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캐기 - 아홉째 날(10월 25일/맑음 9-15도)

 

드디어 오늘로 고구마를 다 캐냈다. 이제 광에 한가득 쌓인 것들 먹기만 하면 되나?  

 

갑자기 추워진 날씨 - 첫째 날(10월 27일/맑음 영하 4-10도)

 

무슨 날씨가 이런지.

 

아직 10월도 다 가지 않았는데 영하로 떨어지니. 하루, 이틀이야 괜찮겠지만 사나흘 계속되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배추나 무는 아직 한참 더 자라야 하는데 자칫 얼어 죽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여름엔 줄기차게 퍼붓는 비 때문에, 가을엔 빨리 찾아온 찬바람에 농부님들 농사짓기 참 힘들겠다.

 

날이 추운 탓도 있겠지만 지난주엔 하루도 쉬질 않고 밭에 나갔기에. 하루 쉬고, 오늘도 점심 먹고 느지막이 나가 팥꼬투리를 따는데. 이거, 채 여물지 않은 꼬투리들이 얼어붙는 조짐이 보인다. 다행이 내일 오후부터는 날씨가 풀리고 영하로 떨어지진 않는다고 하지만. 아직 여물지 못한 꼬투리들이 반이 넘는데.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 둘째 날(10월 28일/맑음 영하 3-14도)

 

낮 기온은 15도에 육박하는데 새벽엔 영하로 떨어지니. 대체 종잡을 수 없는 날씨다. 하루, 이틀 사이에 팥이며, 서리태 꼬투리가 얼어붙는 것 같기도 하고. 여간 조마조마한 게 아니다. 하지만 밭에 나가 둘러봐도 할 수 있는 건 없고. 그저 요 며칠간만 잘 견뎌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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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1 22:17 2010/11/01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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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불구불 흐르는 공지천, 모래톱도 보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1.

대체 며칠 째인지 모르겠습니다. 보기만 해도 어마어마한 돌덩이들을 잔뜩 싫은 덤프트럭들 이 쉴 새 없이 오가고. 또 실어오기 무섭게 여기저기 내려놓고. 포클레인은 이 돌들을 집어 강변에 쌓느라. 이거야 원 하루 종일 공사 소음에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오릅니다. 그리고 곧 겨울이니 서둘러 공사를 마쳐야 하겠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해가 뜨기도 전부터 시작해 해 진 후에까지도 들려오는 소리에. 또 며칠 전 주말엔 아름드리나무들을 잘라내느라 전기톱을 쓰는 바람에. 생각해보니 그때부터 신경질이 나기 시작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2.

혹시 청계천에 가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어떤 이들은 천만이 넘게 사는 대도시에 이만한 하천이 없다며, 복원된 하천을 찬탄합니다. 그리고 언론에서는 1급수 물고기 연어가 발견됐다, 줄납자루니 각시붕어니 하는 이름도 첨 듣는 토종 물고기가 발견됐다 호들갑을 떱니다. 하지만 콘크리트 세면으로 발라진 둑을 보고 있자면. 조개에 알을 낳는 물고기가 살고, 섬진강에서 사는 물고기 날아와 살고 있다는 얘길 들으면. 이게 도대체 무슨 조화인지 짧은 머리론 통 이해가 되질 않더군요. 게다가 이 청계천 복원사업 이후 어느 도시, 어느 강변엘 가도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하천들을 보자니. 이게 도대체 무슨 유행인지 짧은 머리로 또 통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3.

대체 무슨 공사를 하는 건지 하도 궁금해서 시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공지천’으로 검색을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아, 이런 내용으로 <보도자료>*를 낸 적이 있더군요.

 

  ○ 춘천시의 도심하천인 공지천이 내년 여름이면 예전과는 다른 생태, 친수하천으로 되돌아온다.

  ○ 춘천시는 지난 6월 공지천 생태하천 정비사업 1지구 공사를 준공한데 이어 이달 중 2지구 공사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 1지구는 학곡리 공지천이 시작되는 지점~퇴계천 합류점까지 2.2km 구간으로 호안 정비와 함께 자전거도로 겸 산책로 4.2km가 개설돼 현재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다.

  ○ 2지구는 퇴계천 합류지점~공지천교 간 3.4km로 호안정비와 자전거도로 개설(2.7km) 공사가 이뤄진다.

  ○ 현재는 둔치 한 쪽만 산책로가 있으나 둔치 양쪽에 산책로가 추가로 개설돼 돌다리로 연결된다.

  ○ 남춘천교~효자교 구간에는 홍수 피해가 없도록 하기 위해 제방이 낮은 곳은 석축을 높이는 공사가 이뤄진다.

  ○ 생태계 복원을 위해 물가와 둔치가 만나는 경계에 나무로 짜여진 틀에 돌을 넣어 수생물과 물고기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식생방틀이 설치된다.

  ○ 시는 당초 내년 말까지 전 구간을 준공키로 했으나 국비 지원 등이 순조롭게 이뤄지면서 내년 6월말까지 조기에 사업을 마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공지천 상류인 춘천한방병원 맞은편에 조성되는 생태공원 3곳(6천㎡)도 내년 6월 2지구 공사와 함께 준공된다.

  ○ 공지천 생태하천 정비사업은 국비 등 250억원이 투입돼 지난해 2월부터 공사에 들어갔다.   

 

 

그제야 저 공사 소음이 뭐 때문인지 확실히 알 것 같더군요. 퇴계천 합류지점에서 공지천간 호안 정비와 자전거 도로 개설 공사, 바로 2지구 공사였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사업명이 분명 생태하천 정비 사업이라고 돼있던데.

 

4.

요즘은 공지천 자전거 도로 겸 산책로엔 많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이어폰을 낀 젊은이들로부터 나이 드신 노부부까지. 때론 위태위태하기도 하지만 나름 걷는 사람과 자전거가 공존하는. 시민 음악회도 열리기도 하고,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공지천은 ‘밤에 피는 장미’일 뿐입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해가 떠 있는 시간엔 말입니다. 통 사람들 보기가 힘듭니다. 왜 그럴까요. 맞습니다. 해를 피할 만한 곳이 하나도 없기 때문인 게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무얼 저렇게 파내고, 쌓고 있는 걸까요>

 

그나마 아파트 뒤 베란다로 보이는 곳엔 꽤나 큰 나무들이 있었습니다. 버드나무에 아카시아, 그리고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름드리나무들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겁니다. 그나마 땡볕을 가려줄 나무들이 말입니다. 헌데 이 무신 생태하천 공사인지. 그 나무들을 모조리 - 정확히 딱 한 그루만 잘라내지 않았더군요. 하지만 그게 뭐 대수인가요. 이만하면 ‘모조리’이지요 - 베어내 버렸더군요.

 

있던 나무 다 잘라내고 멀쩡한 땅 포클레인으로 뒤집고 돌 쌓는 것이. 그리해서 ‘물가와 둔치가 만나는 경계에 나무로 짠 틀에 돌을 넣어 수생물과 물고기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식생방틀’을 만드는 게. 뭔 ‘생태계 복원’인지요. 뭐, 그래도 한강에서 물을 끌어다 부어줘야 하는 청계천보다야 낫겠지 싶은 생각도 들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5.

언제부터였나요. 어딜 가나 똑같은 모양으로, 똑같은 둔치에 똑같은 자전거 도로. 똑같은 운동시설, 나무 하나 없는 똑같은 생태하천이 생겨난 것이. 가만 생각해보면, 2MB이 대통령이 된 데에는 청계천 복원사업이 일등공신이었다고 하면, 과장된 말이 아니겠지요. 아닐 겁니다. 그래야만 저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 하천들이 우후죽순 생기는 걸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지 않나요?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

 

 

엊그제 저녁 뉴스를 보니 ‘청계천+20프로젝트’에 선정돼 국비를 지원받고 있는 약사천 복원사업이 우수 사업으로 사례발표까지 했다고 합니다. 뭐, 콘크리트로 덮여있던 하천을 되살린다고 한다는 데야 반대할 사람이 없겠지만. 한강에 청계천에 이제 공지천 공사 모습까지 보고 있으려니, 심히 걱정되는 게. 그래요. 한낮 기우였으면 좋겠네요. 

 

* http://www.chuncheon.go.kr/open_content/open_content_02.asp?MCode=20302 

 **  보도자료에 첨부된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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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7 22:45 2010/10/27 22:45

고구마 캐기 - 다섯째 날(10월 18일/맑음 5-20도)

 

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 고구마 캐내기가 쉽지 않다. 굳은 땅을 호미로 파내려니 힘 조절이 쉽지 않고. 그러다 보니 힘은 힘대로 드는데 고구마에 상처는 또 잘도 난다. 아무래도 한 차례 비가 쏟아지고 난 다음에 캐야 할 듯하다. 내일 밤 비 소식이 있기는 한데 지금으로선 영 기대하기 어렵고. 다음 주 초에 비가 온다고 하니 이번 주는 팥 수확하고 메주콩이나 좀 털어야겠다.

 

감자도 캐고 팥꼬투리도 따고(10월 19일/안개, 맑음 7-21도)

 

하루가 다르게 여기저기 팥꼬투리가 여문다. 고구마 캘 때, 메주콩 베어 널 때 틈틈이 따가기는 하지만. 잠시 고구마 캐는 거 쉴 때 부지런히 팥을 따가야겠다. 무릎으로 기다시피 두 이랑에서 팥꼬투리도 따고 여름에 캐다 남겨둔 감자도 좀 캐고 하니 금세 1시다. 집에서 나올 땐 추워서 점퍼까지 입고 나왔는데 지금은 덥다. 당분간은 이런 전형적인 춘천 날씨가 계속되겠지. 

 

팥 수확 - 첫째 날(10월 20일/안개, 맑음 10-20도)

 

며칠 전부터 틈틈이 팥꼬투리를 따긴 했지만. 누렇게 익어가는 팥꼬투리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간다. 아무래도 눈에 밟히는 데로만 따기엔 안 될 듯싶어. 오늘, 내일은 다른 일 덮어놓고 팥만 수확해야겠다.

 

팥 수확 - 둘째 날(10월 21일/맑음 9-21도)

 

어제에 이어 오늘도 아침엔 팥꼬투리 따고 오후엔 따온 팥꼬투리에서 팥 털고. 이틀을 내리 그리했더니 그 좋아하는 팥만 봐도 속이 미식미식 거린다. 윽.

 

고구마 캐기 - 여섯째 날(10월 22일/안개, 맑음 8-22도)

 

큰일이다. 다음 주 월요일에 비가 온 후 영하로 떨어진다니. 월요일 오후에 비가 온다고 하니 대략 4일 정도 시간이고. 그때까지 고구마를 다 캐서 나를 수 있을까.

 

고구마 캐기 - 일곱째 날(10월 23일/안개, 맑음 8-18도)

 

어제도 한 이랑을 다 캐서 갔고, 오늘도 한 이랑을 다 캐서 가져왔다. 자전거 짐받이에 실으니 무게가 장난이 아닌데. 어쩔 수 없다. 안 그러면 화요일 전까지 다 캐낼 수 없으니. 덕분에 이제 세 이랑밖에 남지 남았는데.

 

내일하고 모래까지 한 이랑씩 해도. 이런. 그래도 한 이랑이 남는다. 아무래도 내일은 오후에도 한 번 더 가야하지 않을까. 헌데 캐고 자전거로 옮기고 하니 힘이 부친다. 아~ 모르겠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고구마 캐기 - 여덟째 날(10월 24일/맑음 14-23도)

 

며칠 단조로운 일상이다. 해 떠있을 땐 밭에 나가 고구마 캐고 팥꼬투리 따와서. 해지고 나면 팥꼬투리 털어 팥 고르고. 하는 수 없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진다는 데 무슨 수가 있으려고. 부지런히 고구마 캐서 나르고, 틈틈이 팥도 따오고 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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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6 10:22 2010/10/26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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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에서 월정사 전나무 숲을 거쳐 상원사까지(2007년 4월 7일)

 

사용자 삽입 이미지4월 초 날씨엔 봄철 입산통제가 아니라도 두도령을 넘는 일정이란 쉽지 않을 듯하다. 서울만 하더라도 여의도에 벚꽃이 활짝 꽃망울을 터뜨리고 겨우내 추위를 이겨낸 나뭇가지들에 새순이 파릇파릇 돋지만 여기 강원도는 아직 녹지 않은 눈 구경이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바람은 매섭고 해 떠 있는 시간은 짧아 걸을 수 있는 시간이 넉넉지가 않다. 해서 요번엔 당일치기로 걷되, 다만 한겨울에도 푸르름을 볼 수 있는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천천히 둘러보는 것으로 한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고양이 세수에 밥 한술 뜨지 못 하는 부산을 떨었는데도 진부에 도착하니 그새 9시가 훌쩍 넘었다. 부족한 잠이야 차안에서 채우기는 했지만 어째 아침은 한 술 뜨고 가야 출발해야 할텐데. 마음이 급해서인지 터미널을 빠져나오자마자 상원사로 향하는 59번 국도로 올라선다. 하지만 지난 해 수해 때문인지 도로 위에 온통 덤프트럭 천지다. 읍내엔 그래도 인도가 있어 다행이지만 읍내를 벗어나니 걷기가 쉽지만은 않다.

 

한 시간 가량 질주하는 덤프트럭들을 피해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걸었더니 몸이 지치는 건 둘째고 길을 걷는 맛이나 흥이 당체 생기질 않는다. 심지어는 괜히 왔나 싶다. 게다가 잠시 허기진 배도 채울 겸 기분전환도 할 겸 상원사로 이어지는 삼거리 앞 슈퍼에서 이것저것 주전부리 할 만 한 것들을 찾는데. 이건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삶은 계란이라고 생각하고 집어 들었던 것이 구운 계란이라 ‘비린 맛’ 때문에 다른 것을 고르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삶은 것보다 덜 비리다며 까탈스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가. 어쩜.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다는 걸 모르고 저러시는 걸까? 대충 과자 부스러기 몇 개를 들고는 서둘러 가게를 빠져 나온다.

 

투덜투덜 서로 말도 없이 걷기만 하는데 언제부터였는지 푸른 잎의 전나무가 길 양옆에서 우리를 감싸고 있다. 또 이름 모를 꽃들이 나무 아래에 은하수처럼 깔려 있다. 어느 새 한결 기분이 나아진다.

 

겨우내 문을 닫고 있다 엊그제서야 다시 문을 연 자생식물원 구경은 다음으로 미룬다. 지금 가봐야 꽃도 피어 있지 않을 거라는 위안은 식물원으로 향하는 길목을 가로막고 있는 커다란 개 한 마리에 막혀 길을 돌아서면서 했을테니 사람 마음 참, 간사하다.

 

상원사 입구에 자리 잡고 있는 ‘산수명산’이란 음식점에서 맛나게 산채백반에 감자전을 곁들여 동동주를 한 잔 걸치니 마치 오늘 걸어야 할 길을 다 걸은 듯하다. 상원사에서 월정사까진 많이 잡아도 3시간이면 될 터이니 때 아닌 느긋함을 부리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오전에 보았던 전나무는 맛보기였다. 월정사대가람(月精寺大伽藍)이라는 편액 아래 일주문을 걸어야만, 그것도 차를 놓고 걷지 않고서는 만날 수 없는 월정사 전나무 숲은 쌀쌀한 바람과 차디찬 햇살과는 다른 파란 세상으로의 통로다. 한겨울의 추위 동안 동안거(冬安居)에 들어갔던 이름 모를 새들이 긴 침묵을 깨듯 맑은 목소리를 내고 있고, 하늘 아래로부터 이파리 하나하나를 쓰다듬으며 귓가를 스치는 바람소리는 전나무 숲길의 끝에 자리 잡고 있는 사천왕상(四天王像)까지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적광전이며, 수광전이며, 성보박물관까지 절 구경을 마치고 나니 아직 해가 머리 위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야 아무리 산길이라도 3시간이면 충분하니 서둘지 않아도 될 터이나 진부로 나가는 막차가 5시 20분인데다 이 차를 놓치게 되면 꼼짝없이 월정사까지 다시 되돌아 나오지 않으면 안 되기에 급한 마음으로 서둘러 산길로 접어든다.

 

계곡을 끼고 도는 길이라 그런지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군데군데 아직 녹지 않은 눈들이 쌓여 겨울 분위기지만 절을 벗어나자마자 만나는 흙 길을 옆에 두고 흐르는 계곡 물은 따스한 햇살만큼이나 나근나근하다.

 

상원사에 도착하고 보니 월정사를 출발한지 두 시간이 조금 지났다. 올라오는 길에 마주치기는 했지만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듯이 서있는 버스를 보니 상원사 구경은 다음으로 미룰까도 싶다. 하지만 오늘 하루 걸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은데다 두도령을 넘어 명개리를 지나야 하는 다음 번 걷기를 생각해보면 오늘 절 구경을 해두는 게 낫다 싶어 상원사로 이어진 오르막길을 오른다. 게다가 아직 막차가 남아 있지 않은가.

 

상원사는 조카를 죽이면서까지 왕이 된 세조와 관련된 이야기가 둘이 있는데, 목욕하며 만난 문수보살과 법당 앞에서 자객을 일러준 고양이가 그것이다. 보살은 후에 문수동자상으로 상원사에 남겨졌고, 고양이 역시 상원사 청량선원 앞에 석상으로 남았다. 재미난 것은 후대 사람들이 고양이 석상을 만지며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밑도 끝도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덧붙인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아무튼 우리도 고양이 석상을 쓰다듬으며 이런저런 소원을 빌어보기도 하는데, 우리 하는 짓이 궁금했는지 한 아주머니가 빼꼼이 머리를 내밀고 쳐다본다. 해서 이래저래 해서 우리도 고양이를 만진다 했는데, 우리말이 그치기가 무섭게 그 아주머니 왈.

 

“열심히 만지세요”

 

찬바람이 쌩. 오전에는 슈퍼에서 까탈스런 목소리를 듣더니 오후에는 절에서 쌀쌀한 목소리를 듣는 게, 어째 오늘은 사람일진이 좋지 않다. 머 언제고 좋은 사람들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은 마음 상처가 크다.

 

절 구경은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시간이 좀 더 남았더라면 가까운 적멸보궁까지 둘러보겠지만 어중간한 시간 때문에 버스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절 아래 정류소로 일지감치 내려간다. 그새 해가 저만치 산 너머로 지고 바람이 조금 세졌다.

 

정류장에 분명 5시 20분이 막차시간이라고 써 있음에도 마음이 조급해서인지, 불안해서인지 버스회사에 전화를 걸었던 것 때문에. 버스에 올라 자리를 잡고도 한참 동안이나 운전기사 아저씨의 꿍얼꿍얼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쩌랴. 그저 진부에 도착할 때까지 멍하니 창밖만 바라볼 수밖에.

 

* 열아홉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진부에서 월정사 전나무 숲을 지나 상원사까지 약 21km. 걸은 6시간 30분.

 

* 가고, 오고

동서울터미널에서 진부를 거쳐 강릉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첫차 6시 30분을 시작으로 30여분 간격으로 있다. 상원사에서는 진부로 나오는 막차가 17시 20분이므로 시간을 잘 맞춰야 하며, 진부에서 동서울로 오는 시외버스는 역시 30여분 간격으로 막차 20시 45분이다.

 

* 잠잘 곳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오르는 길에는 오대산장이 있으며, 월정사 부근에는 민박촌이 형성돼 있다. 상원사에서 두로령을 넘어 구룡령까지는 숙박할 곳이 따로 없으니 일정 잡는데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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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0 23:39 2010/10/20 23:39

고구마 캐기

from 10년 만천리 2010/10/19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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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캐기 - 첫째 날(10월 11일/안개 14-19도)

 

이번 주는 내내 고구마 캐기다. 물론 고구마 줄거리도 부지런히 삶아 말려야 하고. 또 시간되면 김치도 담가먹고. 자전거로 날라야 하니 아무래도 아침, 저녁 두 번은 밭에 나와야 할 터이지만. 머 다 못 캐면, 아직 서리 내린다는 얘기가 없으니 쉬엄쉬엄 캐도 될 듯. 허나, 이제 슬슬 메주콩도 베어서 세워놔야 털 수 있으니 마냥 슬슬 할 수만 없는 노릇.

 

고구마 캐기 - 둘째 날(10월 12일/안개 13-21도)

 

오늘까지 캔 고구마는 자주고구마다. 생각보다 양은 많지 않지만 알이 굵은 것들이 많이 나와 무게로 따진다면 평년작 정도 될 듯싶다. 이제 한 이, 삼일은 메주콩을 베어 널고. 주말이나 다음 주 초부턴 다시 밤고구마와 호박고구마를 캐야 한다. 

 

메주콩 베어 널기 - 첫째 날(10월 13일/안개, 흐림 13-20도)

 

메주콩을 베어 널기로 마음먹고 밭엘 나왔는데 그만 낫을 가져오지 않았다. 도로 집에 다녀오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다른 일을 하자니 고구마 캐는 것밖엔 딱히 할일도 없고. 하는 수 없이 근처 철물점에 가 낫 한 자루를 사왔다. 헌데 집에 낫이 있으니 괜스레 비싼 거 살 필요 없어 싼 걸 샀더니. 싼 게 비지떡인가. 두 시간이나 낫질을 했으려나. 고만 낫이 자루 부근에서 동강나는 게 아닌가. 이런. 별 수 없다. 콩 베어 널기는 이만하고 대신 밭 둘레에 심지도 않았는데 잘도 나는 이름 모를 검은 콩이나 따 가야지.

 

고구마 캐기 - 셋째 날(10월 14일/맑음 12-21도)

 

어머니께 보낼 고구마 줄거리와 밤고구마도 캐고. 어제부터 시작한 메주콩 베어 널기도 하고. 떨어진 콩이며 일찍 여문 팥꼬투리도 좀 따고 하니 아침을 든든히 먹고 나왔어도 금방 배가 고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메주콩 베어 널기 - 둘째 날(10월 15일/맑음 7-18도)

 

콩대를 뽑으면 뿌리에 달리 흙 때문에 나중에 콩 털어 고르기가 쉽지 않다. 해서 콩대 중간을 낫으로 베어 너는 것인데. 콩대가 가는 것들이야 쉽게 낫질이 되지만 두꺼운 것들은 이게 또 쉽지 않다. 두 서너 번은 내려쳐야 되고 그러다 보니 지난번처럼 낫이 혹은 낫자루가 부러질 수도 있고. 또 시간은 시간대로 많이 걸리니. 일이 진행되는 속도가 좀체 나질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나중에 손이 좀 가더라도 빨리 콩을 널어야 하기에 뿌리까지 뽑아 넌다. 낫으로 했으면 한참 걸렸을 터이고, 또 그리하니 빨리 해서 좋긴 한데, 나중 일을 생각하니 이게 잘하는 짓인가 걱정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어영부영 하다간 금방 11월 되고, 또 그러다 서리라도 내리면 이것저것 다 망치니. 서둘러 고구마도 캐고 메주콩도 털고 팥도 수확해야 하기에.   

 

고구마 캐기 - 넷째 날(10월 17일/맑음 9-21도)

 

대략 한 이랑을 캐면 자전거가 휘청할 정도로 고구마가 나오고. 그렇다고 반 이랑을 캐면 조금 아쉽고. 날짜를 헤아려보면 다음 주 화요일 비 온 후부터 주말까지 대략 5일인데. 5일 안에 다 캐서 집으로 날을 수 있을까. 아무래도 아침, 낮 두 번은 밭에 나와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적어도 10월 마지막 주엔 메주콩을 다 털어야 하는데. 아직 서리 소식이 없어 다행이긴 하지만 이래저래 마음이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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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9 16:19 2010/10/19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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