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에 지친다

from 10년 만천리 2010/08/23 10:02

고추짱아지(8월 16일/무더움 22-29도)

 

연일 계속되는 비에 고추가 걱정이다. 벌써 물러터진 고추들이 많이 떨어졌고. 이제 막 빨갛게 되는 것들도 여럿 죽어나가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아직 괜찮지만. 비가 더 계속되면 문제가 더 커질 듯하다. 해서 오늘은 둘 다 밭에 나와 조짐이 심상치 않은 것들을 중심으로 고추를 다 따내기로 한다. 가만 두면 죽어나갈 게 틀림없으니. 고추짱아지라도 담글 요량으로 그리 하는 것인데. 어제, 오늘 부지런히 고추를 따고, 딱고, 소금물 만들어 부우니. 작년 매실액 담가 먹은 커다란 유리병 두 개가 가득 찬다. 올 겨울 밥상에 올라올 고추짱아지인 것인데. 가만 보고 있으니 괜히 배가 부른다.   

 

고구마 밭 또 김매기(8월 17일/무더움 21-32도)

 

오는 비에 손 놓고 있다 고구마 밭이 엉망이 됐다. 미처 줄기가 다 뻗지 못한 사이 풀이 무섭게 올라온 것이다. 비가 그친 틈 사이 조금씩 손을 봐주긴 했지만. 아무래도 그냥 둬선 안 될 것 같아 어제, 오늘 다른 일 제쳐놓고 풀을 뽑아주는데. 잘못 발을 디디면 줄기가 똑하고 부러지고. 풀인가 싶어 뽑아내다 보면 역시 줄기까지 쑥하고 올라오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더구나 햇빛을 피해 이파리 뒤에 숨어있던 모기까지 휘젓는 손에 날아올라. 땀 냄새에 이만저만 달려드는 게 아니니. 일하기가 만만치 않다. 그래도 이틀을 꼬박 김매기 해줬더니 숨통이 좀 트인다.  

 

무더위에 지친다(8월 21일/무더움 24-33도)

 

연일 폭염이다. 30도는 기본, 33-34도까지 올라가는 날이 계속된다. 더구나 기온만 높은 게 아니라 습도까지 높다. 이 정도면 가만있어도 땀이 주르륵. 그야말로 찜통더위다. 하지만 아무리 더워도 이틀, 사흘 밭에 나가지 않을 순 없다. 가만히 있음 금세 풀천지가 되니. 해서 밭에 나오지만.

 

10분 만에 두 손 다 들 수밖에 없다. 감자 조금 캐고 오이며, 참외를 몇 개 따기만 했는데도. 바지까지 땀으로 젖는다. 아무리 그늘이 지고 바람이 불어도 이건 아니다. 어찌어찌 한 시간은 넘게 풀도 좀 뽑아 보려고 하지만. 휴. 무더위에 지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8/23 10:02 2010/08/23 10:02
Tag //

결국 사람이 문제인가요. 책을 쓴 이는 단호히 말합니다.

 

인간의 문제가 간과된다면, 인간은 자신의 분신인 문명을 희생양으로 삼아서 면죄부를 얻으려는 위선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는 비판을 외면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p.196

 

그리고 

 

문명비판론자들이 우리 시대가 직면한 위기의 근원을 문명으로 지목하는 과정의 영악성과 이기성을 지적 p.200

 

하고자 글을 썼다고 합니다. 예컨대 글쓴이가 말하듯이 ‘수질오염’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난 ‘생태위기’의 주범을 가정용세제로 몰아가는 것은 “자본논리의 시녀노릇을 수행하기 위해서 만만한 가정주부들을 속죄양으로 삼고”있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 글쓴이는 <숲속에 사는 사람, 숲밖에 사는 사람>(pp.96-119), <씨를 말리는 화학무기>(pp.165-183>와 같은 글들을 통해.

 

또, <문명론과 문명비판론의 반생태학: 에필로그>(pp.184-205)라는 글에서는 세 가지 중요한 사건(북미 동남부의 행여비둘기(passenger pigeon), 북극권의 雪車革命, 사회주의혁명과 아랄海)들을 살펴봅니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편리함을 추구하는 인간의지가 우리 시대의 생태학적 위기의 근원이라는 결론이 가능하다. 편리함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삶을 부수는 작업을 해왔다. 편리함의 부산물로 생성된 쓰레기는 편리함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파괴된 다른 種과 다른 사람을 適所(niche)를 대체함으로써 돌이키기 어려운 “適所置換”(niche displacement)의 현상을 보이고 있다. 파괴된 다른 종과 다른 사람의 삶을 밑거름으로 삼아서 피어난 편리함의 꽃을 우리는 문명이라고 불러왔고, 그러한 논리를 정당화하려는 노력으로서 인간은 문명론과 문화이론을 구축해왔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사람이라는 종의 편리함을 구축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생태권이 시달림을 당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생태위기의 본질임을 알 수 있다. p.203

 

고 일갈합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글쓴이가 말하는 문명을 구성하는 세 요소, 즉 기술과 이념, 이 양자가 함께 생산한 조직 가운데 ‘본질적으로 중립적인’ 기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데요. 즉,

 

어떤 기술이 “좋다, 아니다”하는 가치판단의 기준 속에 들어가는 것은 그 기술이 적용된 상황과 적용방법에 의해서 결정될 수 있을 뿐이다. 즉 그 기술이 적용되는 과정에 개입하는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 기술의 의미는 선악의 가면을 쓰게 되는 것 p.187

 

이라고 합니다. 어때요. 이만하면 글쓴이가 매우 일관되게 ‘무엇’이 문제다, 라고 말하고 있지 않나요.  

 

헌데, ‘인류학자의 환경론’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 왜 제목이 ‘똥이 자원이다’ 일까요. 도올 김용옥씨가 쓴 추천하는 글을 보니 이렇습니다.

 

애초에 전경수 선생이 이 책의 좋은 제목을 하나 생각해 달라고 하기에 “문명을 어떻게 운영하나?”로 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랬더니 몇일 후에 전경수 선생은 “똥은 자원이다”로 가자고 하였다. 나는 역시 그의 등치다웁게 과감한 판단에 대해 찬탄을 금할 수 없었다. 나의 제목은 매우 소극적 제안이나 질문에 지나지 않은 것에 불과한데 반하여 전경수 선생은 그 핵심적 해답을 이미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똥이 밥이다! 문명의 똥을 다시 문명의 밥으로 삼아야 한다는 그의 논의야말로 노동의 결실로서 성스러운 “밥”이라는 기존의 논의를 한차원 뛰어넘는 것이다. 밥과 똥은 지나가는 엘리멘타리 트랙(the alimentary tract)이라고 하는 소화기계의 캐널에 의하여 연결된 개념이며 그것은 一心二門과도 같은, 一體二用의 개념인 것이다. 밥과 똥은 天地自然의 에코체인에 있어서 연기론적(화엄실상론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총체적 일환의 두 측면인 것이다. pp.32-33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애당초 쓰레기라는 말이 없었던. 순환만이 존재하는 자연계에서 일탈한 인간이 이제는 이 순환의 고리로 되돌아가야만 한다는. 역시 문제는 사람인 셈이다, 는 그 말이겠지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8/16 11:51 2010/08/16 11:51

계속되는 비

from 10년 만천리 2010/08/15 21:58
계속되는 비(8월 9일/무더움 24-34)
 
연일 무더위에 비다. 그냥 덥기만 하면 그래도 참을만한데. 습하기까지 하니 불쾌지수가 높을 수밖에. 낮 동안 시원한 동네 도서관으로 피했다가 저녁에나 밭에 가려고 하는데. 방금까지도 화창하던 날씨가 순식간에 어둑어둑해지고. 폭우가 쏟아지기도 하고. 내렸다 그쳤다 가를 반복하기도 하고. 통 밭에 나가기가 어렵다. 해서 오늘은 새벽나절에 움직여 사흘 만에 풀도 베어 주고. 이것저것 따오기도 하고. 쓰러진 고추며 콩도 일으켜 세우는데. 9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에도 땀이 주르륵. 풀로 뒤덮인 밭이 마음에 걸리지만 더 일하다가는 사람 잡을 듯. 어서 가서 시원하게 목욕이나 해야지.
 
태풍(8월 10일/흐리고 무더움 23-28)
 
점입가경이다. 하루걸러 비 오는 날이 계속되더니 이젠 태풍이라니. 이러다 밭이 정글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내리는 비에 풀이 잘도 자라는데. 흠뻑 젖은 풀밭에 들어가면 10분도 채 되지 않아 무릎까지 다 젖고. 후덥지근한 날씨에 윗도리도 다 젖고. 비가 오지 않는 날이라도 밭에 나가야 하겠지만.  
 
새벽같이 나와 일을 해봐도. 밤새 내린 이슬로 젖는 건 매한가지. 새벽이라 해도 덥기는 또 매한가지. 그나마 해라도 없으니 다행이지. 8시만 되면 해까지 머리위에 뜨니 겨우 두 시간 남짓 일하는 셈. 그래도 이렇게라도 나와야 땅콩 심은 곳 풀도 잡아주고. 고추밭, 고구마밭 낫질도 할 수 있다. 아직 콩하고 팥 심은 곳은 손도 못 대고 있지만.
 
또 오는 비(8월 14일/흐리고 비 24-30)
 
웬 비가 이리 자주도 오는지. 태풍도 태풍이지만 우기(雨氣)인가 싶게 하루걸러 아니 이번 주는 월요일 빼고 쭉 비다. 덕분에 푹 쉬고는 있지만 이건. 몸만 쉬는 거지 마음은 타들어간다. 작물들이 잘 버티고 있으려나.
 
오늘도 하루 종일 비가 온다지만 잠깐 그친 사이 밭에 나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고추 몇 개는 쓰러져 있고 또 몇 개는 고추들이 다 물러 터져 있다. 토마토 역시 채 익지도 않은 것들이 죄다 물러 터졌고. 방울토마토는 맛이 영 시원찮고. 물을 좋아하는 오이만은 주렁주렁 열렸지만. 고구마 밭에 무릎까지 올라온 풀이며. 콩, 팥 심은 곳에도 풀이 쑥쑥 올라온 게. 심란하다.
 
서둘러 고추며 오이를 따고 고구마 밭 풀 뽑는데. 또 비가 쏟아진다. 이번 비는 내일까지 꽤 많은 양이 온다고 하던데. 고추가 큰 걱정이다. 아무래도 잠깐잠깐 비가 그친 사이라도 밭에 나와 이것저것 손을 봐야할 듯하다. 
 
모처럼 해가 쨍(8월 15일/무더움 25-31)
 
8월 들어 보름이 지난 지금까지 비가 온 날이 무려 12일이다. 일지를 보면 하루걸러 간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비가 잠시 그친 때, 부랴부랴 밭에 나간 것이니. 그래도 그렇지. 기상청 홈페이지에서 확인을 하고 하니, 새삼 심하단 생각이 든다. 지금부터라도 비가 살살 와야 할 터인데.
 
오늘은 모처럼 해가 쨍하고 떴다. 아침까지만 해도 잔뜩 흐린 하늘에 해가 나올 것 같아 보이지 않았는데. 점심 먹고 한 잠 자려는데, 창밖으로 밀려들어오는 햇살에 퍼뜩 정신이 든다. 이게 얼마 만에 뜬 해이던가.
 
해가 나니 밭일을 나가야겠는데. 밀린 일로 마음은 급하지만, 곧 땀으로 범벅이 될 걸 생각하니, 몸이 쉽게 움직이질 않는다. 이래 마음이 간사해가지고 어찌 농사를 지으려는지. 비 온다는 핑계로 내심 잘 쉬다, 이제 일 하려니 밍기적거리는 게다. 이리저리 괜히 시원한 물이 없네, 벌써부터 덥네 하며 시간을 끌었더니. 결국 두 시간도 채 일을 하지도 못하고. 쩝. 비 덕분에 많이 나태해졌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8/15 21:58 2010/08/15 21:58
Tag //
1.
우리는 ‘합리주의’ 또는 ‘합리성’이라는 말을 쓸 때 아주 당연하다는 듯 ‘서구’, ‘서구적’, ‘서양’과 연관 짓습니다. 그리고 이와는 반대로 ‘동양’, ‘동양적’이라는 말을 쓸 때는 ‘지혜’이니 ‘정신’이니, ‘도덕주의’를 떠올리는데요. 이런 생각들은 한편으론 ‘합리성’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과 그에 대한 비판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론 ‘합리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측면이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양’이니 ‘서양’이니 하는 말이 갖는 이분법도 그렇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을 이런 방식으로 나눈 다는 것이 정말 맞기는 한 건가요. 
 
그럼에도 학문적, 지적 세계에서나 전통, 혹은 문화의 측면에서나. 이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이분법 또는 서양의 ‘합리주의’에 대응한 동양의 ‘지혜’ 혹은 ‘도덕주의’는, 생각보다 꽤나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환경위기를 보는 시각에서도 드러나고 있으니 말이지요. 물론 이런 생각들이 우연치 않게 드러난 것인지 아니면 진짜 속마음이 이런 ‘정신’들로 나타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기 환경위기를 바라보는 두 시각. 참 많이도 다르면서 같다는 걸 보여줍니다.
 
2.
<원은 닫혀야 한다: 자연과 인간과 기술 The Closing Circle: Nature, Man, and Techonlogy>을 쓴 카머너 B.Commoner 는 생물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지구를 부수지 않고 사는 방법 CHIKYU WO KOWASANAI IKIKATANO HON>를 쓴 쓰치다 다카시槌田劭 는 공학부를 나왔구요. 전공 분야는 생물학과 금속물리학으로 다르지만 둘 다 현대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데 가장 큰 밑바탕이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한 사람이 ‘시험관 속에 격리된 분자를 연구해서 현대생물학의 방대하고도 상세한 문헌들을 축적해 왔다. 그러나 이런 분리된 자료로는, 예컨대 호수의 생태나 그 취약성을 설명할 어떤 종합적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원은 닫혀야 한다> p.24), 또 한 사람은 ‘지하자원에 빌붙어 움직이는 문명이라는 게 한마디로 자신의 어머니를 해치고 그 체내에서 피를 훑어 내가며 사는 듯한 일’(<자연과 더불어 지구를 부수지 않고 사는 방법> p.129)이라며 현대 과학을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그리고는 끊긴 생명의 ‘원’을 다시 닫자, ‘순환’의 삶을 살자, 합니다. 어째, 이만하면 과학계에 이단아들 같지 않나요.
 
하지만 이 두 사람. 카머너가 이리호, 일리노이주, 로스앤젤리스를 돌며 생태계를 파괴하는 원인, 본질을 파헤치듯. 다카시 역시 아시오足尾 동(銅)광산, 도쿄, 말레이시아 사라와그나 사바주를 얘기하며 푸른 지구를 위협하는 문제들을 살펴보는 데에서는 과학자임에 틀림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다카시가
 
주스를 마시면 빈 깡통이 남지요. 슛 - 하고 쓰레기통에 던집니다. 이 쓰레기가 어디에서 어떻게 처분될지 모르면서도. 우리가 학교에서, 집에서, 거리에서 내놓는 쓰레기는 누군가가 어딘가로 가져가 줍니다.
p.41
 
와 같이 쉽게 읽을 수 있게 글을 쓰는 데 반해 카머너는 좀 딱딱하지요.
 
생태학의 제2법칙:
모든 것은 어디엔가로 가야 한다
이 법칙은 물론 물질은 파괴될 수 없다는 물리학의 기본법칙을 딱딱하지 않게 다시 써 본 것이다. 이 법칙은 생태학에 적용하면 자연에는 <쓰레기>라는 것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p.42
 
또 카머너가 ‘환경위기에서 살아남으려면 공업화된 나라들의 사람들이 <풍요한> 생활방식을 포기할 필요가 있으리라는 것을 반드시 뜻하지 않는다.’(p.293)고도 말하고, ‘다분히 인간 개인의 사실상의 복지보다는 생태학적으로 잘못되고 사회적으로 낭비적인 생산유형을 반영한다.’(같은 쪽)고도 하며, ‘기술의 목적이 어떤 외견상 접근하기 쉬운 부분에로가 아니라 생태계 전체로 방향지어진다면 적절한 과학지식으로 잘 인도될 때 기술은 생태계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음’(p.188)을 얘기합니다.
 
반면 다카시는 ‘공해문제의 기본은 오염원 대책(汚染源 對策)입니다. 쓰레기 공해문제의 오염원을 끊어버리기 위해서는 상품생산을 규제하는 수밖에는 없습니다.’(p.48), ‘그러므로 용기와 지성을 가지고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여야 합니다. 이기주의와 찰나주의, 눈앞의 것과 자기의 일밖에는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달리기만 하는 것은 이제 멈추어야 합니다.’(p.85)라고 말하지요.
 
3.
중세 서양, 신으로부터 해방된 인간 ‘정신’은 베버((Max Weber)가 말한 “근대 서양의 독특한 합리주의라는 세계사적 현상”으로 자본주의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리고 이 원동력은 자연에 대한 지배 질서까지도 창조해내지요. 결국 인간 ‘정신’은 ‘진보’라는 외피를 뒤집어쓴 채 지구별을 망가뜨리고 있는 셈입니다.  
 
한편 동양의 ‘정신’은 ‘이성’과는 매우 다른 내용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나 합리화를 넘어서려는, 적극적이고도 창조적인 활동보다는 전통 속에,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성질이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근본주의’가 갖는 한계 역시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두 책, 그리 꼭 들어맞지는 않겠지만. 어울리며 대화를 하다보면 길이 보일 수도 있겠다, 는 생각이 드네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8/10 21:21 2010/08/10 21:21

물놀이(8월 1일/무더움, 박무 26-32)

 

낮에 하도 더워 물놀이를 다녀왔다. 조그만 집에 장정 다섯에 일곱 살 먹은 얘까지 있으려니 쉽지가 않다. 에어컨이라도 있으면 좀 나을 텐데. 조그만 선풍기 하나로 버티려니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다. 해서 가까운 지암리 계곡엘 다녀온 것이다. 그리고는 모두다 밭으로 출동. 며칠 나오다 말다 하느라 수확하지 못한 오이며, 방울토마토, 참외, 수박 등을 따낸다. 모기에 발이며 팔뚝을 뜯기며. 물놀이 차림으로 밭에 들어간 게 모기밥이 된 셈인데. 그래도 좋다고 여기저기 기웃기웃. 재미난 모양이다.

 

걸어서 가는 밭(8월 3일/무더움, 박무 23-30)

 

오늘부터는 아침나절에 걸어서 밭에 가기로 했다. 운동 삼아 걷는 것인데 한편으론 밭일을 아침에 하고자 함이다. 아무래도 저녁나절에 밭에 가면 모기떼들에게 뜯기가 십상인데. 아침엔 좀 덜할까 싶어서다. 또 혼자 밭일을 하는 게 아니라 둘이서 하는 재미가 더 크니 아침잠을 좀 줄이더라도 걷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 걷는 길이 대학 교정을 통과하기도 하고. 새벽시장을 구경할 수도 있고. 좀 멀다 싶긴 하지만 운동 삼아 걷기에 적당한 거리다. 하지만 그렇게 걷고 밭일하고 집에 와 좀 쉬었다 도서관에 다녀오니. 완전 녹초다. 이러다 내일 아침엔 제시간에 일어날 수나 있으려나.

 

장마가 아직 안 끝났나?(8월 5일/무덥고 소낙비 26-34)

 

재작년인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데. 장마예보를 하지 않는다는 뉴스가 있었다. 장마라고 해도 비가 오지 않는 날이 많고. 적장 장마가 끝났다고 예보해도 집중호우에 비 오는 날이 많고. 지구온난화 탓에 이래저래 강한 비가 수시로 내리는 등 여름철 강수 특성이 변해 장마를 예측한다는 것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라고 했던데. 아니나 다를까.

 

요 며칠 찜통더위가 지속되는 게 장마가 끝난 것처럼 보였다. 헌데 지난 주말부터 하루걸러 비가 오고. 비가 오지 않는 날은 박무가 생기고. 장마철처럼 내리 비가 오진 않아도 눅눅한 날씨가 계속되는 게 꼭 그때처럼 느껴지더니.

 

마른하늘에 이런 비도 처음이다. 밭에 도착해 한참 낫질을 시작한 10분전만 해도 멀쩡했는데. 순식간에 먹구름이 몰려들고. 한두 방울 떨어지던 빗방울이 순식간에 폭우가 되는데. 속옷까지 젖는 데 딱 5분도 채 걸리지 않은 듯하다. 겨우겨우 자전거를 끌고 버스정류장으로 피했지만 이미 물에 빠진 생쥐 꼴. 빗줄기가 가늘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헌데 하늘은 여전히 어둑어둑.

 

10분만 더 참았다 출발할 걸 그랬다. 어차피 젖은 몸. 빨리 집에 가서 씻어야겠다는 생각에 쏟아지는 비를 철철 맞으며 자전거 폐달을 밟는데. 어느새 조금씩 가늘어지는 빗방울이 금세 멈추더니 곧 구름 사이로 해가 보인다. 이런. 갑작스레 내린 비 때문에 더위는 조금 가시긴 했지만. 그래도 속옷까지 다 젖고 나니 찝찝한 게. 영 시원찮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8/09 21:54 2010/08/09 21:54
Ta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