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파스

from 10년 만천리 2010/09/05 22:14

북상중인 태풍(9월 1일/무더움 26-32도)

 
엎친 데 덮친 격, 그야말로 설상가상이다. 지금부터라도 해가 나와야 뭐든 할 수 있을 터인데. 태풍이 올라온다고 하니. 그것도 강한 세력을 동반해 중부지방을 통과한다고 하니. 대체 뭘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다.
 
고추들은 진즉에 빨갛게 되기 시작했건만. 건조기가 없는 이상 말릴 수 없으니. 비가 그치면 따자, 한 게 벌써 보름이 넘었다. 그러니 하나, 둘 죽어나가는 것도 있고, 빨간 고추는 짓물러 터지고. 옥수수도 이미 다 땄어야 하는데. 오늘에서야 겨우 다 쓰러져가는 것들에서 몇 개를 따니.
 
다행인지 고구마와 땅콩은 그 와중에도 잘 자라고 있고. 팥은 아직 아니지만 메주콩과 서리태가 꼬투리를 튼실히 만들고 있으니. 그걸로 위안은 삼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바로 옆에 있는 토마토며 호박들이 시들시들해지니 그것도 잠깐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하는 데까진 해보자, 며 아침나절부터 밭에 나와 지주도 손봐주고, 물고랑도 다시 파고. 며칠 새 또 열린 가지며, 오이를 따내고. 옥수수도 첫 수확을 하고 땅콩 밭도 풀 매주고 나니 마음이 조금 놓인다. 하지만 태풍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니어서 걱정이 다 놓이는 건 아니다.
 
곤파스 - 첫째 날(9월 2일/흐림 22-26도)
 
태풍이 지나간 자리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오이, 토마토, 호박 지주는 한편으로 쓰러졌고. 고추는 절반이 넘게 쓰러졌다. 옥수수도 모조리 넘어갔고, 사이사이 심은 콩도 덩달아 쓰러졌으니. 밭으로 가기 전 마음을 다 잡았지만 막상 보고 나니 심란하다. 그래도 어쩌겠나. 일단 하는 데까진 해봐야지. 다
 
행히 바람과 비는 잦아들었어도 해는 보이지 않으니 일하기엔 좀 낫다. 결국 반나절 가까이 일하고 나니. 고추는 다 일으켜 세웠고. 콩밭도 세 이랑은 정리를 했고. 그제야 마음이 조금은 놓이는데. 그래도 여기저기 쓰러진 옥수수며, 콩들을 보고 있자니. 이거 어찌해야 하나. 걱정이 태산이다.
 
곤파스 - 둘째 날(9월 3일/흐리고 비 22-28도)
 
이틀째 피해복구다. 헌데 진도가 나질 않는다. 오후에 또 소나기가 예보돼 있어 아침나절 밭에 나갔는데. 겨우 두 시간 남짓 일하고 나니 후두둑. 내일은 또 의정부엘 가야 하니 아무래도 오늘은 손을 많이 봐야 할 터인데. 비가 오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얼마나 일을 했나 돌아보니 달랑 콩 밭 세 이랑, 쓰러진 콩 일으켜 세우면서 순 지르고 풀 뽑은 거 밖에 없다. 이런. 이대로 돌아가선 안 될 듯 해 비를 맞으며 일하는데. 괜히 날 더울 때 일하는 거보단 되레 시원하니 좋다. 해서 세 시간을 다 채우고 쏟아지는 비를 철철 맞으며 자전거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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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5 22:14 2010/09/05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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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산대군, 양녕대군과 효령대군, 하원군과 하릉군, 임해군, 이재면.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조선시대 왕의 형으로 살았던 이들입니다. 월산대군은 성종의 형으로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은 세종, 하원군과 하릉군은 선조, 임해군은 광해군, 마지막 이재면은 고종의 형이었던 겁니다.
  
봉건왕조시대에 태어나 왕으로 오르지 못한 채 상왕 또는 대군으로 살아야했던 이들은 타의든 자의든 늘 권력투쟁의 중심에 있었지요. 그 때문에 어떤 이는 궁을 떠나 은둔의 삶을 살아야 했고, 또 어떤 이는 권력의 허망함을 탓하며 주색잡기에 빠지기도 했지요. 물론 밤이 깊도록 왕과 국사를 논할 수 있었던 운 좋은 이도 있었지만. 하루하루 목숨을 부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것이 이들의 운명이었다면. 너무 가혹한 것인가요.
 
 
2.
전기환. 노건평. 대통령의 형이라는 이들. 모두 감방에 가야했습니다. 물론 동생들이 대통령에서 물러난 이후에요. 전기환은 노량신수산시장 강제 강탈 건으로. 노건평은 세종증권(현 NH증권) 매각비리로 말입니다.
  
요즘 어떤 한 사람이 자주 신문에 오르내립니다. 하긴 일본으로 리비아로 그리고 또 볼리비아로 하도 왔다 갔다 하니 기사거리도 많겠지요. 게다가 이 사람 동생이 지금 대통령을 하고 있으니 오죽하겠습니까.
 
헌데. 이 형이란 사람 말이지요. 일본인들을 만나서 한 일이란 게. 한일강제병합 100주년 사과 담화에 앞서 ‘전향적 담화가 나올 경우 역사인식 문제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는 입장을 전달한 거랍니다.
 
또 리비아에서는 당초 ‘자원외교’를 하기 위해 갔다고 했으나. 간첩 혐의로 추방된 주리비아 대사관 정보담당 직원 문제 해결을 위해 특사로 방문한 거였다는데. 가서는 ‘몸이 아픈 데도 직접 왔다고 팔의 주삿바늘을 보여’주는 눈물겨운 일을 하고 왔답니다.
 
하하. 이러니 일부에서는 ‘만사兄통’이니 ‘영포대군’이니 하는 말들이 나도는 것인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3.
볼리비아는 300여 년 동안 스페인의 통치 밑에 있다가 1825년에야 겨우 독립을 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독립 이후 최근까지 무려 150-200여회에 이르는 쿠데타가 있었구요. 심지어 196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말까지 19명의 대통령 가운데 13명이 군인이었다고 하는데. 당시 중남미에서 친미반공정권을 세우기 위해 혈안이었던 미국으로부터 결코 볼리비아 역시 자유롭지 못했음을 보여주지요.          
 
헌데 볼리비아가 이처럼 극심한 정치적 혼란을 겪게 된 데에는 볼리비아가 갖고 있는 풍부한 지하자원. 1545년 볼리비아 북서지방 포토시(Potosi)에 도착한 스페인 침략자들이 처음 발견한 세계 최대 은(銀) 탄광에서부터 석유, 가스, 석탄, 철광, 주석에 이르는 다양하면서도 많은 매장량을 갖고 있는 자연자원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제국주의 세력을 등에 업은 군부, 자본가들의 야욕이. 토착 원주민을 자원개발의 노예로 전락시켜 만들어 낸 막대한 부를 서로 독점하려는 이전투구가. 무수한 군부 쿠데타로 이어진 것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볼리비아 민중들이 겪은 수난과 고난은 이루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을 지경이구요. 바로 도미틸라 바리오스 데 츙가라가 구술하고 모에바 비처가 기록한. <어머니들>은 이런 볼리비아의 아픈 역사를, 아픈 민중들의 삶을 담담히 이야기한. 그러면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투쟁하며 전진하는 민중들의 모습을 힘 있게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4.
2006년 1월 21일. 이날은 볼리비아 대통령 취임식 하루 전날이었습니다. 수도 라 파즈(La Paz)에서는 보기 드문 축하 예식이 진행됐는데요. 에보 모랄레스(Juan Evo Morales Ayma) 대통령 당선자는 인디언 전통을 상징하는 붉은 겉을 걸치고, 또 맨발로 단상에 올랐구요. 인디언 부족인 Aymara족의 지도자는 이 맨발의 대통령에게 토착원주민의 상징인 은과 금으로 장식된 지휘봉을 증정했답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사회주의정부가 출범하는 데 대한 축하 행사가 토착 원주민의 전통 풍속으로 거행된 것이지요.
 
그리고 다음날 대통령에 공식 취임한 모랄레스는 과거 스페인의 침략과 착취, 그리고 근래에 이르러서는 신자유주의 광풍이라는 불안한 볼리비아의 현실 속에 굴하지 않고 사회주의 혁명을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뚜빠흐 까따리, 뚜팍 아마루 등 잉카의 지도자들에 대한 묵념에서. “체 게바라의 못다 이룬 혁명을 이어가겠다”는 목소리에서. “볼리비아의 모든 천연자원은 볼리비아인들의 것”이라는 외침에서. 인종차별(인디오에 대한 차별정책) 철폐, 신자유주의 모델 폐기, 전연가스 등 국내 자연자원에 대한 통제 강화라는 볼리비아 민중들의 염원은 현실이 되기 시작한 것이지요.
 
 
5.
우리나라와 볼리비아가 리튬개발에 손을 잡았다고 호들갑들을 떨고 있습니다. ‘한편의 역전 드라마’니 ‘자원외교의 성과’니 하면서 말이지요. 그리고 이런 얘기들 속에, 곁다리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대통령의 형이란 인물도 간간이 나옵니다. ‘특사역할을 한몫했다’라는 말과 함께 말입니다.
 
하지만. 그 먼 볼리비아까지 세 번이나 갔다 왔다던 ‘대군’. 리튬개발에 열광하는 언론들. 볼리비아의 아픈 역사에 대해, 볼리비아가 갖고 있는 저 자연자원으로 인해 생겼던 그 아픈 역사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하기야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안에서도 제 나라 국민들이 겪는 고초를 나몰라 하는 사람들이 밖에 나가서는 얼마나, 알은체라도 했을까요.
 
‘자원외교의 쾌거’ 뒤에 숨겨진 그늘. 여러분들이라도 이 책과 함께 조금씩, 조금씩 알아가는 것,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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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2 18:22 2010/09/02 18:22

연일 내리는 비

from 10년 만천리 2010/08/31 12:02

연일 내리는 비(8월 28일/무덥고 소나기 23-29도)

 

정말 많이도 온다. 이번 주는 어제 하루 빼곤 죽 비다. 내일도 비소식이고. 다음 주 중반에도 또 비가 온다고 하니. 이 정도면 이거 우기(雨氣)가 아닌 가 싶기도 한데. 기후 걱정하기 전에 밭 걱정이 먼저니. 고추도 하나, 둘 죽어나가고. 토마토도 물컹물컹한 것들만 만들어 낸다. 다 캐내지 못한 감자는 또 어떤가. 물을 좋아하는 작물들에게는 좋겠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여야지. 이래갖고는 뭐든 버티기 힘들겠다.  

 

잠깐 비가 그친 사이 밭에 나가보니 마음만 심란한데.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여기저기 풀도 뽑아주고. 죽어가는 고추들도 뿌리째 뽑아내고. 그래도 그 와중에 오이와 가지가 많이 열려 심란한 마음을 누그러뜨려주는데. 그것도 잠깐. 한 달 내내 내리는 비 때문에 풀을 잡아주지 못한 콩, 팥 밭을 보니. 여긴 정글이네. 큭. 마음 같아선 싹 다 정리하고 싶은데. 그건 말 그대로 마음뿐. 덥고 습한 날씨에 조금만 일해도 지대로 짜증이니. 후와. 이거 올 해는 정말 농사짓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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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31 12:02 2010/08/3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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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밥심으로 일 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하는, 흔히는 농사짓는 사람들이 많이 썼지요. 헌데 큰 힘을 쓰려면 당연 고기를 먹어야 하겠건만. 왜 밥을 앞에 두었을까요. 그야 뭐, 옛날엔 워낙 고기를 먹는 다는 게 워낙 흔한 일이 아니어서. 겨우 명절날이나 제삿날, 생일이었으니. 늘 먹던 것이지만 밥이라도 든든히 먹어 두자, 그런 뜻이 아닐까 합니다만.

 

재작년쯤인가. 쌀 직불금이 크게 문제가 됐었습니다. 어떤 곳은 절반 이상이, 또 어떤 곳은 거의 모든 논과 밭이 외지인 소유라는 거. 그거 별로 새삼스런 일도 아닐 지경인 상황에서 난데없이 벌어진 일입니다. 처음 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 결국 또 애꿎게 농사짓는 사람들만 피해를 보겠군,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처음부터 부정수급쪽으로만 초점이 맞춰지더니 끝까지 그 얘기만 하더군요. 문제는 경자유전(耕者有田), 땅 투기였지만요. 결국 소작농부들, 농사지을 땅만 구하기 힘들어지게 된 채로 끝이 났습니다. 

 

요즘 막걸리가 유행입니다. 외국으로 수출도 잘되고 물론 국내 판매량은 놀랄 만치 늘었고요. 이 유행에 편승해 막걸리를 소재로 한 드라마도 나왔으니. 이만하면 열풍인가요. 또 갈수록 높아가는 'well-being' 바람에 쌀을 재료로 한 과자도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누룽지도 인터넷으로 팔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과자, 막걸리, 누룽지. 저 바다 건너에서 가져온 쌀로 만든 게 참 많기도 하네요.   
 

‘여주.이천 쌀’이라면 때깔 좋고 밥맛 좋은 걸로 알아주던 때가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 명성은 여전하구요. 하지만 이젠. 뭐라나, 1,500년 만에 찾아온 더 없는 지역 개발 기회라고들 하는데. ‘물은 고이면 썩는다.’는 만고진리도 얼토당토 않는 이유로 간단히 무시하고. 강물이 논물보다 높으면 자연 논은 망가진다는 순리도 들리지 않고. 강 주변 논보다도 높게 물길을 만드는 것이 바로 이 死大江 사업인 걸. 쌀농사보단 땅 파는 게 더 남는 장사란 걸 이제야 깨달았나 봅니다. 

 

우리네 밥상(그러고 보니 이미 ‘밥상’이라는 말에 ‘밥’이 들어가 있네요)에 가장 중심이 된 밥, 정확히는 쌀. 이 쌀이 대체 언제부터 상에 올라왔던 걸까요. 기록으로 살펴보자면 멀리는 삼국사기의 백제본기와 신라본기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벼농사 관련 책들이 있습니다(pp.33-38). 그리고 남아있는 유물로는 경기도 여주 흠암리 탄회미가 가장 오래 된 것으로 대략 3,000년 전 청동기 시대로 추정되는 것이 있습니다(pp29-31). 이렇듯 벼는 아주 오랜 세월동안 함께 해왔는데요. (물론 밭벼가 있기는 하지만) 이 쌀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논’. 사람에게는 ‘밥심’을 주고 자연에게는 또 다른 ‘심’을 주는 이 ‘논’에 대해.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이밥에 고깃국’이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이야 들어본 적이 없겠지만. 나름 쌀집 자식이었다는 비교적 유리한 환경에서도 흰 쌀밥을 먹는 게. 불과 20년 전만해도 역시나 생일이나 제사, 명절이 때였으니. ‘고기’와 ‘이밥’이 한 상에 올라오는 건. 잔치상 말고는 보기 힘들었던 때가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웰빙이란 이름으로 이 ‘이밥’이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남아도는 ‘이밥’ 때문에 애꿎은 갯벌이 통째로 메우는 데 이용만 되고. 먼 이국땅에서 자신의 배를 갈라가면서까지 지키고자 해도 늘 ‘자동차’, ‘반도체’에 밀려 뒷자리로 밀려나고. 이런 걸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고 하는 건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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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6 13:19 2010/08/26 13:19

무더위에 지친다

from 10년 만천리 2010/08/23 10:02

고추짱아지(8월 16일/무더움 22-29도)

 

연일 계속되는 비에 고추가 걱정이다. 벌써 물러터진 고추들이 많이 떨어졌고. 이제 막 빨갛게 되는 것들도 여럿 죽어나가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아직 괜찮지만. 비가 더 계속되면 문제가 더 커질 듯하다. 해서 오늘은 둘 다 밭에 나와 조짐이 심상치 않은 것들을 중심으로 고추를 다 따내기로 한다. 가만 두면 죽어나갈 게 틀림없으니. 고추짱아지라도 담글 요량으로 그리 하는 것인데. 어제, 오늘 부지런히 고추를 따고, 딱고, 소금물 만들어 부우니. 작년 매실액 담가 먹은 커다란 유리병 두 개가 가득 찬다. 올 겨울 밥상에 올라올 고추짱아지인 것인데. 가만 보고 있으니 괜히 배가 부른다.   

 

고구마 밭 또 김매기(8월 17일/무더움 21-32도)

 

오는 비에 손 놓고 있다 고구마 밭이 엉망이 됐다. 미처 줄기가 다 뻗지 못한 사이 풀이 무섭게 올라온 것이다. 비가 그친 틈 사이 조금씩 손을 봐주긴 했지만. 아무래도 그냥 둬선 안 될 것 같아 어제, 오늘 다른 일 제쳐놓고 풀을 뽑아주는데. 잘못 발을 디디면 줄기가 똑하고 부러지고. 풀인가 싶어 뽑아내다 보면 역시 줄기까지 쑥하고 올라오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더구나 햇빛을 피해 이파리 뒤에 숨어있던 모기까지 휘젓는 손에 날아올라. 땀 냄새에 이만저만 달려드는 게 아니니. 일하기가 만만치 않다. 그래도 이틀을 꼬박 김매기 해줬더니 숨통이 좀 트인다.  

 

무더위에 지친다(8월 21일/무더움 24-33도)

 

연일 폭염이다. 30도는 기본, 33-34도까지 올라가는 날이 계속된다. 더구나 기온만 높은 게 아니라 습도까지 높다. 이 정도면 가만있어도 땀이 주르륵. 그야말로 찜통더위다. 하지만 아무리 더워도 이틀, 사흘 밭에 나가지 않을 순 없다. 가만히 있음 금세 풀천지가 되니. 해서 밭에 나오지만.

 

10분 만에 두 손 다 들 수밖에 없다. 감자 조금 캐고 오이며, 참외를 몇 개 따기만 했는데도. 바지까지 땀으로 젖는다. 아무리 그늘이 지고 바람이 불어도 이건 아니다. 어찌어찌 한 시간은 넘게 풀도 좀 뽑아 보려고 하지만. 휴. 무더위에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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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3 10:02 2010/08/23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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