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게 살기

from 말을 걸다 2010/08/04 23:42

1.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발생한 한반도 긴장상태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성명 채택으로 한 숨 돌리는 모양새입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성명에서 제기한 것처럼 “직접대화와 협상을 가급적 조속히 재개하기 위해 평화적 수단으로 한반도의 현안들을 해결”할지, ‘사건’ 초기부터 일관되게 이번 기회에 ‘손을 봐줘야 한다’는 식으로 분위기를 만들어간 보수 세력들의 주장에 더욱 힘이 실릴지는, 장담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대화와 협상’, ‘평화와 우애’를 더욱 힘주어 이야기해야 함에도. 덮어놓고 ‘빨간색’을 칠해대니 말입니다.

 

2.

벌써 한 달이 넘었네요. 밭에 다녀오는 길. 골목길에서 자동차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들이받고 말았습니다. 평소에도 앞, 뒤 가리지 않고 자동차들이 불쑥불쑥 나오는 골목길인지라 그날도 조심조심 속도를 줄였지만. 느닷없이 튀어나온 탓에 ‘어, 어’ 하는 외마디만 지른 채 그대로 차문을 자전거로 받았지요. 다행히 왼손 검지가 까진 것 외에는 다친 데가 없었지만. 자전거든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무섭게 돌진해대는 차들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터라. 요번엔 봐주지 말아야겠다, 마음먹고 있는데. 일단 병원으로 가자, 자전거도 수리하자, 거듭 죄송하다며 안절부절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자. ‘머, 크게 다친 것도 아니고. 실수했다는 걸 인정하니…….’ 그래, 웃으며. ‘괜찮으니 틀어진 자전거나 고쳐봅시다’하고는 말았지요.

 

그리고는 다음 날 저녁. 또 밭에 다녀오는 길에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어제 사고 낸 사람인데. 괜찮으냐. 죄송한 마음에 전화했다. 내일 저녁을 대접하고 싶다’, 뭐 그런 내용이었지요. 그런데, 사고가 난 날도 그랬지만. 전화를 받았던 그날도. 꽤나 기분이 좋았답니다. 비록 그 전화가 있고 난 며칠 후. 사고 때문인지는 정확치는 않지만. 왼쪽 어깨며, 목 부근이 자고나면 뻐근한 게. 그 좋은 기분이 오래가진 못했지만요.      

 

3. 

성격상 웬만한 일은 그냥 ‘허, 허’ 웃고 잘 넘어갑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욱’하고 치밀어 오르는 성질을 참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횡단보도를 무시하고 달려드는 차들을 볼 때, 관공서에 마주친 어깨에 ‘빡’ 힘들어간 공무원을 볼 때, 일당 받고 파업 현장에 들어와 깽판 치는 ‘어깨’들과 마주쳤을 때, 2MB이 하는 일이라면 덮어놓고 찬성하는 이들과 얘기할 때가 그렇습니다. 자칭 ‘평화’를 옹호한다고 블로그 이름도 ‘자연은 평화다’라고 해놓고는. 작정하듯 달려들어 싸울 태세인 모습을 누가 보기라도 할라치면. 이거야 원. 남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할 지경입니다.    

 

4.

장마철로 접어들면 온통 밭은 풀천지입니다. 그나마 많은 사람들이 대체 뭘 심은 거냐며 물어오던 호밀이 무섭게 크다 한 풀 꺾여 좀 나아 보이긴 하지만. 오백 평, 천 평 밭농사 짓는 농부님들이 보면 참 우스운 지경이지요. 하지만 농사란 것이 원래 인간이 먹을거리를 기르기 위해 다른 풀들을 강제로 땅에서 몰아내는. 극히 ‘폭력’적인 방식으로 하는 것이긴 하지만. 석유로 만든 비닐이며, 비료며, 기계를 써가며 까지 농사를 지으면서 풀이 조금 자랐다고 농약까지 친다면야. 남들이 들으면 어디 그래가지고 시골에서 손가락질 안당하며 살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하겠습니다.     

 

5. 

역시 한 달 전쯤 이라고 기억합니다. 대낮 남춘천역 앞에서 대판 말싸움을 했지요. 의정부에서 오신 어머님도 계셨고 해서. 웬만하면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아마 고 며칠 전 사고 기억이 겹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뻐근한 목이며, 어깨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 졌을지도 모르지요. 아무튼. 역 앞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속도를 줄이지도 않은 채 득달같이 좌회전해 들어오는 차를 보고는 삿대질에 쌍욕을 했던 겁니다. 젊디젊은 우리야 그렇다 쳐도. 나이 드신 어머님이 채 횡단보도를 건너지도 않았는데 무섭게 질주를 해대니. 순간, 도저히 참질 못하겠더라구요. 그래. 한바탕 욕을 한 겁니다.

 

헌데 이 운전자. 욕 들어 먹은 게 분했던 가요. 짐작컨대 꽤나 한참이나 길을 돌렸을 터인데도. 차를 돌려 세우더니 왜 욕을 하느냐, 며 말을 거는데. 달려드는 차에 두려움을 느낀 사람 생각은 통 하질 않는 것 같더군요. 해서 속된말로 맞장을 떴습니다. 또 치고받고만 하지 않았다, 뿐이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봤다면. 정말 재미난 싸움 구경이었을 겁니다. 그래, 그렇게 10여분이 넘게 말다툼을 하다 어찌어찌 겨우 다시 집으로 갈 수 있었는데. 말할 수 없는 찝찝함이란 게 얼마나 오래 가던지. 그게 그 운전자에 대한 분노인지, 불같은 성질을 낸 것에 대한 자책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6. 

예상했던 대로 지방선거가 끝나고, 유엔에서 성명도 나오고 나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천안함’은 더 이상 뉴스거리도 되지 않네요. 호들갑스럽게 ‘응징’, ‘단호한 대처’를 주문했던 보수 언론들도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아직은 ‘대화’나 ‘협상’을 얘기하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무수한 ‘침몰’ 의혹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가면서도. 동북아 안보를 핑계로 일본 자위대까지 참관한. 항공모함을 동원한 대규모 한미 합동군사훈련까지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야말로 ‘불굴의 의지’입니다.    

 

일주일이 넘게 고구마를 심은 이랑 사이를 기다시피해가며 풀을 뽑으니. 훤하니 보기는 좋습니다. 그리고 이제 고구마가 줄기를 마음껏 뻗을 수 있겠거니, 싶으니 마음이 조금 놓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 손에 뽑혀져 나간. 이름 모를 풀들이며 꽃들이 밭 한쪽 귀퉁이에 쌓여 있는 걸 보니. 그리고 또 이 풀, 꽃들을 터전으로 살았던 벌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생각하니. 영 개운치만은 않은데. 그것도 잠깐. 옥수수 사이로 콩 사이로 삐죽삐죽 올라온 풀들을 향해 아무 생각 없이 무지막지하게 낫을 휘둘러대고 있습니다.  

 

요즘은 목이 아파 자주 밭엘 나가지 못합니다. 또 가더라도 자전거보단 버스를 타고 가지요. 그리고 고구마 밭 김매기도 끝난지라 딱히 급하게 할 일도 없었기에. 어제도 느긋이 집을 나섰습니다. 헌데 첫 번째 신호등에서 한 번. 타고 가는 버스가 또 한 번. 신호등에 횡단보도까지 무시하고 달려드는 승용차에, 버스에. 어찌나 열불이 터지던 지요. 이번에도 쌍욕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데.

 

이것 참, 이래저래 ‘평화롭게 살기’.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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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4 23:42 2010/08/04 23:42

장맛비

from 10년 만천리 2010/08/02 18:57

장맛비(7월 25일/무더움 23-32)

 

그저께부터 내리기 시작한 장맛비가 꽤나 내린다. 장마는 오래전에 시작됐는데 이제야 비다운 비가 내리니. 집중호우다 국지성호우다 걱정이 앞서기는 하지만. 그래도 비가 와야 할 때니 비 오는 게 싫진 않다. 덕분에 이틀을 잘 쉬기도 했으니.

 

비 온 뒤라 밭일이 많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풀들도 많이 자라지 않았고. 고추도 아직은 병이 올 낌새는 없다. 그래도 신문지로 멀칭한 곳은 여기저기 풀들이 신문지를 뚫고 올라오고 있고. 플래카드나 신문지로도 막을 수 없는 골들은 풀이 잔뜩 자리를 잡고 있다. 하지만 머. 이젠 호미로 막긴 글렀고. 낫으로 슬슬 베어 넘어뜨리면 되니. 생각하기 나름. 일이 많진 않은 셈이다.

 

내일부터는 또 느닷없는 물놀이로 사흘을 빼야하니 일이 없다고 해도 조금씩 해야 한다. 해서 슬슬 고추 고랑에 들어가 낫으로 풀이며, 봄에 뿌려 허리까지 키웠던 호밀을 함께 베어 차곡차곡 쌓으니.

 

장마와 여름 무더위에 풀이 자라는 걸 이것들이 잡아둘 것이라 생각하니. 그리고 그렇게 여름을 보내고 나면 곧 빨간 고추를 수확할 수 있겠다 생각하니. 아무래도 올 농사는 처음 시도한 호밀을 이용한 제초가 생각보다 잘 됐지 싶다.

 

이번 장맛비가 그치고 나면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다고 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슬슬 하겠다고 낫질 조금 했는데도 금세 땀이 흠뻑.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프고. 해는 지고 버스 시간은 다가오고. 서둘러 물놀이가서 먹을 푸성귀며 풋고추, 아삭이, 오이, 토마토를 가방 하나 딴다.

 

삼복더위(7월 29일/무더움 25-31)

 

장맛비가 그치고 나니 무더위다. 그것도 그냥 무더위가 아니라. 괜스레 삼복이 있나 싶을 정도다. 가만있어도 땀이 나는데 이럴 때 밭일이란. 시쳇말로 초죽음. 비 그치고 사흘을 놀았더니 풀이 장난이 아니라 낫질을 좀 했더니. 그 말이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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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2 18:57 2010/08/02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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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타고 가는 밭 - 둘째 날(7월 19일/흐린 후 무더움 26-31도)

 

열흘이 넘도록 여전히 목이 아프다. 주말엔 다행히 비가 와 마음 놓고 쉴 수 있었지만. 비 그치니 할 일도 많고. 목도 아픈데다 무더위에 자전거도 힘들고. 또 오랜만에 둘이 나서니. 시간 맞춰 버스타고 밭에 나간다.

 

이틀 비가 오고 나니 오이도 그득 방울토마토도 그득. 고추도 부쩍 자랐고 보이지 않던 참외도 생겼다. 헌데 콩밭에 웬 덩굴. 바닥부터 옥수수며 콩대를 타고 덩굴이 장난이 아니다. 콩 싹이 났을 때부터 심상치 않게 생긴 것들이 꾸물꾸물 자리를 잡던 게. 별 것 아니려니 싶어 신경을 통 쓰지 않았는데. 이런. 낭패다.

 

별 수 없다. 일일이 손으로 떼어내고 벗겨내고 잘라내는 수밖에. 덕분에 둘 다 금세 땀으로 흠뻑 젖는다. 또 밭에 나온 지 한 시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힘이 부친다. 이런. 낭패, 또 낭패다.

 

결국 해가 질 무렵까지 일을 하고서야 겨우 정리를 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이, 삼일은 더 신경 써서 덩굴을 치워야 할 듯. 근데 이 덩굴, 정체는 뭐지.

 

버스타고 가는 밭 - 셋째 날(7월 20일/무더움 22-33도)

 

날도 더운데 시원한 바람 빵빵 나오는 버스타고 다니는 것도 꽤 괜찮은 듯. 하지만 밭에 들어서는 순간 헉. 무릎까지 자란 옥수수 밭 풀 낫질하느라 또 헉. 온 몸에 땀이 비 오듯. 덥긴 무지하게 덥다. 

 

버스타고 가는 밭 - 셋째 날(7월 22일/무더움 25-31)

 

연일 무더위다. 밤까지 기온이 내려가지 않아 열대야가 계속되니. 사람도 지치고 작물도 지친다. 이럴 땐 조금 쉬어가며 일을 해야겠지만. 돌아서면 자라는 풀 때문에 통 그럴 수가 없다. 게다가 하루, 이틀 건너 소나기까지 내리니. 풀 잡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결국 낫으로 베는 제초를 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쏟아지는 땀 때문에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한 심분 일하고 오 분 쉬고. 또 심분 낫질하고 또 쉬고. 자주자주 쉬어가면서 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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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9 11:39 2010/07/29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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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의 고향, 정선(2007년 1월 19일)
 
어제, 밤늦게 정선에 왔다. 2일과 7일에 열리는 정선 장날과 운 좋게 맞아떨어진다면 기차로 쉬이 올 수 있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4시간이 넘게 장평과 증평을 거쳐야하니 시작부터 혹사다. 혹여, 시간만이 아니라도 하루 두 번, 증산에서 아우라지를 왕복하는 꼬마열차를 타볼 요량이라면 꼼꼼히 잘 챙겨야 한다.
 
느긋한 아침에, 크지 않은 읍내라 금방 찾겠거니 싶어 찾아 나섰던 아우라지 촌(村) 때문에 12시가 다되어서야 길을 나설 수 있었다. 그것도 점심까지 먹고서. 하지만 지붕을 어떤 것으로 했느냐에 따라, 귀틀집, 너와집, 굴피집, 돌집, 저릅집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옛집들을 둘러볼 수 있어 시간이 아깝지만은 않다.
 
읍내를 벗어나면서부터 시작된 오르막길이 이제 내려가겠거니, 하면 또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오르막길이야 적응이 돼서 그렇지 곳곳에 발걸음을 늦추는 빙판은 오가는 차가 없어 다행이지 정말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산이 높으니 당연 길도 높을 것이나 따뜻한 날이 꽤 오래 되어도 쉽게 녹지 않는 눈들을 어쩌랴.
 
중간에 한 번 주유소에서 잠깐 쉰 것 빼곤 한 시간 가까이나 긴 오르막을 올랐는데, 에게, 겨우 해발 450m라네. 발아래 마을이 언뜻 까마득히 보이는데 어째 요 높이일까? 기억을 더듬어 보니 지난 번 여행 때도 정선 들어가는 긴 오르막길 끝 솔치재도 요만한 높이였던 것 같다. 아무래도 근동의 마을들에 들거나 나거나 할 땐 이 정도 고개 하나씩은 넘어야 할 듯하다.
 
 
반점재로 오르는 길에서는 답사여행을 나온 일단의 젊은이들로부터 수군수군 눈초리를 받기도 하고, 반점재 꼭대기에서는 그래도 숨 한번 고르고 나니 어느새 내리막길이다. 따뜻한 햇살을 한껏 받으며 한가로이 걸음을 옮기는데, 길을 가운데 두고 오른편은 얼어붙은 얼음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겨울 강줄기, 왼편은 고작 하루 네 번 열차만 실어주기만 하면 되는 기찻길이, 때 이른 봄 풍경이다.
 
 
진부로 이어지는 59번 지방도로와 만나는 나전에 이르니 2시가 넘었다. 12시 정선을 출발해 반점재 정상에서 잠시 숨을 돌린 것 이외에는 쉬지 않고 걸었으니 몸이 뻐근할만도 한데 봄 풍경 때문인지 힘든지 모른다. 그래도 앞으로 이만큼은 또 걸어야 하기에, 그리고 때맞춰 멈춰선 꼬마열차 구경에 잠시 쉬어간다. 헌데.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영월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느 새인가부터 눈에 자꾸만 걸리기 시작한 ‘평창동계올림픽’ 간판이 유난히 거슬린다. 차가 많이 오가는 국도는 물론이고 지방도로에 지번도 없는 작은 소로에까지 여기저기 스키 타는 모습들이다. 아마도 평창에 가까워지면서 덩달아 간판들도 늘어난 것일 테다. 그래도 그렇지. 가만 생각해봐도 산허리를 절딴 내고서야 겨우, 그것도 내리지 않는 눈을 기다리다 못해 가짜 눈을 만들고서야 스키를 탈 수 있는데 뭔 ‘경제유발효과’인지. 한쪽에서는 온난화로 인해 앞으로 아열대기후로 변할 것이라며 호들갑을 떨고, 다른 한쪽에서는 뭉턱뭉턱 나무를 밀어내고 산을 깎아내는 호들갑을 떨고 있는 모양이 ‘냄비 언론' 탓만은 아니리라.
 
당초 오늘 걷기는 여기까지다, 생각했던 여량에 가까이 다가오니 4시가 넘어도 한참이다. 해가 짧아지기는 했어도 어째 좀, 시간이 어정쩡하다. 오늘 하루 걸은 길이 대략 50리 길에 시간상으로도 5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은데다 이 시간에 잠자리를 찾아 여관을 기웃거리는 것도 좀 그렇다. 더구나 내처 경전선의 끄트머리인 구절리역까지 걷기에는 더욱 시간이 애매하다. 어찌할까.
 
결국 인근 임계에서 군내버스로 1시간이면 동해바다를 볼 수 있다는 말에 혹하고 넘어가 밤바다 구경에 나서는데, 꾸불꾸불한 길 이쪽 아래 여량 읍내의 불빛과 저쪽 아래 동해 읍내의 불빛이 잠깐의 시차를 두고 사라졌다, 나왔다 하며 길을 밝힌다. 아무래도 길을 잘 나선 것도 같다. 게다가 오랜만에 듣는 파도 소리에 요 며칠 찌뿌둥했던 기분이 싹 가셔지니 꽤 쌀쌀한 밤바람이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른다.
 
* 정선에서 아우라지로 가는 옛 길, 하나
정선읍내를 벗어나면서 시작되는 긴 오르막길 끝에 반점재가 있다. 높이는 450m. 옛 길은 반점재로 오르다 오른쪽으로 국일관이라는 식당이 보이는 건너편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시작되는데, 길 입구, 뭐 하나 알려주는 표지판도 없으니 주의해야 한다. 고개를 넘지 않고 질러간다고 해서 ‘지르러미’라고도 불렸다는데, 비록 채 10km가 되지 않은 짧은 길이지만 강과 함께 걷고자 한다면 이 옛 길을 놓쳐서는 안 된다.
 
* 정선에서 아우라지로 가는 옛 길, 둘
지르러미를 지나 강, 길, 기찻길이 나란히 가는 42번 국도를 따라 조금만 가면 나전이다. 이곳에서 나전중학교 담을 따라 조금만 오르면 한국가스공사 연수원이 보이고 다시 여기서 왼쪽으로 난 길이 봉화치를 넘어 아우라지로 가는 옛 길의 시작이다. 이 길은 정선과 아우라지를 이어주는, 42번 국도와 강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으로 나란히 이어진다. 비록 시멘트로 발라져 옛 길의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봉화치에서 내려다보이는 물길이 아름답기에 이 옛 길 역시 놓쳐서는 안 된다.
 
* 열일곱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정선 읍내에서 아우라지가 마주 보이는 여량까지 5시간 동안 약 20km를 걷다.
 
* 가고, 오고
정선으로 가는 길은 증산을 거쳐 꼬마기차를 타고 들어가는 길과 장평, 증평을 경유하는 시외버스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어느 길이 됐건 4시간 정도가 소요되므로 시간상으로는 차이가 없다. 다만 하루 두 차례 증산에서 아우라지까지 운행하는 꼬마열차를 타보는 것도 색다른 맛일 것이다.
 
* 잠잘 곳
정선읍내에는 쉬어가기 좋은 모텔이 몇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다만 여량에는 유명한 옥산장 이외에 민박이 몇 없으니 사전에 잘 알아봐야 하며 정선읍내에서 여랑까지는 숙박시설은 물론 음식점도 보기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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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1 13:18 2010/07/21 13:18

장마

from 10년 만천리 2010/07/19 21:57
마른장마(7월 12일/흐림 19-30도)
 
남쪽에는 비가 많이 온다고 하는데. 춘천은 마른장마다. 엊그제도 밤이 되어서야 비가 조금 오고. 어제, 오늘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는데. 통 비는 안 온다. 덕분에 이래저래 밭에 나가 일하기에는 좋긴 하지만. 비가 와야 할 때 오질 않고 있으니 걱정이다.
 
비가 온다는 소리도 있었고. 그저께 잠자리가 불편했던지 어제부터 목도 아프고. 또 의정부에서 어머님이 오시기도 해서 이틀을 쉬고 밭에 나왔더니 손봐야 할 곳이 꽤 된다. 오이도 따야 하고, 부쩍부쩍 자라는 토마토 줄기 지주끈도 묶어 줘야 하고. 땅콩 심은 곳 풀도 매줘야 하고, 피망이며, 오이고추에 지주도 세워줘야 하니.
 
마음 같아선 후다닥 일을 해치우고 싶지만. 몸이 따라가 주질 않으니. 땅콩 심은 곳 김매주고. 지주끈 묶어주고. 풋고추 따고, 오이 따고, 방울토마토 따서 집에 오니 밥맛이 꿀맛이다.   
 
 
장대비(7월 13일/소낙비 21-33도)
 
어제 마른장마라고 했는데. 오늘 장대비를 맞고 나니 이거야 원. 장마는 장만가.
 
집을 나설 때도 이미 먹구름이 잔뜩 몰려왔는데. 무슨 생각으로 그대로 밭에 갔는지.
 
그래도 참깨 심어 놓은 곳 김매고, 속아주고 할 때까진 머. 비 안 오네, 했다.  
 
해질녘이니 싶었는데 시계를 보니 이런. 이건 날이 저무는 게 아니라 비구름이 하늘을 덮은 탓이다.
 
조금만 더 풀 뽑다 일어나야지 했는데. 한 방울 두 방울 빗방울이 떨어진다. 이런. 곧장 자전거에 올라 폐달을 밟는데.
 
팔호광장을 넘어가는 긴 오르막에서 결국 쏟아지는 장대비에 굴복한다. ‘술빵’ 파는 가겟집 처마에서 쫄딱 젖은 채 오돌오돌.
 
소낙비이겠거니 싶어 잠깐 기다려보는데. 하늘을 보니 여기저기서 번개가 번쩍번쩍. 이건 금방 그칠 비가 아니다.
 
혹시나 해서 비옷을 챙겨오기 했지만. 비옷이고 뭐고 다 소용 없는 셈. 더 늦기 전에 집으로 가야지.
 
결국 속옷까지 다 젖고야 집에 도착했다. 워낙 날이 더운지라 비를 맞으니 되레 시원하긴 한데.
 
장마기간 내내 오늘처럼 예상치 못한 비가 자주 온다고 하는데. 갈수록 이상해지는 날씨 때문에 이래저래 농사짓기 힘들다.
 
 
버스타고 가는 밭(7월 15일/무더움 21-33도)
 
며칠 전부터 아프던 목이 낫질 않는다. 좀 나아지나 싶어 자전거를 탔더니 더 그런 것도 같고. 해서 어제 하루는 택배 올 것도 있고 겸사겸사 쉬었다. 헌데 목은 그대로다. 아니 이젠 옮겨 다니며 여기저기 들쑤시는 것 같다.
 
내일부터 장맛비가 온다고 하니 더 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전거는 안 되겠고. 어쩔 수 없다. 들쭉날쭉 시간 맞추기가 쉽지는 않지만 버스를 타고 가는 수밖에.
 
하루에도 몇 번 다니지 않는 버스를 용케 집어다고 밭에 가니 생각보다 시간도 많이 안 걸리고. 일단 몸이 안 좋을 때는 꽤 괜찮을 듯하다. 여전히 시간 맞추는 게 생각보다 쉽진 않지만.
 
비가 온다고 하니 여기저기 손 볼 곳도 많고. 감자도 캐야 하고. 시간이 금방 지난다. 마음이 급하니 쉬지도 않고. 덕분에 땀이 비 오듯. 하지만 할 일은 남아 있고. 결국 어둑어둑해져서야 겨우 마무리 짓고 다시 정류장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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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9 21:57 2010/07/19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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