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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합니다. 아무것도 못하고

  • 등록일
    2006/03/22 15:24
  • 수정일
    2006/03/22 15:24
"미안합니다. 아무것도 못하고" (20시 09분)
21일 오후 날이 어두워지자, 박순호 하이닉스매그나칩사내하청지회
수석부지회장이 조합원들에게 보낸 문자메세지. 그는 목숨을 건 고공농성
와중에도지사에게 두번이나 면담요청을 했으나 거절당했고, 그런 심경을 담아
조합원들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냈다. 
이 문자를 접하고서 곧바로 이영섭 민주노총지역본부장과 정근원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장이 대교위에 올라가 설득한 끝에 오후 9시경 박순호
수석부지회장은 내려왔다. 대교아래 모였던 동지들과 함께 정리집회를 하면서
"투쟁으로 하이닉스매그나칩 문제해결을 돌파하자"고 결의했고, 박
수석지회장은 탈진으로 충북대병원으로 갔다. 
안타까움.
안타까움.
안타까움.


http://sanosin.jinbo.net/Publish/labor.php?ex=article&b_fn=RD&gotopage=1&pkno=554

성과없이 접힌 박순호 수석부지회장의 고공농성

내부 단결과 교섭에 끌려 다니지 않는 투쟁으로 거듭나길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 동지들의 투쟁이 1년 6개월, 햇수로 3년이 되어간다. 지난 1월 12일에는 하이닉스 반도체가 대화에 나설 것을 요구하며 무기한 서울 상경 투쟁에 돌입했다. 상경 투쟁에 돌입한 조합원들은 유서를 작성하며 죽을 각오를 하며 기필코 공장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로 추운 겨울 노숙투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정말 끝장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버텨왔던 것이다.

그런데 1월 26일 이원종 충북도지사와 ‘하이닉스-매그나칩 문제 해결을 위한 충북범도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책위)대표 등 4명이 서울 본사를 방문해 우의제 사장과의 면담에서 노사간 간접대화에 합의했다고 2월말까지는 공장으로 돌아가게 해주겠다며 천막으로 찾아와 내려갈 것을 설득했다. 이러한 도지사의 말에 반신반의는 했지만 가족을 버려두고 온 장기투쟁으로 인해 조합원들의 마음이 흔들리면서 한번 도지사의 말을 믿고 대화를 해보자고 결정하고 1월 27일 청주로 내려오게 되었다. 그리고 성실교섭을 위해 손수 공장 정문에 설치된 선전물을 철거하고 본래 있던 천막을 제외한 모든 천막을 접었다. 그리고 공장 앞 집회도 자제해 왔다.

하지만 2월 15일부터 5차례에 걸쳐 진행된 대화에서 하이닉스와 매그나칩 자본과의 사태해결을 약속한 이원종 도지사는 사태 해결을 위한 노력은커녕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시간끌기로 일관했다. 범대책위 대표 또한 사측의 입장만을 이야기하며 노조에게 양보할 것만을 요구했다. 노조의 가장 큰 요구는 ‘공장으로 돌아가자’는 것인데 양보를 하라는 것은 공장으로 돌아갈 것을 포기하고 보상금 받고 타사업체로의 취업알선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노조가 받을 수 없는 안이다. 이 투쟁을 끈질기게 했던 동지들은 보상금 몇 푼 받고 다른 일자리를 구할 거라면 1년 6개월의 투쟁을 이어오지 않았다. 조합원들은 ‘끈질긴 놈이 승리한다’는 말을 믿고 있다.

그러나 범대책위는 지난 3월 14일 지회가 내부 입장이 정리되지 않아 간담회를 연기할 것을 공문으로 발송하였지만 이를 무시하고 조합원들이 오는 것과 상관없이 장소에 있을 거라는 공문을 보내왔다. 이에 노조에서 다시 한 번 노조의 결정을 인정할 것을 공문으로 보냈지만 범대책위는 이를 무시했고 노조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찾아간 24명의 조합원들과 간담회를 진행하는 일이 발생했다.

1년 6개월의 투쟁을 이어가면서 조합원들은 집에 돈 몇 푼 가져다주지 못했다. 거기에 회사의 손배소송으로 제자리가 넘어가는 억대의 손해배상이 청구되어 있다. 그래서 대다수 조합원들이 얘들 학비를 대기 어려워 학원도 끊고 유치원도 끊었고, 부인들이 돈을 빌려오거나 벌어서 식비정도를 대고 있다. 빨간 딱지가 집을 도배한 조합원들도 몇 명이 된다. 생활고와 가정에서의 만류에 흔들리는 조합원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온갖 수단을 다해 싸워왔고 공장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현실의 무게에, 고립감에 방향을 잃고 흔들리는 것은 장투사업장의 경우 겪는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3월 14일의 사건은 내부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정리하고 결의를 다지기 전에 범대책위에서 내부를 흔들고 사태해결을 진척시키기 위해 악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범대책위가 중재를 한다는 명분으로 사측의 입장(보상금 지급)을 관철시키려 한 것이다.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를 둘러싼 사회적 차원의 문제해결은 결국 사측의 입장만을 대변하면서 노동자들의 투쟁을 제재하고 빠르게 마무리 지으려 한 것에 불과했다. 이로부터 지회의 다수의 조합원들은 지금까지의 교섭 흐름으로 더 이상 갈 수 없으며, 다시 노동자의 힘을 보여주고 투쟁으로 나서야 한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다. 그것이 20일 투쟁선포식으로 보여 졌다고 생각한다.

아직 지회 내부에서 향후 투쟁을 어떻게 이끌고 갈 것인지 결정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쨌든 지금까지와는 다른 국면을 형성해야 할 필요성과 투쟁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순호 수석부지회장이 조합원과의 상의 없이 상급단체와 상집 일부 성원과의 논의 속에 21일 오후 2시경 청주 도청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서문대교 위 아치에 올라가서 고공농성을 전개한 것이다. 고공농성의 요구는 도지사가 와서 사태해결의 의지를 재천명하고 책임질 것이었다. 홀로 올라가 ‘전원 고용 정규직화 실시’, ‘사태해결을 약속한 도지사는 책임져라’ 등 세 개의 플랜카드를 내걸고 굳은 표정으로 도지사가 이 자리에 올 때까지 내려가지 않을 것임을 주장했다.

같은 시간 도청 시위를 준비하던 조합원들은 서문대교로 빠르게 이동했다. 올라간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조합원들은 도착하자마자 혼자 죽을 거냐고, 같이 여기서 싸워야지 왜 혼자 올라가 있냐며 내려올 것을 이야기했다. 함께 끝까지 단결해서 싸울 것이니 내려와서 함께 싸우자고 했다. 고공농성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상황에서 다 같이 함께 힘을 모아 싸워야 되지 않겠냐는 심정에서 쏟아낸 말들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동지의 고공농성을 엄호하기 위해 대열을 갖춰 상복을 입고 집회에 들어갔으며, 경찰의 움직임이 포착되자 난간으로 가는 길목을 차단하기 위해 대오를 이동시켰다. 오직 무사히 내려오길 바라며 경찰의 진입으로 인한 사고를 차단했다.

이러한 조합원들의 마음과는 달리 민주노총 충북본부와 금속지회는 마찰 없이 내려오게 하는데 중심을 두었다. 박순호 동지가 왜 올라갔는지 그 동지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를 듣고 그 동지의 뜻을 받아 안아 향후 단일한 투쟁으로 만들어가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든 내려오게 하려고 갖은 애를 다 쓰는 모습이었다.

도지사가 노동자가 몇 명이 죽든, 노동자들이 어떻게 하든 자신은 가지 않겠다며 도청에서 자리를 피하고 밤을 새워야 하는 상황과 경찰의 움직임에 결국 밤 8시 50분경 박순호 동지를 설득하여 내려오게 하였다.

박순호 동지의 고공농성은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접힌 투쟁이었다. 조합원들과 공유하지 못하고 한 투쟁이었고 많은 준비를 하지 못하고 들어간 투쟁이었지만, 내부를 단결시키고 상황의 반전을 꾀하려했던 동지의 뜻만큼은 조합원들에게 가다왔을 것이다. 다시는 개인이 모든 것을 안고 홀로 해보겠다는 투쟁은 없어야 하겠지만, 이번 투쟁을 계기로 지회가 다시 한 번 내부를 추스르고 공장으로 돌아가겠다는 목표를 향해 강고한 투쟁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대화가 필요없다거나 교섭을 거부하자는 것이 아니다. 지금처럼 교섭에 발목을 잡혀 질질 끌려가면서 내부가 이완되고 투쟁을 함에 있어서 눈치를 보는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투쟁을 통해 그 힘으로 사측을 교섭 테이블로 끌어낼 때 동지들은 공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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