남은 콩을 털어내야 하니 좀 덥더라도 오늘처럼 바람이 분다면 일하기는 더 수월하다. 그래서일까. 두 시간 남짓 일을 하고 나니 몸도 가뿐하고. 미뤄뒀던 일도 다 끝내니 마음까지 가뿐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4/12 12:40 2010/04/12 12:40
Ta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