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

from 10년 만천리 2010/08/02 18:57

장맛비(7월 25일/무더움 23-32)

 

그저께부터 내리기 시작한 장맛비가 꽤나 내린다. 장마는 오래전에 시작됐는데 이제야 비다운 비가 내리니. 집중호우다 국지성호우다 걱정이 앞서기는 하지만. 그래도 비가 와야 할 때니 비 오는 게 싫진 않다. 덕분에 이틀을 잘 쉬기도 했으니.

 

비 온 뒤라 밭일이 많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풀들도 많이 자라지 않았고. 고추도 아직은 병이 올 낌새는 없다. 그래도 신문지로 멀칭한 곳은 여기저기 풀들이 신문지를 뚫고 올라오고 있고. 플래카드나 신문지로도 막을 수 없는 골들은 풀이 잔뜩 자리를 잡고 있다. 하지만 머. 이젠 호미로 막긴 글렀고. 낫으로 슬슬 베어 넘어뜨리면 되니. 생각하기 나름. 일이 많진 않은 셈이다.

 

내일부터는 또 느닷없는 물놀이로 사흘을 빼야하니 일이 없다고 해도 조금씩 해야 한다. 해서 슬슬 고추 고랑에 들어가 낫으로 풀이며, 봄에 뿌려 허리까지 키웠던 호밀을 함께 베어 차곡차곡 쌓으니.

 

장마와 여름 무더위에 풀이 자라는 걸 이것들이 잡아둘 것이라 생각하니. 그리고 그렇게 여름을 보내고 나면 곧 빨간 고추를 수확할 수 있겠다 생각하니. 아무래도 올 농사는 처음 시도한 호밀을 이용한 제초가 생각보다 잘 됐지 싶다.

 

이번 장맛비가 그치고 나면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다고 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슬슬 하겠다고 낫질 조금 했는데도 금세 땀이 흠뻑.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프고. 해는 지고 버스 시간은 다가오고. 서둘러 물놀이가서 먹을 푸성귀며 풋고추, 아삭이, 오이, 토마토를 가방 하나 딴다.

 

삼복더위(7월 29일/무더움 25-31)

 

장맛비가 그치고 나니 무더위다. 그것도 그냥 무더위가 아니라. 괜스레 삼복이 있나 싶을 정도다. 가만있어도 땀이 나는데 이럴 때 밭일이란. 시쳇말로 초죽음. 비 그치고 사흘을 놀았더니 풀이 장난이 아니라 낫질을 좀 했더니. 그 말이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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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2 18:57 2010/08/02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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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타고 가는 밭 - 둘째 날(7월 19일/흐린 후 무더움 26-31도)

 

열흘이 넘도록 여전히 목이 아프다. 주말엔 다행히 비가 와 마음 놓고 쉴 수 있었지만. 비 그치니 할 일도 많고. 목도 아픈데다 무더위에 자전거도 힘들고. 또 오랜만에 둘이 나서니. 시간 맞춰 버스타고 밭에 나간다.

 

이틀 비가 오고 나니 오이도 그득 방울토마토도 그득. 고추도 부쩍 자랐고 보이지 않던 참외도 생겼다. 헌데 콩밭에 웬 덩굴. 바닥부터 옥수수며 콩대를 타고 덩굴이 장난이 아니다. 콩 싹이 났을 때부터 심상치 않게 생긴 것들이 꾸물꾸물 자리를 잡던 게. 별 것 아니려니 싶어 신경을 통 쓰지 않았는데. 이런. 낭패다.

 

별 수 없다. 일일이 손으로 떼어내고 벗겨내고 잘라내는 수밖에. 덕분에 둘 다 금세 땀으로 흠뻑 젖는다. 또 밭에 나온 지 한 시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힘이 부친다. 이런. 낭패, 또 낭패다.

 

결국 해가 질 무렵까지 일을 하고서야 겨우 정리를 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이, 삼일은 더 신경 써서 덩굴을 치워야 할 듯. 근데 이 덩굴, 정체는 뭐지.

 

버스타고 가는 밭 - 셋째 날(7월 20일/무더움 22-33도)

 

날도 더운데 시원한 바람 빵빵 나오는 버스타고 다니는 것도 꽤 괜찮은 듯. 하지만 밭에 들어서는 순간 헉. 무릎까지 자란 옥수수 밭 풀 낫질하느라 또 헉. 온 몸에 땀이 비 오듯. 덥긴 무지하게 덥다. 

 

버스타고 가는 밭 - 셋째 날(7월 22일/무더움 25-31)

 

연일 무더위다. 밤까지 기온이 내려가지 않아 열대야가 계속되니. 사람도 지치고 작물도 지친다. 이럴 땐 조금 쉬어가며 일을 해야겠지만. 돌아서면 자라는 풀 때문에 통 그럴 수가 없다. 게다가 하루, 이틀 건너 소나기까지 내리니. 풀 잡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결국 낫으로 베는 제초를 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쏟아지는 땀 때문에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한 심분 일하고 오 분 쉬고. 또 심분 낫질하고 또 쉬고. 자주자주 쉬어가면서 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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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9 11:39 2010/07/29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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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의 고향, 정선(2007년 1월 19일)
 
어제, 밤늦게 정선에 왔다. 2일과 7일에 열리는 정선 장날과 운 좋게 맞아떨어진다면 기차로 쉬이 올 수 있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4시간이 넘게 장평과 증평을 거쳐야하니 시작부터 혹사다. 혹여, 시간만이 아니라도 하루 두 번, 증산에서 아우라지를 왕복하는 꼬마열차를 타볼 요량이라면 꼼꼼히 잘 챙겨야 한다.
 
느긋한 아침에, 크지 않은 읍내라 금방 찾겠거니 싶어 찾아 나섰던 아우라지 촌(村) 때문에 12시가 다되어서야 길을 나설 수 있었다. 그것도 점심까지 먹고서. 하지만 지붕을 어떤 것으로 했느냐에 따라, 귀틀집, 너와집, 굴피집, 돌집, 저릅집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옛집들을 둘러볼 수 있어 시간이 아깝지만은 않다.
 
읍내를 벗어나면서부터 시작된 오르막길이 이제 내려가겠거니, 하면 또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오르막길이야 적응이 돼서 그렇지 곳곳에 발걸음을 늦추는 빙판은 오가는 차가 없어 다행이지 정말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산이 높으니 당연 길도 높을 것이나 따뜻한 날이 꽤 오래 되어도 쉽게 녹지 않는 눈들을 어쩌랴.
 
중간에 한 번 주유소에서 잠깐 쉰 것 빼곤 한 시간 가까이나 긴 오르막을 올랐는데, 에게, 겨우 해발 450m라네. 발아래 마을이 언뜻 까마득히 보이는데 어째 요 높이일까? 기억을 더듬어 보니 지난 번 여행 때도 정선 들어가는 긴 오르막길 끝 솔치재도 요만한 높이였던 것 같다. 아무래도 근동의 마을들에 들거나 나거나 할 땐 이 정도 고개 하나씩은 넘어야 할 듯하다.
 
 
반점재로 오르는 길에서는 답사여행을 나온 일단의 젊은이들로부터 수군수군 눈초리를 받기도 하고, 반점재 꼭대기에서는 그래도 숨 한번 고르고 나니 어느새 내리막길이다. 따뜻한 햇살을 한껏 받으며 한가로이 걸음을 옮기는데, 길을 가운데 두고 오른편은 얼어붙은 얼음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겨울 강줄기, 왼편은 고작 하루 네 번 열차만 실어주기만 하면 되는 기찻길이, 때 이른 봄 풍경이다.
 
 
진부로 이어지는 59번 지방도로와 만나는 나전에 이르니 2시가 넘었다. 12시 정선을 출발해 반점재 정상에서 잠시 숨을 돌린 것 이외에는 쉬지 않고 걸었으니 몸이 뻐근할만도 한데 봄 풍경 때문인지 힘든지 모른다. 그래도 앞으로 이만큼은 또 걸어야 하기에, 그리고 때맞춰 멈춰선 꼬마열차 구경에 잠시 쉬어간다. 헌데.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영월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느 새인가부터 눈에 자꾸만 걸리기 시작한 ‘평창동계올림픽’ 간판이 유난히 거슬린다. 차가 많이 오가는 국도는 물론이고 지방도로에 지번도 없는 작은 소로에까지 여기저기 스키 타는 모습들이다. 아마도 평창에 가까워지면서 덩달아 간판들도 늘어난 것일 테다. 그래도 그렇지. 가만 생각해봐도 산허리를 절딴 내고서야 겨우, 그것도 내리지 않는 눈을 기다리다 못해 가짜 눈을 만들고서야 스키를 탈 수 있는데 뭔 ‘경제유발효과’인지. 한쪽에서는 온난화로 인해 앞으로 아열대기후로 변할 것이라며 호들갑을 떨고, 다른 한쪽에서는 뭉턱뭉턱 나무를 밀어내고 산을 깎아내는 호들갑을 떨고 있는 모양이 ‘냄비 언론' 탓만은 아니리라.
 
당초 오늘 걷기는 여기까지다, 생각했던 여량에 가까이 다가오니 4시가 넘어도 한참이다. 해가 짧아지기는 했어도 어째 좀, 시간이 어정쩡하다. 오늘 하루 걸은 길이 대략 50리 길에 시간상으로도 5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은데다 이 시간에 잠자리를 찾아 여관을 기웃거리는 것도 좀 그렇다. 더구나 내처 경전선의 끄트머리인 구절리역까지 걷기에는 더욱 시간이 애매하다. 어찌할까.
 
결국 인근 임계에서 군내버스로 1시간이면 동해바다를 볼 수 있다는 말에 혹하고 넘어가 밤바다 구경에 나서는데, 꾸불꾸불한 길 이쪽 아래 여량 읍내의 불빛과 저쪽 아래 동해 읍내의 불빛이 잠깐의 시차를 두고 사라졌다, 나왔다 하며 길을 밝힌다. 아무래도 길을 잘 나선 것도 같다. 게다가 오랜만에 듣는 파도 소리에 요 며칠 찌뿌둥했던 기분이 싹 가셔지니 꽤 쌀쌀한 밤바람이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른다.
 
* 정선에서 아우라지로 가는 옛 길, 하나
정선읍내를 벗어나면서 시작되는 긴 오르막길 끝에 반점재가 있다. 높이는 450m. 옛 길은 반점재로 오르다 오른쪽으로 국일관이라는 식당이 보이는 건너편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시작되는데, 길 입구, 뭐 하나 알려주는 표지판도 없으니 주의해야 한다. 고개를 넘지 않고 질러간다고 해서 ‘지르러미’라고도 불렸다는데, 비록 채 10km가 되지 않은 짧은 길이지만 강과 함께 걷고자 한다면 이 옛 길을 놓쳐서는 안 된다.
 
* 정선에서 아우라지로 가는 옛 길, 둘
지르러미를 지나 강, 길, 기찻길이 나란히 가는 42번 국도를 따라 조금만 가면 나전이다. 이곳에서 나전중학교 담을 따라 조금만 오르면 한국가스공사 연수원이 보이고 다시 여기서 왼쪽으로 난 길이 봉화치를 넘어 아우라지로 가는 옛 길의 시작이다. 이 길은 정선과 아우라지를 이어주는, 42번 국도와 강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으로 나란히 이어진다. 비록 시멘트로 발라져 옛 길의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봉화치에서 내려다보이는 물길이 아름답기에 이 옛 길 역시 놓쳐서는 안 된다.
 
* 열일곱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정선 읍내에서 아우라지가 마주 보이는 여량까지 5시간 동안 약 20km를 걷다.
 
* 가고, 오고
정선으로 가는 길은 증산을 거쳐 꼬마기차를 타고 들어가는 길과 장평, 증평을 경유하는 시외버스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어느 길이 됐건 4시간 정도가 소요되므로 시간상으로는 차이가 없다. 다만 하루 두 차례 증산에서 아우라지까지 운행하는 꼬마열차를 타보는 것도 색다른 맛일 것이다.
 
* 잠잘 곳
정선읍내에는 쉬어가기 좋은 모텔이 몇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다만 여량에는 유명한 옥산장 이외에 민박이 몇 없으니 사전에 잘 알아봐야 하며 정선읍내에서 여랑까지는 숙박시설은 물론 음식점도 보기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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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1 13:18 2010/07/21 13:18

장마

from 10년 만천리 2010/07/19 21:57
마른장마(7월 12일/흐림 19-30도)
 
남쪽에는 비가 많이 온다고 하는데. 춘천은 마른장마다. 엊그제도 밤이 되어서야 비가 조금 오고. 어제, 오늘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는데. 통 비는 안 온다. 덕분에 이래저래 밭에 나가 일하기에는 좋긴 하지만. 비가 와야 할 때 오질 않고 있으니 걱정이다.
 
비가 온다는 소리도 있었고. 그저께 잠자리가 불편했던지 어제부터 목도 아프고. 또 의정부에서 어머님이 오시기도 해서 이틀을 쉬고 밭에 나왔더니 손봐야 할 곳이 꽤 된다. 오이도 따야 하고, 부쩍부쩍 자라는 토마토 줄기 지주끈도 묶어 줘야 하고. 땅콩 심은 곳 풀도 매줘야 하고, 피망이며, 오이고추에 지주도 세워줘야 하니.
 
마음 같아선 후다닥 일을 해치우고 싶지만. 몸이 따라가 주질 않으니. 땅콩 심은 곳 김매주고. 지주끈 묶어주고. 풋고추 따고, 오이 따고, 방울토마토 따서 집에 오니 밥맛이 꿀맛이다.   
 
 
장대비(7월 13일/소낙비 21-33도)
 
어제 마른장마라고 했는데. 오늘 장대비를 맞고 나니 이거야 원. 장마는 장만가.
 
집을 나설 때도 이미 먹구름이 잔뜩 몰려왔는데. 무슨 생각으로 그대로 밭에 갔는지.
 
그래도 참깨 심어 놓은 곳 김매고, 속아주고 할 때까진 머. 비 안 오네, 했다.  
 
해질녘이니 싶었는데 시계를 보니 이런. 이건 날이 저무는 게 아니라 비구름이 하늘을 덮은 탓이다.
 
조금만 더 풀 뽑다 일어나야지 했는데. 한 방울 두 방울 빗방울이 떨어진다. 이런. 곧장 자전거에 올라 폐달을 밟는데.
 
팔호광장을 넘어가는 긴 오르막에서 결국 쏟아지는 장대비에 굴복한다. ‘술빵’ 파는 가겟집 처마에서 쫄딱 젖은 채 오돌오돌.
 
소낙비이겠거니 싶어 잠깐 기다려보는데. 하늘을 보니 여기저기서 번개가 번쩍번쩍. 이건 금방 그칠 비가 아니다.
 
혹시나 해서 비옷을 챙겨오기 했지만. 비옷이고 뭐고 다 소용 없는 셈. 더 늦기 전에 집으로 가야지.
 
결국 속옷까지 다 젖고야 집에 도착했다. 워낙 날이 더운지라 비를 맞으니 되레 시원하긴 한데.
 
장마기간 내내 오늘처럼 예상치 못한 비가 자주 온다고 하는데. 갈수록 이상해지는 날씨 때문에 이래저래 농사짓기 힘들다.
 
 
버스타고 가는 밭(7월 15일/무더움 21-33도)
 
며칠 전부터 아프던 목이 낫질 않는다. 좀 나아지나 싶어 자전거를 탔더니 더 그런 것도 같고. 해서 어제 하루는 택배 올 것도 있고 겸사겸사 쉬었다. 헌데 목은 그대로다. 아니 이젠 옮겨 다니며 여기저기 들쑤시는 것 같다.
 
내일부터 장맛비가 온다고 하니 더 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전거는 안 되겠고. 어쩔 수 없다. 들쭉날쭉 시간 맞추기가 쉽지는 않지만 버스를 타고 가는 수밖에.
 
하루에도 몇 번 다니지 않는 버스를 용케 집어다고 밭에 가니 생각보다 시간도 많이 안 걸리고. 일단 몸이 안 좋을 때는 꽤 괜찮을 듯하다. 여전히 시간 맞추는 게 생각보다 쉽진 않지만.
 
비가 온다고 하니 여기저기 손 볼 곳도 많고. 감자도 캐야 하고. 시간이 금방 지난다. 마음이 급하니 쉬지도 않고. 덕분에 땀이 비 오듯. 하지만 할 일은 남아 있고. 결국 어둑어둑해져서야 겨우 마무리 짓고 다시 정류장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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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9 21:57 2010/07/19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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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렸을 적 어머니께서 이것저것 할부로 들여놓은 책들이 꽤나 있었습니다. 세계문학전집이니 어린이명작동화니 뭐 그런 것들 말이지요. 그리고 그 중에는 ‘위인전’이란 것도 있었습니다. ‘이순신’이니 ‘강감찬’이니 하는 ‘장군’들 얘기가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암튼 대략 50권은 돼 보이는, 보통 한질이라고도 하는 이 문집을 몇 날 며칠 밤새며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유난히도 ‘장군’들이 많이 등장한 건. 총, 칼로 정권을 찬탈한 군인들이 자신들의 취약한 정당성을 과거 ‘국난극복’의 우상들을 내세워 어찌어찌 희석시키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만. 아무튼. 가난이란 게 뭔지 쬐끔은 알았던 나이였던지. 어머니께서 큰맘 먹고 사놓은 그 책들을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읽었지요. 다른 친구들은 읽고 나면 눈물까지 흘리며 감동을 받았다고 하던데. 도통 감명 따위 같은 것은 눈곱만치도 생기지 않으면서도 말입니다. 
 
2. 
머리가 굵어지고 다시 위인전이란 걸 접하게 된 건.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도. 본명은 장지락(張志樂)으로 평안북도 용천 출생. 중국 공산혁명을 통한 조선 독립 운동에 몸을 던졌던 김산의 삶을 기록한. 그 역시 1930∼40년대 중국을 누비며 모택동의 대장정에 참가했던 님 웨일즈가 쓴 <아리랑>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처음 책을 집어 들었을 땐 어릴 적 기억 때문이었는지, 뭐 대단한 재미가 있으려니 싶었지요. 하지만 읽는 내내, 또 두 번, 세 번을  읽어도 똑같이 느껴지던 전율. 그래요. 그거야 말로 ‘감명’, ‘존경’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3. 
선거철이 되면 여기저기서 출판기념회가 열리고는 하지요. 출마예정자들이 합법적인 선거운동 기간 전에 자신을 알리기 위해 이런 저런 책들을 내놓기 때문이지요. 머. 대부분이 자기들 돈 내고 하는 일이니 뭐라 욕할 순 없지만. 선거 때만 나타나 굽실굽실하는 꼬락서니들에, 선거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배지 달고 으스대는 모양새까지. 그 모든 걸 다 적어는 놓았는지 궁금하지도 하지만. 또 그 많은 책들 가운데 과연 자기가 쓴 글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싶지도 않지만. 에세이나 회고록, 대담 등은 그래도 좀 봐줄만 하지요. 자서전이라니. 가당치도 않은 일 아닙니까.
 
4. 
요즘은 어떤 책을 읽어도 그렇게 감명을 받거나 깊은 인상을 받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되게 메말라졌다고도 할 수 있고. 또 조금은, 아니 세상 물이 많이 들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지금처럼 책을 읽는 다는 건. 그저 글자를 읽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 같기도 한데. 하지만 그래도 손에서 책을 놓지는 않습니다. 이것저것, 장르를 따지지 않고. 에세이를 읽기도 하고, 소설을 읽기도 하고. 천문학 책을 뒤적이기도 하고, 여행기를 사 보기도 하고. 또 <주은래>(司馬長風 지음, 태창문화사. 1979), <시몬느 베이유, 불꽃의 여자>(시몬느 뻬트르망 지음, 까치. 1978)와 같이 헌책방에 발견한 ‘위인전’도 보면서 말입니다.
 
5. 
한 사람의 일생을 들여다본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 걸까요. 지금까지 살아왔던 시간을 반성할 수도 있고. 같은 뜻이겠지만. 앞으로 살아갈 시간들을 계획하는 마음을 가질 수도 있고. 모두가 본받아야 할 삶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말을 하고, 어떤 관계를 맺고, 그러다 어떻게 죽어갔는가, 뭐. 그런 것들을 알고자 하는 것일까요. 이도 저도 아니면, ‘감동’, ‘존경’, ‘감명’들과 같은, 마음을 움직이는 삶을 살았던 이들을 보며 한 방울, 눈물 떨어뜨릴 수 있는 시간. 그거면 충분한 건가요. 만약 이런 기준이라면 최근에 읽었던 ‘위인전’, <주은래>와 <시몬느 베이유, 불꽃의 여자>. 이 두 책 가운데 한 권만 해당되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쉽네요. 아, 그렇다고 ‘주은래’의 삶이 ‘감동’, ‘존경’과 같은 말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그냥 <주은래>를 쓴 사람이 ‘주은래’의 한쪽 모습만을 들여다봤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일 뿐이지요. 해서 이번 기회에 다른 이가 쓴 책들을 찾아보기로 했답니다. 반대로 <시몬느 베이유, 불꽃의 여자>는 앞에 기준들을 충분히 채우고도 남을 수 있겠습니다. 다만, 이 책 역시, 쓴 사람이 시몬느를 ‘성자’의 이미지로 지나치게 그리고 있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이만큼이나 시몬느 베이유가 살아왔던 시간들을 꼼꼼히 기록했다는 점에서 또, 그녀가 남긴 많은 글들을 굳이 다 읽지 않더라도 비교적 소상히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값진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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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4 14:48 2010/07/14 1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