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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1/17
    둘째날, 군산.(7)
    나은
  2. 2007/01/17
    첫째날, 공주 & 부여
    나은

둘째날, 군산.

  • 등록일
    2007/01/17 16:36
  • 수정일
    2007/01/17 16:36
따사로운 연못.

아침에 가뿐하게 다시 궁남지를 방문했다.
역시 좋은 풍경.
7일 간의 여행 중에 어쨌든 가장 멋진 풍경이었음에 틀림없다.
연못 한 가운데 누각에서 주안상(?)을 차려놓고 잔치 한 번 했으면 딱 좋겠구만...






이른 아침이어서인지 미화원인 듯한 할머니 한 분께서 청소를 하고 계셨다.
"수고하십니다." 한 마디 건네고...


낯설지 않은 풍경.


서둘러 군산을 향해 빠져 나간다.
부여군청 앞을 지나는데, 트랙터를 비롯한 대형 농기계들의 도열.
농기계들마다 노오란 깃발이 꽂혀 있다.
"한미FTA반대" 그리고 곳곳엔 형사와 경찰들이 분주하다.
군청 앞에서 집회가 있는 모양이다.









부여읍을 빠져 나가는 다리께에서는 아예 경찰이 검문을 하고 있다.
읍내로 들어오는 트럭이나 봉고 등은 모조리 세워서 행선지를 묻는 작태.

여행 내내 농촌 마을 어디에서나 한미FTA협상 반대 현수막 없는 곳이 없었다.
다리를 건널 때면 난간에 한미FTA협상 반대 깃발이 휘날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일각에서 얘기하듯이 고부가가치 농업 중심으로 개편하면 농민들이 살 길이 열릴까?
아니... 어쩌면 농민들의 고통은 농산물을 '상품'으로 거래하는 시대에서는 끝없이 지속될 지도 모를 것.


군산 가는 길.

잠시 금강을 뒤로 하고 산길로 접어 들었다.
지도 상으로는 강 따라 가는 길이 둘러 가기에 조금 더 직선으로 가보겠다고 택한 길.
그러나, 언덕을 하나 넘고, 두 번째 언덕부터는 힘들어서 자전거를 끌고 가기도 여러 번.
언덕 두 개를 넘고 나니 앞으로 모든 길이 언덕처럼 보인다.
하지만 돌아보니 이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달리는 중간에 먹을 물이 모자라면, 주유소에 들려서 물을 얻었다.
대체로 관대하다. 물 좀 받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타이어 펑크 날 만큼 실어가란다.^^
물 마시고 숨 좀 돌리고, 다시 페달을 밟아 도착한 금강 변의 작은 마을.
강이 한 눈에 보이는 곳에 작은 쉼터가 마련되어 있길래 김밥으로 점심을 때웠다.
강을 따라 달리면 마음이 푸근해지는 기분이다.

지금까지는 강을 왼쪽에 두고 달렸는데 이제 다리를 건너면 오른쪽에 두고 달리게 된다.
웅포대교를 건넌다. 다리 건너기 전 AI로 인한 소독 기구들이 장치되어 있다.
하지만 철저히 방역이 되는 것 같지는 않던데..

드디어, 충남에서 전북으로 넘어가는구나-

여기서부터는 금강하구둑까지 한참을 달려야 한다.
금강하구둑 주변은 철새도래지인데, 철이 아니어서인지 많이 보진 못했다.
그래도 몇 백 마리 정도는 남아 있던데 참 신기하더라..



금강변에서-


금강 하구둑.


금강하구둑을 지나, 군산으로 들어가는 길. 갯벌...

금강하구둑을 지나면 강인지 바다인지 모를 길을 따라간다.
거기에 "채만식 문학관"이 서 있다.
지난 여름에 우연히 들러봤던 곳.

지도를 얻으려 들렸는데 중년의 여성해설사 분이 참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다.
어디서 자면 되는지, 어디를 둘러 보면 되는지 조목조목.
자기 대학생 아들도 자전거 매니아라면서 정말 호의적인 태도.
긴 얘기를 나누지는 못해도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어찌보면 여행의 매력은 아닐까.
어디를 둘러볼지 설명을 주욱 듣고 다시 출발해서 처음 도착한 곳은
구암동 철길.


군산 시내.

구암동 철길이 특이한 것은 철로와 주택들이 바로 붙어 있다는 것.
이 때문에 영화 배경으로도 많이 쓰였고, 사진작가들도 많이 찾는 곳이란다.
내가 찾았을 땐 뭐랄까... 고단함이랄까... 수 마리의 개들이 개집에 묶여 있었는데 왠지 불쌍해 보이는 녀석들. 어쨌든 달동네 비슷한 느낌을 받았단 얘기지.




바로 옆에는 번듯한 아파트들이 서 있다.
이 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매일매일 '기적'을 바라는 것인가.
(저 '기적' 표시판은 아마 기차가 기적을 울리란 뜻인 듯)


군산항, 수탈의 관문.

군산에는 일제가 조선을 수탈하던 시대의 유적(?) 등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군산항에도 그런 것들이 남아 있다.
호남의 곡창지대에서 나오는 수많은 미곡을 군산항을 통해서 빼내 갔다.


군산 내항 근처...


개항 100주년 기념 광장 한 켠의 그래피티. 철거직전인 건물 외벽.


일제 시대에 만들어진 세관.


부잠교. 군산항은 조수 간만의 차이가 커서 다리가 물 위에 떠 있다시피 하다. 이것도 아무 때나 쌀을 실어 가려고 만든 거라는데. 옛날에 만든 것은 아닌 듯 하고 새로 설치한 것 같다.
아, 그리고  '타짜'를 바로 이 군산항에서 찍었다 하던데?
마지막 혈투를 벌이는 도박판 말이다.


해망굴. 군상항 바로 옆에는 산이 하나 떡 버티고 있다.
일제 시대때 미곡 운반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시내에서 군산항으로 바로 연결되는 굴을 뚫었다.


해망굴까지 보고 나니 배고파 죽을 지경.
아까 지나다 보니 "우리는 짬뽕을 자신있게 할 수 있습니다"라고 현수막을 걸어둔 중국집을 본 것 같았다. 왠지 짬뽕이 매우 땡겨서 다시 뱅글뱅글 돌아 그 집을 찾았다.
그리곤 짬뽕을 시켰는데,
역시. 과연.
이것이 바로 바지락 짬뽕.

큼직큼직한 바지락이 짬뽕 그릇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조갯살 떼어먹는 재미가 솔찬하다.
다른 해물은 없고 온리 바지락. 그래도 맛있더라. 밥까지 하나 시켜서 말아먹었다.

밥을 먹고 군산항 옆에 있는 월명공원에 오르니 군산항과 시내가 눈에 들어온다.
공원 꼭대기에는 도시를 지킨다는 뜻의 수시탑이 조명을 내뿜고 있었다.



군산저수지도 돌아보고,
길을 물어물어 찜질방을 찾았다.
군산안내지도는 대략적인 위치만 나와 있고 구체적인 길 안내가 안 되어 있어 영 애먹었다.
은파유원지에도 가 보았는데, 마침 조명이 꺼지는 시간이어서 김 샘.



군산도 점점 성장하고 있는 도시다.
자동차 부품산업을 중심으로 해서...
KM&I동지들은 잘 있으려나.
사실 아쉬운 투쟁이었는데.

부여에서 군산까지 약 50여 km.
군산 시내에서 돌아다닌 것만해도 15km는 될 게다.
피곤한 몸을 누이러 찜질방으로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
BUT.
미친듯이 코를 고는 아저씨 등장.
상상을 초월하는 소리. 슬그머니 살인충동까지 느껴졌다.
휴대용 귀마개를 깜빡 잊다니!! 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수면실에서 나와서 찜질방 공용공간에서 아무렇게나 누웠다.
결과적으로 그 날은 영 잘 못 잤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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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날, 공주 & 부여

  • 등록일
    2007/01/17 01:58
  • 수정일
    2007/01/17 01:58
떠나기 전.

원래 여행의 목적은 없었다.
다만, 어찌어찌 하여 남은 시간에 자전거로 전국일주나 해 보자는 것.
그것이었다.
이런저런 구상은 한 달 전부터 했다.
이 도시에 도착하면 누구를 만날 수 있을 것이고, 하룻밤을 청할 수 있을 것이고, 술을 마실 수 있을 것이고...

하지만 한 번에 서해안과 남해안을 지나 동해안을 뺑 도는 것은 넘 힘들 것 같았다.
그나마 잡은 것은 천안에서 광주까지 가는 것.

출발지를 천안으로 잡은 까닭은 저렴하게 전철을 탈 수 있어 일정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고
목적지를 광주로 잡은 까닭은 한번도 제대로 둘러보질 못한 탓이다.

하지만 떠나기 이틀 전, "이왕 광주까지 가는 거 남들처럼 땅끝까지 가버려!" 라는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떠나기 하루 전날밤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출발하기 다섯 시간 전.
"천안에서 공주까지는 언덕도 많을 것 같고, 천안에서 출발하면 해 지기 전에 부여에 못 닿을 것 같다. 공주에서 출발하자!!" 로 결정한다.
도로의 무법자, 자동차들 때문에 자전거로 밤에 운행하는 것은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5000원을 더 투자해서 공주까지 고속버스로 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개그야를 보느라 또 밤 1시를 넘겨서 잠자리에 든 나는 네 시간 정도 자고 새벽에 집을 나섰다.



공주.

버스 안에선 가수면 상태.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상태에서 어느날 잠적해 버린 동지 생각도 떠오르고 기타 등등...
하다가 해가 뜬 직후 공주에 도착.
해가 뜬 지 얼마 안 된 직후여서인지 '추웠다'.
거기다 눈도 다 녹지 않은 것 같아 더 추워 보였다. 공주는...

금강 건너 편엔 공산성이 보였다.
백제 시대에 쌓은 산성.

금강 수면에 비친, 떠오르는 해.

공산성으로 향하는 도중 자전거 짐받이가 말썽을 부려서 아무래도 자전거가게에 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주오던 자전거 젊은이(?)에게 물어보니 친절하게 알려준다. 왠지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공산성에 막상 돈 내고 들어가니, 여기저기 고풍스러운 망루가 세워져 있는 작은 공원 같다.
안에는 백제시대 왕궁 터도 있고 한데 별다른 느낌은 없었던 곳.
여기 주민들이 산책하는 모습들이 많이 보였다.

사진 몇 장 찍고 터덜터덜 내려와 다시 자전거를 타고 시내의 자전거 가게를 물어물어 찾았다. 아직 문 닫은 상태. 간판에 적혀 있는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고 30분 동안 이리저리 시내를 돌다가 결국 튼튼한 짐받이로 교체했다. 훨씬 낫구먼~

공주에서는 오래 머물 계획이 아니었다. 스쳐지나가는 곳 정도랄까.
그래도 지도상에 찍혀 있는 사적은 왠지 나의 주의를 끌었고,
언덕을 넘어가야 할 게 뻔했지만 (자전거로 언덕 넘어가기 힘들다..) 바퀴는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곳의 지명은 바로.
우금치.


우금티에서 역사와 마주치다

솔직히 고백컨대,
19세기, 20세기에 다른 나라, 특히 유럽에선 무슨 혁명이 있었고, 어떻게 진행됐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만 거의 관심의 초점이 모여 있었다.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땅에 대해선, 518을 제외하곤 거의 깊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이 '동학혁명군위령탑'에 들리게 되어
여행코스도 달라졌고 여행의 의미도 약간 더 버라이어티해졌다고나 할까.



수만 명의 동학농민군이 세상을 바꾸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통한의 패배를 당한 곳, 우금티 고개. 당시 농민군은 수만 명에 달했고, 일본군과 관군 연합은 3천이 채 못 되는 숫자였다. 하지만 죽창과 칼, 활은 최신식 총기와 대포에 당해내질 못했다. 농민군은 삽시간에 수백으로 줄었고, 전봉준은 체포된다.

위령탑만 보고 그냥 떠날 뻔 했는데, 산 윗 쪽으로 만장 따위가 걸려 있어 올라 가보니
각종 조형물들이 서 있다. 그러나 조형물보다는 지역 농민회 등에서 걸어 둔 것으로 보이는 만장과 상징물들이 더 가슴에 와 닿았다.




종이로 만든 사람 모양의 인형들. 아직도 산속 곳곳엔 민중들의 한이 서려 있는 지도 모른다.











미군기지 확장반대. 팽성 대책위. 에서 꽂아둔 깃발인가...


비정규직 구호를 여기서도 만나다니.

지역 운동단체에서 이곳을 방문해 행사들을 치룬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그 탓에 좀 더 의미있게 느껴졌는 지도 모르겠다.


금강따라 부여로.

공주에서 부여까지는 금강을 따라 간다.
강을 따라 달리는 것은 즐겁다.
다양한 풍경도 볼 수 있고, 대체로 길은 평탄한 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리다 보니 왠지 자전거가 좀 안 나간다는 생각이 자꾸 들더라.
(나중에 보니 이건 순전히 짐이 쓸데없이 무거운 탓이었다;)
아니, 몸이 피곤해서인가. 하긴 잠을 푹 못 자긴 했구만.
그래도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과, 가끔씩 그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물새들을 발견하면, "그래도 오길 잘했어"란 생각.




백제의 수도, 부여에서

공주에서 30km가 조금 넘는 거리에 있는 부여에 도착하니 오후 2시쯤.
일단, 관광안내소를 찾아가 지도를 얻고 이것저것 물어본다.
젊은 여자분 2명이 근무하고 있었는데 이것저것 물어보니 나름 열심히 친절하게 알려준다.
자전거 타고 왔다고 하니 신기해 하는 눈치다.
잘 만한 곳도 물어보고, 밥 먹을 만한 곳도 물어보고.
슬쩍 부여군 소속이냐고 물었더니 답을 흐린다.
혹시 비정규직 아니었을까? 흠...
낙화암에 가기 위해서 아예 가방이랑 자전거를 다 관광안내소에 맡겨 버렸다.
그리곤 바로 부소산성에 올랐다. 부소산성 안에 낙화암, 고란사 등 주요 관광지가 모여 있기 때문.


부소산성 오르는 길. 산책하기에 제격.



한 누각에 오르니 부여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흐릿하다. 햇빛이 났다 안 났다....




여기가 낙화암. 그리고 낙화암에 있는 정자.
이른바 '삼천궁녀'가 몸을 던졌다는 곳이다. (그런데 3000이란 숫자가 고증된 것은 아닌 것인지 안내문에는 '수많은'이라고 표현되어 있더군)
강으로 몸을 던져 여인의 절개를 지켰다... 뭐 이런건데
참 뭐랄까. 그저 여인네들의 삶이 안타까울 뿐.
안 그래도 산성 내 여기저기 누각들을 둘러보면서 나는 빈정대고 있었다.
경치 좋은 누각이니, 정자니 지어 놓으면 누가 거기가서 놀겠는가.
상놈보고 너도 거기 가서 술 한 잔 퍼라~ 이랬겠냐 이거다.
잘 보면 유명 건축물들을 돌아보며 하나같이 조상의 숨결 어쩌고 하지만, 사실 다 있는 놈들이 없는 사람들 못 살게 군 결과 아니냐 이 말이다. 허허...




낙화암에서 내려다 본 백마강.


하여튼 나도 참 희한한 사람이야~라는 생각을 하면서 고란사로 '내려' 갔다.
고란사는 낙화암에서 강기슭으로 '한참을' 내려가야' 나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부분 다시 산을 올라갔다가 입구로 내려가기 힘들어 자연스럽게 선착장의 유람선을 타고 산성을 빠져 나간다. 그렇지만 난, 다시 산을 넘어서 빠져 나와야 했다ㅡ.ㅡ; 왜냐고. 관광안내소에 짐이 다 있으니깐... (힘들었다...)

혼자 다니다 보니 좀 쓸쓸한 생각도 들기는 했다.
하긴, 보는 사람마다 혼자 다니냐고 묻는 판이니...
그래서 가끔 움직이는 무언가를 만나면 참 반갑다.
고란사 내려가는 길에 만난 너도 참, 반갑더라~



아마 절집에서 키우는 개인 모양.







일본 처녀들이 스님이 되고자 이 절에 찾아온다는 내용의 불화.


고란약수가 있다. 물이 깊은 곳에 있어서 이렇게 길이가 긴~ 국자로 떠 먹는다.
물맛이 특별히 좋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구십 먹은 노인이 한 그릇만 약수를 떠먹으면 젊어지고, 정정해 지는데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어린애가 되어 버렸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약수라네~

아참. 고란이라는 이름은 蘭(난) 이름이다.



다시 산성을 넘어 터벅터벅 내려오다가 발견했다.
나무에 걸려 있던데, 참... 어쩌다 여기까지 손길을...

거의 다 내려오는 어느덧 하루 해가 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꽤 길게 살았구나. 새벽부터...




강가에는 조각공원이 들어서 있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조각 하나.
제목은 108번뇌.





시내에서 만 원짜리 여인숙을 잡았다.
조그마한 쪽방 같은 곳이지만, 그래도 전기장판은 땃땃했다.
짐을 풀고, 밖으로 나가 저녁밥을 먹었다.
야간 조명이 되어 있는 궁남지를 한 바퀴 돌아보았고, 이뻐서 꼭 내일 아침에 사진찍으로 와야지 하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시내 한 복판에 유명한 정림사지 5층 석탑이 자리잡고 있었다.
푸르스름한 야간 조명이 석탑을 비추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낮에 보니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던데 말이지~

이렇게 첫 날은 마무리.
자전거로 36km를 2시간 10분에 걸쳐 달렸다.
평균속도는 16km/h.

(p.s : 아 이렇게 정리하는데 시간 꽤 걸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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