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 세우기

from 10년 만천리 2010/06/15 09:49

단비가 내리다(6월 7일/무더움 16-32도)

 

비가 온다고 해서 팥을 심었다가 낭패를 봤던 게 지난 달 30일이니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물론 팥을 심기 전에도 비가 오지 않았으니. 심어 놓은 팥도 팥이거니와 다른 것들도 걱정이다. 근 보름 이상 비가 오지 않았으니. 헌데 어제 오후, 먹구름과 함께 소나기가 시원하게 내리는 게 아닌가. 그야말로 단비다. 마음 같아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더 내렸으면 하는데. 그거야말로 사람 맘이고. 

 

단비가 내리고 나니 일이 밀린다. 방치해뒀던 밭 입구 쪽도 두둑을 만들어 콩을 심어야 하고. 물먹은 풀도 덩달아 쑥쑥 올라오니 미처 손대지 못했던 곳들도 김을 매줘야 하고. 오늘 오후 또 소나기가 오면. 고추며, 토마토, 가지, 오이, 호박 등에 지주도 세워줘야 하니. 한 사나흘은 아침, 저녁으로 부지런히 밭에 나와야겠다.

 

매고 또 매고(6월 8일/무더움 15-32도)

 

소농은 풀을 보고도 안 매고, 중농은 풀을 보아야 매고, 대농은 풀이 나기 전에 맨다는 농사 속담이 있다. 물론 여기서 소농, 중농, 대농의 의미는 농사를 많이 짓는다거나, 또는 농사로 얼마나 돈을 벌었느냐, 로 가름하는 것은 아니다.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그래도 굳이 따지자면. 농사를 잘 짓느냐, 못 짓느냐, 정도가 아닐까.

 

이 기준으로 보자면 작년과 재작년은 소농에서 중농을 왔다, 갔다 한 것 같다. 재작년엔 풀이 발목까지 자라고 나서야 호미를 들었고. 작년엔 풀이 올라오는 즉시 김을 매주기 시작했는데. 결과는 풀천지. 그렇다면 올 해는?

 

아직까진 풀을 잘 잡아나가고 있는 중이다. 무엇보다도 밭을 만들고 나자마자 고랑에 호밀을 잔뜩 뿌려놓았는데. 그새 어떤 것은 호밀을 매달기 시작 했을 만큼 고랑에는 풀을 볼 수 없다. 또 신문지와 플래카드이긴 하지만 고추며, 가지, 오이, 호박 등을 심은 곳엔 멀칭을 했고. 고구마, 감자, 콩 등을 심은 곳은 이틀이 멀다하고 번갈아 가며 초벌, 애벌 김매기를 해줬더니 풀이 고만고만하다. 어찌 이 정도면 중농정도는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가만. 풀을 보면 농약부터 찾는 이들과 반대로 풀도 작물처럼 잘 보살피는 이들은 대농, 중농, 소농 중 어디에 속하는 걸까?  

 

지주 세우기 - 첫째 날(6월 9일/무더움 16-33도)

 

연일 무더위다. 급기야 오늘은 33도. 이 정도면 한여름 불볕더위다. 6월인데 이 정도면 올 여름은 얼마나 더울까. 걱정이 앞선다.

 

비가 오고 나면 지주를 세워줘야 겠다, 마음먹고 있는데 통 비 소식이 없다. 예보로는 주말쯤 기온이 한 풀 꺾이기는 한다고 하는데. 여전히 비가 온다는 얘기는 없고. 다음 주까지도 햇볕은 쨍쨍.

 

하는 수 없다. 이번 주를 넘기 전에 지주를 세워야지. 비가 온 후라면 땅에 박기가 수월할 텐데.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작년에도 썼던 각목 지주를 일부는 보수도 하고 일부는 새로 만들기도 하고. 망치로 뚜드려 박기도 하고. 짱돌로 내려치기도 하고.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간에 나와 일을 해도 땀이 흠뻑. 아무래도 저녁때보단 아침나절에 일하는 게 나을 듯싶다.

 

지주 세우기 - 둘째 날(6월 10일/무더움 18-33도)

 

아침, 저녁으로 밭에 나가 어제 세워둔 지주에 끈을 묶어 준다. 틈틈이 고구마 심은 곳 김매기도 하고. 이제 고추 밭 지주만 세워주면 될 듯한데. 어제까지만 해도 없던 비 소식이 있으니. 주말까진 지주 세우기를 끝낼 수 있을 듯.

 

빠진 곳 채워 심기(6월 11일/무더움 16-31도)

 

근 보름여 만에 비가 온다고 한다. 연일 30도가 넘는 무더위에 작물들도 지쳤는지. 감자며, 고추가 시들시들하다. 다행히 비가 온다고 하니 한 시름 덜기는 했지만.

 

싹이 나지 않은 서리태며, 메주콩. 비 오기만을 기다렸던 참깨. 한 번 더 심을 요량이었던 들깨. 밥상에 올릴 열무까지 이것저것 심어야 할 게 많다. 해서 아침나절엔 참깨 이랑도 만들고. 저녁엔 콩이며, 깨 등도 심고. 열무 심을 곳 이랑도 하나 더 만들고 또 심고. 힘은 들지만 그래도 마음은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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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5 09:49 2010/06/15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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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 이 책을 헌책방(금호동에 있는 <고구마>) 환경관련 코너에서 발견했을 땐. 제목만 봐선 꼭 ‘인디애나존스’류의 탐험 이야기거나. 고대 이집트 문명 소개서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내용을 흘깃 보니.

 

존 웨인에서 시작해 게리 쿠퍼, 험프리 보가트, 록 허드슨, 율 브린러와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오고. ‘리오 브라보 Rio Bravo’, ‘역마차 Stagecoach’, ‘정복자 The Conqueror’ 등의 영화 제목들이 나오는 게.  

 

당체 뭔 책인지 알 수가 없더라구요.

 

2.

이 책도 역시 헌책방(외대 앞 <신고서점>) 환경관련 코너에서 발견했습니다. 도서출판 따님에서 환경신서 다섯 번째로 펴낸 책으로 제목만 봐도. 역시 내용을 흘깃 봐도.

 

“전쟁놀이의 방법과 거기에서 생겨난 계획 기술을 민간부문에 응용하는 것”(이 책 p.88)이 “계획 단계부터 실제로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옹호해야 하는 것”(p.96)으로부터 출발해 “기업의 계획에 대한 신뢰를 흔들지도 모르는 약점과 틀린 계산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침묵 의무가 관철”(p.148)되고, 심지어 “필요한 경우에는 말을 너무 안 듣는 시민을 실제로 미치게 만드는 것도 불가능의 영역에 놓여 있지 않은 것처럼”(p.197)되어 마침내 “우리는 수십 년 뒤에 반도 전체를 완전히 봉쇄하고 구제불능이라는 판정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p.77)

 

무슨 얘길 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가 있었습니다.

 

3.

존 웨인의 ‘정복자’는 1954년에 유타 주의 사막 한가운데서 촬영됐습니다. 하지만 220명이나 되는 스태프와 캐스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페이유트 족의 한 부족인 인디언과 시비위트 족의 엑스트라 3백 명은 거의 모두가 암, 백혈병으로 사망합니다. 그리고 <왕가(王家)의 골짜기> 149쪽에서 151쪽, 215쪽에서 219쪽에 나열된 영화배우와 스태프, 핵실험에 참가했던 군인들, 서부 3주(네바다, 유타, 애리조나)의 주민들이 똑같은 병으로 고통을 받습니다.

 

<원자력 제국: 반생명적 기술 핵에너지의 본질>은 ‘네바다에서의 핵실험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과 히로시마 희생자와의 대화를 계기로 파괴적인 기술’인, 원자력이라는 이름을 그럴듯하게 포장된 핵기술의 이면과 정치, 사회적인 의미를 광범위한 조사와 면접, 인터뷰 등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히로세 다카시와 로버트 융커, 그리고 <원자력 제국>과 <왕가의 골짜기>를 잇고 있는 것은 네바다입니다. 정확히는 네바다에서 행해진 대기 중 핵실험이지요. 세상에 밝혀진 것만 모두 97회에 달하는 핵 혹은 수소폭탄 실험 말입니다.

 

4.

대체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핵 기술을 사용하게 됐는지 자료를 찾다가 참 재미난 기사(http://gonggam.korea.kr/gonggamWeb/branch.do?act=detailView&type=news&dataId=148686981&sectionId=gg_sec_21)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고. 내용을 흘깃 봐도 알 수 있듯이. 뭐, 우리나라 원자력 개발 역사를 쓴 건데요. 내용이야 뭐 소개할 것까진 없고. 말미에 이런 말이 쓰여 있던데요.

 

“한국 원자력발전은 아이러니하게도 독재자로 불린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의 리더십 덕분에 발전해오다 이명박 대통령 시대를 맞아 국산 원전 첫 수출이란 엄청난 ‘방점(傍點)’을 찍게 됐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그리고 이명박. 일부러 이렇게 연관 지은 건가요? 아님 꼭 그런 계보를 잇게 해주고 싶어서 그런 건가요? 무슨 얘길 하고 있는지, 알쏭달쏭합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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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3 20:40 2010/06/13 20:40

콩밭 김매기

from 10년 만천리 2010/06/07 12:27

푯말이라도 써 놓을까(5월 31일/맑음 12-23도)

 

아무래도 푯말이라도 써 놓아야 할 것 같다.

 

“여기 골에 자라고 있는 것은 풀이 아니라 호밀입니다”

 

오늘도 김매기에 빠져 있는데 두 분이나 물어 오신다.

 

“거, 뭐 심은 거예요?”

“뭐 심은 거죠?”

 

날은 덥고. 풀은 뽑아도, 뽑아도 줄지 않고. 대답하기도 귀찮아지니. 이것 참 야단이다.

 

재활용 농법(6월 1일/무더움 8-28도)

 

대관령에 얼음이 얼었다고 한다. 오뉴월에 얼음이라. 갈수록 요상해지는 날씨에 농부들만 시름이 쌓인다. 하지만 딴 나라 얘기마냥 모 전자제품 회사에선 이런 문구로 에어컨을 팔고 있다.

 

“7월 10일부터 8월 9일까지 31일 동안 최고 기온이 30도 미만인 날이 24일 이상이면 사계절 에어컨을 구매한 고객 전원에게 20만원을 돌려준다.”

 

어이가 없어도 이런 어이없는 경우가 다 있을까. 

 

그건 그렇고. 오늘로 신문지 멀칭은 마지막이다. 될 수 있으면 멀칭은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째 야금야금 신문지로 덮여지는 곳이 늘고 있다. 그래도 멀칭을 한 곳이 안 한 곳보다는 작다. 한 4분의 1이나 될까. 그리고 멀칭도 이른바 재활용 농법으로 신문지와 플래카드를 썼으니. 작년 보단 나아진 셈일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콩밭 김매기

(6월 2일/무더움 10-28도)

(6월 3일/무더움 12-29도)

 

아직까진 아침, 저녁으론 선선하지만. 한 낮 기온은 하루가 다르게 오른다. 어제는 28도 오늘은 29도. 조만간 30도를 돌파할 듯.

 

틈틈이 서리태를 심은 곳은 초벌 김매기를 했으나. 메주콩을 심은 곳은 전혀 손을 대지 못했더니. 이런 풀이 심하다. 한 사흘은 꼬박 김을 매줘야 한 풀 기세를 꺾을 수 있을 듯. 오늘이 이틀째. 거진 마무리가 다 되고. 토요일 하루 정도 더 품을 들이면 되겠다.

 

콩밭 초벌 김매기 끝(6월 5일/무더움 15-31도)

 

어제 의정부에 다녀오느라 하루 빠졌으니. 오늘까지 사흘에 걸쳐 메주콩을 심은 곳 초벌 김매기를 했다. 30도를 웃도는 초여름 더위 때문에 때론 아침 일찍, 때론 저녁 느지막이 일을 했더니 꽤나 시간이 걸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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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7 12:27 2010/06/07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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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날, 동강을 뒤로하고 아라리의 고향 정선으로(2006년 11월 9일)

 

평창 땅의 오대산에서 시작되는 오대천과 정선 땅을 흐르는 조양강을 모아 흐르는 동강의 신비로움은 그 이름만큼이나 세상 밖으로 온전히 다 나온 건 아닌 듯하다. 여느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였지만 그 내면의 깊이까진 맛 볼 수 없었으니 말이다. 더구나 강줄기를 따라가는 이야기는 드문드문 이름난 곳들에만 남아 있어 강을 온전히 이어주고 있지 않다. 아마도 돌고 도는 여울은 이어졌으되 길은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동강과 만나는 길은 네 곳이다. 영월쪽 거운리에서 절운재를 넘어 강을 거슬러 오르며 만나는 길과 정선쪽 광하리에서 뼝대를 따라 강과 함께 나란히 걷는 길, 그리고 평창쪽 한탄리에서 장리천을 따라가는 길, 마지막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정선쪽 예미리에서 구러기재를 넘어 고림물굴이니, 양치동굴이니 벌말굴을 구경하며 휘 돌아가는 강줄기와 만나는 길이 그것이다. 동강과 만난다는 설레임만 가득하다면야 어느 길에 됐건 그리 중요치 않다. 다만 봄만 되면 수난을 겪는 동강할미꽃과 이제는 보기 힘든 어름치, 다묵장어, 묵잡나루 등을 떠올리며 다가서면 될 것이다.

 

가수리는 여울이 아름답다는 가탄과 물이 아름답다는 수미라는 마을 지명에서 따왔다. 마을 사람들의 후하기로 소문난 돈이치와 일조시간이 길어 살기 좋다는 기일, 골이 깊은 기곡, 샘물이 많아 물 걱정 없는 수동, 몇 고개를 넘어야 만날 수 있는 점재를 품고 있는 운치리는 동강 강물로 인해 물안개가 늘 산마루를 떠돌기 때문이다. 마을의 높은 세 봉우리로 하루에도 달이 세 번 뜨고 진다는 연포마을. 칠족령 산길을 낸 개 이름 ‘문희' 마을. 센 물살과 바위 덕에 먹이를 찾기 위해 황새들이 몰려들었던 황새여울. 어라연과 만지나루사이 뗏군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된꼬까리.

 

“저긴 용수골이래요. 저 저기 뭐 용눈이 두 개가 있대요. 고 용눈에서 물이 요렇게 나온대요. 그래서 거 물구뎅이 두 개라서 용수골이라 해요. 가물믄은 저 저 백은 사람이 와서 개를 잡어서 그 밖에서 인제 도랑에서 낄애 먹고 대가릴 짤라 놓으면 대번 아주 그 이튿날 사흘만이면 고만 아주 하 진흙물이 고만 막 휘둘러가지우서 이 밖으로 시냇물이 나온대요. 그래니까 그 안에 뭐 큰 짐승이 미신 있죠”

 

“금오곡이라는데가 저 있어. 거는 엣날에 대왕쥐가 있다고해서 금오곡이라고 한데나. 뭐. 그런데 대왕쥐가 있나. 요만한 게 큰 긴데. 읍고 말고지. 시방은 안 그렇지만 엣날에 지관쟁이들이 거다가 거 어데다가 묘를 쓰민 장사가 난다고 그랬지. 그래 금오곡이여. 장사가 칼을 휘두르고 칼춤을 추고 이래가지고 금오곡이라고 하지. 뭐시기 한매디로 거기가 묘자리가 좋다는 거여”

 

굽이굽이 돌아가는 강줄기를 따라 옛이야기들도 굽이굽이다.

 

눈을 뜨니 코앞에 느티나무 하나가 가득하다. 굳이 동강 12경을 들먹이지 않아도 될 지경이다. 밤사이 비가 왔는지 강물이 불었지만 되레 그 때문에 단풍이 짙게 든 느티나무 너머 푸른빛의 물이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당초 오늘은 걷지 않기로 해 늦게 일어나 걸을 수 있는 시간이 모자랄 수 있지만 그래도 오래 머물 수 없다.

 

 

 

 

 

 

 

 

 

 

 

 

 

 

 

 

 

 

 

정선까지 대략 30리 길이라며, 동강을 걷는 사람들을 많이 재워주기도 했다며, 이른 점심을 우리 덕에 맛나게 먹을 수 있다며, 맑은 웃음을 보여주시던 하귤하 동강매점 할머니와 헤어지고 나니 12시가 가까워온다. 서둘러 길을 나서는데 마른하늘에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진다. 여우비다. 문이 잠겨 있기는 하나 처마가 있어 비를 피할 수 있는 노인회관를 만날 수 있어 다행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우야 여우야 머하니”

 

한참을 그렇게 처마 밑에서 쉬니 애당초 마른하늘이었기에 금새 비가 그치고 맑은 하늘과 따사로운 햇살이 열린다. 다시 출발이다.

 

닷새 만에 다시 국도와 만난다. 덕분에 오가는 차도 많아진다. 또 42번 국도로 이어지는 광하교에 이르니 곧 오르막이이고, 오르막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않고 있어서인지, 닷새 동안 무리해서 걸은 탓인지, 몸도 무겁고, 마음도 무겁다. 해서 오르막을 오르는 동안 내내 서로 말 한마디 없다. 콧노래라도 부르며 올라야 지루하지 않을 텐데 덕분에 오르막이 더 길게만 느껴진다. 안되겠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쉬었다 가야지.

 

420m 높이의 솔치재 정상에 오르니 2시가 넘었다. 애초 일정대로라면 집에 있어야 할 시간인데 아직 정선읍내에도 이르지 못했으니 큰일이다. 그래도, 여기서부터는 내리막길이겠거니 싶으니 좀 낫다. 하지만 갓길도 없는데다가 조금 걷고 마주치고, 또 조금 걷고 마주치게 되는 차량행렬과 차에 받혀 죽어 있는 동물들로 자꾸만 처진다.

 

결국 정선읍내에는 3시가 다 돼서야 도착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서울행 시외버스에 오르니 배고픔도 잠시고 곧 잠이 쏟아진다. 창 밖 동강에 다섯 날 동안 함께 했던 빨간 낙엽이 진다. 안녕. 동강아.

 

* 열여섯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 첫째 날 : 단양 매포 평동에서 가곡 향산까지 7시간 동안 약 20km를 걷다.

- 둘째 날 : 단양 가곡 향산에서 영월읍까지 9시간 동안 약 28km를 걷다.

- 셋째 날부터 다섯째 날까지 : 동강이와 함께 한 길, 영월읍에서 정선읍까지 약 52km.

 

* 가고, 오고

단양 평동으로 가는 길은 기차편도 그렇고 버스편도 마찬가지로 단양 쪽 보다는 제천 쪽이 더 수월하다. 또 단양에서 평동으로 이동하는 것보다 제천에서 평동으로 이동하는 것이 쉽다. 정선에서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는 대략 한 시간 간격으로 다니나 안흥 등 평창 내 여러 곳을 경유한다. 기차편은 하루 세 차례 운행하는 증산-아우라지 간 꼬마열차를 이용해 증산으로 나간 후 청량리행 열차로 옮겨야 하므로 시간을 맞추기도 어렵거니와 시간도 많이 걸린다. 시간을 절약할 요량이라면 시외버스를 이용하되, 시간에 구애됨 없이 색다른 경험을 할 생각이라면 기차를 이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낫다.

 

* 잠잘 곳

동강에는 생각보다 숙박시설과 음식점이 꽤 있는 편이다. 다만 여름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음식점은 문을 열지 않으니 전날 묵었던 곳에서 반드시 도시락을 싸달라고 해야 하며, 숙박시설은 하루 전날 꼭 예약 사항을 확인해야 한다. 그 외 지역은 최근 우후죽순 들어선 펜션에서부터 마을 민박에 이르기까지 숙박시설이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다. 다만 음식점은 변변치 않으니 식당이 나오면 바로 그때가 밥 먹을 때다, 하고 생각하는 게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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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5 11:25 2010/06/05 11:25

초벌 김매기

from 10년 만천리 2010/06/01 21:27

수수 심기(5월 25일/흐림 14-20도)

 

꼭 4일 만이다. 걷기여행은 이틀이었는데. 춘천에 오는 날부터 비가 오더니 오늘 아침까지 내리 비가 왔다. 여행을 가기 전 땅콩도 다시 심어놨고. 고추도 나머지 두둑에 모두 신문지 멀칭을 했으니. 비가 꽤나 왔고 바람도 어제는 꽤나 불었으니. 신문지가 날려가지 않았는지. 비가 오고나면 한껏 자라는 풀들이 어떨지가 걱정이다.

 

다행이 신문지 멀칭은 멀쩡하다. 어디 한 군데 구멍이 난 곳도 없고 신문 한 장 날아간 것이 없다. 하지만 역시나 풀들이 문제다. 고랑이야 이미 호밀이 자리를 잡고 있어 풀이 날 틈이 없고. 감자밭도 꽃대를 열심히 올리고 있어 풀들이 발을 뻗지 못한다. 풀이 많은 곳은 옥수수를 심어 놓은 곳과 고구마를 심어 놓은 곳이다.

 

옥수수는 일찌감치 심어놓고 며칠 전에야 사이사이 콩을 심은 탓에 여기저기 풀들이 쑥쑥 올라오고 있다. 고구마도 이랑은 만들어 놓은 지 한참인데 13일에 심었으니. 아직 줄기를 뻗지 못해 그 틈으로 풀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풀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니 열일 제쳐놓고 호미질을 해야 할 터인데. 때를 놓치면 안 되는 일들이 있어 마음이 급하다. 아무래도 풀 잡는 일은 내일부터 해야 할 듯. 마음이 급해도 오늘은 수수를 심어야 한다. 헌데 수수 심을 이랑에도 풀이 잔뜩 자라고 있으니. 풀 뽑으랴 수수 심으랴 허리 한 번 펴기 쉽지 않다. 그세 해가 많이 길어졌어도 오늘은 무척이나 짧게만 느껴지는데. 그래도 쉬지 않고 일을 해서인지. 수수도 다 심고, 고구마 밭 김매기도 쬐끔 했다. 

  
초벌 김매기

(5월 26일/맑음 14-22도)

(5월 27일/맑음 12-24도)

(5월 28일/흐림 15-20도)

(5월 29일/안개 후 맑음 15-23도)

 

<해를 등지고 일하다 보니 김매기가 이렇게 된다. 왼쪽이 깨끗한 걸 보니 저녁에 찍은 듯> 

 

어제 저녁엔 남춘천역으로 어머니를 마중 나가고. 또 오늘 저녁엔 토마토며 오이, 가지 등을 심은 곳에 신문지 멀칭을 한 것 빼곤. 내리 나흘 동안 아침, 저녁으로 김매기를 하고 나니 무릎이 다 쑤신다. 초등학교 때인가 속칭 ‘다방구’라는 술래잡기 놀이를 하다 골절이 됐던 오른쪽 무릎이 꼭 말썽인 게다. 그래도 오늘은 낮에 찜질을 했더니 한결 낫고. 내일 하루 정도만 더 고생하면 초벌 김매기도 다 끝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오랜만에 오후에 비 소식이 있다. 비올 날만 기다리며 아직 심지 않은 참깨와 팥이 있으니. 아무래도 내일 오전엔 참깨와 팥을 심고. 월요일 하루 더 풀을 잡아야 할 듯하다. 

 

<초벌 김매기가 끝난 고구마, 옥수수, 콩을 심은 곳>

 

마른하늘에 팥을 심다(5월 30일/맑음 12-25도)

 

분명 예보로는 오후에 비가 온다고 했다. 그것도 오늘 아침 기상청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바로는. 그래서 아침 일찍부터 미뤄뒀던 팥 심기에 나섰지만 어찌된 게.

 

집에서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하늘이 어둑어둑하고 구름이 잔뜩 낀 게.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그런데 팥을 절반 정도나 심었을까. 구름이 차츰 걷히기 시작하더니 이내 해가 쨍쨍.

 

혹시나 하는 마음에 팥을 다 심고 집에 와서도 내내 하늘만 바라보는데. 이건 비는커녕 더 더워지기만 하는 게 아닌가. 이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물을 주고 와야 할 듯하다.

 

결국 두 시간 넘게 낑낑 대며 물을 주고 나니. 해는 지고 몸은 천근만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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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1 21:27 2010/06/01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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