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태 심기

from 11년 만천리 2011/05/24 00:32

신문지 멀칭 - 둘째 날(5월 17일/맑음 7-24도)

 

일주일 전 농협에서 사다 심었던 모종 가운데 참외와 오이가 하나씩 죽고 말았다. 심을 때부터 영 미덥지 않았는데 결국 살아남지 못한 것이다. 유난히 잎도 작고 뿌리도 잘 뻗어 있지 않았던 것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설마 죽기까지야 하겠나, 싶었는데. 모종 심고 사흘 내리 게릴라성 폭우를 맞은 게 어린 모종을 살려두지 못한 것 같기도 하고.

 

모종 몇 개 사러 농협까지 가는 건 아니다 싶어 중앙시장으로 갔더니 모종 값이 장난이 아니다. 한 두 개니 그냥저냥 사고 말았지 몇 십 개, 몇 백 개 단위였다면 도로 나왔을 터. 또 8시가 넘은 시간에 나온 터라 까딱 지체하면 땡볕에 일할 듯해서 두말 않고 모종을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서둘러 밭으로. 물 길어 모종 심고 다 못 끝낸 신문지 멀칭을 마저 다하고 나니. 11시. 적당한 시간에 돌아올 수 있어 다행이다.

 

두 번째 이것저것 심은 날(5월 19일/흐림 15-24도)

 

비 소식에 마음은 급한데 서울서 오는 식구들이 늦는다. 작년엔 5월말까지 팔았던 것 같았던 농협이 벌써 모종을 철수 시킨 탓이다. 다시 중앙시장까지 가서 모종을 사서 오느라 7시 조금 넘어 출발했다는데 집에 오니 10시 30분. 서둘러야겠다.

 

처음 모종을 심어 보는 지라 이것저것 가르쳐주며 씨앗을 심으려니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도 어려운 게 있으랴. 한, 두 번 하니 금방 또 뭐든 할 수 있다. 해서 혼자였다면 배는 시간이 걸렸을 일들이 금방이다. 한 사람이 죽 씨앗 심을 자리를 만들며 또 한 사람이 그 자리에 씨앗 심고, 마지막 뒤따라오는 사람이 물주고 흙 덮으면 끝. 역시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군.

 

그나저나 벌써 열흘이나 됐는데. 지난 번 심은 것들이 당체 싹이 나질 않는다. 어찌 된 걸까. 아직은 아침 기온이 한참 낮은데, 그것 때문일까. 도무지 알 수 없으니 일단은 기다리는 수밖에. 그래도 걱정은 걱정이다.

 

서리태 심기(5월 20일/비 오락가락 17-21도)

 

자전거에 올라 한참을 달리니 비가 오고. 서리태 심을 땐 비가 안 오고. 다 심고 집에 오려 자전거 타니 다시 비가 오고.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이다. 그래도 때맞춰 내리는 비에 서리태를 다 심었다. 배 쫄쫄 굶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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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4 00:32 2011/05/24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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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요롭다'

from 글을 쓰다 2011/05/19 21:22
비슷비슷한 어투와 목소리 때문일까요. 집회장에는 난생 처음 왔다는 사람들도 세 번 정도 식순이 지나고 나면 벌써부터 식상하단 소리가 나오곤 합니다. 물론 연단 위에선 이들에게는 절실함과 굳은 의지가 그리 나타나는 것이겠지만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음이 틀림없을 터인데도 어찌 그리도 한결같은지. 하지만 그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결의대회에서도, 끓어오르는 분노가 가득한 규탄대회에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니 그 분은 구수한 사투리로 외치는 구호 하나만으로도 참가자들을 절로 웃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지요. 결코 허황된 몸짓이나 말투가 아닌, 권력에 대한 해학과 풍자, 조롱, 민중에 대한 올곧은 사랑과 진실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는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 구호 하나, 하나. 그것은 우리의 웃음‘이자, ‘무기’였습니다.
 
“다운 다운 더블유티오(down down WTO)”
“아우워 워드 이스 아우워 웨폰(our word is our weapon)”
 
종요롭다 : 없어서는 아니 될 만큼 긴요하다. 사물에 있어서 가장 중추(中樞)의 부분이 될만하다.
 
전라남도 해남 출신으로 농민운동을, 민중운동을. 아니 스스로를 ‘전선운동가’라 부르며, 치열한 삶을 살아왔던. 권력을, 부를 움켜쥔 자들에게는 한 알의 ‘쭉정이’겠지만. ‘여의도에 아스팔트 해방농사’를 맨 앞에서 이끌어왔던 종요로운 사람, 정광훈. 그가 이제 광주 망월동 민중항쟁 열사들 곁에, 고향 후배 고(故) 김남주 시인의 옆에 고이 잠들었습니다.
 
1년 내내 씨 뿌리고 뼈 빠지게 거두어서
보리농사 망하고 고추농사 조지고 남은 것은 빚 덩이뿐
이 세상에 지어먹을 농사가 하나 있어
여의도에 아스팔트 해방농사 지어보세
너 살리고 나 살리는 아스팔트 농사 이 농사가 최고로세
농민해방 앞당기는 단결투쟁 농사 이 농사가 최고로세
 
사람답게 살겠다고 죽자 살자 일을 해도
사람구실 못하고 이내 신세 조지고 남은 것은 쭉정이뿐
이 세상에 지어먹을 농사가 하나 있어
여의도에 아스팔트 해방농사 지어보세
너 살리고 나 살리는 아스팔트 농사 이 농사가 최고로세
농민해방 앞당기는 단결투쟁 농사 이 농사가 최고로세 이 농사가 최고로세
(고(故) 정광훈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이 쓴 ‘아스팔트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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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9 21:22 2011/05/19 21:22

신문지 멀칭

from 11년 만천리 2011/05/16 09:01

콩 고르기(5월 9-11일/줄곧 비)

 
베란다에 쌓여 있던 콩 한 자루를 다 고르고 나니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기분이다. 시험도 끝났겠다, 급한 대로 이것저것 모종이며 씨앗도 심어놓은지라, 사흘 내리 비가 내린 것도 한 몫. 작년 10월 말에 거두었으니 꼬박 7개월 만이다. 가끔 자루를 볼 때마다 언제 골라내지, 언제 치우나, 했건만. 도 닦는 셈치고 아무 일도 않고 콩만 고르니 딱 사흘 만에 일을 끝낸 것이다. 다 고르고 얼추 무게를 재보니 16kg. 재작년 것도 아직 남았으니 콩밥만 먹어도 일 년은 넘게 갈 수 있을 듯하다. 여름엔 시원한 콩국수도 해먹고, 생각날 때마다 두부도 해먹고. 매번 그렇지만 이리 거두어 자루에 담아두니 뒤가 든든하다.
 
신문지 멀칭 - 첫째 날(5월 12일/흐림 13-20도)
 
사흘을 내리 비가 내리더니 내일부턴 황사란다. 이래가지고야 어디 일 하겄나, 싶다. 질척거리는 밭에 들어가 봐야 땅만 굳어지고 풀이 올라오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딱히 일이 없긴 하지만. 이래저래 어영부영하다 또 나중에 몰릴 게 뻔해 느지막이 밭에 나가 따 먹을 고추, 토마토 심은 곳에 신문지 멀칭을 한다. 넉넉히 준비해갔다면 여기저기 멀칭을 했을 터인데. 어제까지 골라낸 콩깍지며 돌을 짊어지고 오느라 신문지를 조금밖에 가져오지 않아 일이 금방 끝났다.
 
* 작년에 썼던 호밀을 올 해에도 골에 죽 뿌렸는데 벌써 싹이 났다
* 5월 중순(16일): 조, 기장, 들깨 심기
* 5월 말: 수수, 콩(메주콩, 서리태), 참깨, 땅콩, 팥, 녹두 심기
 
신문지 멀칭 - 둘째 날(5월 14일/바람 셈 8-25도)
 
바람 센 날 신문지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누가 보면 대체 뭐 하는 가 싶을 게다. 좀 느긋하게 맘을 먹으면 바람 없는 날 쉽게 할 수 있을 터인데. 이리해서 또 옛말을 몸으로 아로 새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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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6 09:01 2011/05/1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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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바다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네(2008년 10월 3일)
 
날이 춥다. 불과 일주일 사이라지만 설악산엔 단풍이 들었다, 하고, 대관령엔 첫 서리가 내렸다, 하니, 어느 틈엔가 그렇게 가을은 이만치 다가섰다. 10월이라는 숫자가 주는 것보다 더 무겁게 옷을 걸치고는 그 무슨 급한 일이 있기에, 채 해가 뜨기도 전에 이리도 서둘러 집을 나서는 지. 원통을 거쳐 속초로 향하는 버스 안에는 이른 추위만큼이나 이른 히터가 조용히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운전기사 아저씨는 자판기 커피를 홀짝홀짝 넘기다 조용히 표만 받아든다.
 
그렇게 다시 길 위에 섰다. 천근만근 몸을 이끌고 올랐던 그 진부령 그 꼭대기에. 성큼 다가선 가을 날씨 탓인지, 아님 고갯마루라서인지, 이도 저도 아닌 인적 없는 이른 아침이 주는 황량함 때문인지, 바람이 쌀쌀맞기만 하다. 또 아쉬움에 에둘러 옆길로 많이도 샜는데 이제 끝이 저만치다 생각하니 마음까지 추워진다. 이젠 더도 돌아갈 수도 없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필요 때문에, 다만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걸어갈 때 그 쇠약함이 느껴질 뿐이다.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 걸어갈 때 그 쇠약함 속에는 가끔 출발할 때 느꼈던 고통을 스르르 녹일 정도의 힘과 아름다움이 감추어져 있는 경우가 있다. 길에 부대껴 말갛게 씻겨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필요 때문에 침식당한 나머지 고통은 그 날카로움이 무뎌진 것이다. - 『걷기예찬』. 다비드 르 브르통.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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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추위도 피할 요량으로 미술관 문을 밀어보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 내부수리란다. 하는 수 없이 혹여나 하고 준비해온 겉옷을 하나씩 더 걸치고는 신나게 내리막길을 내달으니 몸에서 열이 나는 듯 어느새 추위가 한결 가신다. 이내 발걸음에 맞춰 노랫가락을 흥얼흥얼, 이 얘기 저 얘기를 도란도란 나눈다.
 
돌이켜보니 걷는 내내 싸우기도 참 많이 싸웠지만 그보다는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얘기하며 마음을 나누고 영겁의 인연을 생각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리고 가끔은 길이 주는 아름다움에 겨워 한참을 나아가지도 못하고 서성거렸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또 때때로 자연이 주는 성스러움에 한없는 영적인 충만함에 떨려오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것이, 그 수많은 겸허가 이렇게 또 걸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일런지. 
 
걷는 사람은 겸허하다. 그는 자신을 지배하는, 그리고 삼켜버릴 수 있는 자연의 가운데에서 스스로가 작다는 것을 느낀다. - 『걷기의 철학』. 크리스토프 라무르.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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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갯길을 다 내려왔나 싶으니 오늘은 바다를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발걸음이 빨라진다. 중간중간 웃옷을 벗느라, 아침대신 준비한 감자며 옥수수를 먹느라 잠시 서기는 했어도 두 시간 넘게 가방 내려놓고 다리 뻗으며 그렇게 쉬지 않고 걸어왔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갓길마저 좁은데다 이쪽저쪽으로 굽어진 길로 차 또한 조심을 떠느라 온통 신경이 날카로웠는데도 말이다. 어째 이 국도라 불리는 길들을 걸을 때마다 이 모양인지. 차량이 뜸해진 틈을 타 길 가운데로 걸어보기도 하지만 이내 득달같이 달려드는 바퀴를 피하느라 되레 더 피곤하기만 할뿐이다. 포기하고 길 가에 바짝 붙어 열심히 걷는다.
 
기사들은 걷지 않고 말을 탔으며, 자신이 우월하다는 생각으로 말을 탔다. 그들은 터벅터벅 걷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 꼿꼿이 앉아 있었다. 말들은 길을 엉망으로 만드는 데 한몫을 했다. 말 때문에 길가로 밀려난 보행자들은 말에게 차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말을 탄 사람은 먼지와 오물 속에서 뒤따라오는 보행자들을 앞서 나갔으며, 심지어 그들을 데려다가 자신의 말을 먹이고 돌보는 일을 시키기도 했다. - 『걷기, 인간과 세상의 대화』. 조지프. A. 야마토.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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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령유원지를 지나는 동안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 쉬는 틈에 잠시 내려 가볼까, 하면 저만치 발아래로 보이는 게 내려가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해서 소똥령마을에서는 때마침 배도 고픈 김에 쉴만한 물가를 찾아 나서는데 물은 많으나 당체 그늘이 보이질 않아 또 그게 쉽지가 않다. 하는 수 없어 마을 입구 호두나무 아래 잘 짜 맞춘 평상에 올라선다. 헌데 꿩 대신 닭이라고 하나. 키 큰 나무 그늘에 시원한 바람이 목덜미를 적시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오랜만에 양말 벗고 다리까지 쭉 뻗은 채 누워 김밥으로 배도 채우고 쪽잠도 잔다. 또 아침나절 걸었던 길을 끄적끄적 되새김질해본다. 진부령 꼭대기 찬바람, 돌고 돌아가는 46번 국도, 샛노랗게 물들어가는 논, 구름 한 점 없는 높디높은 하늘, 무엇을 적을까 연필을 굴려보지만 역시나 시간만 적어두고는 곧 일어선다. 아마도 언제나처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것들을 말로, 글로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말은 길과 같다. 말을 하거나 글을 쓰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단번에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서사적 요소 혹은 시간적 요소로 보건대, 쓰기와 걷기는 서로 닮았다. 미술과 걷기가 서로 다른 것처럼 말이다. - 『걷기의 역사』. 레베카 솔닛. p.416
 
사용자 삽입 이미지결국 한낮에 잠깐 평상에 누웠던 것이 마지막으로 쉰 게 됐다. 아침과는 달리 머리 위에 내리쬐는 햇볕이 도로 여름으로 되돌아 간 것처럼 뜨거운데다 쉬면서 아무생각 없이 물을 다 마셔버렸는데 도대체 가게는커녕 인적 없는 집들만 쭉 길가에 서 있었던 게다. 조금만 더 가면 마을이 나오겠지, 조금만 더 가면 물이라도 마실 수 있겠지, 아니 주유소 자판기라도 있지 않을까, 라며 걷고 또 걸었는데 어느새 간성읍까지 오고 말았으니. 끝내 바다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한 숨도 돌리지 못하고 걷고 또 걷고, 걷기만 했다.
 
거의 탈진상태로 대대삼거리에 도착한 것도 모자라 거진읍내를 한 바퀴 다 돌고서야 겨우 터미널을 찾았는데, 이런, 춘천행 버스가 분명 있어야 할 텐데, 그게 없다. 더위에 치치고, 물 한모금도 마시지 못한 채 미친 듯이 걷기만 한 건 버스 시간을 맞추려고 한 것도 있는데. 이리 되고 나니 허탈함에 다리에 힘이 쭉 빠진다. 하지만 어쩌겠나. 확실하지 않은 정보만 믿고 길을 나선 게 죄지. 덕분에 시원한 물냉면으로 갈증도 풀고 지친 다리도 주물러 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이제나 올지, 저제나 올지, 승강장에 쭈그리고 앉는다. 건너편 택시 승강장엔 손님 없는 택시들만 줄줄이 서있고 그 너머로 언듯언듯 보이는 설악산 줄기 위로 짧은 가을 하늘이 금세 붉어진다.
 
* 스물네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진부령 꼭대기에서 46번 국도를 따라 거진읍 대대삼거리까지 약 23km를 6시간 동안 걸음.
 
* 가고, 오고
춘천터미널에서 진부령을 거쳐 거진이나 속초로 가는 시외버스가 있기는 하나 원통에서 한 번 버스를 갈아타고 가는 것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이다. 거진에서 춘천으로 오는 시외버스는 오후 2시 10분이 막차이므로 부득이 홍천을 경유해야 한다. 홍천으로 가는 시외버스 역시 자주 있는 편이 아닌데다 버스 시간도 최근에 바뀌었으므로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홍천에서 춘천은 꽤 늦은 시간까지 버스가 다니니 일단 홍천으로만 나오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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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1 08:10 2011/05/11 08:10

바빴던 일주일

from 11년 만천리 2011/05/09 11:27

올 농사계획 세우자 - 첫째 날(5월 2일/짙은 황사 7-23도)

 

농사짓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준비했던 시험이 끝났다. 막판엔 시험 자체에 목메는 바람에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지만. 그래도 뭔가 알아간다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 그나저나 노동절에 웬 시험이람. 

 

올 농사는 작년보다 더 다양한 작물을 심는다. 따라서 밭 만드는 일도 신중해야 한다. 일단 귀농본부에서 받은 종자들은 널찍이 따로 떼어서 만들어야 할 판이고. 여기저기에서 많은 사라들이 보내준 씨앗들도 또 따로 떼어서 만들어야 한다. 거기에 서울 동생네 밭도 쪼그맣게 만들어야 하고 우리 먹을 과일 심을 곳도 따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나머진 죄다 서리태와 팥.

 

내일도 오전까진 황사가 심하다고 하니 오후에 느지막이 밭에 나가 어떻게 밭을 만들어야 할지 찬찬히 생각해봐야겠다. 시험이 끝났으니 잠깐 놀고는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이미 많이 늦었으니. 그러나 저러나 어제가 노동절이었니, 한마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그대가 잃을 것은 착취의 쇠사슬이요. 만국의 농부는 유기농하라. 그대가 잃을 것은, 음. 석유의 쇠사슬이다. 

 

* 이번 주 계획

- 토요일 비 소식이니 목요일까진 밭을 만들고

- 금요일 오전엔 골에 호밀, 율무 심고, 오후엔 참외, 토마토 등 모종 심자

 

올 농사계획 세우자 - 둘째 날(5월 3일/황사 11-19도)

 

오랜만에 밭에 나가 괭이질을 했더니 팔뚝이 다 쑤신다. 8시 반쯤부터 11시 조금 넘어서 까지 일했으니 겨우 2시간 반인데. 배고픈 건 10시부터고 10시 반이 지나니까 괭이 잡은 손이 후들후들. 아무래도 목요일까진 꼬박 밭 만들기 해야 겨우 될까 싶다. 토요일에 비가 온다고 하니 무조건 금요일엔 호밀을 뿌려야하니, 내일부터라도 속도를 내야 한다. 정 안되겠음 오후에도 나가봐야겠다.

 

* 5월에 할 일

- 10일 이전에 호밀, 옥수수, 율무, 토종오이 심기와 각종 모종내기(올 핸 토마토와 참외만 심는다. 고추는 50주)

- 20일 이전에 조, 수수, 고구마 심기

- 30일 이전에 기장, 들깨, 서리태, 메주콩, 쥐눈이콩 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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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 만들기 - 첫째 날(5월 4일/약한 황사 6-22도)

 

어젠 팔뚝이, 오늘은 종아리가 땡긴다. 아무리 운동부족이라고는 하지만 좀 심하지 싶다. 겨우 두, 세 시간씩밖에 일한 것 치곤 말이다. 겨우겨우 모종 사다 심을 곳하고 귀농본부에서 보내준 종자들, 다음 카페에서 얻은 씨앗들 심을 자리만 만들었는데도. 시간은 훌쩍 지나고 다리는 저리고. 배고프단 핑계로 또 일찍 돌아온다.

 

밭 만들기 - 둘째 날(5월 5일/맑음 8-24도)

 

아침 일찍 나와 한참을 일하고 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거. 내일 고랑에 쭉 호밀을 뿌릴 것인데 그때 두둑 만들기를 하면 두 번 일하지 않아도 될 듯. 서둘러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는 밭 이쪽저쪽 귀퉁이로 물 빠질 길만 낸다. 지난 번 밭 갈고 배수로를 안 팠더니 어떤 데는 아직도 질퍽질퍽. 내일 밤부터 비, 하루 쉬었다 또 월요일, 화요일 비가 온다고 하니 배수로 만드는 일도 급한 셈.

 

모르긴 몰라도 1년에 300일은 어린이 날일 터인데도 뭔 어린이 날인지. 차도 1개가 주차장이 되고 쏟아져 나온 아이들에 그 부모들까지. 그 어수선한 틈을 헤치고 학곡리 농협에 나가 내일 심을 모종 이것저것을 사다 나르니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 맘 같아선 베란다에 쌓여 있는 콩도 치우고 싶지만 그건 정말 마음뿐.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겨우겨우 일어나 내일 심을 호밀만 챙겨둔다.

 

* 고추 모종 50개

* 아삭이, 오이고추 각 4개씩

* 방울토마토 10개, 토마토 4개

* 애호박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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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5월 6일/맑음 8-27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골에 호밀을 심었다. 예보로는 밤늦게나 온다던 비가 한창 일할 때 와 고생을 좀 했지만. 그래도 작년엔 이틀 걸려 했던 일을 하루에 다 마쳤으니 몸은 힘들어도 기분은 좋다. 또 토마토며 고추 모종 몇 개도 같이 심었는데, 따로 물을 길러오는 수고를 하지 않았으니 시간도 절약된 셈. 하지만 빗속에서 괭이질을 했더니 손바닥 여기저기에 물집이 잡히고. 옷은 호밀 물이 또 여기저기 들어 알록달록. 모종도 모종이지만 씨앗을 심지 못한 것도 마음에 걸린다. 4월 말에는 심었어야 할 것들도 있는데다 월요일부터 또 비가 온다고 하니 일요일 하루에 다 심을 수 있을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고구마도 심어야 하고 사다 놓은 고추도 심어야 하고. 휴~. 일이 몰리고 있군.

 

하루 종일 이것저것 심다(5월 8일/맑음 11-18도)

 

8시 조금 넘어 오라는 말에 느긋이 나섰던 농협엔 훨씬 전부터 나와 있어 보이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안 그래도 한창 바쁠 때인데다 때맞춘 비 소식에 오늘 중으로 모종 심기를 마치려는 듯. 다들 바쁜 마음에 길게 늘어선 줄 뒤로 여기저기서 난리도 아니다. 들어오는 모종을 전산처리가 돼야 다시 팔 수 있는데 그게 시간이 걸리니 말이다. 벌써 해는 중천에 떴고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렸다는 사람들도 있고.

 

결국 삼십분을 기다렸다 겨우 고구마와 참외 모종을 사들고 다시 집으로. 또 집에서 전전날 사뒀던 고추 모종까지 자전거에 싣고 밭으로 향하니 벌써 9시. 목 뒤로 햇볕이 따갑다. 점심 전까지 고구마를 다 심고 옥수수며 이것저것 씨앗들도 다 심으려 했는데 결국. 겨우 고구마 200주 심고 나니 12시가 훌쩍 넘는다. 이러다 이거 가져온 거 오늘 내로 다 심을 수나 있으려나.

 

결국 밥은커녕 대충 빵으로 요기하고. 참외 심고, 옥수수 심고, 고구마 모자란 것 같아 중앙시장 가서 다시 100주 한 다발 사다 더 심고. 귀농본부와 다음카페에서 여러 사람들이 보내준 씨앗들 이것저것 심고. 물집 잡힌 손가락이 쥐어지지 않을 때쯤 되니 그럭저럭 마무리. 하아 힘들다. 대체 몇 시나 된 거야. 허걱. 4시 반. 꼬박 7시간을 내리 밭에서 일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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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마 300주

* 참외 10개

* 오이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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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9 11:27 2011/05/0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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