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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06
    "무엇이 혁명을 배반케 하나…훈고학은 이제 그만"
    나은
  2. 2007/02/06
    이주노동자 동지들을 보면서
    나은
  3. 2007/02/05
    서해안 일몰
    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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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섹스중독자"(2)
    나은
  6. 2007/02/02
    2년만에 다시 듣는 목소리..(2)
    나은

"무엇이 혁명을 배반케 하나…훈고학은 이제 그만"

  • 등록일
    2007/02/06 11:15
  • 수정일
    2007/02/06 11:15
  "무엇이 혁명을 배반케 하나…훈고학은 이제 그만"
  [반론] 한국의 트로츠키주의자들에게 묻는다
 
  2007-02-06 오전 9:50:37
 
   
 
 
  정성진 경상대 교수(경제학)의 <마르크스와 트로츠키>(한울출판사 펴냄)를 둘러싸고 한국 사회에서 오늘날 트로츠키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토론이 계속되고 있다. 그 중에는 민주노동당의 정책실장을 지낸 이재영 씨와 국내의 대표적인 트로츠키주의자 단체 '다함께'의 이정구 씨가 한 차례씩 주고받은 논전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번에 이재영 씨가 다시 재반론을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그는 이번 글에서 "이정구 씨의 반론에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류와 근거 없는 논리적 비약이 많다"며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좀 더 솔직하게 담았다. 그는 "지금 우리에게 트로츠키, 레닌, 마르크스로 거슬러 올라가는 훈고학이 과연 필요한가"라는 질문도 던지고 있다.
  
  <프레시안>은 트로츠키의 한국적 수용을 둘러싼 이번 논란이 현재 한국 진보 세력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가감없이 보여주는 한 지표라고 판단해 기고문을 소개한다. <편집자>

  
  민주주의 없는 사회주의는 없다
  
  ' 다함께'의 이정구는 내가, 트로츠키가 크론시타트 반란을 파괴했다고 비판한 것이 "러시아 혁명에 대한 무지"라고 주장한다. 사실 러시아 혁명을 잘 알지는 못한다. 잘 모르는 내가 알고, 잘 아는 그가 모르는 사실 몇 가지만 확인하자.
  
  이정 구는 크론시타트 진압 당시 트로츠키가 외지에 출타 중이었으며, 군사령관이 아니라 '당 전쟁 정치위원'이었다고 변명한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내전을 승리로 이끈 트로츠키의 업적 역시 대부분의 전투 현장에 없었다는 이유로 무시되어야 한다.
  
  반란이 진압되기 며칠 전인 3월 5일, 트로츠키는 국방 인민위원 자격으로 크론시타트 수병들에게 무조건 항복을 통첩했는데, 이 일도 타자병이나 전신병의 책임이지 트로츠키의 책임이 아니라고 구차하게 변명해 보라. 내가 알고 싶은 것은 1980년 5월에 전두환이 어디에 있었는가가 아니다. 나는 혁명가 트로츠키가 무엇을 했는가를 묻고 있다.
  
   이정구는 '트로츠키가 진압하지 않은' 크론시타트 반란을 달가워하지도 않는다. 안타깝지 않은가? 트로츠키가 현장에 있었다면, 더 많은 치적을 쌓았을 텐데. 이정구는 반란이 "노동자와 농민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벌어진 사건"이고, 반란자들이 "소비에트 내에서 볼셰비키의 제거를 주장"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
  
  크론시타트 반란자들이 '농민 신병'이라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말도 거짓이다. 그 해 2월 페테르스부르크에서는 푸틸로프 공장을 비롯한 노동자 파업이 줄을 이었고, 크론시타트 반란자들은 파업 노동자들과 연계하며 그들의 요구 사항을 봉기에 내걸었다. 이에 볼셰비키 사병 당원의 3분의 1이 공식 탈당하여 봉기에 동참했다.
  
  반란자들이 "볼셰비키 없는 소비에트"를 주장했다는 것도 거짓이다. 그런 유언비어는 국외에서 밀류코프(Miljukov)가 만들어낸 것이고, 반란자들은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의 연장선에서 "소비에트에서의 선거"를 주장했다. 이정구의 러시아 혁명 얘기는 역사 날조다.
  
  이정구는 "크론시타트 수병 반란을 두고 이재영이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운운하는 것은 트로츠키의 ABC에 동의하는 것은 고사하고 이해조차 하지 못한다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크론시타트 수병들은, 노동자 파업을 봉쇄한 계엄령 철폐, 사회주의자 석방, 집회의 권리, 무엇보다도 자유로운 소비에트 선거를 요구로 내걸었다. 이게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가 아니면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트로츠키의 ABC'는 잘 모르지만, 민주주의나 사회주의는 조금 안다. 그래서 노동조합에 대한 트로츠키의 입장이 맘에 들지 않는다.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부정하면서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를 어떻게 만들겠다는 것인지…. 노동조합의 자주성은 자신이 권력을 가졌는지 그렇지 않는지에 따라 다르게 이야기할 대상이 아니다.
  
  "소비에 트 러시아 노동계급의 생산적 산업조직은 매우 큰 과제를 짊어지고 있다. 어떠한 과제일까? 그것은 물론 노동의 이익을 대표하여 국가와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제휴하여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형태의 조합은 원칙적으로 새로운 조직이며, 종래의 노동조합과 다를 뿐 아니라 부르주아 사회의 혁명적 노동조합과도 다르다." ('테러리즘과 공산주의' 중)
  
   혁명과 내전기의 상황에서 볼셰비키와 트로츠키가 옳았는가, 노동자 반대파가 옳았는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발달한 현대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그리고 우리가 만들고 싶은 민주주의의 최고양식으로서의 사회주의의 차원에서 당시 레닌이나 트로츠키가 한 일은 카니발리즘에 가깝다. 그래서 노동자 반대파들이 트로츠키를 짜르 시대 반동 장군이었던 트레포프에 견주어 비아냥댔던 것이다.
  
  " 인민위원 지배 타도! 권력 인수 당시 공산당은 노동자들에게 모든 것을 약속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3년 전 우리는 '당신들이 원할 때는 언제라도 당신들의 대표를 소환할 수 있고 당신들은 새로 소비에트 선거를 할 수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우리가 크론시타트에서 당으로부터의 압력이 없는 새 선거를 요구했을 때 새로 부상한 트레포프 트로츠키는 이렇게 명령했다. 총알을 아끼지 말라!" ( 중)
  
  민주주의에 대한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천박한 태도는 차베스에 대한 돈독한 애정으로도 확인된다. "21세기 사회주의를 주창한 차베스의 인기가 전 세계적으로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가 인기 있는 이유를 알고 싶기보다는 그가 입법권까지 독점한 것이 걱정된다. '사회주의'나 '반미'를 내걸었다고 열광할 필요는 없다. 그런 군부 쿠데타 정치인은 나세르 이래 수없이 많았다. 국유화나 미국과의 긴장이라면 단연 박정희를 꼽는 것이 옳다. 차베스의 실험은 페론보다 훨씬 덜 진지해 보인다.
  
  딱지 붙이기는 이제 그만!
  
   이정구는 "이재영은 (…) 다함께가 범자민통 동지들과 야합이라도 한 듯하게 말"했다고 타박한다. 그런데 바로 몇 줄 아래에서는 "이들과 함께 연대하여 투쟁하는 게 무슨 잘못일까?"라고 반문한다. '야합'이든 '연대'든, 했다는 말인가 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 이재영의 다함께 비판에는 안타깝게도 (…) 분파주의가 엿보인다"고? 다함께가 당당하고 분파적이지 않다면 "주사파와 어울려 논다"는 지적에 그저 "그렇다"라고만 답하면 되는 것 아닌가? 지금 필요한 것은 "국내외 보수언론조차 (…) 트로츠키주의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음을 보도"했다고 뿌듯해 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통해 그것을 이루었는가를 스스로 되짚어 보는 것이다. 어쨌거나 한국 트로츠키주의자들이 그 조상의 비극을 피할 수 있을 테니, 다행스럽다.
  
  물론 다함께는 옳다. 옳기 때문에 옳다. 옳은 조직이 하는 일이므로 누구와 놀든 그것 역시 옳다. <마르크스와 트로츠키>의 정성진 역시 충실한 트로츠키주의자로서 다함께의 이 같은 철학 방법을 따른다. 정성진이 포스트모더니즘, 자율주의, 케인스주의가 청산되지 않은 포스트스탈린주의라 규정할 때 그런 방법론이 가장 빛을 발한다.
  
  왜 포스트모더니즘이 포스트스탈린주의일까? "포스트모더니즘 마르크스 경제학은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를 논하면서도 스탈린에 반대한 트로츠키의 투쟁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도 없다. (…) 포스트모더니즘 마르크스 경제학은 스탈린주의를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에 포함시키는데, 나는 이것 역시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단지 이것뿐이다. 올바른 트로츠키주의가 스탈린주의는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했는데, 포스트모더니즘은 스탈린주의를 마르크스주의로 인정했으므로 포스트스탈린주의다!
  
  자율주의는 왜 또 포스트스탈린주의일까? 이정구는 "정 교수의 책을 조금만 훑어 보아도 (…) 풍부한 논거에 입각한 논리적 비판을 하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안내해주는데, 그곳 어디에서도 자율주의와 스탈린주의의 관계에 대해 단 한 줄도 설명돼 있지 않다.
  
   케인스주의에 대해 정성진은 이렇게 말한다. "진보 진영의 케인스주의로의 경도는 (…) 우리나라 진보 진영의 스탈린주의적 뿌리와도 무관하지 않다. (…) 스탈린주의 코민테른이 반파시즘 인민전선 전술을 채택하면서 케인스와 같은 개량주의 경제학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고 이들과의 연합을 도모했던 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런 논박은 모리스 돕이 케인스 비판에 비적극적이었던 데 대한 증명일 수는 있지만, 장상환, 신정완, 이병천 등 한국의 '케인스주의자'를 비판하는 논거는 못 된다. 대입논술에서 이런 주장은 '논리 비약, 논거 부적절'이라 채점한다.
  
  훈고학은 더 이상 필요 없다
  
   나는 트로츠키 같은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고 투쟁하는 당대 혁명가의 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반면 다함께 같은 자칭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스탈린주의에 대항하여 투쟁한 망명객 시절의 언행에 더욱 주목한다. 그런데 스탈린주의라 불리는 체제의 이론적 기초와 정치적 토대의 상당 부분은 트로츠키 자신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는 생산민주주의를 주장한 노동자 반대파에 대항하여 '지령 관료제'를 옹호하였고, 노동조합을 군대처럼 통제하기를 희망했다. 나는 그것을 보고, '트로츠키주의자'는 그것을 보지 않는다.
  
  "흠집 없는 권위로의 도피", 고르바쵸프가 내건 "다시 레닌에게로 돌아가자"는 구호가 이 경향의 시초이다. 모든 죄과를 스탈린에게 뒤집어씌우고, 최후의 보루를 지키고자 했던 이 발상은 마르크스 이래의 후계자들에게서 오도(誤導)와 왜곡보다는 계승이 더 많이 발견됨에 따라 스탈린에서 레닌으로, 레닌에서 마르크스로 후퇴를 거듭하다 결국 파산하고 만다.
  
  우리는 이와 같은 경향에 아직도 둘러싸여 있다. 기존 사회주의 실패의 책임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고 추정되는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의존, 청년 마르크스와 후기 마르크스를 대립시키고 후기 마르크스를 취사선택하는 알튀세르의 방식, 그리고 유행하는 외래 사조(思潮)를 직수입하는 한국 진보진영의 천박한 상업주의.
  
  그러나 우리의 실패가 상당 부분, 현실 적합성에 대한 주체적 검증 없는 차용(借用)에서 비롯되었다는 점, 더욱 중요하게는 진보사상 또는 진보운동이라는 것이 특정 사상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분리 곤란한 게슈탈트적(Gestalt的) 거대한 총체라는 점을 되짚어 볼 때, 특정한 이론적 권위로의 도피는 잠시의 모면책일 수는 있어도 진보사상 본래의 목적인 대중 조직, 국가 운영에 기여하기는 어렵다.
  
  " 모건 스탠리의 2004년 4월 26일 민주노동당 방문도 그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었다. 이 만남에서 이재영 민주노동당 정책실장은 당이 직면하게 될 두 가지 시험대, 즉 시장과 대중 투쟁에 대한 개량주의자의 본심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국유화 계획'을 묻는 모건 스탠리의 물음에 '특정 기업에 대한 국유화 계획이 없다'고 답변했다." (김인식, 『다함께』 30호, 2004)
  
   개악보다 개량을 좋아한다는 점에서 나는 분명히 '개량주의자'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이 2004년 4월에 '특정 기업에 대한 국유화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가? 다함께는 그 때 '특정 기업에 대한 국유화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가? 현재는 있는가? 다함께는 개량주의자인가?
  
  국유화는 카페 혁명가의 낭만이다. 혁명을 준비하는 정당의 정책실장이라면 어떤 이유로, 어떤 기업을, 어떤 시기에, 어떤 방법을 통해 국유화할 것인가를 고민해야지, 국유화를 되풀이하는 데 멈춰서는 안 된다. 그의 책상 위에는 국유화 법률 공포안과 재정 충당 계획, 정치적 경제적 프로세스가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2004년의 민주노동당은 그런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가질 필요도 없는 당이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렇다.
  
  왜냐하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있어 우리는 실천의 문제에서 이론상의 문제로, 실존하는 구체에서 검증되지 않은 추상으로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이 집권하여 대한민국을 개조할 날이 멀지 않을 수 있지만, 그것은 겨우 한두 걸음을 내딛는 것이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로의 대장정이 아니다. 우리는 사회혁명을 이룰 정보와 지식, 확신과 권위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우리의 어림과 나약함, 무지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유물론은 다른 철학 체계들과는 달리 결코 자기완결적일 수 없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부분을 다루는 여러 과학들과의 연결에 의해서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리스 철학자들이 세계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의 과학과 물질 생산의 후진성은 그리스 철학을 명민한 추측으로서만 긍정하게 한다.
  
  마찬가지로 19세기와 20세기 초의 마르크스주의 역시 진보적 원칙과 몇 가지 과학적 발견의 '절대적 구성'일 뿐이다. 19세기와 20세기의 유물론은, 유물론의 내용을 채울 과학이 충분치 않았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나마 성과조차 제대로 흡수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유물론 실현의 관념적 과도기였다. 무엇이 혁명을 배반케 했는가? 세상에 대한 무지, 무엇보다도 자신의 무지에 대한 무지.
  
  후진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한 21세기에 이르러서야 마르크스주의의 얼굴을 덮고 있던 카리스마 가면이 벗겨졌다. 이제야 비로소 우리가 그것에 접근하고,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다함께처럼 "마르크스로 돌아가자(Return to Marx)"가 바른 길은 아닐 듯 하다.
  
  마르크스로의 복귀 또는 그의 수많은 문헌에서 그럼직한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것은 고순도의 결정을 얻기 위해 알코올 램프의 불꽃을 돋우는 아편쟁이의 모습에 가깝다. 그런 짓은 마르크스 훈고학(Marxolgy)이지, 마르크스주의(Marxism)가 아니다. 체제가, 매순간마다 재생산되는 물질과 의식의 최후 종합이라는 점에서 지난 150여 년을 거슬러 반추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우리는 마르크스주의라는 지평에서 이륙을 위한 가속을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이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땅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과 땅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 모두를 안다. 우리의 이륙이 성공했을 때 그 비행기에 어떤 이름이 새겨질지를 알 필요는 없다.
  
  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S. J. Gould)는 진리를 찾는 도상에서 인류가 지표 삼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적절한 가르침으로 코코란 선장의 말을 인용한다.
  
  "아직 멀었다."
   
 
  이재영/레디앙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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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동지들을 보면서

  • 등록일
    2007/02/06 10:33
  • 수정일
    2007/02/06 10:33
얼마 전 법원에서 이주노조 설립은 법적으로 가능하다는 판결이 났고,
참세상에 이주노조 총회 기사도 실렸다.

내가 정식 연대활동을 통해 처음 이주노동자 동지들과 맞닥뜨린 것이 2003년.
그때 활기차게 활동하던 동지들 몇몇은 여전히 활발하게 노조활동을 하고 있다.
수많은 단속과 추방 압력 속에서도 꿋꿋이 활동하고 있는 동지들.
대부분이 불법체류로 사실상 '비합법'신분으로 언제 들려 나갈지 모르는 와중이지만
꿋꿋이 움직이는 동지들을 보면, 나의 결의가 참 부족한 것 같아 참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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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 일몰

  • 등록일
    2007/02/05 23:01
  • 수정일
    2007/02/05 23:01
태안의 어은돌 해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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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애인이 옛 애인을 만난다면-

  • 등록일
    2007/02/05 21:53
  • 수정일
    2007/02/05 21:53
"어떻게 해야 될까요?"

라디오 상담코너에 흔히 소개되는 사연중 하나 아닐까.


.
얼마 후면 새로운 환경 속에 내던져진다는 걸 핑계삼아
꽤 오랜 시간 연락이 되지 않던 옛 연인에게 연락을 했다.
사실 별로 할 얘긴 없고 얼굴이나마 잠깐 볼까 했는데,
그 친구의 뜻대로, 보지 않기로 했다.

헤어진 이후에도 '친구'라는 이름으로 몇 번 만나곤 했는데
그때마다 그의 현재 애인과 마찰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연락을 먼저 끊었단다.
지금도 굳이 만나고 싶진 않다고 한다.

친구의 결정은 전혀 섭섭하지 않다.
물론, 하나의 관계가,
이제는 정말,
과거로 자리잡았다는 생각에 잠깐 슬프긴 했지만.


.
문득, 사랑 혹은 연애에서 발생하는 것.
질투심, 소유욕, 혹은 사람을 독점하고픈 욕구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예전 기억을 떠올려 보면
나도 질투심을 느껴보기도 했고,
상대가 나와 사실상 '구애 경쟁관계'에 있는 이성을 만나는 걸 탐탁치 않게 여기기도 했다.

이런 것들은 사람이라면, 즉 너무너무 좋아한다면 감정적으로 당연한 것일까?
아니면 가부장적인 일부일처제 사회가 만들어 낸 이데올로기에 젖어 있는 것일까?


.
예전에 "아내가 결혼했다"를 보면서 내가 주목한 것은
(나중에 다른 블로거들의 감상을 보면서 흥미로웠다)
배타적, 독점적 연애(그리고 결혼)에 대한 반성이었다.

현재의 결혼제도-일부일처제-가 가부장적 사회와 자본주의를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기제라고 본다면,
연애 역시 사실 결혼제도의 연장 선상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닌지 하고 고민했다.
배타성과 독점적 소유욕이 다양한 문제를 불러오고 심대한 감정낭비를 불러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봤다.

그래서 내가 지금 머리로 내리고 있는 결론은
이른바 자유연애 더구체화하자면 비독점적 다자연애(?)에 대한 지지다.
단, 상대자와의 사전 합의와 동의 과정을 전제해야겠지.

며칠 전에 본 "나는 섹스중독자"의 카베 자헤디는 "사유재산제에 반대한다면 자유연애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런 것처럼 대안체제를 지향하는 이는 자유연애를 지지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
그런데 이게 말이 되는걸까?
다른 이들은 어떻게 생각할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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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나는 섹스중독자&quot;

  • 등록일
    2007/02/03 23:53
  • 수정일
    2007/02/03 23:53
영화볼거 없나 하다가 순전히
주연을 겸한 감독이
한때 보봐르와 사르트르의 자유연애를 신봉했는데 어쩌구에 끌려서 본 듯 하다.

영화는 재미있다. 계속 킬킬거리면서 봤다.
남성의 성적 판타지의 일면을 보여주는 영화.
그 때문에 사실 불쾌한 장면도 살짝 있기도 하고.
정말 수많은 성판매 여성들이 등장한다. (감독은 성판매 여성과의 오럴섹스에 집착했으므로)
그런데 배경이 한국이라면 더욱 무거운 마음으로 봤을텐데
서구가 배경이어서인지 왠지 다른 느낌을 받았다는 것 정도가 좀 특이했고.

또 하나.
종종 '너무 정직해도 탈'이란 얘기를 하는데.
감독은 자신의 집착증을 나름 극복(?)해 보기 위해 자신의 애인에게 솔직하게 털어놓는
honesty전략을 써 보기도 한다.

그걸 보면서
정직한 것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오히려 죄책감을 더는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위선을 부릴 수도 있지 않을까.
나도 좀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흠...

여하튼 좀 웃기는 짬뽕 같은 영화.
사유재산제와 일부일처제를 동일시하면서 자유연애를 실천하던 20대 청년이
영화 맨 마지막에 자기는 섹스중독증을 고쳤고 세 번째 결혼을 한다고 자랑하는 건 참 아이러니다.



발칙하고 도발적인 유머 <나는 섹스중독자>
2007.01.17
 

가장 발칙하고 유머러스한 중독기, 감독의 솔직함에 경배를

나이 들어 머리숱도 적고, 비쩍 말라 볼품없는 남자가 카메라를 들여다보며 자신의 페티시즘과 강박증에 대해서 속사포처럼 중얼댄다. 어디서 많이 본 풍경이다. 신경증적인 뉴욕 지식 남성의 치부를 영화 가득 담아내었던 우디 앨런의 영화에서 우리는 ‘섹스에 관해 알고 싶은 모든 것’을 영화적으로 배웠다. 그러나 R등급의 우디 앨런이라는 별명이 붙은 카베 자헤디는 앨런이 철저하게 지켰던 그 영화적 거리를 파괴한다. 우리는 우디 앨런의 실생활에서의 여성 편력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의 영화가 감독의 현실을 그대로 모사하거나 재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면 카베 자헤디는 자신의 삶과 영화를 혼합한다. 우디 앨런은 다큐멘터리적인 기법을 차용할 때, 그것이 의도된 페이크다큐멘터리임을 감추지 않으며 그런 기법은 현실에 대한 풍자의 강도를 높이거나 아이러닉한 상황에 유머를 더욱더 가미하기 위해서 쓰인다. 그러나 카베 자헤디는 실제를 드러내기 위해서, 자기 영화의 진정성을 강조하기 위해 실제 존재했던 인물과 자신의 과거를 기록한 필름들을 활용한다.

카베 자헤디의 <나는 섹스중독자>는 세 번째 결혼을 앞두고 대기실에 있는 감독이 ‘나는 한때 섹스 중독자였다’고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과거를 재구성한 재연 화면, 사귀거나 결혼했던 여성들을 담은 실제 영상, 자신의 내면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애니메이션 화면이 자헤디 감독의 친절한 설명을 배경으로 이어진다. 감독은 자신과 함께했던 여인들과의 관계를 반추하면서 자신의 내밀한 욕망들을 거침없이, 매우 솔직하게 늘어놓는다. 그는 영혼의 동반자라고 생각했던 첫사랑 애나와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관계처럼 개방된 연애를 꿈꾼다. 하지만 그가 비자가 만료되어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애인 캐롤린을 옆에 두기 위해 결혼하면서 자유연애는 종지부를 찍는다. 결혼이란 ‘베트남전을 일으킨 자본주의 체제와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그것을 일부일처제적 사랑에 대한 합의가 아니라 일종의 행위 예술이라고 치부해버린다. 영화 때문에 파리로 건너간 그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아내 캐롤린을 닮은 창녀를 만난 이후 창녀와 오럴섹스에 병적으로 집착하게 된다. 이때부터 자신의 내밀한 성적 욕망과 결혼 혹은 연애 관계를 지키려는 자헤디의 눈물 나는 투쟁기가 시작된다.

사랑에 관한 통속적인 정의 가운데, ‘사랑은 두 사람이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다’와 ‘사랑은 평생 서로 마주보는 것이다’라는 명제가 있다. 전자는 주체와 대상 사이의 이상과 지향의 일치를, 후자는 둘간의 독점적이고 지속적인 관계 유지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자헤디는 이 두개의 정의들이 함축하는 사랑의 모습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처음에 그는 자신의 욕망을 부정하려고 하지만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만 할 뿐 좀체 수그러들 줄을 모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금지된 욕망을 금지되지 않은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즉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에게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인정받음으로써 그것이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가설을 세운 것이다. 그의 아내 혹은 애인들은 처음에는 그가 수줍게 털어놓은 비밀을 충격적으로 듣는다. 나의 남자가 내가 아닌 다른 여자, 그것도 창녀를 욕망하다니. 서럽게 울거나 구역질내던 그녀들은 이내 그의 솔직함을 인정하고 그의 판타지를 용인하고 공유해주기로 마음먹는다. 자헤디와 그의 연인들은 오래도록 서로 마주보기 위해서 같은 곳을 바라보기로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말 사랑에서도 ‘솔직함이 최선의 정책’이 될 수 있을까? 예일대에서 철학을 전공한 자헤디 감독은 온갖 지적 담론들과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사랑을 둘러싼 두 가지 본능에 대해 실험한다. 하나는 성욕을 일대일의 독점적인 관계 속에 묶어두는 것은 매우 부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 그러므로 자유분방하게 뻗어나가는 욕망에 대해 좀더 솔직하고 대범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첫 번째 것과 매우 모순적인 것인데, 주체는 자신이 욕망하는 대상을, 특히 성적인 면에서 독점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헤디는 자신이 창녀들에게 가지고 있는 욕망을 애인과 공유하기를 원하면서 자신의 여자가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갖는 것에 대해는 다스릴 수 없는 질투에 휩싸인다. 감독은 관계의 황금률을 지키지 못하는 스스로를 목격하며 욕망의 딜레마에 빠진다. 지식인 남자가 가진 욕망의 천박함 혹은 편협함을 인정하는 이런 솔직함이 이 영화가 가진 강점이며, 이 영화가 남성 본위의 성적 판타지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자신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데빈과의 관계를 통해 카베는 자신을 비추어본다. 알코올중독자인 그녀를 참아낼 수 없는 자신을 보며, 여자들을 괴롭혀온 자신의 욕망도 일종의 중독 증세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인식에 이르게 되고 자신을 ‘섹스중독자’라고 규정한다. 결혼과 사랑 그리고 성욕에 대해 대담하고 솔직했던 서두와 본론에 비해 그를 섹스중독으로부터 벗어나게 한 결론은 다소 상투적이고 낭만적이다. 그렇지만 <나는 섹스중독자>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쉽게 보기 힘든, 발칙하고 도발적인 유머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은 확실하다.

글 : 김지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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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만에 다시 듣는 목소리..

  • 등록일
    2007/02/02 23:41
  • 수정일
    2007/02/02 23:41
전화번호는 다른 이를 통해 구했다.
하지만 막상 휴대폰의 '통화' 버튼을 누르기란 쉽지 않았다.
아마 상대는 '누구일까? 모르는 번호네' 하면서 받을 것이다.
그러나 전화 건 사람이 확인되는 순간
어떤 반응이 튀어 나올지는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2년이 조금 더 된 것 같다.
같이 활동하던 그 친구는 어느날 홀연히 종적을 감췄다.
당황스러웠고, 집 앞에 가서 지키고 있을까 하는 계획을 세우기도 여러 번.
다행히 한 달 가량의 시간이 지난 후, 그의 친한 선배에게로 연락이 왔다.
하지만 나는 그 연락의 대상에선 빠져 있었다.

그렇게 그 친구는 운동을 그만두었다.
가끔씩 그 선배를 통해 근황을 전해들었다.
그때마다 섭섭함과 자책감이 교차했다.

왜 그렇게 일방적으로 끊었는가.
한편으론 일방적으로 끊김을 당할 만큼 나의 노력은 부족했던가.

연락처를 알아두고, 언제고 한 번 연락해야지, 연락해봐야지.
만나주든 아니든.. 그러던 것은 차일피일 미루어졌다.
그리고 이제사, 조금은 홀가분한 처지가 되자 연락해 볼 의지가 난 모양이다.

통화는 참 어색하게도 이루어졌지만,
나의 바람대로 만날 약속은 정할 수 있었다.

다시 만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에게는 목적이 분명하다.
'그 곳'에 가기 전에 나의 10여 년을 되돌아 보고 싶다는 생각.
나의 시간들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시공에서 관계했던 사람들과 겹치는 것.
그래서 나만의 생각으론 속단할 수 없다.
풀리지 않았던 것들을 풀어보고자 하는 생각.
그렇게 나에게는 너무나 의식적인 만남일 테다.

반대로 그 친구에게는 이 만남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
전화를 끊고 나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다.

아픈 만남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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