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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자크 갈로로부터 고야, 도미에, 콜비츠, 루오, 리베라, 피카소, 샤갈을 거쳐 20세기 달리, 마그네트, 뷔페, 에로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참상을 고발한 반전그림들을 작가별로 두루 살펴보고 있는 <총칼을 거두고 평화를 그려라: 반전과 평화의 미술>이라는 책의 책장을 넘기고 있자면. 참 오랜만에 눈이 호강을 합니다.
 
물론 소개된 그림들이 하나의 주제, ‘반전과 평화’여서 보기에는 다소 암울하고 칙칙한, 어둡고 절망적일 수 있겠지만. 또 미술관이나  화집에서는 대게 구경하기 어려운 색체와 구도로 그려져 있기는 하지만 말이지요. ‘언제나 잠들지 않는 정신으로 전쟁이라는 지옥의 심연을 표현하고 평화를 갈구(p.278)’한 화가들의 노력은 그야말로 ‘진실한 민중예술, 참된 민주예술’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2.
클래식이라고 얘기하는, 모차르트나 바하, 비발디, 브람스와 같은 이들이 만든 음악은 여전히 우아함, 품격, 귀족 등과 연결돼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것으로 치부됩니다. 더불어 인상주의니 야수파니, 입체파, 표현주의와 같이, 고갱, 피카소, 클림튼, 마네, 르느와르가 그린 그림들 역시 화려하고 웅장하게 꾸며진 미술관에나 가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미술관, 오페라하우스는 결코 노동자들이 사는 곳, 민중들이 가까이 할 수 있는 곳과 가까이 있지 않은 것과 같지요.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부르디외가 <재생산 (La)Reprouduction : elements pour une theorie du systeme d'enseignemen>이란 책에서 문화자본으로 개념화한 것은 일상생활에서의 ‘구별짓기’를 사회학적 개념으로 탁월하게 분석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뭐, 중언부언하자면 많은 시간과 함께 거금의 돈이 있어야만 누릴 수 있는 이런 류(類)의 예술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을 나누는 경계선 상에서만 존재할 수 있을 거란 얘깁니다.  
 
3.
책을 낸 이가 전에 썼던 글들에서 심심치 않게 풍겼던, ‘일반 독자들에게 친숙한 서양화가를 중심으로(p.8)’란 말에서 그 냄새의 정체가 의심되는 계몽주의 혹은 ‘세계미술사에서 이미 그 작품의 예술성이 충분히 인정된 화가들의 작품만 엄선(p.8)’했다는 말 속에 숨은 또 다른 서구중심주의, 그도 저도 아니면 여기저기서 발견되는 친절하지 못한 개념들에 대한 나열들에 자칫 지적유희에 빠지게 될 위험을 갖고 있어 조금은 거북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약점들이 있다고 해도 박홍규 교수가 하고자 하는 말들이, ‘아무리 전쟁이 정당하더라도 그것은 부당한 평화보다 못하다(p.278)’라는 외침은 묻히지 않습니다. 아니 지금과 같이 여기저기서 ‘전쟁불사’를 외치는 때엔 되레 그 울림이 더 크게 퍼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두고두고 읽어볼만한, 두고두고 감상할만한 책이지요. 더군다나 피카소, 고야, 샤갈, 달리와 같이 주류 미술계에서도 거장으로 추앙받는 이들이 그린, 그러나 결코 주목받지 못하거나 외면당하고 있는 그림들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는 데에서는 오히려 새로운 눈을 뜨게 하니. 부족함이 없습니다.   
 
4.
책에서 볼 수 있는 그림들 가운데 멕시코 혁명을 벽화로 작업한 이들의 작품이야 말로 켜켜이 마음에 남는 그림들입니다. 아니요. 꼭 한 번은 직접 눈으로 보고 싶은 것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건 아마도
 
“우리는 일하는 사람들과 무관하고, 그림을 보려고 일부러 찾아올 수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미술을 거부한다. 민중이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볼 수 없다면 전시회를 도로에서 열자. 작업장에서 술집에서 열자. 거리의 벽에 그림을 그리자. 노동조합의 벽에 그림을 그리자. 일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 그림을 그리자.” (p.205. 리베라, 오로스코, 시케이로스: 멕시코혁명과 반전화가)
 
는 목소리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뭔가 부족하단 느낌이 드는데요. 그건 아마도.
 
예술이 예술가에 의해서만, 일하는 사람들은 그저 예술을 감상하는 관객으로만 남는 다는 것 때문일까요. 일하는 사람들이 쓴 글, 그림, 음악들이 미술관에 오페라하우스에 책에 담겨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그럴 때야만 오롯한 반전평화의 예술이 완성되는 것 아닌가 싶은데..... 맞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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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6 22:02 2010/12/06 22:02

서리태 털기

from 10년 만천리 2010/11/29 20:29
서리태 털기(11월 25일/맑음 영하 2-9도)
 
9일에 베어 널었으니 근 열흘 보름 가까이 말린 셈인데. 솔직히 말하면 말렸다기보다는 노느라 방치했다고 하는 게 옳을 게다. 뭐 팥을 수확한다고 왔다 갔다 하긴 했어도 베어 놓은 그대로 쭉 있었으니 그렇다. 서리태 수확하고 지주만 정리하면 올 농사도 끝인데. 어찌된 게 그게 그렇게 하기 싫으니, 일이 그렇게 된 게다.
 
엊그제 비도 오고 오늘은 서리도 내려 다음 주에나 일을 할까 했지만. 갑자기 추워진다는 날씨 예보에, 달력을 보니 낼 모래면 이제 12월이라 더 밍기적 거릴 수 없어 아침나절부터 밭에 나와 점심도 거르고 타작을 했다. 맘 같아선 밭에 나온 김에 지주도 싹 정리하고 싶은데. 뱃속이 하도 요동을 쳐 거기까진 못하고 콩만 다 털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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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9 20:29 2010/11/29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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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숨이 턱 막히더군요. 원체 수학을 싫어해 문과를 선택했던 터라. 그래도 전공이 경제학이니 수학이 전혀 없진 않겠지, 생각했는데. 1학년 첫 전공과목 수업부터 수요, 공급 곡선을 미적분으로 그려내더니. 2학년이 되자 과목 자체가 아예 경제수학에 경제통계더군요. 게다가 전공 교수들은 부전공으로 계량경제니 경제통계 같은 것들을 해놔서인지. 아, 정말 숨이 턱턱 막히더라구요. 평생 안 보고 넘어갈 줄 알았던 정석 2-2를 펼쳐놓고 확률, 통계에 4×4 행렬까지 하려니.
 
하지만 그것까진 어느 정도 참을만했습니다. 안 되는 머리지만 어찌어찌 수학공부(?)는 따라 갈만 했는데. 헌데 그 전공 교수들 말입니다. 나중에 들어온 한 사람 빼곤 모조리 미국물을 먹어서인가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끽해야 케인즈학파 언저리 정도가 한 명, 나머진 죄다 고전경제학들을 전공 했더군요. 이러니 교과과정은 싹 다 주류경제학으로만 채워졌고, 언감생심 정치경제학 혹은 맑스주의 경제학은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나마 기대했던 한 과목, 경제사마저 그 나중에 들어온. 식민지근대화론을 얘기하는 사람이 강의를 차지하고 들어왔으니. 컥.
 
그러던 어느 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2학년 1학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지요. 몇 명의 선배들과 동기들이 강의실에 모였더랬습니다. 돌이켜보면 거창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창립취지문도 대자보로 여기저기 붙이고, 회원도 미리 받고 했으니 조촐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열 댓 명이 모여 소위 주류경제학이 판치는 학과 분위기를 쇄신하고 대안 경제학을 학과에, 학내에 보급하자며, ‘정치경제학연구학회’ 발족식을 했습니다. 아름아름 맑스주의를 공부하던 선배들이 몇 있긴 했지만 이끌어주는 교수 한 명 없이.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듯 비주류경제학을 공부해보자며 나선 것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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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턱 막히더군요. 두꺼운 책 두께도 그렇거니와. 한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그 많은 ‘사건’들-하지만 이도 웬만한 역사학자가 아니구서야 어찌 다 알 수 있을까요-에 대한 깊고 풍부한 이해. 그리고 그것에 바탕을 둔 저자만의 독특한 시각-물론 이 때문에 단숨에 책을 읽어 내려가기가 쉽진 않지만-에 책장을 넘길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더라구요.
 
하지만 무심코 지나쳤을 법한 ‘혁명’에 관한 새로운 발견, 비주류에서도 다시 비주류적 해석으로 나아가는 사고의 전환, ‘자유의지’로 뭉친 민중에 대한 믿음을 올곧게 느낄 수 있는데 이르러서는. 기억으론 다 담나내기 조차 많은 ‘역사적 사건’들을 다시 천천히 음미해야겠다는 생각이 슬쩍 고개를 내밉니다. 한마디로 두 번, 세 번을 읽어야겠다는 다짐이지요.
 
3.
첫 1년은 처참했습니다. 그나마 있었던 선배들은 졸업 학년이 되면서 활동 폭이 좁아졌고,  회원은 절반 이상 떨어져나갔습니다. 그리고 후배들은 통 학회에 관심을 두질 않았지요.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습니다. 처음 학회를 제안했던 선배들 가운데 그래도 끝까지 해보자며 두 명의 선배가 나섰습니다. 그리고 동기들 가운데 광주에서 올라온 늦깎이 형을 중심으로 학생회 일을 맡고 있던 몇 명이 의기투합했습니다. 그리고 곧 주 1회 세미나와 월 1회 토론회를 시작했습니다. 요란하게 말잔치만 하지 말고 내실을 기하자는 의미였지요.
 
그 해 여름, 후배들과 함께 지리산엘 올랐습니다. 천왕봉 아래 장터목산장에 두 동의 텐트를 치고는 대접에 소주를 가득 부어 마시며 학회 정회원 승격식도 하고. 다음 날은 광주 망월동에도 갔지요. 그때까지만 해도. 지리산도 그렇고, 망월동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차편도 변변치 않아 꽤나 긴 길을 걸어야 했지만. 지리산 자락을 걷는 동안에도 묘역을 둘러보는 동안에도 내내 모두들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천왕봉에 올라 굽이굽이 피어린 산자락들을 굽어보며. 또 구묘역에 늘어선 묘비 하나, 하나, 한 글자, 한 글자 가슴에 새기는 내내. 눈물을 흘리지 않은 회원들은 한 명도 없었더랬습니다.
 
하지만, 그 눈물들은 그리 오래 흐리지 않았습니다. 계엄군에 갇힌 광주의 민중들은 죽음을 앞둔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도. 기어이 ‘자율공동체’를 만들어냈음을 보았기 때문이었지요. 그래 이내 눈물은 환희와 용솟음, ‘격정’으로 바뀌었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지리산 산행과 광주 망월동 묘역 참배는 ‘정경연’ 정회원이 되는 통과의례가 됐지요. 물론 15년도 넘게 지난 지금도 후배들은 여전히 지리산엘 또 광주엘 가고 있구요. 아픈 역사 속에서 건져낸 ‘격정’이 여전히 주류경제학만을 유일경제학으로 치부하는 학풍 속에서도 꿋꿋이 학회를 이끌어 오고 있는 힘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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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6 01:14 2010/11/26 01:14

팥 수확 끝

from 10년 만천리 2010/11/21 12:33
팥 수확 끝
(11월 17일/안개 후 맑음 0-11도)
(11월 18일/안개 후 맑음 영하 2-11도)
(11월 19일/안개 후 맑음 영하 2-6도)
 
사흘 내리 팥꼬투리만 따왔다. 덕분에 팥 농사는 마무리다. 따온 꼬투리에서 팥이 얼마나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수확한 팥하고 얼추 헤아리면. 갑자기 추워진 날씨를 감안해도 꽤 잘 된 듯하다. 이제 밭에 남은 건 서리태인데. 보기엔 빈 꼬투리가 많아 나오는 양이 많치 않을 듯해 걱정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잘되는 게 있으면 또 잘 안 되는 것도 있겠거니, 해야지.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매년 이렇게 한 가지 또는 두서너 가지씩 잡곡을 늘려가면서 재배방법을 익히는 것이다. 그러려면 일지도 더 꼼꼼히 써야겠고. 여기저기 정보도 모아야겠고. 또 토종 종자도 구할 수 있으면 그걸로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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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1 12:33 2010/11/21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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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밭을 갈다 2010/11/17 22:12
서리태 베어 널기(11월 9일/바람 셈 0-7도)
 
지난주에 메주콩 털 땐 바람이 부는 가, 마는 가 싶었는데. 오늘처럼 바람 잘 부는 날 일하지 뭐 하러 그랬을까. 일이란 게 맘대로, 뜻대로 되지 않는 거란 걸 새삼 깨닫는다.
 
어제 비가 왔고, 글피 또 비가 온다고 하니 마음이 조금 급해진다. 이러다 금방 추워질 듯해서. 서리태야 서리가 내릴 때까지 기른다고 서리태이긴 하지만. 그래도 얼른 베어 널고. 잘 말린 후 또 털어야 하니.
 
해가 한참 뜬 후에 나왔어도 바람이 세게 불어서인지 무지 춥다. 맘 같아선 온 김에 오이며, 토마토 지주 정리도 하고 싶지만. 날이 추우니 몸도 움츠려들고 따라서 일도 더디다. 안 되겠다. 나중에 따뜻해지면 나와 일해야지.
 
팥(11월 12일/맑음 1-13도)
 
영하로 떨어진 날씨에 얼어 죽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팥이 꾸준히 꼬투리를 만들어내고 있어 마음이 놓인다. 그렇다고 수확량이 좋다는 것은 아니다. 벌레 먹은 것들도 많고. 채 빨갛게 여물기도 전에 꼬투리가 떨어진 것도 있고. 첫 재배한 것 치곤 나름 성과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만족할만한 건 아니란 얘기다. 물론 날씨 탓도 있긴 있지만. 아무튼 다는 죽지 않고 살아남아 있는 것들을 보니 참,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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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7 22:12 2010/11/17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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