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 지나온 흔적도 남기지 않아야..... 월둔마을에서 아침가리로(2008년 6월 19일)
 
밤새 또 가니, 못 가니 하다, 오랜만에 김밥 싸고 계란 삶고 벼락 준비에 정신없다. 그러다 혹여나 하는 마음에 버스 편 확인하다 울고불고 아주 난리도 아니다. 두도령을 넘어 달둔마을까지 왔던 게 작년 5월이니 그새 1년이 지났고, 그 동안 아주 잠깐이라도 걷기를 했었다면 이러진 않았을 거다. 농사짓겠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겠다, 마음먹고 춘천으로 오기까지 남들 눈엔 번갯불에 콩 볶아 먹을 시간이었겠지만 그만큼 긴 시간이었던 거고 몸도 마음도 알게 모르게 물갈이 중이었나 보다.
 
같은 강원도면서도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세 시간이나 걸려야 달둔마을에 올 수 있으니 그만큼 외지긴 외진 듯하다. 그래도 군내버스 한 칸 가득 맑은 목소리를 가진 아이들의 모둠 노래자랑에 지루하지 않다. 또 차창 너머로 굽이굽이 돌아가는 계곡이며 푸른 나무들이 눈을 즐겁게 해 덩달아 콧노래다. 올망졸망 아이들을 내려놓은 차는 그새 달둔마을에 다다라 잠시 멈춘 후 굽이굽이 구룡령 넘어 바다로 향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정감록에 나온다는 삼둔사가리 가운데 삼둔 중 하나인 월둔마을에서 시작해 사가리 중 하나인 아침가리로 이어지는 이름 없는 이 숲길은 지나온 흔적마저 남기지 않아야 한다. 때론 거친 길을 질주하고픈 욕망도 어쩌면 저 끊어진 다리 위에 멈춰 세워야 할 것이고, 하룻밤 별을 헤며 세상사를 나누고 싶다 해도 길 위에 멈춰서는 안 될 것이다. 사람 사는 곳이라곤 월둔마을과 조경분교 근처 젊디젊은 부부 한 쌍 외엔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니, 부디 이 한 곳만이라도 조용히 그렇게 남겨둬야 마땅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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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덕봉 바로 아래 명지가리까지는 그래도 뒷산 산책하듯 오른다. 지천에 널린 야생화 구경에 문득문득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과 눈부신 햇빛이 발걸음을 가볍게 하기에. 또 조경동까지 이어진 긴 내리막길은 내내 이름 모를 새소리와 계곡 물 소리에 지친 몸과 마음이 맑아지기에. 헌데 다 내려왔나 싶은 그 순간, 길은 다시 끝없는 오르막으로 구절양장 돌고 도는데,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은 맛보기다. 마치 꿈속을 걷는 듯한데, 그러다, 어느 순간 아찔 하기만한 아스팔트 내리막길에 이르면 천근만근, 무거운 몸, 누일 곳을 찾는다.

 
장마가 시작된다는 말에 당일치기로 다녀올 것인지, 미뤄뒀던 남은 길을 모두 걸을 것인지 선뜻 결정하지 못했더니 해는 지는데, 차 시간은 간당간당한데, 어찌할지 몰라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외지긴 외진 데라 그런지 버스마저 일찍 끊기고 오가는 차는 찾아볼래야 볼 수가 없다. 일기예보로는 주말에나 되어야 장맛비가 내린다고 하니 하루 정도 여유가 있긴 한데, 몸이 너무나 무겁다.
 
하룻밤 묵어가는데 이틀 치 방값을 내라는 그럴듯한 펜션을 뒤로하고 때마침 읍내로 나가는 듯한 택시를 집어타고 현리로 나오니 이런, 홍천이고 인제고 버스 끊긴지가 이미 오래다. 사실 어제 밤 느닷없이 준비를 한 탓도 있었지만 혹여 하는 마음에 차 시간을 확인했기에 망정이지 갑자기 바뀌어버린 버스 시간에 하루를 그냥 길에서 보내거나 아예 떠날 생각도 못할 뻔 했었는데 결국엔 예상치도 못한 현리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꼼짝없이 하룻밤을 보내야 할 상황이다. 
 
허탈한 마음을 뒤로하고 어찌어찌 잠잘 만한 곳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지만 가뜩이나 찜찜한 마음인데다 제법 괜찮다고 보여 들어간 첫 번째 모텔에서 방이 없단 얘기를 듣자 차라리 다시 택시를 타고 방동리로 돌아가자며 터미널로 나온다. 헌데, 천운인지 다행인지 진동리까지 운행하는 통학버스 한 대가 이번엔 교복 입은 학생들을 한차 가득 싣고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망설일 이유가 없다. 다시 돌아가는 수밖에.  
 
다음부턴 50원을 더 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버스 뒤로 어둠이 조금씩 내려앉는다. 정류장 바로 앞 민박집에 1만원을 깎아 방을 정하고는 라면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니 그제서야 방동계곡의 물소리가 들린다. 아주 잠깐 물소리를 듣기 위해 방을 나온 것 빼곤 숟가락을 놓자마자 곯아떨어지는데, 몸 피곤한 것과 달리 밤새 가위에 눌려 버둥버둥 대느라 제대로 잠을 못 이룬다.   
 
둘째 날, 천근만근 지친 몸을 이끌고 현리로(2008년 6월 20일)
 
이렇게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다니, 어젠 정말 무리했나보다. 어찌어찌 눈을 떠 겨우 얼굴에 물만 묻히고는 썬 크림만 잔뜩 바른다. 뭐에 홀렸는지 모자는 잃어버리고 여덟시도 채 안됐는데 햇빛은 장난 아니고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더구나 아침도 거른 채 걸으려니 이거야 걷기도 전에 죽을 맛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대충 머리에 수건만 두르고는 해가 머리위에 뜨기 전에 현리에 도착하길 빌며 길을 나선다. 현리까지야 두 시간이면 충분할 테고 어제 택시며 버스로 왔다 갔다 하면서 눈여겨보니 군데군데 민박집이며 밥집이 있는 듯 해 일단 아침은 건너뛴다. 하기사 어제 아침도 라면, 저녁도 라면으로 때웠기에 오늘 아침까지 라면을 먹긴 좀 그렇긴 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어제 저녁엔 그리도 많아 보이던 가게들이 어째 조롱고개를 넘기 전까지 한군데도 보이지 않는 걸까. 도중에 제법 큰 슈퍼가 한 군데 있긴 했는데 조금만 가면 뭐가 나오려니 하며  참고 걸었는데 시간 반이 넘게 걸어도 당체 요기할 만한 곳이 나오지 않는다. 지친 몸도 몸이지만 뭐라도 채워야 할 텐데. ‘도채동 옛길’로 빠져 길을 걸어보기도 하지만 당체 힘이 나질 않는다. 
 
결국 현리 가까이에 당도해서야 아침 먹을 곳이 나타난다. 오가는 이들이라면 무조건 불러들이고는 이른 아침부터 해장술을 기울이는 나이 드신 농부님들 이야기를 반찬삼아 꿀맛 같은 아침을 먹고는 다시 길을 나선다. 그래도 밥이 들어가서인지 힘이 조금 나는 것 같긴 한데 팔월 한낮에 뜨거운 햇빛이 벌써부터 등 뒤에 내리쬔다. 이거야 말로 땡볕에 뭔 고생인지. 
 
겨우겨우 기다시피 현리에 들어가니 이젠 이것저것 생각하기도 싫고 그저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렇지만 한 시간 가까이 더 기다려야 홍천으로 나가는 버스에 오를 수 있다. 한 바퀴 도는 데 20분이면 너무 많고 그렇다고 10분이면 너무 짧은 동네 산책도 잠깐이고 결국 터미널 의자에 기대 꾸벅꾸벅 잠에 빠진다. 그렇게 삼십분을 졸다 홍천행 시외버스를 타고 다시 졸고, 홍천에서 춘천으로 나가는 시외버스 타고 또 졸고, 무거운 눈꺼풀이 자꾸만 내려앉는다.
 
* 스물한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 첫째 날 : 홍천군 내면 달둔마을에서 방동약수까지 약 30km. 걸은 9시간.
- 둘째 날 : 방동약수에서 인제군 현리까지 약 8km, 걸은 시간 2시간.
 
* 가고, 오고
춘천터미널에서 홍천을 가는 시외버스가 첫차 6시 5분을 시작으로 20여분 간격으로 있으나 홍천에서 내면까지 운행하는 시외버스 시간이 6시 45분이고, 다시 내면에서 달둔마을을 거쳐 양양까지 운행하는 군내버스가 9시 05분이니 반드시 6시 5분 첫차를 타야 한다. 다만 첫차보단 6시 15분에 출발하는 버스가 고속도로로 달려 오히려 첫차보다 조금 빨리 도착하니 이 차를 이용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하지만 둘 다 6시 45분 언저리에 도착하니 자칫하면 하루를 차 기다리며 보낼 수 있으니 마음을 편히 가져야한다. 또 현리에서 홍천으로 나오는 차편도 올 6월 1일부터 바뀌었으니 이 역시 전화로 꼭 확인해야 한다. 달둔마을이나 방동약수나 어느 쪽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란 수월치가 않다. 반드시 확인, 또 확인해야 한다. 
 
* 잠잘 곳
월둔마을에서 명지가리를 거쳐 조경동, 조경령, 방동약수까진 숙박은커녕 매점하나 없다. 계곡물이 워낙 맑아 식수는 따로 준비하진 않더라도 반드시 먹거리만은 준비해야 한다. 방동약수 인근엔 민박이며 펜션이며 숙박할 곳은 꽤 있다. 하지만 여름 휴가철 외에는 밥 먹을 만한 곳이 딱히 없으니 하룻밤 묵어가는 곳에서 해결해야 한다. 방동약수에서 현리까진 두 시간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나 방동분교 앞 매점을 지나치게 되면 조롱고개를 넘기까지 아침을 해결할 만한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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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3 01:34 2010/12/23 01:34

1.

미쳐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자니 화가 날만도 한데 어찌된 게 점점 더 무섭기만 해지네요. 뭐, 민간인을 향해 포탄을 날린 쪽을 두둔하거나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또 이런 짓거리는 결코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때는 이때다, 마치 전쟁이라도 하려는 듯 온갖 과격한 말을 다 동원해 난리 법석을 떠는 모양새가. 그래요 처음엔 화가 났지요. 민간인이 죽어나갔는데도 최신형 포만 더 갖다 놓을 생각만 하고. 결국 목숨을 담보로 해야만 하는 이들을 고작 찜질방에 몰아놓고는 전투기를 동원해 폭격해야 한단 말만 늘어놓고. 이럴 때일수록 ‘응징’을 외기기 보단 ‘대화’를 하자고 해야 할 터인데, 또 미국을 등에 업고 무력시위를 하기보단 얼굴을 마주하고 얘길 해야 할 터인데 말이지요. 결국 국방부장관에 임명된 사람이나 뭔 일이 터질 때마다 지하로 내려가는 사람이나 연일 무서운 말만 쏟아내더니. 두려움에 떨던 날이 엊그제 같은 데 무슨 또 사격훈련을 한다고 합니다. 이러니 이거 정말 ‘전쟁’ 나는 건 아닌지 두렵기만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2.
롤란트는 부모님, 누나 유디트, 여동생 게스틴과 함께 들뜬 마음으로 여름 휴가를 떠납니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살고 계시는 세벤보른으로 말이지요. 하지만 롤란트 가족은 외갓집을 코앞에 두고 그 전에는 상상조차 못했던 일을 당하고 맙니다. “그것은 부모들이나 어른들이 상상하고 있었던 대로 되어가지 않았다. 예를 들어 거듭 반복되는 경고문이나 선전포고도 없었다. 알프스 산속이나 지중해의 섬으로 피난갈 수 있을 만한 충분한 시간 여유도 주어지지 않았다”(p.9)는 말처럼 말이지요. 그리고 그것은 “당신들 때문에 핵폭탄이 떨어진 거야! 아이들이야 어떻게 되든 아무런 관심도 없었겠지. 자기들만 좋으면 상관없다는 거겠지. 우리가 이렇게 비참한 상태가 되어도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아. 그러면 우리들은 어떻게 하란 말이야?”(pp.128-129)라고 말하는 양쪽 다리를 잃은 소년의 말처럼. 일은 벌어졌으나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는, 그런 일이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그 일은 그처럼 쉽게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말로 다하기 어려운, 너무나 무시무시한, 사람으로써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걸 의미합니다. 폭발과 함께 녹아버린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폭풍이 지나간 후 발병한 전염병에 죽어간 여동생. 방사능 오염으로 온 머리카락이 듬벙듬벙 빠지고 온 몸에 반점이 돋은 채 숨을 거둔 누나. 눈과 양팔이 없는 아이를 낳고는 아이와 함께 하늘나라로 올라간 어머니와 막내 동생처럼 말이지요. 그리고 이런 일들은 롤란트 가족들만 겪은 참상이 아니었습니다. 독일 전역에서 아니 전 유럽에 걸쳐서 일어났던  것이지요. 
 
3 
한나라당 대표라는 사람은 전쟁나면 입대해 싸우겠다고 했다지요. 또 한나라당 모 의원은 연평 포격 사건 때 대통령에게 확전되지 않게 하라고 건의했던 청와대와 정부 내 사람들에게 욕설을 했다고 하구요. ‘망둥이가 뛰면 꼴뚜기도 뛴다’고. 재협상은 없다고, 글자 하나 고치지 않겠다고 강변하던 통상교섭본부장마저 FTA협상이 잘못됐다면 해병대에 지원하겠다고 말했답니다. 뭐, 너도나도 입대하겠다는 사람들 굳이 말릴 생각은 없지만요. 이번 기회에 무기 만들어 돈 버는 기업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동네 상권부터 나라를 상대로 한 상권까지 깡그리 틀어쥐고 있는 재벌들에게 또 막대한 돈다발을 안겨주려고 안달이 났거나, 아니지요. 이번 기회에 아예 한반도를 요새화하려고 맘먹은 사람들. 연평도 말고도 사람들 마음속에도 연일 폭탄을 떨어뜨리는데 광분한 이 사람들에게 꼭 한 번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핵폭발이 있은 지 3년이나 지난 뒤에야 겨우 세워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롤란트의 아버지에게 어느 여자 아이가 했던 질문입니다.
 
“선생님은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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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8 19:06 2010/12/18 19:06

1.

국회에서 또 몸싸움이 났습니다. 뒤엉켜 멱살잡이에, 치고받고,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던지는 꼬락서니(심지어 모 남성 의원은 여성 당직자 머리까지 잡아 끌더군요)들이 참 가관입니다. 이러려면 애초부터 힘 좋은 의원 뽑기를 하던지 아님 과반 의석 차지하면 그냥 맘대로 다 할 수 있게 하던지. 막고 있는 이들이나 들어가려고 하는 이들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게. 엊그제는 여기에 있던 자들이 오늘은 저기에, 어제는 저쪽에서 들어가려는 자들이 오늘은 막는 이들로 서 있으니. 이놈들 욕하자니 저 놈들 한 짓이 생각나고, 괘씸한 저 놈들 보고 있으려니 이놈들도 똑같고. 그렇다고 양비론으로 둘 다를 욕하자는 건 절대 아닙니다. 다 같은 놈들이라고 해도 그때그때마다 또 이번 일처럼 분명 잘잘못은 있는 거니까요. 덮어놓고 싸잡아 욕하진 말자는 얘깁니다. 예컨대 막무가내 4대강 삽질에 올인 한, 3년째 예산안을 날치기로 통과시킨 한나라당이 이번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얘길 반드시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또.
 
2.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를 매우 협소한 개념으로 사고하는 듯합니다. 표결과 과반, 그것이 민주주의의 전부인양 생각하고 행동하니 그렇습니다. 아니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매년 난장판이 돼 버리고 마는 국회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과반수 의석만 차지하고 나면 무조건 밀어붙이기로 일관하는 정치권(여, 야 가릴 것 없이, 아니 어떻게 보면 둘이 공모한 작품일지도 모르지요. 한 순간에 야당에서 여당으로 또 여당에서 야당으로 바뀌기도 하지만 누가 여당이 됐든 늘 그런 식이었잖아요)이 장단을 넣고 여기에 어울려 춤추는 언론. 이번 예산안 처리만 봐도 그렇지요.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고, 토론이나 심의과정은 대충대충. 그저 머릿수로 어찌해보려고만 하는 한나라당이나.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몸싸움과 고성, 온갖 던지기 등을 ‘폭력’에만 초점을 맞춰 보도하는 언론들(이런 모습들은 민주당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던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뭐, 이미 예견된 거 아니었겠습니까.  
 
3.
민주주의는 결코 표결로 완성되는 게 아닙니다. 더구나 과반을 넘겼다고 해서 모든 것에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도 아닙니다. 표결보다는 대화와 토론을 통한 합의를, 또 설령 과반, 아니 2/3가 넘더라도 소수 의견은 끝까지 존중하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인데 말이지요. “타협을 해도 성과가 없을 것”이라는 말이나 “고질적인 발목잡기”라고 비난을 한다 해도, 민주주의를 잘 못 알고 있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인 것처럼. ‘막장국회’니 ‘난장판국회’니 하며 선정적인 제목과 사진을 쏟아내면서도 정작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건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 건가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는 언론도 결국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국회와 언론이 민주주의를 왜곡하고 애써 외면만 하니. 마치 모든 것을 표결에 붙이고 또 표결에서 과반이 넘으면 되지 않느냐, 아니 이도저도 안되면 쪽수로 밀어붙이자, 라고 생각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마치 민주주의를 잘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처럼 매우 당당해합니다. ‘승자독식’이란 말은 ‘과반’과 동의어란 것. ‘표결’은 민주주의의 마지막 수단이란 것. 다시 생각하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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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0 22:11 2010/12/10 22:11
사용자 삽입 이미지1.
17세기 자크 갈로로부터 고야, 도미에, 콜비츠, 루오, 리베라, 피카소, 샤갈을 거쳐 20세기 달리, 마그네트, 뷔페, 에로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참상을 고발한 반전그림들을 작가별로 두루 살펴보고 있는 <총칼을 거두고 평화를 그려라: 반전과 평화의 미술>이라는 책의 책장을 넘기고 있자면. 참 오랜만에 눈이 호강을 합니다.
 
물론 소개된 그림들이 하나의 주제, ‘반전과 평화’여서 보기에는 다소 암울하고 칙칙한, 어둡고 절망적일 수 있겠지만. 또 미술관이나  화집에서는 대게 구경하기 어려운 색체와 구도로 그려져 있기는 하지만 말이지요. ‘언제나 잠들지 않는 정신으로 전쟁이라는 지옥의 심연을 표현하고 평화를 갈구(p.278)’한 화가들의 노력은 그야말로 ‘진실한 민중예술, 참된 민주예술’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2.
클래식이라고 얘기하는, 모차르트나 바하, 비발디, 브람스와 같은 이들이 만든 음악은 여전히 우아함, 품격, 귀족 등과 연결돼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것으로 치부됩니다. 더불어 인상주의니 야수파니, 입체파, 표현주의와 같이, 고갱, 피카소, 클림튼, 마네, 르느와르가 그린 그림들 역시 화려하고 웅장하게 꾸며진 미술관에나 가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미술관, 오페라하우스는 결코 노동자들이 사는 곳, 민중들이 가까이 할 수 있는 곳과 가까이 있지 않은 것과 같지요.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부르디외가 <재생산 (La)Reprouduction : elements pour une theorie du systeme d'enseignemen>이란 책에서 문화자본으로 개념화한 것은 일상생활에서의 ‘구별짓기’를 사회학적 개념으로 탁월하게 분석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뭐, 중언부언하자면 많은 시간과 함께 거금의 돈이 있어야만 누릴 수 있는 이런 류(類)의 예술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을 나누는 경계선 상에서만 존재할 수 있을 거란 얘깁니다.  
 
3.
책을 낸 이가 전에 썼던 글들에서 심심치 않게 풍겼던, ‘일반 독자들에게 친숙한 서양화가를 중심으로(p.8)’란 말에서 그 냄새의 정체가 의심되는 계몽주의 혹은 ‘세계미술사에서 이미 그 작품의 예술성이 충분히 인정된 화가들의 작품만 엄선(p.8)’했다는 말 속에 숨은 또 다른 서구중심주의, 그도 저도 아니면 여기저기서 발견되는 친절하지 못한 개념들에 대한 나열들에 자칫 지적유희에 빠지게 될 위험을 갖고 있어 조금은 거북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약점들이 있다고 해도 박홍규 교수가 하고자 하는 말들이, ‘아무리 전쟁이 정당하더라도 그것은 부당한 평화보다 못하다(p.278)’라는 외침은 묻히지 않습니다. 아니 지금과 같이 여기저기서 ‘전쟁불사’를 외치는 때엔 되레 그 울림이 더 크게 퍼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두고두고 읽어볼만한, 두고두고 감상할만한 책이지요. 더군다나 피카소, 고야, 샤갈, 달리와 같이 주류 미술계에서도 거장으로 추앙받는 이들이 그린, 그러나 결코 주목받지 못하거나 외면당하고 있는 그림들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는 데에서는 오히려 새로운 눈을 뜨게 하니. 부족함이 없습니다.   
 
4.
책에서 볼 수 있는 그림들 가운데 멕시코 혁명을 벽화로 작업한 이들의 작품이야 말로 켜켜이 마음에 남는 그림들입니다. 아니요. 꼭 한 번은 직접 눈으로 보고 싶은 것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건 아마도
 
“우리는 일하는 사람들과 무관하고, 그림을 보려고 일부러 찾아올 수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미술을 거부한다. 민중이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볼 수 없다면 전시회를 도로에서 열자. 작업장에서 술집에서 열자. 거리의 벽에 그림을 그리자. 노동조합의 벽에 그림을 그리자. 일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 그림을 그리자.” (p.205. 리베라, 오로스코, 시케이로스: 멕시코혁명과 반전화가)
 
는 목소리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뭔가 부족하단 느낌이 드는데요. 그건 아마도.
 
예술이 예술가에 의해서만, 일하는 사람들은 그저 예술을 감상하는 관객으로만 남는 다는 것 때문일까요. 일하는 사람들이 쓴 글, 그림, 음악들이 미술관에 오페라하우스에 책에 담겨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그럴 때야만 오롯한 반전평화의 예술이 완성되는 것 아닌가 싶은데..... 맞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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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6 22:02 2010/12/06 22:02

서리태 털기

from 10년 만천리 2010/11/29 20:29
서리태 털기(11월 25일/맑음 영하 2-9도)
 
9일에 베어 널었으니 근 열흘 보름 가까이 말린 셈인데. 솔직히 말하면 말렸다기보다는 노느라 방치했다고 하는 게 옳을 게다. 뭐 팥을 수확한다고 왔다 갔다 하긴 했어도 베어 놓은 그대로 쭉 있었으니 그렇다. 서리태 수확하고 지주만 정리하면 올 농사도 끝인데. 어찌된 게 그게 그렇게 하기 싫으니, 일이 그렇게 된 게다.
 
엊그제 비도 오고 오늘은 서리도 내려 다음 주에나 일을 할까 했지만. 갑자기 추워진다는 날씨 예보에, 달력을 보니 낼 모래면 이제 12월이라 더 밍기적 거릴 수 없어 아침나절부터 밭에 나와 점심도 거르고 타작을 했다. 맘 같아선 밭에 나온 김에 지주도 싹 정리하고 싶은데. 뱃속이 하도 요동을 쳐 거기까진 못하고 콩만 다 털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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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9 20:29 2010/11/29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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