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토의 상상, 개토가 쓴 글, 그리고 찍은 그림들.'에 해당되는 글 263건

  1. 담배 2006/12/14
  2. 0.5도씨 2006/12/13
  3. 개토라도 괜찮아. (5) 2006/12/08
  4. 2. 두더지와 화단 2006/12/07
  5. 백일야화 2006/12/06
  6. 소울메이트 (1) 2006/12/06
  7. 햇볕에 불타는 저 분 (5) 2006/09/29
  8. 은빛 초콜릿맛 임신 캘린더 (1) 2006/09/28
  9. (1) 2006/07/06
  10. 닻과 새끼닻 (3) 2006/07/06

담배

from 2006/12/14 23:16

엄마는 오늘 담배를 피운다.

피우면 안되는데.

아빠가 없기 때문이다.

아빠는 먼 곳에 있다.

다용도실에서 찬바람에 얼굴도 손도 발도 내놓고

차갑게 빛나는 불빛들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하얀 입김과 연기를 내밀었다.

나는 다용도실 유리문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쳤지만 엄마는 내가 없는 것처럼 다시 하얀 담배를 입에 물었다.

 

[돌아와. 내게서 죽음을 몰아내줘.

나는 무서워. 어둠이 다가오고 있어. 차가운 불빛들은 진짜가 아니야.

나는 이곳에 혼자 있어선 안돼.]

 

엄마는 유리로 된 성안에서 나와 온기가 도는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단단한 소파위에 나와 함께 앉았다.

나는 엄마를 지킬 수 없다.

엄마의 차가운 손이 내 무릎에 놓인다.

처음에는 그냥 차갑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무릎을 움직일수가 없게 되었다.

깊은 호수의 표면이 겨울빛에 얼어가듯이

내 몸은 조금씩 조금씩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얼어간다.

호수에서처럼, 얇게 언 수면아래로 미지근하거나 혹은 뜨거운 피가 천천히 흐르고 있다.

 

엄마는 페로시타스에게 걸어가고 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걷는다.

 

 

[나를 데려가. 아이는 내버려둬.]

 

 

발끝은 페로시타스의 그림자 아래 있다.

그림자가그녀를녹이고있다아니벗기고있는걸까?

그림자에닿은부분이까맣게타들어간다.

 

[그것이 되찾아졌다

무엇이? 영원성이

그것은 태양과 함께

가는 바다] *

 

하늘은 검다.

백합의 독기가 가득한 좁은 방

육각의 석영으로 된 방안에서

태양의 낙하지점에 앉아

용처럼 날고 있는 프테라노돈을 바라본다.

 

혹은

 

하늘은 하얗다.

습기가 가득한 뜨거운 대지위에

초록빛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아마란타인 한송이만이 신기루처럼 박혀있다.

 

나를 데려가 줘.

타는 듯한 삶의 빛으로부터 거둬가 줘.

 

영원이 두렵지 않은가?

 

나는 순간이 두려워.

 

너는 태양을 품고 있어. 붉은 화염에 휩싸여 하늘을 나는 그것은 배인가?

아니, 그것은 용이구나. 미스릴로 만들어진 심장을 가진 기계용인가?

질투로 시퍼렇게 멍든 얼굴을 온기가 없는 석회가루로 화장한 달인 줄 알았더니

들끓는 용암으로 가득한 끝없는 동굴이었구나.

나는 너를 품을 수 없어. 나는 너를 거둘 수 없어.

내앞에 내민 발을 거두어라.

 

너는 물체의 온기를 빨아들여 무게를 없애주는 존재가 아니던가?

태양은 그저 작은 별일뿐. 언젠가는 스스로를 태워없앨 나약한 존재.

나를 받아들여. 나를 받아들여.

 

지옥이 있다면 그러하겠구나. 그 고통 속에 죽음이 너를 데리러 올때까지

부조리속으로 쉴틈없이 내던져 지거라. 내 그늘에는 네가 쉴 곳이 없다.

 

그녀는 그곳에 그대로 있지만

페로시타스는 에메랄드 속으로 사라진다.

두개의 에메랄드는 쩡 소리를 내며 어둠의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가는

잉걸불이 사라지듯 아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어둠속으로 녹아든다.

 

그녀는 또 담배를 피우러 간다.

심장에 담배끝을 대어 불을 붙인다.

 

 

* 랭보의 영원 마지막 구절. 번역은 정확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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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4 23:16 2006/12/14 23:16

0.5도씨

from 2006/12/13 12:43

새벽3시, 그녀는 잠이 오지 않는다.

체온이 0.5도씨 정도 올라있다.

이 시간에 그녀의 체온은 언제나 0.5도씨 정도 더 높다.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0.5도씨의 차이로 더워진 피는 그녀의 몸에서 습기를 증발시키고 몸을 건조하게 만든다.

입술도 손끝도, 발끝도 부풀어 오른다.

낮동안 피가 돌지 못하던 곳까지 구석구석 피가 돌면서 그녀는 온전히 깨어난 새로운 사람이 된다.

피곤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대답해야할 너무 많은 질문들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아주 오래 질문들을 외면해왔다.

질문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래서 질문들은 산더미처럼 그녀의 옆얼굴에 쌓여있다.

고개를 돌리자 질문들이 산사태처럼 무너져 내린다.

 

나는 그와 잠을 자야하는 걸까? 혹은 자면 안되는걸까? 그렇다면 왜? 와 같은 대답하지 않아도 될 질문부터 주문해둔 청소기는 언제 도착하는 걸까?, 나에게 맞는 진실의 크기는 얼만한 것일까?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한다는 건 어떻게 하는 것일까? 나는 지금 잠을 자야하는 걸까? 일어나서 책을 읽을까? 그에게 뭐라고 대답하면 성의있어지는 걸까? 내일은 아침에 일어날 수 있을까? 회사에 가면 피곤할까? 의외로 피곤하지 않을까? 다음 프로젝트의 컨셉은 귤로 할까? 아님 레몬으로 할까? 다시, 그와 잠을 자면 뭔가가 달라질까? 대답하지 않아도 됨.

 

그런 생각마다에 각각의 대답들을 얼기설기 얹어두던 중에 그녀는 몸을 열심히 더듬고 있는

그를 문득 느끼게 된다.

몇시간 전부터(!) 무심히, 끊임없이 그를 밀어내는 그녀의 몸을 그는 끝도 없이 만지작 거린다.

허벅지에 놓인 손을 치우면 다른 손이 가슴으로 올라온다.

가슴에 놓인 손은 그 손을 밀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놓지 않는다.

잠이 든 가운데서도 그는 집요하다.

그녀는 그에게 들리도록 끙끙대면서 그를 밀친다.

그의 몸이 활처럼 굽혀지고 등과 발은 멀어졌지만 그럴수록 머리와 손은 그녀에게 파고든다.

 

"제발 좀 개토를 내버려둬! 혼자있고 싶단 말야!"

 

그가 눈을 뜬다. 겁먹은 눈. "누구 손이 개토를 만졌지?"

 

그는 멀리 떨어진다. 이불도 3분의 1만 덮는다. 이내 잠이 든다.

그녀는 다시 상념에 잠긴다.

나는 어떤 진실을 말하게 되어있는걸까? 나는 언제쯤 내게서 죽음을 몰아내거나 함께 살아가게 되는 걸까? ...

 

그를 본다. 아이처럼 자고 있다. 그의 머리를 당겨, 그의 몸쪽으로 이동한다.

그는 추처럼 무겁다.

그의 손을 들어 등 뒤로 돌리고 그의 머리를 가슴에 묻는다.

그는 자연스럼게 몸을 움직여 그녀의 몸에 밀착한다.

와 같은 사랑이야기는 좀 그래...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를 바라본다. 아이처럼 자고 있다.

그의 머릴를 감싸 가슴속에 밀어넣고 그의 허벅지에 다리를 두른다.

그의 몸에서 달착지근한 땀냄새가 난다.

0.5도씨 때문이다.

 

그의 몸을 둘러싼 더운 호흡들이 미묘하게 자극적이다.

그는 자면서도 그녀의 감정변화를 쉽게 눈치채고 대담하게 그녀의 엉덩이에 손을 얹는다.

"손치우지 못해!"

그의 손이 얼른 제자리로 돌아간다.

 

아, 즐거운 인생.

 

 

 

 

 

글이나 그림은 정직하다.

나 이상의 것이 그려지지 않는다.

무모함과 무지함, 혹은 스스로에 대한 관대함으로

그걸 그려보지만

나자신이 싫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미묘한 개인적 감정의 변화들을 공들여 표현하는 것에 대해

언제나 마음에 들지 않아하면서도 기껏 할 줄 아는 것이 그뿐이다.

마음가짐의 변화가 아니라 환경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혼합프레스 컴플렉스 꿈을 꾸었다.

컴플렉스 덩어리가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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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3 12:43 2006/12/13 12:43

사이보그라도 괜찮아.

를 보았다.

 

복수는 나의 것을 본 뒤로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기대하게 되었는데,

금자씨부터는 사실 조금 실망이다.

박찬욱의 스타일이 아니잖아 랄까.

배우들의 연기나 화면의 색감과 구성, 완성도 등은 그대로인데

중요한 것이 빠져있다.

시선이랄까.

아주 깊고 썩어 문드러진 곳까지 동요없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시선이랄까.

 

조금 겉멋이 들었다는 느낌이랄까.

 

살빼기 다이어트에 좋은 영화였던 것은 틀림이 없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무언가를 먹어야 하는 인간이라는 것이 혐오스러웠으니까.

건전지로 충전하고 살면 참 좋겠다.

 

여자주인공이 참 예뻤다.

특히 머리가 참 예뻤다.

 

돌아오면서 김상에게 물었다.

개토라도 괜찮아?

 

응. 개토라도 괜찮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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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8 12:42 2006/12/08 12:42

2. 두더지와 화단

from 2006/12/07 08:20

두더지들이 내 골반뼈를 보고 있다.

내 뼈는 형광물질이라도 섞인듯 하얗다.

기형적으로 이지러진 오른쪽 골반에

관절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빈약한 굴곡이 있고 그곳에 내 오른쪽 다리뼈들이

슬쩍 기대어 있다.

그래도 나는 그 관절에 의지하여 오랫동안 걸어왔다.

두더지들은 내 오른쪽 골반뼈를 보고 있다.

그들은 울고 있다.

그들에게서 내 하얀 뼈위로 눈물이 떨어진다.

내뼈는 그래서 그렇게 하얗게 된걸까?

 

아니다.

그들은 나를 먹고 있다.

내 뼈위로 그들의 침이 흐르고 있다.

뼈위에는 살점 한조각 남지 않았다.

 

그렇게 나를 다 먹고도 그들은 내 위로 침을 흘린다.

그들은 그저 내게 등을 돌린채

마치 우는 것처럼 내 살점을 뜯어 먹었다.

 

 

 

베란다 화단에 놓여있던 큰 화분 하나가 깨졌다.

작은 화분들은 작아서 그랬는지 멀쩡한데.

깨진 조각에 오공본드를 발라 얼기설기 맞춰서 다시 흙을 담고

흙과 함께 덩이진 고무나무의 뿌리를 다시 숨겼다.

 

오늘은 베란다 문을 닫아놔야겠다고 생각한다.

화분이 깨지면 손이 많이 간다.

 

 

일어나려는데 가슴이 뻐근하게 아팠다.

옷을 들춰 거울에 비춰보니 가로로 긴 멍이 들었다.

자다가 침대에 부딪친 걸까? 기분이 좋지 않다.

 

 

 

끔찍한 꿈을 꾸었다.

눈을 뜨니 내곁에 아버지가 누워있었다.

나는 내가 16살인 것 같다.

남편이 꿈인지 아버지가 꿈인지 모르겠다.

 

 

 

나는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타입이 아니다.

회사생활을 2년 밖에 안해보긴 했지만, 나는 정말 집에만 있고 싶었다.

아이를 갖고 싶다.

남편은 왜 아이를 갖고 싶어하지 않는걸까?

나는 내가 임신을 한 장면을 상상한다.

그가 나를 소중히 다뤄주고 있다. 행복했다.

 

 

 

 

.... 나갔다 와서 다시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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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7 08:20 2006/12/07 08:20

백일야화

from 2006/12/06 20:50

1. 꿈을 먹어치우는 페로시타스

 

영영 깨어나지 못할지도 모르는 잠을 자기에 앞서, 나는 이 글을 쓴다.

 

그 어떤 정의감이나 의무감 혹은 책임감, 확신도 없이 나는 그곳으로 간다.

나는 왜 그곳으로 갈까? 서글프게도, 나는 가야하기 때문이다.

 

삶이란 자신의 의지로 만들어가는 거라고 믿었던 건 언제까지 였을까?

 

[나는 본다. 나는 창조한다. 그리고 나는 자유다. 모든 것이 내 것이다.

쇠사슬까지도 내 것이다. 나는 내 고통의 주인이다.]

 

로망롤랑의 글귀를 노트에 적어 놓고 오랫동안 기억하면서

죽음까지도 내 선택에 의한 것으로 하기 위해 마음속으로 마지막을 그려보곤 하던

나는 어디로 간 것일까?

 

내 고통은 커녕 내 즐거움조차 내 것이 아니다.

 

나는 아무 것도 보지 않는다. 나는 파괴한다. 그리고 나는 모든 것에 구속되어 있다.

아무것도 내것이 아니다. 나는 운명의 지배를 받는다.

 

서글프게도, 정말 서글프게도 나는 그저 가야하기 때문에 그곳으로 간다.

가지 않을 수 있다면 하는 작은 기대조차 내게는 없다.

 

왜 나인가? 라는 질문이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자꾸 묻게 된다.

 

어젯밤의 꿈을 꾸기 전까지, 나는 몇년 동안 꿈을 꾸지 않았다.

꿈을 꿀 시간쯤이면 나는 언제나 회사로 향하는 버스에 있다.

운이 좋아 앉아서 가는 경우에

버스에서 달콤하고 깊고 짧은 토막잠을 잔다.

 

보통은 좁은 바닥에 의지하여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애쓰면서,

다른 사람들과 최소한으로 맞닿기 위해 애쓰면서

음악을 듣는다.

음악을 고르는 게 귀찮아서 MP3 플레이어는 셔플로 해둔다.

 

나는 억울하다는 느낌을 받지만, 인생은 언제나 그랬다.

신체적 결함,10년이상 지속된 부모의 별거나, 말도 안되게 가난한 가정 형편,

정신적 결함이 있는 동생, 내세울 것 없는 외모,

이제는 아주 익숙해져버린 억울함들.

 

회사에서는 당연히 해고 당하게 될 것이다.

다시 취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겠지만,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우리 가족들은 가난의 공포와 막막함에 떨어야 한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그정도쯤, 스스로들 알아서 하면 된다.

내가 꿈을 먹어치우는 페로시타스와 싸우는 동안 그들은 가난을 정면으로 대면하게 된다.

 

어쩌면 별로 대단할 것 없는 괴물일지도 모른다.

하루만에 나는 돌아와서 회사에는 사유서를 내고 일상으로 돌아오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그렇다.

나는 어젯밤에 꿈을 꾸었다.

 

거대한 에메랄드 목걸이를 한 페로시타스의 꿈.

 

어둠 속에서 목걸이의 에메랄드 만이 녹색으로 반짝였다.

짐승의 눈처럼, 에메랄드는 두개였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녹색.

어둠보다 더 어두운 그의 윤곽이  나를 덮친다고 생각했을 때

그것이 그의 그림자라는 것을 알았다.

내 몸은 사지가 분리된 듯, 나는 대체 내 팔을 찾을 수가 없어

덮쳐오는 어둠을 망연히 바라보아야만 했다.

그림자는 여러차례 나를 덮쳤다.

내 다리는 아주 먼곳에 버려진 듯 어느 곳으로도 나를 도망치게 해주지 않았다.

눈꺼풀조차 나를 보호해 주지 않았고

귀는 여느때처럼 무방비로 어둠의 적막을 고스란히 전달했다.

냄새.

냄새가 필요했지만, 물 속에서처럼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어둠은 끈적하고 무거웠다.

목소리가 나지 않을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어서 나는 작은 비명조차 낼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그림자는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는 내게 다가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좁은 우리에 갇힌 맹수처럼 내 앞을 좌우로 왔다갔다 하면서

나를 위협할 뿐이었다.

 

두터운 어둠속에서 그의 목소리가 아무런 매개체도 통과하지 않고

내 깊은 심장속에 울렸다.

 

나를 찾아오겠노라고.

하루도 빼놓지 않고 나를 완전히 사라지게 할때까지 찾아오겠노라고.

내가 완전히 사라지게 되면 내 껍데기는 영원히 죽지 못할 거라고.

지금의 현실을 시지프스처럼 반복하게 되겠지만 결코 희망은 없을 거라고.

 

나는 그와 싸우는 수밖에 없다.

160cm도 안되는 작은 키에 좁은 어깨, 장애가 있는 오른 다리를 이끌고

조용히 그와 맞서는 수밖에 없다.

 

여느때와 같은 일상의 피로가 나를 잠들게 한다.

나는 잠이 든다. 눈꺼풀이 천근처럼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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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6 20:50 2006/12/06 20:50

소울메이트

from 2006/12/06 14:51

하늘이 단단하게 얼어있었다.

햇볕조차도, 공중에 그대로 얼어있어 그저 얼음처럼 눈부시게 반짝일뿐

어떤 온기도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온기도.

 

너무 추워서 토할 것 같았다.

한걸음 한걸음 차갑고 단단한 공기를 체온으로 녹이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코끝은 이미 햇볕처럼 굳어져서 내것이 아닌 것처럼 얼굴에 매달려 있었다.

 

 

그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어.

하지만 곧 도착할거야.

 

 

어느날 일어나보니 모두가 죽어있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죽어있었다.

처음에는 몰랐다.

여느때처럼 냥이들과 식사를 하고 혼자서 아파트 단지안을 산책할때는

수위아저씨는 잠이 드셨구나...피곤하셨나보다 했다.

날씨가 무시무시하게 추워서 거리에는 아무도 없나보다 했다.

정말로 끔찍하게 추워서 나도 곧 집으로 돌아왔다.

 

3일동안은 몰랐다.

블로그 사이트에 아무 글도 업데이트 되지 않아도

네이버에도 다음에도 아무런 새로운 뉴스가 없어도

메신저에 아무도 새로 접속하지 않아도

혹은 모두가 자리비움으로 남아있어도

모두가 죽었을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보일러를 아껴 틀면서 이불속에 앉아 책을 읽고 냥이들 밥을 주고 인터넷 쇼핑몰을 구경하고

가끔은 12층 높이의 베란다에서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거리를 내려다 보았다.

하루에 8시간씩 규칙적으로 잤다.

 

아무도 내게 전화하지 않았지만,

어쩌다 잘못걸려오는 전화 외에는 원래 전화따위 오지 않았었다.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그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그는 오후 3시경에 3번 벨을 울리게 한 다음 내가 받기 전에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시 오후 7시경에 전화했다.

 

 

안녕, 나야.

...

 

개토는 살아있구나.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전화하고 싶었어.

 

 

갑자기 지구전체의 무게가 내게 전달되었다.

나는 지구전체를 '혼자' 받치고 서있었던 것이다.

그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몰랐었는데.

불쌍한 아틀라스처럼 지구전체를.

 

 

개토야, 나도 살아있어.

 

 

나는 그를 7년 전 시장에서 만났었다.

시장에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겨울잠같은 건 자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하루하루를 10년처럼 열심히 살고 있었다.

심지어 하루에 8시간도 자지 않았다.

 

모든 의미는 하나의 시공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 시공의 좌표에는 작은 점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모여들었다.

 

그는 나의 소울메이트였다.

그와 나는 시공의 좌표에 얼룩으로 조차 보이지 않을

작은 점들을 좌표밖을 향해 찍어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그 좌표의 어느 한 점에서 만난 것이다.

 

 

등뼈가 아파왔다.

나는 블랙홀의 입구가 된 것 같았다.

이불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나는 숨죽여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개토야, 우리 만나.

 

 

그는 먼곳에 살고 있다.

우리가 서로 만나려면 아주 많이 걸어야 한다.

 

나는 네이버 지도 검색으로 우리가 서로 만날 수 있는 지점을 차분하고 주의깊게 골랐다.

다리가 아프니까 나는 그보다 조금 덜 걷기로 했다.

우리는 수원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죽은 사람들이 곳곳에 죽은 짐승들처럼 놓여있었다.

썩지 않은 그들의 얼굴이 눈동자가 부드러워 보였다.

하나같이 손은 주머니에 넣은 채로 였다.

웃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이야기를 하고 있던 세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얼어있었다.

 

모두가 죽은 것이다.

순식간에. 눈깜빡할 사이에.

 

그리고 그와 나는 살아남았다.

 

너무 추워서 수원역근처에 있는 가게들로 들어가 보았다.

실내는 따듯해서 이미 사람들이 부패하기 시작했지만

생각처럼 냄새가 지독하지는 않았다.

나는 주인혼자 죽어있는 카페에 들어가 앉아서 그를 기다렸다.

 

주인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팔이 머리를 받치고 있는데

머리는 죽으면서 갸우뚱해진 듯 했다.

 

가게 안에는 온풍기가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그에게 전화를 걸어 그가 오고 있는지 확인했다.

 

10분 후면 도착할거야. 미안해.

 

 

죽은 주인 옆에서 커피를 만들었다.

커피데우는 기계안에 뜨겁게 말라붙은 커피를 닦아내고

다시 물을 내렸다.

커피향이 코안으로 스며들어왔다.

그리고 동시에, 역한 냄새가 급작스럽게 내 코와 머리를 강타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역한 냄새가 나는 가게 주인 옆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지구는 너무 무거웠다.

 

 

 

우리는 가게 주인을 복도로 옮겼다.

그녀는 더이상 창밖을 내다 볼 수 없는데도 여전히 팔을 굽힌채 였다.

가게 안에 있었는데도, 그녀의 몸은 나만큼 차가웠다.

 

 

우리는 카페의 3인용 의자에서 옷을 벗지 않고 긴 섹스를 했다.

그의 차가운 손이 루즈한 내 검은 스웨터 안을 헤매다녔다.

나는 아주 가만히 울면서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을 그저 받아들였다.

 

허리가 부드럽게 들리고 머리처럼 배 아래쪽도 무겁게 바닥을 향해 흘러내렸다.

그의 성기가 아주 뜨거워서 나는 흠칫 놀랐다.

사실은 그것이 뜨거워서, 마음이 놓였다.

 

 

담배는 맛있었고 나를 피곤하게 만들었다.

 

 

맞은 편 소파에 앉아 그가 말했다.

 

 

나는 너의 19세기적인 어깨때문에 살아있어. 그리고 너의 촉촉하고 서늘한 눈때문에,

그리고 또 그리고 또 그리고...

...

 

살아있다는 건 좋은거야.

 

 

 

나는 그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살아있다고 해서 좋지 않았다.

 

 

그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머리를 움직여 그의 손길을 거부했다.

 

그리고 카페 밖으로 나와 다시 내 방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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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6 14:51 2006/12/06 14:51

햇볕에 불타는 저 분

from 사진 2006/09/29 15:15

저 분의 이름을 모르겠다.

하늘에 사는 신이거나 왕이거나...뭐 그런 분일텐데...

지지난주에 수원에 있는 절에 갔었는데

저녁 볕에 불타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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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9 15:15 2006/09/29 15:15

나는 부주의하다.

타고난 것으로 대체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도록 부주의하다.

전형적인 부주의함이다.

부주의함의 스테레오타입.

버스를 타면 내려야할 정류소를 지나치고,

손에는 항상 물건을 가득 들고 있어서 번갈아가며 떨어뜨린다.

칼을 들면 꼭 손을 베고 먹을 때는 잘 흘리고

'저러다 꼭 ~하게 되지~'하고 남들이 말하는 모든 것을 나는 현실로 행한다.

 

부주의한 만큼 거짓말은 못한다.

부지불식간에 진실을 말해버리니까.

 

어쨌든 부주의하다.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은 내게 칼을 주지 않는다.

 

예스24에 5만원이나 되는 쿠폰이 있어서 이번달 초에 그걸로 책을 샀다,

9월 말까지만 쓸 수 있는 쿠폰이어서 생기자 마자 신나게 썼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부주의하게도 쿠폰 쓰는 것을 잊었었다.

 

쿠폰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친구를 통해 알게되었다.

 

나는 없는 살림에 5만원이나 카드를 긁어 책을 샀던 것이다.

쿠폰은 친구가 아니었으면 그냥 날릴 뻔 했다.

 

덕분에 이번에 그 쿠폰으로 책을 5만원어치 더 샀다.

안타까운 것은, 그 와중에 또 받을 수 있었던 천원쿠폰을 받고도 또 쓰지 못한 것이다.

 

다행히도 이번에 산 5만원어치의 책들은 모두 반짝반짝 건강한 비늘이 눈부신 월척들이었다.

두 손 가득 살아 펄떡이는 책들의 둔중한 무게는 가슴을 오래도록 설레게 한다.

 

이번에 산 책들은,

1. 임신캘린더 /오가와 요코/김난주 옮김/이레출판사

2. 초콜릿칩쿠키살인사건 /조앤플루크/박영민 옮김/해문출판사

3.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가르시아 마르케스 /송병선 옮김/민음사

 

그리고 그외 3권(한권은 아직 읽지 못했고 두권에 대해서는 흠....), DVD 한개.

 

감동먹은 책은 임신캘린더와 초콜릿칩쿠키살인사건.

 

여자가 아니면 쓸 수 없는 두권의 책.

행복한 내 속에 있는 깊은 절망을 차갑게 녹이면 이렇게 되는 구나...

따듯하게 녹이면 이렇게 되는 구나...

 

어린시절 우리집에 있던 100권짜리 한질의 세계문학선집에서 여성작가가 쓴 책은 단 두권.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언덕', 샬롯 브론테의 '제인에어'.

그 전에도 이후로도 내가 읽은 수천권의 책들은 대개 남성작가의 것들이었다.

 

책을 읽으면 남성과 여성이 어떻게 다른지, 그들이 보는 세계가 어떻게 다른지

참으로 극명하게 드러난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같은 책은, 여성은 죽었다 깨나도 쓸 수 없다.

 

두 권의 책을 내 아끼는 책 분류 책꽂이에 꽂고 보니

여성작가가 처음 들어왔다.

흠칫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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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8 16:27 2006/09/28 16:27

from 사진 2006/07/06 15:34

요새는 길에서 흙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가로수 아래에 갇혀있는 흙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흙은 넓어야 흙다운 것 같다.

 

뻘이,

넘쳤던 파도와 함께 밀려와

아스팔트가에 얕게 앉았다가 말라간다.

 

가까이 카메라를 들이대니 말라가는 모습이 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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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6 15:34 2006/07/06 15:34

닻과 새끼닻

from 사진 2006/07/06 15:28

닻이 있고 옆에 새끼닻이 있다.

엄마닻에게서 바닷물과 바람과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엄마닻이 예쁘다.

새끼닻은 엄마닻에 비하면 정말 여리여리하구나...

 

그래보여도 맞으면 죽음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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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6 15:28 2006/07/06 1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