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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우주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니 얼마나 행복할까?
그래도 마음이 좀 그래서... 차일 피일 미루고 있었는디....
회한의 시간마저 주지 않는구나... ㅜ.ㅜ
서둘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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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탈당선동에도 실제 탈당자 1.5%에 그쳐
대선 본격화한 이후 입당자는 3350명 당원 순증가
민주노동당의 전현직 고위당직자 또는 공직자들이 탈당하거나 또는 탈당선언을 하고 당내부에서 '당 깨자'는 선동이 무차별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탈당자수는 전체의 1.5% 수준인 1351명으로 매우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대선이 본격화된 지난 9월 이후 입당자수는 6787명으로 같은 기간 탈당한 사람 3437명에 비해 무려 3350명이나 더 많아 여전히 민주노동당의 당원 순증가세는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민주노동당 총무실 당원관리부의 최근 입탈당자 추이라는 문서를 통해 공개됐다.
광역별로 탈당자 수가 가장 많은 곳은 역시 당원 규모가 가장 큰 서울로, 414명에 달한다. 다음은 경기도당으로 253명, 강원도당이 그 뒤를 이어 228명이다.
최근 140여명이 집단탈당한 것으로 알려진 부산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광역시도당별로 10명에서 60여명 규모며 지역위 별로는 5명에서 20명 내외에 머무르고 있다.
탈당자 수가 1%대의 미미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데도 각종 언론보도에서 '당해체'류의 기사가 도배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이에대해 총무실 관계자는 "몇 안되는 당내 유명인사의 (탈당선언) 발언이 주는 무게감때문"이라고 답했다. 동시에 정파블럭을 형성하며 특정 지역 당권을 쥐고 있는 위원장단의 탈당행렬이 겉으로 보기에 마치 탈당행렬이 커 보이게 하는 효과를 주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실제로 몇몇 광역시도당 및 지역위원장들이 공개적으로 탈당과 분당을 선동하며 탈당계를 모아 기획탈당을 하고 이를 언론에 공개하는 방식으로 당의 위기감을 부채질하고 있다.
언론의 편향된 분당 부채질 보도태도에도 일부 원인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 5일 노회찬 의원과 박용진 전 대변인 등 서울지역 전현직 위원장단 20여명이 국회 정론관에서 탈당을 공식 선언했고 조중동 등 보수언론들은 이를 여과없이 보도한 반면 같은 날 천영세 대표직무대행의 민주노동당 공식브리핑은 거의 기사화되지 못했다.
하지만 실제 탈당자수가 여기서 머무르지는 않을 전망이다. 앞서 총무실 관계자는 "일부 탈당자들이 탈당선언만 하고 실제 탈당계를 내지 않고 각종 당직과 공직을 유지하는 경우가 있어 실제 탈당자수는 더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전직 중앙당 모 실장은 "명분없는 탈당 선동에 얼마나 많은 당원이 응하겠는가"며 "노동조합에서는 탈당 선동이 거의 먹히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실제로 대표적 노동 밀집 지역이며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당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울산의 경우 2월 5일 현재 탈당자수가 불과 32명에 불과했다.
한편 대규모 입당운동도 준비중이다. "당을 살리자"는 구호아래 당의 각급 지역위와 총선후보, 민주노총 등이 설 연휴가 끝나면 대규모 입당운동을 벌여 난자리보다 든자리를 더 키우겠다고 벼르고 있다.
현재 후원당원을 포함한 민주노동당의 총당원수는 10만1256명이다.
진보정치 권종술 기자
몇 가지 기억해둘만한 문장들...
학문의 길을 업으로 선택하면서, 학문하는 자세 혹은 직업윤리(?)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할 기회가 없었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반드시 정규 교과과정에 포함되어 있어야만 '배웠다'고 말할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뒤늦게라도 생각해볼 수 있어서 수 있어서 다행...
On intellectual craftsmanship - C. Wright Mills
... the most admirable thinkers within the scholarly community you have chosen to join do not split their work from heir lives. They seem to take both too seriously to allow such dissociation, and they want to use each for the enrichment of the other.
... To be able to trust yet to be skeptical of your own experience, I have come to believe, is one mark of the mature workman.
... The purpose of empirical inquiry is to settle disagreements and doubts about facts, and thus to make arguments more fruitful by basing all sides more substantively. Facts discipline reason; but reason is the advance guard in any field of learning.
(1) Be a good craftsman: Avoid any rigid set of procedures. Above all, seek to develop and to use the sociological imagination. Avoid the fetishsm of method and technique. Urge the rehabilitation of the unpretentious intellectual craftsman, and try to become such a craftsman yourself. Let every man be his own methodologist; let every man be his own theorist; let theory and method again become part of the practice of a craft. Stand for the primacy of the individual scholar; stand opposed to the ascendancy of research teams of technicians. Be one mind that is on its own confronting the problems of man and socienty.
(2) Avoid the Byzantine oddity of associated and dissociated concepts, the mannerism of verbiage.... Avoid using unintelligibility as a means of evading the making of judgments upun society - and as ameans of escaping your readers' judgments upon your own work
(3) Make any trans-historical constuctions you think your work requires: also delve into sub-historical minutiae....
(4) Do not study merely one small milieu after another; study the social structures in which milieux are organized...
(5) Realize that your aim is a fully comparative understanding of the social structures that have appeared and that do now exist in world history. Realize that to carry it out you must avoid the arbitrary specialization of prevailing academic departments....
(6) Always keep your eyes open to the image of man - the generic notion of his human nature - which by your work you are assuming and implying; and also the the image of history - your notion of how history is being made...
(7) Know that you inherit and are carrying on the tradition of classic social analysis; so try to understand man not as an isolated fragments, not as an intelligible filed or system in and of itself. Try to understand men and women as historical and social actors, and the ways in which the variety of man and women are intricately selected and intricately formed by the variety of human societies...
(8) Do not allow public issues as they are officially formulated, or troubles as they are privately felt, to determin the problems that you take up for study. Above all, do not give up your moral and political autonomy by accepting in somebody else's terms the illiberal practicality of the bureaucratic ethos or the liberal practicality of the moral scatter. Know that many personal troubles cannot be solved merely as troubles, but must be understood in terms of public issues - and in terms of the problems of history-making.....
* Edmund Wilson (the best critic in the English-speaking world)
"As for my experience with articles by experts in anthropology and sociology, it has led me to conclude that the requirement, in my ideal university, of having the papers in every department passed by a professio of English might result in revolutionizing these subjects - if indeed the second of them survived at all."
홍실이님의 [살바도르 아옌데 2편] 에 관련된 글.
3. 대통령으로서의 아옌데
아옌데 정부 - 인민연합 (the Popular Unity, PU) - 는 야심 찬 사업들과 함께 권력을 장악했다. 정부는 경제적 전략 분야에 위치한 산업들을 국유화하고 소득 재분배를 위한 강력한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또한 거대 농장의 지배를 종식시켰으며, 단원 입법기구를 설립하여 정치 체계를 변화시켰으며, 경제․정치․사법 체계의 운영에서 민중 참여를 증진시키고, 독립적인 외교 정책을 추구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현존하는 헌법 체계 안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즉, 사회주의에 이르는 칠레의 경로는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어떻게 이것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인민연합은 이러한 의문에 절대로 분명한 답을 하지 않았다. 이는 인민연합이 전술과 전략에 관한 생각이 상이한 여섯 개 단체의 연합체였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더구나 대통령은 그 자신의 사회당을 결코 통제하지 못했다. 대체로 당은 아옌데 자신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좀더 급진적인 방식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인민연합이 국회에서 과반수를 점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상원의 경우, 인민연합은 18석을 차지한데 비해 야당은 32석을 차지했으며, 하원에서는 57석 (야당은 93석)을 차지했을 뿐이었다. 1973년 대선에서 인민연합이 얻은 성과는 야당의 점유율을 아주 조금 줄였다는 것이다.
성공적인 경제 정책은 이 모든 문제를 극복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1년의 성장 후 경제는 악화되기 시작했다. 칠레의 주된 수출품목인 구리의 가격이 폭락했다. 외부적으로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킨 것은, 전통적인 자금 재원이 말라버린 것이었으며, 생활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식품 수입이 급증하고 이는 다시 지불 잔고 문제를 가져왔다. 노동자들이 공장을 장악하자, 자본가들은 대개 투자를 거부했다. 생필품 분배를 통제하려는 정부의 시도에 대한 반작용으로 암시장이 성장했다. 매일의 삶은 공급이 부족한 물자를 얻기 위한 줄서기의 연속이었다. 인플레이션을 통제를 벗어나고 있었다.
경제 붕괴와 정치적 갈등은 상호작용하고 서로를 강화시켰다. 유명한 칠레의 헌법 체계는 아옌데 정권에서의 정치적 갈등을 봉합하기에는 너무 취약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정부나 야당이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양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야당은, 불법은 아니더라도 분명 의회 체계의 관행들에서 벗어나는 행정부의 정책들을 차단할 일련의 수단들을 만들어내는데 몰두해 있었다. 정부 또한 적법성이 의심스러운 대책들을 채택하고는 했다. 이러한 행위는 상호 의심을 강화시키고, 곤경을 빠져나갈 방법을 찾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정부와 야당은 심각한 대결 국면을 맞이했다. 경제는 통제 불능 상태였으며, 둘 사이를 중재하려다 실패한 군 총사령관은 사임을 했다. 교회 또한 이 둘을 화해시킬 수 없었고, 폭력은 증가했다. 평화로운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아옌데 정부는 처음부터 적대적인 미국에 맞서야했으며, 미국은 의심할 여지 없이 칠레의 반정부 세력들을 지원했다. 그러나 쿠데타의 이유는 무엇보다 내부에서 찾을 수 있었다. 1973년 9월 11일, 마침내 상황은 종료되었다. 난폭한 군사쿠데타, 대통령궁 폭격, 아옌데의 사망, 수천 명 칠레인의 살해와 함께.
대통령으로서 아옌데는 많은 실책을 저질렀다. 1972년에 카스트로를 초청하여 3주간 그와 함께 머물도록 한 것은 실수였다. 아옌데는 중도파의 지지를 필요로 했지만, 이를 얻는 데 실패했다. 그가 성공할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그가 마음에 그렸던 급진적 프로그램은 강력하고 단결된 정부, 허약한 야당, 광범위한 전국적 지지, 우호적인 국제 환경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이들 중 어느 것도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4. 아옌데의 유산
현재 칠레에는 아옌데의 유산의 극소수만이 남아 있다. 거의 모든 그의 정책들은 군사 쿠데타 이후 뒤집혔으며, 그 후 자본가들은 반(反) 혁명을 이끌어나갔다. 피노체트(Pinochet) 정권은 아옌데 정부가 국유화시킨 산업의 대부분을 원래 소유주에게 돌려주었으며, 공공 지출을 대폭 삭감하고, 노동조합 운동을 탄압했다. 그러나 아옌데의 가장 인기 있던 정책들 중 극소수는 오늘 날에도 남아 있는데, 이를테면 학동들에게 매일 500ml의 우유를 공급하는 것이나 구리 산업의 대부분을 국가가 소유한 것이 그것이다. 현재까지 지속되는 업적 중 하나는 농촌 지역에서 라띠푼디오스 (latifundios, 대농장)를 철폐한 것이다. 얄궂게도, 이 분야에서의 사회주의적 개혁은 대규모 토지 소유자들을 제거함으로써 1973년 군사쿠데타 이후 농업 생산의 자본주의적 방식을 확립하는데 길을 닦아준 것이 되었다.
보다 넓은 정치적 의미에서, 아옌데 시대와 그 후의 독재에 대한 기억은 오늘날에도 칠레인들을 갈라놓고 있다. 어떤 이들에게, 아옌데 정권의 3년이라는 시간은 칠레 역사상 유일하게 노동 계급과 가난한 이들이 국가와 경제를 움직이는데 정당한 몫을 했던 시기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나라를 혼돈, 심지어 내전의 위기까지 몰고 간 정치적․경제적 불안정의 시기로 기억될 것이다. 비록 합의 정치가 우세하기는 하지만, 칠레인들의 투표 방식과 국가 통치를 위한 정치적 동맹의 속성은 모두 여전히 이러한 좌/우 분할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칠레 좌파에게 아옌데의 유산은 논쟁거리이기도 하다. 사회주의자들은 현존하는 민주주의 체계의 한도 내에서 보다 큰 사회적 정의를 달성하고자 노력했던 아옌데의 모습에서 사회민주주의를 강조한다. 인민연합의 패배에서 그들이 얻은 주요 결론은, 사회 변화를 이루려면 광범위한 전국적 합의와 정치적 스펙트럼 상의 좌파, 중도파의 동맹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공산주의자들은 미국과 쿠데타를 일으킨 우익을 비난하며, 인민연합의 마르크스주의적 프로그램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들은 사회주의자들이 합의의 정치와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아옌데의 이상을 폐기했다고 비난한다.
살바도르 아옌데는 그가 살았던 시대의 산물이다. 그는 부르주아 출신의 뛰어난 의회주의자로서, 공화국 칠레의 입헌 체계를 굳게 추종했다. 그는 또한 쿠바 혁명과 1960년대에 전반적 의제를 좌파 쪽으로 이동시킨 정치 운동에서 영감을 얻은 마르크스주의자였다. 그의 비극은 민주주의 원칙과 급진적 사회변화를 통합하려는 시도 속에서, 칠레가 자랑스러워하던 민주주의 체계의 바탕에 깔려 있는 합의의 한계를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계속: 살바도르 아옌데와 라틴아메리카 사회의학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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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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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이 커질수록 대중의 지지율은 줄어든다?결국 코페르니쿠스는..... 진실을 위해 선포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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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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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뱃살이 찢겼는데 빨간약바르는 기만적인 기사 정말 싫군요."몇명이 떠났는가?"하는 양적 문제가 아니라, "누가 떠났는가?"하는 질적 문제임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이런 식으로 빨간약 바른다고 문제의 심각성이 극복될까요... 당 기관지를 내는 인간들의 정신세계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탈당계를 낸 사실에 일말의 미안함마저 사라지게 만드는 기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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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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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민주노동당 홈페이지에서 이 글 읽고나서 탈당하는 법 알아보고 있습니다. 생각하기 싫어서 미룰려고 했는데, 정말 등을 떠미네요.부가 정보
hongsi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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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 근데, 프톨레마이오스는 행복했을까요???laron/ 이래도 안 나갈래? 하는 거 같아요... ㅡ.ㅡ
진철/ 당게에 보니 그분들께서 당원관리 프로그램을 막아놔서 지역의 탈당처리가 늦어진다는 험악한 글들도 있더군요. 요즘엔 이런 이야기에조차 '에이 설마... '로 반응하기가 쉽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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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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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미, 2주간 국내외 시사 문제에 관심을 못가졌더니 참 어이가 없네요. 그건 그렇구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원고 마감 준수를 못한 죄로 OST를 파일로 보내드릴까 하는데 어떤게 좋으세요? '아주르와 아스마르', '수면의 과학' 기타 등등이 있는데 원하는게 있으면 알려주세요~부가 정보
홍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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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셔/ 이 처자, 샘의 신혼여행을 진심으로 슬퍼했답니다. (오매불망 원고를 기다리는) 저를 버리시고 그렇게 훌쩍 떠나버리시다니... 그나저나 아주르와 아스마르 좋아요. 그리고 다시 한번 결혼 추카!!!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