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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 - 야딩(4-문수보살과 농부철학자) -길위에서

033 - 야딩(4-문수보살과 농부철학자) - 길위에서 길을

 

양메용 신산은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의 현신이다.

 

 

지혜란 순백으로 정결하면서도

차갑게 빛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사람을 따듯하게 품어주는 것이랍니다.

 

서른이 넘어서

 

'난 이제 세상을 다 알아,,,

내 판단과 결정은 절대 틀려서는 안돼...내 말을 못알아 먹는 니가 바로 멍청이야!"

 

그런 오만과 아집과 독단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몇해를 보내고나서 아직도 지혜의 바다는 넓고 알아야 할 그리고 체험해야 할 길(道)은

가도가도 끝없음을 알았습니다.

 

문수보살의 현신인 양메용 신산에서 퍼득 다시금 들었습니다.

신산이 찬양을 받아서도 아니고 그 자체로 빛남을 알것같습니다.

 

3인의 다국적 일행 중(한국인 나, 중국인 아마츄어 사진작가, 프랑스인 농부)

한명인 프랑스인 데이비드는 농부입니다.

 

데이비드가 프랑스를 떠나 여행을 하다보니 영어식 이름이 필요해서 데이비드 랍니다.

우리의 철수, 영수 그런식이지요,,,

 

서른살이고 밀을 재배하는 농부이며, 여자친구는 패션의 도시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답니다.

 

러시아를 거쳐 시베리아 횡단 철도로 몽골을 지나 북경, 사천의 청뚜, 그리고 윈난으로 가서

티벳, 네팔,,인도로 갈 예정이랍니다.

 

그는 그 흔한 똑딱이 카메라도 대동하지 않았습니다.

 

 

연출되지 않은 양메용을 보는 농부철학자 데이비드

데이비드는 왜 세계여행을 나섰냐는 질문에 '상상력'이 고갈되어서,,,길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매이진,,,,,

 

데이비드의 여행원칙은 절대 비행기를 타지 않는 것이랍니다.

오로지 걷거나 버스, 기차, 배로만 움직일 예정이랍니다.

 

ㅎㅎㅎ 그럼 아메리카는 어찌 갈려고,,,,,방법을 찿아보겠답니다.

 

2008년 5월 지금 데이비드는 인도에 있답니다.

4월말 네팔에서 기다란 수염을 면도하는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2008년 5월 그의 상상력은 아마도 문수보살의 지혜만큼 충만하리라 생각해봅니다.

 

 

지혜라는 것이 한꺼번에 알수 없는가 봅니다.

저 멀리 문수보살(양메이용 신산)이 한걸음 딛는만큼씩 다가옵니다.

 

 

 

때론 살짝 비켜가기도 합니다.

물론 뭇 중생이 오해할때가 더 많지만요.

산은 그자리에 있었건만 비딱하게 보면서 잘 안보이네 하는 것이겠지요.

 

 

다시 중심을 잡기도 합니다.

흔들리는 건 산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시각이겠지요.

아마도 맘이 흔들리니 시각도 흔들리겠지요.

 

 

 

 

설산 건너편에는 황량함도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설산이 빛나는지도 모릅니다.

 

 

 

 

산과 그리고 물,,나무 이것이 완벽한 천국이겠지요...

천국의 비밀화원을 몰래 훔쳐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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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 - 야딩(3) - 길위에서 길을

032 - 야딩(3) - 길위에서 길을

 

좀되었지만 영화 '여고괴담'으로 첫 선을 보였던 최강희가

주연을 한 '달콤 살벌한 연인'  중에 최강희 후배로 나오는 장미의

남자 친구,,,양아치로 나오는 사람이 영화중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자동차 정비소인지 폐차장인지에서 한 젊은애를 놓고

자기에게는 1촌을 거부하고 자기 경쟁자에게만 1촌 맺은 것에 대해

격분한다.

 

그리고 걸려온 전화에 대화 하면서 돌아보며

"내가 토토리를 달라고 했냐?..."  허걱,,,,

 

요즘 여행기를 쓰면서 그 인간이 왜그리 격분했는지 알것만 같다.

 

블러그 가르쳐 주면서,,,

'악플보다 무서운게 무플지옥이라며....무플방지대책위란것도 있다며.."

은근 협박하면서 이야기 했건만,,,

세상이 'give and take' 라고 평소 댓글다는데 서툰이답게 역시 리플은 가뭄에 콩나고 있다.

 

몇 몇 님들이 보내주는 리플성원에

그래도 품이 들어가는 여행기를 적어가고 있다.

이 참에 한꺼번에 '퉁'으로 감사의 말씀 전한다.

 

댓글, 혹은 답글은 잘 안다는 편이지만 꼼꼼히 보며

'아하 ,,,그게 이렇게도 읽혀지는구나,,,예상치 않은 것에 대한 반응에,,,허걱,,"

하면서  또 즐긴다는 사실을 밝히며,,,앞으로도 죽,,,,,변치않는 성원과 댓글을,,,,,,

(무슨 약장수 같네요,,)

 

글 특히 여행기(내가 쓰는 경우에만 해당될지 모르지만,,)는

남 염장지를려고 자랑질 하는 것도 아니고,,

정보공유하잔다고 어쭙잖은 것 알리려고도 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져가는 여행의 기억을 정리하고 남기고자 하는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가서...

 

 

 

 

 

 

천불암의 끝자락,,,

 

시간과 보는 위치가 다르다. 뭔 차이가 있나?,,,(돈드는 일 아니니 올려봤음.)

 

오른쪽으로 천불암을 바라보면서 걸어 오르면 멀리 양메용 신산이 보인다.

야딩 내에는 초입에 약간 오르막이 있고 천불암이 보일 때부터 니우롱무창까지는

비교적 평탄한 길을 걷는다. 고산병만 없다면 그야말로 가벼운 발걸음,,,

 

 

길을 넓힌다고 여기저기 파놓아서,,,,,,

 

 

 

 

손오공이 부처님 손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듯

의외로 천불암이 큽니다.  한참을 걸어도 천불암이 시야를 가로막고 있네요,,,

 

 

돌무더기가 나오면 잠시 걸터 앉아 물한모금 마시고,,,

담배도 한대 피우고,,,

 

 

급하면 화장실도 가고,,,,,,,

 

 

저 길 모퉁이를 돌아서면 무엇이 나올까 궁금해 하며,,,

 

 

가끔은 지나쳐 온 길을 되 돌아 보기도 하고,,,

 

그래서 마침내,,양메용 신산이  나타납니다.

 

 

순백의 꿋꿋함이 흔들림없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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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 - 야딩(2-천불암) - 길위에서 길을

031 - 야딩(2-천불암) - 길위에서 길을

 

2007년 10월 28일 늦가을의 야딩

 

여행중에 만난 곳중에는

어떤 곳은 다양한 이야기가 있고,

어떤 곳은 풍광에 압도되어 그저 보는 것 만으로도 버거웠다.

 

야딩은 사실 미려(美麗)한 수사나 자세한 설명이 불필요한 곳이다.

오히려 그 느낌을 해칠 뿐이다.

 

가장 좋은 것은 그 곳에 직접 가서 호흡하며 보는 것이다.

물론 불행하게도 고산병이 오면 숨쉬기조차 쉽지 않은 곳이지만...

 

(그것이 쉽지 않기에 그냥 사방을 돌아가며 휘둘러댄 똑딱이지만

감안하시고 사진이라도 봐주시길,,,,)

 

 

천불암(千佛巖)이 떠 오르는 아침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암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자체로 하나의 산에 가깝다.

 

 

 

해가 떠오르며 어둠에 감추어졌던 곳이 서서히 드러난다.

천불(千佛)이 아침 예불을 받는듯 햇다.

 

 

 

 

 

 

 

패트김이 부른 노래 중 '빛과 그림자"가 있다.

 

"사랑은 나의 행복, 사랑은 나의 불행

 사랑하는 내 마음은 빛과 그리고 그림자

 

그대 눈동자 태양처럼 빛날 때

나는 그대의 어두운 그림자

 

사랑은 나의 천국, 사랑은 나의 지옥

사랑하는 내 마음은 빛과 그리고 그림자"

가사는 신파조이지만 모든일에 양면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의미심장하다.

 

적지않은 기간 중국을 여행하고 돌아오자 평소 알고지내던 지인들의 반응이

다양하다.

 

'햐,,부럽다,,,잘놀았군,,,좋았겠어,,,나두 한번 떠나볼까?,,, 팔자늘어졌군,,

돈은 얼마나 든데....'

 

그런데 단 한 사람  '외롭지는 않았어...."라고 물었다.

ㅎㅎㅎ 대답대신 웃고 말았지만 그 사람만이 지인(知人)이라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빛만을 쫒으려 하고 그것만 보려 하지만...모든 사물과 일에는

'빛과 그림자'  양면이 항상 존재함을 잊지말아야 한다.

빛을 기꺼이 즐기지만

그림자보는 것을 애써 피하려 하지말아야 한다는 것이 내생각이다.

 

태양을 향해 걸어가는 동행자의 뒷 모습을 보면 들었던 생각이다.

 

 

빛속으로 걸어가는 동행자

 

그 빛 너머에 지상의 천국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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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 - 야딩(1) - 길위에서 길을

030 - 야딩(1) - 길위에서 길을

 

<지진 피해로 고통 받고 있는 중국인민들이 조속히 회복되기를,,

사망자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더 이상의 피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걱정이 많았던 지역이 야딩이다.

과연 갈 수 있을까? 정문(?)으로 입장이 어려우면

트레킹을 해서라도 가고자 했던 야딩.

 

그 출발은 새벽에 시작했다.

 

새벽4시...아직 밖은 어두웠다. 그리고 추웠다.

다들 가볍게 수유차 한잔을 하고 잠이 덜깬 상태로 승합차에 올랐다.

 

따오청을 나오며 주요소에서 기름을 넣고,,,운전수가 가서 직접 넣는다.

 

어둠을 둟고 한참을 달리자  운전수 갑자기 신호를 보낸다.

다들 의자 밑으로 몸을 숨기란 것이다.

허걱,,,,

 

다들 민방위 공습경보 훈련이라도 하듯 허리를 굽혀 숙인다.

차량 검문소에 이르렀다.

 

아직 이른 새벽, 건문소에서는 나와서 보지도 않고

후레쉬로 차를 한번 슥 비추어 보고 길을 막았던 차단기를 올린다.

 

잠시후 운전수가 상황 종료를 알린다.

 

운전수가 야딩에 들어갈수 있단 방법이 이거구나....

야딩을 출입금지 시켰지만 야딩주변으로 가는 현지인의 출입마저 금지시킬수는 없으리라.

더구나 한밤중에 철저히 검문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그래도,,,

아무리 생각해도 좀 이해가 안간다.

이게 중국식인가보다.

공식적으로는 출입을 금지시켰지만

애시당초 출입금지가 타당치 못하고 지역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생계문제)도 있고,

그러니 형식적으로 검문하고,

야딩 여행객을 태운 기사들은 이에 호응해 승객을 숨기는 척(?) 하고

그런거 아닌가 추측된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 시간에 한두번도 아니고 출입하는 차량이 야딩가는

여행객을 태웠다는 것을 모를리 있겠는가?

알면서도 직접 못보았으니 묵인하는 것,,,그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건 이후 양딩을 나오면서 입장권을 파는 것을 보고 분명해졌다.

 

출입금지를 했는데도 여전히 입장권을 파는 것,,들어갈때는 검문을 하지만

나오때는 입장권만 보여주면 아무런 문제 없이 당당히 나올 수 있는 것..

이게 중국식( 일반화 할수는 없지만,,적어도 야딩식,,,)인가 보다.

 

 

3시간을 달려 야딩촌에 도착하였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았다.

 

야딩 입구의 매표소에는 이른시간이라 직원조차 나오지 않았다.

상해에서 온 중년의 남자와 여성, 이 둘은 말을 타기로 했고

나와 프랑스인 그리고 링샤에서 온 사진찍는 친구 3명은 걷기로 했다.

 

 

어둠속에 펄럭이는 롱다가 우리를 반겼다.

야딩은 티벳인들의 10대 성산 중의 하나이다.

3개의 만년설산이 품(品)자 형태로 자리잡았으며,

 

선나이르(仙乃日 : 6032m) 신산은 관음보살을 상징하고,

샤눠뚜어지(夏納多吉, 5958m) 신산은 금강보살을

양메이용(央邁勇, 5958m) 신산은 문수보살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티벳인들의 성산(聖山)의 으뜸이라는 매리설산(梅里雪山)에 갔을때도

느낀바지만 야딩에서도 왜 보살의 현신으로 숭배되는지 알 수 있었다.

 

믿음이 있든 없든 만년설산은 경외감과 자신을 되돌아 보기에 충분하게 만든다.

 

트레킹을 한다기보다는 성지순례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른 아침 충고사(沖古寺)에 이르기 직전의 돌탑들

 

 

멀리 보이는 선내일 신산

 

 

선내일 신산의 위용

 

보름달이 아직도 떠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하납다길 신산

 

 

멀리 충고사가 보인다.

돌아올 때 보리라 마음먹었지만 예기치 않은 일이 생겨 충고사는 결국 볼 수 없었다.

 

오래전 대학시절 경주 불국사 앞에서 3일을 머물다가 결국은 불국사는 못 본 적이 있었다.

애초 계획대로 않되는 일이 의외로 많다.

 

 

 

여기저기 중단된 공사로 어수선 하다.

 

 

 

 

이른 아침,   마른풀을 뜯는 말한마리만 보일뿐이었다.

 

 

고드름의 길이 만큼 추웠다.

이때만큼 고어텍스 등산복과 방한복이 제 값을 한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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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 - 따오청 가는 길 - 길위에서 길을

029 - 따오청(稻城) 가는 길 - 길위에서 길을 

 

리탕쓰에서 리탕버스터미널로 내려 오던 중

작은 수로에서 빨래를 하는 티벳탄들을 보았다.

 

한 쪽에서는 빨래를 하고 그 아래서는 채소를 씻고,

그 아래서는 다시 고기를 손질 하고,,,

 

다시 그 아래는 빨래를 하고 그런 식이었다.

 

이미 늦 가을에 접어 들어 붉게 상기된 그(그녀)들의 손을 볼 때 애처로왔다.

물이 차가울 텐데...

 

배도 고프고 따오청 가는 버스 시간도 다가와서 버스터미널에 갔다.

 

 

버스터미널 앞의 사설 승합차 들

 

 

리탕버스터미널,,,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주차장이 나온다.

 

 

숙소에서 짐을 찾고 터미널 근처를 어슬렁(밥 먹으러...) 거리는데,

사설 승합차 기사들 우르르 몰려 들어 ;;

 

어디가느냐,,,따오청,,, 내차 새거다.... 가자.....

대중교통이 있으면 대중교통 이용이 원칙인 나에게 그리 흥미롭지 않았다.

 

점심은 가볍게 국수(8위안)로 먹고, 버스표를 샀다.

리탕에서 따오청 47위안.

 

터미널 안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노닥거렸다.

 

여행자에게 흥미를 보이는 현지인들의 질문 공세..

어디가냐,,,어느나라 사람이냐,,,

한국 사람이라구,,,한국 드라마 많이 본다,,,

한국 여자들 정말 예쁘다,,,ㅎㅎㅎ,,,근데 다 성형 수술 했다며,,,,허걱,,,

 

그러면 난 준비된 대답을 늘어 놓는다.

 

한국 여자들 예쁘다. 그리고 중국여자들도 예쁘다.

( 이 순간 일부는 그러면 그렇지하고  흡족해 하고

일부는 아니다 중국여자들 못생겼다고 반론 하기도 한다)

 

그러면 나의 준비된 대답,,,한국도 마찬가지다,,예쁜 여자도 있고 그렇지 않은 여자도 있다.

중국도 그렇지 않는냐, 한국도 똑같다...그러면 이제 인정 시작..

 

다음 단계,,성형 수술,,,,

나의 준비된 대답

'일부는 성형 수술 한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더 많은 사람이 성형수술 않하고도 예쁘다...'

 

이런 말은 수십번도 더해서 이 부분은 거의 완벽하게 해낸다.

그러면 너 정말 중국말(보통화) 잘 한다고 한다...

 

잘 하기는 묻는게 거의 비슷하니, 답변도 맨날 훈련 해서 그렇지 뭐,,ㅎㅎㅎㅎ

 

그러다 가끔 예상치 못한 질문이 나오면 그때부터 다시 말배우기가 시작된다.

'그게 무슨 뜻이냐' 부터,,,,,

 

 

터미널 안에서 물 장난 치던 남매, 남자 아이는 장난꾸러기, 누나는 어엿 의젓한 티를 낸다.

 

 

따오청 행 버스는 오후 2시 출발 한다고 했으나 2시 15분경 도착해서

30분쯤 출발했다. 이정도는 양호 한 편이지....

 

승객은 비교적 적어 오래만에 한 사람에 두 좌석씩 차고 앉았다.

 

리탕에서 따오청 가는 길 역시 한 아름다움 했으나,

속도와 흔들림에 속수무책인 내 똑딱이는 담아내질 못했다.

 

기대하지를 마시고 그냥 보시라..

 

 

 

 

 

 

 

 

버스 안에는 야딩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버스안에서 한팀이 급조되었다.

따오청에서 야딩을 갈려면 빠오쳐(차 대절)를 해야 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다.

 

야딩을 들어갈 수 있는지 여부는 다들 정확히 몰랐다.

나하고 비슷했다. 가서 부딪쳐 보지 뭐,,그런 심산이다.

 

한 사람은 링샤에서 온 35살 남자였다.

50대 초반의 남자는 상해에서 왔다고 한다.

그리고 프랑스인 남자, 영어식 이름으로 데이비드는 30살로 농부라 한다.

그리고 유일한 여성 한명은 난창에서 왔다고 한다, 30대 후반으로 보인다.

그리고 나,,,이렇게 최적의 숫자인 5명이 한팀이 되었다.

 

따오청에 도착하자...링샤에서 온 남자가 예약해논 숙소에서 차가 터미널에서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터미널에는 호객을 하는 빠오쳐 기사들이 내리는 승객보다 더 많았다.

 

비수기 이기도 하고 야딩 출입이 공식적(?)으로는 금지되어서 그런가보다.

 

우리의 기사, 모두의 궁금증을 단번에 해결 했다.

'야딩 들어갈 수 있다.'   야호,,,,,신이 돕는구나....

 

느긋해진 우리는 우선 저녁을 먹기로 했다.

우선 숫자가 많으니 오랜만에 먹는 성찬이다.

총 75원 나왔다. 우리 5명에다 운전수 그리고 그양반의 귀여운 딸..7명이 먹었는데..

 

 

역시 이곳에도 밥은 무한정 리필이다.

 

상점에서 담배, 과자, 물, 초코릿, 죽 통조림,  등 물건을 각자 몇가지씩 사고

숙소로 갔다.

 

우리의 운전기사는 숙소의 주인과는 동서지간이라고 한다.

주인은 지금 청두(成都)에 가 있다고 한다.

 

자기도 내년에는 숙박시설을 갖게 된다고 한다.

우리가 묵은 곳 바로 옆에 현재 새로 짖고 있다고 한다.

 

각자 짐을 풀고 차(수유차)를 한잔식 들었다.

나는 프랑스인 데이비드와 한 방(2인실, 1인당 하루 25위안)을 쓰기로 했다.

 

 

데이비드는 영어가 수준이 나하고 비슷했다. 중국어는 전혀 못하고,,

영어도 짧고 중국어도 짧은 내가 중간에서 동시 통역을 했다.

서로 못 알아들으면 그냥 넘어가고,,,ㅎㅎㅎㅎ

 

 

우리의 운전사 아저씨(이름은 왕취), 온천에 가자고 제안한다...

물론 우리야 대 환영이지...

 

빵차에 우리 5명, 그리고 자기 부인, 딸도 함께 태운다,

 

 

단란한 가정.

딸은 귀엽기도 할 뿐더러 똑똑하기도 했다.

학교에서 공부도 잘한다고 아버지의 자랑이 이만저만하다.

 

온천은 1인당 10위안,,,개인별로 탕을 쓴다.

오랜만에 벌거벗고 온천물에 푹 담구고 그동안의 피로를 풀었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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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8 - 리탕의 티벳탄 마을 - 길위에서 길을

028 - 리탕(理塘)의 티벳탄 마을 - 길위에서 길을

 

오래전에 읽은 책의 내용중 하나이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충 이렇다.

 

'한 겨울 작은 암자에 한 노승과 수발을 드는 스님이 있었다.

몹시도 추운 날 땔깜이 떨어지자 노승이 모시고 있는 부처님(나무로 만들어진)을

도끼로 쪼개고 있는 것이었다. 이에 놀란 스님이 어떻게 부처님을 그렇게 할수 있느냐고

눈물로 애원 한다. 그러자 노승이 왈, '이 어리석은 것아 넌 이게 부처로 보이냐?'

 

여행을 하면서 처음에는 이국적인 풍광에 놀랐다.

처음 본 열대 우림, 만년설산, 빙하, 바다 같은 호수, 장강의 도도한 흐름,

사막의 아름다움,,,,,,,

 

그러다가 그들의 쌓아 놓은 문화유산에 감탄하기 시작했다.

티벳의 사원, 이슬람 사원, 막고굴의 벽화, 진시황제의 병마용, ,,,

 

마지막에는 오늘을 살아가는 현지인들의 모습에 집중하게 되었다.

시장 골목, 고단한 삶의 모습, 가족간의 우애, 들판에서 혹은 작은 공장에서의 노동,

초라한 식당에서 한끼를 해결하는 가난한 노동자,

한잔 술에 흥겨워 하는 사람들.....광장에서 춤추는 청춘들과 노인들.

 

그리고 불안하지만 밝은 미래를 꿈꾸는 아이들,

 

리탕쓰에서 백탑위에서 자리잡고 앉아 있는 까마귀를 보면서 든 생각 이었다.

 

흑백의 묘한 조화,

 

저 까마귀는 백탑의 의미를 알까?

인간이 숭배하고 의미를 부여 하는 것은 죽어있는 백탑이 아니라 살아 있는 부처

즉 인민들의 고단한 오늘과 내일(내세 일 수도 있고...)이 아닐까?

 

인민들이 얼어죽을 지경이면 부처님인들 불쏘시게로 쓰이지 못할까?

 

리탕쓰에서 내려다본 티벳탄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고 내일도 살아가야 할

오래된 마을을 볼 수 있는 것,,,,,,

그것이 아마도 내가 리탕쓰를 와야 했던 이유인가 보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명칭과 유래는 정확히 모르겠다.

 

 

집을 수리 중인 티벳탄들, 그런데 일하는 사람들이 거의 여자들이었다.

 

 

흙과 돌 그리고 목재로 만들어진 티벳탄의 집들

 

 

지붕에는 롱다(불경을 적은 천)가....   담벼락엔 야크 똥이....

 

이집도,,,,,

 

다양한 돌을 아귀를 맞추어 가며 쌓아 올린 담벼락

 

 

색바랜 회 칠 한 벽

 

홍(붉은 색)과 백(흰 색)의 강렬한 결합

 

 

오래된 대문위에는 풀들도 자리잡고...

 

 

낡았지만 화려한 문양의 대문

 

티벳탄의 마을 전경

 

 

저 멀리 보이는 눈 덮인 산과 점점이 흩어진 야크,,,그리고 마을 

 

 

마을길과 목책

 

 

여기 저기 연기가 피어오른다. 점심 먹을 때가 되었나 보다.

 

산 능선을 따라 만들어진 풀 밭

 

 

무너질 듯 버티고 있는 흙담벼락과 돌로 새로 만든 집

 

 

언덕위에 홀로 빛나는 타르쵸

 

 

 

 

그들의 염원이 샇여 만든,,,,

 

 

나도 돌 하나를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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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7 - 리탕사(理塘寺) - 길위에서 길을

027 - 리탕사(理塘寺) - 길위에서 길을

 

리탕은 세계 고성(高城)이다.

라싸 보다 높은 고도를 자랑한다.

 

약간은 고산병을 우려 했으나, 별탈이 없어서 다행이다.

 

티벳과 중국을 여행하면서 고산병도 없고, 몇번의 감기 이외엔 특별히 아픈곳도 없고,

좀 무리다 싶은 트레킹과 강해군에 잘버텨준 내 몸과

이 몸을 갖게 해준 두 분께 항상 감사히 생각한다.

 

리탕의 주변에 있는 마오야(毛亞) 대초원은 면적이 5000평방km에 달하는 초원이며,

매년 8월 1일에 열리는 말 경주가 유명하다고 한다.

나도 말타기는 잘하는데...

(오래전 네이멍구에 가서 일주일 내내 양한마리 다 해치우고 오로지 말만 탄적이 있다.) 

 

허나 지금은 초원의 푸르름은 간데 없고 마른풀만 지천인 늦가을,

2007년 10월 27일이다.

 

아침은 거의 변함없는 아침메뉴인 '시판(죽)과 티아우(꽈배기),  삶은 계란(이건 항상 2개)를

9원에 먹었다. 착한 숙소를 소개해준 어제 저녁을 먹은 식당에서...

 

따오청 가는 버스를 확인하니 오후 2시에 출발 한단다.

아침에는 표를 팔지 않고 그때 와서 사란다.

 

숙소에서 짐을 정리하고 짐을 맡기고 오후에 찾으러 오겠다고 했다.

숙소 종업원이 하루 더 묵으라고 하나 착한 가격과 친절에 주저앉아서는 안되다.

 

야딩이 2007년 여름부터 출입이 금지되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따오청에 가서 일단 부딪쳐 보고 입장이 불가능하면 ,

무리를 해서라도 무리(木里)를 통해서 트레킹하여서라도 야딩에 가려고 계획하였다.

 

시간이 문제다. 더 늦어지면 추위와 눈 때문에 야딩 트레킹 진입조차도

불가능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루를 묵은 설역명주식숙점

 

리탕쓰(理塘寺)에 가기로 했다.

리탕쓰는 창칭춘커얼쓰(長靑春科爾寺)라고도 불리며

원래는 흑교사(黑敎寺)였으나 명(明)대에 3대 달라이 라마가 이곳을 지나면서

황교(黃敎)로 바귀었다고 한다. 그 후로 캉띵 주변의 가장 큰 절이 되었고

 남부 캄(동부 티벳)의 주요 라마교 성지가 되었다.

 

사원내에는 석가모니 금동상과 불교경전, 3대 달라이라가가 사용했던 말안장, 명/청대의 벽화등을

소장하고 있으며, 매년 티벳력으로 정월 15일, 수유채소화회 - 꽃 소조에 양, 야크의 젖으로 만든 기름, 수유와 각종 물감을 혼합하여 채색하는 축제)가 벌어진다고 한다.

 

시내에서 20분정도 걸으면 산자락에 위치해 있다.

사람들도 거의 없어 조용하고 좋았다.

 

 

초입에 있는 백탑과 마니석 더미

 

리탕쓰 정문 : 입장료는 없었다.

 

 

 

라마승과 어린이

 

나는 보기와는 달리 뻔뻔스럽지 못해 사람들 사진을 찍을때면 막 들이 대지를 못하겠다.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사진을 찍는 것은 못 할 짓이다.

그리고 옳지도 않다.

설사 아이들일지라도...

 

그래서 그저 멀리서 찍는 정도 이다.  평소 사진 찍기를 그리 즐겨 하는 것도 아니고...

 

 

 

새롭게 단장 한듯 하다.

 

 

 

 

 

마니석,  옴마니 반메옴

 

내 지갑에도 오래전 집을 떠나 올때 어머니께서 주신 '옴마니반메옴'이 수 놓아진 부적이 있다.

시골집에 가는 것은 일년에 한두번이지만 갈때마다

어머니는 슬그머니 부적 잘 가지고 다니는지 확인하시곤 한다.

종교나 믿음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어머니 마음이니 지니고 있다.

 

 

리탕쓰의 외곽 모습

 

 

백탑과 까마귀

 

백탑위에 올라앉아 있는 까마귀를 한참 보다가,

 

내가 왜 리탕쓰에 와야 하는지를 깨닭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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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6 - 리탕 가는길 - 길위에서 길을

026 - 리탕(理塘) 가는길 - 길위에서 길을

 

빠탕(巴塘)에서 오후 4시경 리탕가는 빵차를 잡았다.

차안에 아침에 망캉에서 같이 온 사람이 있어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빠탕에서 리탕까지는 60위안(元).

 

그런데 한가지  좌석이 뒷자리 중간 최악이다.

하지만 즐겁게 가야지,,뭐 방법이 없다.

 

빠탕부터는 스촨(四川)이라서 그런지 도로는 깔끔하게 포장되었다.

티벳에서 보기 힘든 터널도 있었다.

 

이제 막 공사를 끝낸듯한 터널들도 여기저기 있었다. 

역시 지방정부 재정 규모의 차이인듯 하다.

 

한참을 달린후 오후 6시경 뭐 좀 먹자고 차를 세운다.

나도 따라 내렸으나 늦은 점심을 푸짐하게 먹은 탓에

별 시장기를 못느껴 주변만 구경하고 말았다.

 

하지만 잘못된 판단임을 깨달은 것은 몇시간 후였다.

리탕에 밤 9시 30분정도에 도착했다. 가는 내내 배가 고팟다.

ㅎㅎ 자업 자득이다. 먹을 수 있을때 먹어야 한다.

 

낡고 좀 지지분한 식당과 상점이 있었다.

 

주변은 좀 낡고 흙먼지를 뒤집어 쓴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내가 타고 간 빵차, 차 지붕에도 짐이 가득하다.

 

이 곳 역시 캄(동부 티벳트)지역이어서 역시 먼 곳에는 타르쵸가 있었다.

 

 

 

 

빙설에 주의하란다. 시속 20km가 제한 속도란지 도로 번호가 20번이란지 잘 모르겠다.

 

빠탕에서 리탕 가는 길은 해자산(海子山 하이쯔 산 4675m)이 놓여 있다.

리탕에서 윈난성 방향으로 따오청(稻城) 가는 중에도 하이쯔산(4602m )이 있는데,

빠탕에서 리탕가는 곳에 있는 해자산이 좀 높아서 대(大) 해자산,

따오청 방향에 있는 것은 소(小) 해자산으로 불린다.

 

소해자산이라도 4600m가 넘는다.

 

대 해자산을 넘다 보면 자매 호수 메이메이 후(妹妹湖)가 있다.

어스름한 저녁 무렵 두 호수의 풍광은 색 달랐다.

그러나 너무 어두워졌기 때문에 사진을 찍었으나 나중에 보니

아쉽게도 온통 어둠 뿐이었다.

 

메이메이후는 괴물이 살고 있어 괴물이 화가나면 '구구'하는 소리를 내어

티벳탄들이 가까이 가기를 꺼린다는 전설이 있다.

 

그 전설을 생각하며 본 어두운 밤 달빛에 의지해 설산을 비추는 메이메이후는

괴기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한 밤 중 초원을 달리는데 보름달만이 비추고 있었다.

 

밤길을 달리는 중 옆에 있던 젊은 친구는 비포장길에 차가 덜컹 거릴때마다

곡예하듯 창밖으로 몸을 내밀어 지붕에 실은 물건들이 제대로 있는지 살피곤 했다.

 

중간에 운전수가 문제가 생긴듯 차를 세웠다.

그러자 다들 하나씩 손전등을 꺼내 운전수를 도왔다.

여행자에겐 손전등이 다들 필수품인것 같다.

 

보름달이 떳다지만 어두운 밤 운전수는 차 밑으로 들어갔다.

별 일 없어야 되는데...고립무원 초원에서 밤새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밀려 온다. 지나가는 차들도 끊긴지 오래다.

 

운전수가 임시조치를 하고서 차는 다시 달렸다.

이전 처럼 속도를 내기는 어려웠지만...

 

속도가 늦자 운전수는 음악소리를 키워 속도감을 높였다.

댄스음악에서 팝송, 중국노래, 티베탄 민속노래까지 참 곡 선정이 다양했다.

한국 댄스음악도 한곡 있었다.

 

wax의 '오빠'를 중국어로 번안한 노래였다.

천장남로를 달밤에 달리며 듣는 왁스의 오빠라니...참 오빠는 나쁜가보다...

 

우여곡절 끝에 늦은 밤 리탕에 도착했다.

하지만 실랑이는 여기에서도 있었다.

 

저녁무렵 나말고 같이 식사를 하지 않은 사람이 한명 있었다.

운전수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었다.

약속이 있는지 운전수에게 늦는다고 화를 내며 계속 재촉을 하였다.

그건 좀 무리였다.

이 상황에서 재촉한다는 것은 운전수에게 '죽음의 레이스'를

강요하는 것 밖에 안되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좁은 빵차안에서 소위 "왕따"가 되었다.

아무도 그 사람의 말에 대구조차 하지 않고,,

담배도 권하지 않고,,,

 

중국에서(어느나라든 마찬가지겠지만) 빠오처를 하거나 빵차(사설승합차)를

탔을때 비굴하게 아첨할 것 까진 없지만 운전수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은 삼가해야 한다.

대개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이라서 존중해주면 한없이 친절하지만

자존심이 상하면,,감당키 어렵다.

친절하게 해주는 것 중의 하나가 끝없이 담배를 권하는 것일때가 많아서

 평소의 흡연량을 초과하기 일쑤이지만...

 

그런데 그 사람이 늦었다고 애초에 약속한 금액을 지불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운전수 강하게 나온다. 결국 주변사람까지 운전수의 편이되어 원래 금액을 지불하고 말았지만.

자기가 급하면 빠오처를 하면된다. 정당한 대가 없이 그 이상의 요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 나은 서비스를 요구 하려면 그 댓가를 치루어야 한다.

 

식당에서 8위안에 볶음밥을 먹고, 식당주인이 소개해준 건너편에 숙소를 잡았다.

식당주인이 15위안이랬는데 25위안 달란다.

식당주인이 15위안이라고 했다니까 웃으면 그건 3인실의 침대 하나값이란다.

글쿤,,,25위안이라는 착한 값에 침대 2개의 방을 혼자 사용했다.

 

하루 밤 25위안,  전기장판도 있다.

 

그렇게 세계고성(世界高成), 가장 높은 고도에 위치한 도시

(누구는 4500m라고도 하고 어디에는 4100m라고 하고, 어쨌든 4000m가 넘는다)

리탕(理塘)에서의 하룻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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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5 - 빠탕 - 길위에서 길을

025 - 빠탕(巴塘) - 밥벌이의 서러움 - 길위에서 길을

 

망캉(芒康, 마캄 : 티벳식 지명)은 천장공로와 전장공로가 만나는 곳이다.

이곳에서 쓰촨으로 윈난으로 라싸로 갈수 있다.

 

야딩으로 가려는 나는 바탕 가는 차를 알아봤다.

없다네... 

 

야딩은 리탕으로 해서 갈수 도 있고, 윈난의 중티엔에서 갈수도 있다.

중티엔은 지난 여름에 다녀왔기 때문에 리탕방향으로 가기로 했다.

 

물론 그러자면 천년의 소금 우물 엔징은 못 보게 된다.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는 버려야 하는 법,,

 

권력을 얻고자 하는 자는 부를 버려야 하고

명예를 얻고자하는자는 부와 권력을 버려야 한다.

그런데 요즘 문제되는 강/부/자나 고/소/영이나

다들 어느 것 하나 놓지 못하고 다 얻으려 하는 자들이다.

못된자들이다.

 

 

삶은 어쩌면 무언가를 얻는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버리는 선택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버스가 없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우선 아침부터 먹고,,,

 

 

아침 식사를 한다는 표시의 좌판,,,만두와 꽈배기 튀김..

 

아침을 먹고 터미널 주변을 어슬렁 거리자

구매자보다 판매자가 먼저 찾는다.

 

어디가냐? 묻는다,  빠탕,

얼마냐? 50위안,  오케이,

버스비와 같다. 소위 빵차(사설 승합차)는 대개 버스비와 같거나 비슷하다.

그래야 영업이 가능 할듯,

버스가 없더래도 버스비는 확인해두는 게 필수,

그래야 빵차 요금 흥정 할때 기준점이 된다.

 

언제 출발할거냐? 한시간 정도 후,,

믿지는 않지만 그래도 마상(馬上 : 곧, 즉시라는 의미)이라고 하는 것보다 낫다.

마상이라는 의미는 5분후일수도 있고 30분 후일수도 있고, 한시간 혹은 두시간 이후일수도 있다.

 

이제는 이 빵차 기사가 최대한 빨리 다른 승객을 구해 오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이럴때 책은 거의 필수다.  아침먹은 식당에서 차를 무한 리필 하면서 기다린다.

 

무려 2시간 반이나 지난 11시에 출발한다. 불행이도 내가 맨처음 예약자였다. 정말,,,

두대가 함께 출발하려니 더욱 시간이 걸렸다. 둘이 동업자인지 친구인지 모르겠다.

 

 

가던중 망캉행 빵차가 멈추어 섰다.

우리 빵차도 동업자 정신 발휘, 차 세우고 공구들 꺼내 펑크난 타이어 교체 하는 걸 돕는다.

길이 비포장이니 이런일이 자주 있을 듯

 

,,,  )...

 

 

길은 역시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두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는 운전수의 불친절, 안하무인의 태도(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잘 못알아먹는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둘째는 차가 겉보기와는 달리 차 바닥이 잘못되었는지 먼지가 차안으로 그대로 들어왔다.

차안이 뽀얗게 먼지가 춤을 추었다. 숨쉬기조차 곤란했다.

 

우여곡절 끝에 빠탕에 도착했다.

운전수는 리탕까지 갈 생각 없냐고 우리에게 묻는다.

 

다들 캉딩이나 리탕으로 가야 할 사람이지만 약속이나 한 듯이

아무도 그 차로는 갈려고 안한다.

 

좋은거든 나쁜거든 사람들이 느끼는건 비슷하고 반응도 비슷하다.

 

오후 2시쯤 도착한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터미널에서 버스를 확인한다.

낼 아침에 캉딩가는 버스가 있단다. 그런데 리탕은 표를 안판단다.

낼 아침에 와보란다. 다행히 좌석이 있으면 그때 타라고 한다.

캉딩행(장거리니까..) 표부터 우선 팔겠다는 심산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표 예매하고 숙고 잡고 하는데

난 우선 점심부터 먹기로 했다.

 

퍼밋없이 티벳을 여행한 나는 사천에 들어오자 약간 여유로와졌다.

별 신경은 안썻지만 그래도 좀 꺼림직한건 사실이었다.

 

 ..

언제 다시 라싸에 갈보려나...

 

터미널 주변에서 식당을 찾았다.

 

 

간판도 새로하고 깔끔해 보였다.

 

이미 2시가 넘어서 우선 식사가 가능한지 물어보았다. 한단다.

중국의 식당은 점심시간이 지나면 대개는 영업을 안한다.

 

우선 배부터 채우자. 젤 불쌍한게 배고픈 여행자이니...

 

 

음식 맛 비교적 훌륭했다. 시장해서 그런가.....

 

그런데 한 종업원 아가씨가 계속 비교적 물을 많이 마시는 내가 잔을 비울때 마다 채우는 것이었다.

그냥 주전자를 달라고 해도 괜찬다고 한다. 그러면서 계속 물을 채운다.

식당안에 오로지 손님이 나하나 밖에 없어서 그냥 편히 쉬라고 해도 계속 서비스를 한다.

 

중국의 고급 식당에서는 비교적 서비스가 훌륭하나 일반식당에서 이런 서비스 받아보기는

처음이다. 

 

고급 호텔이나 일식집에서조차 서비스 받는 것을 불편해 하고 심지어 고급 고기집에서조차

직접 고기 자르고 굽는게 속편해 하는 나는 의아스러웠다.

 

그러다가 식사를 마치고 내가 여행지도와 책자를 보고 있자니 묻는다.

중국사람 아니냐고,,,갑자기 종업원 모두가 몰려왔다. 자기들은 한국사람만이 아니라

외국 사람  첨 봤다나...

 

리탕 가는 차를 못 구했다고 하니,,,빵차가 있을 거라는 둥,

아니면 자기들 식당에 식자재를 납품하는 트럭이 곧 올거라는 둥 여기저기 알아보고 난리다.

나야 곱맙지요..

 

짐은 식당에 맡겨 놓고 식당 앞에서 해바라기도 하고 주변을 어슬렁 거리고도 했다.

 

녹음이 우거진 마을

 

위의 사진에는 안 나오지만 앞에는 진사장(金沙江)이 흐르고 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친구가 식당의 매니저 역할을 하고 윈난에서 왔다고 한다.

 

 

 

밝은 웃음이 너무 좋은 친구다.

 

그렇게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는데 자기들 무슨 모임을 한다고

나보고 오라고 한다.

 

들어가보니 종업원들이 다들 원형 식탁에 빙 둘러 앉아 있었다.

뭔일인가?

 

나보고 손님 역할을 하란다. ㅎㅎ 허걱.

그러마, 그러니 종업원 한명이 차를 내오고 차이딴(메뉴판)을 들고 와서

뭘 시킬지 물어본다. 어딘가 좀 서투르다.

그래서 이집에서 가장 잘하는 요리가 뭐냐, 이것 저것 주문해 보았다.

 

궁금해 물어 보니 접대 연습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잠시후 종업원 복장이 아닌(아마도 사장인 듯 싶다) 여자 2명이 지적한다.

순서가 틀렸느니,,뭐가 어쩌니....정색을 하고 지적하는 통에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그러자 매니저 역할을 하는 친구가 적극 옹호하며 기회를 더 주어야 한다고 나선다.

 

자리가 어색해져 나는 슬그머니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웠다.

아마도 그 종업원은 티베탄이고 좀더 한 단계 높은 일을 맡기위해 테스트 중이었나보다.

티베탄에게는 보통화는 외국어이다. 그리고 서비스란게 익숙치 않으면 쉽지 않다.

 

허걱 내가 괜히 잘 못 끼어들었나. 거의 울상이 된 그 종업원이 잘 되었으면 한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서비스 연습도 하고

그래서 아까 이상할 정도로 그렇게 친절하게 대했다는 생각이든다.

 

밥벌이는 녹녹치 않다.

 

요즘 내가 충성(용어가 적절치 않지만,,) 하는 대상은

첫째 나의 가치관과 신념이 맞는 것이다.

둘째는 나에게 돈을 주는 사람(일 거리를 주는 사람)이다.

 

세상에 꽁짜도 없고 밥벌어 먹기도 싶지 않고...

식당에서 서빙하는 것 조차 엄격히 테스트를 거치고 연습해야한다는 모습에

새삼 밥벌이의 녹녹치 않음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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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 - 쭈카, 붉은 빛의 향연 - 길위에서 길을

024 - 쭈카((竹그 붉은 빛의 향연 - 길위에서 길을

쭈카는 산맥을 횡단하는 계곡에 있는 마을이다.

특이하게도 붉은 빛이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흙 빛이 한국의 남도 황토처럼 붉은 빛이다.

 

 

특히 해저무는 시점에 도착한 주카는 그 붉은 빛이 여행자를 황홀케 하였다.

 

 

 

건기라서 강물은 그 수량이 매우 적었다.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 햇살에 비추는 티벳탄의 집은.... 

 

 

하역 작업을 지켜보는 운전사 아저씨...

 

 

보물 하역이라도 되는 듯 여행자와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한방향이었다.

그림자는 한 없이 길어지고 있었다.

 

 

 

여행자들이 길을 막자 집으로 돌아가는 양떼는 도랑으로 우회...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쭈카의 잊을 수 없는 붉은 빛을 뒤로 하고 밤 늦게 망캉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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