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날이 장날(4월 3일/맑고 강한 바람 *3-13도)
겨우내 놀려두기만 했던 밭을 정리하러 나갔더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바람이 세다. 다른 일이라면 바람이 불어도 괜찮겠지만. 고추와 참외를 심었던 곳에 멀칭용으로 깔아놓은 비닐을 치우는 일이라. 흙이 신발이며 바지며 여기저기 흩어지는 거야 툭툭 털면 되겠지만. 바람에 날리는 비닐을 잡으러 뛰어다니는 꼴이라니.
역시. 겨우겨우 한 시간 넘게 밭 이곳저곳을 헤매며 다 걷어내고 나니. 올 해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검정 비닐을 대신할 것을 찾아야겠단 생각이 더 든다. 누군 볏짚으로 멀칭을 한다고 하기도 하고. 누군 신문지, 낙엽으로도 한다니. 이도저도 아니면 플래카드라도 재활용을 해야겠다.
올 농사 계획(4월 4일/맑음 *3-17도)
봄밭갈이를 한다는 청명(淸明)이 내일이니 이제 준비를 슬슬 해야 한다. 어제는 겨우내 잠깐잠깐씩만 들여다봤던 밭에 나가 고추대도 뽑아내고 멀칭으로 깔아놨던 비닐도 걷어냈다. 마저 다 털지 못한 콩이 조금 남아 있긴 하지만.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토마토 지주를 뽑아내고 나니 대충 준비는 된 듯한데.
작년에 비하면 근 한 달 가까이나 빠르다. 물론 밭을 새로 구한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올 농사를 가름할 호밀 때문에 서둘러 준비를 한 것이다. 물론 하지 감자를 거두기 위해선 지금쯤 씨감자를 넣어야 하긴 하지만. 장마가 끝나고 나서야 감자를 수확한 후 곧바로 김장 배추며 무를 심는 게 낫다는 게 작년 경험인지라(3월 중하순에 감자를 심고 장마 전에 거둔 후 콩을 심을 수도 있지만 콩은 옥수수와 섞어짓기로도 가능하다). 감자보다는 호밀 때문인 게 맞다.
호밀은 올 농사를 가름할 중요한 작물인데, 잡초를 잡기 위해 헛골에 뿌릴 예정이다. 물론 고추나 참외와 같은 것들은 따로 멀칭을 하겠지만. 한 여름 뙤약볕 아래서 조금이라도 호미질을 덜 하려면 이랑과 이랑사이 제초만이라도 무슨 수든 내야 하는데. 요놈의 호밀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요맘때쯤 호밀을 뿌려두면 잡초가 자라기 전에 뿌리를 내리고 장마 전까지 무성히 자랄 것이다. 그리고 비가 그치면. 풀들을 밭에서 몰아낸 호밀은 잠시 숨을 죽였다가 찬바람이 불면 다시 일어설 것이다. 그럼 제초는 성공이다.
고추와 참외는 멀칭을 하되 비닐을 대신할 것들을 찾아야 한다. 급한 마음에 용도가 다 된 플랭카드 한 박스를 준비하고 있긴 하지만. 고추의 경우 한 이랑은 플랭카드로, 한 이랑은 신문지로, 다른 한 이랑은 볏짚이나 낙엽으로, 그리고 또 한 이랑은 멀칭을 하지 않은 채 키워볼 요량이다.
작년엔 욕심으로 메주콩을 꽤나 많이 심었는데. 이번엔 옥수수와 함께 섞어짓기로 조금만 심기로 한다. 대신 팥과 서리태를 새로이 도전하기로 했다. 또 들깨와 참깨는 싹도 틔어내지 못했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참기름과 들기름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 외에 이것저것 밥상에 올릴 채소들과 참외, 토마토는 작년과 같고 고구마는 조금 줄일 것이다.
4월엔 서울에 올라갈 일이 많다. 거의 주마다 한번 꼴은 기차를 타야하니. 이것저것 모종을 심는 건 4월 말부터지만. 퇴비도 미리 넣어줘야 하고. 밭도 갈고 이랑도 만들고. 감자심고 호밀까지 뿌리려면 느긋하게만 일을 할 수 없다. 마음은 급한데 내일 비 소식이니. 비가 그치고 나면 곧 농협에 들러 퇴비를 사다 날라야 한다. 늦어도 다음 주엔 밭 모양을 만들고 호밀을 심어야 하니.
* 호밀을 골에 뿌려 멀칭, 제초하기
* 고추, 참외는 두둑에 플래카드, 신문지 등으로 멀칭, 제초하기
* 새로운 작물로 팥, 서리태, 수수 등 심기
* 들깨, 참깨 성공하기
* 고구마 100주 / 고추 200주 / 감자 20kg
* 토마토, 방울토마토, 애호박, 오이, 참외 - 각 20개씩
* 메주콩은 절반으로 줄이고 팥, 서리태, 수수 심기
* 장마 전까지 할 일
4월 16-30일: 호밀, 감자, 옥수수 심기
5월 1-15일: 각종 채소, 고추 모종 심기, 옥수수, 메주콩, 서리태 심기, 들깨 모종 만들기
5월 15-30일: 고구마, 참깨 심기
6월 1-15일: 팥, 콩나물콩, 고구마, 들깨 모종 심기
6월15-30일: 들깨 모종, 조, 기장, 녹두 심기, 서리태 윗순 지르기
넷째 날, 재를 두 개나 넘으며, 동강이와 함께 하는 길(2006년 11월 8일)
이른 아침, 길을 나서려는데 오늘 하루는 아마도 쫄딱 굶을 거라며 도시락을 내민다. 어제 밤 편안히 쉬어 갈 수 있었던 것도 이제까지의 여행 중에서 처음 접했던 고마운 일이었는데, 도시락까지 챙겨주다니. 게다가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집 앞에 서 있는 모습이라. 정말 마음 한 곳에 따뜻함이 머물게 하는 사람이다.
어제 길을 잃었던 곳에 이르니 할아버지께서 집 밖에까지 나오셔서 다시 길을 일러주신다. 우리는 밭 위쪽 끝까지 올라가서 길을 찾았는데 할아버지 말씀으로는 다 쓰러져 가는 폐가 뒤쪽으로 길이 나 있다고 하신다. 것도 모르고 무턱대고 한참이나 더 올랐으니 길을 찾을 수가 있나.
일러주신 대로 폐가 뒤쪽으로 올라서니 아니나 다를까 낙엽이 쌓여 있어 언뜻 보면 길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법 사람들이 많이 다닌 듯, 길이 나 있다. 또 등산로임을 알려주는 알록달록한 리본들까지 보인다. 또 때맞춰 저 아래서 할아버지께서 길은 찾았는지, 고개를 넘으면 마을이 보인다며 큰 목소리로 알려주시니 이래저래 걱정이 가신다.
<겨우 산길을 너머 절벽 건너편으로 오니 이런....>
한 시간 가까이 등산 아닌 등산을 한 후 진탄나루에 도착해보니 어제 절벽에 막혀 되돌아갔던 곳이. 세상에, 바로 코앞이다. 이런. 그래도 어제오늘 마음 따뜻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또 맛난 도시락을 먹으며 동강을 바라볼 수 있어, 오히려 기분은 좋기만 하다.
발 가득 옻나무진을 묻히고 산을 넘은 개 한 마리로 길이 생겼다는 칠족령(柒足領)을 넘기 위해 문희마을에서 잠시 길을 확인하고 나니 12시다. 재 넘어 제장마을까지 한 시간 반이면 충분하다는 말에 여유를 부리며 마을 구경을 해볼까도 하지만 여행 첫날부터 일정이 계속 어긋나고 있어 그리 하진 못한다.
칠목령이라고도 불리는, 칠족령을 넘어가는 길은 백운산 등산로와 함께 많은 이들이 걸었던 길이어서 비교적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또 동강의 가을을 제대로 맛볼 수 있을 만큼 푹신한 낙엽길에, 굽이돌며 멀리서 푸른빛을 내는 강줄기가 있어 힘들지가 않다. 다만 전망대를 지나면서 시작되는 하산 길은 곳곳에 ‘낙석주의’, ‘추락주의’ 표지판이 서 있는 대로 곳곳에서 절벽과 만나고 있어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 사람들이라면 한 시간, 외지인이라도 한 시간 반이면 충분하다고 하던데. 산을 내려와 제장마을에 도착하고 나니 두시가 훌쩍 넘었다. 아마도 칠족령까지가 한 시간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내려오는 길에 마주친 절벽 때문에 시간을 지체하기 했어도 한 시간, 한 시간 반은 아무래도 무리일 듯싶은데.
힘겹게 재를 두 개나 넘었기에, 문산나루와 진탄나루에 이어 세 번째 나루이자 가장 예스러운 정취를 품고 있는 나루터이기에, 마땅히 쉬어가야 하나 이제는 나루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다리 위에서 잠시 강이며, 마을 구경을 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지도상으로는 제장마을에서부터 정선까지는 강을 따라서 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의 길이 이어져 있다고 되어 있는데 소동에서부터 납운교까지는 강을 따라 가는 길은 없고 고성산성 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야 한다. 덕분에 우리도 소동까지 갔다가 마을 사람들로부터 길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길을 돌아서야 했다.
납운교부터 우리가 동강에서 하루 더 머물기로 한 가수리까지는 왼편으로 강이 줄곧 따라오는 길이다. 간혹 긴 오르막이 나타나기도 하고, 아스팔트길과 흙 길이 번갈아 가며 나타나기도 하고, 또 올 여름 수해 때문에 자주 출몰하는 대형 트럭들이 나타나 길을 걷기가 수월치는 않지만 용바위니, 삼형제바위니 등 눈요깃감이 있어 지루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어째, 가탄마을을 지나면서부터는 날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더니 바람도 거세지고 먹구름까지 몰려든다. 아침에 잠시 먹구름이 하늘을 덮었으나 칠족령을 넘고 나니 파란 하늘이 열려 비 걱정은 하지 않았는데 걱정이다. 지도를 들여다보니 가수리까지는 아직 한참이고, 마을이라고는 제장에서부터 여기까지 오는 동안 번평마을 하나를 지났으니 앞으로 마을이 있을 리는 만무하다. 게다가 어제그제 만났듯이 여름 한철만 민박을 하는 곳이 많아, 또 마땅히 식사를 할 만한 곳이 전혀 없어 가수리에 당도한다 해도 잠잘 곳이 있을런지, 배를 채워줄 곳이 있을런지, 이래저래 걱정이다.
멀리 가로등 불빛이 보이는 게 가수리인 듯싶다. 가탄마을을 지난지도 벌써 1시간이 지났고, 어둠과 먹구름과 바람 때문에 쉬지도 않았고, 평상시보다도 빠른 속도로 걸었으니, 꽤 먼 거리를 지나온 듯하다. 파김치 몸을 이끌고 가수리에 들어서니 다행히 끼니도 때우고 잠도 청할 곳이 몇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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