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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3/09
    지난 주 한겨레 21기사들
    hongsili
  2. 2008/02/08
    진정 나가라고 등을 떠미는구나!(6)
    hongsili
  3. 2008/01/24
    국제앰네스티 성명서(1)
    hongsili
  4. 2007/10/07
    "지적 장인정신에 관하여"
    hongsili
  5. 2007/08/09
    엄청난 걸 바라는 건 아니다.(2)
    hongsili
  6. 2007/07/17
    [번역] 과학의 상품화 3부(7)
    hongsili
  7. 2007/07/17
    [번역] 과학의 상품화 2부
    hongsili
  8. 2007/07/17
    [번역] 과학의 상품화 1부
    hongsili
  9. 2007/07/12
    건강투자전략: 토론문
    hongsili
  10. 2007/06/19
    [살바도르 아옌데] 3편
    hongsili

지난 주 한겨레 21기사들

지난 주 한겨레 21 (제 700호)에 실린 글들 중 눈길이 가는 부분... 0. 연재 [소설 읽는 여자] 중... " 오늘은 누군가의 험담을 푸짐하게 하겠다. 우리나라에서 번역으로만 먹고산다는 건 참 힘든 일이기 때문에 번역가 중에는 투잡족이 꽤 많은데, 이들 중에서 편집자들이 가장 골치 아파하는 이들은 ‘일부’ 대학교수다. 사실 이분들은 번역을 본업으로 여기는 분들이 아니며, 세간의 짐작과 달리 번역의 성실성이 가장 떨어진다. 제자들에게 번역을 찢어 맡기거나, 문장 토씨 하나도 손대지 못하게 하거나, 일정을 몇 년씩 미루는 일이 보통이다. 프로필을 으리으리하게 꾸미는 데 치중하며, 편집자를 조교처럼 부리는 일을 당연하게 여긴다. 몇 년 간 번역을 안 주고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 연구실적에 보태야 한다며 한 달 만에 책을 내달라고 주문하는 이들도 있다. 어느 날 위에서 낙하산을 타고 떨어지는 게 특징인 이런 ‘교수 번역 프로젝트’들 중에서 위의 특징을 한두 가지쯤 안 가지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이런 책을 담당하게 된 편집자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만 한다... "


0. 시평에 해당하는 [노땡큐] 중 (이번 주는 홍기빈 선생이 썼다) "... 이 ‘떴다방 내각’의 정당성과 도덕성에 대한 세인의 질타가 높다. 응당한 일이다. 하지만 모럴리스트가 아닌 필자는 좀 다른 각도에서 걱정이 된다. 첫째, 앞으로 국정 전반을 책임질 이 ‘떴다방’ 출신 인사들의 고민과 실력이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 5년간 부동산 시장이 큰 널뛰기를 겪었음을 감안한다면 그 와중에 이렇게 성공적인 자산 보유를 위해 사방팔방으로 정보 수집과 몸소 발품 파는 현지답사가 필수였을 것이다. 그 바쁜 와중에 이들이 ‘21세기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기 위한 고민과 연구와 조사를 과연 얼마나 축적했을까. 실제로 이들의 경력과 업적을 둘러보면 혁신적 내용을 담은 이론 및 실천의 흔적은 고사하고 그 흔한 ‘전문성’조차 의심스러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스스로(!) 사퇴한 남주홍 교수의 경우 지난 10년간 학술진흥재단 등재 논문이 단 한 편도 없었다고 한다. 둘째, 이들이 청문회 과정에서 줄줄이 뱉어놓은 엽기적 발언들로 볼 때 ‘사회적 백치’임이 의심되기 때문이다. 원래 ‘백치’(idiot)란 지능지수를 문제 삼는 용어가 아니다.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안에서 함께 사는 다른 이들의 고통과 고민이 무엇인지라는 공적인 고민을 일체 끊어버리고 자기 이익만을 좇아서 사는,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아예 소통이 되지 않고 사오정 노릇이나 하게 되는 이들을 일컫는 고대 그리스 말에서 온 용어이다. ‘자연을 사랑하여 땅을 샀다’든가 ‘친환경적 주거를 찾아 여의도를 버리고 송파구의 아파트 오피스텔을 구입했다’든가 하는 파격적인 발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몇 년에 걸쳐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일체의 관심과 토론의 욕망을 끊어버리고 스스로를 오로지 자기 이익이라는 토굴 속에 가둬 용맹정진했던 이들만이 내놓을 수 있는 법문인 것이다. 이러한 절정의 선승(禪僧)들이 신개발 지역의 부동산이 아닌 민주 정부의 각료 자리로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어질거린다. ..." 0. [카스트로 물러난 쿠바를 가다] - 하영식 전문위원 (http://h21.hani.co.kr/section-021005000/2008/03/021005000200803060700049.html) 접근이 피상적이라 다소 실망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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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나가라고 등을 떠미는구나!

우주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니 얼마나 행복할까?

 

그래도 마음이 좀 그래서... 차일 피일 미루고 있었는디....

회한의 시간마저 주지 않는구나... ㅜ.ㅜ

서둘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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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탈당선동에도 실제 탈당자 1.5%에 그쳐
대선 본격화한 이후 입당자는 3350명 당원 순증가

민주노동당의 전현직 고위당직자 또는 공직자들이 탈당하거나 또는 탈당선언을 하고 당내부에서 '당 깨자'는 선동이 무차별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탈당자수는 전체의 1.5% 수준인 1351명으로 매우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대선이 본격화된 지난 9월 이후 입당자수는 6787명으로 같은 기간 탈당한 사람 3437명에 비해 무려 3350명이나 더 많아 여전히 민주노동당의 당원 순증가세는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민주노동당 총무실 당원관리부의 최근 입탈당자 추이라는 문서를 통해 공개됐다.

광역별로 탈당자 수가 가장 많은 곳은 역시 당원 규모가 가장 큰 서울로, 414명에 달한다. 다음은 경기도당으로 253명, 강원도당이 그 뒤를 이어 228명이다.

최근 140여명이 집단탈당한 것으로 알려진 부산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광역시도당별로 10명에서 60여명 규모며 지역위 별로는 5명에서 20명 내외에 머무르고 있다.

탈당자 수가 1%대의 미미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데도 각종 언론보도에서 '당해체'류의 기사가 도배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이에대해 총무실 관계자는 "몇 안되는 당내 유명인사의 (탈당선언) 발언이 주는 무게감때문"이라고 답했다. 동시에 정파블럭을 형성하며 특정 지역 당권을 쥐고 있는 위원장단의 탈당행렬이 겉으로 보기에 마치 탈당행렬이 커 보이게 하는 효과를 주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실제로 몇몇 광역시도당 및 지역위원장들이 공개적으로 탈당과 분당을 선동하며 탈당계를 모아 기획탈당을 하고 이를 언론에 공개하는 방식으로 당의 위기감을 부채질하고 있다.

언론의 편향된 분당 부채질 보도태도에도 일부 원인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 5일 노회찬 의원과 박용진 전 대변인 등 서울지역 전현직 위원장단 20여명이 국회 정론관에서 탈당을 공식 선언했고 조중동 등 보수언론들은 이를 여과없이 보도한 반면 같은 날 천영세 대표직무대행의 민주노동당 공식브리핑은 거의 기사화되지 못했다.

하지만 실제 탈당자수가 여기서 머무르지는 않을 전망이다. 앞서 총무실 관계자는 "일부 탈당자들이 탈당선언만 하고 실제 탈당계를 내지 않고 각종 당직과 공직을 유지하는 경우가 있어 실제 탈당자수는 더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전직 중앙당 모 실장은 "명분없는 탈당 선동에 얼마나 많은 당원이 응하겠는가"며 "노동조합에서는 탈당 선동이 거의 먹히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실제로 대표적 노동 밀집 지역이며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당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울산의 경우 2월 5일 현재 탈당자수가 불과 32명에 불과했다.

한편 대규모 입당운동도 준비중이다. "당을 살리자"는 구호아래 당의 각급 지역위와 총선후보, 민주노총 등이 설 연휴가 끝나면 대규모 입당운동을 벌여 난자리보다 든자리를 더 키우겠다고 벼르고 있다.

현재 후원당원을 포함한 민주노동당의 총당원수는 10만1256명이다.

진보정치 권종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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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 성명서

너무 많은 일을 하시다보니, 살짝 정신을 놓으신게야.... 제발 그 좋아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주시면 좋겠구먼... ---------------------------------------------------------------- Report Content AMNESTY INTERNATIONAL PUBLIC STATEMENT AI Index: ASA 25/001/2008 (Public) Date: 18 January 2008 Republic of Korea (South Korea): Grave Concerns for the Future Independence of the National Human Rights Commission of South Korea Amnesty International is concerned that President-elect Lee Myung-bak has announced plans to change the status of the National Human Rights Commission (NHRC) from an independent body and place it under the Presidential Office. This move is part of the reorganisation plans announced on 16 January 2008 by President Lee Myung-bak’s transition team. The NHRC was established in 2001 as an independent body by the National Human Rights Commission Act. Article 3 of this Act allows for the independence of the NHRC in accordance with the Principles relating to the status of national institutions (“Paris Principles”). The independence of the NHRC is also provided for in the Constitution under Article 10 on the duty to protect human rights. Lack of independence would undermine the objectivity and authority of the NHRC to speak out on human rights concerns in the country without fear of censorship. It would also deter victims, relatives and other individuals or organizations from complaining to the NHRC, for fear of reprisals or lack of hope to obtain justice. Amnesty international believes that placing the NHRC under the Presidential Office will be a setback for the promotion and protection of human rights in South Korea. The purpose of national human rights institutes is to promote and protect human rights, through effective investigation of broad human rights concerns and individuals’ complaints about human rights violations they have suffered, and through making recommendations accordingly. Since most of the human rights violations are perpetrated by the State, international standards, in particular the Paris Principles emphasise the importance of the independence of national human rights institutions from the executive functions of government for their proper functioning. Amnesty International strongly urges President-elect Lee Myung-bak to commit to keeping the present status of the NHRC as an independent body. Public Document **************************************** 국제앰네스티는 이명박 대통령당선인이 국가인권위원회를 독립기관에서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전환하려는 계획을 발표한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다 .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는 2001년 국가인권위원회법에 의해 독립기관으로 설립되었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조는 국가 인권기구설립에 관한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기본준칙("파리원칙")에 의거한 원칙들에 따라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있다 .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은 인권을 보호할 의무에 대한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서도 보장되고 있다. 독립성의 결여는 다른 국가기관의 개입이나 간섭 없이 국내 인권 쟁점에 대해 의견을 표명해야 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객관성과 권위를 훼손시킬 것이다 . 또한 보복의 두려움 또는 정의구현에 대한 희망의 좌절로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 그 외의 개인들과 단체들의 진정을 감소시킬 것이다. 국제앰네스티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대통령직속기관으로 전환되는 것은 대한민국의 인권 보호와 증진의 퇴보라고 주장한다 . 국가 인권기구의 목적은 전반적인 인권문제와 각 개인들의 인권침해 진정에 대한 효과적인 조사와 그에 따른 개선권고를 통한 인권의 보호와 증진에 있다 . 대부분의 인권침해의 주체는 국가이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기준, 특히 파리원칙은 국가인권기구의 올바른 기능을 위해 정부의 어떠한 부서로부터의 독립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국제앰네스티는 이명박 대통령당선인에게 국가인권위원회를 독립기관으로 유지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 펌: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www.amnest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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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장인정신에 관하여"

몇 가지 기억해둘만한 문장들...

 

학문의 길을 업으로 선택하면서, 학문하는 자세 혹은 직업윤리(?)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할 기회가 없었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반드시 정규 교과과정에 포함되어 있어야만 '배웠다'고 말할수 있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뒤늦게라도 생각해볼 수 있어서 수 있어서 다행...    

 

On intellectual craftsmanship - C. Wright Mills

 

... the most admirable thinkers within the scholarly community you have chosen to join do not split their work from heir lives. They seem to take both too seriously to allow such dissociation, and they want to use each for the enrichment of the other.

 

 

... To be able to trust yet to be skeptical of your own experience, I have come to believe, is one mark of the mature workman.

 

 

... The purpose of empirical inquiry is to settle disagreements and doubts about facts, and thus to make arguments more fruitful by basing all sides more substantively. Facts discipline reason; but reason is the advance guard in any field of learning.

 

 



(1) Be a good craftsman: Avoid any rigid set of procedures. Above all, seek to develop and to use the sociological imagination. Avoid the fetishsm of method and technique. Urge the rehabilitation of the unpretentious intellectual craftsman, and try to become such a craftsman yourself. Let every man be his own methodologist; let every man be his own theorist; let theory and method again become part of the practice of a craft. Stand for the primacy of the individual scholar; stand opposed to the ascendancy of research teams of technicians. Be one mind that is on its own confronting the problems of man and socienty.

 

(2) Avoid the Byzantine oddity of associated and dissociated concepts, the mannerism of verbiage.... Avoid using unintelligibility as a means of evading the making of judgments upun society - and as ameans of escaping your readers' judgments upon your own work

 

(3) Make any trans-historical constuctions you think your work requires: also delve into sub-historical minutiae....

 

(4) Do not study merely one small milieu after another; study the social structures in which milieux are organized...

 

(5) Realize that your aim is a fully comparative understanding of the social structures that have appeared and that do now exist in world history. Realize that to carry it out you must avoid the arbitrary specialization of prevailing academic departments....

 

(6) Always keep your eyes open to the image of man - the generic notion of his human nature - which by your work you are assuming and implying; and also the the image of history - your notion of how history is being made...

 

(7) Know that you inherit and are carrying on the tradition of classic social analysis; so try to understand man not as an isolated fragments, not as an intelligible filed or system in and of itself. Try to understand men and women as historical and social actors, and the ways in which the variety of man and women are intricately selected and intricately formed by the variety of human societies...

 

(8) Do not allow public issues as they are officially formulated, or troubles as they are privately felt, to determin the problems that you take up for study. Above all, do not give up your moral and political autonomy by accepting in somebody else's terms the illiberal practicality of the bureaucratic ethos or the liberal practicality of the moral scatter. Know that many personal troubles cannot be solved merely as troubles, but must be understood in terms of public issues - and in terms of the problems of history-making.....

 

 

 

* Edmund Wilson (the best critic in the English-speaking world)

"As for my experience with articles by experts in anthropology and sociology, it has led me to conclude that the requirement, in my ideal university, of having the papers in every department passed by a professio of English might result in revolutionizing these subjects - if indeed the second of them survived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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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걸 바라는 건 아니다.

그저, 상층 혹은 중간계급에게 발생했을 때 엄청난 문제라고 여겨진다면, 똑같은 일이 노동자 계급에게 일어났을 때도 엄청난 문제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거다. Point of Production 제 4장 중에서... " 오래된 계급 구분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상투적 표현들과 유쾌한 개념들은, 미국 노동자들이 중간 계급과 달리 심각한 손상, 심지어 죽음까지 그들의 일상적인 현실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에 의해 공허한 어구임이 드러나게 된다. 상상해보라. 만일 해마다 여러 개의 기업 본사가 광산처럼 붕괴되어 60-70명의 기업 간부들이 깔려 죽는다면 터져나올 아우성을. 또는 모든 은행이 경영진, 사무원, 출납계원에게 꾸준히 암을 유발시키는 보이지 않는 독성 먼지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해보자. 마지막으로, 이런 공포를 상상해보자. 매년 수천 명의 대학 교수가 일을 하면서 귀가 멀고, 손가락, 손, 때로는 눈을 잃는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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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과학의 상품화 3부

홍실이님의 [] 에 관련된 글.

자본주의 경제에서 학술 계층의 존재 조건은 과학자들의 신념과 태도를 일반적인 자유주의적 보수주의 전통의 일부로 강화시킨다. 과학자들의 신념에서 나타나는 폭넓은 차이, 그리고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상반된 믿음에도 불구하고 진정하게 부르주아를 나타낼 수 있는 일관되고 암묵적인 이데올로기가 존재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특성들이 포함된다. - 개인주의 : 과학에서 적용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에 대한 부르주아의 원자론적 관점은 소수의 개인들(여기에서는 단지 “우리”)에 의해 진보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과학자들은 스스로를 자신의 의도를 독립적으로 추구하는 자유로운 주체라고 생각한다. “천문학이 지구의 공전을 인정하기 어려웠던 이유가 지구의 정지성과 행성들의 운동에 대한 즉자적 감각에 있었던 것처럼, 역사학에서 개인이 공간과 시간의 법칙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개인의 독립성에 대한 직접적 감각을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지식인들만큼 독립성에 대한 느낌이 강하고 기만 상태가 한심하게 나타나는 곳도 없다. 과학에서의 개인주의는 인구집단이나 사회의 원자(유전자)들의 속성으로부터 집단의 속성을 유추할 수 있다는 보편적 믿음을 만들어내는데 일조해왔다. 이는 또한 출세욕이라는 주관적 경험을 변환시킴으로써 이기주의라는 진화의 법칙을 고안해냈다. 개인주의 이데올로기의 핵심 요소는 그러한 이데올로기의 부정이다.


- 엘리트주의 : 소수 지식인 집단의 우월성에 대한 이러한 주장은, 종종 인류의 생존이 이들 지식인들이 나머지 대다수 사람들을 설득하고 부추겨서 그들에게 득이 되는 일을 하게 만드는 능력에 달려 있다고 믿게 만든다. 이러한 편견은 특히 정치적 억압에 대한 저항을 다룬 공상 과학 소설에서 현저하게 나타난다. 여기에서 소수의 헌신적인 과학자들은 억압적인 지배자를 계략으로 물리치기 위해 공모를 벌인다. 이러한 엘리트주의는 근본적으로 반(反) 민주적이며 전문지식에 대한 숭배를 부추긴다. 또한 대중 조작의 미학적 포장이자 학계의 방식에 따라 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경멸이기도 하며, 때로는 인종주의와 성 차별주의를 강화하기도 한다. 보통 사람들의 지식을 하찮게 여긴 결과는 농업 발전에서의 재난으로 이어졌다. 엘리트주의 관점은 지적인 삶에 대한 관리적 접근을 옹호하며, 학계나 기업 엘리트의 수용적인(cooptive) 자기선택을 인간사 해결의 합리적 방법으로 여긴다. 과학 내부의 이론적 문제에서, 엘리트주의는 위계적인 조직 개념에 대한 믿음과 환원주의적 세계관에 들어맞는 통제 요인을 탐색하는데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유전자, 사회, 심지어 생태계의 명령 계통 모형을 선호함으로써 각 부분들의 호혜적인 상호침투에 관한 연구들을 지연시키고 있다. 개인주의가 세상에서 부분들(이를테면, 생태계의 종들)이 본질적으로 독립적이라는 모형을 선호한다면, 엘리트주의 패러다임은 자율성을 가로막는 구조를 강요한다. - 실용주의 : 서구 이념에서 “실용주의적”이란 용어는 경멸의 뜻이 담겨 있는 “이념적”이라는 단어와 반대로 찬미의 뜻이 담겨 있다. 과학자들에게 실용주의란 상품화와 전문화에 의해 부과된 경계 조건을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왜”라는 질문 없이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다. 미사일 전문가에 관한 톰 레러(Tom Lehrer)의 노래 가사를 보면 그 입장이 잘 나타나 있다. “로켓이 발사되면 그것들이 어디로 떨어질지 과연 누가 신경을 쓸까? 내 부서가 아닙니다. 베르너 폰 브라운(Werner von Braun)은 말했지.” 과학자들이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경로는 컨설턴트로서 “정책 결정자”들에게 전하는 자문을 통해서이다. 이것이 효과적이려면 신뢰감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자문은 수용 가능한 영역에 한정되어야 한다. 신뢰를 거두어들이는 듯한 고객의 치켜 뜬 눈썹은 과학자들이 자문 제공에 좀더 신중하도록 만들 뿐 아니라 결국 자문가의 지적 지평을 협소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실용주의자의 관점에서, 사회 체계의 불공정에 관한 뚜렷한 감정은 필연적으로 이념적이라는 혐의에 연결되며, 학문적인 냉철함에 반대되는 미성숙성을 의미한다. - 감정과 이성의 분리 : 과학자들은 한 때 세계에 관한 모든 주장들은 증거에 의해 입증되어야만 한다는 원칙을 수립하기 위해 투쟁해야만 했었다. 권위에의 호소도, 스스로의 소망도, 학문적 논란에서는 개입이 허용되지 않는다. 감정으로부터 이성의 일정한 분리는 학문의 정통성을 수립하기 위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이것이 절대적인 위치를 점하면서, 감정과 이성의 분리는 자의식적인 학술 행위의 방해물이 되었다. 이는 우리가 어떠한 근원에 토대를 두고 연구의 방향을 설정하거나 연구 방법을 선택하는지를 모호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는 학술 논문의 양식화된 서문을 강요한다. 과학자들을 1인칭 대명사를 제거하고 수잔 그리핀(Susan Griffin)이 “수동적인 비(非)인칭”이라고 기술한 문법 형태의 채택이라는 비열한 장치를 통해 스스로 창조적인 작업 과정으로부터 빠져나간다. 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에 대한 질문들이 가치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형식상 자유로워진 후, 그들이 쉽게 재결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철학자들이 “~이다(is)”와 “~해야 한다(should)”를 어떻게 관계 지어야 할지 평생에 걸쳐 논쟁을 벌이는 반면, 과학자들은 “비용 효과성”, “살상 비(比)” 같은 비(非)인칭적인 어휘들의 완충 효과 덕분에 자신의 노동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자유롭게 온갖 종류의 무기들을 만들 수 있다. 이제, 감정에 대한 이성의 우월성은 감정을 억누르는 사람이 그것을 표현하는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비롯된 결과 중의 하나는, 우리 사회에서 감정의 보호자로서 사회화가 되어온 여성들이 학문을 하기 위해 스스로를 억압하거나, “보다 감정적”인 것이 덜 이성적인 것을 의미하기라도 하는 양 구조적으로 평가 절하되는 것이다. - 환원주의 : 연구에서 학술 노동과 통제 기능이 분화되면서, 일반 세계에서 쉽게 볼 수 있던 조직화 모형이 학술 사회에도 나타나게 되었다. 관련성 있는 유사한 작업들이 학과장 하에 편재되고, 다소 차이는 있지만 관계있는 업무들이 학장 하에 조직화되고, 각기 무관한 작업들은 다른 단과대학이나 부서별로 조직화된다. 이러면서 회사나 대학의 조직도를 따르는 것이 자연의 섭리인 것처럼 인식된다. 실천에서의 이러한 분화는 원자론적 개인주의와 결합함으로써, 과학자들의 암묵적인 철학 체계 안에서 여전히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환원주의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로서, 우리는 과학의 상품화 이전 시대로 되돌아가자고 호소하기 위해 과학의 상품화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트러스트를 야기했던 과거의 바로 그 상황들을 재현하고자 했던 반(反) 트러스트 법만큼이나 쓸데없는 짓이다. 우리의 의도는 이와 다르다. 과학의 상품화, 자본주의 생산 과정에의 전면적인 결합은 학술 활동을 위한 삶에서 지배적인 사실이며 과학자의 사고에 심원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연관성을 부정하는 것은 그것의 힘에 종속된 채로 남아 있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자유를 향한 첫 걸음은 우리 부자유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노동하는 과학자로서, 우리는 과학의 상품화가 대다수의 과학자들이 그들 노동의 산물로부터 소외되는 일차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는 과학의 강력한 통찰력과 이에 상응하는 인류 복지의 향상 사이에 자리 잡고 있으며, 때로는 공표된 목표와 모순되는 결과들을 생산하기도 한다. 현대 사회에서 굶주림이 지속되는 것은 식량 공급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방해하는 어떤 강력한 걸림돌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농업이 이윤과는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반면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것과는 단지 간접적으로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보건의료 조직은 일차적으로 경제적 기업이며 사람들의 건강 필요에 의해서는 단지 부차적으로만 영향을 받는다. 과학적으로 정교한 사회에서 나타나는 비합리성들은 지성의 실패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집요함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이는 또한 부산물로서 인간 지성을 유산시킨다. 일부 국가들이 자본주의와 갈라서고 있는 현실에서, 현재 과학의 존재 방식이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 현재의 구조는 자연의 섭리가 아닌 자본주의에 의해 부과된 것이며, 따라서 이러한 방식을 열심히 따라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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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과학의 상품화 2부

홍실이님의 [] 에 관련된 글.

과학의 상품화는 특별한 변환이 아니라 자본주의 발전의 자연스러운 일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이를 논의하는 것은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학 활동에서의 이러한 변화가 낳은 결과를 검토하기 위해서이다. 상품 형태는 매우 다른 재화들 사이에서 등가(等價)를 성립시킨다. 낙타 한 마리가 담요 한 장에 상응하지는 않지만, 낙타 한 마리의 가치는 담요 몇 장의 가치와 같을 수 있다. 즉 C≠ B 이지만 V(C) = V(B) 가 될 수 있다. 질적으로 동등한 교환가치를 통해 재화들을 거래하고, 이렇게 해서 서로 다른 것으로의 변환이 가능해진다. 시장은 연금술사들이 할 수 없었던 것을 해내고 있다. 이를테면 1980년 현재, 납 5백 파운드와 금 1온스라는 교환 비를 통해 납은 금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서로 다른 재화들 사이에 동등성을 성립시키는 이러한 능력은 인간 노동 산물의 교환이 개별 가구 밖에서 주로 이루어지도록 만들었다. 여기에는 물론 다른 형태의 교환, 이를테면 관례적인 선물 증정, 공유, 어려운 시기의 재분배, 의례로 자리 잡은 교환 등이 존재한다. 그러나 심지어 가족 안에서도 분배는 상품 관계에 의해 주도된다. 가장 좋은 음식은 돈을 벌어오는 사람한테 주어지며 여성들은 스스로의 벌이를 관리하기 위해 투쟁을 벌여야만 한다. 상품화는 개별 재화들이 경제적으로 비슷하면서 물리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 비슷함과 다름이 거래의 기본적인 전제조건이 된다는 점에서 이는 추상적 사고의 위대한 진전이라 볼 수 있다. 교환이 완벽하게 상품화되고 교환가치가 재화의 객관적이고 경제적인 속성으로 나타나려면 그 전에 수(數)의 법칙이 작동할 수 있을 만큼 빈번한 교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같은 재화들이 규칙적으로 사고 팔릴 때, 구매자들이 생산자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다른 곳에서 똑같은 생산품을 찾을 수 있을 때, 생산자들이 다른 고객들을 기대할 수 있을 때, 개별 구매자들의 특이한 취향, 상대적인 구매력, 개인적인 절박성 등은 매끈하게 제거된다. 투자가들이 더 큰 이윤을 약속하는 기업에 자본을 쏟아 부을 때, 그리고 사람들(심지어 매우 숙련된 사람들)을 일반화된 노동력으로, 생산의 대체 가능한 비용으로 다룰 때 상품화는 더욱 심원해진다.


19세기 말까지, 과학은 화학․전기 산업의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에 채 이르기 전, 대대적인 과학의 상품화가 진전됨으로써 과학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게 되었다. - 연구는 기업의 투자 분야가 되었다. 기술 산업의 경우, 매출의 약 3~7%는 연구와 개발에 지출된다고 알려져 있다. 자본 투자의 한 가지 방식인 연구 투자는 다른 투자 방식들, 이를테면 생산 증대, 광고 증가, 변호사와 로비스트 고용, 다른 사업 분야 기업의 인수, 노조의 궤멸, 잠재적인 고객 국가들의 정책 결정자들에 대한 뇌물 살포 등과 경쟁 관계에 있다. 이 모든 가능성들은 이윤 극대화라는 단일 척도를 기준으로 우열이 가려지게 된다. 기업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 연구 투자가 예산 삭감의 1순위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기술 혁신은 즉각적인 성과물을 내지 못하는 반면, 광고 증가나 노동 혹은 재료비용의 감소는 이윤에 즉각 반영되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기업의 의사 결정에 관한 연구결과들을 살펴보면, 관리자들의 전형적인 결정 지평이 대개 3~5년 정도로 나타난다. 연구에 대한 투자는 이 정도의 시간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만다. 한편, 오랜 시간이 걸리는 연구들은 개별 기업이 아닌 대학, 국립 연구소 등 공공 기관에서 수행되면서 그 비용의 사회화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개별 기업들은 투자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며, 전체 비용은 세금을 기반으로 사회 전체에 고루 퍼지게 된다. 그러나 이렇듯 사회화된 연구라 할지라도 시장에 내놓을만한 상품의 생산 시점에 이르면 최종 개발은 다시 민간 기업의 손으로 넘어가고 이를 통해 배타적인 소유권 행사가 가능해진다. 예를 들면, 이는 새로운 품종 개발과 관련하여 농업 분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국립 연구소들이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여 인증된 종자 생산자들에게 이를 배포한다. 그러면 품종은 이제 일반적인 소유권이 되어 그것들을 “세공”하고 최종 결과물을 농민들에게 판매하는 종자회사가 독점하게 된다. 연구 투자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는 학술 컨설팅 회사라 할 수 있다. 연구 보고서는 이들의 유일한 생산품이다. (1983년 당시, 보스턴 지역에만도 1~2백 개의 기업들이 생태학적 자문과 관련되어 있었다). 여기에서 분명한 것은 보고서의 질을 검증하는 것은 동료 심사가 아니라 고객의 만족도라는 점이다. 그 보고서가 환경 영향 평가에 관한 것이라고 가정해보자. 이 때 고객을 만족시킨다는 것은, 의뢰한 회사가 법률을 준수하고 있으며 그 활동이 무해하고 최소 비용으로 문제를 잘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해당 감독 기구에 납득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컨설팅 회사와 기업 고객의 관계는 복잡하다. 컨설턴트는 당연히 소규모보다는 대규모 계약을 선호하며, 따라서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욱 완벽한 조사를 시행하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다른 한편, 이 분야의 극심한 경쟁 때문에 컨설턴트들은 비용 절감의 강한 인센티브를 갖게 된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은, 환경 지배가 득이 된다는 것을 보증하고, 발생 가능한 문제들을 나열하며, 문제가 될만한 상황들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는 정도로 연구를 끝내는 것이다. 모험을 시도하는 것은 컨설팅 기업들에게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이들의 자본이란 대개 전산 설비와 사무용 가구들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들의 주요 자산은 고객들의 신용이라 할 수 있다. 환경 컨설팅 업체들이 시장에서 빠르게 교체되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학술 보고서가 일단 상품이 되고 나면 이 또한 기업 세계의 두 가지 다른 측면에 의해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역마차는 탈취될 수 있고, 맥주에는 물을 탈 수 있다. 즉, 이들 과학적 상품들은 도둑맞거나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 다른 이들의 업적을 가로채거나, 성공담을 출판하기 위해 혹은 경쟁자를 물리치기 위해 결과를 변조하는 행위는 점차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과학적 사기는 과거에도 일어났고 (널리 알려진 필트다운의 사례처럼) 우선순위에 관한 논쟁은 명예를 두고 경쟁하는 개인들 사이에서도 일어나곤 했다. 하지만, 과학적 사기는 이제 합리적인 경제적 기반을 가지고 있으며 그래서 점점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 과학적 발견은 수량화가 가능해졌다. 기업은 신약이나 컴퓨터를 개발하는데 평균적으로 필요한 노동과 비용, 시간을 추정할 수 있다. 그래서 연구개발 회사나 개발 부서들은 학술 활동을 특정 문제의 해결 방식으로 간주하기보다는 일반화된 인간 노동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 과학자들은 “학술 인력”이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생산 비용, 대체 가능한 존재, 관리감독의 대상이 되었다. 학문 분야에서의 노동 분업에 해당하는 전공과 서열의 창조가 점차 합리화되고 있다. 학술 활동의 창조적인 부분은 과학자들 중에서도 점점 소수에게로 집중되고 있다. 나머지는 점차 프롤레타리아화되면서 문제의 선택과 접근 방법에 대한 통제권은 물론 매일의, 혹은 매 시간의 활동에 대한 통제권마저 상실해가고 있다. 과학적 관리는 포드(Ford) 사의 악명 높은 테일러 체계 하에서 자동차 산업을 위해 처음 개발되었으나 점차 상업, 사무직 노동, 학술 연구에까지 확장되었다. 관리적 접근은 노동력을 관리자의 목적을 위해 쓰이는 객체로 인식한다. 기술이 분절되고 그에 따라 특성화가 심화되는 현상은 해당 분야의 지적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 관리자의 비용 계산으로부터 비롯된다. 두 명의 일반 의료기사를 훈련시키는 것보다는 혈액검사요원과 소변검사요원을 한 명씩 훈련시키는 것이 비용이 적게 든다. 또한 분절화와 단순작업화는 노동력의 통제를 것을 공고하게 해 준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학술활동의 단순작업화는 더욱 큰 소외 현상을 낳는다. 생산자는 전체 생산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이 어디로 어떻게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으며 창조적인 지적 능력을 연마할 기회도 갖지 못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일단 노동이 소외되면 과학은 더욱 강도 높은 감독을 요구하는 하나의 일자리로 전락하고 만다. 이러한 감독의 부담은 소외를 더욱 촉진하며 부패나 무관심을 부추긴다. 이는 통제권을 과학자의 손에서 빼앗아 관리자에게 넘겨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연구자들은 자신의 업무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이 없으며, 학술 행정 담당자들도 더 이상 그들 동료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이 없다. 대부분의 책임은 조직 위계의 상부에 자리 잡고 있는 자원의 통제권자들에게 돌아간다. 이로부터 파생된 한 가지 결과는, 연구비 지원기관에 제출되는 연구계획서의 분량이 늘어나면서 좀더 상세하고 신중해졌고, 연구 의도를 정직하게 반영하는 경우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결론을 합리화시키는데 관심이 있는 연구비 지원기관들은 좀더 신중한 쪽을 선택하며 이를 위해 더욱 상세한 기술을 요구한다. - 학술 노동자 그 자체가 생산되어야 한다. 대학과 전문학교의 목적은 다양한 기술 수준의 학술노동 인력을 최저 비용으로 공급하는 것이다. 또한 민간 기업의 인력 부서를 위해 교육 과정 그 자체를 외부 서비스로 전환하고 있다. 이는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미명 하에 교육자들에 대한 압력으로 작용한다. 학생들이 지나치게 많은 것을 알지 못하도록 하며, 그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즉, 기업주들이 원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즉, 대학원 교육 기간을 단축시키고 돈이 되는 박사학위를 더욱 많이 배출해야 한다. 초등 교육에서의 이러한 압력은 “기본으로 돌아가기”를 뜻한다. 실용주의적 접근은 보편적인 현상이 아니며, 언제나 그렇게 노골적인 것만도 아니다. 교육자들은 가끔씩 사회의 지배적 경향과 충돌하며, 자신들만의 목표를 갖기도 한다. 그러나 보다 창조적인 프로그램마저도 체계를 유연하게 통제하고 유지해야 한다는 불분명한 임무를 위해 인력을 생산한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상품화에 대해 대조적인 방식들로 반응한다. 한편으로 그들은 이를 애통해한다. 그들 중 다수는 중간 계급 출신으로서 거래의 세계를 벗어나는 방편으로 학문을 선택했다. 그들은 자신의 노동 산물이 교환을 위해서라기보다 그 자체로서 가치 있는, 즉 사용가치를 갖는 일에 헌신하려고 과학자라는 진로를 선택했다. 그들은 과학이 상품화되기 이전 시대의 신화인 협동정신, 진리에 대한 숭고한 헌신이 사라졌음을 한탄한다. 그들은 학술 노동의 프롤레라티아화, 자율성의 소실을 개탄하며 관리 통제와 가치에 대한 관료적 결정에 대해 개인주의적 방식으로 저항한다. 만일 그들이 조직을 결성한다고 해도, 이를 노동조합이라 부르기를 꺼려한다. 다른 한편에서 과학자들은 새로운 사업 기회를 이용하는데 몰려들고 있다. 일부는 (특히 스푸트니크 발사 이후 미국 번영의 짧은 시기 동안) 재정적 혹은 다른 보상을 가져다주는 여러 가지 대안들 중의 하나로 학문 분야의 직업을 선택한다. 실제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모든 과학자의 약 2/3이 민간 기업에 고용되어 있으며, 이 곳에서는 이윤 추구가 솔직하게 목표로 인정된다. 전문가적 지위를 상실하고 자본주의 체계의 일부로 편입되어 가는 이행 상황은 직업 지식인으로서 과학자들의 이념적 위치와 사회적 행동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그 형태는 개인적 책임감과 이견(異見)을 대담하게 주장하는 것으로부터, 신중한 비판 혹은 고의적인 무관심, 그리고 비굴한 아부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다. 또한 관료화나 프롤레타리아화에 대한 엘리트주의적 저항, 새로운 질서에 대한 현실적 혹은 열광적 참여, 또는 자본주의 반대 투쟁에서 다른 소외된 부문과의 연대까지 실로 다양하다. 이러한 발전의 결과,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계급 분할이 과학 분야에서도 나타나게 되었다. 미국에서 일하는 백만여 과학자들 중 다수는 학술 프롤레타리아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며 그들의 생산품이나 자신의 노동에 대한 통제권이 없다. 그 반대편에는 많아봐야 수천 명 정도가 부르주아 집단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연구에 자본을 투자하며 연구 개발 방향의 상당 부분을 결정한다. 이 두 극단 사이에는 혼자 일하거나 대학, 혹은 연구소 등에서 소규모 집단 활동을 하는 쁘띠 부르주아 전문가 집단이 존재한다. 그들의 동기는 매우 다양한 관심사에 의해 유발되지만, 그들의 연구 활동은 점차로 정부 기관, 민간 기금, 혹은 기업으로부터의 연구비에 좌우되고 있다. 이제 이들에게 연구비는 필수품이다. 그리고 연구비와 연구의 관계는 점점 변해가고 있다. 원래 연구비는 연구를 위한 수단이었지만, 과학 기업주들에게는 연구가 연구비를 위한 수단이다. - 과학에 대한 자본 투자는 주요 산업이 되었다. 여기에는 화학, 기계, 문화 매체, 실험용 동물의 표준 품종, 그리고 학술 정보들이 포함된다. 이로 인해 나타난 결과 중의 하나로, 과학 기술의 발전이 원래 기여하고자 했던 학술 연구로부터 분리되는 일이 나타났다. 기술은 자연 탐구에 필요한 가장 저렴하거나 최선의 방법을 찾는 쪽으로 향하기보다 특정 시장에서 이윤을 획득하는 쪽으로 몰리게 된다. 제 3세계 국가들에서 활동하는 세일즈 관리자들은 새로운 연구소들이 “최고의”, “최첨단의” 장비를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품 보충이나 서비스 수선, 안정적인 전력의 가용성 문제 등은 확인도 하기 전에 말이다. 물론 이들 국가의 대통령은 정신과 병원에 기증된 휘황찬란한 최신식 16채널 뇌파측정기 앞에서는 포즈를 취하겠지만, 과실 파리(fruit fly) 조사에 사용되는 바나나 곤죽으로 가득 찬 양동이를 시험하는 데에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기관을 새롭게 설립하는 것은 기존의 시설을 작동하도록 유지시키는 것보다 훨씬 극적 효과가 있다. 열대 지방 전역에 존재하는 사용되지 못하거나 파손, 혹은 방치된 시설들에 관한 이야기들은 이제 의미심장한 전설이 되어버렸다. 현재 미국에서 과학자 한 명이 일하는데 드는 비용은 1년에 약 10만 달러 정도인데, 이는 산업 혹은 서비스 노동자 다섯 명의 급여에 해당한다. 제 3 세계 국가들의 경우, 과학자들이 받는 월급은 훨씬 적고 장비와 보급품 비용이 더욱 비싸며 기반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한 명의 과학자를 지원하는데 필요한 자원을 공급하는데 50명 이상의 노동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학술 잡지는 원래 학술 사회의 개인적인 소통 공간을 마련할 목적으로 발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 출판사들이 학술 서적과 학술지 발간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출판사의 대표들은 과학자들에게 아첨하거나 이들을 부추겨서 또 다른 교과서를 쓰게 만든다. 이를테면 “우리 출판사는 분자 유전학과 발생 유전학에서 이미 베스트셀러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책을 통해 그 시리즈를 완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새로운 집단 유전학 교과서를 집필하도록 만든다. 이제 무엇이 출판되는지는 학술지를 채우려는 출판사와 편집자의 필요, 그리고 정년 심사, 새로운 일자리, 혹은 승진을 위해 시의 적절하게 게재가 이루어져야 하는 저자의 필요에 달려 있다. “이러한 학술 출판이 과연 필요한가?”라는 질문은 거의 하지 않는다. 따라서 흔히 언급되는 정보 급증의 상당 부분은 실제로 잡음의 급증이라 할 수 있다. 대학 학문의 상품화는 대학의 재정적 필요로부터 비롯되었다. 대학은 네 가지 측면에서 과학자들을 투자 대상으로 여긴다. 첫째, 정부기관과 기업으로부터 연구비를 얻기 위해서, 둘째, 학술 보고서로 홍보효과를 얻고 그 명성을 이용해 기부금을 확보하기 위해서, 셋째, 대학의 “위상”을 높임으로써 등록금을 인상하고 학생들을 유인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대학 교원에 의해 개발된 발명품의 특허를 공유하기 위해서이다. 그 결과, 대학 내의 자원 할당은 연구자들의 명성과 다양한 사업에서의 돈벌이 능력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많은 대학의 학자들이 관리자들로부터 그들의 연구를 자금이 좀더 풍족한 분야 (이를테면 유전 공학)로 전환하라는 압력을 받는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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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과학의 상품화 1부

하드디스크의 자료들이 '지나치게' 엉켜 있어서, 오늘 맘 먹고 몇 시간 동안 정리... 공부한답시고 이런저런 논문이랑 자료들은 정말 많이도 퍼다놨더군. (심지어 중복된 자료들도 종종 발견......ㅜ.ㅜ)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야 보배라는 속담을 다시 떠올렸다. 저거만 다 읽고 되새김질 했어도 말이지........... ㅡ.ㅡ 예전에 번역해둔건데, 콩 반쪽도 나눠먹는다는 심정으로 공유... 다른 몇 챕터도 시간 나면 번역하고 싶다만 과연 그 귀하다는 '시간'이 날 지는 모르겠음. ----------------------------------------------------------------- 변증법적 생물학자 The Dialectical Biologist by Richard Levins and Richard Lewontin 번역 : hongsili (2005.2) 제 8장. 과학의 상품화 근대과학은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새로운 지역으로의 팽창, 생산의 전환, 새로운 상품의 창조, 더 많은 이윤을 낳는 생산 방식의 창출, 그리고 이 모든 것에서 다른 이들보다 앞서 나가려는 자본가의 필요 - 이들이 바로 근대 과학의 경제적 토대가 되었다. 한편 근대과학의 이념적 토대는 이러한 자본가의 필요 뿐 아니라 부르주아 혁명(개인주의, 사상의 자유시장에 대한 믿음, 국제주의, 민족주의, 그리고 권위를 지식의 근거로 삼지 않으려는 성향)의 정치 철학과도 부합한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과학의 참여 방식 또한 발전해왔다. 과학은 귀족(궁정악사와 광대까지 포함하여)을 위한 사치재로부터, 봉건적 신학이론에 대한 반대 투쟁의 중요한 이념적 무기이자 실질적인 경제 문제들을 해결하는 자원의 기능을 해왔다. 18세기 말, 산업과 농업 분야에서는 오랜 침체 끝에 발명과 창조의 뚜렷한 성장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영제국의 경우, 1750~1780년대에 특허 등록의 숫자가 92건에서 477건으로 늘어났다. 이 즈음 농업학회가 창립되었고, 가축 교배와 관리는 발전을 거듭하여 헤레포드 (Hereford) 같은 품종을 만들어냈다. 18세기를 거치면서 런던에서 거래되는 소의 무게는 두 배로 늘어났으며 양의 무게는 세 배 증가했다. 또한 19세기 초에는 최초의 농업 학술지가 발간되었다.


부르주아 혁명의 지도자들은 과학이 가진 군사적, 상업적 잠재력을 일찍이 간파했다. 가장 오래된 학회들로는 1662년에 설립된 왕립학회, 1780년 뉴잉글랜드의 혁명 지도자들이 설립한 미국 학술원, 프랭클린의 미국 철학회(1768), 그리니치의 해군천문대(1675) 등이 있다. 프랑스 정부는 1795년에 에꼴 폴리테크니끄(Ecole Polytechnique)를 설립했다. 나폴레옹은 전쟁 때문에 인도로부터의 인디고 수입이 중단되자 과학자들로 하여금 이를 대체하는 합성염료를 개발하도록 지시했으며 심지어 군수품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유럽 국가들이 정복한 열대 지역에서는 생물학적 자원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목록 작성이 이루어졌으며, 이는 린네(Carolus Linnaeus)의 지도력 하에 계통분류 생물학의 번성을 가져왔다. 미국에서는 농업과 광업의 발전을 위해 과학적 지식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으며, 1862년까지 모렐 법안(Morrell Act)을 통해 농업과 공학 기술을 위한 공유지 교부 대학 설립이 이루어졌다. 산업혁명의 첫 세기 내내, 과학은 도로나 등대 같은 자본주의적 팽창의 외부효과(externality)로서, 그리고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 (이를테면 파스퇴르가 당시 프랑스 와인 산업을 위협하던 파이토포라 Phytophora를 동정한 것처럼)으로서 그 역할을 넓혀왔다. 그러나 이 때까지 과학은 아직 상품이 아니었다. 그것의 응용은 불확실했으며 잠재력은 아직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고, 그 산물은 여전히 경험적인 혁신에 대한 사후 설명으로 나타나곤 했다. 상품의 생산, 판매를 위한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에 인간 노동을 투입하는 것은 분명히 자본주의보다 앞서 나타났다. 그러나 자본주의 하에서 경제 활동의 상품 형태는 인간 생활의 모든 측면으로 점점 더 깊숙이 침투했다. 1607년, 세익스피어는 “아테네의 타이몬 (Timon of Athens)”에서 이러한 상품화를 개탄했다. "황금? 노랗고 반짝이는 소중한 황금? ... 이것들은 이렇게 검은 것을 하얗게, 역겨운 것을 정당하게, 그릇된 것을 올바르게, 평범한 것을 고귀하게, 늙은 것을 젊게, 비겁한 것을 용감하게 바꿀 것입니다. 아, 신이시여! 이것이 왜? 신이여 이것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왜 이것이 당신의 사제들과 종복들을 당신 편으로부터 끌어내고, 튼튼한 남자들의 머리맡에서 베개를 빼앗아간단 말입니까 이 노란 색의 노예는 신앙을 졸라매고 부서뜨리며, 저주받은 이들을 찬양하고, 백발의 나환자들을 경배하게 만들며, 도적들에게 직함과 존경을 부여하고 그들을 인정받게 할 것입니다. 원로원들과 함께 ..." 2세기 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당선언(1848)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 부르주아는 그들이 지배력을 획득한 모든 곳에서 온갖 종류의 봉건적, 가부장적, 목가적인 관계들을 끝장냈다. 그들은 사람들을 ‘타고난 상전들’에 묶어 두던 갖가지 봉건적 끈들을 무자비하게 갈가리 찢어버렸으며, 적나라한 자기이익과 냉랭한 ‘현금 지불’ 이외에 사람들 사이의 어떠한 관계도 남겨두지 않았다. 그들은 종교적 열정, 불타는 의협심, 속물적인 감상주의의 가장 경건한 황홀경마저 이해타산의 차가운 물 속에 익사시켜버렸다. 그들은 인간적인 가치를 교환가치로 변화시켰고, 헤아릴 수 없는 불가침의 공인된 자유들을 대신하여, 저 하나의, 비양심적인 자유 - 거래의 자유 -를 확립했다.... 또한 부르주아들은 지금까지 명예롭고 경외에 가득 찬 존경을 받았던 모든 직업들의 빛나는 후광을 여지없이 발가벗겨 버렸다. 이들은 의사, 법률가, 성직자, 시인, 학자를 임금 노동자로 바꾼 것이다. " 이전에는 인간 상호작용의 직접적 결과였던 활동들, 이를테면 오락, 정서적 지지, 학습, 여가, 아이 돌보기, 심지어 혈액과 장기 공여, 혹은 자궁의 쓰임새 같은 것들마저 시장으로 들어왔으며 인간관계는 비인격적인 거래 뒤에 숨어버렸다. 인간사의 새로운 측면들이 상품화할 때마다 일부에서 저항이 표출되기도 했는데, 이는 이전 가치의 절하에 맞서는 분노의 형태로 나타났다. 시장에 반응하여 빵 값이 자유화되었을 때, 영국 노동계층에서는 빵을 얻기 위한 폭동이 일어났다. 통신 수단이 상업화되고 정보 독점이 가시화되자 1980년대 유네스코의 제 3세계 대표단들이 주도하여 이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새로운 정보 질서를 요구하기도 했다. 또한 보건의료의 상품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국가보건 서비스와 건강보험 문제를 제기하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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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투자전략: 토론문

다른 자료를 찾다가, 지난 건강형평성 학회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여했을 때 준비했던 원고 확인... 기록차 남겨둔다. ------------------------------------------------------------------- 토론 3: 이 글에서는 사회투자전략 중 건강투자 전략에 집중하여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1. 건강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두 번째 발표 (이원영, 건강투자전략과 국민건강)의 첫 머리에 정리되어 있듯, ‘건강’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차이가 있으며 참여정부의 건강투자전략은 그 중 인적 자본, 투자재로서의 건강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 효용이나 가치라는 측면에서 볼 때, 모든 사람에게 건강이 항상 최고, 우선순위를 차지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이는 건강을 희생해서라도 더 많은 소득을 올리는 것에 우선순위를 둘 수 있고, 반면에 다른 차원의 안녕을 포기하고 건강을 지키려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인의 선택과는 별도로, 인권으로서 그리고 잠재력(capability)으로서 보호받아야 할 것이 건강이다. 인권은 인간의 존엄성에 초점을 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보편적인 것이자 유보하거나 박탈할 수 없는 속성이다. 건강권은 세계인권선언(25조)은 물론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대한 국제규약(제 12조)에 명시되어 있는 사회권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이는 경제개발의 동력, 혹은 개인의 경제적 성취를 위한 수단이나 도구로 여겨질 수 없다. 물론 충분한 교육을 받고 높은 건강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개인 수준에서 노동시장에서의 성취, 사회 수준에서 생산성의 증대와 경제개발에 일정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만일 높은 교육수준과 건강상태가 생산성 증대에 기여하지 못한다면, 이러한 인적자본은 회수되어야 하는가? 건강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인간의 성취는 오로지 상품생산에만 존재하는가? 아마티야 센(Amartya Sen)의 지적대로, ‘인적 자본’ 개념은 우리가 “왜” 경제성장을 이루고자 하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에 답을 주지 못한다. ‘개발’을 ‘경제성장’으로만 이해하는 협소한 시각에서 벗어나 인간의 자유와 가치 있는 삶을 증진시키는 ‘포괄적 사회개발’로 바라본다면, 그리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인간 잠재력’의 중요한 구성요소로서 건강을 생각한다면, 참여정부의 ‘건강투자론’은 개발지상주의와 시장동원체제의 수사적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2. 건강 불평등과 사회 불평등 한편, 인적자본 개념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건강투자의 문제인식과 접근의 방식을 살펴보자. 건강은 생물학적/사회적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 다차원적 속성으로서, ‘정상성’에 대한 생물학적 규범이 존재한다기보다는 생물학적/사회적 가치판단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바람직한 건강상태에 대한 정의는 매우 다양하며, 인구집단에서 관찰되는 건강 수준의 변이도 매우 광범위하다. 우리는 다양하게 구분되는 집단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건강 수준의 모든 차이를 불공정, 혹은 불공평하다고 이야기하거나 혹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사회적․경제적․지리적으로 구분되는 인구집단들 사이에서 체계적이고 잠재적으로 개선 가능한 차이가 존재할 때, 즉 건강결과 그 자체의 분포보다는 건강 격차가 불공정한 사회질서의 결과물로 나타날 때 이를 문제라고 여긴다. 건강 형평성이 곧 사회정의의 문제라면, 결과의 평등을 넘어서 과정과 절차에서의 공정성이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하고, 건강 불평등의 개선을 위해서는 격차가 발생하는 사회구조/자원의 분포 방식 자체에 대한 교정을 필요로 한다. 실제로 ‘가난하기 때문에 건강하지 못한가?’, 혹은 ‘건강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난한가?’라는 인과성 문제에서, 그동안의 역학적 연구들은 건강 선택(health selection, 건강 → 사회경제적 지위)보다는 사회적 결정요인(social determinants of health, 사회경제적 요인 → 건강)의 역할을 더 강조해왔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관찰되는 건강 불평등은 한국사회가 가진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존하는 사회적․경제적 질서의 상당한 변화 없이 소위 건강 투자 - 특히 개인의 생활습관 개선이나 보건의료서비스의 확대/적정화 -를 통해 개인들, 더구나 취약계층의 건강을 향상시키고 생산성을 증가시킨다는 것은 완수불가능한 과제로 여겨진다. 예를 들어보자. 지역안전보건센터는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여러 모로 영세사업장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불안정 고용을 영속화시키는 고용정책, 영세사업장 노동자와 비정규노동자들을 배제하는 노동안전 법규/제도의 변화 없이, 안전보건 서비스의 추가제공만으로 과연 건강이라는 인적자본이 축적되고 이것이 추가적인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미 지금도 한국사회의 노동시간은 OECD 국가들 중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건강 수준이 낮아서 노동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장시간의 노동과 혹독한 노동 강도 때문에 건강이 나빠지고 있다. 여성의 고등교육 수준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정도이지만,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을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형편없이 뒤쳐진다. 이들 생산 활동 적령기의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불충분한 인적자본 때문인가? (그림 1). 그림 1 OECD 국가들의 교육수준에 따른 30-44세 여성 취업률, 1995년 (자료원: OECD Center for Educational Research and Innovation. OECD Publication, Paris 1998) 3. 정치적 수사 혹은 진심? 두 번째 발표에서 지적했듯, 건강투자를 통한 경제개발의 논리는 어린이와 청장년 집단에서 심각한 사망과 상병 문제를 경험했던 저개발 국가들의 지원과 관련하여 상당한 설득력을 지녔던 것이 사실이다. 참여정부에서 제기한 사회투자전략, 특히 건강투자전략도 정치적 우파와 개발론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 수사로서의 순기능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또 다른 성장이데올로기를 유포시킨다는 점에서 상당히 위험한 ‘정치적 수사’가 아닐 수 없다. 한편,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성격은 차치하더라도 현재 보건복지부에서 제시한 ‘건강투자전략’의 추진과제를 통해 과연 ‘전 국민의 건강수준 향상, 소득/지역에 따른 건강격차의 해소, 적정 수준의 국민의료비 증가속도 관리’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유럽 등을 위시한 소위 선진국에서는 ‘건강투자’라는 표현을 잘 안 쓰기도 하지만, 쓰는 경우에도 ‘경제개발’을 위한 수단적 속성보다는 건강 불평등의 극복과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을 포괄하는 통합적 ‘사회개발’을 논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건/복지 서비스 투입을 중심으로 하는 보건(복지)부의 영역을 넘어서, 건강 결정요인들을 다루는 다양한 정부 부처 (예, 교육, 농업, 노동 등) 사이의 협업과 공조에 의해 보건목표와 건강증진 전략이 세워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복지부의 전략과 과제를 본다면 불평등을 야기하는 ‘결정요인’에 대한 고려를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오히려 의료서비스 산업의 경쟁력 강화라는 미명 하에 보건의료서비스의 상품화를 더욱 가속화시키려는 움직임이 관찰되고 있다. 정부는 경제개발논리에 근거한 건강투자전략에서 벗어나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NAP) 권고안에 근거하여 건강권을 포함한 사회권을 보장할 수 있는 포괄적인 사회개발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특히 부처 간 협력을 통해서 ‘보건복지정책’을 넘어서는, 건강 결정요인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처방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국가 경제를 떠받치는 ‘산업역군’으로서 민중들은 그동안 충분히 노력하고 시달려왔다. 생산성 운운하며 사람들을 ‘인적자본’으로 무장시켜 시장으로 내모는 것은, 최소한(!) 보건복지부가 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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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아옌데] 3편

홍실이님의 [살바도르 아옌데 2편] 에 관련된 글.

3. 대통령으로서의 아옌데

아옌데 정부 - 인민연합 (the Popular Unity, PU) - 는 야심 찬 사업들과 함께 권력을 장악했다. 정부는 경제적 전략 분야에 위치한 산업들을 국유화하고 소득 재분배를 위한 강력한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또한 거대 농장의 지배를 종식시켰으며, 단원 입법기구를 설립하여 정치 체계를 변화시켰으며, 경제․정치․사법 체계의 운영에서 민중 참여를 증진시키고, 독립적인 외교 정책을 추구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현존하는 헌법 체계 안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즉, 사회주의에 이르는 칠레의 경로는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어떻게 이것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인민연합은 이러한 의문에 절대로 분명한 답을 하지 않았다. 이는 인민연합이 전술과 전략에 관한 생각이 상이한 여섯 개 단체의 연합체였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더구나 대통령은 그 자신의 사회당을 결코 통제하지 못했다. 대체로 당은 아옌데 자신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좀더 급진적인 방식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인민연합이 국회에서 과반수를 점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상원의 경우, 인민연합은 18석을 차지한데 비해 야당은 32석을 차지했으며, 하원에서는 57석 (야당은 93석)을 차지했을 뿐이었다. 1973년 대선에서 인민연합이 얻은 성과는 야당의 점유율을 아주 조금 줄였다는 것이다.



성공적인 경제 정책은 이 모든 문제를 극복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1년의 성장 후 경제는 악화되기 시작했다. 칠레의 주된 수출품목인 구리의 가격이 폭락했다. 외부적으로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킨 것은, 전통적인 자금 재원이 말라버린 것이었으며, 생활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식품 수입이 급증하고 이는 다시 지불 잔고 문제를 가져왔다. 노동자들이 공장을 장악하자, 자본가들은 대개 투자를 거부했다. 생필품 분배를 통제하려는 정부의 시도에 대한 반작용으로 암시장이 성장했다. 매일의 삶은 공급이 부족한 물자를 얻기 위한 줄서기의 연속이었다. 인플레이션을 통제를 벗어나고 있었다.


 경제 붕괴와 정치적 갈등은 상호작용하고 서로를 강화시켰다. 유명한 칠레의 헌법 체계는 아옌데 정권에서의 정치적 갈등을 봉합하기에는 너무 취약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정부나 야당이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양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야당은, 불법은 아니더라도 분명 의회 체계의 관행들에서 벗어나는 행정부의 정책들을 차단할 일련의 수단들을 만들어내는데 몰두해 있었다. 정부 또한 적법성이 의심스러운 대책들을 채택하고는 했다. 이러한 행위는 상호 의심을 강화시키고, 곤경을 빠져나갈 방법을 찾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정부와 야당은 심각한 대결 국면을 맞이했다. 경제는 통제 불능 상태였으며, 둘 사이를 중재하려다 실패한 군 총사령관은 사임을 했다. 교회 또한 이 둘을 화해시킬 수 없었고, 폭력은 증가했다. 평화로운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아옌데 정부는 처음부터 적대적인 미국에 맞서야했으며, 미국은 의심할 여지 없이 칠레의 반정부 세력들을 지원했다. 그러나 쿠데타의 이유는 무엇보다 내부에서 찾을 수 있었다. 1973년 9월 11일, 마침내 상황은 종료되었다. 난폭한 군사쿠데타, 대통령궁 폭격, 아옌데의 사망, 수천 명 칠레인의 살해와 함께.


 대통령으로서 아옌데는 많은 실책을 저질렀다. 1972년에 카스트로를 초청하여 3주간 그와 함께 머물도록 한 것은 실수였다. 아옌데는 중도파의 지지를 필요로 했지만, 이를 얻는 데 실패했다. 그가 성공할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그가 마음에 그렸던 급진적 프로그램은 강력하고 단결된 정부, 허약한 야당, 광범위한 전국적 지지, 우호적인 국제 환경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이들 중 어느 것도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4. 아옌데의 유산

 

 

 현재 칠레에는 아옌데의 유산의 극소수만이 남아 있다. 거의 모든 그의 정책들은 군사 쿠데타 이후 뒤집혔으며, 그 후 자본가들은 반(反) 혁명을 이끌어나갔다. 피노체트(Pinochet) 정권은 아옌데 정부가 국유화시킨 산업의 대부분을 원래 소유주에게 돌려주었으며, 공공 지출을 대폭 삭감하고, 노동조합 운동을 탄압했다. 그러나 아옌데의 가장 인기 있던 정책들 중 극소수는 오늘 날에도 남아 있는데, 이를테면 학동들에게 매일 500ml의 우유를 공급하는 것이나 구리 산업의 대부분을 국가가 소유한 것이 그것이다. 현재까지 지속되는 업적 중 하나는 농촌 지역에서 라띠푼디오스 (latifundios, 대농장)를 철폐한 것이다. 얄궂게도, 이 분야에서의 사회주의적 개혁은 대규모 토지 소유자들을 제거함으로써 1973년 군사쿠데타 이후 농업 생산의 자본주의적 방식을 확립하는데 길을 닦아준 것이 되었다.


 보다 넓은 정치적 의미에서, 아옌데 시대와 그 후의 독재에 대한 기억은 오늘날에도 칠레인들을 갈라놓고 있다. 어떤 이들에게, 아옌데 정권의 3년이라는 시간은 칠레 역사상 유일하게 노동 계급과 가난한 이들이 국가와 경제를 움직이는데 정당한 몫을 했던 시기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나라를 혼돈, 심지어 내전의 위기까지 몰고 간 정치적․경제적 불안정의 시기로 기억될 것이다. 비록 합의 정치가 우세하기는 하지만, 칠레인들의 투표 방식과 국가 통치를 위한 정치적 동맹의 속성은 모두 여전히 이러한 좌/우 분할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칠레 좌파에게 아옌데의 유산은 논쟁거리이기도 하다. 사회주의자들은 현존하는 민주주의 체계의 한도 내에서 보다 큰 사회적 정의를 달성하고자 노력했던 아옌데의 모습에서 사회민주주의를 강조한다. 인민연합의 패배에서 그들이 얻은 주요 결론은, 사회 변화를 이루려면 광범위한 전국적 합의와 정치적 스펙트럼 상의 좌파, 중도파의 동맹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공산주의자들은 미국과 쿠데타를 일으킨 우익을 비난하며, 인민연합의 마르크스주의적 프로그램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들은 사회주의자들이 합의의 정치와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아옌데의 이상을 폐기했다고 비난한다.


 살바도르 아옌데는 그가 살았던 시대의 산물이다. 그는 부르주아 출신의 뛰어난 의회주의자로서, 공화국 칠레의 입헌 체계를 굳게 추종했다. 그는 또한 쿠바 혁명과 1960년대에 전반적 의제를 좌파 쪽으로 이동시킨 정치 운동에서 영감을 얻은 마르크스주의자였다. 그의 비극은 민주주의 원칙과 급진적 사회변화를 통합하려는 시도 속에서, 칠레가 자랑스러워하던 민주주의 체계의 바탕에 깔려 있는 합의의 한계를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계속: 살바도르 아옌데와 라틴아메리카 사회의학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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