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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기 그지없는. 내 누이, 우리 엄마들이 가졌던 ‘소박한 꿈’들이 있었습니다. 
 
“나뿐이 아니라 내가 지금 이런 식으로 물러나면 나 같은 사람이 계속 생길 거 아니냐? 내가 다른 데 가서 또 이런 일이 생기면 또 피할거냐? ......(중략)...... 내가 마지못해 끌려갔다면 모르겠지만 나름 열심히 했는데 중간에 포기해 버리면 그게 계속 남아 있을 거야. 그래서 결론을 빨리 봤으면 좋겠고.” (pp.71-72 월드컵분회 조합원 서은주) 
 
“2008년부터 100-299인 사업장도 비정규직법이 적용될 텐데. 그러면 언제든 다른 데서도 우리처럼 할 것이고, 대량 해고하겠죠. 그런 사태를 접하지 못한 사람들이 현실에 눈을 떴으면 좋겠어요.” (p.95 월드컵분회 조합원 장은미) 
 
“없어야죠, 그런 건 무조건 없어야 돼요. 원래 비정규직이 없었던 것처럼, 파업이 없어도 되는, 이런 갈등 자체가 없어야 해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비정규직이네 뭐네, 이런 거 알고서 했나요. 아니잖아요. 아무도 몰랐잖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말이 생겨난 거잖아요. 이런 식으로 절망적인 단어가 새로 나타나지 않았으면 해요. 갈등을 부르는 단어가 안 나오길 바랄 뿐이죠, 그냥.” (p.141 월드컵분회 조합원 김남희)
 
“같이 하라는 얘기는 감히 안 해요. 저도 옛날에 그랬어요. 차도를 막고 여러 사람한테 불편을 끼치고 투쟁을 하는 게 불편하고 짜증도 나겠지만. 저 사람들이 왜 저럴까. 저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오죽하면 저럴까 한 번쯤은 생각해 주면 좋겠어요. 그 정도, 우리 입장이 되어 달라고는 절대 안 해요.” (p.215 월드컵분회 조합원 이경옥)
 
2.
‘소박한 꿈’이라고는 했는데, 참 많이 부끄럽네요. 그이들이 가졌던 이 ‘소박한 꿈’을 그이들 말마따나 제대로 ‘응원’ 한번 해봤는지. 지침으로 내려오는 집회 일정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고. ‘불매운동’에 동참한다고 한동안은 ‘2001 아울렛’에 드나들지 않았다고. 그게 ‘응원’이나 됐을까요.
 
“여기 김경옥 부위원장님이 자주 오셨는데, 우리가 30분 더 쉬게 된 것도 거기서 투쟁해서 얻어 낸 거라고 얘기하셨죠. 추석이랑 설 때 회사에서 상품권을 줬는데 정규직은 7만원, 우리는 5만원 이었어요. 매출이 좀 올랐을 때도 직원과 파트를 구별해서 줬어요. 그런 데서 상당히 기분 나빠요. 똑같이 일하는데 차별대우 하니까요. 상품권도 나중에는 똑같이 10만 원씩 줬는데, 그것도 투쟁해서 따 냈다고 하시더라고요.” (pp.109-110 00분회 조합원, 가명 이선화)
 
“솔직히 처음에는 조합에 관심도 없었어요. 내가 일하는 직장에서 내 위치가 흔들리니까 ……. 곧 사람이 잘린다더라, 구조조정이 된다더라, 뭐 이래저래 말이 많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그래도 노동조합에 가입하면 그나마 회사가 함부로 하지는 않겠구나 생각한 거예요.” (p.133 월드컵분회 조합원 김남희)
 
“같이 일하던 직원 중에 5년 된 파트타임들이 진급이 안 되는 거예요. 같이 들어온 다른 비슷한 사람들은 진급이 되는데. 인사과장도 진급시켜 준다는 얘기는 했는데 계속 뺀질뺀질대면서 안 해주는 거야. 부장이 입장을 고수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노동조합을 만나본 거지. 같이 있던 과장이 한 명 있었는데, ‘단순히 부장이나 과장이 건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노동조합을 통해서 하자’고 했어요.” (p.144 이랜드노조 총무부장 손명섭)
 
“고객센터 직원들은 집에서 쉬고 있을 때도 회사에서 나오라고 하면 나와야 해요. 손님이 그 아가씨 나오라고 그래! 그러면 회사에서 전화 하는 거예요. 전화를 안 받고 싶은데 다음날 가면 더 힘들어지니까 할 수 없이 받는대요.” (p.33 월드컵분회 조합원 조희숙)
 
“저는 11년 동안 근무했는데 어려움이 항상 있었죠. 장시간 근로도 그 중 하나고요. 7시에 출근해서 저녁 7시 이전에는 퇴근해 본 적이 없어요. 거의 10년 가까이 그렇게 일했어요. 초과근무 수당이 없는 건 당연한 거고요. 그것도 그나마 이랜드로 넘어오기 전 이야기고, 이랜드로 넘어오고 나서는 7시에도 퇴근을 못했어요. 보통 10시, 늦게 가는 사람은 12시까지 있어요.” (pp.110-111 병점분회 조합원 서형태)
 
“근데 정말 재미있는 일은 노조에 가입하고 한 달 인가부터는 두 시간 일하고 15분 쉬고 한 시간 밥 먹고 두 시간 일하고 15분 쉬고 이게 된 거예요. 야, 노조 가입하니까 이렇게 되는구나, 그걸 몰랐던 거예요. 미련하게 일만 했어요.” (p.23 월드컵분회 조합원 조희숙) 
 
3.
얼굴을 들고 있기가 민망합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런 말들을 했다지요. 그이들은 너무도 큰 꿈을 꾸었기에, 아직은 이룰 수 없는 꿈을 가졌기에, ‘사탄’이었다고. 정말 그럴까요. 
 
“지금은 우리가 너무나 힘들고 괴롭지만 참고 이겨 낸다면 너희들은 노동자가 되어도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지 않겠니? 엄마가 너희들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자본가와 어깨를 나란히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어 주고 싶구나.”(p.295)
 
“그러니까 위원장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저희 아내 모르게 비자금 숨겨 놓은 거 있는 데 1,000만 원입니다. 그거까지 털겠습니다. 그러면 열 명은 살릴 수 있을 거 아닙니까. 저도 어렵거든요. 근데 그 얘기를 들으니까, 나는 한 명은 살릴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파업하고 있으니까 내가 어떻게 할 방법은 안 되고. 내 주위에서 끌어 모아서 어떻게 100만 원은 될 수 있을 거 같은 거예요. 한 사람은 구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고요. 그럼 열 달 동안 갚으라고. 결의가 생기더라니까요.” (pp.87-88 월드컵분회 조합원 윤수미)
 
“우리는 우리의 미래뿐만 아니라 노동자 모두의 미래에 대한 조그만 희망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사람이 기계 부품으로 전락하지 않는 세상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청컨대, 당신이 다루는 모든 서류 안에는 이러한 사람들과 세상과 신념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잊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싸웁니다. 당신이 잊고 있기 때문에.”(p.303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내는 조합원 편지글>)
 
4.
그새 3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동안 또 다른 싸움을 ‘응원’하느라 그랬을까요. 아님 또 다른 ‘소박한 꿈’들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싸우느라 그랬을까요. 한 달에 80만원, 일 년 960만원 받는 일자리, 그것을 위해 싸웠던 그이들의 속내를 이제와 헤아려보려니. 참 무심하게도 살았구나, 또 살고 있구나, 아니 애써 외면하고 있었구나, 그런 생각만 자꾸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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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5 12:44 2010/10/15 12:44

고추 뽑아내다

from 10년 만천리 2010/10/11 22:47

고추대 정리 - 셋째 날(10월 5일/맑음 10-21도)

 

아침, 저녁 쌀쌀한 날씨에 밑도 끝도 없이 찬물로 목욕했다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주말에 또 비가 왔고. 이래저래 닷새 만에 밭에 나와 다 정리 못한 고추대 정리하고. 저녁에 카레나 해먹을까, 당근 몇 개 더 뽑아 금방 돌아왔다. 뭐, 콩이며, 팥이 다 여물기 전까진 딱히 할 일이 없기 때문에.

 

고추 뽑아내다(10월 6일/안개 후 맑음 10-22도)

 

올 고추 농사는 최악이다. 그나마 다 죽기 전에 풋고추를 따내고 장아찌를 담아 둔 게 세 항아리가 있다면 위안이 될까. 작년엔 가을 내내 아파트 옥상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고춧가루를 만들었는데. 고춧가루는커녕 고추 잎도 한 번 무쳐먹지 못했으니. 그야말로 망했다, 할 만하다. 보름 전만 해도 목덜미로 땀이 흐를 시간에 나와 죽은 고추들을 다 뽑아내니. 밭도 휑하고 마음도 휑하다.

 

고구마 맛보기(10월 7일/맑음 11-24도)

 

고추밭 정리하러 갔다가 고구마 줄거리도 좀 따고 그 덕에 고구마도 몇 개 캐냈다. 작년만 못하지만 그래도 실하게 생긴 것들이 줄줄 올라온다. 다음 주 쯤엔 고구마를 다 캐내야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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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1 22:47 2010/10/11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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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놉티콘이 죄수로 하여금 스스로 규율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만들고, 점차 규율을 ‘내면화’해 스스로를 감시하게 만드는 것(pp.22-23)이라면.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어떤 글을 쓰고 있는지, 무슨 의미를 갖게 될 것인지를 스스로가 검열을 하게끔 만드는. ‘국가보안법’은 어떤가요. 
 
또 파놉티곤이 푸코(Michel Foucault)가 지적하듯 아무렇게나 선택된 누구라도 이 기계를 작동시킬 수 있음으로 누가 권력을 행사하는 가는 중요하지 않는 것(p.24)이라면.
 
일제가 조선 식민지 사상 통제와 해방투쟁을 탄압하는데 사용했던 ‘치안유지법’에 그 뿌리를 둔. 1948년 해방 정국에서 자유로운 민중들의 욕구를 억누르는 수단으로 부활해. 김대중이었든 노무현이었든. 지난 60여 년 간 사상의 자유를 사장시킨 ‘국가보안법’ 말입니다. 
 
2. 
파놉티콘이 죄수를 교화하기 위해 설계되었지만 동시에 환자를 치료하는 데에도, 학생을 가두는 데에도 그리고 거지와 게으름뱅이를 일하도록 시키는 곳에도 적용(p.24)될 수 있다면. 아니 실제 이러한 기관들이 감옥과 매우 닮아 푸코가 말하는 ‘세상의 파놉티콘화’라면.
 
혹 이 글이 누구로부터 고소를 당하지나 않을까. 플래카드에 써 넣은 저 문구 때문에 월급 통장과 집에 딱지가 붙지는 않을는지. 끊임없이 주저하게 만들고, 멈칫멈칫하게 만드는. ‘가압류’와 ‘명예훼손’은 어떤가요. 
 
또 파놉티콘이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가 벤담에게 말한 것처럼 거미줄을 쳐놓고 먹이를 기다리는 거미가 있다면.
 
정부 정책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한 비판이나 문제제기. 해소되지 않는 의문점들을 끄적거릴라 쳐도. 아주 돈이 많거나, 속된 말로 ‘빽’이 있나, 되돌아보게 만드는. ‘가압류’와 ‘명예훼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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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와 과학철학을 전공한 저자가 파놉티콘Panopticon이라는, 벤담의 감옥 개념에 처음 접한 건 힘멜파브와 미셀푸코가 쓴 두 글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 두 글은 <파놉티콘-정보사회 정보감옥>에 자세히 소개돼 있구요. 그러다 90년대 말 빠른 속도로 확장돼 가고 있던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경험한 전자 감시, 데이터 감시로부터 정보 파놉티콘, 전자 파놉티콘이라는 개념에 접하게 됐답니다. 그리고는 “벤담이 설계한 파놉티콘에 구현된 감시의 매커니즘과 이에 대한 푸코의 해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만연되어 있는 전자 감시와 프라이버시 침해, 그리고 감시의 역학관계를 뒤집는 역감시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하는데요.  
 
4.
벤담은 끝내 자기가 구상했던 판옵티콘을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벤담이 살아온다면 무척이나 놀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몹시도 흐뭇해할 겁니다. 
 
그 자신은 물리적인 상상 속에서만 파놉티콘을 그려냈지만. 후대 권력자들은 이를 시공간에서 뛰어넘어 만들어내고 있으니 말이지요. 손에 잡히지도 않는 원형감옥을 말입니다. 그러니, 이정도면 놀라거나 흐뭇해하는 걸 너머 혀를 내두르지나 않을까요. 
 
헌데 어찌된 것인지. CCTV니 전자주민증이니 전자여권, 말들도 많지만. 또 인터넷 실명제에 휴대폰 감청 같은 것들도 문제이겠건만.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난데없이 ‘국가보안법’과 ‘가압류’, ‘명예훼손’이 떠오른 건 왜 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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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6 19:26 2010/10/06 19:26

땅콩 수확

from 10년 만천리 2010/10/04 16:18

땅콩 수확(9월 27일/안개 후 맑음 12-23도)

 

무투입농법이라고나 할까. 밭 갈기 전에 넣어주는 퇴비 이외에는 비료는커녕 웃거름도 제대로 주지 않고. 오로지 햇빛과 물과 흙이 만들어주는 것으로만 수확을 하니 그렇다.

 

그저 마음 가는 데로 밭에 나와 작물들을 봐주고. 풀에 채이지 않게만, 벌레가 너무 많이 먹지 않게만, 가지를 잘 뻗을 수 있게 엮어만 주는 그런 농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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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님들 들으면 웃겠지만 그렇게 2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 그래서일까. 일에 치이지 않고 자유롭게 글도 쓰고 놀러도 다니며. 슬슬 유유자적이긴 한데 수확물이 현저히 적다. 적을 뿐만 아니라 키도 작다. 고추도 그렇고 옥수수도 그렇고. 콩은 그럭저럭이긴 한데 감자가 그렇고 고구마도 그렇다. 들깨며 참깨는 수확하는 게 쉽지 않을 지경이고. 올 해 처음 심은 땅콩.

 

아침나절, 5월 말에 심은 땅콩을 수확했다. 두 이랑을 심었는데 고작 나온 것은 g 남짓. 아무리 처음 재배한 거라 하지만 좀 심하다. 하다못해 석회라도 뿌려줬으면 이러지 않았을 터인데. 그래도 싹이 나고 꽃이 피고 땅콩이 주렁주렁은 아니더라도 여러 개씩 매달려 있는 걸 보니.

 

엊그제 뽑은 당근만치나 이쁘고, 저걸 아까워 어떻게 먹나, 싶다.

 

고추끈(9월 28일/맑음 11-20도)

 

매년 하는 일이지만 흰 지주끈을 모아 버리는 것도 큰일이다. 뭐 힘이 드는 일이 아니니 큰일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고추끈은 그래도 좀 낫지. 토마토며 오이며, 호박을 8자로 묶어줬던 끈들을 일일이 풀어내는 일이란 게. 행여 쪼가리라도 챙기지 못하면 그대로 땅에 썩지도 않고 묻히고 마니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그러니 큰일은 큰일인 셈. 아무래도 뭔가 수를 내도 내지 않으면 안 되겠다.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걸루다 찾아봐야지. 근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들 하지? 그냥 지주끈으로들 하나?

 

고추대 정리 - 첫째 날(9월 29일/흐림 7-17도)

 

억수같이 쏟아 붓는 비에 일찌감치 고추들이 다 죽어 버렸다. 덕분에 고구마, 콩 수확할 때랑 겹치지 않게 고추끈이며 고추대를 정리할 수 있으니. 이거야 원, 웃어야 할지. 그래, 웃고 넘어가지 않으면 또 어쩌겠나, 싶어. 느즈막이 나와 어제 뽑아놓은 고추대를 한 다발 묶어 자전거에 실으니. 이거 중심잡기는 쉬운데 양옆으로 조심조심. 결국 평소보다 십분 이상 늦게 도착했다. 

 

고추대 정리 - 둘째 날(9월 30일/맑음 9-21도)

 

고추대 정리하면서 미처 다 캐지 못했던 감자도 캐낸다. 장마가 오기 전에 다 수확했어야 했는데 어찌하다 보니 때를 놓쳤고. 두 달 넘게 비가 오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뒀는데. 늦었다고 생각해 기대하지 않았건만 그래도 여럿 나온다. 비싼 채소 값에 반찬 걱정이었는데 잘됐다. 당분간은 감자 요리로 밥상을 채워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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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4 16:18 2010/10/04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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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꼬투리

from 10년 만천리 2010/09/27 20:47

팥꼬투리(9월 20일/흐린 후 비 18-26도)

 
추석연휴다. 차례상에 햇과일이며 나물들을 올려야 할 터인데. 추석이 일찍 찾아온 탓도 있지만 아무래도 날씨 때문에 준비하기가 쉽지 않다. 정부에선 20만원 가량이 들 거라는데. 연일 계속되는 비로 과일이며 야채며, 값이 장난 아니다. 얼추 헤아려도 20만원은 택도 없는데 어디서 그 가격에 사왔을까. 혹 자기네들만 다니는 시장이 있는 걸까.
 
못해도 삼일은 집을 비우니 음식물도 처리할 겸 밭도 둘러볼 겸 잠깐 나섰는데. 지난주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팥꼬투리가 있는 게 아닌가. 올 해 처음 도전한 작물인데다 팥은 콩과 달리 재배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또 낼 모래면 10월인데 꼬투리가 달리지 않아 걱정이 많았는데. 또 가을장마에 고추가 다 죽어버리는 바람에 맘이 많이 상했었는데. 다행히 꼬투리가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아직은 팥 농사가 성공했다, 섣부르게 판단하긴 이르지만. 일단은 꼬투리가 달렸으니 반은 성공한 셈 쳐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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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9월 24일/맑음 11-23도)
 
“어제, 오늘만 같은 날씨면 원이 없겠다”
 
9월도 이제 끝을 향하고 있으니 선선한 날씨가 나타나는 게 당연하겠지만. 올 봄과 여름에 하도 당한 게 많아서인지. 이런 말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하지만 갈수록 이상기상 현상이 잦지만 되레 더 무덤덤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또 고작 대체 작물로 뭐가 뭐가 유망하다, 고 떠들기만 하니. 한숨만 푹푹 나온다.
 
아무래도 무슨 수를 내도 진작에 냈어야 하는데. 이젠 글렀나, 싶기만 하고. 과학기술이 이 난관을 해결해줄 거라고 믿고들 있는 건지. 어딜봐도 심각하게 얘기하는 곳은 당체 찾아볼 수 없다. 앞으로 60년 후엔 밤나무도 못 볼 거라는데 말이다.
 
추석 연휴 동안에도 많은 비가 내렸다. 뉴스에선 ‘물폭탄’이라는 표현을 쓰던데. 내 기억으로도 이렇게 국지적으로 집중호우가 내린 게 벌써 몇 해 전인데. 쓸데없는 死대강 사업엔 묻지마식으로 돈을 쏟아 부울 줄은 알면서도 이런 건 아무 대책 없다. 그냥 불가항력이라고만 말할 뿐 또 되풀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또 돈 없는 이들이 고스란히 다 받고.
 
춘천에도 많은 비가 왔다는 걸 어제 기상청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알았다. 그런 줄 알았다면 어제 저녁에라도 밭에 나가봤을 터인데. 피곤한 탓에 집에 오자마자 한 숨 자고나니. 보름달이 떴고. 그제서야 겨우 날씨를 봤으니.
 
해서 오늘은, 나가도 별 특별히 손 볼일이 없지만, 늦었지만 밭에 나가보는데. 다행히 물도 잘 빠져있고 콩, 팥, 고구마, 땅콩들도 스러진 것 없이 무탈하다. 또 다 죽은 줄만 알았던 방울토마토도 여럿 열렸고 아삭이고추도 꽤 달려있다. 그리고 봄에 심어놓았으나 까맣게 잊고 있었던 당근도 제법 튼실하게 자랐다. 물론 겨우 손바닥크기나 되려나, 남이 보면 웃음이 나오겠지만. 그래도 작년엔 싹조차 나지 않았는데 올핸 이렇게 수확까지 하게 됐으니. 추석 전엔 팥꼬투리로 흐뭇했는데 추석 지나고선 당근 때문에 또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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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7 20:47 2010/09/27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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