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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09
    [시]사소한 물음에 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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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8/06/24
    촛불의 이해득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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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8/06/03
    '안티 이명박'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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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8/05/26
    MB정권의 목젖과 힘줄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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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8/05/26
    지난 주에 한국에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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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8/05/21
    [펌]뼈의 최후통첩!!(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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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8/05/16
    짭새, 껍데기,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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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8/05/09
    나는 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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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8/05/09
    [펌]일본 SF에 대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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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8/04/28
    내가 경제위기와 무슨 상관일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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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소한 물음에 답함

- 깜짝놀랄 수도 있음.

- 볼륨조절을 하기바람.

 

 

 

송경동 시인의 시다.

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은, 나희덕의 문학집배원이라는 사업의 일환으로 메일링 서비스되는 내용 중 하나.

 

소스 홈쳐오느라 애를 먹었다. 크흑.. 송경동 시인...무당같다는 생각을 한다. 볼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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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의 이해득실

아무래도 말들이 쏟아지는 형국인지라, 여기에 한 스크롤을 얹는다고 티도 안날 지경이다.

그러니, 읽고 읽는 수 밖에. 하지만 2mb의 오만한 반격이 예정되어 있는 작금의 상황은 다시금 머리를 굴리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궁금했다. 당최 촛불정국에서 이익을 본자와 손해를 본자가 누구냔 말이다. 모든 것이 '선택이론'에서 와 같이 이해관계에 따른 합리성에 근거하지는 않을 테지만, 그래도 향후 정국의 '예상'을 하는데 나름의 기준을 삼기위함이다. 뭐, 술판에서 흔히 있는 감상비평을 벗어나진 않겠지만.

 

1. (다시) 최장집과 하승우

 

뭐, 대응하기가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이 대립항 밖에는 없다. 최장집은 얼마전 퇴임을 하면서까지 '정당의 제도화'를 유언으로 남겼다. 그가 쓴 '이명박정부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게되나?'(비평, 2008년 여름)를 보면 그의 생각이 잘 정리되어있다.

 

쉽게 보면, 원래 정치제도는 운동-제도-권력의 세개항으로 구성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정당이 개판이라 운동-권력의 직접적인 관계에 놓여있다. 이런 이면엔 과도하게 집중된 '대통령의 권력'이 있다. 따라서 의원제 개헌이 필요한데, 당장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 정당체계부터 운동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정도. 반면 하승우는 촛불을 그간 정치과정의 단절이 아니라 연속성에서 볼 것을 주문한다. (이는 매우 의미있는 반전이라고 생각한다.)[MB없는 대한민국을 상상하자] 그리고 시민들의 직접행동이 최초의 공식적인 시민성을 획득한 이번 사건에 주목하자고 말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제도정치는 기본적으로 배제의 원리가 작동한다. 그런데 이번 촛불은 배제되었거나 배제될뻔한 것들이 날 것으로 등장했다. 제도가 이를 포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직접행동에 기반한 새로운 정치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제도 정치가 흔들리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불필요하니 이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

 

정도.

 

재미있는 것은 한동안 악명을 떨치던 '다중'이 화려하게 등장했다는 것이며, '집단 지성'이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 다중과 집단 지성

 

개념은 구별 지음을 통해 확정된다. 그러니까 다중은 다중이 아닌 것과 구분되고, 집단 지성은 집단지성이 아닌 것과 구분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뭐 대략 '이 정도?'식의 가늠으로는 공허한 말장난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적어도 내 생각으론, 다중과 집단지성이 가지는 엄청난 포용력(설명력이라고 해도 좋겠다)은 그것이 기본적으로 사후적이라는 사실에 기인한다고 본다. 무엇이 다중이고 무엇이 집단지성인지는 사후에 명명되는 것이다. 또한 하승우는 민중 대신 다중을 주장하지만, 민중이라고 불리던 대상이 어떤 질적 도약을 통해 다중이 되었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부적절하다. 역으로 다중이라고 불리었던 것이 민중도 될 수 있고, 대중지성이라고 불렸던 것이 대중독재의 근거가 되기도 할 테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최장집과 하승우의 차이는 분석과 해설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3. 조중동과 한겨레, 그리고 경향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한겨레와 경향의 차이를 많이 느끼는 편이다. 뭐 표현이 우습긴 하지만 한겨레는 여전히 계몽적 성격이 강한 '선동성'이 있는 반면, 경향은 르몽드나 네이션과 같이 '지성지'의 포지션을 갖는다고 본다. 그래서 한겨레는 당파성이 존재하고, 경향은 유연한 균형감이 있다고 본다.

 

그런데 최근 <시사인>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니, 6% 가량이 구독하던 신문을 바꿨는데 첫번째가 한겨레로 바꿨고, 두번째가 동아일보로 나왔다(뭐, 이런 병~~ 똥차 피한답시고 쓰레기에 처박히는 센스하곤). 재미있는 것은 경향으로 옮겨간 이들이 너무 적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내부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오히려 경향 걱정을 더한다. 왜냐하면 완전 위기라는 설이 파다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 미움 받고 있지, 돈 될만한 광고는 안들어오지...

 

(흥미로운 건 경향은 최장집과 겹치고, 한겨레는 하승우와 겹친다는 것이다. 순전히 개인적인 느낌으로만^^)

 

4. 어쨌든 맞짱의 시간이 오는 걸까?

 

그런데, 제도정치의 안정화든 직접행동의 다양한 가능성이든, 당장 싸움을 걸고 들어오는 2mb와 어떻게 대응할까가 문제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라고? 역시 보수 우익의 레토릭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정체성은 움직이는 거야라고 누군가 말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젠장!!

 

촛불의 피로감이 그 특유의 천민성때문에 청와대의 귀족적 피로감보다 빠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춧불들은 돈을 써가며 거리에 있지만, 청와대나 정부에 있는 놈들은 어떻게 뻐기든 한달에 한번씩 꼬박꼬박 세금을 받아가지 않는가? 당최 피로감이 쌓일 이유가 없는 거다.

 

누군가, 6월 28일에 150만이 모이자고 격문을 썼다.

 

난 리니지 등의 온라인 게임을 하진 않지만, 공성전에 돌입할 때의 긴장감이 이런 것인가 싶다. 아자 아자.

 

참, 그래서 최장집과 하승우 중 누구냐면 머리는 최장집, 심장은 하승우... ^^ 안될까? 신문은 경향이 많이 컷으면 한다. 폼나는 지성지로... 음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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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이명박' 그 자체다

트랙팩님의 [촛불집회를 말하다.] 에 관련된 글.

 

최근 촛불집회에 대해 이런 저런 해석들이 가해지고 있다.

가장 일반적인 해석들은 미디어들이 내놓고 있는데, 대부분 '자발성', '수평적 관계망; 네트워크?','다양성'이 언급되고 있는 듯하다.

 

이런 해석의 문제중 하나는, 현재 촛불집회의 성격이 '과거의 운동방식'(이라고 명명된) 조직화된 집회의 논리적 대척점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과거 과격폭력운동의 상징으로서 '노동단체'의 투쟁은 급격히 평가절하되고 있다.

 

두번째 문제점은 그 다양성에 있다. 애국가가 불려지고 항의의 상징으로 태극기가 나오는 상황은 지금의 국가를 극복함으로서 얻고자 하는 욕망을 보여준다. 즉, '합리적이고 존중할 만한 대한민국'의 건설인 것이다. 이로써 '국가를 말하지 않기'라는 암묵적인 운동적권적 합의는 무의미해졌다.

 

나는 그래서 이번 촛불집회는 민중의 우발성을 보여주는 징표임과 동시에, 자본주의적 질서체계의 안정화로 귀결될수도 있는 사건으로 생각한다.

 

1. 우발적인 사건과 과잉된 의미

 

실제로 촛불집회에 참여를 해보면 이 집회를 통해 주장하는 바는 간단하다. '고시철회'와 '재협상'.

중요한 것은 이런 주장들이 현 이명박 정권하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요구일 수 있다는 말이다.

사실상 재협상이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 과정에서 결정적인 장애가 될 것 같지는 않다. 물론 한미FTA라는 미-한 자본의 요구가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쇠고기 재협상 자체가 한미 FTA의 핵심적인 고리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 축산업계-미 정계 커넥션에 의해 외삽된 '추가 요구'의 성격에 더 가깝다.

 

오히려 이런 의미를 오판한 것은 이명박이었다. 그런 점에서 쇠고기 검역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은 이명박 정부의 오판에서 불거진 우발적인 사건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민주주의의 급진화 요구로도 받아들이수 있는 부분이 있는걸까? 개인적으론 있다고 생각한다. 집회에서 요청되는 '민주공화국'에 대한 언급과 '국민주권'에 대한 합의는 이전의 어떤 상황보다도 민주주의를 심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보면 이런 민주주의의 심화 기획은 오히려 '건전한 대한민국'의 건설이라는 국가주의 틀 뿐만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세계질서'에 대한 항의를 배제한다는 측면(최근 '다함께'의 배제는 이런 움직임을 보여준다)이 공존한다고 생각한다.

 

2. 자본주의체제의 합리화

 

만약 이번 촛불집회의 최소공약수가 '체제내의 절차적 합리성' 부분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면, 현재 서 있는 체제 내와 외의 경계에서 오른쪽으로 넘어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집회 참가자 자체의 정치적 각성이라는 부분은 놀라울 정도다. 이 역시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아니 이 부분만 주목하더라도 이번 촛불집회의 의미는 중대하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것은, 그런 '절차성'에 대한 관심이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의 심미화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오히려 검역주권으로 칭해지는 '국가의 경계'를 강조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자본과 노동에 대한 상이한 기획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 물론 과도한 비관적 관점이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개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거리의 정치'를 경험하게 되었다는 점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한다. 솔직히 촛불집회가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지는 못했다고 판단하더라도, 국가라는 틀에서 자유롭지 못한다 하더라도 가치가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벡터'의 방향성이 아니라 '벡터' 자체의 등장에 있다. 방향성은 이후의 정치적 과정이 필요한 것이지만, 각각의 시민들에게 '벡터의 성격'이 나타난 것은 대단한 것이라고 믿는다.

 

'촛불집회'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래서 이에 대한 평가는 현재 지금의 한계에 놓여 있다. 만약, 쇠고기의 문제가 공공부문 구조조정과 함께 FTA 문제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국면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안티 이명박'에 갖힌 촛불집회는 체제 내적의 자기 갱신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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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권의 목젖과 힘줄을 보다

1.

뭐 말도 안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이렇게 국민들의 의견이 짓밟힌 적이 있었던가.

 

2.

누군 그러더라. 그 촛불이 다 FB였으면 바로 MB가 항복을 했을 거라고.

그래서 말해주었다. 그게 다 FB였으면 그렇게 사람들이 모이지도 못했을 거라고.

 

3.

박,전,노로 이어져오던 한국의 독재정권 계보가 MB에 의해 다시 이어지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어쩌면 그 때보다 더 치졸한 방법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근육을 다 드러내 보인채 겁을 주고 있는 것이다. 물가는 올리고, 언론은 통제하고, 경찰청장이 현장 지휘하고, 관계기관대책회의 가동하고, 기무사에서 청와대 직보하고.

 

이렇게 적나라하게 노출된 정권의 힘줄, 마초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4.

그들의 근엄한 얼굴엔 유독 목젖만 도두라져 보인다.

금새 금새 말을 바꾸는 저 현란한 말솜씨는 바로 저 목젖에서 단련된 것이리라.

 

5.

양은 생각보다는 훨씬 공격적이고 치명적인 동물이다.

 

국민을 양이라고 생각해서, 이리저리로 몰 수 있다고 생각하나보지?

'양들의 침묵'을 오히려 두려워 해야 할 텐데.

 

6.

MB정권을 보고 있노라면, 지난 노무현 정권하에서 '언론의 독립성' , '정치검찰' 운운하며 지사연 했던 한나라당 거시기들 보기가 영 그렇다. 말이 바뀌었다는데에 열이 받는 게 아니라, 당시 그들이 했던 말들이 한푼어치의 진정성도 없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게 짜증난다.

 

7.

어떻게 MB의 엉덩이에 똥침을 날릴 수 있을까?

 

8.

오바마가 '한미FTA' 반대한다고, "얼마나 한국에게 유리하면 미국 대선후보가 반대하겠냐"고 주장하는 한나라당 똘아이들을 보면서, 당직자나 정치인들도 논술과외를 받아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그러면, 부시는 얼마나 한국을 사랑하기에 불리한 한미FTA 협정을 타결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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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한국에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

코니 윌리스의 "세상이 지난 주 화요일에 멸망하지 않은 이유"(mirror.pe.kr)을 보고 즉흥적으로 작성하고 있는 오마쥬 물.

 

모티브는 현재 소고기 촛불집회가 결국은 한국혁명의 출발점으로 장치되었다는 가정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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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때가 왔다. 대학 시절부터 청와대에 깃발만 꽂으면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떠들던 선배의 말은, 그 선배가 연애엔터데인먼트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것 만큼이나 '무한도전' 같은 일이었다. 오늘 회의를 통해 그동안 준비해온 혁명의 날을 결정하기만 하면 된다. 오늘은 그것을 확인하는 최후의 날이다.

 

박치우: 늦었군.

 

조선 대표도 참석한 박치우 선배가 도착했다. 일제시대때부터 선택받은 자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장치들을 설치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뒷말로는 내가 '한국 혁명 위원회'의 현지 담당자로 뽑혔다고 공고가 나갔을때 '머리에 피도 안마른 그 놈이 뭘 안다고 그런 중책을 맡기느냐'며 마르크스 동지의 수염에 매달려 항의를 했다한다. 그것을 본 신채호 선배가 "역시 저런 국가주의자하곤 상종하지 않는 게 최고다"며 크로포트킨 동지와 함께 플라잉 낚시를 하러 떠났다는 소문까지 덧붙여 졌다.

 

그 사건이 있은 후로부터 세계 혁명 위원회에서는 박치우 선배를 특별히 '특별한 참가인' 자격을 주었다. 흔히들 '특참'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세계 혁명 위원회도 보통 세혁위라고 불리었고, 한국 혁명 위원회도 한역위라고 불렸다. 세혁위는 세계를 대표한다는 권위로 세르비아 혁명 위원회를 '세르혁위'라는 이름을 사용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물론 한혁위도 원래는 '대한민국 혁명 위원회'였지만, 큰 대자를 쓰는 것에 대해 중국의 쑨원 동지가 콧웃음을 날린대다가, 대만 혁명 준비위원회의 강력한 반발로 인해 한혁위가 된 것이었다.

 

나: 아 네, 원래 약속시간에는 다 늦지 않나요? 그나 저나 선배, 점점 더 때가 도래하는 것 같아 기뻐요. 최근엔 광화문의 촛불이 거리를 점거했다잖아요. 이건 분명 전조라구요.

 

박치우: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난 아직 우리의 정치문화와 우리 국민의 소부르주아적인 이데올로기가 아직 청산이 되었나 의심스럽네.

 

내가 지난 회의에서 이번 소고기 시위와 관련한 보고를 하면서 '이번 사태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동안 별다른 두각을 보이지 않았던 10대들이 1960년의 정세와 유사하게 전면에 등장한 점이며 특히 인터넷 까페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두드러졌다'고 했더니, 박치우 선배는 "도대체 그 까페는 어디에 있느냐?"고 물어 주위의 동정을 사기도 했었다. 그 때부터 박치우 선배의 이야기는 왠만하면 대꾸를 아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 늦었네, 늦었어. '다함께' 애들이 계속 붙잡는 바람에 말야."

 

막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트로츠키 동지였다. 요즘 한국 출장이 잦다. '다함꼐'라는 혁명 동아리가 아무 글이나 써놓고 그 밑에 '트로츠키'라는 이름을 써놓고 출판한다고 짜증이 부쩍 늘었다.

 

트로츠키: 그나마, 이 쪽 근처에 와있어서 겨우 시간에 맞출 수 있었어.

 

트로츠키 동지는 커피메이커의 커피를 따라 홀짝거리며 마셨다. '역시 커피는 남미산이 좋은데 말이야...' 나는 지금 내가 먹고 있는 커피가 어디 산인지 모른다. 방금 남미산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나: 요즘도 '다함께' 동아리때문에 바쁘신가요? 그 쪽도 최근의 혁명적 상황에 대해 한껏 고무되어 있겠죠? 어떻게 준비하고 있던 가요?

 

트로츠키: 아~ 그건 물어볼 새도 없었어. 몇 년전부터 자율주의인가 뭔가하는 동아리와 싸우느라고 정신이 없더군. 뭐 '비물질 노동'이 있느냐 없느냐 부터 해서, 다중이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고 난리더군. 내게 훈수를 요구하는 건 대개 이쪽 부분이던걸?

 

박치우: 아니 그건 또 뭔말이오? 트로츠키 동지. 생산관계를 통해 사회적 관계로 형성되는 계급 개념이 비물질적 노동에서 나오는지 물질적 노동에서 나오는지가 그렇게 중요하단 말이오? 거참.

 

트로츠키: 아, 박치우 동지였구만. 난 사무실 아가씨와 너무 열심히 농담 따먹길 하길래, 뭐 하는 사람인가 했다우. 하하~ 기분 나빠하지 마시오. 다 웃자고 하는 것 아니겠소. 뭐 다함께 후배들이 찾는 건 대개가 맑스 형님께 물어야 할 것들이라 내가 할 말이 별로 없다는 게 문제지 뭐.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들어오자 마자 모자를 벗고는 사무실 직원들에게 가벼운 목례를 했다. 콧수염이 그리 많지 않았음에도 훵하니 드러난 대머리와 대조되었다.

 

트로츠키: 아이고, 레닌 동지. 오느라 수고 많았소. 요즘 한창 바쁘다는 소릴 들었는데, 이렇게 정정하게 보니 반갑네 그려.

 

그도 그럴것이 레닌 동지는 지난 1989년 세계 곳곳에 있는 자신의 조형물이 땅바닥에 처박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자폐증까지 걸렸었다. 그 때문에 지난 10년이 넘도록 집에서 두문불출하고 있었고, 한동안 자살설까지 떠돌았던 터였다.

 

레닌: 뭐, 그다지 바쁠 건 없고. 요즘 계속해서 1916년 기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들어선 때를 꿈속에서 본단 말이야. 이게 좋은 징조인지 나쁜 징조인지 모르겠어.

 

한켠에서 새우깡을 먹던 박치우선배가 레닌을 보더니 말을 꺼냈다.

 

박치우: 그런데, 스탈린 동지는 만나시나요? 요즘 도통 안보이던데.

 

나: 박 선배... 아하하. 레닌 동지 이해해 주세요. 이번 한혁위 모임에 처음 나오셔서 그래요. 그리고 최근 헤겔 공부를 다시 시작하신다고 금강산 언저리에서 수학하신게 길어서 잘 모르세요. 아하핫.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날 것 같은 레닌이 박치우 선배의 순진무구한 얼굴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트로츠키: 아이고 박치우 동지. 레닌 앞에서 스탈린 이야긴 하지 않는게 불문율이요. 뭐, 다시볼 생각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래도 되지만 말이야.

 

박치우: 그렇게까지 볼 건 없다구요. 저나 특히, 혁명 이후 소련을 방문했던 백남운이 같은 친구들은 당시 소련의 혁명 지원에 얼마나 감사해 하고 있었는데요. 일본 혁명 그룹도 다 스탈린 동지가 힘써준 덕분에 우리같은 사람들을 도와준 거라구요.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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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뼈의 최후통첩!!

1. 가히 패러디 최근작 중 최고봉이라 할 만하다.

 

 2. 손석희가 말을 더듬는 것은 그들에게 승리였음이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3. 나는 우리나라가 관료사회로 강화되고 있다고 생각하며, 결국 관료사회에 대한 비판을 전면화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 중이다. 그 방법 중 하나가 행정고시 폐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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짭새, 껍데기, 쓰레기!

1.

전주의 경찰이 사고쳤대지?

학생을 수업중에 불러 집회참석을 막았다고?

 

도대체 대통령 한놈 바뀌었을 뿐인데 세상이 이렇게 아싸리판 나도 괜잖은지 모르겠네.

그보다 그딴 놈한테 내 세금으로 월급을 주는데, 이거 환장하겠네 참.

 

2.

그 보다 심각한 건 학교 선생들이라고 봐.

학생을 보호하긴 커녕 거짓말을 시켜?

 

도대체 이런 놈들이 애들을 어떻게 가르친다는 거냐고!!

이건 개소 보다도 못한 것들이 경찰이고 선생이니, 더러워서 못살겠다.

 

3.

EBS 경영진은 청와대에서 전화받고 영국광우병을 다룬 '지식채널 e'의 '17년 후'를 내리게 했고,

한국농업대학의 학장은 학교대문을 걸어잠그고 기숙사 학생들의 출입을 막고,

정부기관이 쇠고기 수입업자 불러다가, '성명서'에 싸인시키고...

 

이에 대한 해명 꼬라지 하곤.

 

EBS는 '경영상의 이유때문'이라고 했다네? 거 5분도 안되는 프로그램이 경영상에 문제를 일으키나?

한국농업대학 학장은 '정부 지원으로 운영되는 학교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했다고?

성명서를 강요했던 검역소 소장은 "그렇게라도 국민들이 안심하게 되었다면 좋은 일 아니냐"고 반문?

 

4.

온갖 욕이 다 나오는 것은 일단 참자.

 

뭐 세상이 개같은 것이 하루이틀일인가? 다만 정부가, 그에 속한 관료들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싸그리 그런 족속들이라는 것만 기억하자.

 

그리고 욕은 우리 DJ DOC 형님들에게 맡기자. 어제부터 이 노래의 후렴구가 입에서 떠나질 않는다.

 



수업중 '촛불 고교생 조사' 진술 입맞춤 종용 물의
교사 '사실대로 얘기하면 다친다.쉬는 시간이라고 진술하라" 종용
 

촛불 집회를 신고했다는 이유로 경찰이 수업시간에 고등학생을 불러 조사해 물의를 빚고 있다는 CBS노컷뉴스 보도와 관련해 "수업시간이 아니었다"는 경찰의 해명은 사실이 아니었고, 학교 교사들은 해당학생에게 "수업시간이 아니었다는 내용으로 입을 맞출 것"을 강요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전주 덕진경찰서 A 형사가 전북 전주에 있는 한 고등학교를 방문한 것은 지난 6일 오전 10시 40분쯤.

A 형사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를 신고했다는 이유로 이 학교 3학년 B군을 불러 줄 것을 학교측에 요구했고, 이 학교 생활부장 교사는 담임교사와 함께 수업시간이 채 끝나지 않은 11시 5분쯤 B군을 불러 학생주임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A형사에게 인계했다.

A 형사는 B군을 상대로 10분 가량 집회 신청 배경과 규모, 배후 조직 여부 등을 조사한 뒤 돌려보냈다.

15일 이같은 내용의 보도가 나가자 전북지방경찰청과 전주 덕진경찰서 측은 "해당학교를 찾아가 B군을 불러 조사한 것은 맞지만, 일반적인 정보활동이었고 사려깊지 못하게 해당학교를 직접 찾아가 조사를 한 것은 잘못한 부분이라 생각한다"면서도 "분명 수업시간이 아닌 쉬는 시간에 학생을 불러 조사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해당학교를 찾아 B군과 함께 수업을 받았던 학생들에게 정보과 형사가 찾아왔던 당일, B군이 언제 불려나갔는지를 묻자 학생들은 "수업시간 도중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경찰의 해명은 반나절도 되지 않아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보다 정확한 사실 확인을 위해 B군을 만난 자리에서 처음에 B군은 "CBS 노컷뉴스에 나간 기사는 모두 다르다"고 말한 뒤 "불려나간 시점도 수업시간이 아닌 쉬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B군과 함께 수업을 받았던 학생들로부터 "B군이 수업시간에 불려나갔다"고 말한 내용이 담긴 녹음 테잎을 들려주자, 그제서야 B군은 한 학교 교사로부터 "사실대로 이야기를 하면 학교 선생님들이 다친다"며 "쉬는 시간에 불려간 것으로 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에 앞서 이 학교 교감과 생활부장 교사는 기자를 상대로 "절대 수업시간이 아닌 수업이 끝난 뒤 학생을 데려왔다"고 거듭 강조했다.

결국 학교측은 '스승의 날'인 15일 학생을 상대로 '거짓말 교육'을 시킨 셈.

한 고등학생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신고를 둘러싸고 경찰과 일선학교까지 엮여진 파동은 우리사회 일그러진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balancele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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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난민이다

1.

 

근 일주일동안 블로깅을 하지 않았다. 광우병파동때문이다. 체질상 하나의 문제에 정신을 쏟으면 다른 데엔 신경을 쓰지 못한다. 특히 쓸 말이 '광우병' 밖에 없는데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면 더욱 그렇다.

 

어제 <100분토론>을 보고 결론을 내렸다.

 

미국 시스템에 대해, 미국에 대해 '신뢰'를 강조하는 농림부의 관료를 보면서,

향후 통상마찰이 발생할 시 '자동차 수출 금지'에 대한 피해는 우리 국민이 져야 한다고 말하는 인하대 정인교 교수의 말을 들으면서,

검역중단 조치에 대한 명시를 '당연한 것인데 굳이 적시할 필요하가 있느냐'고 되묻는 외교부 관료와

'미래를 위한 발전적 논의'를 강조하는 이상한 사람까지.

 

그들은 나의 국가가 아니었고, 내 나라의 인민이 아니었다. 나와 그들은 다른 사람이었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그래서, 미국과의 신뢰보다 정부와 국민간의 신뢰가 더 중요하며 수출국의 잘못으로 수입국이 덤터기쓰는 것은 제대로된 협상이 아니라는 것과, 당연하기때문에 반드시 명시되어야 하고 광우병에 대한 정부태도가 오히려 후진적 태도라는 걸 목이 쉬도록 말해도, 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공직자가 국민의 머슴이라고? 이런 개소리.

지식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어디 개가 풀뜯어먹나?

 

 

2.

 

다만 아쉬웠던 것은, 광우병 문제를 지나치게 검역과정 등 과학적 논쟁의 대상으로 몰고 간다는 점이다.

내가 정리한 것은 이렇다.

 

광우병 문제는 민주주의의 문제다. 정확하게 보면, 광우병 문제는 공화국의 시민과 이의 수임권력을 가지고 있는 공화국 정부와의 관계 문제다. 공화국의 정부가 권위의 수탁자인 시민을 배신할 경우, 공화국의 존립이유는 없다.

 

이 정부는 나의 정부가 아니다. 이 공화국은 나를 정당한 시민으로 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나는 이 공화국의 시민이 아니다.

 

이 정부는 나와 같은 생각의 사람들, 보통 국민의 70%라고 말해지는 미쇠고기 수입반대 국민들을 '비국민화' 해버렸다. 나는 심리적으로 이 나라에서 추방되었다. 그리고 곧 밝혀지겠지만, 정치적으로 혹은 정책적으로 난 국외자가 되어 버렸다.

 

 

3.

 

권리는 없고 의무만이 있는 사회를 노예사회라고 한다.

 

좋게보더라도, 난 합법적인 제도를 통해 권력을 잡은 파시스트와 그 주구인 정부관료가 만들어 놓은 왕조국가의 신민일 뿐이다.

 

민주국가가 국민들에게 신뢰를 구하지 않은 것을 넘어서, 신뢰를 강요하는 사태는 너무 불안하다.

 

 

4.

 

나는 이번 사태를 통해 한국이라는 근대 국가의 국민으로 살아가는 나의 존재에 대해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난 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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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일본 SF에 대한 글

[특집2] 확산과 침투의 30년 - 일본 SF를 돌아본다 2008.05.07


지난해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한국 대형 서점의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로 기록되었다. 이 짧은 소설 혹은 우화는 사뭇 쉬이 읽히는 청춘물 같아 보인다. 하지만 일본 SF의 동향을 조금 아는 독자라면 작가 츠츠이 야스타카가 일본 SF의 3대 거장에 드는 거물 작가이며, 부담 없고 모던해 보이는 이 소설이 이미 1967년에 발표한 주브나일(청소년) SF의 고전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 소개하는 SF 소설이 주로 서구에 국한된 터라 일본 SF의 활발한 유입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일본은 아시아권 최고의 SF 강국이며 그 저변과 역사는 우리나라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다. 일본 SF계는 1954년에 이미 최초의 SF잡지 《성운》*을 발간했고(비록 1호로 끝나긴 했지만), 잡지 《SF 매거진》*은 1960년 창간 당시 이미 아서 C. 클라크, 필립 K. 딕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따끈따끈한 신작을 게재했다. 일본 SF계는 ‘성운상’*을 통하여 해외 SF 작품에 자국의 상을 수여하기도 하는데, 일례로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말에 겨우 번역 소개된 J.G. 발라드의 뉴웨이브 SF 《크리스털 월드》가 작품을 발표하고 몇 년 후인 1970년에 제1회 성운상을 수상했다.* 이때 일본과 서구 SF의 체감 시차는 3,4년 정도로, 반세기 전의 거장들조차도 아직 제대로 소개가 안 된 한국에 비하면 당시에도 거의 실시간으로 서구 SF를 접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 본격적으로 서구 SF가 유입된 것은 패전 이후이며, 아시아권이 서구 팝 컬처의 영향을 받는 일반적인 경로가 그렇듯이 미군 기지에서 흘러나온 페이퍼백이 장르 독자/작가를 양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처음부터 SF가 인기 장르로 자리잡은 것은 아니었다. 1950년대에 간헐적으로 발간된 SF문고들은 대체로 오래 가지 못했고, 당시만 해도 ‘SF에 손대면 망한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1957년 하야카와 서점*에서 영미 SF를 중심으로 발간한 ‘하야카와 판타지’ 시리즈는 순조롭게 증쇄를 거듭했으며, 1960년 하야카와 서점은 잡지 《SF 매거진》을 창간하기에 이르렀다.






일본 SF의 태동에는 잡지 《SF 매거진》이 큰 역할을 했다. 물론 잡지 하나가 모든 역할을 수행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무엇보다 ‘일본 SF의 1세대’라고 할 만한 작가들이 이 잡지의 지면에서 데뷔하거나 하야카와 서점의 SF 공모전에 입상하며 등장한 사실은 분명하다. 비평가이자 작가인 모리시타 카즈히토는 <일본 SF의 발자취>라는 글에서 1962년을 일본 SF의 시작으로 잡은 적이 있다. 이해에 고마츠 사쿄, 히라이 카즈마사, 미츠세 류 등이 《SF 매거진》을 통해 데뷔하고 츠츠이 야스타카, 도요타 류, 한무라 료 등이 제2회 공상과학소설 콘테스트*에 입선했기 때문이다. 1세대의 주요 작가들이 한 해에 집중해서 데뷔하거나 창작에 손을 내밀었던 것이다.
이 작가들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이어지는 기사 <일본 SF의 대표작>을 참조하자. 그래도 이후 《일본침몰》로 일본 SF를 대중 엔터테인먼트의 첨병 자리에 올려놓는 고마츠 사쿄나 슬랩스틱 SF로 시작하여 특유의 독설과 풍자 정신으로 순문학과 장르문학 사이를 거침없이 오가는 츠츠이 야스타카의 이름 정도는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또한 SF 쇼트 노벨(초단편)의 명수 호시 신이치는 이때 이미 활발하게 활동하며 지명도를 넓혀가고 있었다. 이들 고마츠 사쿄, 츠츠이 야스타카, 호시 신이치는 일본 SF 여명기의 3대 거장*으로, 이들이 한 시기에 모여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1962년이다.
이밖에 미츠세 류는 ‘우주 연대기’ 시리즈를 통해 서정성과 종교적 테마를 중시한 우주 SF 장르를 개척하기 시작했고, 위에서 언급하지 않은 작가 마유무라 다쿠는 그 전해에 데뷔를 마치고 이해 첫 장편을 집필 중이었는데, 이후 관리 조직 속의 인간에 주목하는 ‘인사이더 SF'라는 독자적인 주제 의식을 발전시켰다. 이들과 《SF 매거진》의 초대 편집장 후쿠시마 마사미, 도쿄 대학에서 최초의 SF 강좌를 연 이시카와 타카시는 창작과 함께 평론 작업을 도맡았다. 여기에 더하여 서구 SF를 번역하고 소개한 이토 노리오, 노다 마사히로, 야노 테츠 등이 ‘일본 SF의 1세대’*를 형성한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일본의 SF는 아직 ‘소수의 엘리트들이 향유하는 문학’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일본 SF의 여명기는 저마다 “일본에 SF를 전파하자”는 열의로 가득했다. 비평가와 작가, 번역자들은 SF란 무엇인지, 일본에서 SF는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여나갔다. 풍부한 인재와 열의로 인해 일본 SF는 1970년대에 활짝 피어난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20세기 소년》을 읽은 독자라면 1970년 오사카에서 열린 일본 만국박람회*가 일본인에게 어떤 모습이었는지 조금은 전달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세기의 상징이었고, 패전 이후 일본 번영의 약속이었다. 그리고 ‘과학’은 시대의 테마가 되었다.
1970년대에 일본 SF가 전성기를 맞은 까닭을 찾으려면 과학기술의 발전과 국가의 미래, 경제 성장의 자신감이 혼재된 사회 분위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속에 SF를 일본의 ‘새로운 문학 방법론’으로 전파하기 위한 평론가와 작가들의 분투가 쌓였고, 작가와 평론가, 번역자 등 1세대의 활동을 팬의 입장에서 응원하던 이들이 ‘2세대’로 데뷔했다. 구세대가 활약하고 신세대가 더해지는 이 시기, 고마츠 사쿄의 《일본침몰》(1973)이 발간되고 같은 해 말 동명의 영화가 제작되며 일본열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에 이른다.
모두가 발전의 꿈에 부풀어 있을 때 일본열도의 침몰 가능성을 과학적 설정으로 묘사해낸 《일본침몰》은 국민적 주목을 끌 수밖에 없는 소재를 채택하고 ‘일본이 침몰할 위기에 처했을 때 타국은 일본을 도와줄 것인가’라는 국제 정치 관계를 소상히 반영하여 ‘허무맹랑한 상상’으로 치부되던 SF를 국민 엔터테인먼트로 자리잡게 했다. 이처럼 일본인과 긴밀하게 관련된 상상을 전개하는 방식은 이후 일본 SF의 특징으로 확고히 자리잡는다. 《일본침몰》은 일본 SF를 서구 SF의 영향 아래에서 탈피시킨, ‘일본인 전용 SF’를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작품이다. 또한 1974년에는 SF 애니메이션 《우주 전함 야마토》가 방영되면서 국민 애니메이션이 되었다. 정리하자면 이 시기야말로 일본 SF가 아서 C. 클라크나 아이작 아시모프 등 서구 SF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마니아들의 전유물’이 아닌 자국 엔터테인먼트의 첨병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시점이다.
1970년대에 1세대인 히라이 카즈마사는 일본식 초인 변신물인 ‘울프 가이’시리즈로 큰 인기를 끌었고, 라이트 노벨로 이어지는 일본 SF의 흐름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한무라 료는 일본 자위대가 사무라이 시대로 간다는 대체역사물 컨셉트의 《전국자위대(戰國自衛隊)》를 발표했는데, 1979년에 영화화되며 큰 인기를 누렸다(이러한 자국 SF로서의 대체역사물은 국내에서도 상당히 활발하게 창작되고 있다). 한무라 료는 또 《돌의 혈맥(石の血脈)》으로 흡혈귀와 초고대사를 결합한 일본식 팩션인 ‘전기(傳奇)소설’의 효시가 되었고, 도요타 아리츠네는 미래인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몽고군의 세계 지배를 막으려 한다는 내용의 《퇴마전기(退魔戰記)》를 발표했다.
이처럼 1970년대의 일본 SF는 장르의 사회적 위상과 대중적 위상을 동시에 드높이고 있었다. 이런 흐름은 엔터테인먼트의 선두에 SF를 자리하게 만들었고 팝 컬처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1975년 츠츠이 야스타카가 ‘제14회 일본SF대회’의 모토를 ‘침투와 확산’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이 같은 배경에서 이루어졌다. 츠츠이 야스타카의 《소설 일본 문단(大いなる助走)》에는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문단에서는 여전히 인정받지 못하면서도 ‘잘 팔리기 때문에’ 갑자기 대접받는 SF작가의 울분이 희극적으로 잘 드러나 있다. 하지만 분명히 붐은 붐이었던 것이다.






1977년 영화 《스타워즈》가 등장하면서 SF붐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소위 ‘카도카와 상법’이 등장한 것도 역시 1970년대였는데, 이것은 서적을 서적만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멀티미디어를 동반한 상품으로 취급하여 마케팅/판매하는 기법이다. 출판사가 단지 서적만을 출간하는 회사가 아니라 영화화 등에 주체적으로 관여하는 거대 미디어 회사로 변신한 것이다. 이런 풍토에서 SF는 매스미디어에 적합한 장르 소재로 크게 각광받기 시작한다. 잡지만 해도 1970년대 말 《기상천외》 《SF 어드벤처》 《SF 보석》* 등이 잇달아 창간되고 더욱 많은 작가들이 데뷔했다. 일본 SF는 1980년 한 해에만 작품수 369점을 기록하는데, 이것은 10년 전의 4배, 20년 전의 123배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1980년대는 각종 멀티미디어에 흡수되어 일본 SF소설의 정체성이 점차 사라져가는 시기이기도 했다. 볼륨은 커졌지만 한편으로 소설보다는 ‘건담’ 시리즈나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같은 애니메이션 작품을 언급하는 것이 더 편리해지는 시기가 된 것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가 히트한다고 판타지 독자가 느는 것은 아닌 것처럼 SF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이 인기를 끈다고 SF소설 전체의 팬이 느는 것도 아니었다. SF식 아이디어는 만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팝 컬처 어디에도 등장했지만, 1980년대 말이 되면서 SF붐이라는 말도 무색하게 잡지들도 거의 사라지고 《SF 매거진》 하나만 남았다.

이처럼 팝 컬처 속에 SF 요소가 거리낌 없이 쓰이고, 순수문학 작가가 SF 컨셉트의 작품을 쓰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되었지만, SF만의 영토는 오히려 축소, 1990년대에는 “일본 SF가 사라졌다”는 결론을 내려지기에 이르었다. 현재 일본 SF는  ‘침투와 확산’의 시기를 거쳐 ‘투명화’되었다고 평가받는다.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실체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 SF의 지난 흐름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가치관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일본 SF는 침투와 확산이라는 명제에 성공한 것 같다. 라이트노벨과 같은 대중 소설이나 만화, 애니메이션의 대부분은 어떤 식으로든 SF식 아이디어(사이보그, ESP, 평행우주, 나노머신,  등)를 활용하고 있다. 다른 한편 진지한 SF 독자들의 눈에 이러한 일본 SF는 지나치게 ‘연성화’되었다고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즉 모험활극 줄거리의 설정 자원으로 활용되고는 있지만, SF만이 줄 수 있는 과학적 경이감이나 성찰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미 저 작품들은 SF 장르라고 부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은, 현재 일본의 팝 컬처에서 활용되는 SF의 자원은 일본 SF 소설계가, 작가와 평론가, 그리고 독자들이 수십 년 동안 쌓아놓은 역량과 전통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한국이 ‘본격 SF’는 그만두고라도 SF라는 핵심 용어*조차도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SF 소재’를 극중에 등장시키는데만도 이질감을 극복하지 못하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이는 결코 간단하게 치부할 문화 역량이 아니다. 국내 SF팬으로서 이 정도까지만 되어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일본에 비하면 국내 SF신은 아직 시작 단계이며 ‘지적 엘리트의 전유물’ ‘마니아들만의 읽을거리’라는 입장을 탈피하기 위해 이제 막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는 단계다. 지금은 ‘확산’하는 것에만 모든 신경을 기울이는 시점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방식의 ‘확산’이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움직임은 없는 듯하다. 지금은 출판사나 작가가 활동을 유지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확산과 침투의 시기가 몇 년 후에 닥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국내 SF계는 ‘팝 컬처’로서의 SF 풍토를 만들어나가는 쪽을 우선할 것인가, 혹은 ‘SF의 본성’을 지키면서 ‘단단한 숫자’를 확보하는 데 전념할 것인가. 지금 당장 급하지는 않지만 언젠가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닥쳐올 것이다. 그 순간이 닥칠 때 일본 SF가 걸어간 길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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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경제위기와 무슨 상관일까?

"아무래도 경제위기가 큰 게 올것 같아"

 

몇 주전 경제학 박사라는 사람이 밥을 먹다 했던 말이다.

 

"엥? 왜요?"

 

"작년에 일어났던 서브프라임사태가 흐지부지되고 있고 올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엔 뭔가 올 것 같아."

 

속으로 생각했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야 언제나 위기를 달고 있는데 뭐. 그래 이 놈의 세상, 제대로 한 번 흔들려야지. 그런데 말이다, 지금껏 경제 위기가 왔을 때 개피를 보았던 사람들은 누구였냐 말이다. 바로 나와 같은 서민들 아니었겠나. 그래서 물었다.

 

"뭐, 우리 사는 것과 관계가 있겠어요?"

 

밥을 열심히 입으로 나르던 중, 툭 내뱉는 말. "글쎄 은행 빚이 있다면 크게 낭패를 볼 수도 있지."

 

이런! 은행에 깔린 8000만원의 빚이 아른거렸다. 젠장.

 

 

1. 서브프라임

 

머리가 아파왔다. 나름 대학다닐땐 마르크스경제학의 전형논쟁까지 파고들면서, '오오~ 스라파...'를 외쳤었는데 서브프라임, 증권화 등등 최신 금융용어들이 도저히 접수가 안됐다.

 

교과서는 너무 건성건성이라 그렇고, 정부기관 자료는 '별 걱정없다'는 투로 일관하니 '이걸 믿어야 하나'라는 의심이 들었고, 금융정책연구소 등 이쪽 경제연구소를 다녀도 고차원적인 내용뿐이니... .

 

 

햐~ 이러다 앉은 자리에서 당하겠다 싶었다. 결국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법. 서점에서 책을 뒤지다 정말 눈이 띄는 책을 발견했다. 바로 하루야마 소카의 <서브프라임>이다. 감히 고백하건데, 난 이책을 보고서 서브프라임이 무엇인지, 그것이 왜 문제가 되었는지, 그리고 미국의 서브프라임사태에 유럽과 일본이 왜 벌벌 떨었는지를 이해했다. 그리고, 서브프라임문제가 왜 나의 문제가 되는 지도 알게 되었다.

서브프라임 - 10점
하루야마 쇼카 지음, 유주현 옮김/이콘

 

 

 

 

 

 

 

 

[책을 클릭하면 알라딘으로 연결]

 

이 책의 저자는 외환딜러로 일하다가, 미국의 부동산 관련 금융상품을 다루는 전문가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저자가 좌파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그럼에도 매우 상식적인 판단력을 가진 이로 미국 금융시장의 구조와 최신 금융기법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어찌나 서민들의 입장에서 글을 쓰시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자세히는 책을 직접보고, 간단히 따져보자. 서브프라임은 프라임의 밑에, 그러니까 담보능력이나 상황능력이 되지 않는 계층에게 대출을 하는 상품이다. 거기에 '모기지'라는 단어가 붙으면, 주택 관련 상품이라는 뜻.

 

상식적으로 상환능력이 없는 사람은 은행대출이 어렵다. 하지만 미국의 주택붐은 주택의 가치를 엉뚱하게 올려놓았다. 2억짜리 집을 8천만원 빚을 얻어 샀던 사람이 5년동안 4천만원을 갚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집값이 4억으로 뛰었다. 이때 대출브로커가 접근한다. 2억 대출을 받으면 대출금을 갚고도 다시 투자를 할 수 있는 돈이 생긴다. 2년 동안은 거져로 빌려주겠다고 말한다.

 

돈이 없는 사람한텐 어떻게 대출하냐고? 일단 돈을 빌려주고 집을 사게한다. 이 사람이 돈을 못갚는다. 그러면 집을 팔아버리는 거다. 살던 사람은 어쩌냐고? 거리가 있지 않나!

 

그런데 여기서 증권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금융권이 이렇게 막무가내 대출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증권화가 뭔가? 4명이 7%의 금리로 총 합 10억원을 대출했다. 그런데 이를 은행이 매달 들어올 금리의 0.5%를 먹고 6.5%를 투자회사에 넘긴다. 그럼 투자회사는 6%의 수익률로 해당 대출을 증권처럼 상품화하여 파는 것이다. 그러면, 대출자가 낸 이자 중에서 일부를 금융권이 챙기면서도 부실 대출의 피해는 결국 투자자에게 가는 거다.

 

'6%의 고수익을 올리는 상품이 리스크가 큰 게 흠이 되느냐'는 것.

 

이런 내용은 일부에 불과하다. 이 책은 정말 대단하다. 역시 교양서를 펴내는데 일등인 일본의 저력을 보는 것 같다. (이외에도 세계경제가 어떻게 미국의 재정적자로 먹고 살고 있는지, 중앙은행은 어떻게 시장을 잡지 못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도 쉽게 쓰여 있다.)

 

 

2. 경제 위기

 

이렇게 뿌려진 서브프라임 상품은 대부분 2년 거치, 혹은 3년 거치 상품들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런 상품이 가장 많이 팔렸던 것이 2004년에서 2005년 사이. 그러면, 거치 기간이 끝나는 올해 말에서 내년까지는 갑자기 급등하는 이자때문에 파산하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는 말이다.

 

미국의 내수가 위축되면, 세계 경제가 흔들린다. 우리나라처럼 미국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큰 나라는 당장 타격을 받는다. 그런데 이보다 문제는 우리 금융기관들이다.

 

최근 기사를 보니 우리은행도 이런 서브프라임 상품에 투자했다가 800억원 가까이를 날렸다고 예금보험공사에서 징계를 받네 마네 하는 이야기 나왔다. 다른 은행들도 비슷할 것이다. 쉽게 돈을 굴릴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 그러면, 이렇게 손해를 본 은행들이 손해를 어떻게 만회하려고 할까.

 

대출 금리를 올리거나, 대출 수수료를 올리는 거다. 절대 자기는 손해를 안본다는 이야기지. 결국 서브프라임 사태 -> 미국 소비침체 -> 국내 산업 타격 -> 금리인상요인 발생 -> 내 은행 빚의 새끼들이 많이짐 T.T. 도대체 미국의 서브프라임과 내가 무슨 관계냐구요!!

 

 

3. 우리 정부는 믿을 수 있나?

 

헛소리. 혹시나 해서 찾아봤다. 2007년 8월 17일 피크였던 서브프라임 위기를 전후로 <한국은행>의 보고서를 일부러 찾았다. 올커니, 1월달 자료가 나왔다. '불안에도 불구하고 낙관적 전망..' . 8월 9일자도 있다. 역시 '연방준비은행이 나설 것이니 안정화될 것으로 전망 ... '. 올해 2월 보고서 '위험요인은 많지만 크게 안정을 해치는 사안은 없을 것' T.T

 

그래서 알았다. 우리 정부는 서민을 지켜주지 않는다. 그래도 정부가 하는 일은 있다. 아마 금융권이 붕괴직전이면 국민들 세금으로 은행들 퍼다 줄거다. 그리고 은행권에서 떨려 나가는 대출자들은? 알아서 할 일이다. 은행은 살고 서민들은 죽고.

 

그러니, 내가 이런 저런 고민을 하지 않게 생겼냐고!!

 

암튼, 간만에 최근 경제상식을 한 껏 올린 주말이었다. 켁!!



 

아침에 출근해서 메일을 보니, 메일링리스트에 가입해 있던 CEPR이라는 곳에서 아래와 같은 글이 도착했다. 다른 건 보면 좋지만 넘어가고, 표만 보아도 미국내 주택가격의 하락이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다.

 

내년 초가 무섭다.

 

Home Sales and Prices Continue Downward Path

April 23, 2008

By Dean Baker

 

"The current rate of price decline will deflate the bubble by the end of the year."

Existing home sales fell  2.0 percent in March after a modest upward tick in February. Median and average house prices increased after a sharp reported drop in February, although they are both still far below year ago levels.

Interestingly, the Northeast now appears to be doing substantially better than the other three regions of the country. Sales are only down by 18.8 percent compared to year ago levels, and 22.8 percent compared with the 2005 peak. By comparison, existing home sales nationwide are down by 30.3 percent compared to the 2005 peak.

The difference is even more dramatic on the price side. While median and average prices in other regions are plummeting, they are actually slightly higher year over year in the Northeast.

Part of this story may be attributable to reports of European buyers
in the New York real estate market. European investors seem to have an insatiable appetite for throwing away their money in the United States. This dates back to the fortunes lost in the canal building boom in 1837, but more recent manifestations include Daimler Benz’s purchase of Chrysler in 1998 for $40 billion and Duetsche Telekom’s purchase of Voicestream for $50 billion.

According to press accounts, many Europeans are now buying up condominiums in Manhattan as investment properties. Given the sharp drops in employment in Wall Street, these investments are likely to turn out about as well as the Daimler Benz takeover of Chrysler, but for the moment, this is a prop for the New York market.

It is interesting to note how far house prices have already fallen, as we await the release of the February data from the Case-Shiller index. The table below shows how far house prices have fallen in several of the major bubble markets since their peak in July of 2006, as of January 2008. It shows how much they would have fallen by this month, if they continued the rate of decline over the last quarter and how low they would be by next January if they sustain this rate of decline for a full year.

Price Decline from July 2006 

City Jan. 2008 
Apr. 2008 
Jan. 2009  
Boston -8.50% -12.20%  -22.30%
Detroit -18.70% -24.70% -40.20%
Los Angeles -18.10% -27.30% -47.40%
Miami -19.00% -25.30% -41.40%
New York
-6.90% -9.20% -15.80%
Phoenix -18.80% -29.00% -48.80%
San Diego
-20.70% -27.90% -45.70%
San Francisco
-15.50% -23.20% -42.10%
Washington
-14.80% -20.30% -34.80%


The good news in this story is that it implies that the correction from the bubble should be over relatively quickly if prices continue to decline at their recent rate, although New York and Boston may have some further room to fall. The bad news is that homeowners will have to adjust to a loss of close to $8 trillion in housing wealth over a period of around 18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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