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 세상 밖으로 나온 길, 은비령(2008년 8월 26일)

 
춘천으로 이사 온 후 두 번째 걷기다. 서울이라면 강원도 산골짜기든 남도 바닷가든 쉽게 갈 수 있어도. 춘천과 같은 작은 도시에선 가깝던 멀던, 산이든 바다든 그게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해서 서울이나 대구, 혹은 대전과 같이 ‘특별’하거나 혹은 ‘광역’하거나 하는 도시로 나가야만 한다. 그래도 같은 도내라 그런지 지난 번 여행도 그렇고 이번 여행도 그렇고 산골짜기이지만 나름 버스 편이 있어 생각보단 어렵지 않게 끝마쳤던 곳으로, 시작하는 곳으로 갈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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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비령(隱秘嶺)을 만나러 가는 길은 두 길이 있다. 소설 은비령에서 ‘나’와 ‘선혜’가 눈 내리는 은비령(銀飛嶺)을 차를 타고 넘었던, 원통에서 한계령을 넘어 가는 길과 ‘나’와 ‘그’가 걸어서 한 시간도 더 걸렸다던, 우풍재를 인제 쪽에서 넘어서 가는 길이 그것이다. 다른 모든 옛 길들이 그렇듯 언제든 깨끗이 포장된 채 세상 밖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겠지만. 책이 조금만 더 늦게 나왔더라면 그만큼은 덜 알려졌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하지만 덕분에 그 길을 알고 또 걸을 수 있으니 고마움도 또 생긴다.

 
   <은비령 가는 길>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실 은비령 길이 아니라면 한참 전에 대간을 넘어 동해 바다 쪽을 걷고 있을 테다. 오대산 구룡령 쪽도 그렇고, 또 오대산 진고개 쪽도 그렇다. 어느 쪽으로 걸었어도 산을 넘어도 진즉에 넘었을 거란 얘기다. 또 그렇게 산길을 걸었다면 이 걷기여행도 모르긴 몰라도 지난 번 혹은 지지난 번 걷기로 끝을 봤을 게다. 마음 한구석엔 점점 가까워지는 종착지에 왠지 모를 서운함에 에둘러 대간을 목전에 두고 숲길과 옛길들을 걸어보자는 핑계 아닌 핑계를 댔는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쨌든 덕분에 좋은 길을 둘러, 둘러 걸을 수 있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게 아닌 가 싶고, 이번 은비령 길 역시 이런 핑계엔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 그리 걷기로 했다. 
 
우기인 마냥 여름 내내 줄기차게 내리던 비가 어느새 서늘한 바람을 몰고 왔나 싶어 긴 옷을 꺼내 입었던 게 엊그제 인데 막상 길을 나서니 아직은 햇볕을 만만하게 봐선 안 될지 싶다. 홍천에서 한 번 버스를 옮겨 타고 현리에 도착해 길을 나설 땐 10시도 채 못됐는데도 목덜미가 따가우니 말이다.
 
집 잃은 개 한 마리가 무서워 갓길에 바짝 붙어 무서움에 뒤돌아보지 않고 걷기만 하고, 부실한 지도 덕에 난데없다 느껴진 기다란 포사고개를 넘기도 하고, 시골학교지만 제법 큰 귀둔초등학교 운동장 한 귀퉁이에서 김밥과 삶은 감자로 배를 채우기도 하고, 이름 모를 계곡 가에서 발도 담그고 쪽잠도 자기도 하면서, 또 오늘 하루 쉬어갈 필례약수를 코앞에 두고 다시 나타난 성난 개 두 마리 때문에 차를 얻어 타고 가야하나, 조금 전 지나쳤던 마을로 되돌아가야 하나 어쩔 줄 모르기도 하고, 그렇게 걸어, 걸어 은비령 아래 당도하니 짧아진 여름 해가 서서히 기울기 시작한다. 
 
둘째 날, 다시 2천 5백만 년 만 후, 이렇게 또 걷겠지만.....(2008년 8월 27일)
 
사용자 삽입 이미지애당초 은비령이란 이름은 없었다 한다. 지금이야 은비령이란 이름이 더 알려졌지만. 그저 오색령의 저쪽을 가리키는 것뿐이었기도 하고. 약수 이름을 따 필례령이라 불리기도 하고. 그게 필례령이고 오색령이지 은비령인건 아니었단 얘기다. 글쓴이는 그렇게 예쁜 이름을 붙였지만 글을 쓴 후에나 그 곳엘 가보았다 한다. 별의 시간을 기다리고 기다린 후에야 만나게 되는 길을 그는 그렇게 글을 다 풀어 낸 후에야 만난 것이다.
 
은비령 역시 은비령을 다녀온 후에나 봤다. 은비령 고개를 넘어야겠다, 마음먹은 후 줄곧 ‘이번엔 읽어야지, 이번엔 꼭 읽어야지’하다, 결국 은비령엘 다녀와서야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알게 된 거다. 헤아릴 수 없이 긴 시간 동안의 기다림, 그 이야기를.
 
어째 약수라 그런지 씁쓸한 맛이 나는 필례약수 물을 가득 채우고는 은비령을 향해 발길을 재촉하는데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추적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한다. 소설 속 두 주인공이 초봄, 늦은 겨울눈을 맞으며 은비령을 넘었다면 지금 우리는 그 녹다 남은 겨울눈이 이슬비 되어 내리는 은비령을 넘고 있는 셈이다. 그러고 보니 글쓴이가 글의 주인공 들이 거슬러 갔던 그 길을 온전히 따라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을 우리는 반대로 되짚어 걷고 있으니 마치 시간이 멈추어 선 듯 하다.   
 
끝 간 데 없이 이어진 것처럼 보이는 긴 오르막길을 오르다 지쳐 쉬다, 가다를 반복하니 한참을 오른 것 같은데도 여전히 산꼭대기가 가물가물하기만 하다. 더구나 한 두 방울씩 떨어지던 비가 더 거세진 데다, 이런 시간에 이런 길을 누가 걷겠냐 싶어 속도를 줄이지 않고 한달음에 내려오는 차들을 피하느라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래도 한 발, 한 발, 발걸음을 내딛으니 끝날 줄 모르던 오르막이 어느새 한 구비 너머 구름 속으로 두 갈래 길을 만들어 내고 있다. 
 
비를 뿌리는 구름이 아니었다면 멀리 푸른 바다도 볼 수 있었을 텐데 은비령을 넘으면서 조금씩 내리던 비가 한계령 쉼터에 다다르니 제법 굵어졌다. 비 때문이 아니더라도 겨우 감자와 삶은 달걀로 배를 채우고 오르막길을 두 시간이 넘도록 걸었기에 잠시 쉬면서 요기를 할 요량으로 자리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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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가량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이른 점심에, 느긋하게 쉬지만. 어째 구름 모양새로는 조만간 비가 그칠 모양새는 아니다. 어제, 오늘 일기예보론 영서지방에 비 소식이 있었으니 아무래도 장수대나 옥녀탕까지는 가야 비구름에서 벗어날 듯싶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비옷도 없이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내려 가려니 막막하긴 해도 조금만 내려가면 비구름에서 벗어나겠지 싶어 빗줄기가 조금 가라앉은 틈을 타 길을 나선다.
 
  <한계리 가는 길>
사용자 삽입 이미지은비령과 한계령을 휘감았던 비구름은 내리막길에 접어들자 곧 벗어났지만. 호랑이 혼인하는 날 온다는 마른 비는 장수대를 지나서야 겨우 피할 수 있다. 혹여나 비가 더 거세질까 급한 데로 옷가지를 싸두었던 비닐들을 다 끄집어내 여차하면 머리에 뒤집어쓸까 했는데. 다행히도 그런 일까진 벌어지지 않았다. 이제 한계리까진 쉬엄쉬엄 가도 해 지기 전에 도착할 것이고, 해서 설악의 산세 구경에 자주자주 쉬어 가는데. 비구름 속으로 굽이굽이 돌아가는 한계령 고갯길 그리고 저 편 은비령 길을. 다시 2천 5백만 년 후, 이렇게 또 걷겠지만.....
 
‘이 생애가 길지 않듯 이제 우리가 앞으로 기다려야 할 다음 생애까지의 시간도 길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스물두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 첫째 날 : 인제군 현리에서 필례약수까지 21km. 걸은 7시간.
- 둘째 날 : 필례약수에서 은비령과 한계령을 넘고 넘어 한계리까지 약 22m, 걸은 시간 약 8시간.
 
* 가고, 오고
춘천터미널에서 홍천으로 가는 시외버스는 첫차 6시 5분을 시작으로 20여분 간격으로 있으나 홍천터미널에서 현리까지 운행하는 시외버스 시간이 들쑥날쑥하니 이편을 먼저 확인하고 기준으로 잡아 출발시간을 정해야 한다. 한계리에서 원통으로 나오는 시내버스는 꽤 자주 있는 편이며 원통에서 춘천으로 오는 시외버스는 직통의 경우는 19시 50분 막차로 하루 여섯 차례 운행한다. 또 번잡스럽기는 하지만 버스 편이 많아 참고할 만한 방법은 홍천에서 차를 한 번 갈아타고 오는 것이다.    
 
* 잠잘 곳
현리에서 필례약수까지는 숙박할 만한 곳이 없고 식당도 눈에 띄지 않고 드문드문 동네 가게들만 보일 뿐이다. 그래도 필례약수까지만 가면 식당을 겸한 민박집이 꽤 있다. 필례약수를 지나 은비령과 한계령을 넘어 한계리까지는 역시 숙박할 만한 곳이 없다. 식당은 중간에 한계령 쉼터에서 해결할 수 있으나 자리 몫 때문인지 가격이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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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8 21:41 2011/01/28 21:41

1.

대동강 물을 팔았다고 유명한 봉이 김선달이 있지요. 요즘은 하도 이 김선달 같은 사람들이 많아서 그다지 시선을 끌진 못하겠지만. 그때만 해도 그야말로 기절초풍할 사건이었겠지요. 생각해보세요.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렀고. 내일도 그냥 저렇게 흘러갈 강물을 팔아먹었으니 오죽했겠어요. 뭐 지금 같았으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들 하겠지만 그때라고 어디 그게 가능한 일 이기나 했겠습니까. 하지만 김선달은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고, 후대 사람들은 거만한 한양사람들을 골려먹은 지혜로운 장사꾼으로 칭송하고 있으니. 그래서일까요. 현대판 김선달들이 판을 치는 것이요.
 
2.
물을 팔아먹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 됐습니다. 골목 슈퍼에서 지하철 자판기에까지 진열돼 있는 생수를 보면 말이지요. 뭐, 이웃나라에는 공기도 깡통에 넣어 판다고 하던데. 몇 백만 년 동안 땅 속에 있던 석유니 석탄이니 하는 광물자원들을 캐내서 자기 거라 파는 거나 물, 공기를 담아 파는 거나 다를 게 하나도 없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겠지만. 기가 막히는 건 일 년 뒤 밀 수확량, 한 달 후 날씨를 가지고도 돈 내기를 하니. 이만하면 주변에 봉이 김선달이 꽤나 많지요.
 
3.
인천시가 탄소 상쇄 공원을 조성한다고 합니다.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만든다고 하는데요. 시민들의 자발적인 성금과 기부, 그리고 각종 국제회의를 개최할 경우 예산의 일부를 공원 조성 사업비로 확보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국내 모 항공사는 재작년 5월부터 탄소 중립(상쇄)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는데요. 비록 항공사 내 전 임직원 업무 출장 시에만 적용하고 있긴 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 모은 적립금으로 국내엔 태양광 발전시설 설치비용을 지원하고, 국외엔 어떤 나라에 색동 태양광 가로등 거리를 조성하는 데에 썼다고 합니다.     
 
4.
얼마 전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도에관한법률’ 제정안이 입법예고 됐습니다. 지정된 할당대상업체가 배출권 할당량을 초과해 온실가스를 배출하게 되면 과징금을 부과합니다. 대신 할당대상업체는 배출권 시장에서 배출권을 살 수 있으며, 여분의 배출권을 팔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 내용입니다. 그 동안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해 도입이 논의돼 왔던, 시장을 통한 효율성 도모라는 계획을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얘기입니다. 
 
5.
물, 공기도 팔아먹는 세상에 기후변화를 초래하는 탄소도 시장에서 팔고 산다면. 별로 놀라지도 않은, 아니 당연한 일인가요. 여기 봉이 김선달도 울고 갈 일이 있습니다. 바로 ‘탄소배출권시장’입니다. 책을 쓴 이(케빈 스미스: TNI Transnational Institute가 진행하는 카본트레이드워치 Carbon Trade Watch 프로젝트 연구원이자 활동가)가 봉이 김선달을 알 리 없었겠지만. 중세 후기 가톨릭교회가 ‘사람들이 지은 죄를 이윤 창출 수단으로 삼으려고 시장주의적 접근을 하는 모습’(p.14)을 빗대 탄소 상쇄 제도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는 걸 읽고 있으면. 아차차, 이 정도면 이거 봉이가 어느새 저쪽에서 성직자 행세를 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하기야 김선달이나 교회나 모두 이재(理財)에 밝다는 점에선 똑같으니 옷차림새가 무척이나 잘 어울리겠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6.
“브래드 피트가 심은 나무는 기후 변화를 막을 수 있을까.”
 
인천시가 추진하는 탄소 상쇄 공원과 강원도가 고성군에 조성한 탄소배출권 조림사업은.
 
그렇다면 국내 모 항공사의 탄소 중립(상쇄) 프로그램은 기후 변화를 늦추는데 얼마나 기여를 할까.
 
혹시 입법예고 된 ‘온실가스배출권거래제도에관한법률’가 답이 될 수는 없을까.    
 
이매진에서 올 4월에 펴낸 <공기를 팝니다>. 그리 두껍지도 않고 또 쉽게 쓰여 있어 맘만 먹음 하루, 아니 반나절이면 충분하니. 이 모든 궁금증을 해결하는 데는 안성맞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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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4 00:45 2011/01/24 00:45

'발밭다'

from 글을 쓰다 2011/01/19 19:13
안상수 대표 아들 건으로 아주 물 만난 고기입니다. 옳거니 때는 이때다 싶은지 ‘아니면 말고’ 식 의혹제기에 단호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도 하고, 이번 기회에 ‘막말정치’를 뿌리 뽑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입니다. 물론 근거나 확인도 없이, ‘찔러보기’식으로 의혹을 제기하거나 일방적으로 폭로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또 틈만 나면 낯간지러운 말로 서로를 공격하고, 심지어는 쌍스런 욕설까지 퍼붓는 일 따위도 하루빨리 없어져야겠지요. 하지만 이런 식의 ‘카더라’ 정치공세는 한나라당이 지존(至尊)이요, 전매특허(專賣特許) 아니었던가요. 그리고 보통 사람이라면 차마 입에 담기도 쉽지 않은, ‘공업용 미싱으로 드르륵’을 내뱉었던 사람은 또 어느 당(黨) 사람이었습니까. 아무리 이번 일이 비난받아 마땅하고 또 할 수만 있다면 ‘폭로정치’, ‘막말정치’를 쓸어내야겠지만 말이지요. 한나라당, 기회를 재빠르게 붙잡아 잘 이용하는 소질이 있는게 참으로 남다르구나, 그런 생각만 드니 이거 어쩝니까. 
 
발밭다: 기회를 재빠르게 붙잡아 잘 이용하는 소질이 있다.
 
한나라당이 안상수 아들 부정입학 의혹제기 건으로 폭로정치를 뿌리 뽑자며 발밭게 덤비고 있지만 그 본색을 얼마나 숨길 수 있을까요. 정치얘기라면 이제 신물 나지만 그래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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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9 19:13 2011/01/19 19:13
1. 
그새 10년이나 지났지만. 그때만 해도 담 없는 대학, 지역주민에게 도서관을 개방한 대학은 드물었지요. 김동춘 샘이니 조희연 샘, 신영복 샘이 있었고 또 여기저기 단체나 노동조합에 힘을 보태고 있는 샘들이 꽤나 많았으니 그럴 만도 했겠지만. 아, 그렇다고 그 학교가 운영면에서나 자치면에서 민주적이었다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생일을 맞은 학생들을 위해 학생식당 테이블마다 케이크를 사다놓고. 또 한 달에 한 번 자취나 하숙을 하는 학생들을 위해 식당을 개방하기도 했지만(이 비용은 총창이 사비를 털어 댔답니다. ^^). 주먹구구식 학사행정, 열악한 교육환경, 학교 당국의 권위주의는 여느 학교나 마찬가지였단 말이지요. 또 요 근래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청소, 경비 등 학내 비정규직 문제도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을 축제 땐 ‘윤밴’을 보러 온 가족이 놀러오기도 하고, 날 좋은 주말엔 샘들과 공을 차기도 하고.
 
2.
애당초 논문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해서 학기를 마치자마자 곧 노동조합에서 활동을 하기 시작했지요. 그리고는 춘천으로 이사하기까진 그야말로 정신없이 살았으니. 더는 학교에 가는 일이 없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대학원을 다녀야 한다는 핑계로 학교 근처에 집을 얻었던 게. 어찌어찌 동네에 정도 들고 또 그만한 돈으로 어디 또 다른 데를 찾기가 쉽지 않아 몇 년을 그대로 더 있었더니. 곧잘 학교 도서관엘 가게 되더라구요(지역주민회원제도 있었지만 수료라도 했다고 졸업생회원 자격을 주더군요). 암튼 햇볕 좋은 날엔 도서관 창가에 자리를 잡고 이 책 저 책 뒤적거리고.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엔 DVD를 빌려 와 하루종일 영화를 보기도 하고. 또 그땐 집에서까지 인터넷을 하지 않았던 터라 인터넷도 하고. 물론 척 보기에도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분들도 꽤나 많았었구요. 그 사람들 틈에 끼어 학교를 떠난 지 5, 6년이 지나도록 그렇게 도서관을 맴돌았답니다. 그러니요. 참 이만치도 열린 학교가 또 어디 있을까, 얼마나 자랑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3. 
홍익대가 자주 언론에 오르내리네요. 얼마 전엔 동국대가 그러더니 이번엔 홍익대가 문젠데, 아마도 총학생회 때문에 더 요란한 듯합니다. 보기엔 총학생회도 총학생회지만 학교법인 홍익학원이 벌이는 짓거리가 손가락질 받을 일인데. 어찌된 게 총학으로 시선이 집중되고 있으니. 물론 홍대 총학이 저지른 일들 때문에 일이 더 커지고 있으니 문제 해결을 위해선 되레 잘됐다고 해야 하겠지요. 하지만 이런데도 홍대 총학생회가 여전히 ‘외부단체’라는 말을 쓰는 걸 보니. 왜 자신들이 욕을 먹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초, 중, 고 12년 그리고 대학 4년을 배우는 동안 노동권에 대해, 노동조합에 대해 제대로 배우질 못했단 점을 고려하면 상처가 조금은 깊지 않다, 생각할 수 있을까요. 아, 물론 그렇다고 홍익대학교 총학생회를 두둔하잔 건 아닙니다. 정규교육과정에서 가르치지 않았다고, 학교교육에서 배우지 않았다고 해서 잘못이 덮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아무리 대학이 취업준비기관으로 전락했다하더라도 스스로 시민으로서의 권리, 노동자로서의 권리마저 내팽개칠 순 없단 말이지요. 
 
4.
춘천으로 오고서도 한동안은 학교란 데를 갈일이 없었습니다. 간혹 책을 빌려봐야 할 일이 있으면 시립도서관엘 갔고 또 거기 열람실에서 공부를 했거든요. 요즘은 어느 도서관이든 책을 빌리면 언제 반납을 해야 하는지도 문자로 알려주고. 여름엔 시원하게 에어컨을, 겨울엔 따뜻하게 난방을 해주니 어떨 땐 집보다 낫기도 하단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이름만 시립일 뿐 책이 많지 않더군요. 그리고 그래서이겠지요. 그나마 있는 책들도 다양하지 않아 많이 아쉬웠습니다. 게다가 요즘 들어 부쩍 들여다보고 있는 환경, 생태, 농업 관련 책들은 그야말로 가물에 콩 나듯 있으니. 그렇게 자주 찾아가게 되진 않더라구요. 헌데 지금 살고 있는 동네로 이사를 하고 나니. 그나마 시립도서관은 더 멀어지게 됐고, 그나마 동내도서관이 있긴 한데 시립보다도 더 작으니. 보고 싶은 책을 찾는 게 더 어려워졌습니다.
 
5. 
작년 가을쯤인 걸로 기억합니다. 춘천엔 큰 대학이 3개가 있지요. 국립대인 교육대와 강원대 그리고 사립인 한림대 이렇게 말이지요.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이 세 대학 중 두 곳과 매우 가깝습니다. 걸어서 10여분 내외면 정문이니 말이지요. 해서 처음 이쪽으로 오고나선, 마음먹기에 따라 내 집 드나들듯 대학시설을 이용할 수 있겠지, 생각했습니다. 도서관이니 학교식당이니, 박물관, 운동장 등등을 말이죠. 헌데 말이죠. 교대는 담이 없어 비교적 학교 출입에 대한 거부감이 없긴 한데 도서관은 개방을 하지 않더라구요. 물론 첨부터 그런 건 아니었는데 작년 가을쯤부턴 학생증이 없으면 출입 자체를 못하게 만들더군요. 그리고 지역주민회원제 같은 건 아예 없구요. 
 
6. 
강원대는 워낙 학교가 넓어서 그런지 여기저기 담을 두르고 정문이나 후문도 그럴듯하게 세워놨습니다. 하지만 도서관은 지역주민들에게 개방을 한다는 얘길 어디서 들은 것 같아. 작년 가을쯤인가 도서관에 문의를 했지요. 지역주민회원 가입은 어떻게 하는 겁니까, 하구요. 헌데, 나 원. 제한된 수에 한해 회원을 받는데 지금은 다 찼다고 하더라구요. 거기까진 뭐 그럴 수 있겠다, 싶었는데. 그럼 언제 회원에 가입할 수 있겠느냐 물었는데. 글쎄, 무조건 안 한다고, 학생들 도서관 이용에 불편이 많아 당분간은 안 받을 거라고 하더라구요. 아, 스팀. 한 마디 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서관 홈페이지엔 지역주민회원제라는 게 분명 명시돼 있고, 어차피 회원은 열람실 이용이 제한돼 있으니 학생들에게 피해가 얼마나 가는지 모르겠지만 장서실 이용하는데 그렇게 불편을 초래하느냐, 국립대면 도서관만큼은 지역주민들에게 되도록 제한 없이 개방해야 하는 거 아니냐, 했더니. 돌아온 대답은. 너, 어디 사느냐, 는 말로 시작해 끝내는 욕설이 나오더군요. 참 어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과 더 말을 해봐야 도통 먹히질 않을 것 같아 대학본부로 연락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는 말, 그 문제 때문에 지금 학교 규정을 바꾸려고 한다, 규정을 개정하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을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랍디다.  
 
7.
올 겨울은 강원대 도서관 5층 장서실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규정을 개정했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다행히도 얼마 전 지역주민회원으로 가입을 할 수 있었거든요. 해서 가끔 책도 빌려보기도 하다, 4월에 있을 시험 준비도 할 겸 아침부터 도서관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지요. 헌데 말입니다. 가끔은 온종일 돌아가는 난방 때문에 골이 아프기도 하지만요. 넓은 책상에, 국립대라는 이름에 걸맞게 서고마다 책이 잔뜩 꽂혀있어 바로바로 딱 맞는 책들을 찾아 볼 수 있으니. 이보다 더 공부하기에 좋을 순 없겠더군요. 게다가 단돈 2천원이면 3가지 반찬에 김치와 국까지 따라 나오는 식당에서 밥도 먹을 수 있고(후식으로 200원짜리 커피도 마실 수 있답니다). 얼마 전에 갔을 땐 청소하느라 못 봤지만 박물관도 곧 구경할 수 있을 테고, 날이 풀리면 푹신푹신한 운동장 트랙에서 운동도 할 수 있을 테니. 집에 있는 시간보다 학교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질 것 같은데. 이거, 이래도 되는 될까, 괜한 걱정도 해봅니다. 어차피 3월, 학기가 시작되면 아무리 5층 장서실이라도 지금 같은 호사는 눈치 때문에 쉽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8.
대학이 ‘지성의 요람’이었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더구나 ‘민주주의의 보루’였던 시대는, 대체 그런 때가 있었던가 싶을 만큼 아득합니다. 그러니 대학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노동자들과 함께 보다 나은 내일을 얘기했던 68을 기대하는 건 택도 없는 일이지요. 도서관 열람실은 미어터지다 못해 좌석예약제까지 생기는데, 장서실 서고엔 면접요령이니 취업전략이니 하는 책들만 인기를 끌고. 이런저런 자격증도 모자라 문과계열 학생이 CPA를, 이과계열 학생은 고시를. 자신만은 10%에 들 수 있을 거라는 헛된 희망에, 아니 자신만은 나머지 절반의 정규직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에 두 눈 다 감고, 두 귀 다 닫고 어학연수, 유학으로 보내는 4년. 경제단체로부터, 재벌기업으로부터 장학금 타 쓰는 총학생회, 동아리, 학회. 지금 우리 대학은 취업학원, 고시학원일 뿐인 것이지요. 아니 많게는 수백억 원에 달하는 적립금을 가져다주는 황금알 낳는 대기업일 뿐인 겝니다. 상황이 이러니 노동조합을 ‘외부단체’라 스스럼없이 말하는 것일 터이고. 동네 사람들이 도서관에서 책 좀 본다고, 열람실에 공부 좀 한다면 그걸 불편해하고 성가셔하는 것이겠지요. 누구나 편하게, 시립도서관만큼이나 열린 도서관. 길이 참 멀단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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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3 22:44 2011/01/13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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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또 파즈(Nastor Paz)는 스물다섯 번째 생일 하루 전날이자 체 게바라가 죽은 지 꼭 3년이 되는 날인 1970년 10월 8일에 숨을 거둡니다. ELN(볼리비아 민족해방군: Ejercito de Liberacin Nacional)의 멤버로 떼오폰떼(Teoponte) 지역 게릴라 운동에 참가해 약 석 달간 투쟁을 하다 마리아포(Mariapo) 강둑 위에서 굶어 죽은 겁니다. “모든 진정한 혁명가들은 무장 투쟁이야말로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까밀로 또레즈(콜롬비아인 사제, 사회학자, 대학 교목인 또레즈는 콜롬비아 민족 해방군이었으며 정부군에 의해 사살됐습니다. 파즈는 까밀로 또레즈의 모범과 글로부터 깊은 충격을 받았지요.)의 말을 새기며 길을 떠난 파즈는 조그맣고 까만 노트를 가지고 다니며 떼오폰떼 전투 기간 내내 일지를 썼는데요. 다음은 프란치스꼬가 쓴 전투일지 중 하나입니다.
 
8월 1일
오늘이 바로 ‘그 날’1)이 아닌가요. 공주여, 또 다시 맞는 이 기쁜 날, 특별한 사랑으로 당신을 생각하게 되오. 당신을 사랑하오.
이틀 전까지는 아주 어려운 날이 두 번 있었소. 적군과 두 번의 유리한 접전을 벌였소. 그러나 나의 전반적인 사고방식을 바꾸어야만 했소. 아마 그것은 폭력, 임무 수행, 투쟁의 의미, 희생의 가치, 우리 부대의 효율성 등,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근저에 맴돌고 있는 당신의 부재에 관계된 것일 거요.
그것을 생각하면 내 마음은 비통에 잠기게 되오. 그렇지만 나는 성장했소. ‘옛 사람’의 모델을 버리고 그것을 ‘새로운 인간’의 모델로 전환시킨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웠소. 모든 성장은 고통을 의미하오. 이것이 내가 느꼈던 바이오. 이 일들이 주님의 길이라고 해도 성장은 역시 확실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오. 그리고 오늘은 더 평화롭고 평온한 상태이오. 그리고 내가 지켜야 할 결의를 다짐해 보았소.
첫째, 나는 승리 아니면 죽을 때까지 이 싸움을 계속 할 것이오.
둘째, 이 길이야말로 역사가 진전하는 길이며, 지금 다른 길은 없소.
셋째, 그렇다면, 특히 까밀로 또레즈의 예언자적 역할을 기억한다면 이것이 바로 크리스챤의 길이오.
넷째, 여기에 있음으로써 나는 보다 더 온전히 당신과 함께 하는 것이오. 왜냐하면 우리 삶의 이상을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오.
나는 다시 한 번 당신을 생각하면서, 무다 가르시아(Muda Garcia)에서의 파티들, 모터사이클, 일요일 아침들, 우리의 첫 키스, 함께 지낸 모든 행복한 순간들-그리고 슬펐던 일들도 떠올려 보오. 이 모든 일들에 대해 계속 생각하지 않는 게 좋겠소. 왜냐하면 그 생각이 나로 하여금 당신 곁에 있고 싶도록 만들기 때문이오. 그러나 어쩔 수 없소.
모든 일은 잘 되어 가고 있소. 가장 어려운 고비는 이미 지나갔소. 전망은 밝소. 그리고 단지 우리의 결점과 나약함만이 극복된다면 그 전망은 계속될 것이오. 이 첫 석 달이 결정적인 시기요. 앞으로 모든 일이 보다 잘 되리라 생각하오. 충만함과 믿음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소.
자, 이제 당신을 떠나야 하오. 사랑하오. 아, 그런데 십자가가 달린 모자와 “모든 것 그리고 언제나”라는 말이 새겨진 손수건을 잃어버렸소. 새 것을 만들어 주지 않겠소?
 
2. 
손병휘의 3번째 앨범 ‘촛불의 바다’는 ‘전쟁과 평화’라는 부제를 갖고 있습니다. 이라크, 체첸, 보스니아 등 지구촌 분쟁 지역의 참상을 고발하고, 인디언 수우족의 추장, 인도의 시성 타고르 등의 입을 빌어 평화를 노래하고 있지요. 이 앨범에는 첫 곡으로 <모든 것, 그리고>이 있는데요. 네스또 파즈의 동지이자 연인인 쎄시2)가 떠나는 파즈에게 수놓아 준 손수건에 써 있는 글귀에서 제목을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요. 8월 1일 전투일지에 바로 그 얘기가 있습니다. 
 
<모든 것, 그리고>
조금 오래 전 어느 저녁 공원벤치에 앉아있을 때
그 위로 빛나던 하늘의 별빛 그 보다 더 빛나던
너의 눈동자 그 입술만큼 지금도 널 사랑할 수 있을까
모든 것, 그리고 언제나
모든 것, 그리고 언제나
모든 것, 그리고 언제나
모든 것, 그리고 언제나
그 만큼 오래 전 어느 한 낮 종로거리에 서 있었을 때
그 아스팔트 뜨겁던 태양 그 보다 더 빛나던
너의 그 눈동자 억센 두 팔 만큼
지금도 그렇게 달려갈 수 있을까
모든 것, 그리고 언제나
모든 것, 그리고 언제나
모든 것, 그리고 언제나
모든 것, 그리고 언제나
모든 것, 그리고 언제나
조금 오래 전 어느 새벽 가슴 벅찬 가슴 나누었을 때
동트는 여명 한줄기 햇살 그 보다 더 빛나던
너의 그 눈동자 굳센 미소만큼
지금도 그렇게 당당할 수 있을까
모든 것, 그리고 언제나
모든 것, 그리고 언제나
모든 것, 그리고 언제나
모든 것, 그리고 언제나
모든 것, 그리고 언제나
 
3.
네스또 파즈의 일지는 87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그것도 언제 맞닥뜨릴지 모르는 ‘고릴라’부대3)와 대적하기 위해 항상 긴장을 해야만 하기에 그다지 길지 않습니다. 그래서 책도 무척 얇고 또 그만큼 가볍지요. 하지만 파즈의 일지를 한 장, 한 장 읽어 내려가다 보면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는 걸 느끼게 될 겁니다. 그리고 “사랑이란 동지를 위해 죽는 것”이라는 파즈의 마지막 시구에서, 인간 존재의 가치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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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 파즈의 Universidad de San Andres에서 네스또와 쎄시가 처음 만난 날인 8월 1일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네스또는 거기에서 의학을 그리고 쎄시는 생화학을 공부하고 있었지요.
 

2) 쎄실리아는 뒤에 반제르(Banzer) 체제 하에서 학생 전투원과 광부들이 탄압받고 있을 때 ELN의 지하 집회장에서 사람들을 보호하려고 노력하다 볼리비아 정부군의 포격으로 인해 죽게 됩니다

 

3) ‘고릴라 Gorilla’는 진압군인 정부군대를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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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7 17:52 2011/01/07 1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