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커리즘, 혁명을 부른다

IT / FOSS / 웹
거창한 제목을 단 것에 일단 땀 한번 -_-;;

  책 한권 소개해 드립니다.  신간은 아니고요. 2002년에 초판이 나왔네요.

 얼마전에 서점에 가서 두꺼운 기술서적과 딱딱한 사회과학서적을 고르고는, 한정된 돈을 어떻게 사용할까 고민을 막 했습니다. 짜장이냐 짬뽕이냐를 고민하듯 심각하게

 그러다가 볶음밥을 선택했습니다. 우연히 지나다 이 책을 발견했죠. 제목은 들어봤으되 해커들의 신변잡기나 성공담 뭐 그런 내용인줄 알고 (그리고 제목을 잘못 붙였어요 ㅋ) 머 나중에 여유있을때 보자. 그랬던 거였죠.

최근 내 생각과 지향점이 지금 있는 곳과 많이 다르다는 고민에 싸여 있었고, 그래서 내 고민의 출발점은 어디였을까, 난 어디서 시작해서 지금 이 곳에 있는 걸까를 생각하는 참이었습니다.

꼴통 보수 근검 늙은 청년이 대1때 된통 뒤집힌 후, 1년 가까운 방황 중에 접한 것이 GNU, 자유소프트웨어 철학, 그리고 리눅스였습니다. 생각은 바뀌었으나 몸에 밴 것이 남아 있어 학생운동진영에 좀처럼 합류하지 못하던 저에겐 일종의 탈출구와도 같았던거죠. 컴맹의 무모한 도전이 시작됐습니다.

자유소프트웨어 철학, 혹은 운동, 오픈소스, 카피레프트, 그리고 해커리즘. 그때까지 갖고 있던 가치관, 세계관을 뒤엎고 새로 구성하는 시기에 접한 이런 이야기들은 저를 강렬하게 사로잡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부터 그런 철학, 주장들을 "기술"의 영역으로만 사고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회의 구조, 관계 모든 것에 이 모델을 적용하려고 했던 것이죠. 하지만 바탕이 짧아 구체적인 성과로 나오진 못하고 그저 멍한, 막연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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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해커하면 "기술"을 떠올립니다. 해커는 뭔가 신비하고, 이해할 수 없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보이거나, 지금의 시대에 특별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그룹이라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무책임한 이상론자이거나 위험천만한 인물로도 여겨집니다. 그들은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단지 이 자본주의 속에서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자그마한 파열음을 낼 뿐이다... 라고도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사람을 두 분류로 나눈다면 어떨까요? 컴맹과 컴도사? ㅎㅎ 사실 많은 분들이 스스로를 컴맹이라고 여깁니다. 실패의 두려움을 유독 심하게 느낍니다. "컴맹"이 얼마나 광범위한 중간 영역들을 가지고 있는지 ... 기술에 대한 오해와 두려움은 기술로 활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오해와 두려움으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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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기술"이 나오지 않습니다. 해커가 어떻게 특이한 말과 행동, 생활패턴을 갖고 있는지도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방식이 자본주의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어떻게 다른지를 얘기합니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에 기반한 가치관- 근면, 성실, 자기 개발, 헌신-을 내재한 사람들의 노동이, 비록 다양한 모습으로 굴절되고, 내부적으로는 파열음도 있으나 궁극적으로 이 세상을 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프로그래밍하는 사람들, 사실 모든 사람이 프로그래머입니다. 스스로의 가치 판단 회로를 계속 조정해 나가죠.

해커의 "게으름", "자기 중심적"인 면들, 분명 지금의 지배적인 가치관으로 봤을때는 "바람직하지 못한" 것입니다. 자본-권력이던, 활동-저항 세력이던. 하지만 사실 그 두 영역의 공통점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두 영역의 충돌이 전체적으로는, 장기적, 근본적으로는 이 세상을 "계속 그대로" 흘러가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요? 이 책의 저자들은 "프로테스탄트 노동윤리"를 "해커윤리"가 대체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노동시간은 계속, 점차적으로 짧아집니다. 법적으로는. 하지만 "진짜" 노동시간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혹시 요즘 여가를 어떻게 보내시나요? 여가가 있긴 한가요? 일을 하지 않을때도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위해 노력하진 않나요. 집에서 밥을 먹고, 잠자리에 들때 "일"에 대해 생각하진 않나요? 우리가 획득한 "비노동시간"에 과연 우리는 얼마나 주체적으로 설계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걸까요. 해커들은 일할 때 놀고, 놀때 일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의 삶 자체를 주체적으로 설계하고파 하는 사람들입니다.

해커들의 철학이 사실 알고 보면 굉장히 변혁적이고, 운동진영과 함께 할 수 있는 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벽이 가로막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첫째로 해커리즘을 희석시키고 "기술적으로"만 활용하려는 자본-지배 계급의 시도들. 그리고 운동진영의 해커에 대한 오해와 편견 - 엘리뜨주의, 기술중심적 사고등. 그리고 지금의 한국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가치"들 (내면화된 자본주의적 가치들 - 프로테스탄트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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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해커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깨뜨리기 위한 작업을 본격적으로 해 볼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모든 운동하는 사람들은 다 해커입니다. 이건 제가 과도하게 일반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정의 그대로입니다. 세상의 진실을 탐구하고, 스스로 주인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것을 모두와 함께 나누려는 사람들.
하지만, 안타깝게도 꽤나 열린 사고를 가지신, 앞서나가는 분들중에도 해커, 해커리즘, 핵티비즘에 대한 오해가 지배적인 것 같습니다.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NeoScrum 님의 책 "내가 춤출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에서도 "해커의 운동"을 "기술 엘리뜨의 운동"으로 소개해주고 계십니다. 물론 한정된 지면에 골라골라 넣으시다 보니 그랬겠지만, "기술적으로 보통이거나 거의 없는 해커" - 소위 "중간, 일반 해커의 일상적 운동"이 감춰져 지금의 간극을 더 넓히는 결과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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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이 너무 길었는데 하여간 꼭 한번 읽으시길 권합니다. 너무 길지도 않고 어려운 기술 얘기도 없어 지하철에서 틈틈이 읽으셔도 며칠사이에 다 볼 수 있는 책입니다. 빌리길 원하시면 당근 빌려드리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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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7 15:12 2006/07/07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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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음 2006/07/07 16:09 URL EDIT REPLY
게으르고.. 자기중심적이다.. 왠지 내 얘기 같은데... ㅠ.ㅠ 암튼 재밌겠네요.
뎡야핑 2006/07/08 01:36 URL EDIT REPLY
해커 완전 부러워요;ㅁ; 나도 어디어디 홈페이지 좀 폭파시켜봤음 소원이 없겠네
지각생 2006/07/11 02:43 URL EDIT REPLY
지음/ 맞아요. 지음 얘기임. ㅋ 꼭 읽어보삼
덩야핑/ ㅎㅎ 살벌하심. 혹 어디, 어디 구체적으로 찝어놓으면 혹 지나가던 사람이 대신 폭파시킬지도 모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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