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은 서로 돕는다

사회운동
왠지 앞서 포스팅들하고 연관되는 것 같네. 기대기 3부작입니다. ㅋ

글을 삭혀놨다 내놓고 싶은데 더 중요한 건 지금 내게 필요한 걸 잊지 않는것이다.
작년쯤에 샀던 것 같은데 이제야 거의 다 읽어가는 책을 소개합니다. 책이 어렵거나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그저 단순히 산만할 뿐임

크로포트킨의 "Mutual Aid: A Factor of Evolution". 한국어판의 제목은 "만물은 서로 돕는다"

지금 내가 하려는 것을 너무나 절묘하게 뒷받침해주는 생각이 담긴 책입니다. 벌써 작년 얘긴데 한다 한다 해놓고 손 놓고 있었던 "정보통신활동가네트워크" 만들기. 뭐 사실 지각생이 뻥친게 좀 더 있긴 한거 같아요. 하지만 안 한게 아니라 단지 늦을 뿐입니다. 그 기간이 1년이라는데 좀 심각성이 있지요. :D

상호지지와 연대. 서로 돕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 신자유주의 광풍이 몰아치는 한국에서 "서로 돕는다"는 것은, 어떤 "대가"를 바라고, 배타적인 이기심의 한계 안에서 거짓을 뒤집어 쓰고 하는 행위로 의심받기 십상입니다. 서로 경쟁하고 투쟁해서 "잘난놈이 살아남는다"는 선전이 온갖 미디어에 넘쳐납니다. 일반 대중뿐 아니라 좋은 세상 만들겠다고 운동하는 사람들조차 서로 돕는게 점차 어색해지나 봅니다.

역사를 통해 국가권력은 사람들의 자발적인 조직, 상호 부조의 문화를 깨뜨리고 "공공성"의 가치를 독점해 왔습니다. 계속 변화하고 스스로 만들어가는 인간으로서 서로 기대고 주고받는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이제 국가와 가족말고는 아무 대가없이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합니다. 지금 한국은 미국을 닮아가 가족주의와 국가주의가 모든 "공공선"을 대표하는 것이 되어 갑니다. 서로 믿고 자발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들은 지속적인 안팎의 압력을 받습니다.

독점했으면 제대로 하던가요. 주택, 의료, 교육을 비롯해 인간이 기본적으로 누려야할 서비스들을 정작 개인들에게 맡겨놓은 한국과 같은 정부는 스스로 공공성을 얘기할 자격이 못됩니다. 질서를 얘기하며 경찰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찍어누를 자격이 없고, 악플을 제재하겠다고 인터넷 실명제를 모호한 기준으로 강요할 자격이 없습니다. 공유할 수 밖에 없는 지식과 정보를 "지적재산권법"으로 억지로 차단할 수 없습니다. 점점 나빠지기만 하는 제도들. 그건 당연한 겁니다. 애시당초 국가가 할 수 없는 것을 스스로 자임하는 꼴이니까요.

과연 사람들은 내버려두면 서로를 파괴하기만 할까요? 그렇지 않다는걸 사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어디서 그런 얘기를 쉽게 하진 않습니다. 그건 "현명"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니까. 사람이나 모든 생명이 서로 도와가며 자발적으로 조직해 살아간다는 것은 먼 옛날의 추억이거나, 유토피아를 말하는 사람이 지어낸 이야기거나, 윤리를 말하는 따분한 이야기로 들립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저 듣기 좋은 딴 세상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자연을 관찰하고, 역사를 재조명해본 결과 상호투쟁을 앞서는, 넘어서는 상호부조의 원리가 이 세상을 채우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동물들은 어떻게 서로 돕는가? 옛날 사람들, 중세, 근대 사람들은 어떻게 서로 돕고 지금의 세상을 만들어왔는가? 이 책이 쓰여진지 100년이 넘었지만, 그리고 그 사이에 너무나 많은 것이 변했지만 사실 지금도 그런 "서로 돕는" 본성은 잘 드러나지 않고 왜곡되어 있을뿐 언제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게 바로 이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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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을 하면 막막함을 많이 느낍니다. 이쪽 사람들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가치, 그래서 그것에 기반한 생각들, 현실을 이해하는 관점들이 다른 어떤 사람들과는 너무나 많은 차이를 가지니까요. 흔히 운동하는 사람이 어려운 말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네 실제로 그런 분 많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경우에는 이야기 자체가 어려운게 아니라 기본 전제 - 말하지 않아도 서로 공유한다고 생각하는 수준의 전제가 다르거나, 거기서부터 출발해 지금의 이야기로 오는 과정에서 숱하게 덧칠된 메시지들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차이의 아득함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느 경우에는, 활동하는 사람들이 그런 차이를 넘을 수 없는 어떤 근본적인 차이로 인식하거나, 그 차이를 넘기 위한 지난한 소통과정이 너무나 힘들 것이기에 그걸 포기하거나 우회하는 방법을 많이 채택하는 걸로 보입니다. 숭고한 장엄미, 비장미로 가득한 메시지로 사람들의 감성을 움직여 와락 끌어댕기려는 방식이나 대국회, 법률 투쟁에만 집중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문제를 해결할 여지를 없애고 단지 대리해서 혜택만 던져주려는 방식, 등 뭔가 직접적인 소통을 포기하는 듯한 운동 방식들.. 하지만 정말 그런게 필요한게 아닐까 합니다. 서로의 생각의 바탕을 이루는 전제를 건드리고, 그 위에 덧씌워진 "지배선전" 메시지들을 걷어내는 과정. 원래 자연스러웠던 가치들을 다시 회복하고 지금에 맞게 구체화시키는 활동.

아, 이야기의 주제에 맞게 돌아와서 (지금 바로 나가야되기도 하고. 아 또 꼬이네)
여튼 이 책을 읽으면 지금껏 교육 받았던 역사는 한쪽 면만을 바라본 역사입니다. 반쪽역사라 할 수도 없고, "반쪽의 표면 역사"라 하겠습니다. 실제로 중세 도시에서 일어난 일들은 무엇인가? 대체로 아는 것처럼 종교와 전쟁 이외엔 아무것도 없는 암흑의 시대인가? 아니면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여 자치도시를 운영하며 이후 과학문명 발전의 근간이 되는 많은 실증적 연구를 한 시대인가? 이기적인 조직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길드"는 정말 그런 것이었는가. 아프리카에서, 러시아에서, 아시아에서, 언제 어느 곳에서나 늘 있었던 "자발적 협력". 그것은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 교육에는 잘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학교에서는 왕들의 이야기, 전쟁의 이야기만을 말할 뿐. 그리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인간의 속성 - 권력과 지배, 전쟁 - 이라고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너무나 당연해서 굳이 말하지 않는 것들을 이제는 소리내어 말하고, 어려운 말이 아닌 짧고 분명한 말과 실제 행동으로 서로 돕고 사는,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는, 공동체의 문화를 다시 만들어 가는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한 부분을 인용하는 걸로 일단 여기서 이 책 소개를 마치겠삼. -_-
알제리와 튀니지에 사는 "카바일족"의 이야기. 1867년에서 1868년의 기근 동안에 그들은 혈통을 구분하지 않고 자신들의 마을로 피난처를 구하러 온 사람들을 모두 받아들여 음식을 나눠줬는데 델리스 지방에서는 그런 사람들이 만 2천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알제리 전역에서 사람들이 굶어죽을때 카바일 지역에서는 굶어 죽은 사람이 한 건도 없었다고 하죠. 어떻게 그들은 그럴 수 있었을까요. 어려울때 어떻게 협력해 식량을 생산하고 수 많은 외부인을 받아들여 함께 사는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건 그들이 오랫동안 상호 협력과 나눔, 공동 작업의 문화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이걸 현재의 "국가"들이 이들보다 잘 할 수 있을까요? 절대 그렇지 않을 겁니다.

우리 안에서부터 다시 그런 상호 지지와 연대, 협력과 공존의 문화를 회복하고 진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노력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나쁜 면만 거론할 수 없죠. 실제로 우리는 지금 함께 힘을 모아 연대해서 싸우고 있습니다. 이랜드-뉴코아 비정규직의 싸움이 결국 모든 업종, 모든 이와 관련된 일이라는 걸 알고 함께 싸우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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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3 18:24 2007/08/13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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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건 2007/08/16 02:05 URL EDIT REPLY
책을 깨끗하게 봐서 머리속에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더니... 뻥쟁이 지각생 ㅋㅋ
지각생 2007/08/16 10:52 URL EDIT REPLY
이거 쓰느라 계속 책을 뒤적였지 ㅋ 그래서 오래걸린거삼.
녀름 2007/08/17 14:15 URL EDIT REPLY
전부터 읽어야지 했었는 데 ㅋ 더 읽고 싶어지네요
지각생 2007/08/17 16:13 URL EDIT REPLY
ㅎㅎ 꼭 읽어보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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