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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3 - 암드록쵸 (中) - 길위에서 길을

암드록쵸 (中)

암드록쵸는 해발 4,250m에 있는 티벳의 4대 성호(聖湖)중의 하나이다.

일부는 암드록쵸 호수라고 하는 데 티벳어에 "쵸"라는 것이 호수란

뜻이 있어 역전(驛前)앞이라고 하는 꼴과 같다.

 

암드록쵸는 몇 마디 말로 설명하느니 보다 실제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이럴땐 '지름신'의 유혹을 받곤한다.  그저 똑딱이만 들고 다니는 나에게

멋진 풍광을 볼 때마다 좀 더 좋은 카메라가 있었으면 하는....

하지만 마음에 담지...더 멋진 사진은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온전히 풍광에 집중하자..뭐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아래는 전망대에서 바라본 암드록쵸의 다양한 모습이다.

 

 

 

 

 

 

 

 

 

저 공안은 뭘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 걸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암드록쵸에 와서 전망대에서만 보고 돌아가는데

반드시 암드록쵸 아래로 내려가 한바퀴 둘러 보기를 권한다.

 

호수 주변에서 보는 풍광은 암드록쵸의 진면목일것이다.

우리는 당연히 기사에게 아래로 내려가자고 하였다.

그러자 앞의 사진에서 보는 경관은 기사에게 신분증 확인과 몇가지를 적는 것 같았다.

그런데 우리가 아래로 내려가서 둘러 보는 동안 다른 차량은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 많은 차량은 전망대에서 그냥 돌아갔단 말인가?

개별적으로 일정을 조정할수 없는 단체관광이라면 몰라도

차량을 대절하는 바오쳐라면 반드시 내려가자.

전망대 기념품 노점상

호수 아래로 내려가자 아름다운 마을과 전혀 예상치 못한 풍광이 나타났다.

길도 포장이 갈끔하게 되어 있어서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물론 고맙게도 입장료는 없었다.

 

 

 

 

 

 

 

 

호수만 바라볼게 아니라 등뒤로 돌아서면 이런 모습도 있다.

 

 

 

하지만 그 날의 풍광은 호수 안으로 들어감에 따라 날이 개이고

강렬한 햇빛과 터키석 색의 짙푸른 호수면과 설산의 조화가 압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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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 - 암드록쵸 (上) - 길위에서 길을

암드록쵸 (상)

암드록쵸는 쉽지 않았다.

 

아침 7시에 출발하기로 예정되었었다.

6시 50분부터 숙소 앞에 나가서 기다렸다.

이른 아침은 몹시도 추웠다.

 

숙소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택시 기사는 어딜 갈거냐고 물었고,

난 필요 없다고 대답, 이른 아침부터 어디론가 떠나는 다른 여행자들을 태웠다.

 

7시가 넘었다.

차가 안온다. 전화를 해보았다. 이런 상대편 핸드폰 전원이 꺼져 있다.

 

뭔일이 있나? 좀 늦겠지....

20분이 지났다. 이젠 걱정반 짜증반 화가 나기 시작했다.

여전히 핸드폰은 불통,,,

 

다른 호텔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걱정이 되었다.

연락할 방법도 없구,,그렇다구 여기서 기다리지 않으면 차량기사가 금방 올것만 같구,,,

진퇴양난이다. 그런데 전화는 왜 안받는 걸까?

 

대개 중국인들은 밤에는 핸드폰 전원을 꺼 놓고 있다. 한번은 이런일이 있었다.

난징(남경南京)에서 때아닌 학생 노릇 할때이다.

새벽에 문자가 왔다. 내용은 별 중요한 것 아닌데, 이런 새벽에 문자질이라니 화가 났다.

그래서 그 다음날 만나서 문자 보내 중국인에게 좀 짜증을 냈다.

그랬더니 중국인들은 대개 핸드폰 전원을 꺼놓고 있어 아침에 확인한다고 한다.

그래서 습관대로 그렇게 했다고 한다.

대개 한국인의 경우 늦은 밤이나 새벽에 오는 연락은  매우 급한 일이거나 않좋은 일이기 때문에

전원을 끄는 일이 별로 없다. 그렇지만 중국인은 다른가 보다.

 

8시 반이나 되어서야 전화 연락이 되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었으나 사고라고 있을까

싶어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랬더니,,,

"어제 세명이 확정되고 두사람은 아직 미정이라서 안가는 줄 알고 연락을 취소시켰단다."

허걱,,,분명히 어제 아침에 차량을 보내라,,5명이 안되어도 나 혼자라도 갈거다.

그렇게 몇번을 확인했건만 딴 소리다. 중국여행을 한 이후 처음으로 욕 비슷한 걸 했다.

"당시 바보아냐,,내가 그렇게 분명히 말했건만,,빨리 연락해라..지금 당장,,"

다시 연락이 왔다. 기사 역시 핸드폰 전원을 꺼놓고 있어서 연락이 안된단다.

그럼 다른 기사라도 빨리 수배해봐라. 그리고 연락 줘라.

참 곤혹스러웠다. 나 혼자면 그냥 취소하면 되지만 다른 일행들이 걱정이 되었다.

나만 믿고 지금 자기들 숙소 앞에서 떨면서 기다릴텐데..허참.

 

우선 다른 일행이 묵고 있는 야크 호텔로 갔다.

다행히 걱정들은 하고 있었지만,  기다리는 동안 아침도 먹고 여유롭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불확실했던 여자 둘은 어제 밤 늦게 못간다는 연락을 해왔단다.

 

다시 연락이 왔다. 곧 차량이 간단다.

아침도 못먹고 떨면서 아침부터 난리법석을 떨었다.

함께간 일행에게는 괜시리 미안해서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고

오기로 한 차량이 사고가 있어서 다른 차량으로 바뀌었다는 설명만 하였다.

사고는 사고지...

 

그렇게 9시를 넘겨 늦게 나마 출발 할수 있었다.

차량은 소위 빵차,,,(원래는 4륜구동이었는데,,,) 할 수 없다.

 

그렇게 암드록쵸로 출발하였다. 기사는 티벳탄으로 수더분하였다.

 

 

마치 무슨일이라도 생길 것 같은 아침 풍경

함께 간 일행은 한 사람은 여행업을 하는 분으로 나보다 연장자이고

아프리카 여행을 마치고 중국여행중이란다. 가끔 신상품 데스트용이나 여행단 인원이 모자라서

급하게 매우 저가로 나오는 여행상품이 있단다. 그런 정보는 우선 같은 여행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알려지고 그 분도 그 정보로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왔단다.

 

다른 한 사람은 군 복무를 마치고 타큐제작과 사진에 관심이 많으며 이후 네팔과 인도로 갈 예정이란다.

 

암드록쵸 가는 길은 아름다웠다. 길도 비교적 훌륭하였다. 라싸 궁가공항 가는 길과 연결되어 있었다.

 

 

길은 비교적 잘 포장되었고 가을 단풍이 들어 아름 다웠다.

 

가다가 세명이 거의 동시에 저기 차좀 세우자고 하였다.

기사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세울 예정이란다.

 

보아하니 소위 포인트라고 말하는 지역이다.

우리가 차를 세운후 뒤에 대형 관관버스를 비롯해서 짚차들이 줄 줄이 섰다.

다들 보는 눈은 비슷한 가보다.

 

 

포인트를 알리는 티벳의 타르쵸와 하닥

 

그곳은 강과 멀리 설산이 보이는 자리이다.

다들 정신없이 증명 사진 찍기 바쁘다.

두어명의 노점상이 있어 기념품을 팔지만 장사가 그리 잘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하늘은 눈이라도 오려는듯 잔뜩 흐렸다.

 

 

 

 

 

 

이제까지는 평탄한 길이었지만 이후론 굽이 굽이 돌아가는 오르막길이었다.

 

우리가 탄 빵차는 힘에 겨운듯 속도를 내지 못하였다. 랜드크루져가 추월했다.

하지만 오히려 느리게 달리는 덕분에 주변경치 감상엔 더욱 좋았다.

일장일단이랄까?

다른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린 오히려 기사에게 천천히 달릴 것을 주문했다.

 

 

가는 도중 보게되는 마을은 처음엔 무슨 선전 마을 같았다.

곳곳에 집마다 오성 홍기가 나부끼고, 우린 억지로 중국공산당을 지지합니다 이러는 것 같았다.

물론 공가공항 가는 길 주변이라서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집집마다 국경일도 아니고 오성홍기를 걸게 하는 것 좀 그랬다.

 

하지만 공항 가는 길을 벗어나서 암드록쵸 가는 길 주변에는

원래 그대로의 마을들이라서 보기 좋았다..

 

 

 

본격적인 오르막길에 오르자 곳곳에 풀을 뜯는 야크와 양떼가 보였다.

 

 

마른 하천과 황량한 산들도 보이곤 했다.

 

 

 

고개마루에서 내려다 본 풍경은 웅장함과 황량함, 그리고 다양한 색감이었다.

 

 

고개 정상은 이미 눈으로 덮여 있었다.

 

 

 

 

 

저 고개를 숨가쁘게 올라 오자 먼저 보인것은 암드록쵸가 아니라

전망대에 주차한 관광차들과 관광객들이었다.

 

우리를 싣고 온 빵차

 

검은 야크

흰(?) 야크

 

암드록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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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 - 공명과 만년설산 - 길위에서 길을

공명(共鳴)과 만년설살(萬年雪山)

숙소(키레이)에서 비교적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저녁에는 딱히 할일도 없거니와

휴식을 취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2층 복도 벤치에 앉아서 휴식과 담소를 나누었다.

 

그중 한분은 한의사다.

그 사람은 라싸에 이미 몇번 온 경험이 있고, 이번에는 우주의 중심이라 불리우는

카일라스(수미산)에 간다고 한다. 역시 수미산에도 몇번 간적이 있다고 한다.

 

카일라스에 왜 또 가냐면 공명(共鳴)하기 위해서 란다.

 

나와 방을 함께 쓰는 일본인 친구 역시 카일라스에 간다고 했다.

약간 두려움도 있다고 하지만 그 유명한 아리루트를 따라서,,

아! 나도 가고 싶었다. 하지만 욕심은 금물, 때론 포기 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 오랜산건 아니지만 경험상 이 다음이란건 대개

실현되기 어렵다. 하지만 그래도 다음을 기약할 도리 밖에 없다.

 

초등학교 과학시간에 소리굽쇠를 울리면 좀 떨어져 있는 소리굽쇠도 함께 울리는

공명현상을 기억 할 것이다. 파장이 같으면 받응을 하는 현상이다.

 

한의사 그 양반 왈, 의사들 중에 의외로 자기가 담당하는 병으로 죽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일테면 간암 전문의는 간암으로 위암 전문의는 위암으로....

왜냐면 사람도 역시 자신과 공명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시쳇말로 코드(code)가 맞는 사람.

 

그래서 환자중에 간혹 자신과 공명하는 그런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간암 환자라면

치료를 담당하는 의사 자신의 간에도 영향을 준다고 한다.

이런일이 반복되다 보면 자신도 병에 걸릴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공명한단 이야기다.

 

고타마 싯다르타(석가모니)가 왜 만년설산에서 깨닭음을 얻기 위해 수행을 하였는지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단다. 설산이 주는 영적 공명을 느길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한의사 그 양반은 가끔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설산에 간다고 한다.

 

이미 메리쉐이산(매리설산梅里雪山)에 다녀온적이 있는 나는 그 말에 공감(共感)을

표했다.  무슨 큰 깨닭음을 얻은 건 아니지만 설산 앞에 서면 자신이 한없이 낮추어지고,

편안해짐을 경험 바 있기 때문이다.

 

  야딩의 양메이용 설산

 

여행기 속도위반이고 카일라스는 아니지만 이후에 가게된 사천 야딩의 설산 사진 몇장을 올린다.

 

야딩의 선내일 설산

 

이런 만년설산을 보면서 무엇인가를 얻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최근 중국 드라마중에 오성반점(五星飯店 : 오성호텔)이라는 것이 있다.

중국에 있는 최고급 호텔 종업원과 한국 대기업 오너의 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어가는 드라마다.

 

그 중에 의문의 죽음을 당한 아버지를 회상하며 여주인공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

"죽은 아버지와 함께 많은 만년설산을 다녀왔다. 후지산, 000,(기억 안남) 등등,

지금도 설산에 가고 싶다. 너의 설산에도 가고 싶다."

남자 중국인 종업원의 이름은 옥룡(玉龍)이다.

 

옥룡설산은 운남에 리장에 있는 만년설산이며 나시족의 성산(聖山)이기도 하다.

 

나도 만년설산에 가고 싶다. 그래서 히말라야로 가고자 하는 것 갔다.

 

야크와 수유차, 티엔차  

 

여행지에서 먹는 재미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산물이 풍부하지 못한 티벳에서는 전통음식으로 그리 다양하진 못하다.

그러나 여행지라서 특히 서양인 입맛에 맞는 다양한 야크요리가 있다.

 

바낙숄 호텔 옥상에 있는 지금은 이름을 나무쵸라 바꾼 곳에서 야크스테이크(25원)를 먹었다.

동행과 함께 와인을 마시는 이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야크스테이크 맛이 외로운 여행자를 달랬다.

 

나무쵸 레스토랑(바낙숄 옥상)

야크스테이크

 

키레이에 있는 Tashi 2에서 먹은 치킨커리라이스(15원)와 꿀이 가미된 요그르트(4원)도 나쁘지 않았다.

 

 치킨 커리라이스

하지만 때론 이런것이 사무치게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점심을 간단히 과일로 먹었지만 배는 고프고 그렇다고 제대로된 저녁을 먹긴 이르고 할때 먹었던

그건,,,ㅎㅎ  라면과 김밥이다.

그런데 김밥의 모양새가 흠미롭다. 참 만들기도 어려울것 같다.

아리랑 식당 종업원들(티벳탄)도 늦은 점심을 먹을 때였다. 그들이 마시던 티엔차를 얻어 마셨다.

티엔차는 수유차와는 달리 이름(티엔 : 달다란 뜻) 그대로 매우 달착지근 한 차였다.

몇잔을 마셨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들도 돈주고 샀단다.

 

수유차는 이미 메리설산에서부터 많이 마셨기 때문에 내겐 익숙하다.

수유차는 차마고도가 생기게 만든 티벳인들에게 비타민을 제공하고 버터와 야크 등

육류 소화를 돕게 한 중요한 차이기도 하다.

 

라면과 김밥

 

나무쵸, 네충사원, 데뿡 사원 그리고 인연

키레이 숙소에서 네충사원과 데뿡사원이 봉쇄되었단 소식을 들었다.

내가 라싸에 있던 시기(10월 중하순)는 중국 공산당 전당대회가 진행되던 시기였으며,

달라이 라마가 미국에서 상을 받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 중국공산당이 강하게 반발하기도 하였다.

더구나 달라이 라마의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데뿡사원 승려들이 행사를 가지려 하자

중국 공안이 이를 금지시켰고, 이에 승려들이 반발 충돌이 있었다.

그래서 데뿡사원과 네충사원을 봉쇄해버렸다.

 

데뿡사원과 네충사원은 결국 가질 못했다. 인연이 안되나 보다.

큰 충돌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그럼 이젠 나무쵸.

이제 라싸의 고도에도 어느정도 적응 하였다. 나에겐 특별히 고산증세는 없었다.

이미 메리설산에 가서 한번 검증하였기도 하였고, 다만 약간의 두통이 있어 타이네놀만

복용하는 정도 였다. 어떤이는 그냥 멀정하고 쌩쌩한 이도 있고, 굉장히 힘들어 하는 이도 있다.

아마 라싸를 보고 느끼는 것이 제 각각이듯이 고산증세도 제 각각인가 보다.

 

그래서 나무쵸에 갈려고 아니 이게 왠걸, 나무쵸 가는 길에 눈이 내려 이젠 못간단다.

허 참,,인연이 없나보다.  하여 암드록쵸는 가능한지 여행사에 물어보니 가능하단다.

하지만 키레이 숙소안에 있는 여행사가 운영하는 버스(단체 관광)는 없단다.

그럼 방법은 빠오쳐 뿐이다.

 

비용이 문제다. 우선 빠오쳐(500원)를 구했고, 그 다음은 일행을 구하여야 했다.

일의 순서가 좀 바뀌었다. 원래는 이런일은 일행 먼저 구하고, 날자 잡고, 바오쳐 구하는게 순서인데

난 그반대로 하였다. 일행 못구하면 혼자라도 갈 생각이었다.

 

오후에 길거리에서 여행가이드책을 들고 현지인과 대화(손짓 발짓)를 나누는

여행객 둘(여자 2)을 보았다. 보아하니 한국인이었고, 중국어는 잘 못하고

책자를 보여주며 길을 묻고 있는 중이었다.

 

쎄라쓰에 가려는 중이었다.

다가가서 버스 잘안오니 그러지 말고 택시 타고 가라고 했다.

택시 잡아서 가는 목적지 쎄라쓰 확인하고 택시비 10원임을 기사에게 주지시키고 보냈다.

 

그들이 하는말 "아저씨, 오늘 저녁 스노우랜드(snow land)에서 라싸에 있는 한국인 모임 있어요,

오세요." 그래요 대답했지만, 애초엔 갈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네충사원, 데뿡사원도 못가고, 나무쵸도 어렵고

암드록쵸를 가야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저녁 모임에 가서 일행을 구하기로 하였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스노우랜드는 조캉사원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야크 요리로 꽤 유명하단다.

가격은 약간 비싼편이지만(중국물가 치고는) 맛은 훌륭했다.

 

모임장소에 갔더니 20여명이 넘었다. 다들 놀래는 편이었다.

이렇게나 많이 모을 줄 몰랐단다.

그저 몇명이 밥이나 먹자해서 만나는 사람 여기저기 알렸는데...하루만에 20여명이나 모이다니..

ㅎㅎㅎ 라싸 경제는 한국인이 다 지탱해주는 것 같았다.

 

우선 각자 먹을 것 주문하고... 그런데 이상하다.

자기소개도 없고, 하긴 서로들 잘모르는데 그러거 해서 뭐하나....

하지만 의례히 갑자기 왜 모이게 되었는지 주최자는 누구인지 인사 정도는 하는게 상례인데.

그런것도 없다. 서로들 가까운 사람들과 여행애기 하고 먹고 그런다.

분위기 넘 좋다. 내가 원하는 분위기 이런 거다.

결국 일행의 반쯤은 저녁식사 후에 근처에서 양꼬치를 비롯한 각종 꼬치와 함께

맥주를 마시며 여행의 즐거움을 더했다. 그리고 헤어졌다.

 

나도 내 필요에 의해서 사람들에게 낼 암드록쵸 갈거구, 이미 차는 수배했구

같이 갈사람 있으면 함께 가자. 없으면 혼자 갈거다. 공지했다.

남자 두명은 즉석에서 가기로 했고 이윽고 여자 두명은 미리 선약이 있어서

그 사람과 상의하고 가기로 했다.

 

인연은 참 그렇다.  이렇게 해서 암드록쵸에 갈 일행을 구했다.

 

스노우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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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 - 노블링카 - 길위에서 길을

노블링카

노블링카는 달라이 라마의 여름궁전이다.

척박한 라싸에서 예외로 녹음이 우거진 아름다운 곳이다.

 

노블링카 가는 길 여기저기 공사 중이라서 어수선하다.

중국 어디에도 공사장이 없는 곳이 없다. 세계자원의 블랙홀이란 말이

그저 엄살이나 허풍은 아닌듯 싶다.

 

노블링카(뤄블린차) 입장료는 60원, 역시 학생표는 없다.

 

입구에 들어서면 처음 마주치는 곳이 노란 담장으로 둘러쳐진 신궁(新宮)이다.

 

노란색의 긴 담장

 

노블링카를 찾는 티벳탄들은 조캉사원이나 포탈라궁과는 다르게 공원에 나들이 나온 듯이

가벼운 발걸음들이다.

여기저기 먹거리를 싸들고 와서 가족들과 함께 먹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점심 무렵 노블링카에 도착해서 우선 요기가 급했다.

주변엔 적당한 식당도 없구 해서 석류와 사과 초콜릿으로 간단히 해결 하기로 하였다.

 

가족과 함께 방문한 어린 아기가 힐끔힐끔 쳐다보길래, 초콜릿 하나를 건넸다.

처음엔 쑥스러워하더니 용기를 내어 받아가 신이나서 가족들에게 자랑한다.

누나쯤되는 아이는 수줍움을 타는지 동생과 나를 번갈아 보면서 용기를 내질 못한다.

 

배가 고프기도 하여 순식간에 내 일용 할 양식은 내 배 어디론가로 아쉽게도 사라졌다.

기회라는 여신은 그리 오래 기다려주지 않는법...

 

비밀의 화원에 들어가는 기분 : 신궁 입구

 

하늘은 푸르디 푸르고, 나무는 녹색으로, 황금빛 지붕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여기 저기 이름 모르는 노란 꽃, 붉은 꽃,,, 달라이 라마가 그렇게도 노블링카를

그리워 하는 이유를 알겠다.

 

 

 

 

비록 불편한 몸이라도 든든한 가족과 함께라면

 

신궁의 구석 저편에는 전혀 관리가 안되는 중국식(?한족식)의 정원이 있었다.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든 모양새도 영 엉성하고,

그나마 관리조차 되지 안고 있었다.

왜 만들었을까? 모를 일이다.

 

 

그 주변을 토끼 한마리와 나만이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신궁옆에 있는 Tuzin palace에는 작은 연못도 있다.

한가롭게 오리들이 노닐고 있다.

 

한껏 우아한 모습을 유지하려 하나 역시 물밑에선 종종거려야 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며 웃다가 왜 고구려의 유리왕이 읊었다는 황조가가 생각나는 걸까?

아마도 외로워서 그럴것이다.

  

 

나의 심사와는 무관하게 궁전은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한편 자본의 힘은 크고 질겼다.

노블링카안에서 만나는 버드와이저 광고라니....

 

 

그렇지만 또다른 한편에서는

대안 에너지, 태양열을 이용한 물끌이기도 있었다.

 

정말 물이 펄펄 끌는다.

 

 

아름다운 궁전과 푸르른 초목, 형형색색의 꽃들이 만발하기 위해서는

특히 라싸 같은 척박한 땅에서는

인간의 끊임 없는 노동과 애정을 필요로 했다.

단순히 물을 준다기보다는 물에 잠기게 하는 정도의 노력이...

 

,

 

 

물주는 아저씨

 

아름다운 노블링카 한 구석에 있는 동물원은 마음을 상하게 한다.

궁전 안에다 동물원을 만든 마음 씀씀이 하며,

그 조차도 낡고 퇴색해 버려 볼상 사나웠다.

일부러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누가?

 

노블링카는 호젓한 한나절의 산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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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 - 세라곰파 - 길위에서 길을

세라곰파 - 길위에서 길을 놓다

 

세라곰파(쎄라쓰 色라寺)는 전장(前藏)지역의 간덴 사원, 데뿡 사원과 함께

3대 게륵파(格魯派)사원의 하나이다.

종까파(宗格巴)대사의 제자인 장첸 초제와 샤카에서가 1419년에 설립하였다.

 

간덴 사원이 라싸 시내에 있는 관계로 순례자와 관광객으로 붐비는 반면

쎄라스는 비교적 조용하였다. 쎄라쓰는 교육기관으로서도 유명하다.

비록 정통은 달라이 라마와 함께 망명하여 인도에 세운 세라 사원이 가지고 있지만..

 

세라 곰파 입구에 있는 안내문, 티벳어, 한자, 영어의 3개 국어로 되어 있다.

 

버스로 104번, 503번 종점이라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아

그냥 택시를 탔다.  라싸 시내는 거의 무조건 10원이다.

 

택시 기사가 묻기에 한국인이라니 "안녕하세요" 한다.

허걱..참 많이도 왔나 보다.

 

자기는 마오쩌뚱의 고향인 후난(湖南)에서 왔단다.

꼭 자기 동네(? 동네치고는 너무 큰데...)에 놀러 가보라 한다.

 

세라쓰의 입장료는 60원이다.

어떤이는 살짝 들어간다거나(직원이 없을 때), 주변의 뒷문(일명 개구멍)을 통해서 들어간다고

하는데 난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물론 가끔 여행 경비를 줄여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만,,,

뭐 죄지은 도둑놈처럼 다니고 싶지 않아서 이다.

어떤이는 무용담처럼 꽁자로 어딜 들어 갔네 자랑삼아 말하지만

난 좀 웃긴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각자 생각이지만 난 그럴 생각 추호도 없고 부럽지도 않다.

그런데 자랑삼아 그런 이야기 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때론 짜증이 난다.

 

라싸 여행을 하면서 한가지 느낀 것이 있다. 물론 어디나 마찬가지일지도 모르지만.

 

급하면 아무것도 안보이고 느낄 수 없다.

티벳불교와 티벳 문화, 복식, 역사, 전통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경우에는

어느 사원을 가나 비슷한 양식의 사원, 각종 부처들, 버터 냄새, 불화,

그리고 티벳탄들 별 차이를 못 느낀다.

그래서 이내 식상해 한다.

 

그러나 티벳 불교의 역사, 문화, 전통에 대해 사전에 좀 공부하고,

차분이 둘러 보면 많은 차이들을 느낄 수 있다.

 

천천히 움직여라,,그러면 뭔가 보일지도 모른다. 안보이면 할 수 없구,,,

 

티벳여인의 뒷 모습

 

티벳탄이 다들 비슷한 것 같아도 좀 자세히 자세히 보면 머리 모양새, 장식, 옷 모양세,

얼굴 생김세 등이 부족별, 지역별로 확연히 다르다.

 

이런 모습을 지켜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세라스 입구의 가로수 길

 

세라사원에 들어서면 의외로 울창한 가로수들이 반긴다.

오후의 강렬한 햇살을 피하기 참 좋다. 티벳 지역은 고원지대이고

오염이라고는 찾아볼래야 볼 수 없는 청정지역이어서 오후의 햇살은 강렬하다.

 

 

세라쓰는 오후 3시경부터 시작하여 약 1시간 정도 벌어지는 '최라'라고 하는 행사는

여행자들에게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불교 교리를 1 대 1, 또는 1 대 다수가 서로 묻고 답하는 교육과정이다.

 

때론 진지하기도 하고 간혹 장난 같기도 하고,,,

 

주변에는 여행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찍기 바쁘다. 라마승들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매일 겪는 일이라서 그런가...

 

한참을 교리문답을 주고 받고 있는 라마승 옆에 죽치고 앉아 지켜 보고 있자니

중국인 젊은 여자가 묻는다.

"도대체 뭐라고 하는 것냐?", 엥...

 

"띵부동", 나도 몰라. 중국말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내가 티벳어를 알수가 있나?

아마도 그녀는 흥미롭게, 질려하지 않으면서 지켜보고 있는 내가 알아듣는다고 착각했나 보다.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그 여자는 씩 웃는다.

 

하지만, 부처의 자비를 논하고, 왜 시탈타가 인생은 고해라며 출가하게 되었는지..

중생을 구제하는 길이 무엇인지, 깨달음을 얻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 논하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 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무엇을 묻고 답하는지 알 것만 같은 착각을 하게된다.

 

라마승의 다양한 모습들

???"

 

  

 

 

오늘의 교육과정을 정리하는 모습

 

세라쓰는 차분히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돌아다니기 참 좋다.

 

 

 

 

 

수백년의 세월을 짐작케 한다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는 티벳탄과 부처

 

 

 

 

 

오체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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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 - 티벳박물관 - 길위에서 길을

 티벳 박물관 - 길위에서 길을 놓다

시짱보우관(시장박물관 : 西藏博物館)은 노블링카(달라이라마의 여름 궁전)근처에 있다.

걸어서 갔다. 원래 걷는 것을 좋아하고 천천히 둘러보는 재미가 나름 쏠쏠하다.

 

가는 도중 여행 내내 유용하게 사용한 모자(스키 모자 비슷한 것)를 샀다.

라싸에서는 사용할 필요가 없었지만 야딩 갔을 땐 정말 고마웠다.

 

시짱보우관은 학생은 무료다. 잘하는 일이다.

박물관을 좋아하는 나는 몇 시간이고 보낼 수 있지만

박물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분에게는 지루 할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티벳불교와 관련된 전시물이 주종을 이룬다. 불상과 제구, 그리고 티벳 민속 자료,

티벳 야생동물 표본과 사진 등이 있다.

 

 

티벳박물관

 

인간이 종교를 갖게 된 것은 무슨 이유일까?

공포때문이 아닐까? 인간의 힘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혹독한 자연재해,

질병, 죽음, 삶의 고통, 전쟁, 기아 등

 

누구는 "진짜 두려운 것은 두려움  그자체"라고 말했지만...

 

공포의 한 전형을 보았다.

<사진은 엉망이다. 그냥 보세요,,,>

 

 

 

 

 

 

 

 

 

 

무섭지 않으세요...!!!!!

 

난 부처의 다양한 모습도 좋아한다.

그런데 왠일인지 부처는 강하고 건장한 남성성 보다는

부드럽고 온화한 여성성이 짙다.

 

 

 

 

 

전 부처님의 이런 모습도 좋아하지만...

 

 

 

부처님의 뒷 모습도 좋아합니다.

아름답지 않으세요,,,

 

(사진이 별루라서 그렇지만,, 유리관,,,조명,,ㅎㅎㅎ)

 

시인 고은의 '화엄경'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애욕(愛慾)을 비웃지 마라"

애욕은 많은 이들이 겪는 번뇌의 시원(始原)이지만 어찌 피할 수 있을 까요?

불상을 보면서 불경스럽게도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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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 포탈라궁과 그 주변 - 길위에서 길을

포탈라궁과 그 주변 - 길위에서 길을 놓다

 

 < 새로운 소식 : 최근 포탈라궁의 사전 예약제가 2007년 12월 폐지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여행객의 입장에서 매우 반가운 소식입니다.

   하루 입장객 제한이 아직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지 여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참고하세요..>

  

포탈라궁의 사전 예약제가 폐지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몇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 중 한가지...

 

또 몇 명(?)이 직업을 바꾸어야 겠구나?

라싸에 가면 수수료(소고료?)를 받고 포탈라궁 입장권을 파는 사람을 볼 수 있다.

하루전에 예약해야 하는 여행자의 불편(?)을 이용하여 대신 입장권(사전 예약권)을

구해서 파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제 뭘 할까?

새로운 영업 방식을 찾아 내겠지....

 

포탈라궁의 내부는 사진찰영이 금지 되었다.

 

궁내부를 돌아보면서 황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역대 달라이 라마의 영탑을 보면서

많은 생각들이 들었다.

 

부처의 반열에 오른 달라이 라마와 이에 대한 절대적인 존경을 표하는 티벳탄.

티벳탄들은 버터기름을 가지고 다니며 곳곳에 있는 등잔에 기름을 채우며 공양한다.

또한 1마오 지폐(한국돈으로 13원 정도임)를 각종 부처상과 달라이 라마 영탑에 공양한다.

가끔 포탈라궁을 관리하는 라마승 또는 직원들이 자루로 그 돈을 쓸어 담기도 한다.

 

조캉사원이 있는 바코르 주변을 돌다보면 지폐를 바꾸어주는 많은 사람들을 목격한다.

첨엔 무슨 영문인질 몰랐으나 공양하는 티벳탄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살아서 활불이요 죽어서 다시 달라이라마로 부활하는 영적 존재의 영탑.

하지만 티벳의 경제력(특히 과거에는 더더욱...)을 생각 할때 과연 저 많은 금과 보석은

무엇을 의미 할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종교와 정치가 일치된 제정일치의 사회였던 티벳의 역사..

 

중국 공산당은 봉건사회의 인민에 대한 착취라며 타파했다. 또한 제도만이 아니라

사원을 파괴하고 라마승과 티벳인민을 학살 하였다.

 

 

서장화평해방 기념비(西藏和平解放記念碑)

  

포타라궁의 정면에는 광장이 있고 그 광장 끝에는 포탈라궁을 정면으로 마주 바라보면서

서장화평해방기념비가 있다.

 

인민해방군이 보초를 서고 있다.

 

 티벳탄의 환희와 즐거움을 형상한 조각상

새로운 티벳 건설을 상징하는 조각상과 인민해방군

 

 중국 공산당은 티벳 점령 후 무엇을 해방하였는가?

 

봉건제의 억압과 사슬로부터 인민을 해방시켰는가?

가난과 빈곤의 수렁에서 인민을 해방시켰는가?

 

평화를 가져왔는가?

 

군대(무력)와 공안으로 지켜야만 하는 권력(정부)라면 그건 이미

인민의 정부가 아니다.

 

'Power to the people : 인민에게 권력을' 

 

인민이 권력을 갖는다 함은 인민 스스로 자신이 가진 자원을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고, 자신의 문화와 종교를 스스로 결정하고,

자신의 삶과 국가에 대해 스스로 결정권을 갖는 것을 의미 할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해방자가 아니라 또 다른 지배자일뿐인가?

 

약왕산(藥王山)  : 포탈라궁 정면으로 광장의 왼편에 있음 

 

약왕산 밑에는 작은 사원 있다.

눈여겨 보지 않는다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작은 사원이다.

 

웅장하고 금칠 한 사원보다는 왜 작은 사원에 더 눈길이 가는 걸까?

광장을 서성이다가 티벳탄을 따라 가다가 발견한 곳이다.

별다를 것 없는 작은 사원이다.

 

가는 도중(도보 3분정도) '옴마니반메옴'을 돌에 새기는 사람들과

나즈막한 절벽에 새겨진 부처상을 볼 수 있다.

 

 

그저 밖에서 서성이다 돌아 왔다. (역시 입장료,,,,)

 

 천불인가 만불인가?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 )

  

 형형색색의 부처님들

조국 만세 (티벳탄의 조국은 어디인가?)

열렬 경축 (중국공산당)당의 17 회 전당대회

 

라싸를 방문하던 시기는 후진타오의 향후 5년간의 제2기 집권을 확정하는 중국공산당 제 17회

전당대회가 열리던 시기였다. 중국 전역은 이를 축하하는 프랭카드와 선전구호가 있었고

어김없이 포탈라궁에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포탈라궁 앞에는 오체투지하는 티벳탄도 있었다.

 

 

수많은 티벳탄의 오체투지로 인해 도로변의 보도블럭이 매끄럽기 까지 하였다.

 

바위산안에 만들어진 티벳탄의 차관(쉼터) : 포탈라궁 왼편에 있다.

 

 

포탈라궁 왼편에는 약왕산조경대가 있다.

 

한사람에 2원밖에 안해,,이게 왠 떡..

올라갔다.

 

허나 채 10m를 오르자 전망대가 있다. 더 이상 오르는 길은 없다.

약왕산을 다 오르는 것두 아니구,,,,

 

우리에게 '싼게 비지떡'이란 말이 있듯이

중국말에도 '1원은 1원의 값어치를 한다'라는 말이 있다.

다 제 값을 하게 마련이다.

 

올라가 보니 중국인 듯한 여자 2명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진 좀 찍어 달란다. 그런데 영어다.

 

영어로 답하니..

그쪽에서 묻는다 " 중국인 아니냐"고 ㅎㅎㅎ 중국여행 오래하니 중국인 다됐다.

이걸 기뻐해야 하나 마나...

 

그들 둘은 화교인데 캐나다에서 왔단다.

 

 2원 전망대에서 바라 본 포탈라궁

 

이 정도면 2원 치고는 훌륭하지 않은가?

 

포탈라궁 코라를 돌며 마니차를 돌리는 티벳탄

 

코라를 도는 티벳탄을 따라 걷다가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일이 있었다.

 

어린시절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작은 꼬마 하나가 세상 모두가 자기 것인 마냥 거침없이 달려가다가..

 

신기한듯 마니차를 제맘대로 돌리다가(마니차는 돌리는 방향이 정해져 있다.)

할머니와 엄마에게 꾸중듯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하지 말라면 더 하는 법, 

아이는 망아지처럼 껑충껑충 뛰며 마니차를 이리 돌렸다 저리 돌렸다 한다.

 

ㅎㅎ 나도 어릴적 저랬다.

 

이에 장난기가 일어난 할머니와 엄마가 몸을 숨겼다.

한참 신나게 놀던 아이는 영원한 보호자인 할머니와 엄마가 모습을 보이지 않자

여기 저기 찾는다. 아이는 곧 두려움에 휩싸인다.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 엄마와 할머니가 모습을 드러낸다.

 

엄마 찾는 아이

 

그제서야 안도와 원망의 몸짓을 할머니와 엄마에게 부려본다.  땡깡이다.

그 모습이 너무 재미있어 한참을 지켜 보았다.

 

아이도 엄마도 할머니도 자신들을 지켜보는 낯선 이방인의 시선을 느꼈다.

약간 머쓱하게 웃어 주니 답례로 미소가 온다.

 

아이에게 초코릿을 주었다.(여행자의 일용 할 양식)

아이가 초코릿에만 정신을 팔자 엄마가 말한다.

 

"수수 시에시에 해야지." 그제서야 아이는 "수수 씨에씨에!"

허걱..."아저씨 고마워요."  그렇다. 이제는 아저씨란걸 부인 할수 없다.

 

맘 한편이 허하다.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을 잊고 사는데 가끔 그걸 일깨워 준다.

 

포탈라궁 - 뒷쪽

세개의 백탑 - 포탈라궁 뒷쪽

 

 

종각녹강 공원 (종각 : 쫑까 대사를 의미함 : 포탈라궁 뒤에 있음)

 

공원에서 운동(태극권?) 하는 사람들 : 한족일가 티벳탄일까?

 

작은 절 : 포탈라궁 뒤에 있음

 

고목과 티벳탄

 

 용왕담과 포탈라궁

천천히 둘러 보세요, 주변 어디에 보석이 숨겨져 있을지 모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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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첫날..

행복할지...

힘들지...

 

"뿌린대로 거두리라..."

 

새해 첫날...

 

"뿌린대로 거두리라.."

 

뿌린만큼만 거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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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 - 포탈라궁 - 길위에서 길을

 

<  홍백의 포탈라궁 >

포탈라궁 가는 길은 약간의 수고로움이 필요하다.

당일방문은 안되고 전날 예약을 해야 한다.

 

하루 방문자수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아침일찍 가볍게 토스트와 우유한잔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천천히 걸었다.

 

워낙 걷는 것을 좋아하고 지도를 보니 충분히 걸을만 한 거리였다.

매표소는 포탈라궁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왼쪽 끝의 문 안쪽으로 가면 있다.

 

필요한건 신분증(여권)만 있으면 된다. 퍼밋 보잔 애긴 않한다.

매표소(정확히는 매표소는 아니고 예약소라고 해야 할 것 같다)에서 신분증을 보여주면

다음날 입장할 시간이 적혀진 입장권을 준다.

 

비수기이지만 좀 늦은 시간(9시 30분쯤)에 예매를 했기 때문에 입장시간은 11시 30분..

 

포탈라궁 정면을 바라보고 왼쪽으로 가면 백탑이 나온다

왼쪽은 티벳탄이 포탈라궁을 도는 코라길이고 오른쪽 문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예약소

포탈라궁 정면으로 가면 개인 방문객의 입구가 있다. 단체 관광객은 오른쪽 측면에 입구가 있음

포탈라궁의 입장료는 100원(학생표는 없다.)

라싸에서는 대부분 학생표는 없다. 다만 유일하게 학생표가 유용한 곳이 서장박물관, 학생은 무료다.

 

포탈라궁을 방문하게 되면 되도록이면 티벳탄의 코라를 따라 포탈라궁을 한바퀴 돌아보았으면 한다.

측면이나 후면에서 바라 보는 포탈라궁은 다른 감흥을 준다.

 

 

포탈라궁 정면, 홍궁과 백궁

 

어김없이 오성홍기는 나부끼고

 

 

 

 

 

 

 

포탈라궁의 후면

 

 

호수에 비친 포탈라궁

 

 

 

 

포탈라궁을 오르는 티벳탄

 

다행히도 티벳탄들에게는 입장료가 다른 것 같다. 당연히 일반 관광객보다 저렴하겠죠.

 

 

 

포탈라궁에서 바라본 라싸 시내

포탈라궁 관람 끝.

 

 

오늘은 사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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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 - 끝까지 버티어야 해 제발 - 길위에서 길을

< 힘들고 위로워도 끝까지 버티어야해,,,제발 >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티벳이여 라싸여 티벳탄이여

[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님 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난 티벳탄의 고통을 아는가? 그들의 슬픔을 마음으로 느껴 보았는가?

그들의 선한 눈망울을 정면으로 직시 할 수 있는가?

마음 깊은 곳에서 공명이 우러나기 전까지는 쉽게 말하지 말자.

 

안도현님의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티벳탄에 대해 쉽게 말하지 않으렵니다.

티벳탄의 고통에 대해 가볍게 연민한다고 하지 않으렵니다.

 

저 희말라야 설산을 넘는, 넘어야만 했던 그들의 삶에

쉽게 경의를 표하지 않으렵니다.

 

다만 기원합니다.

힘들고 외롭더래도

 

제발

끝까지 버티어 달라고..

 

조캉 사원 내부의 벽화

 

 

비록 끍히고 뭉개지고 돼지우리가 되는 수모를 겪더래도

버티어야 합니다.

 

<티벳탄들에게 가장 신성한 조캉사원은 중국공산당의 티벳 점령이후 파괴되고

심지어 돼지우리로 전락한적이 있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한족(솔직히 자본주의라 하는게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에 의해

라싸는 급격히 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구석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있습니다.

 

어두침침한 조캉사원 내부를 비추는 한줄기 빛

 

오래된 담장 밑에 핀 한 떨기 꽃

 

비록 오성홍기(중국국기)가 걸려 있지만 빛 바램 없는 푸른 하늘과 낡은 티벳전통 건물

위태롭게 전기줄과 함께 있는 티벳의 영혼

어둠이 밀려 오지만 내일도 조캉사원 앞에는....

 

자신을 태울것입니다

자신을 낮은 곳으로 던지는 그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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