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사회운동
부끄럽게도 내가 속한 조직에서 나는 "리더"의 껍데기를 둘러쓰고 있다. 물론 역량, 경험, 그리고 그 외의 것들(한국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나이"등)이 모두 부족한 풋내기라 어설프기 그지 없다. 그렇기에, 그리고 소위 지도부에 대한 신경질적인 경계심을 가지고 있고, 작년까지만해도 속한 조직의 권력자에 대한 비판에 열올리던 사람이기에 리더, 지도부는 어찌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안할 수 없다.

고민은 하지만 당연히 답은 안나온다.
처음에는 리더는 그 조직의 비전을 담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능력이 뛰어나면 보너스고 그저 사심 없고 이상으로 가득차 있고, 사람에게 잘 하는 사람이면 된다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의 몫이라고. 리더는 그냥 모두가 필요할때 그 비전을 꺼내(?)볼 수 있으면 되겠다고.
근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일단 "조직의 비전"이라는걸 의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과연 조직의 비전이 하나로 모아질 수 있는 건가? 그게 특정한 때, 상황에서 모아져 표현될 수는 있으나 그게 계속 굳어져 갈 수 있는 걸까? 그게 좋은걸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조직 내부에서 논의하며 굳어진 확신이기도 한데, 결국 각자 활동가들이 갖고 있는 생각들, 그게 모두 조직의 비전이며, 하나의 정리된 무언가, 언어로 표현되길 요구될때 서로의 파장을 잠시 맞춰 공명하면 되는 것이다.

그럼 지금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리더는? 계속 밀어붙이는 생각인데, 각자의 리듬을 살려주는 사람이다. 모두의 가능성을 키워주고, 발현하도록 자신감을 심어주면서, 아직 고조기이면 더 띄워주고, 저조기면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 그러기 위해서는 조용히, 내부를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경계를 열고, 자연스러움을 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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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조직의 리더가 됐다면, 그 사람은 그 조직과 떼어내서 생각할 수 없다. 그 사람이 어디서 하는 말과 행동, 생각이 그 조직의 그것으로 생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내부 논의를 마치지 않은 것에 대해 이야기 할때는 반드시 적극적으로 그 사실을 밝혀야 한다. 사실 나도 처음에 이 문제로 많은 비판을 당했는데, 어디 가서 내 생각을 함부로 얘기하다가 위험한 적이 몇번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설픈 풋내기 리더이지만 조직 전체의 의사로 인식될 수 있는 말은 함부로 하지 않고, 말할 경우 아직 논의 안된 개인 생각임을 분명히 밝힌다.

그런데, 나보다 경험도 많고, 지식도 풍부하고, 나이도 있어 조금은 더 현명하실 분들께서 어찌 계속 조직과 따로 움직이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게 그들 개인의 명예욕, 권력욕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건 오히려 문제를 감추는게 될 것 같다. 조직 내 민주주의가 아직 내실이 부족한 곳이 많다는것, 그리고 리더에 대한 관점의 차이, 리더가 실무와 분리되어 있는 문제, 나아가 운동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그리고 지금 지배적인 운동 조직의 위계제 등을 문제 삼을 필요가 있겠다.

조직 외부에 있는 대표라면 자신의 역할과 상황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필요하다. 조직에 대한 과도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면 스스로 조절하고, 조직의 활동 과정에서 요구되는 역할만 수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조직과 무관한 활동을 벌이다 조직이 그것에 끌려가게 되는 형태가 되서는 안된다. 나는 이것의 폐해를 몇년전 환경운동 리더들에게서 보았다. 소극적으로 위치할 필요는 없지만 절대로 따로 움직여서는 안된다.

조직 내부에 있는 대표는 조직내 민주주의를 내실있게 하고, 외부와의 연결통로로서 자신의 위치를 분명하게 한정해야 한다. 자신이 무언가 큰 비전을 제시하고 조직을 끌어간다고 생각하지 말고, 실제 움직일 사람들의 활동이 서로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내부 조율에 힘쓰는게 낫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것은 내부 회의여야 하고, 그 외에는 그 결과만을 말한다. 그리고 대표로서 많은 부담과 자체 업무가 있겠지만, 부담을 좀 줄인 상태로 작게나마 하나의 실무를 맡고 있는게 낫다. 이건 대표 스스로 활동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며, 조직내부 조율과 외부 관계 설정 모두에 이로움을 줄 거라고 본다.

사실, 이것들은 지도부들이 스스로 수양해서 될 문제만은 아니다. 한국 운동권이 아직도 80년대의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유일한 성공 사례 - 그나마 겉으로 보이는 모습들 - 모델로서 그것을 채택하고 있는 이상, 그래서 대표에 대한 힘의 집중을 자연스럽게 여긴다거나, 전통적인 조직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실천을 하지 않는 이상 어려운 문제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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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이번 77인의 행동은 비난받아 마땅하며, 그건 그 사람 개인 문제도 있고(분명히 권력욕, 명예욕으로부터 자유롭다고는 못할터) 지금 운동진영의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제발 희망을 이 안에서 꺾이게 하지 말아달라. 간절히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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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10 19:50 2006/09/10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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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g 2006/09/19 11:41 URL EDIT REPLY
저도 "장"을 맡고 있는데, 한번도 "리더"라는 생각은 못해봤어요. 게다가 지각생께서 말씀하신 "역량, 경험, 나이" 에 더하여 "한국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성별" 까지도 풋내기 취급을 받기 일쑤인(스스로 거지취급하기도 일쑤인) 지경인데... OTL
하튼 조직 내부에서 사람들의 활동이 서로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라는 말에 이백프로 공감합니다. 근데 그게 젤로 어렵고, 그런 역할을 따로 둘 필요가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좀 복잡스러워요. 겉으로는 '일년은 더 해라' '싫어요' 뭐 이러고는 있지만, 회원들과 함께 이런 얘기를 좀 나누기 시작해야 할텐데요...
지각생 2006/09/19 18:07 URL EDIT REPLY
아, 그렇죠. 말로 하면 참 좋은데 실제로 하긴 어렵죠. 역할을 따로 두지 않아도 되면 가장 좋다고 생각하고요, 역할을 맡는 사람이 있다해도 온전히 그것에 묻히는 건 좋지 않다고 봅니다. 한 사람에게 떠맡길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해야할 것이고, 그걸 누군가가 촉매 역할을 한달까요? 적어도 자주 순환되고, 다른 일도 맡으면서 함께 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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