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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3/09
    밤 눈(4)
    hongsili
  2. 2005/01/28
    국제 인권 영화제에 다녀와서...(1)
    hongsili
  3. 2004/12/31
    연말에 읽은 책
    hongsili
  4. 2004/11/20
    R.Daneel Olivaw(1)
    hongsili
  5. 2004/11/04
    모터사이클 다이어리(9)
    hongsili
  6. 2004/10/10
    기형도에 의한 [빈집]과 기형도를 위한 빈집
    hongsili
  7. 2004/10/09
    입 속의 검은 잎(3)
    hongsili

날 좀 보소...

* 이 글은 자일리톨님의 [룩앳미 - 아네스 자우이(2004)] 에 관련된 글입니다.

어제 날씨도 청명하고... 그냥 퇴근하면 웬지 천벌을 받을 것 같아 집 근처 극장에 갔다.

 

이전에 여러 명의 블로그들이 이 영화를 상찬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더랬다.

지난번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보러갔을 때는 너무도 한산하여 토끼님과 함께 극장 운영에 대해 진심어린 걱정(오지랍도...)을 나누었었는데, 오늘 가보니 사람이 꽤 많더라.

우리(?) 영화 올드보이도 하고 있었고,담 주에는 드뎌 쿵푸 허슬 개봉이다. 기대 만땅... 참, 하울의 움직이는 성 포스터도 붙어있던데 그것도 조만간 볼 수 있지 않을까?

 

한국 있을 때는 미국에서 수입해오는 영화들이 허접하다고 엄청 불평을 했는데, 여기 와보고는 한국 영화수입업자들의 안목이 참으로  높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나마 그 작품들이 얼마나 엄선해서 들여오던 것인지.... 주마다 개봉하는 영화들 예고편, 광고들 보면 참으로 가관일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뭐 이쯤 생략하고...

 

룩 앳 미... 날 좀 보소... 혹은 "제발" (다른 게 아닌 ) 날 좀 봐유..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크고 작은 권력, 관계 맺기에 대한 영화...

누군가 꽃이라고 불러주고 나서야 비로서 꽃이 진짜 꽃이 될 수있었던 것처럼, 이 사회에서 "관계" 없이는 존재도 없다. 그 관계의 종류와 밀도가 인간의 존재 방식을 결정하고, 한 번 정해진 존재 방식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존엄한 존재로서의 개인을 그대로 직시하고, 이로부터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는 건 무지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극 중 드러나는 모든 관계들, 뚱뚱하고 재주없는 딸과 유명한 작가 아빠, 그 유명 작가 남편과 아름다운 젊은 부인, 그리고 유명 작가와 신진 작가, 그 신진작가와 음악선생 부인, 음악 선생과 주인공인 딸래미, 그리고 그녀와 헌/새 남자친구....

어느 관계나 우리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익숙하면서도 기묘한 풍경.... 

 

감독은 유쾌하게, 가벼운 듯 하면서 진지하게 이 모든 것들을 다듬어냈다.

타인의 취향을 보았을 때랑 심히 비슷한 느낌....

 

오랜만에... 즐거운 맘으로, 세상사에 대한 낙관을 품고 극장문을 나섰다.

(근데, 나오면서 보니까 다들 쌍쌍이 왔더라.. 젠장.... 저런 영화는 혼자 봐야지 뭐하는 짓들이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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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눈

밤 눈

 

 

기 형 도

 

네 속을 열면 몇 번이나 얼었다 녹으면서 바람이 불 때마다 또 다른 몸짓으로 자리를 바꾸던 온실들이 엉켜 울고 있어. 땅에는 얼음 속에서 썩은 가지들이 실눈을 뜨고 엎드려 있었어. 아무에게도 줄 수 없는 빛을 한 점씩 하늘 낮게 박으면서 너는 무슨 색깔로 또 다른 사랑을 꿈꾸었을까. 아무도 너의 영혼에 옷을 입히지 않던 사납고 고요한 밤, 얼어붙은 대지에는 무엇이 남아 너의 춤을 자꾸만 허공으로 띄우고 있었을까. 하늘에는 온통 네가 지난 자리마다 바람이 불고 있다. 아아, 사시나무 그림자 가득찬 세상, 그 끝에 첫발을 디디고 죽음도 다가서지 못하는 온도로 또 다른 하늘을 너는 돌고 있어. 네 속을 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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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하고 둘 째 주에 저게 웬 난리란 말인가.

거센 눈보라 땜시 창문이 떨어질 지경이다.

커텐 뒤로 비치는 가로등 불빛에 장난 아닌 눈보라의 포스가 느껴진다. 흑....

사나운 밤은 절대 고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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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인권 영화제에 다녀와서...

오늘 Human Right Watch 국제 영화제가 보스턴에서 시작되었다. 우리(?) 영화 [송환]을 비롯하야 5일에 걸쳐 12편의 영화들이 매일 한 두 차례 상영된다.

 

Boston Fine Art Museum에서 개막작으로 상영된 [Born into brothel]을 보고 왔다. "brothel"은 홍등가, 집창촌... 영어사전을 보면 이보다 노골적으로 "매음굴"이라고 나온다. (영화를 보면 후자의 표현이 좀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곳에서 살아가는 아홉 명의 아이들에게 미국의 사진 작가는 수년간 그곳을 드나들며 사진을 가르쳐주었고, 아이들은 놀라운 재능을 보이며 자기 자신과 주변 세상의 "진실"을 찍어나간다. 그리고 또다른 다큐 작가는 이 과정들을 담담한(?) 화면에 담았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가슴이 정말 답답했다. "내 인생에 과연 희망이 있기나 한 건지 모르겠다"는 아이들의 낮은 목소리, 엄마가 포주에게 불에 타 죽질 않나, 아빠는 하루 종일 마약을 태우며 눈이 게슴츠레 풀려 있질 않나, 친척들은 빨리 일 나가라고 어린 소녀를 재촉해대고.... 그래도 깔깔거리며 사진찍기를 재밌어하는 아이들, 사진을 통해 이들에게 희망을 가르쳐줬을 뿐 아니라 동분서주 그들을 학교에까지 보내주었던 백인 여성 사진작가......

 뭐가 그리 불편했던가. 이 사진작가한테 잘못이 있느냐? 그건 아니다. 이 작가, 정말 최선을 다했다. 진심어린 애정과 신뢰를 읽을 수 있었다. 내가 느꼈던 불편함은... 이를테면 "신동엽의 러브하우스" 를 보았을 때 느꼈던 감정과 비슷하다. 극단적으로 어려운 환경, 작은 희망, "착한 사람들"의 선량한 의지, 절대 시스템을 건드리지 않는 철저한 개인주의적 접근 .... 시놉시스에 보면 사진이 이 아이들의 삶을 변화시켰다고 나와있는다. 아이들의 사진이 뉴욕에서 전시되고, 소더비 경매장에 나오고, 방송 인터뷰도 하고, 사진찍기 위해 멀리 여행을 가기도 하고...... 하지만 그 후 어떤 아이는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가출해버리고, 어떤 아이는 그렇게 힘들게 들어간 학교를 자퇴해버리고, 또 어떤 아이는 이전과 다름없이 계속 "그냥" 거기에서 살고 있다. 그럼 러브하우스에서처럼 어디서 장학금이라도 걷어다가 이 아이들을 모두 "구출"했어야 내 맘이 편할까? 그건 아니다. 아니면, 주민운동을 조직해서 근본적인 개혁 운동을 벌였어야? 이것도 아닌디...

 

영화는 중간중간 아이들이 찍은 사진을 스틸화면으로 보여준다. 남루하기 그지없는, 하지만 색상은 무척이나 화려하고 극적인 대비를 이루는 그 동네의 구석구석과 사람들의 모습 말이다. 영화로 보는 우리에게는 이국적이고 생동감있지만(내셔널 지오그래픽스 류), 과연 저기 사는 사람들도 그렇게 느낄까? 

 

모르겠다. 서구인의 눈에 비친 지지리도 가난한 동방의 어느 나라 이야기라는 설정이 기분나쁜건지, 짐승만도 못하게 살고 있는 여성과 아이들의 삶에 화가 나는 건지, 감동을 주는 영화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아이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이이 어처구니 없는건지, 도대체 저 생지옥 같은 곳이 과연 바뀔 수 있기나 한건지 암울한 전망에 우울한 것인지.....

 

인간은 누구나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 공영방송(PBS)에서 제작한 만화에 레즈비언 커플이 등장한다고 생 난리를 치는 학부모들의 아이, 이스라엘의 "targeted hit"에 가족을 잃은 팔레스타인 아이, 새벽부터 술심부름을 하며 얇은 커튼 뒤에서 엄마가 "일"하는 걸 지켜봐야 하는 아이... 모두 똑같이 소중한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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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읽은 책

1. 경성 트로이카

 

소설 자체는 맘에 안 들었지만 (기록물도 아닌 것이, 소설도 아닌 것이... 어정쩡), 그 진정성만은 거부할 수 없었다. 이렇게 기록에 남겨지지 못하고 사라진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2. 다빈치 코드

해원이가 남겨주고 간 책. 베스트셀러의 허명을 다시 일깨워준 소중한 작품이다. 작가는 헐리우드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거 같다. 이 참을 수 없는 어설픔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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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aneel Olivaw

지난 2년여에 걸쳐  꾸준하게 아시모프의 원저를 읽어왔다.

 

1) 일명 로봇 시리즈

I, Robot

The Caves of Steel

The Naked Sun

The Robots of Dawn

Robots and Empire

 

2) 일명 파운데이션 시리즈

Prelude to Foundation

Foundation

Foundation and Empire

Second Foundation

Foundation's Edge

Forward the Foundation

 

지금에 와서 보면 현대의 소설작법에 비해 지나치게 단도직입적이고, 더구나 헐리우드 식의 극적인 작법을 따르는 점들이 거슬리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손을 놓을 수 없는 매력이 있으니..

 

선한 의지라는 인간의 본성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든다. 로봇으로서 양전자두뇌에 임프린팅된 인간에 대한 존중과 우리가 강박처럼 가지고 있는 도덕률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대의를 위한 희생, the first law 에 우선하는 the zeroth law 라는 것이 어떻게 합리화될 수 있을까

 

그토록 자명했던 역사도 시간이 가면 잊혀지고, 안락함 속에 쇠락의 기운이 드리우는 것은 본래의 법칙...  은하계의 쇠락과 인류 문명의 후퇴, 파운데이션의 처절한 몸부림은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 충분히 예상가능한 우울한 미래를 보여준다.

 

학/혹은 학문의 길은 함께 갈 때에 발전이 있는 법. 솔라리아에서는 모두가 한 분야의 전문가일뿐더러, 오로라에서는 로봇과학자들이 평생에 걸쳐 자기 연구만 진행하기 때문에 남이 무슨 발견을 했는지 도대체 알 수도 없고, 관심도 없다. 발전이 정체되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의 마음을 끄는 것은 다니엘. 믿음직스럽고 강인하면서도 부드럽고, 그리고 무엇보다 베일리, Giskard라는 벗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실로 오랜 기간을 고독하게, 인류의 운명만을 걱정하며 살아야 하는 운명(?) 적인 삶....로봇에게 고독, 혹은 운명, 이런 단어들이 적합한가?  하지만 그의 변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즐겁고 한편으로 가슴 아픈 일이었다. 오늘 로봇과 제국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마음이 영 불편했다.  물론 파운데이션 시리즈를 통해서 이후 수천년 동안  다니엘이 무척이나 잘 해나갔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지 않은가. 한편으로 그가 인간이 아닌 것이 다행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성적으로 인간의 기쁨과 슬픔을 인지하되 그것을 본인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존재의 이중성이 가슴 아프다.

 

내가 알고 있는 주인공들 중, 가장 매력있는 인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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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어제 밤에 선거방송 본다고 논문도 안 읽어가서 수업시간에 횡설수설했다. 남의 나라 선거를 이렇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봐야하는 우리네 처지란....

울적한 마음에 (그렇다고 케리가 되었으면 좋아했을까도 의문이지만), 영화를 보러갔다. 극장은 멀쩡하게 생겼는데, 좌석번호가 없다. 손님은 달랑 네 명, 음질과 화면도 꽤나 훌륭한데.. 고맙기도 하지.

 

영화는 정말 재미(!)가 있었다. 시종일관 두 사람의 티격태격과 서로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신뢰....그리고 아름다운 남미의 자연과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단한 일상...

가장 가슴에 남는 장면은... 오토바이도 없이 추적거리며 사막(고원)을 걷다가 마주친 젊은 부부.. 그들은 공산주의 사상 때문에 추방당해서 일자리를 찾아 광산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들은 에르네스토와 알베르토에게도 일자리를 찾아 여행 중이냐고 묻는다. 이어지는 침묵... 우린 그냥 여행을 위해 여행하는 거다..... 그 당혹스러움이란.... 다음날 광산 입구 땡볕에 앉아 노동자로 뽑히기(!) 위해 죽치고 앉아있는 남루한 사람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분명히 살아있는 사람이건만 삭막한 광산지대, 바위들 틈에 또다른 바위처럼 고정되어있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생명있는 인간이 아닌 듯 싶었다. 체의  고민은 점점 깊어만 가는게 당연했다.

 

그러나, 에르네스토가 다른 점이 있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물 네 살의 고민을 스물 대여섯 살 혹은 서른살을 기념하여 (잔치는 끝났다고 장탄식을 하면서) 접어버리는 반면,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천식 때문에 고생하는 그 유약한 청년이 어떻게 게릴라 투쟁을 해나갈 수 있었는지.... 다소 과장되어 보이는 휴머니스틱(!)한 장면들이 없지는 않았다. 죽어가는 환자 앞에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음을 괴로워하는 예비의사의 갈등... 나환자들과 아무렇지도 않게 어울리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 어찌 보면 너무 진부한 모습이지만, 이게 미국식 영웅주의 모험담이 아니라 실존했던 청년의 이야기였음을 떠올린다면 결코 그렇게 폄훼할 수가 없다. 그걸 진부하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속물성이 오히려 부끄러울 지경이다. 더구나 엔딩크레딧에 나오는 실제 사진들을 보고나면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영화 마지막, 알베르토 옹(ㅜ.ㅜ)의 현재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마음은 한량없이 무거워졌다. 

 

하필, 오늘 같은 날 이 영화를 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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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에 의한 [빈집]과 기형도를 위한 빈집

나는돌 님 덕분에 시인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도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다시 보아도.... 내가 이 시를 접했던 것은 김현의 평론집에서. 물론 김현 사후의 일.. 세상을 떠난 시인과, 그의 죽음을 슬퍼한 평론가의 또다른 죽음 뒤에 그렇게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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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 기형도의 '빈집'을 위하여

 

그는 사랑을 잃었네
사랑을 잃고 봉분 하나를 그는 얻었다 하네
익명의 소문들이 그의 생애를 지우는 동안
슬픔이 창궐한 전등불 아래서
사람들은 경악의 얼굴로 술을 마셨네
아름다운 기억들이 술잔에 가득 넘쳤네
시린 별빛 아래서 이별을 고하는 동안
어떤 편안한 잠이 그의 곁에 와 누웠네
아무도 그의 사랑 찾아주지 못했네

그가 잃은 사랑 눈 먼 자의 슬픔으로 떠돌 때
사람들은 새끼처럼 꼬여 칼잠을 자고
꿈속 어느 갈피 짬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네
그가 찍은 삶의 구두점이
동행 없는 모습으로 텅 빈 거리를 헤매고
안개가 그의 그림자를 지우고 있었네
아무도 그를 잡을 수 없었고
그 누구도 그의 사랑이 되어주지 못했네

 

-전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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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기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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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속의 검은 잎

민지네에 갔더니, **님이 "질투는 나의 힘"의 한 구절을 올려놓았다.

미국에 오면서 어떤 책을 가져갈 것인가 고심했다. 무게를 줄여야 하니까 ^^

전공과 관련없는 책은 다섯 권을 가져왔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기형도 시집.

시인의 여행 산문집도 가져올까 하다가 (생일 선물로 받은 아주 낡은 책), 그냥 시집만 들고 왔다. 밀린 빨래하고, 논문 revision 하나 해서 서울로 날리고.... 잠깐 시집을 펼쳤다.

 

 입 속의 검은 잎

 

                                                             기 형도

택시운전사는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금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문을 열면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
접힌 옷가지를 펼칠 때마다 흰 연기가 튀어나왔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번 본 적이 있다
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터졌다, 얼마 후 그가 죽었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
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
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
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 그의 어린 아들은
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그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
택시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
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
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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