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을 서울에서 나고 자란 이들에게 춘천이란 도시는 정말 작았습니다. 지금 사는 곳에서 웬만한 곳은 자전거로 30여분이면 닿으니까요. 서울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요. 그래서 이 작은 도시에 적응하느라 조금은 시간이 걸렸답니다. 지금이야 몇몇 정류장에 버스위치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니 조금 낫긴 하지만. 처음 와서는 30분도 넘게 버스를 기다리다 지쳐 택시를 잡아타기도 했구요. 또 가끔은 그렇게 기다려 버스를 탔는데, 고작 10여분 후면 곧 내려야 한다는 것에 한숨을 푹푹 쉬기도 했답니다. 이것 역시 서울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요. 그래, 요즘은 버스를 기다리기보단 아예 걷거나, 혹은 조금 먼 곳은 으레 자전거를 끌고 나온답니다.

 

<춘천은 호반의 도시답게 자전거길도 호숫가에 있답니다. 오늘은 중도 뱃터에서부터 한 바퀴를 돌 거예요>

 

<이곳은 다행히 산책길과 분리돼 있긴 하지만요.

사실 지금 함께 하는 이 길은 사람과 자전거가 함께 어울리기에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답니다>

 

<중도 뱃터를 지나면 곧 공지천과 만나게 되지요>

 

사실 이 작은 도시, 춘천으로 오면서 이제 ‘교통지옥’이라는 말은 듣지 않겠거니 했습니다.  인도까지 점령한 자동차, 채 건너기도 전에 깜빡이는 신호등, 하염없이 미터기 숫자만 올리는 꽉 막힌 길 등등. 그런데 말이죠. 인구 25만의, 전에 살던 구로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는 이곳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뭔 차가 그리도 많은지요. 집 앞 호반도로만 해도 아침, 저녁으론 차들이 길게 꼬리를 물고 있구요. 아파트마다 주차장은 항상 만차랍니다. 그래도 아직은 서울만큼은 아니니 걷거나 자전거를 타기엔 그리 어렵지 않답니다.

 

 

<왼쪽으로 의암호 너머  중도가 보이구요(위), 햇볕에 일광욕 중인 고추가 길을 막아서기도 하네요(아래).>

 

일찍 알았더라면 가보았을 터인데. 아무튼, 몇 달 전 강원대학교에서 ‘춘천 녹생성장 자전거로 달라자’라는 주제로 자전거 포럼이 있었는데요. ‘자전거 길은 녹색성장의 출발점’이라는 기조발제(이상원, 대통령직속 녹색성장위원회 위원) 뿐만 아니라 ‘도로신설에 따른 기존 국도의 자전거 시설로의 활용방안’(백남철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 ‘경춘선 폐철도를 활용한 자전거 도로 건설방안’(윤경구 강원대학교 교수) 등의 주제발표 제목만 봐도 얼핏 알 수 있듯 최근의 자전거 열풍을 생활자전거로 이어가기보다는 레저, 문화, 관광 등 산업자전거로 가고 있어 조금은 아쉽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어찌됐건 간에 춘천만큼이나 자전거 타기 좋은 도시에서 이렇게나마 자전거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연구가 시작됐다는 데엔 큰 점수를 주고 싶네요.

 

 

<소양2교를 건너면 육림랜드와 인형극장을 만나게  되는데요. 혹, 이 길이 춘천댐까지 연결됐을라나요?> 

 

춘천으로 오고 난 후 가장 먼저 한 일 가운데 하나가 새로 자전거를 마련하는 일이었습니다. 웬만한 곳은 30분이면 충분한데다 언제 올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느니 속편하게 자전거를 타고 다니자, 했던 겁니다. 그리고 또, 농사를 배우려 왔으니 조만간 밭을 구해야겠고, 그리고 나면 아침, 저녁으로 밭엘 가야하는데. 아무래도 자전거만큼이나 기동성이 있으면서 간단히 짐받이에 박스하나만 달아도 꽤나 많은 짐을 쉽게 실을 수 있는 게. 자동차만큼이나 아니 것보다 더 싫은 오토바이 말곤 없었거든요.

 

 

 

 

 

 

 

   

 

 

 

 

한쪽에서 자전거 이용 활성화를 위한다면서 <자전거등록제>를 도입하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자전거 이용자의 안전을 위해 헬멧 착용을 의무화하자는 소리도 나오고 있구요. 이제껏 자동차를 중심으로만 해서 세워졌던 교통정책에 이런저런 정책들이 자연스레 나오는 걸보니 방향이야 어떻든 간에 바야흐로 자전거 시대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고. 지금 얘기되고 있는 이런 논의들이 이 옛말에 딱 들어맞는다, 싶은 게.

 

<시내에 있는 유일한 자전거길입니다. 왼쪽 차도와 오른쪽 인도 사이에 안전턱도 보이네요>

 

 

<자전거 주차장입니다. 헌데 세워진 자전거가 한 대도 없네요. 너무 외진 곳에 만들어 둔 건 아닌지요> 

 

그래, 그렇게 자전거를 장만한 지 이제 일 년하고도 반. 이젠 속속들이는 아니지만 거진 춘천 시내 주요 길뿐만 아니라 동네 골목길까지도 꿰차고 있으니 이만하면 이제 춘천시민이라 할 만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말이죠. 이렇게 춘천 곳곳을 다녔어도 마음 놓고 자전거를 탈 만한 곳은 생각보다 많지가 않았습니다. 밭에 가는 길이야 시내한복판은 아니지만 그래도 중심가를 통과해야 하기에 언감생심 자전거 도로가 있을 거라 생각지도 않았지만. 집 가까이에 있는 공지천만 해도, ‘마라톤 도시’라 할 만큼 달리기 하는 사람들에, 가족 단위로 산책 나온 사람들에, 그리고 자전거까지 하나의 길에 뒤엉켜서는. 그리고 말이죠. 동사무소에를 가든 대형마트를 가든 어찌 그리 자전거 세워 놓을 곳이 뵈지 않는 건가요. 또 구석에 처 밖아 둘라치면 공간이라도 넉넉해야지, 원.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경우가 태반이랍니다. 상황이 이러니 춘천만큼이나 자전거 타기 딱 알맞은, 적당한 크기의 이 도시에서 되레 자전거가 홀대 받는 거 아니겠습니까.

 

<신매대교에서 의암댐 가는 길을 따라 소양5교까지 갔다, 이제 돌아옵니다>

 

얼마 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이런 안내문이 붙었더군요. ‘기후변화와 환경오염, 에너지, 교통체증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추진되는 자전거 이용 활성화 정책에 따라 주민들의 자전거 이용 실태에 대해 조사를 하겠다’는 춘천시장 명의의 안내문 말입니다. 자전거 보유대수 및 이용도, 보관방법 등에 대해 조사를 하겠다고 하는데요. 모쪼록 시류에 편승해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어설픈 정책을 만들지나 않았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소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아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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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3 20:24 2009/09/23 20:24

풀베기

from 09년 만천리 2009/09/21 19:18

풀베기 - 첫째 날(9월 14일/흐림 15-21도)

 

날씨가 제법 선선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밭에 난 풀들의 기세는 등등하기만 하다. 고추를 따고 말리느라 눈길 한 번 주지 못했던 아래쪽 고구마 밭이 온통 풀천지이니. 얼추 눈대중으로 봐도 호미로 풀매기는 글렀고. 누가 초보 농부 아니랄까봐 낫 들고 풀베기에 나선다.

 

두어 시간 남짓 풀을 베어냈더니 고구마 심은 곳은 물론이고 콩 심은 곳까지도 손을 댈 수 있다. 한 이틀 정도만 시간을 더 내면 옥수수 심은 곳까지 말끔히 정리를 할 수 있겠다, 싶다.

 

풀베기를 하고 나니 풀이 한 무더기 나오는 건 당연지사. 봄부터 집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로 퇴비를 만들어볼 요량으로 밭 한쪽에 따로 모아두긴 한데. 사실 퇴비를 만드는 건지 그냥 쓰레기만 버리는 건지 모르겠다. 오늘만 해도 풀은 풀대로 음식물은 음식물대로 따로따로 모아져있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다음 달에 있는 퇴비 만들기 교육이라도 들어야지, 싶다.  

 

풀베기 - 둘째 날(9월 15일/맑음 16-26도)

 

이틀째 풀베기다. 여름 내내 김매기를 했건만 조금 선선한 날씨에 방심했더니 금세 풀밭이 된 곳들을 말끔히 베어내니 속이 다 후련하다. 이제 깨 심었다 깨는커녕 풀만 키 높이로 자란 곳만 정리하면 대충 밭 정리가 끝난다.

 

풀베기 - 셋째 날(9월 16일/맑음 14-27도)

 

늦은 시간. 밭에 나가야 하나, 하루 쉴까, 잠시 고민하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모자를 눌러쓰고 자전거에 오른다. 오늘 하루만 더 낫질을 하면 아래쪽 밭은 말끔하게 될 것 같아서다.

 

깨를 심었지만, 영 시원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여름부터는 아예 풀밭이 된 곳을 한 시간 남짓 풀베기를 하니 대충 정리가 된다. 밭 둘레 빙둘러가며 심은 옥수수야 아직 따지도 않은 것들이 있으니 좀 더 있다 해도 되니 말이다.

 

늦게 나왔으니 해가 지는 것도 빠르다. 자전거에 다시 오르기 전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저녁 먹고 난 후 군것질할 요량으로 옥수수 몇 개를 담아간다.   

 

         

<며칠만 손을 놔도 금세 풀천지가 된다 (왼쪽과 오른쪽이 확연히 다르지요)>

 

끝물 고추(9월 18일/맑음 14-28도)

 

무더위가 한 풀 꺾이는가 싶었는데 아직은 아닌가보다. 어제만 해도 낮 기온이 26도 머물렀고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부는 게 이제 더는 불볕더위가 없겠다, 했는데. 오늘은 최고 기온이 28도에 육박하고 햇볕도 뜨거워 도로 8월로 돌아간 것 같기만 하다.

 

해질녘이 돼서야 겨우겨우 늘어진 몸을 추스르고 밭에 나간다. 어제, 그제 풀베기를 하면서보니 더는 생길 것 같지 않았던 빨간 고추가 제법 달려 있는 게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생각 같아선 좀 더 기다렸다 이달 말쯤 한 번에 수확을 할까도 했지만. 언제 갑자기 찬바람이 불지도 가늠하기 힘든데다 다음 주 월요일엔 비 소식까지 있기에. 또 이젠 병에 걸린 것들이 그렇지 않는 것들보다 많기 때문에. 빨리 거두어야겠단 마음이 들어 늦었지만 밭에 나온 것이다.

 

끝물이라 그런지 두 시간을 넘게 고추를 땄지만 포대를 반도 채 채우지 못했다. 아무래도 보기보단 병에 걸린 것들이 많아서다. 그래도 용케 한여름을 보내고 가을 초입까지 잘 살아남아 빨간 고추를 만들어낸 것들이 기특하기만 하다. 이제 추석을 전후해서 풋고추를 수확해 장아찌를 담그면 올 고추농사는 얼추 마무리가 되는데. 작년에 비한다면 올 해는 무척 잘 됐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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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1 19:18 2009/09/21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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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서원계곡에서 505번 지방도로를 따라 속리산 법주사로(2006년 9월 2일)

불과 일주일 사이인데 한결 가을 날씨다. 지난주만 해도 목덜미로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아스팔트 위에 열기가 후끈후끈했는데 시원한 가을바람 한 줄기에 금새 땀이 마르는 걸 보니. 여름 내 많이 걷는다고 걸었는데도 그리 많이 걷지 못했고, 이제 걷기에 더없이 좋은 날들이니 부지런히, 많이 걸어야겠다.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는데도 장내에 도착하니 어느새 버스에 오른지 세 시간이 훌쩍 넘었다. 중간중간 쓸 때 없이 시간을 많이 낭비한 탓이다. 충주에서 20분, 보은에서 15분을 하릴없이 쉬었다 가는데, 처음부터 그러하다 이야기도 없었고, 쉬면서도 아무 이야기가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고 속았다는 느낌이다.
 
<속리산 아래 자리잡고 있는 법주사를 찾아 에둘러 가는 길>
 
선병국가옥이니 선명무가옥은 이미 한 번씩 둘러보았기에 때늦은 점심으로 자장면 한 그릇씩을 비우고는 바로 출발인데, 황해동 쉼터까지는 걸었던 길이라 그런지 걸음이 빠르다. 그래도 쉼터에서는 잠시 쉬어가며 새로 장만한 오래된 필름카메라를 꺼내들고 계곡 풍경이며,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어본다.
 
법주사 입구에 있는 정이품송의 부인이라며 ‘정부인송’이라고도 불리는 서원리 소나무는 속리산 남쪽의 삼가저수지에서부터 내려오는 삼가천을 옆에 두고 나란히 이어지는 505번 지방도로 가에 있는데, 계곡 이곳저곳에서 고기를 굽는 둥 물놀이를 하는 둥 해서 썩 쉴만한 장소는 안 된다. 사람도 고기 냄새에 고개가 절로 돌아가는데 소나무라고 별 수 있을까? 아무리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만 말이다.
 
‘정부인송’을 지나니 곧 오르막이고 지도상으로는 삼가저수지 쪽으로 이어지는 길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데, 저수지 쪽 길은 댐 공사관계로 폐쇄돼 있고 대신 지도에도 없는 잘 닦인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별 다른 뾰족한 수가 없어 오르막길로 접어들었는데 웬걸 오르막도 오르막인데 저 멀리 터널이 보이는 게 아닌가. 낭패다.
 
                                                                                     <갈목재에 이르는 길에서 본 삼가저수지>
다행이 터널은 방금 지나온 길처럼 최근에 지어져서인지 잘 닦여 있을 뿐만 아니라 내부도 환하고, 갓길도 찻길과는 다른 높이로 넓게 확보돼 있어 걱정이 없다. 다른 터널들도 이만큼만 환하고 갓길이 넓었으면. 도로뿐만 아니라 터널, 다리 모두가 차에게는 좋은 길이겠지만 걷는 이들에게는 좋지 않은 길이다. 그래도 질주하는 차들의 굉음에 발걸음은 빨라진다.
 
터널을 지나고도 한참을 더 올라가서야 이 고개가 갈목(葛目)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꼬부랑꼬부랑 발아래 저만치 저수지가 보이는데 390m라고 하니 믿기지는 않지만 지금부터 내리막길이겠거니 생각에 그렇게 힘이 들지는 않다.
 
 
 
 
 
 
 
 
 
 
터널에서 갈목재, 다시 법주사로 이어지는 길은 올 해 들어 처음으로 맛보게 되는 가을 날씨, 가을풍경이다. 맑은 날씨, 높은 하늘, 낮은 뭉게구름, 적당한 바람, 이처럼 걷기 좋을 때가 또 있을까 싶다. 해서 걸음은 자꾸만 늦어지고 결국 법주사 근처에 당도하니 벌써 빨간 노을이 하늘에 가득이다.
                                                                                        
둘째 날, 산길을 넘어 괴산군 사담계곡까지(2006년 9월 3일)
 
술이 과했다. 적당한 음주는 그 날의 노독을 풀어주는데 아주 그만이지만, 어제는 과한 술에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를 정도다. 덕분에 8시가 넘어서야 겨우 겨우 일어났다. 헌데 시간도 시간이려니와 속이 편치 않아 대충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우고는 길을 나서는데, 민박집 아주머니가 카메라를 달라더니 여기도 서보라고 저기도 서보라고 하며 연신 셔터를 눌러대신다. 시간은 없고, 머리는 깨질 듯 아파 기분은 과히 좋지 않지만 뷰파인더로 이리저리 우리 모습을 보고 있을 아주머니를 생각해 미소를 지어 보이는데 어째 영 아니다.
 
“이게 다 지나고 나믄 추억잉께 이짝 우리 집 문 앞에도 서 보소”
 
결국 민박집을 배경으로 두어 컷이 넘는 사진을 찍히고 나서야 길을 나설 수 있다. 하지만 아스팔트 길 대신 흙 길을 걷겠다며 접어든 산길을 때문에 이건 걷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조금 걷다 조금 쉬고, 또 조금 걷다 또 조금 쉬고, 아예 길바닥에 눕기도 하니 아무래도 이러다 일정에 차질이 생길지 싶다.
 
아스팔트로 덮이지만 않았다면 더 좋았을 산길을 따라 콧노래를 부르며 한참을 내려오니 국도다. 게다가 오가는 차도 많은데다 속리산 인근이어서 인지 관광버스가 유난히 많이 지난다. 덕분에 길을 걷는 게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길옆으로 줄곧 계곡물이 흐르고 가을바람은 목덜미를 시원하게 하니 기분 하나는 좋다.
 
백현리라는 마을에서는 상회라는 간판을 달기는 했어도 겉보기에도 그렇고 실제도로 그냥 평범한 농가에서 냉장고 하나 갖다놓고 이것저것 음료수만 파는 그런 곳에서 목을 축일 음료수도 사서 마시기도 하고, 경상북도 상주로 넘어와서는 손두부마을에서 두부정식에 점심을 먹기도 하며 부지런히 걷는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아침 내내 괴롭혔던 술독도 많이 빠져 기운이 난다. 또 충북 괴산으로 넘어와 만나게 되는 사담리 유원지에서는 계곡 물이 발을 담그며 어린아이들처럼 물장난에 한참을 재미나게 놀기도 하니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당초 괴산 청천까지 걸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아침 시간을 허비해서인지 더 나아갈 수 없을 것 같다. 무리해서 청천까지 걷는다면 해가 지기 전에는 당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서울로 올라가는 차편이 걱정이다. 해서 사담유원지 앞을 지나는 군내버스를 일단 세우고 본다. 다행이 청천으로 나가는 버스다. 차창으로 시원한 가을바람이 옷 속으로 스며든다.
 
<시원한 가을하늘이 돌아오는 길을 가볍게 한다>
 
 
* 열세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 첫째 날 : 서원계곡에서 법주사까지 약 11km. 걸은 시간 3시간 30분.
- 둘째 날 : 법주사에서 산길을 넘어 37번 국도를 따라 괴산 사담리 계곡까지 약 18km. 걸은 시간 7시간 30분.
 
* 가고, 오고
다행이 보은군 장내리까지는 남부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청주, 보은 경유 시외버스가 있어 버스를 갈아타거나 하지 않았다. 하지만 청주에서 20분, 보은에서 15분씩 정차를 하는 바람에 아침 10시 20분에 출발한 버스가 장내에 도착하니 오후 2시가 다되어서였다. 올라오는 길은 괴산 사담계곡에서 청천, 청천에서 다시 괴산으로 버스를 갈아타야만 동서울터미널로 오는 시외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청천에서 괴산으로 나오는 버스는 1시간 간격으로 다니나 사담계곡에서 청천으로 가는 버스는 자주 다니지 않으니 미리 버스시간을 알아두어야 한다.
 
* 잠잘 곳
법주사 인근에는 호텔에서부터, 유스호스텔, 여관, 모텔, 민박 등이 많아 성수기가 아니라면 잠자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법주사에서 괴산 사담계곡까지는 드문드문 식당과 민박(펜션)이 있으나 사전에 머물 곳을 잘 알아봐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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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5 22:17 2009/09/15 22:17

가는 날이 장날

from 09년 만천리 2009/09/14 14:21

가는 날이 장날(9월 7일/흐리고 비 19-24도)

 

얼마 전 뿌렸던 씨가 싹을 냈다. 씨를 뿌리고 비가 통 오질 않아 걱정을 했는데 싹을 낸 것이다. 때 아닌 가을가뭄인가. 아직 땅이 갈라질 만큼은 아니지만 바짝 마른 게 영 마음에 걸린다. 해서 배추며, 무, 싹을 낸 열무, 아욱 등에 물을 길어 주는데, 이런 잔뜩 흐린 날씨가 오후 들어서는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가는 날이 장날인가 보다.   

 

또 빨간 고추 따기(9월 11일/흐림 14-23도)

 

아무래도 이번 고추 수확이 마지막일 듯한데. 아직은 낮 기온이 27, 8도를 오르내리지만 아침, 저녁으로 부는 찬바람이 고추를 더 빨갛게 하긴 역부족일 것 같기 때문이다. 이미 두 번째 태양초를 만들었기는 하지만. 더 빨간 고추를 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니 전체가 병에 걸린 고추대도 아쉬워 한 번 더 보게 된다. 하나라도 더 건지기 위해서다. 고추를 수확할 때면 어김없이 모기에 여기저기 뜯기기는 하지만 두 시간 넘게 쉬지도 않고 열심히 따낸다. 

 

         

<며칠 전  씨를 뿌렸던 열무와 아욱에서 싹이 났다. 오른쪽이 열무 왼쪽이 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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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4 14:21 2009/09/14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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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얼마 전이었지요.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 발사체라던 나로호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 뒤 정상궤도에 진입하지 못하고 대기권에서 소멸됐던 일이 있었습니다. 처음 이 나로호가 발사됐을 때만해도 성공에 대한 자축의 박수가 연신 터져 나오고, 또 곧이어 나로호의 위치를 확인하지 못하다 결국엔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타 버렸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까지만 해도 그저 그것 참 고소하다, 는 생각만 들었었답니다. 많은 이들이 이 ‘절반의 성공’에 안타까워하는 데. 무슨 심보인지 연신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고 있으니 대체 뭐 때문일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2. 
공존(共存):
명사 ① 함께 존재함
         ② 함께 도우며 살아감
공생(共生):
명사 ① 공동의 운명 아래 함께 삶
         ② (생) 종류가 다른 두 생물이 한 곳에서 서로 이익을 주고받으며 공동생활을 하는 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 중에는 그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같은 뜻인 것처럼 혼용해서 사용하는 것들이 꽤나 있습니다. 공존과 공생도 그러하지요.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공존은 함께 도우며 살아감, 공생은 공동의 운명 아래 함께 삶,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얼핏 보면 그게 그 말 같고 그 뜻이 그 뜻 같은데. 혹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반핵, 반원자력 활동가로 알려진 다카기 진자부로는 에콜로지라는, ‘자연을 제어, 지배,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으로서 향상시키고 자유를 확대시킨다는 이른바 합리주의적 사상, 사실은 실리적인 자연 이용의 사상 이상으로 인간중심주의의 자연관’을 대신하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 속에서 이 두 말의 의미를 설명하는데요.
 
에콜로지는 “지구 생태계는, 다양한 생물이 놀라울 만큼 정교한 공존관계를 맺음으로써 이루어진다. 우리가 직면한 모든 위기는 대부분 이 공존관계를 인간이 파괴하고 있는 데서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려면, 인간 중심의 입장에서 벗어나 인간도 자연계의 일원으로, 전체의 균형을 유지하며 살아가자”는 의미를 지닌 다고 합니다. 결국 ‘자연과의 공존’이라고 할 수 있는 셈이죠.    
 
하지만 이 지점에서 다카기는 ‘자연과의 공존’이 지닌 애매한 입장에서 한 발 앞으로 나아가 ‘자연과의 공생’을 얘기합니다. 즉 인간과 자연을 대치시키고 나서 조화나 공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전체 내에서 인간을 상대화하는, 오히려 자연 속에서 사는 것 자체가 인간의 주체성이라는 점을 말입니다. 인간에게 최고의 원리였던 이성보다도 더 높은 차원의 원리로서 자연의 영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가요. 이쯤 되면 공존과 공생의 의미가 조금은 다르게 느껴지지 않나요. 
 
3.
‘우주시대’, ‘우주개발’, ‘우주강국’
나로호가 발사되기 전부터, 아니 개발 단계에서부터 우리 언론들은 이런 수식어들을 붙여댔습니다. 우주 역시 인간을 위해 이용되는 수단으로 밖에 인식하고 있는 것이지요. 하기사 이번 일이 아니었다면 ‘우주개발을 체계적으로 진흥하고 우주물체를 효율적으로 이용·관리하도록 함으로써 우주공간의 평화적 이용과 과학적 탐사를 촉진하여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는 <우주개발진흥법>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지나갔을 겁니다. 우주발사체 개발을 주도하는 정부의 시각조차 이러한데 자신의 정체성을 시시각각 바꾸는 우리 언론들에게서 뭘 더 바랄까요.
 
그래요. 솔직히 처음엔 MB정부 때 이런 일이 생겨서 그저 고소하단 생각만 했었습니다. 발사체가 성공하게 되면 고스란히 자신의 치적으로 생색낼 게 뻔 한 그림이었잖아요. 그런데 말이죠. 공존과 공생의 미묘한 차이를 깨닫게 해 준 이 책, 벌써 10년도 전에 쓰인 <지금, 자연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읽고 나니 그저 고소하다고만 생각했던 게 너무 한심해지는 거 있죠. 
 
공존이냐 공생이냐, 지금부터 다시 고민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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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1 20:25 2009/09/11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