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안행 관광열차 티켓. 환불은 안되고 2틀내에 오면 다른 표로 바꿔준다한다

 

1.

새벽에 눈이 떠졌다. 배탈이 났나 보다. 하기야 입 짧은 내가 어제 그 탕 그 기름진 음식이 좀 무리였나 보다. 국민학교 어린시절 부산 큰집에 한 4년 산 적이 있었다. 그땐 파도 먹질못해 어른들앞에서 고를 수도 없고 먼저 콩나물국안의 모든 파를 모아 꿀꺽삼키고 그 다음부터 편하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다시 일어난 시간이 9시, 짐을 좀 줄여보자. 우선 책이나 프린트 중 중국관련자료가 반이상이되어 베트남 넘어가기 직전에야 그 짐을 덜 수 있다. 커피믹스 한 30개, 튜부식 고추장 6개(아직 띁지도 않았다) 미수가루 선식 한 봉지, 가그린 작은병 5개 이런것들이 골치다. 어머니가 신경써서 싸우면서 넣은 것이라 그냥 버리기도 뭐하고 중국땅에서 누굴 주기도 쉽지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께도 가벼워지겠지... .

 

2.

11시 경 체크아웃을 하고 뤄양 기차역 앞 광장에서 햇볕을 쬐다가 대합실 입구로 들어갔다. 중국은 기차역에도 공항같이 적외선 짐검사를 한다. 컨베어에 배낭을 내려놓고 통과하는데 내 짐중 뭐가 걸렸나 보다. 부저가 울린다. 담당직원이 모니터를 가리키는데 보니 휴대용 술병이다. 소림사에서 먹다남긴 이과두주를 부어 놓았는데 이게 왜 문제인가. 술병을 꺼내 보여주고 먹을 거라 했다. 직원이 냄새를 맡아본다. 별 이상은 없는거 같다. 대합실에서 귤을 먹으며 기다렸다. 개찰이 시작되었다. 이 기차가 내가 타려했던 2층 기차였다. 내가 탄 2호차 하는 대부분 외국인이었다. 한 스무명 가까이되는 가족을 포함한 무리가 탄다.

 

3.

두명씩 마주보는 좌석 4인좌석에 혼자 앉게 되었다. 통로 맞은 편에는 할머니 두 분이 마무보고 앉아 있었다. 한 할머니는 뜨게질을 시작한다. 뤄양에서 시안가는 풍경은 별반 다른게 없었지만 동굴을 파서 집을 짓고 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밥을 안먹어서 중간역에서 밖으로 나와 도시락하나를 샀다. 닭다리 하나, 고기야체덮밥이었다. 밥이 차갑다. 그냥 먹고 있는데 2호차 담당승무원이 보더니 도시락을 가져가 뜨거운 물을 살짝 부어준다. 세세 고맙다고 하고 밥을 먹으면서 보니 그 승무원은 영어도 좀 할 줄 알고 외국인 전용칸 담당인가 보다. 그 승무원은 능숙하게 시간때마다 장기, 사각형스퀘어맞추기등을 팔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큰 정사각형이 꼭맞는 아래쪽 입구로 빠져나가게 하는 놀이기구를 해보라며 테이블위에 놓는다. 아니 이건 국민학교 3학년때인가 방학때면 철원 외갓집에 갔었는데 외할아버지가 베니어판 짜투리와 작은 못과 망치로 뚝딱만들어준 그 놀이기구였다.

 

4.

결국 이것과 정사각형 맞추기등 두개를 25원에 샀다. 그 승무원과 잠깐 얘기를 나누었다. 가족은 자기 남편 아이 세식구란다. 하루에 8시간을 일한다고 하고 일은 재미있단다. 만나는 사람마다 일이 호하냐고 물으면 그렇단다. 중국인들의 체면치례일까? 8시간을 어떻게 일하는지 정저우와 시안노선은 7-8시간거리다 집이 정저우라면 시안갔다가 집으로 퇴근할 수 없는데 그러면 아이는 어떻게 하나. 그는 다른 자리로 물건을 팔러가야 되어서 물어보진 못했다. 나에게 중국어를 잘한단다. 얼마인지 숫자 겨우 알아듣는 나에게 말이다.

 

5.

예정보다 20분 늦은 7시경에 서안에 도착했다. 여행에서 가장 큰 걱정거리는 잠자리다. 다시 어렸던 시절, 90년에 한 6개월 수배된적이 있었다. 그때 처음 한 달 저녁의 고민은 오늘은 어디서 자나 누구에게 전화하지 였다. 지금은 전화할 곳도 없다. 하지만 돈이 있기에 어디든 묵을 수는 있다. 오면서 3군데 숙소 후보지중 고심했다. 명함받은 조선족 민박집은 한국인을 만날 가능성이 있다.지금까지 한국사람을 거의 만나지못하고 한국말도 쓸일없이 지내오고 있다. 이게 좋다. 서안교통대학은 80원에 더블방을 제공한다는데 숙박비를 좀 줄여야 한다. 그래 45원 하는 런민다사 궁위로 가자고 결정했다. 서안역앞에 나와 지도의 위치인 정류장을 찾는데 안보인다. 밤에 세세한 것은 무리다. 방향은 확인했고 택시를 타자. 운전수에게 위치 간체자를 적어 보여주었는데 어디엔가 전화로 물어본다. 나에게 그 건물 앞까지 데려다 줄 테니 15원을 달라한다. 기껏해야 10원나오는 거리인데... 좋다고 했다. 순식간에 유스호스텔 앞에 도착했다.

 

6.

침대 6개 한방 하루 40원, 침대 4개한방 45원, 공용 침대4개 방을 선택했다. 여권을 보여주며 숙박계를 기록하는데 생각보다 말이 잘 통한다. 영어로 하지않고 직원이 뭔가 쓰면 감이 잡힌다. 오늘은 대화가 좀 되는 날인가 보다. 샤워를 하고 빨래 신청해 겉옷과 대부분의 옷을 다 빨았다. 내일 점심까지는 겉옷말고는 마를것이다. 프런트 옆의 피씨에 앉았다. 시간당 6원(780원) 제어판에 언어 시간에 들어가 한글입력키 설정 음 된다. 윈도우 XP밑의 아이콘언어메뉴에 한국어가 들어와있다.

 

7.

인천-탕구-북경-정저우-소림사-뤄양-서안 약간 부피가 쌓여간다. 기차에서 오던 방향을 보며 상상에 잠겼었다. 내가 저 쪽 끝 바다건너편에 살고 있는데 이 쪽으로 건너와서 이렇게 밑으로 내려와서 다시 서쪽으로 가고있구나... . 나의 삶의 부피도 이만큼일 것이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더욱 많다. 스스로 뚫으면서 가야할 길도 있을 것이다. 부디 더 성숙해지고 당당해지길 스스로 다짐해본다. 2층 침대 두개의 방, 나혼자다. 자는 데 먼가 가렵다. 뿌리는 모기약을 몸에 뿌렸다. 화장실에는 작은 바퀴벌레 두세마리 놀고 있다. 이제 그만 쓰고 불을 꺼야지.

 

 

041208 여행13일차

(잠) 5850원 런민다사궁위 4인실 도미토리(45원)

(식사) 점심 기차 도시락 650원 (5원)

(이동) 낙양-서안 열차 11310원(87원)

          서안역-여관 택시 1950원(15원)

(간식) 귤 260원(2원)

(기타) 놀이도구 3150원(25원)

          IC전화카드 6500원(50원)

         세탁 1300원(10원)

         인터넷 2시간 20분 1820원(14원)

.......................................................총 32,79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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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9 12:38 2004/12/09 12:38
  1. 배인정
    2004/12/09 13:13 Delete Reply Permalink

    황정일. 돈 너무 많이 쓰는거 아니야? 오백만원? 일년에?

  2. 고양이
    2004/12/10 10:21 Delete Reply Permalink

    맞아! 하루 1~2만원 쓴다고 하더만. 여유가 좀 있나부네. 여튼 좋겠다. 카메라를 잃어버렸으니 그 좋은 경치를 보긴 다 틀렸구만.. 모쪼록 건강하게 남은 여행기도 잘 쓰시고.. 난 열심히 읽을팅께.

  3. ljh1976
    2004/12/10 15:45 Delete Reply Permalink

    글게~ 많이 초과하겠는걸요~ 시간이 없어 글은 다 못보았는데..정말 좋은 풍경들 못봐서 어쩌~~

  4. 슈아
    2004/12/12 03:08 Delete Reply Permalink

    여행가면 정말 잠자리가 제일 중요하고 걱정거리죠. 그리고 돈도 많이 들고. 제가 보기엔 이 정도면 매우 선방하는 거라 생각이 드는데. 홧팅. 여행 중에 넘 돈 생각하면 그것도 나중에 보면 남는 장사가 아니더라구요. 건강이 최고니 건강 잘 돌보길.

  5. 생존확인
    2004/12/14 11:03 Delete Reply Permalink

    며칠째 그대로네...
    살아있어요?


룽먼석굴

 

1.

파카를 뒤집어쓰고 잤더니 그리 춥진 않았다. 7시 30분쯤 일어나 어제 일기를 썼다. 오늘은 룽먼석굴을 보련다. 터미널을 한바퀴 돌고 사람에게 물어 81번 버스타는 곳을 찾았다. 종점이 룽먼석룰이었다. 룽먼석굴은 494년 낙양으로 천도한 북위가 정신적인 지도원리인 불교를 이용하고 장려하기위해 지은 석굴사원이다.

 

2.

종점에 도착해서 식당을 골라 한 군데 들어갔다. 밀가루 음식은 지양하자. 볶음밥을 시키니 없다한다. 옆 테이블 아저씨가 자기가 먹는 만두 먹으라 했지만 마파두부와 대나무줄기 무침 그리고 밥을 시켰다. 세 군데서 마파두부를 사 먹었는데 다 맛이 다르다. 앞으로는 찬요리인 경체 한가지 그리고 요리 한가지, 밥 이렇게 시켜 먹어야 겠다.

 

3.

표를 사고 입장했다. 석굴 중간에는 이수강이 흐른다. 지금은 이수강의 동쪽석굴 주요석굴이 모여있는 용문산쪽을 보고 있다. 룽먼석굴은 북위시기에 지어지기 시작한 초기석굴과 당나라시기에 지어진 봉선사 이 둘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론리 책에서는 북위의 것은 초세속적인 조각상같고 당대로 와서 조각도 3차원적이고 불상의 표정자세도 자연스러워졌다한다. 과연 그럴까? 확실히 당대의 것이 세련되어있고 세부적인 묘사도 뛰어난 것 같다. 다시 표 파는 입구쪽으로 되돌아가 초기 북위의 조각을 보았다. 내 느낌으로는 초 세속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쪽 불상의 그 투박한 미소가 더 내 마음에 끌린다.

 

4.

강가는 유람선이 손님들을 부른다. 오늘은 맑은 날씨다. 햇살이 따사롭고 이수강이 잔잔하게 흐른다. 내 마음도 잔잔해진다. 내 옆 밴치에 한 가족이 와서 대화를 하고 있다. 할아버지들이 낚시를 한다. 평온하다.

 

5.

백거이라는 당대의 시인. 이 시인이 룽먼석룰을 무척 좋아했고 절 스님들과 어울렸고 여기에 묻혔다. 여기 백거이 공원이 있고 정상쯤에 무덤이 있다. 한국글씨가 섞여있는 비석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백씨와 중국백씨가 한 조상이고 어쩌고 저쩌고... . 다시 81번 버스를 탔다. 버스는 중간에 한 사원에 정차한다. 내려보았다. 이곳이 미림 즉 관우의 묘가 있는 곳이 아닐까? 사원간판은 뤄양고대미술관이라 붙었는데 정류장 이름은 미림이다. 중국사람에게 신으로 까지 숭상되는 충정과 신의의 상징 관우. 사당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보조 가방의 한쪽끝이 책의 무게에 떨어져 나갔다. 대형할인매장에서 가방하나 사자.

 

6.

가방 하나사서 차곡차곡 소지품을 새 가방에 집어넣고 헌 가방을 버렸다. 한 수석전문이라는 음식점에 들어갔다. 메뉴판에 보면 24가지 음식코스는 한 200원정도 한다. 50원짜리 수석 코스요리를 주문했다. 7가지 음식이 나왔다. 찬 경체가 하나 나머지는 탕이었다. 우선 땅콩볶음, 오이무침, 소고기편육, 쫄깃한 어떤 부위해서 냉 무침이 나왔다. 그 다음은 상차이 무채 고기채가 어우러진 탕이 나왔다. 별로 먹진 못했다. 다음은 걸죽한 탕인데 가장 먹을만했다. 고기, 녹말가루같이 먼가 쫄깃한 부위, 대나무줄기, 버섯, 소부속등등의 탕이었다. 다음은 새꼼하게 돼지고기와 마늘줄기로 구성된 탕이었다. 다음은 해삼탕, 그다음은 고리조림탕이었는데 느끼했다. 마지막으로는 고구마 맛탕국이었는데 입가심용인거 같다. 맥주하나 시켰다. 보통 병에 2-3원이다. 다 먹고 보니 먹은 티가 안난다. 내가 고기 국에는 좀 약한데 대부분 탕이니, 예전 이런 요리 24가지를 한번에 먹었다니 위대했군. 81번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041207 여행12일차

(잠) 11700원(90원)

(식사) 점심 1300원(10원)

         저녁 5460원(52원)

(이동) 버스 4번 520원(4원)

(입장) 룽먼석굴 7800원(60원)

(간식) 주스 300원(2.3원)

          튀긴 빵 130원(1원)

(기타) 가방 5070원(39원)

.....................................총 32,28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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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9 12:14 2004/12/09 12:14
  1. 한판붙자!
    2004/12/09 12:28 Delete Reply Permalink

    웅. 이거 혹시 일산의 피시방에서 쓴건 아니지요?
    헤헤~~ 농담이구요, 순조롭게 잘 다니고 있는 것 같네요.
    몸 건강히 잘 먹고 잘 자고 사람들하고도 많이 만나고 좋은 여행되세요.

  2. 내가 누구게?
    2004/12/09 19:26 Delete Reply Permalink

    일단 카메라 소매치기 당한거 축하드리구요.
    나중에 무지 후회하겠지만
    얼마 전에 몇년전에 여행갔던 사진들 정리했거든요,
    3주동안 찍은 사진이 한 400장 되던데
    그런 재미도 나름대로 쏠쏠한데...

    오늘 처음으로 블로그 들어와봤어요.
    돈 안쓴다더니 피씨방 값만해도 장난아니네.
    피씨방도 없는 동네로 다니는게 원래 형이
    계획했던 여행아닌가?

    덕분에 우리야 공짜여행하고 있으니 좋긴 하지만

    담번엔 좀더 흥미진진한 무용담이 올라오길 기대할께요.
    몸 성히 잘 다녀요.


1.

새벽에 그나마 돌던 온풍기가 꺼졌나 보다. 낮에는 더워 거추장스러운 오리털 파카가 밤에는 위력을 발휘한다. 모자부분만 따로떼어 눈 코만 내놓고 머리를 다 가리고 잤다. 일어나 간단한 세면만하고 짐을 꾸리고 내려왔다. 어제 점심먹었던 곳에서 면하나 먹자고 나오는데 저녁먹었던 집 주방장이 나와서 인사를 한다. 나도 인사를 하고 이제 뤄양으로 간다고 했다. 바로 위에 점심먹었던 주방장이 나온다. 작별인사를 했다. 으리상 둘 중의 어느 한 군데로 들어갈 수는 없는 일, 그냥 가자.

 

2.

소림사 앞에서 뤄양(낙양)가는 버스가 선다 하지만 죽 걸어 입구로 나왔다. 한 아저씨에게 뤄양(낙양)-공공치춰(버스)하며 물어보니 저쪽으로 가란다. 한 아줌마가 다가온다. 뤄양? 그렇다고 하니 15원이라며 따라오란다. 따라가다 또 한 소형버스 안내원이 뤄양 한다. 이차는 이제 나만 타면 바로 출발할 테세다. 저번 만리장성에서 기다렸던 기억이 있어 이 차에 올랐다. 먼저 나를 데려가려 했던 아줌마와 안내원이 뭐라고 싸운다. 좀 난처한느낌. 차는 바로 출발한다. 아침 숭산의 자태도 볼 만하다. 늘어서 있는 쿵푸학원들, 크고 작은 각 운동장에나와 훈련에 열중이다. 수천규모부터 십여명까지, 한 대여섯살로 되어보니는 꼬마아이도...  이곳의 규모는 어림잡아 수만명 규모이다. 이렇게 훈련생으로 있다가 경연대회에서 튀어 스타가 되는 경우가 있다 한다. 마치 미 흑인들이 NBA농구선수의 꿈을 가지듯 말이다. 스타가 안 되는 대부분의 사람은 뭘 하며 살까? 자기 직업선택은 얼마나 자율적인가? 어찌되었든 열심이다. 좀 더 지켜볼 일이다.

 

3.

이번의 차타기 선택은 그야말로 약삭빠른 선택이었다. 안내원은 10분정도가다 다른 차에게 나를 인도한다. 이 차는 내가 오던 소림사쪽으로 다시 간다. 소림사앞 공안들이 입구를 막고있다. 차는 뤄양으로 출발한다. 이 버스는 완행버스다. 여행자들에게 완행버스는 마치 여행을 위한 버스와 같다. 여기도 뤄양으로 바로 직행하는 버스들이 있다. 이 버스는 모든 정류장에 다서고 심지어는 한 1분이상도 기다려준다. 아저씨가 먼저타고 막 손짓하니 아줌마와 딸이 집에서 뛰어나온다. 사람들이 자신의 목적지 만이 아니라 그 목적지 까지의 길과 그 속의 사람들이 중요하다면 완행도 살아남을 틈새가 있을 것이다. 식당이 사랑방과 같은 소통의 공간이듯이 이 완행버스에서도 사람들은 안부를 묻고 소식을 나누는 장소이다. 여행객들은  그 공간에 함께하고 한마디 거들기도 하고 묻기도 하고... . 다시 여행에 대해 생각해본다.

 

4.

버스는 뤄양 터미널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꼭 지도를 보고 숙소를 찾아가자. 천향빈관을 찾았다. 겉보기는 깔끔한 호텔이었다. 이틀을 묵기로 했다. 가격은 욕실없는 1인실이 90원이었다. 그런데 이 방이 난방이 안되는 방이란 사실은 밤 늦게 까지는 몰랐다. 모래인 12월 8일에는 서안가는 기차를 타야한다. 뤄양 기차역으로 갔다. 뤄양가는 2층 관광기차그림을 그리고 2층자리를 1순위로 동그라미치고 해서 창구에 줄을 서고 노트를 내밀었다. 메이요우 없단다. 다시 열차시간표를 보고 경우의 수를 둘로 나누어 다른 창구에 노트를 내미니 침대칸은 없고 부드러운 좌석칸이 있단다. 좋다고 하고 돈을 지불했다. 훨씬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5.

오늘은 뤄양시내를 걷기로 했다. 지도로 숙소위치도 확인했고 기차역 반대편으로 죽 걷기로 했다. 한 작은시장이 보여 한바퀴 돌아보는데 속에 든것없는 호떡을 바로 구워낸다. 량거 두개를 달라하고 한 2원쯤을 내미니 8개를 싸주려 한다. 고개를 저어 1원을 주니 호떡 4개를 준다. 걸어가며 두개를 먹었다. 좀 싱거운데 보통 면이나 반찬 국등과 함께 먹는 거 같다. 로타리 공원이 나오고 우회전했다. 가다보면 뤄양박물관과 황성공원이 나올거야. 이 곳은 낙양의 신시가지인가 보다. 아디다스 등등의 매장과 옷 부띠크등의 상점들이 죽 늘어서 있다. 한 40분걸으니 박물관이 나온다. 뤄양은 2세기부터 6세기경까지 삼국시대와 북위의 수도였던 곳이었다. 현대에 들어 인구 3만으로 황폐해졌다가 최근 다시 300만이 넘는 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중국의 주요도시들은 그 팽창을 멈추지 않는다. 전시는 출토된 연도를 기준으로 되고 있었다. 80년대초부터 올해 출토된것까지 계속 발굴작업이 진행중이었다. 고고학자들이 실제 할 일이 많은 나라가 중국이거 같다. 당시의 앙증맞은 인형 도기들이 눈길을 끌었다.

 

6.

황성공원은 유원지로 공원만은 2원, 동물원 놀이공원까지는 15원 받고 있었다. 공원만 둘러 보기로 했다. 한 4-5미터 되는 석고 여인상이 중심이었다. 한 여성이 같은 우아한 포즈를 지으며 사진을 찍는다. 공원을 나와 낙양 옛시가지 쪽으로 가기로 했다. 오던길을 다시가서 로타리 반대방향이다. 낙양에서 꼭 먹어봐야 할 요리가 수석요리란다. 풀코스는 24가지 요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탕이 주요리란다. 한 시간 넘어 걸어가는데 위치를 잘 모르겠다. 큰 시장 골목이 나온다. 죽 들어가니 여기가 낙양의 옛 시장이다. 아마 시장이 가장 변하지 않은 곳인거 같다. 어머니와 한 6살 7살때쯤 찹살순대 먹었던 종로 4가 광장시장의 그 순대집들의 모양세, 하늘이 중간에 뚫린 구조는

얼마전 가도 그대로다. 옛 낙양의 2층 목조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 만두집에 들어가 만두한판시켰는데 먹다가 3개를 남겼다. 길거리 음식은 거의 밀가루 음식이다. 제대로 된 걸 먹자. 이집저집고르다 한 식당에 들어갔다. 소고기 철판요리와 오이무침과 밥을 시켰다. 중국에 와서 가장 맛있게 먹었던 요리였다. 가격도 적당하고... .

 

7.

시장에서 나와 돌아가는 큰 길로 나섰다. 대형 할인점이 있다. 도난때문일까? 샴푸 작은거하나 샀는데 계산을 코너별로 해서 비닐 봉지에 밀봉한다. 나갈 때는 꼭 영수증을 반쯤 찟는다. 처음에는 몰라 입구 직원의 눈총을 샀다. 다시 걸어서 로타리에 도착했다. 시간은 저녁 8시 30분이 넘어가고 있다. 한쪽에는 중국 전통 무용체조하는 50여명의 아줌마들, 한쪽은 태극권하는 몇 명, 칼 춤 추는 사람, 북춤 추는 사람등 다양하다. 남녀비율은 1대9혹은 2대8 여성이 압도적이다. 남자들은 어디로 갔나. 실제 중국 가정에서 남성들이 저녁식사를 담당하고 있다 한다. 구 시장 반찬가게에 반찬사러오는 사람은 다 남자였다.

 

8.

오늘 한 7시간정도 좀 걸은거 같다. 무단횡단도 한 십여차례. 중국엔 신호등 그냥 기다리는 차와 사람이 없다. 열에 한둘정도. 티비에선 신호를 지키자는 공익광고를 내보낸다. 하지만 사람들은 차와 그렇게 어루어지는 거 같다.

 

 

041206 여행11일차

(잠) 11700원(100원)

(식사) 점심 빵 130원(1원)

         저녁 소고기철판 3380원(26원)

(간식) 물 200원 (1.5원)

          귤 260원 (2원)

(입장) 뤄양박물관 1300원(10원)

          황성공원 260원(2원)

(기타) 샴푸 2210원(17원)

          노트 570원(4.5원)

.........................................총 20,01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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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9 10:55 2004/12/09 10:55

숭산의 고고한 자태

 

1.

새벽 5시 30분, 추위에 눈이 떠졌다. 파카를 얼굴위로 덮는다. 좀 더 자고 씻고 나와 보니 여관 앞에 아침을 파는 노점들이 죽 늘어서 있다. 한 노점에 앉았다. 푸른 빛을 띠는 쌀 죽, 짠지, 계란을 앏게 부친것등이 메뉴다. 계란이 식어서 인지 맛이 별로다. 한 남자가 조금 먹다 안먹고 가버린다. 또 한 남자가 먹더니 나에게 이게 량콰이(이원)이라 귀뜸해준다. 다 먹고 내가 2원을 내며 량콰이하니 스콰이란다. 중국 숫자발음중 4인 쓰와 10인 스~우는 구별하기 힘들다. 10원이란다. 내가 꾸어러(비싸다)며 5원을 내밀었다. 3-4명의 아저씨 아줌마가 합세해 10원 받는 거라며 내가 계란 두장 먹었지 앉나며 물러서지 않는다. 난 나름데로의 결정타를 먹였다. 베이찡-이것-먹는시늉-량콰이(2원) 결국 7원으로 합의를 보고 웃으며 짜이지엔(감사합니다 또 올게요)했다.

 

2.

정저우에서 소림사 숭산까지는 한 3시간 거리란다. 역앞에 미니버스가 있다 했는데 보이지가 않고 버스터미널의 노선표를 보니 소림사가 있다. 21원이다. 정저우란 도시는 바로 빠져나가게 생겼다. 나의 루트는 정저우-소림사 숭산- 뤄양- 서안이다. 어느덧 내가 탄 버스는 도심을 지나 고속국도로 들어선다. 소림사 48키로 1시간 남짓 거리다. 고속도로는 이렇게 시간을 단축시켜나간다. 사람들은 여기에 익숙해진다. 버스 앞쪽에 티비에서는 중국 올림픽 선수 환영쇼를 대형 운동장에서 하고 있다. 선수들이 인사하고 노래부르고 중간 중간 가수가 나오고 선수가 나올때 관객들의 반응이 대단하다. 큰 운동장이 작은 오성홍기로 가득찬다.

 

3.

창 옆은 계단식 논들이 이어진다. 난 버스 앞에서 3번째 자리에 앉았는데 내 앞의 남녀는 벌써부터 연신 부비고 난리다. 중국사람들의 애정표현이 훨씬 자연스럽고 과감하단다. 인터넷의 중국 여름 여행기를 보면 공원이나 거리에서 짧은 핫팬츠와 미니스커트가 정말 많다 한다. 여기에 눈돌리는 사람들은 모두 한국사람이라 하는데. 중국여성들은 미니스커트를 입고도 다 자전거를 탄단다. 속옷이 보이는데 머 대수냐는 식이이다. 중국사람들은 이에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하기야 어제 그 복잡했던 북경서역 대합실 한 복판에서도 키스를 하는 남녀를 보았다. 티비에서는 이제 대형 홍기가 입장한다. 크라이막스인가. 중국에서 홍기 참 많이도 본다.

 

4.

거의 도착할때가 되었나 보다. 거리마다 무술학원들이 눈에 띈다. 종점에 내리니 소림사 입구가 아니라 숭산 등산로 입구이다. 몇 명이 다가와서 어디가냐고 묻는다. 샤오린스(소림사)라고 하며 내 발을 가리키니 소림사는 여기서 걸어서는 못 간단다. 30원에 작은 봉고차를 타고 소림사로 향했다. 운전사는 연신 나에게 어디서 잘 거냐며 내가 소림사를 걸어갈 수 있는 곳(사오린스 두거두거두거)했더니 이배이(100원)에 잘 수있다. 거기서 소림사 두거두거란다. 입구에 있는 빈관은 량베이 보시(250원)이란다. 가자고 했다. 숙소는 티켓을 끊고 안쪽으로 들어와서 형성되어 있었다. 100원을 치루고 방에 들어왔더니 침대 3개짜리 방에 나 혼자 묵게 되었다. 누구의 연결로 방을 구하면 그 사람의 커미션이 있기에 싼 방을 구할 수 없다. 소위 삐끼없이 스스로 찾아가야 싼 방을 요구할 수 있다. 이게 말처럼 쉬운일이 아니다.

 

5.

방 열쇠를 받고 이제 소림사로 가 볼까하고 내려오는데 할아버지가 식사를 하고 계셨다. 나에게 밥 먹었냐는 식의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한 식당에 나를 데려간다. 그래 먹고 올라가보자. 또 책과 프린트물을 꺼내어 마파두부, 시금치데침, 밥을 시켜먹는데 주방장 남자가 관심을 보이며 옆 자리에 앉는다. 식구가 다섯이란다. 직업이 요리사 호하냐 물었는데 좋아한단다. 케이블가 둥둥둥둥 얼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내가 앉은 동그란 탁자 밖에는 산이 바로 보인다. 햇살이 따사로이 비춘다. 이제 소림사로 가봐야 겠다.

 

 

6.

인도에서온 달마대사가 9년동안 면벽수행 했다는 소림사. 우리에겐 쿵푸로 유명하고 전 세계적으로 쿵푸때문에 여행객들이 소림사를 찾는다. 소림사 안은 공사소리가 요란하다. 별다른 감흥도 없었다. 소림사 바로 위쪽 역대 소림사 승려들의 묘지가 탑으로 세워져있는 탑림이 볼 만했다. 소림사라는 이름은 숭산의 두 산줄기인 태실산과 소실산중 소실산의 기슭인 소림에 절이 세워졌기 때문이란다. 탑립을 나와 산으로 걸었다. 재미없게도 길이 포장이 되어있다. 정상은 걸어서 2키로라 하는데 사람이 안보인다. 론리중국에선 혼자서 산길을 걷지 마라고 소림사 스님들이 충고한다고 나와있다. 케이블카를 타기로 했다. 잘한일이었다. 계단으로 올라가는 길은 단조롭고 엄청나게 힘든 길이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 부근에 내려 걸어가니 음 이곳이 숭산이로군 할 정도로 가파를 벼랑과 시원한 구비구비 전망이 나타난다. 깎아지는 벼랑 중간에 난간을 죽 이어놓았다. 입장하는데 30원. 마치 반지의 제왕 1편에서 겨울 산 벼랑을 아슬하게 지나는 그런 길이었는데 여긴 난간이 있었다.

 

7.

성스러운 산이라 불리워지는 숭산, 예전 도교사람들이 목화토금수 오행에 가장 걸맞는 산을 찾다가 토가 상징하는 중심의 산이 이곳 숭산이라고 결론을 지었다한다. 그래서 숭산을 중악이라고도 부른다한다. 내 사주 오행 중 토가 제일 많기에 약간의 관심이 더해진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다 화장실에서 처음 문없는 칸막이를 보았다. 이 동네는 화장실들이 문제군 내가 묵은 숙소도 더운물도 안나오고 화장실을 가기 싫을 정도다. 저녁을 먹자. 다른 식당을 가 봐야지. 회화책과 프린트물을 꺼내어 닭고기 요리 하나 시키는데 사람들이 하나 둘 식당으로 모여든다. 중국에서 식당은 사랑방의 역할을 하는 거 같다. 일제시대의 역사극이 나오는데 당하는 사람이 한국인인가 보다 한 사람이 나에게 티비를 가리키며 한궈랜(한국인)이란다.

 

8.

한 사람이 자기는 산스류우, 한 서른 대여섯살 인데 난 스물여섯정도로 보인다. 몇 살이냐고 묻는다. 내 출생연을 종이에 쓰니 약간 놀라는 눈치다. 동갑나이인거 같다. 자기는 결혼했고 아이도 있다며 아이키를 손 대중으로 말해준다. 이 중국인가 종이에 팔괘를 그린다. 그리고 한국태극기가 팔괘를 응용한 것이라는 의미의 말을 한다. 내가 태극기를 그린다. 사방을 3 4 5 6 획의 괘의 위치가 맞았는지 모르겠다. 나도 숭산 중앙 토 등등 좀 아는 척을 했고, 그는 지도에서 남한과 북한을 가리키며 뭐하고 한다. 알아듣지 못했는데 하나가 되어야 한다 말일까? 내가 무겁게 가져간 론리플레닛 중국, 중국 회화책, 기행문, 프린트등이 중국사람들을 만나는데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좋고 세련된 식당보다 허름한 일반 동네 식당에 들어가면 쉽게 중국사람과 인사하고 대화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대화에서 나의 회화수준이 드러나고 안타까운 면이 있다. 첫 여행에 이정도가 어딘가. 주방장에게 유일하게 남아있는 한국돈 100원 동전을 주었다. 몇 명에게 가져간 카피믹스도 주었다. 

 

9.

소림사에 밤이 저문다. 머리도 못감도 샤워도 못했다. 뭐 하루 이틀 안할 수도 있지...

 

 

041205 여행10일차

(잠) 13000원(100원)

(식사) 아침 910원(7원)

          점심 2600원(20원)

         저녁 술 1950원(15원)

               식사 3640원(28원)

(이동) 정저우-숭산 버스 2730원(21원)

         숭산 - 소림사 봉고차 3900원(30원)

(입장) 소림사 숭산 입장료 5200원(40원)

         숭산케이블카 왕복 7800원(60원)

         숭산 절벽 난간입장료 3900원(30원)

(간식) 고구마 520원(4원)

          물 260원(2원)
..................................총 46,41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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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9 09:38 2004/12/09 09:38

정저우에서 호객하는 아줌마에게 이끌려 차길 앞 침대방에 묵었다. 영수증. 긁어서 뭐가 나오면 할인도 해준다하는데 꽝이었다

 

1.

오늘 첫 여행지인 북경을 떠난다. 내가 갈 정저우, 뤄양, 카이펑은 명 청이전 중국 제 나라의 주요 수도 였던 곳이다. 우리가 삼국지에서 아는 낙양이 뤄양이다. 11시쯤 숙소에 나와 깔끔한 중국식 패스트푸드 밥집에 겨우 한 자리가 나 한 두시간 보냈다. 많은 사람들이 식당으로 모여든다. 특이한점은 앞에 딴 사람이 앉았든 말든 자기가 한 자리라도 나면 앉는다는 것인데 중국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모르는 사람과 잘 앉아있는다. 북경서역 가는 버스를 1원 주고 탔다. 이 버스의 종점이 북경서역인데 겉보기에도 어마어마한 크기다. 중국 중남부의 주요도시의 출발지점이 북경서역인데 안에 들어가보니 사람들의 물결이 정말 인산인해다.

 

2.

내가 타는 열차는 6번 홈에서 출발한다. 6번 홈 그 넓은 대기소에 앉을 자리가 없다. 그래서 조금 한가한 9번 홈으로 가서 자리를 하고 앉았다. 난 침대칸이라 지정 좌석이 있지만 양손에 큰 푸대자루에 짐을 한가득 넣고 가는 사람들은 입석인가 보다. 충칭가는 기차 번호가 뜨자 벌써부터 사람들이 줄을 빼곡히 서기 시작한다. 지금은 2시 충칭가는 기차는 4시 30분 출발인데 벌써 저렇게 앉을 자리도 없이 줄을 선다. 한 여성 역무원이 소리를 지른다. 아마 지금부터 줄을 서면 통로가 막히고 어떻게 하냐는 거다. 사람들은 웃기도 하고 거동이 없다. 전족으로 상징되는 중국 근대 여성 그때는 한국보다 여성 비하가 더 했으면 더 했을 시기였다. 60년대 말 문화대혁명 이후 확 바뀌었다 한다. 출발시간이 15시 17분인데 6번 홈으로 가보니 15시 43분에 출발한단다.

 

3.

열차가 달린다. 서남쪽 300여 키로 정저우가 도착지점이다. 서울에서 부산 어릴적 기차를 떠올려본다. 그땐 그 거리가 굉장히 멀게 느껴졌었다. 난 3층 침대의 2층 칸이다. 사람들은 복도 옆 창가 작은 테이블에 앉았다가 다시 침대에 누웠다가 한다. 2층에 누우니 발이 복도로 빠져 나온다. 대각선으로 몸을 누이고 침대에서 창가를 바라본다. 저쪽창이 서쪽, 내가 떠나온 곳. 24시간 배를 타고 다시 총알택시로 북경으로 다시 서남쪽으로 내려간다. 이곳이 위도상으로 목포쯤될까? 눈을 감고 머리속에 지구본을 떠올린다. 내가 이만큼 왔어.

 

4.

정저우에 도착했다. 깜깜한 밤, 가려고 했던 여관을 찾을 수 없다. 계속 달라붙는 호객하는 사람들. 하루밤에 100원, 한 사람을 따라갔다. 공교롭게 큰 도로 앞이다. 창가로 바람이 숭숭들어온다. 다행이 화장실은 안에있고 더운 물이 나온다. 정저우의 도로가에서 잠을 청했다.

 

041204 여행9일차

(잠) 13000원(100원)

(식사) 점심 1950원(15원)

(이동) 북경서역- 정저우 20600원(159원)

          버스 130원(1원)

(간식) 물 과자 감 말린것 1630원(12.5원)

...........................................총 37,31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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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9 09:35 2004/12/09 09:35
  1. 자일리톨
    2004/12/28 13:09 Delete Reply Permalink

    중국은 은근히 차비가 비싸군요. 전통적인 먹거리는 저렴한 편인 것 같은데, 차비는 거의 남한수준인 것 같네요. 암튼 기록해주시는 물가는 나중에 중국여행을 할 때 큰 도움이 될 듯 싶네요.


1.

오늘은 유스호스텔의 마지막 밤이다.  기차역에서 표를 끊어야 한다.  시안으로 바로 갈까 정저우로 가서 거쳐서 갈까. 정저우로 가기로 했다. 어제 밤 광저우 중국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가 아침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다. 투마로우 그리고 아침이란 중국 간체자 손으로 찍고 먹는 시늉을 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같은 방을 쓰던 멕시코 친구는 아침일찍 중국 남부로 떠났다. 멕시코 제2의 도시인 과달라다하에 살고 중국 남쪽에서 스터디를 한다나, 내가 어제 밤 대화중에 세계 지도를 펴보이며 17세기에는 텍사스와 캘리포니아가 멕시코 땅이 아니었느냐, 맥시코 치아파스 주 지역을 가리키며 히어 플레이스 사파티스타 라고 하니 놀라는 눈치다. 나보고 그걸 어떻게 아냐고 하길레 그냥 인터레스팅 흥미로워서라도 대답했다.

 

2.

아침 광저우 친구와 근처 식당에 나갔다. 서민들의 식당에 아침메뉴는 정해져 있었다. 자오쓰 만두와 밀가루 꽈베기, 찐 계란 2개 그리고 나는 순두부국 광저우 친구는 스프 비슷한 걸 먹었다. 옆테이블에서 상차이를 넣은 만두국을 보고 내가 상차이 하니 그가 상차이 좋아하냐고 묻는다. 내가 한 두 번 먹어봤다(원 투 이트). 이 상차이 만두국을 하나 더 시켰다. 유쾌하게 아침식사를 먹고 계산하려 하니 그가 내겠단다. 모두 780원(6위안)이 나왔다.  

 

3.

광저우 친구와 헤어지고 북경역으로 갔다.  한바퀴 죽 돌아보고 입구로 들어가 2층을 아무리 돌아도 외국인 전용 창구가 안보인다. 그래서 일반 표파는데서 사보자. 8위안을 주고 기차 시간표 책을 하나사고 날짜 시간 가는 방향, 침대 하 등을 노트에 적어 1층에 내려오니 외국인 창구가 보인다. 중국 기차 침대 상중하중 하단은 없단다. 중간 침대를 선택하고 표를 끊었다. 이제 북경을 떠날 준비는 끝났다.

 

4.

지도를 보고 전철로 천안서문역에 내렸다. 중국공산당 인민대회당으로 갔다. 입구를 찾아 헤메다가 찾았다. 입장료 30위안, 사진을 찍어도 좋지만 짐은 보관해야 한단다. 2위안. 큰 대회장은 연대대강당 정도로 보였는데 책에서 보니 좌석이 만석이란다. 대회당 한 의자에 앉았다. 천장에는 소용돌이 치는 장식과 그 중간에 붉은 별이 빛나고 있었다. 천안문으로 들어갔다. 천안문앞에 붙어있는 모택동 사진을 뒤로하고 문을 통과하니 자금성 입구가 나온다. 누가 중국 10년의 역사를 보려면 상하이를 가고, 600년 역사를 보려면 북경을 둘러보고, 3000년 역사를 보려면 서안으로 가라했는데 명 청 600년여의 도읍지 황제의 궁궐이었던 곳이 자금성이다. 입장료 40위안, 전자한글설명기 빌리는데 40위안이었다. 설명기를 귀에 꼽고 자금성으로 들어갔다. 건물 건물마다 전자감응으로 설명이 자동으로 나온다. 이 걸로 전체를 둘러보려면 한 3시간 코스란다. 나중에 한 한국 여행사에서 한 30명의 한국인들이 보인다. 나도 옆에 따라다니며 조선족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좀 더 이해가 된다.

 

 

자금성 입장권. 앞에 보이는 계단의 돌들이 무거운 그 돌이다

 

5.

특히 가장 큰 성의 지반과 계단을 50키로 떨어진 곳의 돌을 가져다 썼는데 무게로 따지면 수십톤의 돌을 옮기는데 겨울에 바닥에 물을 뿌려 얼게 만들고 수천명이 밧줄로 돌을 끌었는데 50키로 가는데 26일이 걸렸단다. 황제가 거하는 침소는 같은 침대가 스물몇개가 있어 모두 커튼을 쳐 두어 자객에 대비했다고 한다. 한 황제는 너무 시녀들은 못살게 굴어 17명의 시녀가 황제가 잠들때 목에 밧줄을 묶어 졸랐는데 매듭이 잘 못 풀리게 되어 황제가 비명을 지르고 경호병에 의해 바로 17명의 궁녀가 난자당한 사건등등...

 

6.

자금성 북쪽으로 나와 서쪽으로 걸으니 한 공원이 나온다. 알고보니 북해공원이었다. 황제의 놀이터였던 북해공원 이 인공호수에 큰 배를 띄워 놀았다한다. 현재는 남녀의 데이트 코스로 유명하다는데 한겨울에는 호수에서 스케이트도 탄단다. 공원 꼭데기 라마교 형식의 묘한 느낌의 탑이 인상적이다. 공원을 나와 자금성 서쪽으로 죽 걸었다. 2원을 주고 중국식 햄버거 하나 사먹고 젊은이들의 거리인 시먼역까지 걸어갔다. 중국어영화하나 볼까 하다. 아냐 경극을 보자하며 가이드 북을 보니 전문안 시장 통에 있다. 또 한 전철역 3정거장을 걸어 시장통을 헤메는데 안 보인다. 이러다 일을 냈다. 한 손에 작은 배낭메고 한 손에 론리플레닛에 나와있는 지도 보며 헤메는 나의 모습이 딱 표적이었나 보다. 먼가 이상하고 쏴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는데 벌써 없다. 내 파카 호주머니의 카메라도 없어지고...

 

7.

차라리 홀가분해 졌다. 또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어디 글에서 여행가서 소지품 하나 잃어버리는게 여행의 묘미라면 묘미다라는 글도 읽었겠다 오늘 자금성에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나 자신이 별로 였었다. 내 마음속에 상을 담아야지 메모리 카드에 담으면 뭐하나. 바로 옆에 카메라 파는 골목이 나왔지만 카메라를 사지 않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왔다. 두명의 룸메이트는 이젠 없다. 샤워를 하고 조금 있으니 여자 두명이 들어온다. 한 명은 일본여성인데 직장다니다 3일간 휴가를 내고 오는 거란다. 영어를 잘하는 싱가포르여성은 남편 가족 전체가 모래 북경으로 오는데 먼저 왔단다. 내일을 쇼핑을 한다고 한다. 자기는 스키를 좋아한다고 한국에도 스키장 있냐고 묻는다. 있다고 대답했다. 일본 여성과 대화를 하다 저녁을 안먹었단다. 나도 변변하게 먹은게없어 같이 오늘 아침 광저우 친구와 갔던 곳으로 갔다. 버섯과 채소를 담백하게 볶은 요리, 탕수육 비슷한것에 다가 밥을 먹었다. 일본여성은 자기는 일이 재미 없단다. 그래서 내가 여행이란 돌아보는것 돌아가서 일을 재미있게 하기 위한 것이란 말을 아주 어렵게 영어로 했다. 오늘은 함께 식사를 하는 날이로군. 게다가 영어도 써먹고... . 숙소로 돌아와 각자의 침대에서 자려 하는데 일본인 여성이 그 자리에서 옷을 그냥 갈아입는다. 별 스스럼없이. 난 약간 게면쩍었는데 그 건 내가 살던곳에서의 관념인가?

 

041203 여행8일차

잠 : 7800원(60원)

식사 : 3300원(25원)

간식 : 물 260원(2원)

         햄버거 260원(2원)

         중국거리음식 - 큰 판에 밀가루 앏게 부치고 그위에 계란 풀고 다익으로 한번뒤집어 양념과 상차이 풀을 넣어 2 3 번 접어 토스트 같이 먹는 음식 260원(2원)

이동 : 지하철 2번 780원(6원)

                   1번 390원(3원)

입장 : 인민대회당 3900원(30원)

             짐보관료 260원(2원)

         자금성입장료 6500원(50원)

         전자한글해설기 5200원(40원)

.....................................................총 2894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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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8 23:27 2004/12/08 23:27

* 서안에 도착해서 숙소 인터넷으로 치는 것임

 

1. 그동안 써 놓은 여행일기와 사진을 한 번 올려볼까. 일단 한국 유학생 거리인 오도구 거리에 전철 타고 갔다. 여기서 방법을 물어보자. 오도구 전철역 바로 옆 오픈한지 얼마안되는 한국유학생이 주고객인 피씨방이었다. 가격은 한시간에 8원 즉 1000원 돈이다. 이곳은 한국과 물가가 거의 비슷하다 한다. 보통 중국인 왕빠는 시간당 2-3원 정도라는데 거기로 가봐야 겠다. 한국인 직원에게 제어판에서 한글쓰기 방법을 배웠다. 그런데 만만치 않을 수가 있다고 한다. 컴에 따라서 윈도우 프로그램 씨디를 넣으라는 컴도 있다 했다. 오도구의 피씨방이지만 한국에 비하면 예전 전화선으로 피씨통신하는 속도다. 사진 하나올리는데 왜 이처럼 더딘지...

 

2. 저녁이 되었다. 3위안짜리 중국 사발면을 하나 사먹었다. 여기서 파는 신라면큰사발은 5원이었다. 10시 30분정도 어제까지 올리기를 끝내고 계산하니 모두 90위안이 나왔다. 아니 11시간을 했단말인가? 전철역으로 가니 문이 닫혀 있었다. 방향감각은 세웠겠다 베이징 2호선 가까운 전철역으로 택시를 탔다. 택시는 10원 부터 기본요금이 시작되어 14원이 나왔다. 전철을 타고 숙소에 도착했다.

 

 

 

041204 여행 7일차

잠 : 7800원(60위안)

식사 : 아침 만두 순두부국 390원(3위안)

         저녁 사발면 390원(3위안)

간식 : 중국식 검은 빵 350원(2.6위안)

이동 : 택시 1820원 (14위안)

         지하철 2구역 650원(5위안)

                   1구역 390원(3위안)

기타 : 피씨방 11700원(90위안)

     ..........................................총 2349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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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8 22:41 2004/12/08 22:41

1

바램 : 중국 사회주의자와 문화혁명에 대해 논하고 싶다

현재 : 물건 살때 얼만지 겨우 알아 듣는다

 

2

5인실 도미토리 208호 방에는 나말고 두 사람이 묵고 있다.

한 사람은 맥시코 젊은 친구, 또 한사람은 중국 남쪽인 광저우에서 의류디자인을 전공하고 지금은 의류세일즈 일에 뛰어든 친구다. 맥시코 친구는 처음 만날때 영어로 몇 마디 나누었다. 나보다 영어를 훨씬 잘하는 거 같다. 중국인 친구는 나보다 훨씬 영어를 못한다. 거의 못한다고 봐야겠지

마치 내가 바둑 7급이라면 그는 9급정도 되는 거 같다. 하지만 그는 중국인이라 중국어 주로 하며 영어를 섞어서 겨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중국인 친구에게 좀 난위도 있게 꿈이 머냐고 물어보았다. dream이란 표현을 썻더니 머리 속을 손으로 가리킨다. 옥편을 찾아가며 전망 등등을 쓰니 겨우 이해하는 눈치다.

어제 밤 빨래거리를 10위안에 맏기고 인터넷으로 블로그에 일기를 올리려 했는데 하여튼 한국어 쓰기를 시도했는데 실패했다. 외국에서 인터넷 하는 여러방법을 써서 갔지만 소용이없다.

오도구 한인 피씨방에서 방법을 알아야겠다.

 

3

오늘은 만리장성에 오르자.

전문쪽 관광버스는 50위안에 기념품가게에 들려야 한다. 일반버스타고 가기로 했다.

919번 버스가 있는 전철역에 도착했다. 오른쪽으로 두번 돌면 919번 정류장이 나온다고 했는데 안나온다. 돌아가려 했는데 저쪽편으로 호수 같은 것이 보인다. 죽 걸어서 들어가보니 유원지인가 보다. 소박하지만 경치가 멋졌다. 몇 명 아저씨 아줌마들이 부채춤을 배우고 있다. 우아해 보였다.







 

4

아 처음에 보았던 그 성이로구나

이제 위치에 대한 감을 잡았다. 로타리 근방에 서민 식당이 보여 들어갔다. 1원짜리 순두부 고기국과 깨찰빵 두개를 주문했다. 모두 2위안 2마오(280원) 순두부는 언제 먹어도 맛있다.

깨찰빵 하나를 들고 919번 버스를 타려고 하자 차장 남자가 그거 어디서 샀나며 농담같은 걸 건네는거 같은데 잘 못 알아들었다. 그냥 만리장성 사진을 가리켰다. 차가 출발했다. 외국인은 나혼자 였다. 그 동안 다니면서 한국인을 만난적이 없다. 한편으론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한편으론 의아해진다.  


 

5

만리장성 입구인 빠다링에 못내릴 뻔 했다. 탄 사람들 대부분이 내릴 거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한 5명정도. 40위안을 주고 티켓을 끊었다. 건전지를 사러 한 상점에 들렀다. 두라셀 건전지 4개를 가리켰다. 이 아줌마가 120위안이라고 전자계산기에 숫자를 찍어준다. 120위안이면 15000이 넘는 돈이다. 건전지 4개에. 결국 조금 질 낮은 도시바 건전지 4개를 처음 40위안인가 60위안 부르는것은 10위안(1300원)에 샀다.

만리장성에 올랐다. 진시황 시절 만리장성이 있고 후대에서의 만리장성이 있는데 보통 빠다링을 거쳐 오르는 만리장성은 후대의 것이다.

벽을 쌓는 일. 역대 중국왕조들은 무얼 그리 쌓을 일이 많았을까?

하기야 장성이 막는 역할 만이 아니라 성위의 길의 물자의 유통로가 되기도 했다지만 동원된 인부들은 추위와 싸우며 이 벽을 만들었을 것이다.



 

 

6

바닥에 앉아 중국 기행책과 론리 플레닛 중국을 읽고 있는데 한 중국인이 책에 관심을 보인다

그래서 책을 보여주며 같이 발음도 해 보았다. 한국인이라 하자 금세 3 4명이 모인다. 아마 청소하는 역할의 노동자들인가 보다. 회화책에서 직업이란 단어가 나와 빗자루를 들고있는 사람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주었다. 머쓱하며 웃는다. 그들과 헤어지고 조금 있으니 한국말하는 소리가 뒤에서 들여온다.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니 여수 모 사업장에서 왔고 우수사원 견학이라 하는데 누가 또 뒤에서 웃는다. 다들 사진 박을려고 정신이없다. 전무님 앞으로 한발 나오시고 위원장님 같이 서시고 오호라 이게 뭔가 혹시 이곳이 노사화합의 자리가 되려는 걸까?


내가 보고 있는 책에 관심보인 중국인


 

7

3시쯤 내려와서 버스 정류장으로 왔다.

919번 버스는 다양한 크기의 버스가 있고 타고 온 녹색버스가 고속도로노선이고 작은 버스들의 소로 (작은길)이란 표말을 붙이고 있었다. 금방 출발한다 베이징 간다는 말에 17인승 919번 버스를 탓다. 역시나 한 40분을 기다리고 사람들은 거의 태운 다음에야 출발한다. 가다가 걸어가는 사람만 보면 흥정을 한다. 그래서 건설일하는 노동자 5명이 타고 4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에 5명이 앉았다. 고속도로가 뚫린뒤의 작은 도로, 7위안에 고속도로를 달리는 쾌적한 919 녹색버스와 2배나 시간이 걸리고 발을 뻗기 힘든 10위안 짜리의 작은 919 버스. 벌써 사람들은 작은 919버스를 타지않으려고 했다. 잘 모르는 사람이 한번 탈까. 젊은 운전사와 차장의 상술은 놀라울 정도다.

40분을 기다리게 하는데 가만두지 않는다. 마치 바로 갈 것처럼 수영복 입은 여성들이 그냥 음악에 춤을 추는 비디오 cd를 틀어주고 또 갈 거처럼...

한 3분의 2쯤 갔을까 차가 선다. 앤진 과열인거 갔다. 이게 또 무슨 일인가? 이제는 덤덤하다. 벌써 며칠 지났다고 여유가 생긴걸까. 다행이 큰 919가 와서 차장이 나와 한 학생과 한 묶음으로 둘이 5위안내라고 한다. 그래서 3시간만에 좀점이 성앞에 도착했다. 아침에 먹던 식당에 다시가 소고기국물 면 을 3위안에 밀가루 부침을 8마오에 사 먹었다.

숙소로 들어가기전에 북경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인 왕푸징거리에 들리고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는 시먼거리도 구경했다.

또 하루가 지나고 있다.


왕푸징거리


유명해진 노점거리

 

 

041201 여행6일차

 

(잠)

유스호스텔 7800원(60위안)

 

(식사)

아침 280원(2위안 20전)

저녁 480원(3위안 80전)

 

(간식)

일본식 꼬치 520원(4위안)

물 3병 780원(6위안)

귤 4개 240원(2위안)

 

(이동, 입장)

만리장성 입장 5200원(40위안)

버스 2200원(17위안)

지하철  1170원 (9위안)

 

(기타)

건전지 12개 10원12원8원 3900원(30위안)

 

...........................................................총 2457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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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2 22:21 2004/12/02 22:21
  1. 슈아
    2004/12/03 00:01 Delete Reply Permalink

    저도 99년에 중국에 갔었는데..그때가 막 생각이 나네요. 중국어는 정말 아무리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몰라..그냥 바디랭귀지로 모든 것을 해결했어요. 가끔 한자도 써가면서 그래도 역시 통하더라구요. 하하...정말 가고 싶네.

  2. 허경
    2004/12/04 03:39 Delete Reply Permalink

    허성호하고 노힘사무실에서 작업하고 있어요. 황정일의 퀵보드가 보이네.
    지금은 느릿느릿 대륙을 걷는 황정일, 그의 '퀵'보드라...
    여행 중 종종 만납시다.

  3. 나름
    2004/12/04 11:46 Delete Reply Permalink

    형! 웬일이야! 생각보다 빨리, 게다가 자세하게 올리고 있네!
    사진은 안찍는다더니 결국 찍고있군! 좋아! 굳럭!

  4. 사막은
    2004/12/05 02:56 Delete Reply Permalink

    음 만리장성은 카메라를 들이대기만 해도 훌륭하군..
    그 만두가 질리는 날이 곧 올거같은데 메뉴 좀 바꾸지. 암튼 참 잘 먹고 다니는군.. 건강하시고

  5. ljh1976
    2004/12/06 22:44 Delete Reply Permalink

    주식보다 비싼 간식을 먹었네~사진안찍는다며 찍었구만요~암튼 건강하게 여행잘해요~~

  6. 허성호
    2004/12/07 23:13 Delete Reply Permalink

    가니까 좋냐?
    황정일답지 않군!

  7. 자일리톨
    2004/12/24 17:59 Delete Reply Permalink

    핫.. 오늘은 여기까지...
    중국여행기 너무 재미나요.
    내일 또 읽어야지.:)


1

8시에 일어났다.

9시경 카운터로 내려오니 영수증을 보여달란다. 숙박의 경우 영수증을 잘 보관해야 할 것 같다.

배낭을 짊어매고 어제 아침 만두먹었던 식당으로 다시 갔다. 나를 알아보고 어제 먹었던 만두 한 판을 그냥 내 준다. 만두 먹을 거 아니었는데... 일단 먹었다. 주변을 쳐다보다 뒷 사람이 먹고 있는 계란국을 주문했다. 이거(중국말로 저거) 계란국에 풀이 많이 들어있는데 먹어보니 이게 상차이란 풀인거 같다. 유학생 말로는 나프탈랜 맛이다. 여행팁에서도 중국음식시킬때 상차이를 빼고 주문해라 하는데 꼭 극복해보고 싶었다. 생각을 많이 해서인지 먹을 만했다. 독특한 향

상차이. 보통 서민들이 국에 같이 먹는 깨찰빵도 하나 먹었다. 만두 2.5위안 계란국 2위안 빵 5마오 모두해서 5위안(650원)이었다.


오도구 지하철역

 

2

오도구 지하철역으로 왔다. 내가 가려는 전문역을 가리켰더니 5원이란다. 서울지하철로 치면 2구역이다. 최근에 만들어진 12호선을 타고 다시 2호선을 갈아탈때 입구를 빠져나와 다시 들어가는 방식이라 약간 애를 먹었지만 지하철 타기는 쉽다. 전문쪽의 방을 구할까하다 거긴 한국사람이 너무 많아 좀 더 가서 베이징 유스호스텔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가까운 전철역에 내려 걸었는데

안보인다. 다시 돌아가서 위치를 확인해보니 으리으리한 베이징 호텔 위치가 거기다. 호텔 카운터로가 유스호스텔 한문을 가리키니 가까운 곳에 있다며 소개 팜플렛을 준다. 다시 카운터에가 도미토리(여러명이 한방에 묶는 절약형 숙소) 방이 있는지 전화해달라고 했다. 영어로 했다.

방이 있다고 했고 40분뒤에 차가 온다고 한다. 차가 왔는데 그냥 승용차다.

하루에 60위안. 한국돈으로 7800원이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4일을 묵기로하고 돈을 치뤘다. 키보증금 100위안도 냈다. 방에 들어가니 2층침대2개 1층침대 1개가 있고 그런데로 잘 만했다.


4일간 묵게 될 베이징 유스호스텔 입구

 

3

짐을 풀고 천안문 광장 쪽으로 걸어갔다. 전철로 3정거장정도의 거리다. 이쯤이야

환전한 1000위안이 별로 남지않아 중국은행에 들어가 처음엔 여행자수표 100달러를 바꾸려 대기표를 들고 앉아 있으니 내 차례가 올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같다. 여기서 100달러는 아무것도 아닌 거 같다. 사람들이 100위안(13000원)짜리 지폐뭉치를 한 손으로 못들정도로 들고 다닌다. 이화원앞에서 실패했던 자동인출기계에 다시 삼성 아멕스 카드를 집어넣었다. 돈을 뽑았다.

알고보니 최저 한도가 1200위안에서 2500위안으로 오른것이다. 2500위안이면 30만원이 조금 넘는 돈이다. 조심해야지. 돈을 4군데 분산시켜 다니고 있다.

 

위안화 돈 뽑은 중국은행

 

4

전문 즉 천안문 광장앞에 도착했다. 우선 전문 맞은편쪽 상가에서 멀 좀 먹어야지하며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유명한 재래시장 골목이다 큰 길에는 전취덕 본점이있다. 오리통찜구이 요리점이다.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골목 안 끝자락에 마음에 드는 곳으로 들어갔다. 어린 소저(메뉴판들고 서빙보는 여성)에게 한국사람이라 했더니 한국사람을 처음 만난다는 느낌으로 놀랜다. 주방에서 남자 둘이 튀어 나오고 인사를 했다.

오는은 채식으로 먹자. 프린트해온 자료를 보며 감자채쓸어서 볶다가 식초에 버무린 요리 4위안

마파두부 7위안 밥 1위안 칭다오 맥주 3위안 총 15위안(1950원)어치를 시켰다.

주방일 보는 남자가 내가 보더 회화 책에 관심을 보이며 좀 보잔다. 할머니 아빠 엄마 아버지 발음을 해 주었다. 내가 할머니 하며 옆 테이블 할머니를 가리키니 모두 웃으며 할머니라 한다.

가지고 있는 아몬드 초콜릿을 몇개 내밀었다. 한국거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하니 놀라며 누군가에게 가져다주고 사진도 찍었다. 유쾌한 식사였다.





 

5

식당을 나와 천안문 광장으로 걸었다.

광장 깃대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 유명하다는 시골에서 한번 북경에와 보는게 소원이라는 국기하강식을 보러 모인사람들이다. 사람들의 모습은 설레임에 차있는 듯 하다. 그 옆에는 사진찍어 코팅해주는 상인, 기념품 파는 상인들이 분주하다. 이윽고 저 주석궁 쪽에서 있는 폼없는 폼 다잡으며 수십명의 기수가 한 치의 스탭 오차없이 걸어온다. 10차선에 가까운 앞길도 잠시통제다. 기수들이 깃발앞으로 정렬하고 다시 몇 명의 기수가 깃대 앞으로 온다. 오성홍기가 서서히 내려온다. 한 기수가 그 동안 모든 폼을 합쳐놓을 만한 폼으로 깃발을 접어나간다.

기수들은 접은 깃발은 들고 다시 주석궁 쪽으로 향한다. 기수들의 모습이 사라질 무렵 사람들은 흩어지기 시작한다.

어제 본 소학교에서의 국기계양식, 오늘 본 천안문 광장에서의 국기하강식.

무엇일까? 전통적인 중국 왕조문화의 잔재인가. 삶의 불안함을 기대감으로 표현하는걸까. 아님 오성홍기의 정신을 새기는 걸까?

 







 

041130일 쓴 돈

(잠)

베이징 유스호스텔 7800원(60위안)

 

(식사)

아침 650원(5위안)

저녁 1950원(15위안)

 

(간식)

물 260원(2위안)

주스 580원(4.5위안)

 

(이동)

지하철 2번 1040원(8위안)

................................................총 1228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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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2 20:46 2004/12/02 20:46
  1. 슈아
    2004/12/03 00:06 Delete Reply Permalink

    향차이 좀 낯설죠. 그래도 나중엔 그거 안 넣으면 음식 맛이 안나서 그냥 넣어서 먹었어요. 익숙해지면 나름대로 맛나죠.



 여관을 나와 서쪽으로 걸었다

 

1

이 여관에서 하루를 더 묵기로 했다.

이 곳은 북경의 북쪽으로 북경대 청화대와 황제의 휴양지 원명원 이화원을 도보로 왕복할 수 있다. 7시에 눈을 떳다. 우풍때문에 기침은 좀 나지만 속도 괜찮고 한 20키로 걷는 것은 도보 여행준비 한 답시고 일산에서 서울역까지 한 7시간 걸어본적도 있으니 문제없을 것 같다.

회화 책을 들고 카운터로 가서 단어 짚어주며 하루 더 연장하겠다고 했다. 알아듣고 숙박비를 치루었다.

 

2

여관을 나와 이화원쪽인 서쪽방향으로 쭉 걸으니 철길이 나오고 갈레길이 나왔다. 왼쪽은 큰 건물 길 오른쪽은 옛 길 이다. 오른쪽을 선택했다. 좀 가다보면 철길넘어가는 길이 나오겠지. 결국 안나왔다. 왼쪽 편으로 죽 늘어선 중국 식당이 보였다. 어디서 아침을 먹을까? 몇 군데 망설이다

한 군데 들어갔다. 입구에 김이 모락모락나는 만두가 먹음직했다. 들어가며 만두를 손으로 가리키자 한 통 가져다준다.

아 맛있다.

어제 먹었던 만두와 비교할 수 없이 포근한 입의 감촉이 좋다. 한 열두개쯤 될까

다 먹고 소액 뭉치돈을 꺼내 아줌마를 처다보니 얼 콰이 ~ 라 한다. 아 2위안

1위안짜리 2개를 내미니 아니란다. 5마오를 더 달라는 거였다.

나 한국사람 (워 한 꿔 랜) 이라 말하고 5마오 더 주고 짜이지앤(다시 또 올게요)라 말하니

밝게 웃는다. 누가 중국사람들을 무뚝뚝하다 했는가 

 

2위안 5마오(330원)짜리 맛있는 만두



만두먹었던 중국식당

 

3

식당을 나와 죽 걸었다.

길의 왼쪽은 옛 변두리 지역, 길의 오른쪽은 북경과학기술대학 신축건물, 아파드등 길의 좌우가 확연히 구분되어졌다. 계속되는 자전거 행렬들 식당들, 변두리 지역 중간중간에 골목길에는 작은 시장 골목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의 70년대 재래시장과 같은 풍경들...

좀 더 걷다보니 중국 공안경찰들이 재래길쪽 가로정비를 한답시고 식당 밖으로 나온 튀김 솥 등을 식당안으로 넣으라고 한다. 40분정도 걸었을까

다시 되돌아가기로 했다.


변두리쪽 지역의 큰 골목길

 

4

오다가 한 골목끝에 아이들이 모여있는 광경이 보였다.

들어가보니 한 소학교의 아침국민의례 같은 거였다. 공산당가 일까 아이들모두가 손을 머리위에 들고 오성홍기 계양식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저 다섯개의 별중 어느별을 꿈꾸고 있을까? 소자산가를 아니 독점대자산가를 꿈꾸지는 않을까?

소학교에서 옆쪽길로 가다가 한 5살쯤 될까 장난감 플라스틱 칼을 가진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장난기 어린 얼굴로 나에게 칼을 겨누었다. 나도 팔을 죽 뻗으며 지나쳤다. 몇 초 뒤 다시 뒤돌아보니 아이는 나를 쫒아오다가 다시 되돌아가는 모습이었다. 아쉬움이 밀려왔다.

가지고 있는 아몬드 초콜릿도 주고 눈을 더 마주치고 갈 걸...


돌아오던 길 한 골목 소학교가 보인다

 


오성홍기에 대한 경례

 

5

다시 큰 길가로 나왔다.

아까 그 공안들 내가 2원 5마오에 맛있게 사먹었던 그 집앞 근처까지 왔나 보다. 서둘러 밖에 내놓았던 책상을 들이는 당황하는 아줌마 얼굴이 보인다. 공안 3명이 봉고차에 내려 그 식당으로 향한다. 미처 치우지 못한 화로를 공안 하나가 걷어찬다. 일글어지는 아줌마의 얼굴. 나에게 환학게 미소지어주던 그 아줌마였다.

통제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 왼쪽 옛날 집들 그 집들을 부시고 아마 고층 빌딩을 짓겠지 몇 년안으로 분명히 일어날 일이겠지. 가로정비는 사전 훈련 정지작업 이겠지.

길 오른쪽 지역의 미래는 분명 흥해보인다.

길 왼쪽 지역의 미래는 어두워지고 있다.

 

 

이화원가는 736번 버스

 

6

다시 갈림길에서

왼쪽 방향으로 트니 중국상업은행이 보였다.

ATM 자동 인출기에서 돈을 뽑으러 들어갔다. 여기는 내국인용이라 안되었다.

계속 걸을까 하다. 일단 이화원까지 버스타고 가서 거기서 걸어오자.

여관 카운터에서 375번을 타라해서 탔다. 그래서 론리플레닛의 이화원 지도를 가리키니

안간단다. 이럴 수가. 나중에 알고보니 원명원까지만 가는 버스였다.

차장은 1원을 달라고 하면서 영수증에 726이라는 숫자를 써준다

청화대학 서문쪽 정류장에서 726번을 탓다. 차장에게 이화원이라 쓴 중국어 간체자를 쓴 수첩을 보여주고 5위안을 내미니 고개를 끄덕이며 영수증과 4원을 거슬러 준다.

이화원입구에 도착했다.

이화원의 길이가 728미터라는 장랑. 복도의 천장과 난간에는 각기다른 그림들이 그려져있다.

 

7

론리 플레닛 이화원설명에는 728미터의 장량이 최고의 볼거리라 한다. 일본의 사학자 진순신의 기행문에선 이런 표현이 나온다. 서태후라는 어리석은 여자 한명때문에 평범한 중국인들이 얼마나 어려움에 처했는지 그 긴 복도의 중심에서 느낄 수 있다라는 표현이었다. 예전 필리판 이멜다의 구두가 2천 켤레라는 소식이 갑자기 떠올랐다. 어리석은 여자는 손을 꼽지만 어리석은 남자는셀 수 없겠지. 시안의 진시황 병마총에서 확인해 보아야 겠다.

황제의 오페라 극장 안의 한적한 곳을 지나는데 한 중국 여성이 자기 카메라를 주면서 사진 좀 찍어달란다. 찍어주고 나도 찍어달라고 했다. 내가 한국사람이라 하자 놀라는 눈치다. 거의 나는 중국인에 가깝게 생겼나보다. 그거보다는 인민군 모자의 덕인가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750원(5위엔)짜리 닭다리 튀김 하나 사먹었다. 먹을 만 했다.

 

 


이화원

 

8

한 3시간쯤 보았을까. 청화대학을 가려고 726번을 다시탔다

한 세정거장 쯤 가다가 보니 저기에 시장이 보였다. 바로 내렸다.

중국은 철망으로 쳐 놓은 곳이 많다. 여기도 그랬는데 철망을 문을 열고 들어가서 한 바뀌 죽 돌았다. 완전 재래시장이었다. 호두파는 곳에서 1300원(10위안)어치 호두 한 봉지를 샀다.

좀 손해 본 느낌이다.

다시 나와 원명원 쪽으로 걸었다. 청나라시절 이화원보다 먼저 생긴 황제 여름 휴양지가 원명원이다. 영불연합군이 중국을 공격했을때 약탈해가서 지금은 터와 건물기둥 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버스에서 중간에 내린 재래시장입구


원명원 입구


청화대학입구.

 

9

원명원 바로 옆이 청화대학 서문입구였다. 일군의 자전거 무리와 사람들이 빨간 불인데도 태연히

길을 횡단한다. 나도 따라했다. 어제 만난 유학생의 말로는 엉망인데도 이상할 정도로 사고가 안난다고 한다. 길에는 사람이 중심이라 차들이 알아서 비켜준다고 한다.

청화대학 얘기는 여행을 준비하며 읽었던 책중 뉴욕타임즈의 모스크바 특파원이 70년대초 문화혁명직후에 중국을 방문했던 기행문에서 문화혁명의 격전지로 다루어지는 곳이다. 인상적인 대목은 홍위병이 전국을 휩쓸고 다닐때 청화대학에서도 홍위병이 위세를 떨쳤는데 말기에 들어 청화대학 홍위병이 두패로 갈라서 한패는 대학 본관에 또 한패는 과학관 건물에 진을 쳤다고 한다. 과학관 쪽이 화학재료로 폭탄을 제조하기에 유리한 지형이라 폭탄 만들고 서로 총을 겨눠 쏘아 몇 명이 죽고 이 상황을 말리려 노동자 3만이 왔는데 이 대오를 돌파하려다 노동자 5명이 죽고 이런 일들이 청화대에서 있었다는 취재내용이었다.

문화혁명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더해진다. 하지만 어떻게 물어보나

캠퍼스 안은 정말 공부 할 만하겠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조용했다. 학생 하나에 자건거 하나일거 같은 엄청난 자전거가 인상적이었다. 알고 보니 청화대학은 내가 묵던 숙소와 가까운 거리였다.

 

 10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양배추 요리와 닭과 땅콩을 조린 요리 두가지 시키고 밥과 맥주 한병을 시켰다. 가격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2600원(20위안)이었다.

 

041129일 쓴 돈

 

(잠)

북림빈관 26000원(200위안)

 

(식사)

아침 만두 330원(2위안 5마오)

점심 닭다리 650원(5위안)

저녁 2600원(20위안)

 

(이동, 입장)

이화원 5200원(40위안)

버스 3번 390원(3위안)

 

(간식)

크랙커 350원(2위안 7마오)

사과 3개 260원(2위안)

 

(기타)

주머니칼 520원(4위안)

볼팬 250원(2위안)

..............................총 36550원

 

 

041129일 사진

 


이화원 입구 버스정류장

 


장량 위의 그림


언덕에서 바라본 호수

 

 


중국에는 엄청난 숫자의 청소부가 있나보다. 그렇게 내 버리지만 길은 깨끗하다. 호수의 오물을 걷어내는 청소부


용의 미끈한 허리놀림을 보라


내 집 창문 밖이 이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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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2 18:37 2004/12/02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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