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농부

from 11년 만천리 2011/04/04 10:20

종자 구하기(3월 29일/맑음 1-9도)

 

작년엔 팥과 땅콩에 도전했다. 결과는 대체로 만족. 팥은 햇볕에 널어놓은 걸 보고 여기저기서 팥이 좋다며 팔라는 얘기까지 들었다. 땅콩은 시기를 놓쳐 한 번 실패한 후 두 번째 심은 것들이 주렁주렁 꼬투리를 달고 나왔다. 워낙 심은 것 자체가 적었기는 했지만 그래도 열 번 이상은 삶아먹은 듯하니. 팥이며 땅콩 모두 괜찮았던 셈이다.

 

올해엔 잡곡 종자를 더 늘려 심기로 했다. 우선 콩을 3년씩이나 연작한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옥수수와 간작으로 심기도 하고, 한해엔 아래쪽 밭에 심었다가 다음 해엔 위쪽 밭으로 옮겨심기도 하고. 메주콩만 심은 것도 아니고 서리태며 팥과도 섞어 심기도 했으니. 큰 병해나 충해가 생기지는 않겠지만 한 가지만 계속 심으면 땅에게도 좋지 않을 터이고. 또 자꾸자꾸 안 해본 것들을 해봐야겠기에 좀 더 가짓수를 늘리기로 한 것이다.

 

지난주에 귀농본부와 괴산잡곡, 다음카페 두 군데에 잡곡 종자를 구한다는 글을 남겼다. 다행히도 주말을 지나면서 귀농본부와 괴산잡곡에서 메일이 왔고. 오늘 오후엔 본부 간사와 통화까지 하고 몇 가지 잡곡 종자를 받기로 했으니. 일단 출발은 좋다. 올 가을 꼭 채종까지 해서 나눔을 해야 한다는 다짐까지 했으니 귀농본부에서 보내준 잡곡은 좀 더 신경을 써야겠고. 다음 달 중순쯤 괴산잡곡을 통해 또 다른 종자들은 구입해야 할 듯. 지금으로선 다음카페 쪽에선 별다른 반응이 없으니 그렇다. 그래도 아직은 농사 준비할 시간이 넉넉히 남았으니 여기저기 더 알아봐야겠고. 카페에도 한 번 더 글을 올려야한다. 구한 것 또 구할 수 있는 것은 제하고 구체적으로 필요한 것만 추려서 말이다.

 

게으른 농부(4월 3일/맑음 0-17도)

 

대체 뭐 하고 살았나 싶네. 겨울 내내 베란다에 쌓아둔 것들을 보고 있으려니 드는 생각은. 참 게으른 농부다, 밖엔 없다. 서리태며, 메주콩은 그래도 털어놨으니 쭉정이, 콩깍지, 돌만 골라내면 되는데. 가마니로 한가득 담겨있는 팥은 까지도 않았으니. 이제 곧 올 농사준비도 슬슬 시작해야 하는데. 결국 또 닥쳐서야 일을 한다.

 

어제, 오늘 이틀을 꼬박 쭈그리고 앉아 돌 골라내고 쭉정이 골라냈더니 서리태는 끝이다. 봉지로 두 봉지가 나왔으니 첫 도전치곤 괜찮은 건가. 허나 심었던 면적을 생각해보면 그닥 수확량이 많은 건 아닐 듯. 서리태보다 적게 심은 팥이 반가마니니 그렇다. 그래도 종종 집에서 먹는 밥에 검은 콩을 넣어 먹을 수 있겠다, 서리태 두부며, 두유도 만들어 먹을 수 있겠다, 싶으니 흐믓.

 

다음 주엔 낮엔 실기 시험공부하고, 밤엔 팥이나 까고 골라야겠다. 한 일주일 하면 다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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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4 10:20 2011/04/04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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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준비

from 11년 만천리 2011/03/28 19:49

농사준비 - 첫째 날(3월 23일/맑고 바람 영하 7-9도)

 
겨우내 방치해뒀던 밭 정리를 슬슬 해야겠다. 아직까진 꽃샘추위로 뭘 심긴 이르고, 또 작년, 재작년 경험에 비춰봐도 한 달은 더 있어야 농사를 시작할 수 있겠지만. 다음 달 말에 있을 2차 실기시험도 준비도 해야 하고. 또 베란다에 늘여놓고 거두지 않은 서리태며, 팥도 골라야 하기에 시간이 많질 않다. 해서 바람이 좀 차긴 하지만 아침나절부터 밭에 나와 지주도 뽑아내고 지주끈도 일일이 풀어내 따로 모으고. 마음 같아선 나온 김에 다 해놓고 가면 좋겠건만. 당분간은 일 보단 자전거로 왕복하며 조금씩 몸을 만들 요량으로 금방 밭을 나선다. 한 일주일 일할 폭 잡고 플래카드도 걷어내고 지주며 지주끈도 정리하면 밭 갈때가 되지 않겠나 싶다.
 
농사준비 - 둘째 날(3월 24일/맑음 영하 3-9도)
 
이틀째 지주 해체작업이다. 가을 뭐 그리 바쁘다고 미뤄뒀던 일인데 역시나 손만 많이 간다. 물론 시간도 금방 지나가고. 두 시간 가까이 열라 일했는데도 다 못한다. 에구구. 언제 또 나와서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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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8 19:49 2011/03/28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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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배들과 했던 첫 술자리가 기억납니다. 정각원(正覺院)인가요. 그 아래 잔디밭이었습니다. 입학식이 끝난 지 두 시간도 되지 않은, 벌건 대낮에 한두 명을 빼곤 모두 모였는데. 딱 보기에도 꽤나 나이 살 먹어 보이는 선배들이 신입생들을 둥글게 앉혔더랬습니다. 그리고는 다섯, 아니 두서너 명 사이로 소주 한 병과 새우깡 한 봉지를 놓았구요. 대체 뭘 하려는 거지, 라는 생각이 채 들기도 전, 선배들은 술병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술잔은 없었고, 다들 처음이었겠지만 일명 병나발이라는 걸 봤더랬습니다. 어떤 선배는 반 넘게 마시기도 했고 또 어떤 선배는 그냥 마시는 시늉만 하기도 했지만. 눈이 휘둥그레, 입이 쩍. 가관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러고들 저러지, 그때였나요. 개 중 제일 늙수그레해 보이는 선배가 일어나 딱 한마디를 하더군요. “지금부터 술병을 옆으로 돌리는데 다음 선배가 술을 마시게 된다면, 오늘 집에들 못 간다.” 허걱.
 
2. 
기필코 동계올림픽을 개최하고야 말겠다는 일념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요. 부디 2018년에도 올 겨울처럼 눈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건만, 그것조차 사치스런 고민이란 걸 올림픽에 눈먼 사람들만 외면하고 있나봅니다. 게다가 구제역으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농민들은 생각지도 않고 연신 축제분위기를 띄우는 모습에. 또 뭔 일이 터져도 그저 대책이라곤 외국에서 사 가져오면 되는 것 마냥, 그러면서도 죽어도 잘못은 해외여행 갔다 온 사람만 따지고 드는 데. 더 가관인 건 파렴치한 범죄인이, 안하무인 재벌총수가 또 얼굴을 내밀고 있는 거 아닙니까. 이러니 때때로, 아니 번번이 그 일념이란 게 도대체 뭐 길래 이리도 혼란스럽기 만드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3.
지진 이후에 터져 나온 핵발전소 사고 때문에 정작 지진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가 없습니다. 1만 명이 넘었다고도 하고 1만 5천명이 넘었다고도 하는데도 말입니다. 대신 연일 냉각수가 어떻느니, 요오드가 어떻느니, 방사능 피폭량이 얼마냐느니. 이거 가만 보아하니 핵 공포가 지진과 쓰나미를 넘어선 것 같습니다. 하긴 체르노빌을 기억하자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사태가 일, 이십년 안에 해결되지 않을 게 뻔한 일이니 여간 우려스러운 일이 아니지요. 하지만 우리 정부는 단군신화에나 나오는 풍백(風伯)을 여전히 믿고 있나봅니다. 또 그렇게 애타게 찾고 목메어 매달리는 미국도 자국민 철수를 얘기하는데 일기예보로 풍향발표만 열심히 하고 있으니요. 그리고 대체 뭔 이득을 취했는지는 조사해보면 알겠지만. 비록 극미량라고 해도 이젠 유럽에서도 방사능 물질이 검출 됐다고 하는 판에 ‘허위사실’ 유포자를 처벌할 방법이나 찾고 있으니.  
 
4.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인기입니다. 모처럼 일요일 저녁시간에 노래 꽤나 한다는 사람들이 나와 노래를 한다는 것, 그것도 제 노래가 아닌 노래를 부른다는 것만 봐도 눈길을 끌만한데. ‘경쟁’과 ‘탈락’이라는, 방송에서조차 유행인 돼 버린 서바이벌을 넣었다는 데서 이미 시작하기 전부터 말들이 많았지만. 뭐 누군 ‘공정’한 ‘경쟁’을 통해 ‘스타’가 될 수 있다며 이런 방식을 옹호하기도 하지만. 노래를 꼭 그런 ‘경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만 부르라는 법도 없는 거고. 누구나 부르고 싶을 때 맘껏 부르면 그만 인 것이니. 뭐, 굳이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아무튼, 이제 겨우 시작했는데도 여기저기 설왕설래 말들이 많습니다. 김건모라는 가수도 가수지만. 그리고 아무리 시청률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라 해도 그렇지요. 만든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출연한 다른 가수들에 코메디언들까지 덩달아 한 목소리로. 그래두요, 그렇게 딴 소리들을 하는 게 그렇게도 큰 문제인가요.  
 
5.
정치판에 기웃거리는 학자들을 일컬어 ‘폴리페서’라고들 하지요. 정치라는 게 원래 정치인들만이 하는 게 아니니 굳이 ‘폴리페서’라 이름 붙일 필요도 없겠지만. 이상하게 이 정권 들어서는 ‘폴리페서’에 못지않게 ‘폴리테이너’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하지만 ‘폴리페서’와 ‘폴리테이너’는 참 다른 뉘앙스를 풍기고 있지 않습니까.  
  
하다못해 기자라는 직함이라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애널리스트라는 작자들이 나와 떠들어대는 말들은 버젓이 전파를 타고 사람들을 현혹하지만. ‘허위사실’과 ‘고급정보’라는 기준이란 게 고작 이따위로 가늠되는 것이라면.
 
오죽하면 ‘삼성공화국’이란 말까지 나올까요. 하기야 총수가 두 번씩이나 사면을 받을 정도니 이만하면 법위에 있다는 게 맞는 말일 겝니다. 범법행위를 한다 해도 알아서 죗값을 다 털어주니 안하무인은 기본이요, 파렴치는 서비스지요.
 
정각원아래서 시작된 그런 류의 폭력은 술자리에서만 있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지금 같았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을까, 여전히 의문으로 남지만. 커피 심부름에 대리출석, 도서관 책 반납, 개강파티니 MT 참석 강요까지. 서울대에서 내쳐진 모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지요. “이런 일이 있을 때 ‘못 버티겠으면 나가라’고 했지만 아무도 나가지 않아 교육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6.
자격이니 학위라는 것 따위가 진실을 가름하는 시대입니다. 또 패배한 자들이 하면 ‘불륜’이 되지만 승리한 자들이 하면 ‘로맨스’가 되는 시대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무엇보다 돈 많은 게 장땡인 사회입니다. 이도저도 아니면 하다못해 나잇살이라도 많거나 학번이라도 빨라야 살아남는 사회이지요. 자격, 학위, 승리한 자, 나잇살, 학번..... 20년도 더 된 선배들의 모습 속에서 또 이건희 회장과 김영희 PD, 가수 김건모의 얼굴에서 새삼 들여다보게 되는 ‘권력’의 다양한 모습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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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3 15:17 2011/03/23 15:17

사용자 삽입 이미지천근만근 진부령 고갯길에서 멈추다(2008년 9월 27일)

 
정말 천근만근이란 말이 이럴 때 딱 맞는 말이지 싶다. 영동과 영서지방을 연결하는 고갯길 가운데 제일 낮다는 진부령 길을 오르는데 이렇게 몸이 무거워서야. 아무리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감기 기운이 있었다고 해도 그렇지 이건 좀 너무한다 싶다. 암만 생각해도 몸도 몸이지만 오늘 걸어온 길이 최악의 길이어서 그런 듯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이냐 말이다.
 
가을 가뭄이 오래 지속되다 겨우 이틀 그것도 아주 쬐끔 비가 왔는데 가뭄 해결은 고사하고 날씨만 갑작스레 추워졌다. 한낮엔 20도 가까이 오른다고는 하지만 산간지방에선 첫 서리가 내린다고 하고 춘천만 하더라도 10도 아래로 기온이 떨어져 쌀쌀함이 이만저만 하지 않다. 물론 아침, 저녁 이외엔 맑은 하늘에 선선한 바람이 딱 가을 날씨를 보여주긴 하지만 밤과 낮 기온차가 심해 감기 걸리기엔 딱인 날씨다. 그래서인지 느닷없이 여행가자 마음먹긴 했지만 출발부터 걱정이 앞선다. 안 그래도 어제 저녁부터 재채기가 슬슬 나오는 게 아무래도 수상하다.
 
어둑어둑한 새벽녘에 출발한 덕에 한계삼거리에 일찍 도착했다. 원래는 중간에 한 번 군내버스로 갈아타야하지만 운전기사 아저씨께 부탁해 정류장도 아닌 곳에서 내릴 수 있어 더 빨리 도착한 게다. 그래봐야 20여분이지만 이 추운 날 표 다시 사고 버스 기다리지 않은 게 어디냐 싶고, 정말 그런 게 버스 바깥은 생각보다 더 춥기만 하다. 서둘러 휴게소로 들어가 인삼차에 생강차를 마셔보지만 잠깐뿐이다. 아무래도 좀 걸어야 몸에서 열이 나려나.
 
헌데, 출발부터 고약하다. 날씨 좋은 주말이라 그런지 웬 차가 이리도 많은지. 것도 순 관광버스다. 거기에 걸으면서 안 거긴 하지만 곳곳에 길을 내느라, 혹은 넓히느라 공사장이 널려 있어 거기서 오고가는 웬 트럭들이 그렇게도 많은지. 것도 순 츄레라에 덤프트럭이다. 또 길은 어찌나 좁은지. 갓길마저 거의 없다시피한 길이라 양쪽으로 트럭이나 버스가 지나칠라면 걷기를 멈추고 길 바깥으로 저만치 물러서야한다. 며칠 전 달리기 하던 이가 여기 이곳 진부령을 넘다 차에 치었다고 하던데 남 일 같지 않다. 신경이 곤두선다.
 
결국 한 시간도 채 걷지도 못하고 가드레일을 넘어 강가 소나무 숲으로 피신하고는 주섬주섬 아침과 점심때 먹을 요량으로 어제 밤 준비해 둔 감자며 김밥을 하나씩 꺼내든다. 날씨는 무쟈게 좋은데 길은 엉망이고, 코스모스에 이름 모를 꽃들이 여기저기서 손을 흔드는데 눈은 함부로 돌릴 수는 없고. 아무리 봐도 미시령과 진부령이 갈라지는 곳까지는 가야 한 숨 돌릴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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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뒤로 햇볕이 따가워질 무렵까지는 그렇게 질주하는 차들을 피하느라 어기적어기적 걷는데 그 와중에도 길 위에 떨어져 있는 도토리 줍기에, 길가에 피어 있는 해바라기 씨 털기에 할 짓은 다 한다. 또 학교 안에 자그마한 공원까지 갖고 있는 용대초등학교에선 뒤늦은 밤 줍기에 시간가는 줄 모르니 이 재미라도 없었으면 무신 재미로 걸었을까.
 
솔직히 백담사는 그닥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다른 이들은 어떤 이유에서 백담사를 찾을지 모르겠지만. 광주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고는 되레 그 대가로 대통령까지 지낸데다 아직도 국가원로라고 무슨 일 있을 때마다 신문이며 티비에서 난리를 치는 그 잘난 대머리를 덥석 받아준, 그걸로 마치 이승에서의 죄를 다 속죄 받은 양 고개를 뻗뻗이 쳐들 수 있게 만든, 그놈의 절이 대체 모하는 절이고 어떤 절인가 궁금하긴 했었지만 말이다.
 
백담사로 들어가는 길부터 꼬였다. 입구에서 확인했을 땐 분명 칠백 미터만 가면 셔틀버스를 탈 수 있다고 했는데 한참을 가도 보이질 않는데, 겨우겨우 도착해보니 여기저기 임시 주차장마다 관광버스가 그득그득. 걸어서는 2시간이고 차로는 10분이라는데 버스 값은 1,800원, 또 버스타려는 줄은 끝이 보이질 않네. 이럴 줄 알았다. 아까 입구에 길 물어보고 난 후 별 생각 없이 걸어 들어온 게 잘못이지. 애당초 별 구경할 맘 없다는 걸 이심전심으로 알았다면 여까지 오지도 않았을 텐데. 괜스레 시간만 버리고 배만 잔뜩 고프다. 에라. 배나 채우자.
 
순두부와 콩비지로 맛나게 점심을 먹고 나니 아침에 그렇게 쌀쌀했던 날씨가 언제 그랬냐는 듯 후텁하다. 이제 뭐가 그리 바빠 멀쩡한 길 나두고 산허리를 뚫어내고 또 길을 낸 미시령터널길과 갈라지는 곳까지만 가면 한 시름 놓을 것이니 쉬엄쉬엄 따가운 가을 햇살을 피해 걷는다. 계곡가 바위에서 잠시 쉬기도 하나 누가 버리고 간 것인지 음식물 쓰레기 냄새에 금방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도 하고 길 이쪽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면 길 저쪽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길 이쪽에서 ‘컹컹’ 소리가 나면 또 길 저쪽으로 뛰어갔다 하기도 하고, 맑은 가을 하늘을 한참이나 올려다보며 한참을 쉬기도 하고, 그렇게 다문다문 걸으니 어느새 진부령 꼭대기다.
 
출발할 땐 내처 걸어 하룻밤 잔 뒤 간성까지 걷자 했는데 막상 진부령에 오르고 나니 아침 내내 그리고 백담사에서의 헛걸음에 오후엔 덩치가 산만한 개들 때문에 녹초가 됐다. 그야말로 몸과 마음이 천근만근이다. 해서 때 마치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서 있는 원통행 버스에 오른다. 더 걷다가는 제대로 감기에 걸릴 것 같기에. 오늘 하루 종일 씨름하며 걸었던 길이 휙휙 순식간에 차창 밖으로 지나쳐간다. 아, 힘들다.
 
* 스물세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한계삼거리에서 진부령까지 44번 국도를 따라 약 23km, 걸은 시간 약 8시간 30분.
 
* 가고, 오고
춘천터미널에서 원통을 거쳐 속초로 가는 시외버스는 한계삼거리에서 정차하지 않지만 맘 좋은 기사분만 만난다면 내릴 수 있으니 시도할 만하다. 아님 원통에서 군내버스로 한 번 갈아타야 하는데 춘천에서 첫차를 타면 곧 한계삼거리를 거쳐 진부령까지 운행하는 군내버스를 탈 수 있다. 시간상으로는 전자가 후자보다 20여분 빨리 도착한다. 진부령에서는 반대로 군내버스를 타고 원통에 와서 다시 춘천으로 가는 시외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거진에서 춘천으로 운행하는 시외버스가 있긴 한데 진부령에서 정차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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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0 23:23 2011/03/10 23:23

'애잡짤하다'

from 글을 쓰다 2011/02/14 20:10
초속 50m가 넘는 태풍도 견뎌냈던 한 노동자가 목을 맸습니다. 높이 35m, 85호 크레인.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지회장 김주익은 정리해고와 손해배상, 가압류 철회를 요구하며 129일을 그렇게 머물다 떠났습니다. 그리고 8년. 연일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던 어느 날 새벽, 또 한 노동자가 다시 크레인에 오릅니다. 박창수에 이어 김주익, 곽재규까지 세 명의 동지를 열사라는 이름으로 떠나보낸 뒤, 몇 년 째 보일러를 켜지 않고 살던 김진숙 지도위원(민주노총 부산본부)이 말입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뼛속까지 찬바람이 파고드는데. 그렇게도 아끼던 동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곳에 올라. 기어이 그 외로운 영혼을 안고 살아서 내려오겠다고 다짐했답니다. 조합원들은 그런 그를 지키기 위해, 다시 떠나보낼 수 없는 동지들을 위해, 오늘도 밤을 꼬박 새우고 있구요. ‘노동자가 한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 그런데도 자본가들과 썩어빠진 정치꾼들은 강성노조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아우성’이란 유서를 남긴 김주익 열사. ‘지난 일요일. 2003년 이후 처음으로 보일러를 켰습니다. 양말을 신고도 발이 시려웠는데 바닥이 참 따뜻했습니다. 따뜻한 방바닥을 두고 나서는 일도 이리 막막하고 아까운데 주익씨는.. 재규형은 얼마나 밟히는 것도 많고 아까운 것도 많았을까요. 목이 메이게 부르고 또 불러보는 조합원 동지 여러분’이란 글을 남긴 김진숙 조합원. 한 발, 한 발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를 떠올리며, 또 한 발, 한 발 일터에서 쫓겨나야 하는 동지들과 살아남았음을 미안해해야하는 조합원들을 떠올리며 크레인에 올랐을 그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듯 안타깝고, 또 안타까워서 애가 탑니다. 
 
애잡짤하다: 가슴이 미어지듯 안타깝다. 또는, 안타까워서 애가 타는 듯하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에 올랐다는 얘길 듣는 순간 김주익 지회장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리고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주익씨 영혼을 안고 반드시 살아서 내려가겠습니다”라고 약속한 김진숙 지도위원을 보자니 애잡짤해 통 일이 손에 잡히질 않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1/02/14 20:10 2011/02/14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