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토의 상상, 개토가 쓴 글, 그리고 찍은 그림들.'에 해당되는 글 263건

  1. a Day after ... 2005/08/07
  2. 그녀에게 가는 길4 2005/07/23
  3. 그녀에게 가는 길3 2005/07/22
  4. 그녀에게 가는 길2 2005/07/22
  5. 그녀에게 가는 길1 2005/07/22
  6. 두더지 아가씨에 대한 추억 2005/07/19
  7. 돈키호테 2005/01/29
  8. 투스카니의 태양 2004/11/06
  9. 3개월 2004/07/16
  10. 오욕의 세계사 II 2004/05/01

a Day after ...

from 그림 2005/08/07 22:55


a Day af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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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07 22:55 2005/08/07 22:55

그녀에게 가는 길4

from 2005/07/23 01:47
멀리에 작은 건물이 보였다.
낮은 돌담과 공터, 작고 붉은 건물,
맨발에 조개껍질이 밟히는 것을 느끼면서
내달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버려진 집이었다.
곳곳에 유리창이 깨져있고
가구들도 완전히 망가진 모습이었다.

바닥에 버려진 기다란 나무막대를 들고
커다란 옷장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고 나니 어둠속에서 숨을 쉴 수 있었다.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옷장 안은 외부와 연결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긴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그가 집안으로 들어서면서 깨어진 유리 조각을 밟았는지
무언가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집안의 이곳 저곳을 뒤지면서 점점 나에게 가까이 다가 오는 것이 느껴졌다.
무거운 것이 쿵하는 소리를 내며 넘어지는 소리를 들었을 때
갑자기 옷장 문이 열렸다.
나무막대를 힘있게 휘둘렀다.
그가 넘어졌다.
이마에 맞았는지 머리쪽에서 검은 피가 흘러나왔다.
혹은 어둠속에서 어떤 것이 그의 머리 아래로 흘러 나왔다.
유리창에서 길게 잘려나온 유리조각을 뽑다가 손이 베었지만
아프지 않았다.
그가 몸을 일으켜 내가 다가와 나를 안았다.
유리조각은 그의 몸안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쑤욱 들어갔다.

그녀는 잠이 들어있었다.
그녀 옆에 나도 누웠다.
따듯했다.
그녀가 잠시 눈을 떠 나를 바라보고는
내 몸을 꼭 안고 다시 잠이 들었다.
장을 보지 않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나도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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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3 01:47 2005/07/23 01:47

그녀에게 가는 길3

from 2005/07/22 20:27
처음에는 앉을 자리가 없었다.
내리는 문앞의 넓은 공간에 여행가방을 세워놓고 그 위에 앉았다.
그는 내 앞에 서있었다.
속내의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땀이 많이 나서 와이셔츠까지 젖어있었다.
목을 타고 땀방울이 흘렀다.

40여분을 지나자 버스 안에는 그와 나뿐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 바닷바람이 머리를 확 뒤집고 지나갔다.
끈끈한 공기가 머리카락을 제멋대로 쥐어 감싸고
축축하면서도 미지근한 습기가 얼굴에 와 닿아
아찔했다.

그가 내 곁에 서류가방을 내려놓았다.
양복웃옷이 보이지 않았다.
버스에 두고 내린 것일까
그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양복웃옷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프린트한 그녀의 메일을 손에 들고
여행가방을 들고
바닷가를 따라 걸었다.
바닷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대체 어디에 살고 있는 것일까
여행가방은 무거웠다.
모래밭에서는 가방에 달린 바퀴가 오히려 불편했다.
나는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너무 멀리 왔어.
이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겠어.

음악을 들을 수도 없었다.
음악을 들었다가는 정말 길을 잃을 것 같았다.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사각 사각 빠른 발자국 소리...
그가 서류가방을 들고 나를 향해 달려왔다.

나는 여행가방을 버리고
손에 그녀의 메일을 꼭 쥐고
바닷가를 달려 그로부터 도망치려 했다.
그의 불규칙적인 신음소리가 바로 귀뒷편에서 들려왔다.
곧 사정이라도 할 것처럼 숨을 몰아쉬며 짧은 '아' 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바람이 우리와 함께 미친듯이 달리고 있었다.
내 머리카락들이 발작적으로 눈과 코와 입으로 덮쳐드는 통에
나는 작은 구덩이들을 보지 못하고 자꾸 넘어졌다.
겉에 입고 있던 바바리가 벗겨졌다.
내 바바리를 잡아당긴 것이 그인지 바람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어느새 바닷물 속에 허리까지 빠져있었다.
치마가 풍선처럼 떠올랐다.
그가 나를 안아올렸다.
뜨끈하게, 옆구리에 그의 매끄러운 와이셔츠와 내의와 살이 느껴졌다.
그 다음에는 내 다리를 감싸고 있는 그의 말랑한 손가락이 느껴졌다.
손가락이 차가웠다.
그리고 나서 내 허리쪽으로 그의 성기가 느껴졌다.
그의 가슴을 세게 물어 뜯었다.
나는 물속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입안이 썼다.
코로 물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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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2 20:27 2005/07/22 20:27

그녀에게 가는 길2

from 2005/07/22 19:18
그녀가 내게 보내준 이메일에는
간단하게 타야할 버스와 내려야할 장소만 적혀있었다.
언제 오라는 말도 없었다.
공항을 나와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았다.
그도 내 곁의 의자에 앉았다.

의자는 생각보다 차갑지 않았다.
하늘은 짙은 회색의 구름으로 덮여있어서
오후 1시라기 보다는 어느 시간에도 속하지 않는 것 같았다.
구름들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연한 하늘색이 낯설었다.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사요나라 갱들이여'를 생각했다.
헨리 4세가 죽을 때, 나는 너무 슬펐다.
자꾸 작아진다는 것...죽음에 가까워진다는 것...
몸이 썩어가는 것...내게서 지독한 냄새가 난다는 것...

254번 버스가 도착해서 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버스에 올라탔다.
공항에서 내리면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거나
자가용을 탈 수 있다.
그는 내게서 조금 떨어진 뒷좌석에 앉았다.

셀로니오스 몽크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면서
음습한 낯선 도시의 건물을 바라보자
이대로 버스에서 내리지 못하고 계속 살아야 할 것만 같았지만
곧 시내였다.
시내에서 또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버스는 한시간에 한대뿐이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낯선 얼굴로
줄지어 오는 버스에서 내리거나 또는 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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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2 19:18 2005/07/22 19:18

그녀에게 가는 길1

from 2005/07/22 14:53
그 남자를 내가 처음 본 곳은 시테 공항이었다.
그 남자가 나를 언제 어디서 처음 보았는지는 모른다.
우리는 단 한마디도 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의 삶에 가장 의미심장할 수도 있는 시간을 함께 했다.
그다지 긴 시간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돌아보면 꿈처럼 어떤 색깔과 느낌만이 선명할 뿐
실제로 그런 시간이 존재했었는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공항에서 그를 보았을 때
나는 목구멍과 콧구멍으로
콧물처럼 혐오가 쏠려나오는 것을 겨우 삼켰다.
찝찝한 느낌.
그는 내가 본 동양인들 가운데 가장 뚱뚱한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그가 중국인일 거라 생각했다.
막연하게, 한국에서는 그렇게 뚱뚱한 사람을 본 적이 없으니
중국인이라면 그럴 법도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는 공항의 철제 의자 2개를 차지하고 앉아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나는 마음이 조마조마 했다.
그가 햄버거 조각을 흘리기라도 하면
대책없이, 하얀 와이셔츠가 더러워질텐데...
보통 사람들처럼 몸을 피하거나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이다

그는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으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늘고 둥근 은색안경테 안으로 두개의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작은 빨간 점이 대각선 방향으로 질서정연하게 수놓인 감색 넥타이와
감색 양복,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올려 보이는 투실투실한 팔과
그 아주 뚱뚱한 사람들 특유의 손은 아주 잘 기억하고 있지만.

옷이 예뻤다.
와이셔츠는 눈이 부시게 깨끗한 연한 푸른 색이었다.
아니 하얀색이었다...아니 푸른색일지도 모르고 하얀색일지도 모른다.
검은 반곱슬의 머리카락이 단정하게 무스나 스프레이로 머리위에 고정되어있었다.

강한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 뿐,
나는 멀리 떨어진 스시 바에서 남은 스시에 다시 집중했다.
그녀는 나를 위해 점심을 준비해 주는 타입은 아니다.
아마 자신의 위한 점심조차 준비하지 않았을 것이다.
배가 고파지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것 저것들로
괴로워하면서 배를 채우고는 무언가에 또 골몰하겠지.
스시를 먹고 가는 것이 좋았다.
스시를 먹은 후에 간단하게 장을 봐서
그녀에게 먹을 만한 저녁을 차려주는 것이다.
그녀가 있는 곳에는 변변한 가게하나 없다고 들었다.

스시접시를 깨끗하게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나
여행가방을 끌고 게이트를 향해 그 남자의 옆을 지나치자 마자,
그 남자가 자신의 작은 서류가방과 양복 웃옷을 들고 일어나면서
공항의 철제 의자가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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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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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2 14:53 2005/07/22 14:53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어서
서로의 삶에 바쁘다보면 그리운 이, 소중한 이들이
소리도 없이 별다른 인사도 없이 잊혀지곤 한다.
그러다가 어느날, 문득 작은 흔적으로부터 그를 기억하게 된다.
예전에 청테이프가 앞에 있기만 하면 조그맣게 자꾸 뜯는 아이가 있었다.
청테이프를 보면 그가 떠오른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 청테이프 쓸 일이 많지 않아
대형 마트에서 우연히 지나다 보거나 이사할 때가 되어 테이프 살 일이 생기면
그가 떠오르곤 했다.
유난히 손톱이 작고 손이 통통한 아이가 있었다.
흔치 않은 그런 비슷한 손을 어디선가 만나게 되면 그녀가 떠오른다.

최근에 뉴스를 보는데
한 영화배우가 고속도로를 건너는 고슴도치 가족을 구하려다
반대편에서 오는 차에 치여 죽었다고 한다.
고슴도치 가족 이야기를 듣고 나니
갑자기 예전 내 방 지붕에 살던 두더지 세마리가 떠올랐다.
고슴도치와 두더지는 상당히 다르기도 하지만
왠지 비슷한 느낌이 있는 것이다.
그들은 요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 방에서 이사한지 벌써 3년이 훨씬 넘었다.
그들과 함께 살았던 기간은 길어야 6개월남짓이다.
그간 서로 얼굴을 보았던 날은 많아야 열흘 정도 뿐이다.

꽤나 과묵하고 예의발라서
내 삶에 슬쩍 들어앉기보다는
아주 가끔 작은 선물이 되어주었던 그들.

나는 특히 두더지 아가씨를 잊을 수가 없다.
우리는 서로 이름도 알지 못했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둘 다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 뿐.

오늘은 그녀와의 세번째 만남을 기억해 보려고 한다.

여름밤이었다.
창문을 모두 열어놓고 모기가 들어올까봐 불은 모두 끄고
존 콜트레인의 블루트레인을 들으면서
달을 보고 있었다.
춤이라도 한판 춰야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무겁고 느린 바람이 있었다.
하얀 달 둘레에 조금 푸른 공기가 있었다.

누군가가 머리위에 있다는 걸 느꼈을 때
나는 사실 벌거벗은 채 춤을 추고 있었다.
그녀는 일부러 나를 바라보지 않으려 애쓰면서 지붕위에 앉아있었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지 않으려 한것은
내가 벗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춤을 추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두더지이기 때문에 어차피 옷을 입지 않고
따라서 내가 옷을 입고 안입고는 그녀에게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춤을 추고 있는 것은 나의 개인적 즐거움이기 때문에
그녀는 나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달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다.

조금 힘겹게 숨을 몰아서 짧게 물어야 했다.
'달을 보고 있구나.'
'응'

나도 달을 바라 보았다.
무겁고 느린 바람조차 땀범벅의 나에게는 시원하게 느껴졌다.
달은 산속에 흐르는 개울 속의 하얀 돌처럼 차가와 보였다.
발을 대면 이까지 시릴 것만 같아.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달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만화속에 나오는 것처럼 검은 그림자같았다.
끝이 뭉툭한 작은 코.
달이 들어있는 작은 눈.
나는 그날의 그녀를 그렇게 기억한다.

콜트레인의 음악이 모두 끝났을 때
그녀는 천천히 몸을 들어서 나를 한번 바라보고는
지붕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아마도 나에게 인사를 했던 것일 거다.
나는 그녀의 눈에 들어있는 나를 보았었다.

그날 밤은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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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19 07:12 2005/07/19 07:12

돈키호테

from 책에 대해 2005/01/29 12:37
생각하고, 분석하고, 창조하는 것은(그는 또한 내게 이렇게 써보냈다)
비정상적인 행위가 아니라 지성의 정상적인 호흡작용이네.
이러한 일반적인 기능이 이따금 성취시키게 되는 것을 미화시키거나,
케케묵고 시대에 동떨어진 생각들을 보물인 양 떠받들거나,
<만능박사>가 생각했던 것을 무턱대고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게으름과 야만성을 고백하는 것에 다름 아니네.
모든 사람들은 모든 것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미래에는 그처럼 될 것이네.

보르헤스 전집에 주석을 단 바보를 불쌍히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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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9 12:37 2005/01/29 12:37
오랫만에 좀 편한 마음으로 영화를 한 편 보았다.
제목도 생소한 '투스카니의 태양'.
김상이 짐 캐리 나오는 영화래서 그냥 웃어나 볼까 하고 보기 시작했는데
웬걸, 한참 한참 지나도 짐 캐리가 나올 생각을 안한다.
여주인공이 이사를 하고 나니 옆방에서 매일 울어대는 변호사 목소리가
아무래도 짐 캐리 같아서 둘이 언제 만나려나 보고 있었더니
갑자기 주인공이 이태리의 투스카니로 훌쩍 떠나버린다.

짐캐리가 언제 나올 것인가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였으나
결국 짐캐리는 나오지 않고......

어쨌든 보는 동안 내내 이 영화는 여성 감독의 영화구나 싶었다.
일상에 대한 시선이 섬세하다.
주변 인물들에 대해서 어쩔 수 없이 따스한 시선을 갖고 있다.
뭐랄까 내가 원하는 것들을 원한다.

알고 보니 '개와 고양이의 진실'을 감독했던 오드리 웰스 감독의 영화였다.

영화는 한 여성의 일상을 담은 것임에도 전혀 잔잔하지 않고
상당히 강약이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어쩌다 한번씩 겪게 되는 스릴도 만나 볼 수 있다.

대체 볼 영화가 없다 생각될 때, 영화 본 뒤 기분이 좋고 싶을 때
'내 어머니의 여자친구(제목이 맞나?)처럼
이 영화도 볼 만한 영화라는 생각이다.
별 다섯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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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06 10:35 2004/11/06 10:35

3개월

from 2004/07/16 10:06
나는 원래 밤에 사는 타입이었어. 그녀는 생각했다. 쑥스럽지만 '밤에 피는 장미'라는 오래된 가요제목을 자신의 별명으로 소리 없이 불러보았다. 꽤 맘에 드는 별명이야. 월요일 밤이었다. 내일도 출근하려면 일찍 자야할텐데, 월요일에는 항상 늦게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주말에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서 몸이 그새 적응되어 버린 것이다. 한 주를 제대로 살려면 일찍 자야한다고 그녀는 스스로를 타일렀다. 그러나 어느 새 지방에 사는 가족이며, 남자친구와의 관계, 회사생활 등에 대해 늘 반복되고 답이 없는 생각들이 이어졌다. 끝이 없을 것 같던 생각들이 한바퀴를 돌아 다시 자야한다는 생각에 이르자 그녀는 자세를 바꿔 옆으로 돌아누우면서 S의 품으로 파고들어 오른손을 그의 사타구니 사이에 넣었다. 조그맣고 말랑거리던 페니스가 S의 의지와 상관이 있는지 없는지 어찌되었건 꿈틀꿈틀 생명력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키우려고 했던 것은 아니어서 그녀는 손의 움직임을 멈추고 가만히 페니스를 잡고 한동안 다시 잡념에 빠져들었다. 페니스도 그녀의 무관심을 알아채고 다시 작아져 갔다. 그녀는 지난 10년 간 자신이 사귀어왔던 남자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것들이 잊혀져 있었다. 그들이 더 이상 자신의 삶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때는 너무 많은 상처를 서로 주고받았던 것이다. 그녀는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이전 남자친구였던 K와 그녀는 너무 많이 싸웠다. 생각해 보면, 그녀는 자신이 K와 S, 둘만 사랑했던 것도 같았다. 그 이전의 남자들은, 사실 자신의 삶에 대한 광기의 표현이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뒤돌아보면 그들은 매우 하찮은 존재들이었다. 그녀는 사랑, 그 자체를 사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받은 자신에 대한 숭배를 사랑했던 것이다. 진짜였던 가짜였던, 그녀는 대학에 들어간 이래로 최소 5번, 최대 10번 정도의 연애를 해왔고, 대부분이 상당히 진지한 관계였다. 그 10년 가운데 누구와 지냈던 것이 가장 행복했을까 - 그녀는 현재의 남자친구와 이전의 남자친구를 비교해보았다. 그리고 다시 10년을 통째로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남자들을 차근차근 순서대로 정리하다가, 그 3개월을 기억해냈다. 택해야 한다면, 누구와 함께도 아니었던 그 3개월을 택하겠어.
그 3개월은 그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남자친구 없이 보낸 유일한 기간이었다. 그녀 주변에는 남자들이 널려있어 한 남자와 끝나면 대기자들 가운데 하나가 다음 남자친구가 되곤 했다. 그녀가 그들을 가볍게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다. 오히려 너무 무겁게 생각했던 것이 문제였다. 남자들은 그녀의 남자친구이기를 포기하고 떠나서는 그녀의 남자친구가 되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 그들은 대부분 그녀를 숭배하거나 미친 듯이 사랑했지만(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자주 고민에 빠졌다. 나는 이 사람을 정말로 사랑하고 있는 걸까?
그랬다. 그 3개월이 시작된 지 얼마 안되어 직장동료와 술을 먹었다. 헤어짐이 그녀의 감성을 풍족하게 해주어 술은 끝도 없이 들어갔다. 8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그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먹은 것을 모두 게워냈는데, 그가 그녀의 입에 키스를 했다. 술기운인지 욕정인지에 묻혀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섹스를 하다. 그녀의 인생에 최초의 '그냥 섹스'였다. 아무도 그녀의 섹스를 막지 않았다.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도. 그녀는 그 남자의 페니스가 마음에 들었다. 남자의 육체에 대해서 객관화시켜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것이 처음이었다. 이전에도 남자친구들과 섹스를 했지만, 그것은 사랑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3개월이 가장 자유로운 시기였어. 어찌 생각해보면 그녀는 단 한번도 한 남자를 사랑한 적이 없는 것도 같았다. 그들은 그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늘 어떤 삶을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강요하고 있었다.
우연찮게도, 그 3개월 동안 그녀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상태였고, 그녀는 회사구석에 놓인 간이침대에서 살았었다. IT붐으로 많은 회사에서 직원들이 잠을 자며 일을 하던 때였고 회사 분위기도 자유로워서 그녀가 여자인 것이 큰 문제는 아니었다. 소지품이라고는 조그만 가방하나가 다였다. 보름에 한번쯤 집에 가서 다음 보름동안 입을 옷을 가지고 왔다. 주변에서 굴러다니는 책이나 잡지를 읽었고, 음악은 인터넷에서 MP3를 다운받아 들었다. 일하고 노는 데 사용하는 PC와 간이침대가 그녀의 것이라고 불리기는 했어도 결국은 회사 물건이었다. 심지어 안경조차 없어서, 모니터에 바싹 붙어 두 시간쯤 일하고 나면 눈물을 줄줄 흘렸는데도 그녀는 그것이 불편한 줄도 잘 몰랐던 것 같다.
희망도 없었지만, 절망도 없었다. 그렇게 평생 살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녀는 다시 S의 페니스를 조물락거리기 시작했다. 페니스는 깊이 잠이 들었는지 반응이 없었다.
나는 약해졌어. 그녀는 시멘트 바닥으로부터 올라오던 한기를 기억해내고 몸이 오싹해졌다. 다시 그런 상황에 처한대도 두렵지는 않았지만, 귀찮은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 때 그 섹스일까. 술자리와 그 섹스를 생각하자 몸 중심부로부터 미묘한 욕망과 쾌감, 전율 같은 것이 순간 전류처럼 지나갔다. 그녀는 자위를 할까 생각했지만, 생각을 끊고 싶지 않았다. 피로가 몰려왔다. 약간 몸을 기울이자 S의 체온이 따듯하게 전해져왔다. 그녀는 그 남자의 몸을 기억하려고 해 보았다. 잘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그의 페니스는 아직도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S가 괴로워하겠지? 그녀는 S를 사랑했다. 벌써 3년째 같이 살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에 대한 그의 헌신은 적어도 그녀에게는 소중한 것이었다. 언젠가 한번은 다른 남자와 자고 싶어. 그녀는 생각했다. 그리고 S의 겨드랑이 사이에 머리를 묻고는 순식간에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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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16 10:06 2004/07/16 10:06

오욕의 세계사

from 2004/04/30 22:23

고환을 씹어먹는 더티 메리

1864년 런던의 검뎅투성이 골목에서, 그녀가 평등하게 골고루 사랑을 나눠주었고, 또 보살펴왔던 15명의 고환 없는 남자들에 둘러싸여 24세의 젊은 나이로 죽기 전까지 더티 메리에게 함부로 폭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사람은 그녀의 아버지뿐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녀가 태어날 때부터 악행을 저질렀다고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가 죽은 것은 오히려 그녀의 아버지 때문이었다고 보는 것이 공정할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다른 사람 10배의 힘을 가졌지만, 하나뿐이어서 여러 가지 불편함과 부당한 대우를 감수하게 만든 자신의 팔에 대해 비뚤어진 자부심과 자괴감을 평생 지니고 살았다. 여느 가정에서나 흔히 볼 수 있듯, 그는 일주일에 두 세 번씩은, 툭하면 기침이나 해대고 갈수록 야위어 가는 부인을 죽도록 팬 뒤에 나무토막같이 굳은 그녀의 몸에 성기를 쑤셔대다가 술기운에 지쳐 잠들곤 했다. 그런 와중에 망가질 대로 망가진 어머니의 몸에서, 냄비 바닥에 말라붙은 국물 한 방울까지 박박 긁어내듯 가능한 모든 기운을 빨아들여 4Kg의 거구로 더티 메리가 태어났을 때 당연하게도 그녀의 어머니는 남은 피를 모두 쏟고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아버지는 그제서야 자신이 얼마나 부인을 사랑했었는지 깨달았고, 자신의 사랑을 산산조각 낸 더티 메리가 얼마나 끔찍이 먹어대고 빽빽대는 악마인가도 동시에 깨달았다. 더티 메리는 아버지의 속옷쪼가리나 빨아먹으면서 자랐는데도 남들보다 2배는 성장이 빨랐다.
7살이 되던 때 <뒷골목의 개장수들>을 만든 그녀는 동네 꼬마악당들을 모아 하수구나 시궁창 주변에 사는 착한 눈의 겁먹은 개들을 구석진 곳에 몰아넣고 개를 사는 어른들과 당차게 협상을 하여 모든 아이들에게 1펜스씩이 돌아가도록 수입을 올리곤 했다. 물론 1펜스씩 돌리고 남는 돈은 그녀가 잘 보관했다. 그녀의 천재성이 개장사로 시작해 개장사로 발현되는데 그쳤다는 점이 그녀의 신비감을 반감시킬 만큼 대단한 문젯거리는 아니다.

12살에 이미 몸도 정신도 성숙할 만큼 성숙한 그녀는 아버지와 잠을 자기 시작했고,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았지만 맞는 것보다는 낫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차츰차츰 기분이 더 나빠진 것이었다. 18살이 되던 해 그녀는 아버지보다 더 힘이 센 팔과 경제력과 거대한 개시장을 갖게 되었고 아버지와 잠자리를 그만 두기로 마음먹었다.
그녀가 아버지를 그저 증오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쓸모 없는 인간에 대한 측은함 때문에 그녀는 그를 버릴 생각이 없었다. 고환을 씹어 먹는 더티 메리라는 별명이 그녀를 잔인한 여자로 느끼게 할지도 모르나, 사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것을 적당히 나눌 줄 아는 사람이었다. 덕분에 그녀 주변에는 항상 그녀를 추종하는 다른 남자들이 많이 있었다. 그녀의 외모가 일반적인 기준의 매력을 가졌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꾸지 않은 탓에, 특히 그녀의 피부는 이미 15세에 30대 중반처럼 보이게 만드는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늘 어두침침하기만 한 런던의 하늘도 거리를 활보하고 돌아다니는 동안 자외선으로부터 그녀를 지켜주지는 못해서 주근깨와 기미와 깊은 주름이 그녀의 얼굴을 산만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녀가 웃을 때면 여기저기 구멍이 뚫린 것처럼 검은 이들이 한꺼번에 드러났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 주변의 남자들의 그녀의 사업능력과 돈만을 바라보았던 것은 아니다. 그녀의 눈은 어둠 속에서 보면 엄청난 깊이를 느끼게 해서, 사람을 휘어잡는 힘이 있었다.
어쨌든 그녀가 고환먹는 더티 메리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이 바로 그 18세 때이며, 첫 번째로 그녀가 먹은 고환은 다들 아시다시피 그녀 아버지의 것이었다. 그녀는 합리적으로 생각했고, 아버지를 죽일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옆방에 의사를 불러놓고 그 일을 진행했다. 대낮에 살며시 들어가서는 아버지를 유혹해서 아랫도리를 벗게 만들고 성기를 애무해 주다가 전날 밤 숯돌에 날이 잘 서도록 갈아서 가슴 사이에 꽂아두었던 날이 접히는 단도를 꺼내어 아주 작은 '철컥' 소리도 내지 않고 편 다음 단숨에 잘라 버렸다. 의사에 말에 따르면 그녀의 아버지는 집이 무너지도록 큰 소리로 마치 황소처럼 울부짖었다고 한다. 피가 순간적으로 분수처럼 솟아서 얼굴은 온통 뜨끈한 피범벅이었지만, 자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옆방으로 들어간 그녀는 대충 수건으로 얼굴을 씻은 다음 성기와 함께 잘린 고환을 매운 고추와 함께 요리해 먹고 성기는 개들에게 주어버렸다.

그 뒤로 그녀는 손수 흰색 벽의 문이 많고 큰집을 지었고 아버지와 죽을 때까지 함께 살았다. 더티 메리가 죽기 전 까지 6년 동안 그 집에서 살거나 혹은 잠시 지내다 간 사람들은 대충 세어도 100여명은 넘었다고 하며 그 사이에 그녀는 마음에 드는 남자 15명의 고환을 잘라서 요리해 먹었다.
그녀의 죽음은 비열한 배신의 결과였다. 이른 새벽 여느 때처럼 개시장으로 가던 더티 메리를 호위하던 고환없는 15명의 남자들이 그녀에게 15개의 칼침을 놓았던 것이다.

여기 적힌 내용은 그녀의 집에 잠시 머물렀던(아마도 일시적인 방탕 때문에) christopher Mann이라는 작가가 소설의 소재로 삼기 위해 메모해 두었던 노트 중 일부를 정리한 것이다. 결국 작가로 유명해지지는 않았지만, 후에 출판사를 차릴 수 있었던 그는 노트의 내용을 소설처럼 발표했었고 그 책이 우연히 한 헌책방을 통해 내 책꽂이에 꽂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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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4/30 22:23 2004/04/30 2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