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들어서고, 신발을 벗으며 들리는 목소리. 아차...
자연스럽게 행동해야해. 시계를 보니 20분이 지났다. 이정도면 내가 회의에 맞춰 온 걸로 알겠지.
30분에서 한시간, 지각생타임이다. 이정도면 양호해.
아침을 늦게 먹고 점심도 늦게 먹었지만 자전거타고 오는동안 배는 늘 다 꺼진다.
문에 들어설때 내 손엔 떡볶이가 있었다.
일단 방에 들어와 잠깐 망설인다.
혼자 먹을 것인가, 회의하는 사람들과 같이 먹을 것인가.
10.5초 고민 후 아주 자연스럽게 원래 그럴려고 했던 것처럼 떡볶이를 갖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눈치채진 않은듯.
----
잊어먹고 있던 회의라 제대로 참여할리 만무하다.
하품나고, 허리가 아프다. 사람들이 반짝반짝하니 굳이 내가 나서 어지럽힐 필요가 없다 싶고, 홈페이지 얘기하다 몇마디 했으니 회의 들어간 이유는 찾았다.
슬쩍 나와서 방에 들어가 엎드려 있었다.
요즘 몸이 어째 영 무겁다. 종아리가 약간 뭉친듯 하고, 허리가 살짝 아프다. 머리를 박은채로 잠깐 있다가 회의끝나는 분위기에 맞춰 나갔다.
밥먹으러 간단다. 아침 늦게 먹고, 점심 늦게 먹고, 간식까지 먹었으니 별로 배가 고프진 않았는데, "저희 칼국수 먹으러 갈건데..." 뒤로 돌앗.
칼국수 먹으러 가면서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과 통성명. 지각생입니다. "아~"
절 아세요? 블로그에서 몇번 봤습니다. IT노동자. 전에 "분노"의 포스팅을 한걸 봤습니다. 아마 이걸 말하는 듯 싶다.
어쨌든, 온라인에서 날 안다니 반갑다. 사람 좋아보인다. :)
칼국수집에 들어가서 다른 한 사람과도 통성명. 지각생입니다. "아~"
절 아세요? 블로그에서 몇번 봤어요. 네. 두 사람 모두 블로거 지각생을 알고 있다. 내가 인기블로거라고 말해주신다. 예전같으면 입이 찢어져 꼬매야겠지만 이젠 살짝 피식 웃는 정도. 기분이야 물론 좋지만. 요즘은 블로그에 스스로 뜸하니.
----
모처럼 밥먹으며 신나게 떠든다. IT노조, IT노동자에 대한 얘기로 시작해, 정보격차, 정보통신활동 등, 내가 관심있는 주제로 계속 얘기가 진행됐다. 앞으로 사람 만나면 더 적극적으로 얘기를 꺼내려고 생각한 것도 있지만, 이분들이 참 좋은 분들이다. 보통 열에 일고여덟은 정보통신관련해서 오래 얘기하길 싫어하는 것 같고, 나도 억지로 화제를 주도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이렇게 길게 얘기한적이 거의 없다.
지각생은 보통 질문하는 사람이다. 얘기하는 기술의 문제일지 모르지만 내 관심사가 주 화제가 되거나, 나에 대한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은 예전에도 그랬고, 요즘에 내 주위에 있는 숱한 사람들 중에도 거의 없었다. 나는 사람들이 알고 싶고, 새로운 것을 접하고 싶은데, 사람들은 별로 나에 대해 알고 싶지 않고, 내 관심사를 피곤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앞으로 어떡해 할거냐고 물으면 당연히 답하기 곤란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물어주면 고마울텐데.
----
홈페이지를 만드는 워크샵을 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날짜를 박고 한 건 아니지만. 거창하게 안하고 대여섯명만 모여도, 서로 같이 모니터 보고 직접 해보면서 익히는 식으로 할 거다. 각자 어느 정도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있으니 그렇게 팀으로 배우면 각자 하고 싶은, 잘 맞는 부분을 찾아 서로 가르쳐주면 된다. 이렇게 하려면 몇주에 걸친 긴 교육도, 전문강사도 굳이 필요하지 않다. 각자 비어있는 막혀있는 부분을 살짝만 넘도록 서로 도와주면 나머진 대부분 할 수 있으니까. 조만간 정보통신활동가 메일링리스트로 뿌릴 생각.
급진적인 프로그래밍 그룹 얘기가 언뜻 나왔는데 다들 그 표현이 재밌어 웃었다. 급진적인게 뭘까. 열흘에 만들걸 하루에 만드는 법을 연구하는 모임이냐. 간만에 내 우스개에 사람들이 까르르 웃었다. 이 사람들 정말 좋은 사람들이잖아. :) 컴퓨터 동작원리를 설명하는 게 의외로 재밌었다. 컴퓨터를 일로 하면 재미없지만, 그냥 취미로 알아가면 참 재미있다는 것을 확인했달까? 여튼, 밥을 맛있게 먹고, 사람들은 헤어졌다. 난 쓸 글이 두개가 계속 밀려 있어 오늘은 밤을 새려한다. 그러고보니 내일 발제할 것도 있고, 기획서 쓸것도 있잖아.
----
내 블로그를 통해 나를 안 사람들. 그들과 만나는 건 신기하면서, 최근 내가 쓴 글들이 머리를 휙~하고 스쳐간다. 최근에 징징거리는 글을 조금 썼는데.. 중얼거리며, 블로그의 나와, 오프라인의 나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내 블로그가 나를 드러내는 수단이었다. 오프라인에서 할 수 없는 것들, 제약들을 넘어 그래도 좀더 솔직하달까 "질러대는" 말을 할 수 있어 좋긴 했지. 그런데 살짝 거리를 두는게 역시 좋겠다. 나를 블로그와 오프라인을 통해 모두 알고 연결시키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내 블로그는 점점 부자유스러운 공간이 되어 간다. 가장 하고 싶은 얘기, 사람들의 피드백을 듣고 싶은 얘기가 있건만, 그런 얘기를 이곳에 할 수 없게 돼버렸다. 그렇다고 다른 곳에 또 블로그를 만드는 건 귀찮고.
그래서 좀 답답하다. 뭐 내가 그렇게 만든 거니 어쩔 수 없다만.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 뜨겁다 못해 데인 여름이 정말 갔다.
노래 올립니다.
이제 올리고 글 쓰려 했더니 다시 기타치고 싶어지네. 헉, 설마 벌써 가을 모드. 아냐아냐 오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