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 남한강을 따라 걷는 길, 단양 매포 평동에서 가곡 향산까지(2006년 11월 5일)
 
아침 날씨가 공기부터 다르다. 요 며칠 사이 쌀쌀해졌다는 느낌이었는데 여기 와서야 실감한다. 나름 옷가지에 신경을 쓰긴 했지만 내일과 모래 사이에 비가 한차례 오고 나면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다는 일기예보에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9월, 10월 좋은 날씨 다 보내고 뒤늦게 길을 걷자니 당연 감수해야 할 몫이다.
 
단양팔경의 제1경이라는 도담삼봉에 당도하니 햇살이 많이 퍼져서인지, 바람이 잦아들어서인지 다행히 춥지는 않다. 삼봉을 배경으로 멋쩍은 우편엽서 사진 한 장 박고, 된장국으로 늦은 아침을 해결하니 한결 몸이 녹는다.
 
<어찌나 물이 맑던지.....사진으로 다 온전히 드러나지 않아 아쉽기만 하다>
 
단양읍을 지나 고수대교를 건너니 고수동굴이 지척이다. 당초 오늘 말고 내일 인근에 있는 고씨동굴을 구경할까 했지만 그래도 이름난 곳을 둘러보는 게 제대로 된 동굴구경이 아닌가 싶어 잠시 관광안내소에서 쉬었다 동굴 구경에 나서는데.
 
이런, 동굴 입구 주차장에 가득한 관광버스부터 매표소 앞에 죽 늘어선 사람들의 행렬에 꽤나 복작복작할 거라 예상은 했어도, 이리 많은 줄이야. 난생 처음 보는 굴 구경인지라 잔뜩 기대하고 들어섰는데 이거야 원, 뭘 구경하러 들어왔는지 모를 정도다.
 
하지만 어쩌겠나. 사람들에 밀려 대충대충 눈도장 찍듯 석주며, 석순 등을 구경하는데 그래도 볼만한 곳 여러 군데를 지나고 나니 조금은 여유 있게 둘러볼 수 있을 만큼 사람 숫자가 준다. 다행이다. 빙글빙글 한없을 것만 같이 돌아서는 계단을 오르기도 하고, 다시 거꾸로 한없을 것만 같이 아래로 돌아서는 계단을 내려오기도 하며 구경을 하고 나니 한 시간이 훌쩍이다. 초장에 설렁설렁 구경해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두 시간도 모자랐을 거다.
 
동굴구경을 마치고 길을 나서니 아침과는 달리 찬바람이 쌩쌩 부는 게 입동을 앞두고 매서운 겨울 날씨를 맛보게 하려는 듯하다. 게다가 생각지도 않았던 고갯길이 나타나 길을 걷기가 무척 힘이 부친다. 동굴이 근처여서인지 고개 이름도 고수령이다. 영월까지 44km라는 간판이 보이기는 한데 긴 내리막길이 발밑이어서 걷기엔 수월하다.
 
<첫날 머물렀던 향산 조금 못 미친 곳에서 만났던 강변 갈대 숲>
 
단양에서부터 이어지는 59번 국도는 며칠 전 모 일간지에 ‘멀미 날 낙엽 길’로 선정되었던 길인데, 그 기사가 아니어도 울렁울렁 멀미가 일 정도로 길 양옆 낙엽 색깔이 울긋불긋하다. 또 푸른 옥빛의 남한강이 줄곧 길을 따라 흐르고, 그 강을 따라 황금색의 갈대숲이 이어지고 있으니 이는 기사가 놓치고 지나간 아름 풍경이다.
 
당초 구인사며 온달산성 구경을 위해, 그리고 좀 전의 신문 글을 따라서, 우리가 오늘 머물게 된 향산 조금 못 미쳐 595번 지방도로로 갈아타야 하나 시간적으로나 몸 상태로나 가능할 것 같지 않아 아쉽지만 이름만큼이나 흐르는 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다른 때와는 달리 일찍 자리를 잡는다.
 
둘째 날, 여전히 남한강을 따라, 단양 가곡 향산에서 영월까지(2006년 11월 6일)
 
5분만 가면 아침 먹을 만한 곳이 있다고 하던데 아니나 다를까 길을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아 맛난 된장국에 밥 한술 말아먹을 수 있는 곳이 있어 다행이다. 밥 대신 라면과 과자부스러기로 저녁을 때워서인지 뱃속이 무척 허해 아침은 제대로 먹어야지 하며 조금은 걱정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행복은 잠시, 맛난 밥에 커피까지 한 잔 얻어 먹도 길을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아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한 빗줄기가 군간교 삼거리를 지나면서는 많이 굵어진다. 또 지난 여름 수해로 여기저기 상처 난 길들을 메우기 위해 질주하는 덤프트럭들로 길을 걷는 게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빗방울이야 비옷으로 어찌 해보겠는데 질주하는 차들이 뿌리고 가는 흙탕물을 피하느라 그렇다.
 
결국 영춘면에 들어서서는 얼굴에 철판 깔고 면사무소 안으로 들어간다. 출발할 때보다 더 거세진 빗줄기도 빗줄기이지만 비옷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젖어들기 시작한 옷들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번듯한 면사무소지만 한적하기 이를 데 없어 눈치 볼 필요 없다.
 
생각지도 않았던 비 때문에 두 시간을 허비했다. 해서 발걸음을 빨리 해야 할 텐데 먹구름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맑은 가을하늘과 어제부터 우리와 함께 걷고 있는 강줄기와, 낙엽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한다. 거추장스러웠던 비옷까지 잠시 벗어들고 이리저리 신나게 뛰어다니며 풍경을 담아내느라 정신없다.
 
 
<잠깐 비가 그친 후 정신없이 걷던 중>
 
열 여섯 번 째 여행 만에 강원도에 들어선다. 이제는 걸어야할 길보다 걸어온 길이 훨씬 많다. 뭔가 자축이라도 해야 할 텐데 그친 듯 했던 빗줄기가 다시 굵어지는 바람에 서둘러 비옷을 다시 꺼내 입고 걸음을 빨리 할 수밖에 없다.
 
고씨동굴은 어제의 고수동굴과는 달리 관광버스 하나 서 있지 않고 사람들도 보이지가 않는다. 마음 같아서는 여유를 부리며 또 동굴구경에 나서고 싶지만 오전에 두 시간 그리고 좀 전에 또 30분 넘게 걷지 못해 아쉽지만 그냥 지날 수밖에 없다.
 
<바로 왼편이 굴인데 쏟아지는 빗줄기에 시간도. 결국 지나치고 말았지만 대신 늦가을 정취를 만끽했다>
 
고씨굴을 지나 한 시간쯤 지났을까. 빗줄기도 빗줄기인데 해가 빨리 지는 걸 생각지 못했다. 다섯 시가 조금 지났는데도 어둑어둑한 게 후레쉬를 꺼내들지 않으면 안 될 지경이다. 지도상으로는 영월읍내에서 발전소가 그리 멀지 않은데, 이젠 한밤중이다. 급한 마음에 발걸음을 빨리 해보지만 질주하는 차량들로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그렇게 조심조심 더디게 걸어 영월읍내에 당도하니 몸은 파김치에 옷은 다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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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0 21:19 2010/01/10 21:19

죽음을 수출하는 나라. 죽음의 기술을 ‘녹색성장’의 원동력으로 삼는 나라. 어때요. 이만하면 MB식 ‘녹색성장’이란 게 뭘 뜻하는 것인지 확실해지지 않았습니까. 그래요. 자동차 100만대 수출에 맞먹는다며, ‘녹색외교’의 쾌거라며, 호들갑들을 떠는 게 결국 핵발전을 성장 동력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니요. 

 

굳이 1986년에 발생했던 그 저주의 체르노빌 핵발전소를 들먹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또 핵폐기물 처리를 둘러싸고 지난 20여 년 동안 벌어졌던, 1980년대 말 안면도, 1990년대 중반 굴업도, 2005년의 부안들을 돌아보고 싶지도 않습니다. 단지 핵테크놀로지에 대한 경배와 찬양이 MB이 말하는 ‘녹색’이라는 이름아래 행해지고 있다는 게 개탄스러울 뿐입니다. 그리고 2MB이 말하는 ‘녹색성장’이라는 것이 결국 죽음의 기술에 기대고 있다는 것이 두려울 뿐입니다. 그러니요. 한 가지만은 귀찮더라도, 아니 지금부터라도 꼼꼼히 챙겨봐야 할 것이 있는데요.  

   

지금 국회에는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이라는 게 제출돼 있습니다. 현재 법안심사소위원회까지 통과됐으니 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머지않아 국회를 통과할 겁니다. 헌데 이 법안 말이지요. 물산업 민영화, 탄소배출권 거래제과 같은 문제들은 둘째치더라도 말이죠. 이 법안에 대한 논의가 오가는 과정에서 원자력을 청정에너지로 규정하는 문구는 삭제됐지만 말이지요. 핵에너지에 대한 위험성과 그로 인한 정치-사회적 갈등들을 무시하면서까지 원자력 산업 육성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 핵발전을 녹색성장의 주력산업으로 삼고 있는 것이지요. 쳇. 상황이 이러하니 2MB이 어찌 UAE까지 날아가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원전 수출과 관련해 뒷얘기가 오가고 있습니다. 막판 협상과정에서의 여러 과정들을 소개하면서 이번 ‘쾌거’에 대한 성과를 한껏 부풀리기 위해서지요. 헌데요. 그 호들갑들 속에요. 이번 일이 아니었으면 몰랐을텐데요. 이미 UAE와 군사교류협력 증진과 방산협력에 기여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군사협력협정’을 재작년에 체결한 바 있는데요. 이번 협상과정에서 글쎄. 양국이 기존보다 확대 심화된 군사협력을 맺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합니다. 결국 이번 원전 수출이 ‘죽음’의 기술을 수출하는 것이라는 걸 여지없이 또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이래저래 죽음을 수출하면서 국방장관에 대통령까지 나서는 나라. 어찌해야 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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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8 21:23 2009/12/28 21:23

1.

춘천으로 온 지도 그새 2년이 다 되갑니다. 재작년 3월에 왔으니요. 벌써 이태 째 농사를 지었고, 길을 물어오는 이가 있으면 이젠 웬만한 곳은 알려줄 정도가 됐으니. 이젠 춘천 사람 다 됐다, 싶습니다. 그래도 여적 청평사니, 남이섬이니, 옥광산, 춘천 숲 등등을 거닐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서울 사람 남산 구경 못하고, 부산 사람 태종대 안 간다, 는 말이겠지요.

 

<올 여름 아파트 옥상에서 본 모습입니다. 가운데 솟아있는 산이 봉의산이구요,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왼쪽으로 소양호도 보인답니다. 그래도 이렇게 보면 여느 도시하고 다를 바가 별로 없는 것 같네요>

 

가끔 경춘선을 타고 구경 왔을 때도 그랬고, 이사 오고 나서도 한동안은. 그래요. 춘천은 정말 작은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어딜 가나 강과 호수를 바라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대도시에서 나고 자란 이들에겐 뭔지 모르는 무언가가 자꾸만 이끄는 것이었습니다. 이 작고 아름다운 곳이라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다, 는 생각과 함께.  

      

춘천시 인구지도가 바뀌고 있다는 얘기들이 들립니다. 최근 들어 도시 개발이 동내면과 동면 등에 집중되면서 지역별 인구 증가 추세가 동남권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지요. 특히 동면 지역은 최근 한 달 사이에 천여 명이 넘게 늘었구요, 동내면과 동면 두 지역은 작년에만 무려 5천 명이 넘게 늘었답니다.

 

호호. 서울 사는 이들이 들으면 한참을 웃을 만한 얘기일 수 있습니다. 동네에 아파트 단지 하나만 들어서도 금세 일, 이천 명도 아니고 일, 이천 세대가 입주를 하는 곳이 대도시이니. 한 해에 5천명이 늘었다고 여기저기서 얘기들이 오가는 모습이란. 하지만요. 여기 이제 막 26만이 넘은 이 작은 도시에선요. 이것만큼 큰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싶을 만치 중요한 일이랍니다. 

 

2. 

꾸리찌바CURITIBA는 브라질의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인구 2백만이 넘는, 빠라나 주의 주도라고 하는데요.

 

버스를 땅 위의 지하철로 만들고, 거기서 더 나아가 이용자들의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요금제도를 도입한. 자동차로부터 해방된, 보행과 자전거 교통을 녹색교통으로 이해하고 실천한. ‘녹색교환’ 프로그램을 통해 도시 쓰레기 문제와 빈곤 해소, 잉여농산물 흡수에 적극적인. 다민족도시이면서도 문화의 다양성을 살리기 위해 역사.문화 유산의 보존과 재활용에 창조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꾸리찌바에서 태어난 생명은 가치가 있다”는 슬로건 아래 다양한 보육.교육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자조주택’, ‘실험주택마을’, ‘주상복합주택단지’ 등 소규모 주택 단지 건설을 통해 주택 문제 해결에 나선. 고대 문화유산에서 영감을 얻어 세운 ‘지혜의 등대’를 통해 주민들에게 ‘지혜의 길로 안내하는 도서관’을 제공하고. 공업단지를 세우면서도 “공단이 하나의 공원이자 정원이어야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기어이 그 목표대로 만들어 낸.


대전시보다 약간 큰 전형적인 대도시라고 합니다.

 

3.

사람이 늘면 지금보단 조금 낫지 않겠나, 싶은 게 여기 춘천에 많은 이들의 생각이겠지요. 그래서 고속도로가 생기는 것에, 기차가 복선전절화 되는 것에 관심들을 갖겠지요.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넉넉지 못한 시 재정 상황을 감안하면, 또 기반시설이 미약한 걸 보고 있자면. 사람들이 늘고, 거기에 따라 이것저것 들어서면 아무래도 지금보다야 나아지겠거니 싶지만요.   

 

재개발한다더니 몇 년째 민둥산으로 방치되고 있는 효자동, 소양동 일대. 또 최근에는 주민-시 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소양․약사 등 도심재정비사업 지역. 성냥갑을 일렬로 늘어세워놓은 듯 아파트로만 채워지고 있는 동면과 동내면. 지금도 괜찮은 것 같은데 길 넓히겠다고 멀쩡한 건물들을 부수고 있는 남부로. 신호등이나 인도를 채 마련하지 않아 끝내 한 명이 주민이 숨지는 일까지 발생한 강촌IC 인근 도로.

 

<몇 년째 저 모양인지 모르겠습니다. 재개발을 하겠다고 집은 다 철거한 것 같은데....>

 

어째.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대충 훑어 본 거만 열거했는데도 이리 숨이 턱턱 막힙니다. 뭐 춘천이라고 다른 도시들과 얼마나 다르겠습니까마는. 외적팽창과 아파트 중심의 개발은 좀 심하다 싶습니다. 다른 데하고는 다르게 딱히 내세울만한 특색도 없고. 아니 하다못해 유행이라도 타고 생색내기라도 해야지요. 남들 다 하는 ‘친환경’이니 ‘녹색성장’이니 말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이젠 뭔가 딴 방법을 생각해도 해야 할 터인데.

 

그래서일까요. ‘생태도시’ 꾸리찌바 얘기가 더 남달라 보이는 거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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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6 15:13 2009/12/16 15:13
1.
바야흐로 ‘유기농’ 열풍입니다. 대형마트엔 어김없이 ‘유기농’ 코너가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아파트 밀집 지역엔 ‘유기농’ 전문매장이 들어서 있으니 말입니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유기농’이라는 말은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과 같은 책 속에서만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그에 비하면 정말 격세지감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MB정부가 4대강 막무가내 ‘삽질’로 국내 친환경 유기농업 태동지인 팔당 일대 지역을 파헤치려는 꼴이나 이름도 괴상한 각종 첨가물로 범벅이 된, 기껏해야 성분 구성표 맨 뒷자리에 겨우 이름을 올려놓고서는 버젓이 ‘유기농’ 매장에 진열되고 있는 온갖 과자와 음료수들을 보고 있자면. 이 ‘유기농’이란 열풍이 한때의 ‘유행’ 정도로 치부되는 건 아닌지, 소비자들의 얇팍한 지갑을 노린 상업주의로만 흐르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그럼에도 이 ‘유기농’ 열풍이 우리 사회에 가져다 줄 영향을 고려해볼 때 아직은 실망보단 희망을 더 봐야 하겠지요. ‘돈’과 ‘인간중심’ 보다는 ‘생명존중’과 ‘평화’, ‘조화로운 삶’으로 이끌어줄 가치로 ‘유기농’이 이제야 발견된 셈이니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2.
15년이 넘게 농업생산방식과 건강과의 관계에 대해 연구해온 피에르 베일이 쓴 <빈곤한 만찬>은 생태계와 조화로운 방식의 농업만이 좋은 먹을 거리, 좋은 건강을 준다고 강조합니다. 비만, 당뇨병, 심장혈관계통 질환과 같은 현대병의 원인이 잘못된 섭생방식, 즉 식생활이나 운동부족과 같은 개개인의 문제이기 이전에 생태계를 보호하고, 먹이사슬을 존중하며,좋은 먹이와 좋은 환경이라는, 인간에게 알맞은 생산방식에서 멀리 달아났다는데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는 거대 제약업계와 농가공식품기업들에 의해 왜곡되고 과장됨으로써 한층 더 멀어졌구요.
 
그리고. 이젠 사람에게까지도 발병하는 광우병이니 조류독감이니 하는 것들이 베일의 말대로 애초 먹던 것들을 대신해 값싼 사료와 먹어선 안 되는 것들을 먹여서 생겨난 것이고. 어떤 어떤 성분을 강화했다고 하는 것들도 따지고 보면 인위적으로 화학물질을 첨가한 ‘약품 구실을 하는 식품’이거나 처음부터 그렇게 자라던 것들을 제자리로 돌려 놓은 것이니. 비틀린 먹이사슬을 복원하고 그 상태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생태계와 건강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은 시간문제일뿐이겠지요.
 
하지만. ‘해결책을 한 상 그득히 차린 희망의 잔치’가 ‘불꽃놀이와 만찬’만으로만 보이지 않는 건 왜일까요. 그건 분명 ‘좋은 품질의 영양을 섭취하도록 이끄는 예방 정책’임에 틀림없는데도 말이지요. 혹여 베일이 유달리도 고기를 좋아하는, 그래서 지금과 같은 고기 소비량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해서인가요. 아님 오메가 6와 오메가 3의 비율만 적정하면 지금과 같은 고기 소비량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해서인가요. 글쎄요. 솔직히 잘은 모르겠습니다. 
 
3.
가끔, 밭 구경을 나오신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유~ 풀이 왜 이렇게 많아. 약 한 번 치면 싹 죽는데. 그걸 그렇게 놔두나”
 
동네분들은 물론이고 생전 호미라고는 몇 번 쥐어본 적도 없을 이들까지도 한 목소리이지요. 사정이 이러하니 누구에게 밭을 보여주는 게 그리 썩 내키지가 않더랬습니다. 비료도 주지 않아 언제나 키가 작기만한 작물들은 그렇다 쳐도 고랑이며 두둑까지 풀들로 빽빽한 모습을 보고 한 마디 하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제딴에는 다협한다고 해서 고추며, 참외 같이 기르기 쉽지 않은 작물은 비닐멀칭까지 했는데. 그런 맘은 몰라주니. 혹여 “농사라는 것 자체가 다른 풀들을 폭력적으로 몰아내며 인간을 위해 한 작물을 기르는 행위인데.....”라는 말이라도 꺼냈다간. 이번엔 뭔 소릴 들을지 상상도 가지 않아 입도 뻥긋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요. 다른 이들이야 뭐라 한들 어떻습니까. 땅을 살리고 그 땅 속에,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과 조화롭게 사는 것. 그저 그렇게 살고 싶은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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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2 15:24 2009/12/12 15:24
넷째 날, 아름다운 길, 597번 지방도로와 36번 국도, 그리고 82번 지방도로를 따라 물태리까지(2006년 10월 3일)
 
<전날부터 함께 하고 있는 월악산 자락>
 
덕주사 입구를 출발한지 1시간이 조금 못 미쳐 송계에 도착했다. 어제 점심 반주로 마신 동동주만 아니었어도 송계까지는 무난히 왔을 텐데. 하지만 맛난 된장찌개에 아침을 먹고 월악산 영봉을 뒤로 두고 길을 나서니 아쉬움은 금방 잊혀 진다.
 
지난 번 여행 때는 계곡 아래까지 내려가 손을 담그고 물장구를 치며 한참을 놀았던 송계계곡은 가을 가뭄에 물이 마른 데다, 군데군데 여름 호우 피해 복구공사로 물길이 심히 탁해 이번엔 눈 구경이다. 그래도 계곡 주위로 울긋불긋 단풍이 들어있어 나름 운치가 있다. 쉬엄쉬엄 걸으며 때 아닌 단풍놀이를 즐긴다.
 
송계계곡을 다 빠져나오니 길은 어느새 충주호를 끼고 돈다. 길 양옆으로는 코스모스가 한 창 제 멋을 뽐내고 있고 가을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색이다. 게다가 지금은 옛 정취를 찾아볼 수 없으나 가을 가뭄 덕분에 물 아래 가라앉아 있던 옛 길과 다리를 보게 되는 뜻밖의 수확을 월악나루터에서 거둘 수 있었으니 걷는 즐거움이 이루 말할 수 없다.
 
 
 
 
 
 
 
 
 
 
 
 
 
 
 
 
 
 
1시가 조금 넘었는데도 아침을 든든히 먹어서인지 배고픈 줄 모른다. 또 오티고개를 넘는 산길을 넘는데도 힘이 드는 줄 모른다. 다만 여기저기서 짖어대는 강아지 소리만 아니면 어제 맛보지 못했던 새재 길만큼이나 고즈넉한 맛을 맛볼 수 있을 것인데, 하는 아쉬움이다.
 
<오티고개를 넘어가는 길>
 
동쪽으로는 한티재와 구실재, 서쪽으로는 봉화재, 남쪽과 북쪽으로는 각각 말구리재와 하너물재 다섯 고개와 한길가, 배갈말, 안말, 매차골, 청풍나드리의 다섯 마을을 일컫는 오티마을에 도착하니 점심때가 넘어도 훨씬 넘어섰다. 마땅히 요기를 할 만한 곳이 없다는 걸 지난 번 여행 때 경험했으면서도 무작정 길을 나선 우둔함에 뱃속이 고생이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오티상회에서 간단히 과자와 빵 등으로 요기를 하고는 무작정 또 길을 나선다. 기억으로는 여기서부터 물태리까지는 그리 가깝지 않은 거리인데다 길마저 한없이 꾸불꾸불 이어지는 지루한 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간상으로도 별로 여유가 없다.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꼬부랑 꼬부랑 고개를 고개를 넘어 간다’
 
돌아서면 나타나고 또 돌아서면 나타나는 고갯길에 지지 않으려고 노래를 불러본다. 누가 이기나, 다. 결국 저 고개를 넘으면 곧 보일 것도 같은 고개를 몇 고개를 더 돌아서서야 겨우 물태리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5시다. 어제, 그제에 비하면 시간상으로는 꽤 일찍 도착했지만 대신 몸이 말이 아니다. 꼬부랑길을 기를 쓰고 걸은 데다 꼬박 사흘하고도 반나절을 더 걸었더니 그렇다. 알게 모르게 체력이 좋아졌다 싶었는데 아직은 아닌가보다.
 
 
 
 
 
 
 
 
 
                                                                                                             
다섯째 날, 작고 예쁜 마을 물태리를 뒤로 두고 단양으로(2006년 10월 3일)
 
아직 해 뜰 기미는 없고 별만 초롱초롱하다. 새벽 4시. 대충 씻고 컵라면 하나씩을 먹으며 해가 뜨기를 기다리지만 금방 해가 고개를 내밀 것 같진 않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도담역에서 9시 39분에 출발하는 기차를 놓쳐서는 안 되기에. 5시 15분. 출발이다.
 
어둠을 헤치며 조심조심 청풍대교 앞에 서니 새벽안개가 짙게 끼어 있는 게 다리를 건너기가 쉽지만은 않을 듯하다. 제법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차량들에 커다란 공사차량들까지 함께 오가서 그렇다. 그래도 다리를 지나 학현마을로 향하는 오르막길에 접어드니 그제서야 어둠도 조금씩 거치고 서늘한 바람마저 불어 걷기는 편하다. 잘하면 기차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헌데 마을 입구에서 만난 고갯길부터 예사롭지 않다 싶었는데 마을을 지나 단양으로 향하는 이 길의 오르막은 상학현에 이르러 급기야 전혀 맛보지 못한 급경사를 보여준다. 지리산을, 덕유산을 넘었고, 엊그제는 새재에서 마폐봉까지 넘었던 발걸음이, 더디다 못해 나아가지 못한다. 조금 쉬다 또 걷고 조금 쉬다 또 걷기를 반복한다.
 
갑오고개 정상에 오르니 여기서부터는 단양군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저 발아래 지나온 길을 내려다보는데. 허걱. 산악마라톤? 걸어서 오르기도 힘든 이 길보다 더 한 산길들을 뛰어 다닌다고? 다리에 힘이 풀린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이런 델 뛰어 다닐까?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마라톤 코스를 알려주는 표지판을 들여다보다 언뜻 시계를 보니 아차, 벌써 8시다. 아무리 빨리 걷는다 해도 두 시간은 걸릴 듯한데, 큰일이다. 서둘러야 한다. 맘이 급한 만큼 발걸음도 빠르다. 쉼 없이 내리막길을 내려선다.
  
결국 도담역 못 미쳐 평동이라는 마을 입구에서 차를 얻어 타고서야 겨우 기차 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30분만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애초 예정했던 도담역까지 올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어쩌랴. 맘씨 좋은 청년을 만나 역 바로 앞까지 쉽게 왔다는 걸로 위안을 삼으며 기차에 오를 수밖에. 밀려오는 피곤함 때문인지 자리를 잡자마자 머리가 떨궈지는데 눈을 뜨니 어느새 아파트 숲 한가운데다.
 
* 열다섯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 첫째 날 : 괴산의 화양동계곡에서 문경의 용추계곡 입구까지 약 23km.
- 둘째 날 : 용추계곡에서 새재 바로 아래 읍내까지 약 24km.
- 셋째 날 : 마폐봉을 넘어 월악산 자락 덕주사 입구까지 약 20km.
- 넷째 날 : 덕주사에서 물태리까지 아름다운 길 약 20km.
- 다섯째 날 : 새벽녘 물태리를 출발해 단양 평동마을 입구까지 약 20km.
 
* 가고, 오고
화양구곡 입구까지는 청주를 거쳐 다시 화양동 입구까지 운행하는 시외버스를 이용하거나 괴산, 청천을 거쳐 화양동 계곡으로 가는 괴산 시내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아무래도 후자의 경우 괴산, 청천을 거치는 동안 배차 시간을 맞추는 게 쉽지는 않을 듯해서 우리는 청주를 거쳐 화양동으로 갔다. 강남터미널에서 청주행 고속버스는 거의 10여 분 간격으로 있으며, 청주에서 화양동계곡은 한 시간 혹은 두 시간 간격으로 있으니 미리 시간표를 확인해야 한다. 도담에서 출발하는 청량리행 열차는 아침 9시 39분, 오후 3시 16분 단 두 차례뿐이니 시간을 잘 맞추어야 한다.
 
* 잠잘 곳
문경 용추계곡과 선유동계곡 인근에는 음식점을 겸해 민박을 하는 곳이 몇 되나 공동화장실을 사용해야 하거나 조립식 주택이어서 편히 쉴 요량이라면 문경읍이나 점촌으로 나가야 한다. 문경읍과 문경새재 입구에는 저렴한 가격의 깨끗하고 다양한 숙박시설과 음식점이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월악산 자락 미륵사지터, 덕주사, 송계계곡 등지에도 역시 음식점과 민박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다만 송계를 지나 제천 물태리까지는 변변한 음식점 하나 찾아보기 힘들며, 구명가게도 그리 많지 않다. 물태리에는 청풍문화재단지가 바로 코앞에 있어 그런지 숙박시설이 꽤 많은 편이며, 인근 학현아름마을에도 민박과 펜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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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8 20:37 2009/12/08 2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