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를 맘편히 즐기게 해달라

사회운동
토고 이겨라! 앗싸, 일 대 영! 그래 그거야~~

토고를 응원했다. 한국팀이 이기는게 싫어서가 아니었고, 월드컵의 열기가 빨리 식기를 바래서만도 아니다.

최근 TV를 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대리만족 드라마도, 코미디 프로도 못 볼 만큼 하루 왼종일이 빡빡한데, 요 근래 얼핏 잠깐, 지나가다 TV를 봤다. 알려진대로 거의 하루 종일 월드컵 방송이니 더 안보게 되고, 그때도 보려고 본게 아니었는데 눈길이 조금 쏠렸다.

무엇때문인지 당최 모르겠으나 토고에 대해 알아야한다! 는 분위기도 조성되고 있었고, 그래서 토고에 대해 살짝 소개해주고 아요바도르던가? 그 "요주의 선수" 인터뷰를 담은 내용이었다. 내가 관심이 간 것은 흙바닥에서 재밌게 공을 차는 토고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한국도 변변한 잔디 구장 없이 축구하던 것이 그렇게 오래 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지금은 꽤나 풍족한 환경에서 뛰지 않을까하는데, 거기 사람들은 지금도 흙먼지 풀풀 날리는 데서 신나게 차고 달리고 하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여주면서 하는 말이, "토고의 일인당 GNP는 얼마며(엄청 낮았다), 이번 출전을 위해 국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았다 합니다"

그렇게 가난한 나라의 선수들, 이번 월드컵을 통해 두각을 드러내 유럽등에 진출하는 개인적 기대는 있을 수 있겠으나 그래도 더 우선적인 것은 "게임을 즐긴다"는 것이다. 토고 사람들이 없는 살림에 돈을 모아 월드컵 무대에 선수들을 보냈을때, "느그들이 잘해 국위를 선양해야 우리가 좀 더 먹고 산다"고 해서 보내진 않았을 거다. 물론 전혀 없다고 하면 지나친것이겠지만, 한국만큼 심하진 않았을 것.

경기에 졌다. 하지만 토고 선수들은 주저 앉지 않더라. 침울해하지도 않고 (기분이 마냥 좋진 않았겠지만) 관중들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줬다. 그 순박한 모습들. 조금 좋게만 묘사하면 가난한 나라에서 축구를 즐기다 월드컵 무대에 나와 세계의 사람들과 똑같은 룰, 환경에서 축구를 하고는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상대적으로 말이다. 딴지 사절 -_-)

반면 한국은 2:1로 역전하고 시간이 얼마 안 남자 아주 추잡한 더티 플레이를 시작했다. 토고는 10명이라 한명의 몫을 더 뛰어야 하니 체력이 더 바닥났을 거고 한국은 그나마 조금 나았을 거다. 그런데도 열심히 끝까지 뛰기 보다는 공만 계속 돌리며 시간을 끌었다. TV를 보다 그만 욕지꺼리가 나올 뻔했다. 사실 한국의 더티 플레이는 "우리편"이라는 이유로 중계팀이던, 주위 사람들이던 좋게만 얘기하니 그냥 넘어갔었고, 지난 월드컵때는 나도 별 생각없이 "대~한민국"을 외쳤으니 다른 나라의 반칙을 뭐라하며 한국팀 반칙은 용서(?)해 줬을뿐, 심각한 수준이다. (누군가 쓰러져 있는데도 한참 공을 가지고 있다가 야유가 나오니 그제서야 밖으로 찬다.)

월드컵은 축제가 맞다. 지구의 곳곳은 서로 경제사정, 문화가 다르고 인종과 민족의 편견이 가르고 있고 강한 나라와 약한 나라의 불평등한 위계 구조가 있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이 같은 곳에 모여, 같은 규칙에 의해, 같은 목적의 게임을 즐긴다. 정말 "페어플레이"가 행해지고, 인종 민족간 차별이 완전히 사라지며, 강국의 횡포가 없는 게임이 된다면, 그리고 그것을 모든 지구인이 순수하게 그 자체를 즐긴다면, 월드컵은 정말 아름다운, 신나는 축제가 아니겠나.

물론 축구 자체의 성격이 전투적이고, 월드컵 종목은 남성만의 경기고 등등 여러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분명 그 게임 자체는 재미있다. 한국을 응원해야만 축구가 재밌는 것은 아니다. 어제 토고 응원하면서 양쪽 다 못해서 그렇지 게임은 재밌게 봤다. 경기를 보면서 내내 드는 생각은, "돈 많은 나라에서 풍족하게 훈련하고, 권력-자본-미디어가 죽어라고 띄워주던 (물론 한국축구선수들은 죄가 없다고 해야겠지) 애들이 가난하지만 게임을 즐기는 순박한 사람들을 마구 함부로 대하다가 비겁한 방법으로 승리를 얻고 나서는 자기들끼리만 신나 하고 오바질한다" 였다. 그래서 난 정말 내내 간절히 토고의 승리를 원했다. 월드컵때문에 다른 엄청나게 중요한 이슈들이 묻힐까봐 걱정해서도 아니고, 축구와 월드컵이 싫어서 빨리 열기가 식길 원해서도 아니다.

자, 난 이번 월드컵에서 기왕이면 가난한 나라, 가능하면 게임을 즐길 줄 아는 팀이 16강, 8강 올라가고 우승까지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 한국처럼 플레이 하는 팀은 (소심해서 다시 말하고 넘어가는데, 축구선수들을 욕하는게 아니라 그들이 승부에 집착하게 만드는 자본, 협회, 정부, 미디어를 욕하는 것이다) 절대로 16강에 올라서는 안된다. 그래서, 한국이 올라가서가 아니라, 정말 즐겁고 멋있는 플레이, 감동적인 플레이로 가득차서 즐거운 월드컵이 됐으면 한다. 모든 차별을 넘어 정말로 전 세계의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정말 축구를 좋아했으면 좋겠다. 축구를 좋아한다는 구실로 오바질을 하는게 아니고, 자본, 미디어, 정부의 발칙한 짓거리에 흔들리지 않고 정말 자신의 열정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월드컵이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렇게 정제된 "순수한 열정"이 계속 모여 정말로 모두를 자유롭게 하는 활동으로 계속 이어져 나갔으면 좋겠다.

그런 상상을 하며 다른 나라 팀간의 축구 경기를 본다.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평택, 한미FTA가 있으니까. 그래도 진정으로 모든 사람이, 한국인 그리고 세계인이 서로 "공명"하는 계기로서, 진정 아름다운 월드컵이 돼서, 나도 정말 이것 저것 안가리고 신나게 열광하고 뛰쳐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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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15 02:31 2006/06/15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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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di 2006/06/15 23:52 URL EDIT REPLY
ㅎㅎ 맞아요. 정말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즐거움을 포획하는 저 지겨운 자본과 미디어를 가로질러서. 으앙. ㅠ0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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