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캐기 - 다섯째 날(10월 18일/맑음 5-20도)

 

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 고구마 캐내기가 쉽지 않다. 굳은 땅을 호미로 파내려니 힘 조절이 쉽지 않고. 그러다 보니 힘은 힘대로 드는데 고구마에 상처는 또 잘도 난다. 아무래도 한 차례 비가 쏟아지고 난 다음에 캐야 할 듯하다. 내일 밤 비 소식이 있기는 한데 지금으로선 영 기대하기 어렵고. 다음 주 초에 비가 온다고 하니 이번 주는 팥 수확하고 메주콩이나 좀 털어야겠다.

 

감자도 캐고 팥꼬투리도 따고(10월 19일/안개, 맑음 7-21도)

 

하루가 다르게 여기저기 팥꼬투리가 여문다. 고구마 캘 때, 메주콩 베어 널 때 틈틈이 따가기는 하지만. 잠시 고구마 캐는 거 쉴 때 부지런히 팥을 따가야겠다. 무릎으로 기다시피 두 이랑에서 팥꼬투리도 따고 여름에 캐다 남겨둔 감자도 좀 캐고 하니 금세 1시다. 집에서 나올 땐 추워서 점퍼까지 입고 나왔는데 지금은 덥다. 당분간은 이런 전형적인 춘천 날씨가 계속되겠지. 

 

팥 수확 - 첫째 날(10월 20일/안개, 맑음 10-20도)

 

며칠 전부터 틈틈이 팥꼬투리를 따긴 했지만. 누렇게 익어가는 팥꼬투리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간다. 아무래도 눈에 밟히는 데로만 따기엔 안 될 듯싶어. 오늘, 내일은 다른 일 덮어놓고 팥만 수확해야겠다.

 

팥 수확 - 둘째 날(10월 21일/맑음 9-21도)

 

어제에 이어 오늘도 아침엔 팥꼬투리 따고 오후엔 따온 팥꼬투리에서 팥 털고. 이틀을 내리 그리했더니 그 좋아하는 팥만 봐도 속이 미식미식 거린다. 윽.

 

고구마 캐기 - 여섯째 날(10월 22일/안개, 맑음 8-22도)

 

큰일이다. 다음 주 월요일에 비가 온 후 영하로 떨어진다니. 월요일 오후에 비가 온다고 하니 대략 4일 정도 시간이고. 그때까지 고구마를 다 캐서 나를 수 있을까.

 

고구마 캐기 - 일곱째 날(10월 23일/안개, 맑음 8-18도)

 

어제도 한 이랑을 다 캐서 갔고, 오늘도 한 이랑을 다 캐서 가져왔다. 자전거 짐받이에 실으니 무게가 장난이 아닌데. 어쩔 수 없다. 안 그러면 화요일 전까지 다 캐낼 수 없으니. 덕분에 이제 세 이랑밖에 남지 남았는데.

 

내일하고 모래까지 한 이랑씩 해도. 이런. 그래도 한 이랑이 남는다. 아무래도 내일은 오후에도 한 번 더 가야하지 않을까. 헌데 캐고 자전거로 옮기고 하니 힘이 부친다. 아~ 모르겠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고구마 캐기 - 여덟째 날(10월 24일/맑음 14-23도)

 

며칠 단조로운 일상이다. 해 떠있을 땐 밭에 나가 고구마 캐고 팥꼬투리 따와서. 해지고 나면 팥꼬투리 털어 팥 고르고. 하는 수 없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진다는 데 무슨 수가 있으려고. 부지런히 고구마 캐서 나르고, 틈틈이 팥도 따오고 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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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6 10:22 2010/10/26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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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에서 월정사 전나무 숲을 거쳐 상원사까지(2007년 4월 7일)

 

사용자 삽입 이미지4월 초 날씨엔 봄철 입산통제가 아니라도 두도령을 넘는 일정이란 쉽지 않을 듯하다. 서울만 하더라도 여의도에 벚꽃이 활짝 꽃망울을 터뜨리고 겨우내 추위를 이겨낸 나뭇가지들에 새순이 파릇파릇 돋지만 여기 강원도는 아직 녹지 않은 눈 구경이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바람은 매섭고 해 떠 있는 시간은 짧아 걸을 수 있는 시간이 넉넉지가 않다. 해서 요번엔 당일치기로 걷되, 다만 한겨울에도 푸르름을 볼 수 있는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천천히 둘러보는 것으로 한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고양이 세수에 밥 한술 뜨지 못 하는 부산을 떨었는데도 진부에 도착하니 그새 9시가 훌쩍 넘었다. 부족한 잠이야 차안에서 채우기는 했지만 어째 아침은 한 술 뜨고 가야 출발해야 할텐데. 마음이 급해서인지 터미널을 빠져나오자마자 상원사로 향하는 59번 국도로 올라선다. 하지만 지난 해 수해 때문인지 도로 위에 온통 덤프트럭 천지다. 읍내엔 그래도 인도가 있어 다행이지만 읍내를 벗어나니 걷기가 쉽지만은 않다.

 

한 시간 가량 질주하는 덤프트럭들을 피해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걸었더니 몸이 지치는 건 둘째고 길을 걷는 맛이나 흥이 당체 생기질 않는다. 심지어는 괜히 왔나 싶다. 게다가 잠시 허기진 배도 채울 겸 기분전환도 할 겸 상원사로 이어지는 삼거리 앞 슈퍼에서 이것저것 주전부리 할 만 한 것들을 찾는데. 이건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삶은 계란이라고 생각하고 집어 들었던 것이 구운 계란이라 ‘비린 맛’ 때문에 다른 것을 고르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삶은 것보다 덜 비리다며 까탈스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가. 어쩜.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다는 걸 모르고 저러시는 걸까? 대충 과자 부스러기 몇 개를 들고는 서둘러 가게를 빠져 나온다.

 

투덜투덜 서로 말도 없이 걷기만 하는데 언제부터였는지 푸른 잎의 전나무가 길 양옆에서 우리를 감싸고 있다. 또 이름 모를 꽃들이 나무 아래에 은하수처럼 깔려 있다. 어느 새 한결 기분이 나아진다.

 

겨우내 문을 닫고 있다 엊그제서야 다시 문을 연 자생식물원 구경은 다음으로 미룬다. 지금 가봐야 꽃도 피어 있지 않을 거라는 위안은 식물원으로 향하는 길목을 가로막고 있는 커다란 개 한 마리에 막혀 길을 돌아서면서 했을테니 사람 마음 참, 간사하다.

 

상원사 입구에 자리 잡고 있는 ‘산수명산’이란 음식점에서 맛나게 산채백반에 감자전을 곁들여 동동주를 한 잔 걸치니 마치 오늘 걸어야 할 길을 다 걸은 듯하다. 상원사에서 월정사까진 많이 잡아도 3시간이면 될 터이니 때 아닌 느긋함을 부리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오전에 보았던 전나무는 맛보기였다. 월정사대가람(月精寺大伽藍)이라는 편액 아래 일주문을 걸어야만, 그것도 차를 놓고 걷지 않고서는 만날 수 없는 월정사 전나무 숲은 쌀쌀한 바람과 차디찬 햇살과는 다른 파란 세상으로의 통로다. 한겨울의 추위 동안 동안거(冬安居)에 들어갔던 이름 모를 새들이 긴 침묵을 깨듯 맑은 목소리를 내고 있고, 하늘 아래로부터 이파리 하나하나를 쓰다듬으며 귓가를 스치는 바람소리는 전나무 숲길의 끝에 자리 잡고 있는 사천왕상(四天王像)까지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적광전이며, 수광전이며, 성보박물관까지 절 구경을 마치고 나니 아직 해가 머리 위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야 아무리 산길이라도 3시간이면 충분하니 서둘지 않아도 될 터이나 진부로 나가는 막차가 5시 20분인데다 이 차를 놓치게 되면 꼼짝없이 월정사까지 다시 되돌아 나오지 않으면 안 되기에 급한 마음으로 서둘러 산길로 접어든다.

 

계곡을 끼고 도는 길이라 그런지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군데군데 아직 녹지 않은 눈들이 쌓여 겨울 분위기지만 절을 벗어나자마자 만나는 흙 길을 옆에 두고 흐르는 계곡 물은 따스한 햇살만큼이나 나근나근하다.

 

상원사에 도착하고 보니 월정사를 출발한지 두 시간이 조금 지났다. 올라오는 길에 마주치기는 했지만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듯이 서있는 버스를 보니 상원사 구경은 다음으로 미룰까도 싶다. 하지만 오늘 하루 걸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은데다 두도령을 넘어 명개리를 지나야 하는 다음 번 걷기를 생각해보면 오늘 절 구경을 해두는 게 낫다 싶어 상원사로 이어진 오르막길을 오른다. 게다가 아직 막차가 남아 있지 않은가.

 

상원사는 조카를 죽이면서까지 왕이 된 세조와 관련된 이야기가 둘이 있는데, 목욕하며 만난 문수보살과 법당 앞에서 자객을 일러준 고양이가 그것이다. 보살은 후에 문수동자상으로 상원사에 남겨졌고, 고양이 역시 상원사 청량선원 앞에 석상으로 남았다. 재미난 것은 후대 사람들이 고양이 석상을 만지며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밑도 끝도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덧붙인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아무튼 우리도 고양이 석상을 쓰다듬으며 이런저런 소원을 빌어보기도 하는데, 우리 하는 짓이 궁금했는지 한 아주머니가 빼꼼이 머리를 내밀고 쳐다본다. 해서 이래저래 해서 우리도 고양이를 만진다 했는데, 우리말이 그치기가 무섭게 그 아주머니 왈.

 

“열심히 만지세요”

 

찬바람이 쌩. 오전에는 슈퍼에서 까탈스런 목소리를 듣더니 오후에는 절에서 쌀쌀한 목소리를 듣는 게, 어째 오늘은 사람일진이 좋지 않다. 머 언제고 좋은 사람들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은 마음 상처가 크다.

 

절 구경은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시간이 좀 더 남았더라면 가까운 적멸보궁까지 둘러보겠지만 어중간한 시간 때문에 버스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절 아래 정류소로 일지감치 내려간다. 그새 해가 저만치 산 너머로 지고 바람이 조금 세졌다.

 

정류장에 분명 5시 20분이 막차시간이라고 써 있음에도 마음이 조급해서인지, 불안해서인지 버스회사에 전화를 걸었던 것 때문에. 버스에 올라 자리를 잡고도 한참 동안이나 운전기사 아저씨의 꿍얼꿍얼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쩌랴. 그저 진부에 도착할 때까지 멍하니 창밖만 바라볼 수밖에.

 

* 열아홉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진부에서 월정사 전나무 숲을 지나 상원사까지 약 21km. 걸은 6시간 30분.

 

* 가고, 오고

동서울터미널에서 진부를 거쳐 강릉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첫차 6시 30분을 시작으로 30여분 간격으로 있다. 상원사에서는 진부로 나오는 막차가 17시 20분이므로 시간을 잘 맞춰야 하며, 진부에서 동서울로 오는 시외버스는 역시 30여분 간격으로 막차 20시 45분이다.

 

* 잠잘 곳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오르는 길에는 오대산장이 있으며, 월정사 부근에는 민박촌이 형성돼 있다. 상원사에서 두로령을 넘어 구룡령까지는 숙박할 곳이 따로 없으니 일정 잡는데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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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0 23:39 2010/10/20 23:39

고구마 캐기

from 10년 만천리 2010/10/19 16:19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고구마 캐기 - 첫째 날(10월 11일/안개 14-19도)

 

이번 주는 내내 고구마 캐기다. 물론 고구마 줄거리도 부지런히 삶아 말려야 하고. 또 시간되면 김치도 담가먹고. 자전거로 날라야 하니 아무래도 아침, 저녁 두 번은 밭에 나와야 할 터이지만. 머 다 못 캐면, 아직 서리 내린다는 얘기가 없으니 쉬엄쉬엄 캐도 될 듯. 허나, 이제 슬슬 메주콩도 베어서 세워놔야 털 수 있으니 마냥 슬슬 할 수만 없는 노릇.

 

고구마 캐기 - 둘째 날(10월 12일/안개 13-21도)

 

오늘까지 캔 고구마는 자주고구마다. 생각보다 양은 많지 않지만 알이 굵은 것들이 많이 나와 무게로 따진다면 평년작 정도 될 듯싶다. 이제 한 이, 삼일은 메주콩을 베어 널고. 주말이나 다음 주 초부턴 다시 밤고구마와 호박고구마를 캐야 한다. 

 

메주콩 베어 널기 - 첫째 날(10월 13일/안개, 흐림 13-20도)

 

메주콩을 베어 널기로 마음먹고 밭엘 나왔는데 그만 낫을 가져오지 않았다. 도로 집에 다녀오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다른 일을 하자니 고구마 캐는 것밖엔 딱히 할일도 없고. 하는 수 없이 근처 철물점에 가 낫 한 자루를 사왔다. 헌데 집에 낫이 있으니 괜스레 비싼 거 살 필요 없어 싼 걸 샀더니. 싼 게 비지떡인가. 두 시간이나 낫질을 했으려나. 고만 낫이 자루 부근에서 동강나는 게 아닌가. 이런. 별 수 없다. 콩 베어 널기는 이만하고 대신 밭 둘레에 심지도 않았는데 잘도 나는 이름 모를 검은 콩이나 따 가야지.

 

고구마 캐기 - 셋째 날(10월 14일/맑음 12-21도)

 

어머니께 보낼 고구마 줄거리와 밤고구마도 캐고. 어제부터 시작한 메주콩 베어 널기도 하고. 떨어진 콩이며 일찍 여문 팥꼬투리도 좀 따고 하니 아침을 든든히 먹고 나왔어도 금방 배가 고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메주콩 베어 널기 - 둘째 날(10월 15일/맑음 7-18도)

 

콩대를 뽑으면 뿌리에 달리 흙 때문에 나중에 콩 털어 고르기가 쉽지 않다. 해서 콩대 중간을 낫으로 베어 너는 것인데. 콩대가 가는 것들이야 쉽게 낫질이 되지만 두꺼운 것들은 이게 또 쉽지 않다. 두 서너 번은 내려쳐야 되고 그러다 보니 지난번처럼 낫이 혹은 낫자루가 부러질 수도 있고. 또 시간은 시간대로 많이 걸리니. 일이 진행되는 속도가 좀체 나질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나중에 손이 좀 가더라도 빨리 콩을 널어야 하기에 뿌리까지 뽑아 넌다. 낫으로 했으면 한참 걸렸을 터이고, 또 그리하니 빨리 해서 좋긴 한데, 나중 일을 생각하니 이게 잘하는 짓인가 걱정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어영부영 하다간 금방 11월 되고, 또 그러다 서리라도 내리면 이것저것 다 망치니. 서둘러 고구마도 캐고 메주콩도 털고 팥도 수확해야 하기에.   

 

고구마 캐기 - 넷째 날(10월 17일/맑음 9-21도)

 

대략 한 이랑을 캐면 자전거가 휘청할 정도로 고구마가 나오고. 그렇다고 반 이랑을 캐면 조금 아쉽고. 날짜를 헤아려보면 다음 주 화요일 비 온 후부터 주말까지 대략 5일인데. 5일 안에 다 캐서 집으로 날을 수 있을까. 아무래도 아침, 낮 두 번은 밭에 나와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적어도 10월 마지막 주엔 메주콩을 다 털어야 하는데. 아직 서리 소식이 없어 다행이긴 하지만 이래저래 마음이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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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9 16:19 2010/10/19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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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1.

평범하기 그지없는. 내 누이, 우리 엄마들이 가졌던 ‘소박한 꿈’들이 있었습니다. 
 
“나뿐이 아니라 내가 지금 이런 식으로 물러나면 나 같은 사람이 계속 생길 거 아니냐? 내가 다른 데 가서 또 이런 일이 생기면 또 피할거냐? ......(중략)...... 내가 마지못해 끌려갔다면 모르겠지만 나름 열심히 했는데 중간에 포기해 버리면 그게 계속 남아 있을 거야. 그래서 결론을 빨리 봤으면 좋겠고.” (pp.71-72 월드컵분회 조합원 서은주) 
 
“2008년부터 100-299인 사업장도 비정규직법이 적용될 텐데. 그러면 언제든 다른 데서도 우리처럼 할 것이고, 대량 해고하겠죠. 그런 사태를 접하지 못한 사람들이 현실에 눈을 떴으면 좋겠어요.” (p.95 월드컵분회 조합원 장은미) 
 
“없어야죠, 그런 건 무조건 없어야 돼요. 원래 비정규직이 없었던 것처럼, 파업이 없어도 되는, 이런 갈등 자체가 없어야 해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비정규직이네 뭐네, 이런 거 알고서 했나요. 아니잖아요. 아무도 몰랐잖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말이 생겨난 거잖아요. 이런 식으로 절망적인 단어가 새로 나타나지 않았으면 해요. 갈등을 부르는 단어가 안 나오길 바랄 뿐이죠, 그냥.” (p.141 월드컵분회 조합원 김남희)
 
“같이 하라는 얘기는 감히 안 해요. 저도 옛날에 그랬어요. 차도를 막고 여러 사람한테 불편을 끼치고 투쟁을 하는 게 불편하고 짜증도 나겠지만. 저 사람들이 왜 저럴까. 저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오죽하면 저럴까 한 번쯤은 생각해 주면 좋겠어요. 그 정도, 우리 입장이 되어 달라고는 절대 안 해요.” (p.215 월드컵분회 조합원 이경옥)
 
2.
‘소박한 꿈’이라고는 했는데, 참 많이 부끄럽네요. 그이들이 가졌던 이 ‘소박한 꿈’을 그이들 말마따나 제대로 ‘응원’ 한번 해봤는지. 지침으로 내려오는 집회 일정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고. ‘불매운동’에 동참한다고 한동안은 ‘2001 아울렛’에 드나들지 않았다고. 그게 ‘응원’이나 됐을까요.
 
“여기 김경옥 부위원장님이 자주 오셨는데, 우리가 30분 더 쉬게 된 것도 거기서 투쟁해서 얻어 낸 거라고 얘기하셨죠. 추석이랑 설 때 회사에서 상품권을 줬는데 정규직은 7만원, 우리는 5만원 이었어요. 매출이 좀 올랐을 때도 직원과 파트를 구별해서 줬어요. 그런 데서 상당히 기분 나빠요. 똑같이 일하는데 차별대우 하니까요. 상품권도 나중에는 똑같이 10만 원씩 줬는데, 그것도 투쟁해서 따 냈다고 하시더라고요.” (pp.109-110 00분회 조합원, 가명 이선화)
 
“솔직히 처음에는 조합에 관심도 없었어요. 내가 일하는 직장에서 내 위치가 흔들리니까 ……. 곧 사람이 잘린다더라, 구조조정이 된다더라, 뭐 이래저래 말이 많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그래도 노동조합에 가입하면 그나마 회사가 함부로 하지는 않겠구나 생각한 거예요.” (p.133 월드컵분회 조합원 김남희)
 
“같이 일하던 직원 중에 5년 된 파트타임들이 진급이 안 되는 거예요. 같이 들어온 다른 비슷한 사람들은 진급이 되는데. 인사과장도 진급시켜 준다는 얘기는 했는데 계속 뺀질뺀질대면서 안 해주는 거야. 부장이 입장을 고수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노동조합을 만나본 거지. 같이 있던 과장이 한 명 있었는데, ‘단순히 부장이나 과장이 건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노동조합을 통해서 하자’고 했어요.” (p.144 이랜드노조 총무부장 손명섭)
 
“고객센터 직원들은 집에서 쉬고 있을 때도 회사에서 나오라고 하면 나와야 해요. 손님이 그 아가씨 나오라고 그래! 그러면 회사에서 전화 하는 거예요. 전화를 안 받고 싶은데 다음날 가면 더 힘들어지니까 할 수 없이 받는대요.” (p.33 월드컵분회 조합원 조희숙)
 
“저는 11년 동안 근무했는데 어려움이 항상 있었죠. 장시간 근로도 그 중 하나고요. 7시에 출근해서 저녁 7시 이전에는 퇴근해 본 적이 없어요. 거의 10년 가까이 그렇게 일했어요. 초과근무 수당이 없는 건 당연한 거고요. 그것도 그나마 이랜드로 넘어오기 전 이야기고, 이랜드로 넘어오고 나서는 7시에도 퇴근을 못했어요. 보통 10시, 늦게 가는 사람은 12시까지 있어요.” (pp.110-111 병점분회 조합원 서형태)
 
“근데 정말 재미있는 일은 노조에 가입하고 한 달 인가부터는 두 시간 일하고 15분 쉬고 한 시간 밥 먹고 두 시간 일하고 15분 쉬고 이게 된 거예요. 야, 노조 가입하니까 이렇게 되는구나, 그걸 몰랐던 거예요. 미련하게 일만 했어요.” (p.23 월드컵분회 조합원 조희숙) 
 
3.
얼굴을 들고 있기가 민망합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런 말들을 했다지요. 그이들은 너무도 큰 꿈을 꾸었기에, 아직은 이룰 수 없는 꿈을 가졌기에, ‘사탄’이었다고. 정말 그럴까요. 
 
“지금은 우리가 너무나 힘들고 괴롭지만 참고 이겨 낸다면 너희들은 노동자가 되어도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지 않겠니? 엄마가 너희들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자본가와 어깨를 나란히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어 주고 싶구나.”(p.295)
 
“그러니까 위원장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저희 아내 모르게 비자금 숨겨 놓은 거 있는 데 1,000만 원입니다. 그거까지 털겠습니다. 그러면 열 명은 살릴 수 있을 거 아닙니까. 저도 어렵거든요. 근데 그 얘기를 들으니까, 나는 한 명은 살릴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파업하고 있으니까 내가 어떻게 할 방법은 안 되고. 내 주위에서 끌어 모아서 어떻게 100만 원은 될 수 있을 거 같은 거예요. 한 사람은 구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고요. 그럼 열 달 동안 갚으라고. 결의가 생기더라니까요.” (pp.87-88 월드컵분회 조합원 윤수미)
 
“우리는 우리의 미래뿐만 아니라 노동자 모두의 미래에 대한 조그만 희망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사람이 기계 부품으로 전락하지 않는 세상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청컨대, 당신이 다루는 모든 서류 안에는 이러한 사람들과 세상과 신념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잊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싸웁니다. 당신이 잊고 있기 때문에.”(p.303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내는 조합원 편지글>)
 
4.
그새 3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동안 또 다른 싸움을 ‘응원’하느라 그랬을까요. 아님 또 다른 ‘소박한 꿈’들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싸우느라 그랬을까요. 한 달에 80만원, 일 년 960만원 받는 일자리, 그것을 위해 싸웠던 그이들의 속내를 이제와 헤아려보려니. 참 무심하게도 살았구나, 또 살고 있구나, 아니 애써 외면하고 있었구나, 그런 생각만 자꾸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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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5 12:44 2010/10/15 12:44

고추 뽑아내다

from 10년 만천리 2010/10/11 22:47

고추대 정리 - 셋째 날(10월 5일/맑음 10-21도)

 

아침, 저녁 쌀쌀한 날씨에 밑도 끝도 없이 찬물로 목욕했다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주말에 또 비가 왔고. 이래저래 닷새 만에 밭에 나와 다 정리 못한 고추대 정리하고. 저녁에 카레나 해먹을까, 당근 몇 개 더 뽑아 금방 돌아왔다. 뭐, 콩이며, 팥이 다 여물기 전까진 딱히 할 일이 없기 때문에.

 

고추 뽑아내다(10월 6일/안개 후 맑음 10-22도)

 

올 고추 농사는 최악이다. 그나마 다 죽기 전에 풋고추를 따내고 장아찌를 담아 둔 게 세 항아리가 있다면 위안이 될까. 작년엔 가을 내내 아파트 옥상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고춧가루를 만들었는데. 고춧가루는커녕 고추 잎도 한 번 무쳐먹지 못했으니. 그야말로 망했다, 할 만하다. 보름 전만 해도 목덜미로 땀이 흐를 시간에 나와 죽은 고추들을 다 뽑아내니. 밭도 휑하고 마음도 휑하다.

 

고구마 맛보기(10월 7일/맑음 11-24도)

 

고추밭 정리하러 갔다가 고구마 줄거리도 좀 따고 그 덕에 고구마도 몇 개 캐냈다. 작년만 못하지만 그래도 실하게 생긴 것들이 줄줄 올라온다. 다음 주 쯤엔 고구마를 다 캐내야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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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1 22:47 2010/10/11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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