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하루

from 09년 만천리 2009/08/24 15:58

바쁜 하루(8월 17일/무더움(소나기) 20-34도)

 

아침부터 바쁘다. 고추도 널고, 퇴비도 사고, 감자도 캐고, 소나기 때문에 급하게 집으로 오다 자전거 펑크에 수리도 하고, 다시 고추 꼭지 따고 정말 정신없는 하루다.

 

* 감자 수확량 - 4.2kg

 

* 퇴비 20kg 2포대 - 6,200원

  무 씨앗 - 7,000원

  낫 - 2,000원

  목장갑 - 2,000원

  고추 건조망 - 7,000원

 

김장 무 심기(8월 19일/가끔 흐림 23-31도)

 

요즘은 아침에 눈 뜨자마자 옥상에 고추 널고 오후에 한 차례 뒤집어주고 밭에 나가 일하고 돌아와 고추 걷는 게 하루 일과가 됐다. 태양초 만들기가 쉽지 않다고 하던데 그걸 몸소 체험하고 있는 셈이다.

 

엊그제 퇴비를 사다 넣었으니 뭐를 심어도 심기는 좀 이르지 않나 싶다. 하지만 모처럼 내일 비 소식이 있으니 급한 마음에 김장 무라도 심을 작정으로 밭에 나가는데. 오랜만에 괭이질을 하니 무 심을 조그만 이랑 하나 만드는데도 숨이 차다. 이런. 그래도 한 시간 정도 땀 흘리며 괭이질을 하고 무 씨앗을 심고 나니 뿌듯하기만 하다. 

 

* 감자 수확량 - 6.3kg

 

이랑 만들기(8월 21일/맑음 19-29도)

 

오늘은 밭에 나가 삼십 여분 남짓 배추 심을 이랑만 만들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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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4 15:58 2009/08/24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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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군 청산면에서 속리산 아래 서원계곡까지(2006년 8월 27일)
                                                                              
                                                                                <동학 집회가 열렸던 장내에는 장승만이 서있다>
아침 5시에 일어나 첫차를 탔는데도 청산에 도착하니 7시가 넘어도 훌쩍 넘었다. 아직은 구름 속으로 해가 숨어 있어 아직은 괜찮지만 언제부터 목 뒤로 따가운 햇빛이 내리쬘지 몰라 서둘러 길을 나선다. 하지만 청산 면소재지를 벗어나자마자 만나게 되는 505번 지방도로의 풍경이 자꾸만 발걸음을 늦추게 한다.
 
오른편으로 보성천이 있기는 한데 강물은 흐름을 멈춘 듯 하고, 바람은 한 점 없는 데다 사람은커녕 지나는 차 하나 없다. 길을 걷고 있는 우리 이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움직임도 없는 것이 마치 꿈속을 걷는 듯 나른하기만 하다. 큰 목소리로 노래도 부르며 힘을 내보지만 여전히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어제는 밖에 일이 있다며 사무실에서 땡땡이를 치고는 해지기 전 옥천에 당도했다. 꽉 짜여진 일상에서 탈출하기가 맘만 먹으면 이렇게도 쉬운 것을, 이리재고 저리재고 앞뒤 생각하니 어디 쉽게 놀러 갈 수나 있을까. 혹, ‘누가 요즘 같은 때에 간도 크게 사무실을 땡땡이 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한 번 해보시라. 맘먹을 땐 오만가지 생각이 들겠지만 일단 저지르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열차를 타기 전 일기예보를 확인하니 소나기가 한 두 차례 온다는 이야기가 있기는 했는데, 어째 옥천역에 내리자마자 내리기 시작한 소나기가 좀체 그칠 줄을 모르더니 5시가 넘어서야 겨우 가늘어진다. 그 바람에 정지용 생가며, 문학관 구경을 놓치고 말았다. 게다가 비가 온 탓인지 날마저 금세 어둑어둑해져 옥천으로 다시 나가지 못하고 인근에서 하루 머물 곳을 정했다.
 
10여 년 전 홍수로 유실돼 이제는 그 자취를 볼 수 없는 한호팔경이 있었던 대성리라는 마을에서 한 숨 쉬고 나니 한결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다. 하루 종일 있어봐야 동네 사람 이외에는 누구 하나 올까말까한 동네 구멍가게에서 목도 축이고, 평상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눈다.
 
마로면 관기리에 도착하니 11시가 조금 넘었다. 이제는 목덜미가 따끈따끈하고, 귀 볼 아래로 땀도 주르르 흐리니 배가 고프지 않더라도 땀을 닦으며 쉬어가야겠다. 다행이 맛 좋은 시골 밥상을 차려주는 식당이 있어 뱃속을 든든히 채우고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는 시골 학교 운동장 한구석에 자리를 펴고 눕는다.
 
까까머리 소년들의 공차기에 쪽잠이 방해받기는 해도 정겨운 시골 풍경 때문인지 그리 시끄럽지만은 않다. 나무아래 시원한 가을바람 속에서 그렇게 아직은 한여름의 따가움을 지니고 있는 햇살이 사그라질 때까지 그렇게 쉬다 3시가 넘어서야 다시 길을 나선다.
 
속리산국립공원으로 이어지는 25번 국도는 길 양옆으로 은행나무 가로수가 줄지어 서있고 너른 논이 산 아래까지 펼쳐져 있어 마음이 한결 풍성해진다. 하지만 여느 국도와 다를 바 없이 통행하는 차도 많고, 멀리 보이는 공사 현장에서 쏟아내는 덤프트럭들이 쉴 새 없이 질주하느라 조심해서 걷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도 탄부 임한 솔밭 공원에서는 250년 이상 된 노송 사이에서 잠시 쉬기도 하고, 장내에서는 선병국 가옥에, 동학 장내 집회 장소에서 이것저것 눈요기를 하며 쉬기도 하고, 마른하늘에 때 아닌 소나기를 맞기도 하니 재밌기만 하다.
 
 
<서원계곡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선병국 가옥>
 
장내에서부터 ‘여기가 서원계곡이다’고 불리는 서원계곡은 여름철 계곡 물놀이 장소로 이름이 알려졌다기보다는 이런저런 고시들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한데 모인 곳으로 더 소문이 난 듯하다. 장내 입구에서 한 동안 우리의 발걸음을 잡았던 99칸 선병국 가옥이 그랬고, 서원리의 커다란 건물들이 모두 고시원 간판을 달고 있는 것이 그랬다. 그리고 보니 장내에서부터 유난히 선남선녀들이 눈에 띄었는데 아마 그 고시생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혹시나 해서 서울에서 서원계곡 내 민박집 여러 곳의 전화번호를 적어왔지만 마땅히 잘 만한 곳이 없어 보이는 게 이만저만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당초 일정은 숙박할 곳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법주사까지 걷는 것으로 잡았는데, 선병국 가옥과 동학 집회 장소에서 너무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어쨌든 근방에서 하루 머무르지 않으면 안 될 텐데 말이다. 해서 잘 만한 곳 여기저기에 서둘러 전화를 돌려본다. 하지만 이를 어째. 쉽사리 통화가 되는 곳들은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한참을 더 계곡을 따라 올라가야 하고, 어렵사리 통화가 된 곳들에서는 터무니없는 방에, 터무니없는 방 값을 불러 기분만 상한다. 아무리 한철 장사라고 해도 좀 너무 한다 싶다.
 
서울로 갈 요량으로 고시촌 서원리로 다시 되돌아가는 가는데, 이름 모를 동네 어귀에서 버스편을 알아보니 이미 읍내로 나가는 버스가 이미 끊겨버렸다고 한다. 어찌할까 생각해봐야 답은 없고, 일단 국도와 이어지는 장내까지 내려가기로 한다. 다행히 고시촌 못 미쳐서 맘씨 좋은 고시생을 만나 보은 읍내까지 편히 나올 수 있었다. 3시간 30분이나 걸린다는 걸 차가 출발한 후에야 알게 된 남부터미널행 시외버스에 오르니 창밖으로 어둠이 짙다.
 
* 열두 번째 여행에서 걸은 길
- 옥천군 청산면에서 보은군 외속리면 서원계곡까지 약 23km. 걸은 시간은 약 6시간.
 
* 가고, 오고
옥천까지는 영등포역에서 14시 33분에 출발하는 무궁화호 열차로 이동했으며, 청산면까지는 군내버스를 이용했다. 영등포에서 옥천까지 기차요금이 8,200원인데 옥천읍에서 청산면까지 버스요금이 3,250원이니 웬만하면 열차나 고속버스가 다니는 곳에서 시작과 끝을 맺는 게 좋다. 서원계곡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은 맘씨 좋은 고시생을 만나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하루 더 그곳에 머물러야 했다. 서원계곡에서 보은읍내로 나가는 버스는 몇 차례 운행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지만 대략 저녁 6시 이전에 마지막 차가 지나는 것을 보았으니 하루 더 머물 요량이 아니라면 막차시간을 미리 확인해야 한다. 보은에서 청주를 거쳐 서울로 올라오는 시외버스는 시간도 많이 걸릴 뿐만 아니라 저녁 7시 30분이 마지막이다. 시간을 절약하려면 일찍 터미널에 도착해 대전이나 청주를 거쳐 고속버스 또는 열차를 이용하는 것이 낫다.
 
* 잠잘 곳
이번 여행은 1박 2일 일정이었지만 걷기는 둘째 날 하루만 했다. 첫째 날 우리가 머문 곳은 정지용 생가 인근의 춘추민속관이라는 곳이다. 가까운 옥천 읍내에는 여관과 모텔 등 숙박할 만한 곳이 여러 있으나 한옥체험을 할 수 있다 해서 그곳에서 머물렀다. 속리산 아래 서원계곡에는 황토방갈로를 운영하는 곳 한 군데를 제외하고는 숙박할 만한 곳이 없으니 보은읍이나 법주사 쪽으로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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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2 13:20 2009/08/22 13:20

최근 한국자동차공업협회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등록된 차량 가운데 10년 이상 운행한 차량이 29.8%를 차지했다고 하네요. 10년 이상 된 노후차의 비중이 30% 아래로 하락한 게 작년 12월 이후로 7개월 만에 처음이라는데. 발표 자료만 놓고 보면 아마도 지난 5월부터 시행된 노후차 교체시 취,등록세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이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헌데 말입니다.

 

사실 정부가 노후차 교체시 세제를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한 이유는 ‘저탄소 녹생성장과 일자리 창출’이라기보다는 석유-자동차-건설로 이어지는 발전지상주의 삼각동맹의 한 고리인 자동차 산업의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것이라고밖에 할 수가 없는데요. 우선 함께 도입이 논이됐던 경유차량 환경부담금 면제 방안은 포함되지도 않았구요. 새 차로 바꿔 탈 경우에도 배기량이 크고 비싼 차 일수록 혜택을 더 많이 주는 방향으로 지원방안이 마련됐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MB정부가 ‘저탄소 녹생성장’ 운운하며 4대강 삽질사업을 하는 것처럼 이번 세제지원도 눈 가리고 아웅 식이라는 겁니다. 그래도 말입니다.

 

노후차량 세제지원은 어떤 면에서는 올바른 방향이라고 할 수 있어 마냥 반대만은 할 수는 없는데요. 일단 요즘 나오는 차량들의 경우에는 새로 기준이 강화된 방식으로 단순한 연비뿐만 아니라 탄소배출량까지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구요. 또 2015년이라는 다소 긴 기간이지만은 단계적으로 연비와 배출가스 규제 기준을 강화하기로 해 좀 더 나은 자동차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최근에 각광을 받고 있는 하이브리드 차량의 발전 속도가 예상외로 빠르고 이에 발맞춰 세제지원도 강화되고 있는 추세여서 이를 무시할 수만도 없지요. 하지만 말입니다.  

 

유럽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오래된 차를 폐차하고 신차를 구입할 경우 차량 가격 가운데 일정 금액을 할인해 주는 정책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까운 일본도 보조금을 주는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구요. 언론에서는 경기부양책으로 소개하면서 우리나라의 세제지원 제도와 비교하고 있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이들 나라들의 노후차 교체 지원 방안은 우리의 방식과는 확연히 달라 단순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색할 지경이랍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우만보더라도 13년 이상 된 차량을 폐차하고 친환경차를 살 때 25만엔 혹은 12.5만엔(경차)의 보조금을 줍니다. 물론 폐차하지 않을 경우에도 보조금을 주는 데 이때에는 보조금이 조금 줄어 들어들어 10만엔 혹은 5만엔의 보조금입니다. 그리고 유럽의 경우, 나라별로는 조금씩 차이가 있을지언정 공통적인 내용은 일본과 마찬가지입니다. 즉, 친환경차 혹은 소형차(경차)로 교체할 경우에 한해 일정금액을 할인해주거나 보조금을 주는 거지요. 어째, 상황이 이러하니 우리나라의 세제지원 방안과는 달라도 많이 다르지 않습니까. 대형차, 외제차로 교체할 경우 더 많은 혜택을 주는 그런 세제지원과 말입니다.

 

오래된 차일 경우 연비가 낮거나 배출가스가 많을 가능성이 높긴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후차를 교체하는 데 따른 비용을 사회가 공동 지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환경에 대한 부담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사회적 비용이 되려 환경에 부담을 가중시키는 쪽으로 즉, 대형차를 선호하게끔 지출이 된다면 그거야 말로 불필요한 지출이지 않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MB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노후차 교체에 따른 세제지원은 방향은 어느 정도 찾은 것 같지만 실제 내용은 전혀 다른 것을 담고 있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입니다.

 

정부의 이런 정책 시행과는 달리 한쪽에선 맹목적인 신차 모델 위주의 차량 교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우려하며 되려 10년 차타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곳도 있으니 자칫 헷갈릴 수도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노후 된 차를 교체해 연비를 높이고 배출가스를 줄이는 것이 나은 것인지 계속 신차를 교체하는 식으로 자동차 산업을 유지하는 게 나은 것인지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매년 집중호우가 늘어나도, 연중 황사현상이 나타나도, 매년 최고 기온을 갱신해도, 위기의식은커녕 지금과 같은 발전이 끝없이 가능하리라는 알 수 없는 자만감에 혹 빠져든 건 아닌 가, 묻는다면 답은 의외로 쉬운 것 아닐까요. 말하자면 절반도 다 맞는 건 아니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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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0 23:24 2009/08/20 23:24
1. 
혹시 영국의 대표적인 좌파 감독이자 2006년도에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으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를 알고 있는지요. 우리나라에는 <레이닝 스톤>을 시작으로 <랜드 앤 프리덤>, <빵과 장미>, <칼라송> 등이 극장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알려졌고, 좀 다른 경로이긴 하나 <명멸하는 불꽃>이나 <네비게이터>와 같은 작품으로도 알려진 사람말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바로 감독 켄 로치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런 애기를 하곤 합니다. 켄을 얘기할라치면 늘 주된 화제가 되고 마는 정치성과 계급성에 대해 조금은 자유로워야 그의 절반의 영화들을 볼 수 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 절반의 영화를 못 봐서인가요. 아직까진 켄 로치의 영화 속에 각인되어 있는 그 정치성과 계급성을 지울 수가 없는데요, 아마도 그건 가장 최근에 본 <보리밭을 흐드는 바람>에서도 여전한 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앞서 소개한 그 어떤 영화들보다 <랜드 앤 프리덤>을 가장 먼저 봤기 때문일 겁니다.
 
<랜드 앤 프리덤>은 스페인 내전을 다룬 영화입니다. 우리나라에는 독일의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무솔니로부터 지원을 받은 프랑코 군대에 맞서 스페인 민중과 인민전선정부를 지키기 위해 전세계에서 모여든 이름 없는 혁명가들의 싸움으로 밖에 알려진 바 없는 그 스페인 내전을 말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이 <랜드 앤 프리덤>란 영화, 사실 뭐가 뭔지도 잘 모르면서도 말입니다. 처음 봤던 그 순간에 아, 이 영화는 단순히 스페인 내전만을 다룬 영화가 아니구나, 라는 걸 느꼈더랬습니다. 그리고 스페인 내전은, 그동안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르게 더 복잡한 배경을 갖고 있더라는 걸, 더 복잡한 이념형의 각축장이었음을 알아차렸더랬습니다. 도대체 시도 때도 없이 영화 중간중간마다 튀어나오는, 대체 왜 이런 장면을 넣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긴 ‘토론’ 장면들. 사실 지금이야 어렴풋이나마 그 의미를 알겠지만 처음 봤을 땐 통 뭐가 뭔지도 잘 모르겠고, 무슨 얘기들을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던 그 긴 ‘토론’ 시간들을 보면서 말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2.
채식주의나 환경과 관련된 책, 혹은 자연주의적 색채를 띠는 저서들 가운데 종종 이 책을 언급한 것들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꼭 100년이 조금 넘은 때이던 1906년, 당시 미국 육가공산업이 급성장한 경을 된 비밀을 폭로한, 그로인해 식품의약품위생법과 육류검역법 등이 제정되게끔 한 <정글 The Jungle>을 말입니다.
 
업튼 싱클레어는 이 책 한 권으로 일약 최고의 리얼리즘 소설가로 알려지게 됐는데요. 사실 그가 쓴 글을 읽고 있노라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는 육가공 공장의 내부 모습이 놀랍기만 합니다. 헌데 말입니다. 싱클레어도 지적했듯이 <정글>이 육식의 안전성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을 받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가 더 큰 주의를 기울였던 자본의 무자비한 이윤추구의 현장에 대한 생생한 고발에 대한 환기는 뒤로 밀려난 듯 해 본말이 전도됐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사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이윤 추구라는 목적 하에 비윤리적이고, 비인간적인 행태가 서슴지 않고 자행될 수밖에 없는 게 어디 이 소설에서 고발하고 있는 육가공 산업뿐이겠습니까. 
 
<정글>은 이미 1979년에 한 번 출간 된 적이 있었습니다.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인 채광석의 번역으로 말이죠. 하지만 그때 출간된 <정글>은 번역자의 표현대로라면 주인공인 유르기스의 미래상에 대한 저자와의 여러 가지 상이점 때문에 29-31장이 빠진 채였음에도 판매 금지 도서로 지정됐답니다. 물론 아는 사람들만은 몰래몰래 책을 보았구요. 그러다 1982년에 동녘출판사에서 재출간하기에 이르렀구요, 다시 10년 흐른 1991년, 초판 번역본 당시 누락됐던 29-31장이 추가되어 완역본이 나오게 됩니다.
 
3. 
초판 번역본에서는 볼 수 없었던 29-31장의 내용은 어찌 보면 도식적이다, 싶을 만한 내용들입니다. 자본주의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 이주노동자로서 갖은 착취와 불의 속에 가족을 모두 잃다시피 한 유르기스가 ‘사회주의’ 활동가로 거듭나는 과정이 특별한 개연성 없이 서술되고 있으니까요. 더구나 작가가 가지고 있던 진보에 대한 확고함 때문이었을까요. 한 치의 흔들림 없는 문체는 읽는 이로 하여금 거부감이 들 정도라니까요. 하지만 말입니다.
 
그처럼 도식적이고 강고한 문체로 읽기가 까탈스러우면서도 말입니다. 오래 전에 봤던 <랜드 앤 프리덤>의 그 긴‘토론’ 장면이 내내 떠오르는 건 왜일까요. 그리고 말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할아버지의 유품을 통해 스페인 내전을 알게 된 손녀가 장례식에서 윌리엄 모리스의 시 “전투에 참여하라. 아무도 실패할 수 없다. 육신은 쇠하고 죽어가더라도 그 행위들은 모두 남아 승리를 이룰 것이므로”를 낭송하는 모습과 사회주의자로서 처음 맞은 선거에서 사회당의 놀라만한 성과에 감탄한 유르기스에게 “우리는 그들을 조직할 것입니다 그들을 가르칠 것입니다. 승리를 위해 단결시킬 것입니다! 우리는 적을 압도할 것이며, 우리 앞에서 그들을 쓸어버릴 것입니다”를 외치는 연사의 외침이 겹치는 건, 또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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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9 22:19 2009/08/19 22:19

첫물고추

from 09년 만천리 2009/08/18 21:16

빨간 고추(8월 10일/무더움 20-30도)  

 

확실히 작년에 비해 고추 농사는 잘 되가는 듯하다. 아직까진. 일단 몇 개가 죽어나가긴 했지만 장마를 별 탈 없이 보냈고, 빨간 고추가 아래쪽부터 서서히 올라오는 게 이대로만 간다면 꽤나 많은 고추를 수확할 수 있을 것 같으니 말이다. 그래도 통풍을 위해서이기도 하고 또 이미 달린 고추에 영양을 더 주기 위해서도 곁가지로 나온 고추 잎들을 따주어야 한다.

 

두 시간이나 무릎으로 기다시피 하며 하나하나 일일이 고추 잎을 따니 땀도 많이 나고 무릎도 아프다. 게다가 웬 모기떼가 이리도 극성인지. 아마도 땀 냄새를 많고 모여든 것일 텐데, 땀 식힐 시간이 있다면야 어찌 해보겠지만 내일부터 비가 온다고 하니 그러지도 못한다. 하는 수 없다. 모기가 물든 어쩌든 해질 때 까진 아무 생각 없이 일만 하는 수밖에. 

 

첫물고추 - 첫째 날(8월 11일/흐린 후 비 22-25도)

 

오후부터 장대비가 온다고 한다. 이 비는 내일까지 중부지방에 많은 비를 쏟아낸다고 한다. 지난 번 장맛비로 이미 고추 몇 주를 뽑아냈으니 비가 더 온다고 해도 비 피해를 받진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걱정이다.

 

비가 그치고 나면 또 무더위가 지속될 거라는 장기예보가 있으니 아무래도 첫물고추를 수확해야할 듯하다. 해서 어제부터 시작한 고추 밭 정리를 잠시 멈추고 빨간 고추 수확에 나선다.

 

비 온다는 소식에 서둘러 밭에 나왔는데도 겨우 한 시간이나 고추를 땄나. 비가 후두둑 떨어진다. 조금만 더 따면 한 이랑은 딸 수 있건만, 어찌할까 잠시 고민이다. 아무래도 비가 오는 가운데 고추를 따게 되면 좋지 않을 것 같아서다. 하지만 마음만 그렇지 몸은 정반대다. 다섯, 여섯 주만 손을 보면 한 이랑을 끝낸다는 눈치에 쏟아지는 빗속에서 고추를 따낸다.

 

결국 10여분 더 일을 한 후에 한 이랑에 달린 고추를 다 따낸 후에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에휴. 이게 뭔 사서 고생이람. 그래도 따 온 첫물고추 무게를 재보니 7.3kg이나 된다. 아직 네 이랑이나 더 남았고, 아직 빨갛게 되지 않은 고추들이 빨간 고추보다 세 배는 더 많으니. 오늘만 같으면 아무리 비가 오고 일이 많아도 힘들지 않겠다.

 

* 첫물고추 수확량 - 7.3kg

 

<꼭지를 따내고 햇볕에 말리기 시작했습니다>

 

첫물고추 - 둘째 날(8월 13일/무더움 20-32도)

 

계획대로라면 벌써 감자를 다 캐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자리에 김장무와 배추를 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자를 두 이랑도 채 다 캐지 못했다. 생각보다 감자 양이 많은 것도 이유라면 이유고 어제부터 수확하기 시작한 고추에 밀린 것도 이유라면 이유다. 하지만 무와 배추를 심기 전에 퇴비도 넣어주려면 늦어도 이번 주까진 감자를 다 캐야 할 것 같다.

 

감자를 캘 요량으로 호미질을 했는데 아무래도 어제, 그제 내린 비 때문인지 감자에 흙이 많이 묻어난다. 아무래도 하루, 이틀 정도는 더 기다렸다 캐야할 듯하다. 괜히 땅에 물기가 다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캐냈다간 감자 맛이 안 좋을 것 같아서다.

 

해서 비 오기 전, 한 이랑밖에 수확하지 못한 첫물고추를 마저 따기로 하고 고추 밭으로 들어선다. 헌데 더운 날씨만큼이나 달려드는 모기 때문에 고추 따기가 영 쉽지만은 않다. 고추 서너 개 따고 모기 잡고, 또 고추 한 주 따고 모기 잡고. 진도도 나가지 못하고 신경질만 나는 게, 어째 오늘은 일을 많이 못 할 것만 같다. 결국 한 이랑밖에 고추를 따지 못하고 자전거에 오른다.

 

* 첫물고추 수확량 - 6kg

 

   <옥상에서 잘 마르고 있습니다>

첫물고추 - 셋째 날(8월 14일/무더움 22-33도)

 

오후엔 고추 말리는 데 쓸 요량으로 차광막을 사러 시장에 다녀왔다.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차광막을 깔고 부직포를 덮어 말리면 뒤집어 주는 수고도 덜할 수 있고 희나리도 생기지 않는다고 해서 일단 차광막부터 사려 한 것이다. 헌데 종묘상에 갔더니 특별한 이름은 없지만 고추 말리는 데 쓰라고 나온 게 있다고 한다. 얘기를 더 들어보니 차광막은 고추 꼭지가 걸려 뒤집기가 어려운데 이건 그렇지가 않단다. 그리고 값도 차광막보단 조금 싼 것 같다. 해서 차광막대신 그걸 사왔다.

 

저녁나절에 또 한 이랑에서 첫물고추를 따왔다. 어제 고추를 따면서 흘낏 봤더니 꽤 고추가 많이 빨갛게 된 것 같아 쌀 포대를 두 개 준비해 왔는데 다행일까. 한 이랑을 다 따고 나니 거의 두 포대에 가득이다. 낑낑대며 자전거 뒤 짐받이에 묶어 세워 힘들게 오르막길을 오르지만 콧노래가 나오는 건 왜일까. 헤, 이 맛에 농사짓는 건 아닌지.

 

* 첫물고추 수확량 - 11.3kg    

 

  

첫물고추 - 넷째 날(8월 15일/무더움 20-34도)

 

하루에 한 이랑씩 모두 나흘 만에 첫물고추를 다 수확했다. 첫날 따온 고추는 벌써 아파트 옥상에서 일광욕 중이고, 둘째 날과 셋째 날 따온 고추는 마루를 차지하고 앉아 후숙 중이다. 이제 오늘 수확한 고추를 작은 방에 널어놓으면 한 숨 돌릴 수 있겠다. 지금까지 따온 고추 수확량은 28.9kg. 사실 고추가 빨갛게 될 무렵 다 죽어버렸던 작년에 비한다면 이만큼만 해도 대성공이다. 하지만 아직 고추 밭엔 따온 고추보다 더 많은 고추가 달려 있으니 잘만 하면 고추 대풍을 만들 수도 있겠다.

 

저녁나절엔 다음 주 김장 배추와 무 심을 곳을 만들기 위해 고추 수확 때문에 잠시 미뤄뒀던 감자 캐기에 나선다. 헌데 날이 무덥긴 무더운가 보다. 해질녘에 나갔는데도 불과 한 시간 만에 온 몸이 다 젖고 만다. 정말 밭일하기 괴롭다. 그래도 겨우 반 이랑밖에 캐지 않았어도 감자가 쌀 포대에 가득이다. 덥기도 하거니와 자전거로 실어 나를 수 있는 양이 한 정돼 있으니 이젠 집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    

 

* 첫물고추 수확량 - 4.3kg

* 감자 수확량 - 11.9kg

 

감자 수확 - 넷째 날(8월 16일/무더움 20-34도)

 

연일 폭염이다. 어제도 34도, 오늘도 34도다.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고는 있지만 한낮엔 그야말로 땡볕인 셈이다. 덕분에 첫물고추 말리기는 잘 될 듯싶지만 밭에 나가 있는 시간이 줄어드니 딱히 좋다고만 할 수는 없다.

 

다음 주 수요일쯤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으니 오늘까진 감자를 마저 캐고 내일은 농협에 들러 퇴비를 사다 넣어야 한다. 해서 오랜만에 삽을 챙겨든다. 감자는 대충 한 포대만 캐고 무 심을 이랑을 만들기 위해서다.

 

확실히 감자 꽃이 많이 올라온 곳이 알도 굵다. 또 알만 굵은 게 아니라 양도 많다. 지금까지 두 이랑을 조금 넘게 감자를 캤는데 씨알도 작고 수확량도 적은 게 역시 꽃도 적게 올라온 것들이었으니 말이다.

 

감자알이 굵으니 조금만 캐냈는데도 금방 포대가 가득 찬다. 덕분에 무 심을 이랑에 준비해간 삽으로나마 위, 아래 흙을 섞어줄 수 있다.  

 

* 감자 수확량 - 10.8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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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8 21:16 2009/08/18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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